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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당신을 믿습니다.
박승용은 사다리를 타고 조종석에 올랐다.
무장팀은 물론이고, 정비팀까지 기체에 매달려 무기들을 조절하고 있었다.
헬멧을 쓰고, 캐노피를 내린 박승용은 답답해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밖을 보았다.
“30분이다. 아군이 위험하다. 부탁한다.”
그의 무전이 아니어도 무장팀이나 정비팀이 게으르게 손을 놀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박승용은 단 1초라도 벌고 싶었다.
‘제발!’
거리를 감안해야 했다.
지상군에게 전투기가 얼마나 끔찍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박승용이다.
그때였다.
무장팀이 기체에서 멀어지며.
덜컹.
사다리가 제거되었다.
그가 왼편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정비팀장이 내민 엄지가 보였다.
‘대한민국의 하늘을 부탁합니다!’
훈련에서, 비상 출동에서 수도 없이 주고받았던 사인이다.
오늘 같은 날을 위해, 적에게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하늘을 수호하고자.
우우우우우웅.
기체가 달려가자고 악을 쓰고,
박승용은 왼손을 들어 엄지를 치켜세웠다.
‘당신을 믿습니다!’
그의 엄지를 확인한 정비팀장이 검지와 중지를 뻗어 앞을 가리켰다.
후우우우우우웅!
전투기가 거칠 것 없이 달려나갔다.
***
치잇. “150미터 앞쪽에 동굴이 있습니다!”
남일규의 무전이 곧바로 들어왔다.
그사이 그 넓은 범위까지 확인할 줄은 몰랐다.
치잇. “비무장 팀! 대원들을 그곳으로 인솔해!”
존댓말?
지금 그런 거 따지는 놈이 정신병자인 거다!
치잇. “대원 배치합니다.”
동굴이 너무 높은 곳에 있는 건 아닌지, 얼마나 깊은지를 따질 틈이 없었다. 일단 머리를 감출 수 있는 곳, 가능하면 위에서 입구가 안 보이는 곳이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와락! 와라락!
강찬이 달려나가는 것과 동시에 막사에 있던 제라르, 최종일, 우희승이 그 뒤를 따랐다.
“서둘러! 저거 도와줘!”
최종일과 우희승이 탄통과 수류탄이 담긴 상자들을 나눠 들었다.
의약품 등의 기본 장비를 등에 진 대원들이 산을 향해 달려갔고, 비무장 팀 대원들이 중간중간을 지킨다.
강찬은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산이 자꾸만 시선에 들어왔던 이유!
치잇. “비무장 팀! 동굴 주변의 저격수를 최대한 확인해! 이 상태에서 저격당하면 누구도 못 피해!”
강찬이 무전에 대고 명령을 내린 다음이었다.
치잇. “남일규! 대원 셋과 입구에서 9시 방향, 양동식! 대원 셋과 12시! 남은 곳을 내가 맡는다.”
강철규의 단단한 무전이 연달아 들려왔다.
대원들 전체가 듣는 무전이다.
그러니 따로 조심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대원들이 움직인다.
150미터 거리라고 했다.
그곳까지 10분쯤 걸릴까?
25분 정도면 도착하는 전투기를 앞에 두고 말이다.
‘이 개새끼들이!’
동굴 앞에 몰렸을 때 사격을 하거나, 동굴에 다 들어간 다음에 미사일 서너 방 갈기면 아예 모두 끝나는 상황이었다.
치잇. “차동균! 동선에 따라 적 저격수가 있을 만한 곳을 노리고 우리 저격수 배치해! 20분 뒤 자동 철수다!”
치잇. “알겠습니다!”
치잇. “다예! 동굴 앞 경계 확실히 해!”
치잇. “알았소!”
치잇. “동굴에 들어간 다음에 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다! 비무장 팀! 적의 사격 반경을 확실하게 체크해!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치잇. “알았다.”
강철규의 답을 마지막으로 무전을 마친 강찬은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제라르! 나와 저 뒤편으로 올라간다! 적 저격수가 있을지 몰라! 미사일이 있을 수도 있고!”
“Oui!”
강찬은 산을 따라 오른쪽 평지로 달려나갔다.
쩔꺽! 쩔꺽!
소총과 권총, 대검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강찬이 능선으로 뛰어들었을 때였다.
치잇. “저격수 배치 완료!”
차동균의 무전이 들렸다.
***
쒜에에에에엑.
8대의 전투기가 하늘을 가를 것처럼 날고 있었다.
“적의 기종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박승용이 4대, 이기도가 다시 4대를 지휘한다.
“이란의 공군력은 잘 알고 있을 테니 긴말 않겠다.”
교전이 벌어지면 1번과 3번기, 2번과 4번기가 각각 엄호하고, 다시 1조와 2조가 큰 틀로 움직인다.
박승용은 캐노피 바깥의 좌우를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폭격은 잊어라. 우리의 목표는 아군을 지키는 일이다.”
하늘이다.
지평선이 지구 모양을 따라 둥글게 보이는 하늘.
땅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지만, 어지간한 사람들은 이 속도에서도 숨을 제대로 못 쉬고, 몇몇은 구토를 한다.
“교전이 가능합니까?”
그때 이기도의 질문이 무전을 타고 들어왔다.
박승용은 먼저 ‘알아서 판단하라’는 상황실의 답을 떠올렸고, 이어서 눈 끝에 다짐을 달았다.
“아군을 공격하는 적은 모두 격추시킨다.”
적기의 숫자가 30이라는 것을 잊은 듯한 박승용의 답이 무전을 타고 넘어갔다.
***
“이란에서 추가 이륙이 없도록 막아야 해.”
[“바실리. 그 점은 양범을 믿어야 한다.”]
바실리는 냉정한 눈으로 앞에 놓인 모니터를 주시했다.
“로망이 정치권을 건드려 놨으니 다윗의 별이 움직일 수밖에 없겠군.”
[“무슈 강이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를 악문 바실리가 잠시 멈칫했다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로망은 어떻게 하겠나?”
[“이미 요원들을 파견했다.”]
“좋아. 그렇다면 나도 조쉬에게 KGB의 무서움을 가르쳐주지.”
[“총리와 면담이 끝나는 대로 지젠느를 다시 파견하겠다.”]
“스페츠나츠는 3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슈 강이 6시간을 버텨줘야 하는군.”]
아쉬움이 짙게 묻은 루드비히의 음성이었다.
“흥! 무슈 강이 이 정도에서 죽었을 거라면 벌써 내가 손을 썼을 거다, 루드비히.”
[“알았다. 총리를 만나고 바로 전화하지. 그런데 정말 라노크가 기대했던 것이 이런 상황이었을까?”]
“이 정도는 아니어도, 이런 모양은 기대했겠지. 이후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물밑 협상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야. 이 작전에서 무슈 강이 승리한다면 다윗의 별은 고개를 내밀더라도 우리 대통령, 독일의 총리, 중국의 주석, 그리고 프랑스와 상대해야 돼.”
[“무슈 강의 존재가 이렇게나 커질 줄은 몰랐다.”]
“서글픈 조연들의 대화는 이만하자. 서둘러라, 루드비히.”
통화를 마친 바실리가 연이어 버튼을 눌렀다.
잠시 침묵이 이어진 다음이었다.
“대통령의 통화를 내게 감춘 놈이 누구냐?”
고개를 갸웃한 바실리가 입술 한쪽을 움직이며 웃었다.
“그놈과 아이들, 형제, 살아있는 가족 전체를 전부 체포해. 증거는 알아서 제출하고, 죄명은 무기 밀매다. 한 사람 정도는 반항할 필요가 있으니까 부인은 반항하다가 현장에서 사살하는 것으로 치우고, 나머지는 시베리아 종신형 정도가 좋겠다.”
잠시 답을 들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께는 내가 보고하겠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바실리가 보드카 병을 집었다.
쪼로록.
보드카가 가득한 잔을 든 그가 눈빛을 빛냈다.
“라노크, 이 무서운 인간! 결국, 이 바실리가 가진 모든 것을 걸게 만들었군!”
바실리는 마치 눈앞에 라노크와 강찬이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무슈 강! 그런 곳에서 죽어 나자빠지면 너는 지옥에도 못 있을 거다. 내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단숨에 잔을 털어 넣은 바실리가 독한 술 때문이라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
“멍청한 것들!”
UIS 와랍 아메디가 분통을 터트렸다.
헬리콥터가 뜨던, 산을 타고 올라오던, 단숨에 적을 해치울 생각으로 기껏 배치한 저격수다. 그런데 전투기가 발진하면서 커다란 그림의 한쪽이 엉망으로 망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한국의 전투기를 막아주는 것으로 알았다.
‘이렇게 손발이 안 맞아서야!’
아비부가 없어지면서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가장 아팠다.
로망 따위?
프랑스 정보총국의 지시를 고분고분하게 따를 UIS가 아닌 거다.
아메디는 탁자의 끝을 움켜쥐었다.
UIS의 개국과 그에 따른 전 세계의 테러,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엄청난 거래를 우습지도 않은 한국이 홀로 막아서는 꼴이었다.
빌어먹을 한국의 애송이가 앞장서서 말이다.
“전투기가 돌아갈 때까지 지켜보겠다. 저격수들에게 기회가 되면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저격하라고 지시해라.”
명령을 받은 수하가 곧바로 토굴을 나섰다.
***
10분쯤 남았다.
강찬의 무전을 모두 들어서 상황은 완벽하게 파악했다.
치잇. “대장. 일단 동굴 앞이요. 저격수 확인이 끝날 때까지 잠시라도 대기하겠소.”
먹을 것 밝히고, 헤딩하는 것 외에 머리를 못 쓴다고 욕을 먹지만, 전투에서는 누구 못지않은 석강호다.
대원들을 동굴 주변에 넓게 퍼트린 석강호가 무전을 날리고 날카롭게 맞은 편을 보았다.
짐작 가는 곳은 모두 다섯 곳.
사람이 들고 쏘는 미사일은 한계가 분명해서 동굴보다 너무 높으면 입구나 터트리지 더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서두르쇼!’
석강호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산을 달려 올라간 강찬은 소리를 죽인 채로 아래로 내려갔다.
저격수는 2인 1조가 기본이다.
그러나 위장막 뒤집어쓰고, 그 위에 나뭇가지와 풀을 꽂은 채 혼자 처박혀 있는 놈들이 더 무섭다.
산의 중간쯤에서 대각선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30분에서 아무런 소득이 없이 벌써 15분쯤 흐른 거다.
부스슥.
급해서 그랬나?
군화의 오른쪽 끝에 걸린 흙이 잘게 부서졌다.
소총을 겨눈 제라르가 오른쪽을 경계했고, 강찬 역시 소총을 든 자세로 반대편을 살폈다.
후욱. 후욱.
‘하나, 둘, 셋, 넷, 다섯.’
적의 반응은 없었다.
강찬은 앞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둘이 함께 움직이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그래서 이번엔 앞에 있는 강찬이 엄호하고, 뒤에 있던 제라르가 앞으로 나갔다.
강찬은 산을 타고 내려가는 제라르의 앞쪽을 살폈다.
뾰족한 나뭇잎에 갈라진 햇살이 바람에 흔들릴 때였다.
멈칫.
제라르가 굳은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V자 모양으로 검지와 중지를 위로 들었고, 손가락을 붙여 앞을 두 번 가리켰다.
적이다. 그것도 두 놈.
후욱. 후욱.
강찬은 조심스럽게, 그런 와중에도 빠르게 제라르에게 움직였다.
개새끼들!
20미터 아래의 수풀 사이에서 전혀 엉뚱한 각도로 삐죽하게 나와 있는 풀들이 보였다.
저격수, 그리고 3보쯤 떨어진 곳에 엄호병이 잔뜩 긴장한 채 동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강찬은 쪼그린 자세에서 소총을 들었다.
그리고 제라르를 보았다.
‘하나, 둘!’
푸슝! 퍽! 푸슝! 퍼억!
저격수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졌고, 엄호병은 제라르의 소총에 목이 뚫렸다.
푸슝! 퍼억!
강찬은 바로 한 발을 더 갈겼다.
엄호병의 대가리 뒤편으로 시뻘건 피가 튀었다.
강철규가 왼편 어깨에 걸었던 대검을 뽑아드는 순간이었다.
근처에서 소총 소리가 들렸다.
세 발이다.
연달아 두 발에 한 발은 뒤늦게 나왔으니, 두 놈을 잡고, 추가로 확인 사살을 한 거다.
‘강찬이구나!’
강철규는 있는 대로 자세를 낮추고 적의 반응을 살폈다.
힐끔 뒤를 돌아본 적이 다시 소총에 눈을 디밀었다.
후욱. 후욱.
이런 거, 너희가 젓가락질 배울 때부터 했던 일이다.
다가갈 때 뒤에서 총을 갈기는 적이 가장 무섭다.
강철규의 동작을 본 대원 둘이 아예 몸을 돌려 뒤를 지켰다.
강철규는 먹이를 발견한 표범처럼 잔뜩 웅크린 자세로 바닥에 붙다시피 나아갔다.
풀보다 낮게 가라앉은 강철규의 머리가 한순간 나는 것처럼 앞으로 나갔다.
홱!
적이 화들짝 고개를 돌렸고, 강철규와 눈이 마주쳤다.
강철규의 왼손이 뻗는가 싶은 순간,
으드득!
저격수의 목이 돌아갔고,
푸욱!
거의 동시에 오른손의 대검이 엄호병의 목을 꿰뚫었다.
스거억!
강철규는 엄호병의 목 한가운데를 관통한 대검을 그대로 당겼다. 그리고 피 묻은 대검을 든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로 눈을 가리킨 다음, 다시 앞쪽으로 뻗었다.
대원 둘이 빠르게 숲으로 모습을 감췄다.
남일규는 따르는 대원 둘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둘이다.
저런 놈들쯤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아쉽다.
소총 소리를 들었다.
강철규나 양동식은 절대 총을 쏘지 않을 테니 분명 강찬이 나서서 저격수를 잡은 거다.
대원 둘이 자세를 잡고는 남일규에게 시선을 주었다.
‘하나, 둘, 셋!’
사사삭!
푹! 푸욱!
적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두 놈의 목에 대검이 꽂혔다.
스거걱!
그리고 동시에 적의 목을 가른 대검이 밖으로 나왔다.
남일규는 시선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시간만 여유 있다면 모가지를 잘라서 나무에 매달았을 거다.
스걱! 스거억!
양동식이 저격수의 목에 깊게 박힌 대검을 목젖 방향으로 당겼다.
꿈틀거리는 적의 목 근처가 온통 피로 물들었지만, 신경 쓸 것은 이게 아니었다.
‘서둘러!’
양동식은 독기가 잔뜩 오른 눈으로 앞을 가리켰다.
후다닥!
대원 둘이 달려나갔다.
대한민국 군인을! 부원장을! 빛나는 후배를 노린 놈들!
양동식이 앞으로 움직일 때였다.
부슈웅! 퍼어억!
앞을 달리던 대원의 머리가 꺾이며 피가 튀었다.
털썩!
총을 맞은 대원의 몸이 바닥에 고꾸라질 때, 양동식은 바닥에 엎드려 위를 보았다.
위다!
저 위에 적이 있었다.
총소리는 강찬도 들었다.
방향도 짐작 갔다.
문제는 시간이다.
저 위까지 가려면 절대로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저격수를 둔 채로 동굴로 들어갈 수도 없을뿐더러, 들어가서도 안 된다.
강찬은 빠르게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치잇. “비무장 팀! 저격수를 잡은 팀은 무전기 버튼만 눌러서 신호해.”
치잇. 치이잇. 치잇.
세 번의 신호가 연달아 들렸다.
치잇. “5시 방향에서 내가 하나 잡았으니 모두 네 팀이다. 비무장팀은 이제부터 동굴 쪽으로 움직인다.”
무전을 하는 강찬의 옆을 제라르가 날카롭게 지켰다.
“루카까지 가는 길에 저격수를 해결해야 하고, 요인 암살을 맡아줘야 한다. 욕심부리지 말고, 동굴 쪽으로 움직여.”
강찬이 무전을 마친 직후였다.
치잇. “철수해라.”
강철규의 무전이 곧바로 들렸다.
“제라르! 저기 두 놈은 우리가 해결한다.”
“Oui!”
제라르가 독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이 위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쒜에에에에에에엑!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홱!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구름 사이를 가르는 전투기가 보였다.
염병!
생각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
강찬은 이를 악물고 위를 향해 달렸다.
쒜에에에에엑!
아군을 발견한 적기가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기도! 팬텀을 맡아! 무슨 일이 있어도 아군에게 폭격 못 하게 해!”
위이이이이이잉!
적기와 상공에서 만나는 건 무섭다.
첨단 장비가 발달한 지금은 도그파이트(Dog fight, 근접전)보다 레이더와 미사일의 성능이 승부를 가름하기 때문이었다.
“이기도가 팬텀을 잡는 동안, 우리는 미그기를 막는다!”
박승용은 사이드 스틱을 당겼다.
후우우우우우웅!
기체가 위로 치솟고,
삐삐삐삐삐삐.
하늘이 반쯤 기울며 땅과 뒤섞였다.
“1번기! 뒤에 적기 붙었습니다!”
“시간이 필요해!”
삐삐삐삐삐삐.
레이더 가동범위 안에 적기가 들어왔다.
승부욕? 명예?
엿이나 먹어라!
팬텀은 지상군을 폭격하기 위해 달려온 거다.
미그기를 하나라도 더 잡고, 적기를 최대한 끌어들여야 이기도가 저 빌어먹을 팬텀을 잡는다.
그리고 공중전이 벌어지는 동안, 적어도 아군은 무사하다.
그아아아아앙!
지상의 땅들이 3차원 그래픽처럼 스쳐 지나갔다.
‘제발!’
위이이이이이이잉!
하늘과 땅이 뒤엉키며 돌았다.
삐삐삐삐삐삐삐.
“1번기! 후방 적기 근접! 위험합니다! 위험합니다!”
박승용은 이를 악물며 사이드 레버를 밀었다.
삐이이이이!
그 순간, 적기가 타겟 상자에 담기며 레이더 락 알람이 울렸다.
달칵.
박승용이 발사 버튼을 누르자.
피슈우우우우우우!
날개 끝에서 암람이 발사되었다.
박승용은 사이드 스틱을 사정없이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