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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함께 가자.
햇살이 전혀 여과되지 않은 것처럼 쏟아지는 오후였다.
저벅저벅.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석강호와 최종일이 앞쪽을, 제라르와 우희승이 뒤편을 맡았다.
강찬은 방아쇠 고리에 검지를 걸친 자세로 주변을 날카롭게 살폈다.
산을 타고 빙 돌아가는 길이다.
16시간을 꼬박 걸어야 제시간에 겨우 도착하는 행군.
조국을 위한다는 목표가 아니라면 중간에 퍼지기 딱 좋은 행군이었다.
강찬은 앞뒤로 시선을 돌리며 대원들을 살폈다.
확실히 606 출신들은 훈련 하나는 제대로 받았다.
지금 대테러 팀 대원들의 모습을 보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찬은 혼자 웃고 말았다.
도대체 이런 군인들이 대한민국에는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이러다간 ‘미영아, 미안하다! 난 조국과 대원들에게 인생을 뺏겼다!’ 이러고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
저벅저벅.
20킬로그램이 넘는 군장을 짊어진 데다, 몸에 매달린 소총과 권총, 대검, 수류탄, 탄창 등의 무게를 더하면?
거기에 3시간 가까이 휴식 없이 걷는다면?
그냥 딱 죽을 맛인 거다.
끊어질 것처럼 허리가 아프고, 무릎과 허벅지, 그리고 발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저벅저벅.
그런데도 누구 한 사람 뒤처지지 않았다.
마음의 짐 때문일 거다.
지금쯤 쿠드스를 상대하고 있을지 모를 증평의 특수팀에 대한 마음의 짐.
30명이 200명을 상대한다.
저벅저벅.
증평의 특수팀이 감당해야 하는 처절한 전투가 대테러 팀 대원들의 걸음을 멈추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기운 내라, 쓰러지지 마라, 전우야.
내가 내딛는 걸음에 담긴 간절함을 듣고, 최후의 순간에도 꿋꿋하게 견뎌다오.
태극기를 떠올리고, 우리가 돌아갈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서, 너희가 기꺼이 피 흘려 지킬 조국을 향해, 함께 돌아가자, 전우야.
저벅저벅.
대원들이 간절한 바람을 담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강찬은 날이 바짝 선 얼굴이었다.
거기에 패이고 할퀸 상처들이 가득해서 전에 없이 독기 가득한 인상이기도 했다.
이 전투는 이전과 전혀 다르다.
핵탄두가 움직이는 거다.
물론 핵미사일을 본 적은 없다.
그렇다고 그 무서움을 모르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무기가 주는 무서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두려운지도 모른다.
저벅저벅.
그 외에도 강찬이 없는 사이 밖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변하는 것도 신경 쓰였다.
바실리와 루드비히가 힘 한번 못 쓰고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을 정도라면?
강찬은 라노크를 떠올렸다.
로망이나 조쉬가 목숨의 위협을 느낀 상태에서 그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까?
바실리가 자신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기 전에 지원군을 못 보낼 상황에 빠진 그들이 과연 라노크를 구해낼 수 있을까?
‘대사님. 이 전투가 끝나면 바로 가겠습니다.’
강찬은 독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먼 하늘을 보았다.
지하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무장한 대원 셋, 요원 둘, 그리고 그 뒤에서 들어서는 남자.
시선을 들었던 라노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르코스 프랑스 대통령은 경계하듯 주변을 둘러본 다음, 곧장 라노크를 향해 걸어왔다.
형식적인 예의다.
성의나 감정이 단 한 톨도 묻지 않은 표정과 자세로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눴다.
“앉으시죠.”
“고맙소.”
사르코스가 자리에 앉자 라노크가 시선을 들어 뒤에 선 요원을 보았다.
사르코스는 알아챘고, 요원은 이해하지 못한 라노크의 시선.
“홍차를 준비해 주겠나?”
사르코스가 알아듣기 쉽게 입으로 설명해주었다.
요원이 ‘아차!’ 하는 태도로 안쪽 책상에 놓인 홍차 주전자와 차를 가지고 왔다.
달칵. 쪼르륵.
두 잔의 홍차를 채운 요원이 사르코스의 뒤로 물러났다.
“지내기는 어떻소?”
“홍차와 시가가 있어서 불편하지 않습니다.”
라노크가 시가를 들어서 불을 붙이는 틈이다.
사르코스가 뒤를 돌아보며, “잠시 자리를 비켜주겠나?” 하고 말을 건넸다.
요원 둘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움직였다.
“라노크, 왜 이리 고집을 피우는 거요?”
라노크는 시가의 연기를 뿜어낼 뿐, 말이 없었다.
“대통령이 된 것부터, 공트 자동차를 막아준 것까지 난 당신에게 신세 진 것이 많고, 그 점을 잊지 않았소.”
아직 본론이 나오지 않았다.
라노크도 알고, 사르코스도 아는 사실이었다.
가면을 쓴 듯한 라노크의 표정을 보며 사르코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당신을 복귀시키고 싶소. 내게 정치적 보복이 없다고 약속해 줄 수 있겠소?”
라노크가 긴 팔을 뻗어 재떨이에 재를 털었다.
“대통령님.”
사르코스가 고개를 들며 집중한 다음이었다.
“내가 배신자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잘 아실 텐데요?”
“난 배신한 게 아니요. 그 점은 정말 나를 믿어도 됩니다.”
라노크의 입 끝이 살짝 움직였다.
“고작 로망의 말 한마디에 내게서 얻은 협조를 모두 잊은 분이 다음번에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라노크, 그건 오해요.”
사르코스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로망이 내게 제시한 조건들을 완성하면 당신을 다시 만날 생각이었소.”
라노크의 입술 끝이 다시 한 번 들렸다.
“아프리카를 완벽하게 우리 프랑스의 손에 넣는다는 내용이었소. 준비가 모두 끝났기 때문에 이번만 승인해 준다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했었소.”
“대통령 선거을 앞둔 시점에서 더없이 좋은 조건이군요.”
“꼭 그런 건 아니오.”
라노크는 어차피 관심이 없다는 투로 홍차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라노크.”
“원하는 게 뭡니까?”
라노크가 잔을 내려놓으며 던진 질문이었다.
“정치적 보복이 없을 것, 나의 안전을 보장할 것…….”
사르코스가 주변을 살피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 선거에서 협조해 줄 것.”
라노크는 꼼짝도 않고 사르코스를 바라보았다.
무서울 정도였다.
가면을 쓴 것처럼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표정과 그의 눈빛이 말이다.
“대통령님.”
라노크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로망의 어떤 조건이 나를 이곳에 가두게 했습니까?”
“라노크, 약속이 먼저요.”
“내 말을 어떻게 믿으십니까?”
“당신의 말은 신뢰할 수 있지요.”
“그럼 대통령님도 신뢰를 보여주십시오. 간단하고 공평하지 않습니까? 로망의 어떤 조건이 나를 이곳에 넣게 했는지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사르코스는 마른 침을 삼킬 뿐 입을 열지 못했다.
“정보총국을 손에 넣고, 나를 밀어내면 내게 부담가질 이유도 없을 거라 기대하셨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라노크가 시가의 끝을 재떨이에 꾹 눌렀다.
“그 점을 믿으시면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로망은 라노크, 당신을 제거하려고 하고 있소.”
라노크가 세 번째로 입술 끝을 들며 웃었다.
“라노크!”
언성이 높았던 것을 인식한 사르코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생각이 짧았소. 유럽 정보국과 러시아, 중국의 정보국이 우리 프랑스를 적으로 돌릴 줄도 몰랐고, 정보국과 정보총국이 이토록 갈라설 줄도 몰랐소. 그래서 이렇게 온 거요. 약속을 먼저 해주시오.”
“신뢰가 먼저입니다.”
라노크는 전혀 타협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일어서면 당신은 정말 로망의 손에 제거될 거요.”
“판단은 대통령님이 하시는 겁니다.”
“라노크, 후회할 거요.”
라노크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하지 않아서 짧은 침묵이 테이블을 건너다녔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한국의 애송이에 집착하는 거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떤 경우에도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나와 프랑스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혼이 팔린 로망과 대통령님이 망치기 전까지 말입니다.”
숨도 안 쉬고 나온 답이다.
사르코스는 라노크의 의지를 분명하게 알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이다.
사르코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겠소.”
“살펴가십시오.”
라노크가 등받이에 등을 묻고 잡지를 집어 들었다.
사르코스의 기다란 한숨이 나온 다음이었다.
털썩.
그가 다시 소파에 앉았다.
“로망은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통합하는 화폐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었소.”
라노크는 차가운 눈빛으로 듣고만 있었다.
“중동의 산유국과 영국의 금융기관, 그리고 로드차일드 가문이 연합해서 새로운 금본위 통화를 만든다는 계획이요.”
작정한 것처럼 사르코스가 말을 털어냈다.
“미국의 달러가 무너지고 새로운 화폐가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 그 일에 협조하는 대가로 우리 프랑스는 아프리카 전체를 영원히 지배하는 거요.”
“그게 가능하다고 믿으십니까?”
“석유 자본의 힘을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소? 달러가 금본위를 포기한 마당에 새로운 금본위 화폐가 생긴다면……, 그들의 자금력에 로드차일드 가문의 영향력이 합쳐진다면 이건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일이요.”
라노크는 먼저 고개를 저었다.
“로망이 멍청한 줄은 알았지만, 대통령님까지 프랑스를 팔아먹는 일에 동조할 줄은 몰랐습니다.”
‘라노크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사르코스는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라노크, 이 계획이 왜 잘못되었다는 거요?”
“그들의 맞은편에 무슈 강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한국의 애송이를 이번에 제거하고 함께 힘을 모읍시다.”
라노크가 차가운 눈으로 사르코스를 보았다.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아직 로망이 말한 계획을 우리 것으로 만들 인재가 없습니다. 아프리카를 우리에게 준다고 지킬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은 무슈 강, 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있지 않소?”
“대통령님.”
사르코스가 입을 닫고 시선으로 답을 했다.
“유럽과 아시아, 미국을 손에 쥐는 것이 누구일 것 같습니까?”
“그야 아시아는 영국이, 아프리카는 우리가 지배하는 게 아니겠소?”
“영국은 이 모든 일을 기획할 능력이 없습니다. 나나 러시아의 바실리 하나 어쩌지 못하는 로망과 조쉬가 과연 세계 경제를 묶을 수 있겠습니까? 러시아, 중국, 미국의 저항을 이기고?”
“대안이 있다고 했었소.”
“전쟁이라고 했겠지요.”
사르코스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이 포함된 전쟁이 일어나고, 새로운 금본위 화폐가 등장하면 모든 계획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들은 파생상품으로 세상에 도는 자본의 절반 가까이를 가져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파생상품에 투자하면 되는 게 아니오?”
라노크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프랑스는 로망이 전쟁을 계획했다는 이유로 배상을 해야 할 겁니다. 아마 아프리카의 지분을 요구하겠지요.”
“승리한다면?”
“세상의 돈이 다 금본위 화폐를 쥔 누군가에게 몰립니다. 지금 이 계획이 배고픈 누군가의 절박한 욕구가 아니란 것을 명심하십시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비록 상대의 마지막 생명줄일지라도.”
“그러니까 이 계획이 성공해서 전쟁도 원하는 대로 일어나고 새로운 금본위 화폐가 도입된다면 우리 프랑스는 어떻게 된다는 거요?”
“그들이 금본위 화폐를 더 풀고, 덜 풀 때마다 프랑스의 식료품과 주택 가격, 그리고 임금 가치가 매번 바뀝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매달려야 하겠지요. 우리의 마지막 생명줄만은 끊지 말아 달라고.”
놀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있던 사르코스가 정신을 번쩍 차린 것처럼 라노크를 바라보았다.
“정치적 보복이 없을 것, 나의 안전을 보장할 것, 그리고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일할 것.”
“정보총국을 돌려준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알았소.”
라노크가 잡지를 탁자에 내려놓자, 사리코스가 일어나 요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무슈 강, 조금만 더 견디면 됩니다.’
라노크는 무장한 대원들을 보며 강찬을 떠올리고 있었다.
강찬은 무전기의 버튼에 손을 올렸다.
치잇. “다예, 휴식할 곳을 찾아봐.”
치잇. “알았소.”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산꼭대기에 걸린 태양이 후광처럼 빛나고 있어서 시야 확보가 까다로운 시간이기도 했다.
저벅저벅.
무전을 하고도 10분쯤 더 걸어간 다음이었다.
치잇. “장소를 찾았소.”
석강호의 무전이 들렸다.
치잇. “주변 둘러보고 대기해.”
치잇. “알았소.”
그렇게 다시 10분쯤 더 걷고 났을 때 능선의 끝에서 소총을 들고 서 있는 석강호와 최종일이 보였다.
“여기요!”
강찬은 빠르게 앞으로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등 뒤는 산이 가리고, 앞쪽은 바위가 틀어막아서 그럭저럭 몸을 숨기기에 적당해 보였다.
“강명구!”
“예.”
강명구가 빠르게 달려왔다.
“이곳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30분 뒤에 출발한다.“
“알겠습니다.”
강명구가 좌우로 손을 흔들자 대원들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철컥. 철커덕.
강찬은 사방이 내려다보이는 능선 위로 올라갔다.
“밥 먹읍시다.”
역시 이럴 땐 석강호다.
제라르와 둘이서 씨 레이션과 팩에 담긴 물을 들고 강찬이 있는 능선까지 올라왔다.
“먼저 먹고 교대하자.”
“알았소.”
제라르는 눈치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두 놈이 마주 앉아서 버석거리며 음식을 입에 넣고 있었다.
벌컥. 벌컥.
강찬이 팩에 담긴 물을 마실 때였다.
“대원들을 이리 배치하겠습니다. 식사하시고 좀 쉬십시오.”
능선을 올라온 강명구가 강찬에게 다가왔다.
“군장을 지고 온 대원들은 지금 아니면 쉴 시간이 없어. 그러니까 이쪽 걱정하지 말고 20분씩이라도 재워.”
강명구는 이런 작전이 처음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투로 석강호에게 시선을 주었다.
“지금은 무조건 자야 돼. 그러니까 빨리 가서 1분이라도 더 재워. 무리하다가 밤에 퍼지면 답 안 나온다.”
“알겠습니다.”
강명구가 돌아섰을 때 석강호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얼른 식사하쇼.”
이런 건 사양이고 자시고 없다.
강찬은 능선에서 내려와 제라르가 뜯어준 씨 레이션을 입에 넣었다.
“제라르, 잠깐이라도 자라. 밤에 계속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한두 번 해본 짓이 아니어서 답을 한 제라르는 바로 능선 쪽으로 머리를 기댔다.
2분 만에 식사가 끝났다.
강찬은 바로 석강호가 있는 능선으로 올라갔다.
“내려가서 먼저 자.”
“난 괜찮소. 몸도 그런데 눈 좀 붙여요.”
강찬은 답을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균이 생각하는 거요?”
강찬은 피식 웃으며 걸어왔던 방향을 돌아보았다.
잘할 거다.
차동균과 증평의 특수팀이라면 말이다.
차동균은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치잇. “좀 더 기다린다.”
쿠드스는 당당하게 트럭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상징인 검은 특수복을 입고 말이다.
치잇. “RPG7 두 기, 확인했습니다.”
트럭의 뒤를 확인한 저격수의 보고도 들어왔다.
트럭만 10대, 지프가 두 대다.
거리는 300미터쯤 남았다.
차동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대로 산까지 다가오게 하는 건 아무래도 손해 보는 짓이다.
치잇. “저격수, 지프 운전병을 사살해라. 이후에 지프의 기관총에 접근하는 놈이나, RPG를 든 놈을 우선 사살한다.”
치잇. “알겠습니다.”
그 사이 트럭은 30미터쯤 다가왔다.
그러면?
270미터쯤 남은 거다.
저격수는 사격 연습을 할 때 수박이나 붉은색 페인트가 담긴 풍선을 표적으로 삼는다.
500미터, 800미터 저 너머에 사람 모형의 인형을 세워 놓는데, 그 인형의 머리에 수박을 넣거나, 붉은색 페인트가 담긴 풍선을 걸어놓는 거다.
총탄이 날아가는 걸 본 적이 있나?
거리가 500미터가 넘으면 마치 물속에서 총알이 날아가는 것처럼 허공에 총알의 궤적이 흐릿하게 보인다.
그렇게 날아간 총알이 수박이나 풍선에 명중하는 순간이면 정말 사람 머리가 터진 것처럼 뒤편으로 붉은색이 확 퍼진다. 그렇게 연습해야 실제로 적의 머리를 터트릴 때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생각보다 저격은 끔찍하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조준경에 담긴 적의 머리가 터져나갈 것을 감당하는 일이 어려운 거다.
차동균이 앞을 노려볼 때였다.
부슝! 부슝!
두 발의 총성이 먼저 들리고, 눈 한번 깜박하는 순간이 흐른 뒤에 지프 운전사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끼이이익!
지프가 방향을 잃고 흐르는 옆에서 트럭들이 급하게 멈춰 섰다.
부슝! 부슝! 부슝!
세 발의 총성이 또 들렸다.
지프의 뒤에서 기관총을 틀던 적 세 명이 뒤로 날아가는 것처럼 차에서 떨어졌다.
이제 195명밖에 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