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52화 (35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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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결과를 지켜보자.

성남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애들이 왜 이렇게 많이 깔렸지?”

석강호의 말대로 경계가 확실히 이전과 달랐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닐까?

강찬은 속 편하게 생각하고 대꾸하지 않았다.

이두희가 신분증을 제시하자 바리케이드가 열렸고, 강찬이 탄 차는 본관 건물을 돌아서 곧바로 활주로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커다란 민간항공기, 다음으로 버스 세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버스 뒤편에 차를 세웠을 때였다.

앞쪽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대원들과 요원들이 보였다.

뭘 저렇게 딱딱하게!

차에서 내린 강찬은 일행들과 함께 대원들이 모여있는 앞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누구 한 사람 돌아보지 않았다.

강찬은 경계가 삼엄했던 이유와 대원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는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문재현이 대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뒤로 전대극, 고건우, 그리고 김형정이 있었다.

마침 대원들과의 악수가 다 끝났는지 문재현이 강찬을 향해 걸어왔다.

“부원장.”

문재현이 손을 내밀었고, 강찬이 맞잡았다.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대원들을 이끌어야 할 부원장에게 고맙고 미안합니다. 무사히 귀환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잠시 강찬을 바라보던 문재현이 석강호를 시작으로 제라르,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 그리고 통역 대원과 악수를 나누었다.

606 저 너머에 강철규와 비무장 팀 대원들이 있었다.

“부원장.”

고건우는 말없이 강찬의 손만 잡았다.

굳이 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김형정은 하고 싶어도 긴말을 하지 못한다.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예.”

대통령에 국가정보원 원장이 기다리고 있는 거다.

강찬은 차동균에게 고갯짓을 했다.

“부대 차렷!”

착!

“대통령님께 경례!”

착!

문재현이 거수경례로 답을 하고 손을 내렸다.

“바로!”

착!

문재현은 먼저 대원들을 천천히 돌아본 후에 입을 열었다.

“지금 여러분의 모습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한 남자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어려운 임무를 맡겼습니다. 오늘이 대한민국의 위상을 바꾸는 날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원들의 얼굴에 담긴 각오와 사명감에 가슴이 울렁인 모양이었다.

말을 마친 문재현의 눈가가 벌겋게 올라 있었다.

짧은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문재현과 고건우, 전대극이 몸을 돌려 공항 건물로 향했다.

“출발하자!”

차동균이 편하게 말을 건넸고, 대원들이 줄줄이 비행기의 트랩으로 움직였다.

가장 먼저 대테러 팀 요원들이 올라갔고, 다음으로 증평의 특수팀, 이어서 606, 마지막으로 강철규와 비무장 팀이 다가왔다.

이런 곳에서 말 나눌 필요 뭐 있겠나.

다들 눈인사만 나누고 비행기 트랩을 올랐다.

석강호와 제라르, 최종일 조원, 통역 대원이 올라간 다음이었다.

트랩에 올라가기 전, 강찬은 뒤를 돌아보았다.

본관 건물 입구에서 문재현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찬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 트랩으로 올라갔다.

비행기는 바로 활주로의 끝으로 움직였다.

띵. 띵. 띵. 띵.

안전벨트를 매라는 신호가 들어왔는데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확실히 민간 항공기는 군 수송기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트럭의 뒤에 타는 것과 승합차의 뒷좌석 차이 정도 될 거다.

고도를 높인 비행기가 자세를 잡은 다음에 다시 ‘띵. 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부터 진정한 시작이었다.

최종일의 신호를 받은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승무원들이 사용하는 마이크를 들었다.

“국가정보원 부원장 강찬이다.”

편안하게 자리 잡은 대원들의 시선이 단번에 몰려들었다.

규정대로라면 비상시 탈출 요령을 먼저 해야 한다.

이 대원들과 요원들에게 말이다.

지금 아무리 그런 걸 떠들어 봐야 어느 놈 하나 콧등으로도 듣지 않을 거다.

최종일이 노트북의 버튼을 누르자 비행기에 있는 화면에 아프가니스탄의 지도가 떠올랐다.

국가정보원 지하 회의실에서 했던 브리핑과 비슷했다.

정보가 떠오르며 강찬이 부연 설명을 했다.

러시아와 중국, 독일의 특수팀이 가세할 예정이고, 미국의 특수팀이 대가리 둘을 잡을 거라는 설명까지 모두 끝났다.

“루카 지역을 잘 보면, 사리차로드 외길에, 판즈셔 강이 앞을 흐르고 있어서 전략적으로 우리가 굉장히 불리하다.”

대원들이 지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화면에 최대한 근접해 촬영한 산악의 모습이 올라왔다.

“지금 보이는 산의 곳곳에 UIS가 은신해 있고, 그들 중에는 특수팀 출신 저격수가 60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굳은 표정이었다.

“우리는 일단 이곳 바자르(Bazar)에서 3개국 특수팀과 합류하고 함께 작전을 개시할 예정이다.”

강찬이 시선을 주자 최종일이 화면을 바꿨다.

산의 중간에서 나타난 붉은 선이 루카로 이어졌다.

“증평 특수팀이 헬기로 이동한 후, 산을 통해 진입한다. 지휘자는 석강호.”

이어서 붉은 선이 강을 따라 루카에 닿았다.

“606은 강을 따라 진입한다. 지휘자는 제라르.”

강찬은 강명구와 대테러 팀을 보았다.

“대테러 팀은 나와 함께 움직인다.”

증평 특수팀과 606이 움직일 동선의 중간에 다시 붉은색 선이 기다랗게 루카로 닿았다.

“마지막 남은 한 팀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비무장 특수팀이다. 이분들은!”

강찬의 말에 따라 화면이 빠르게 바뀌었다.

“세 팀으로 나눠서 매복한 적과 저격수, 그리고 적 수뇌부의 제거를 맡는다.”

비행기 안에 더할 수 없는 긴장이 맴돌았다.

“3개국에서 지원 나온 팀은 우리의 후방을 맡길 생각이다. 섞여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고, 적들이 얼마든지 우리를 포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찬은 자리에 앉은 대원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UIS는 반드시 민간인으로 블럭을 쌓는다. 606의 지휘자로 프랑스 외인부대 특수팀 사령관을 지정한 것, 증평 특수팀 지휘자로 석강호를 지정한 이유다. 또 한가지!”

화면이 다시 바뀌어서 허리에 폭탄을 감은 이슬람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 방벽으로 끌려온 민간인 중에는 화면에 보이는 것처럼 폭탄을 두른 사람들이 반드시 있을 거다. 혹시 민간인들을 구할 수 있다고 판단돼도 섣불리 다가가지 마라. 질문!”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606의 정원민이 손을 들었다.

“만약 지휘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저런 민간인을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강찬은 곧바로 답을 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구할 수 있을지, 사살해야 할지. 그 판단은 그 자리에 있는 대원의 몫이다.”

정원민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여자와 어린아이의 몸에 감겨 있는 폭탄을 특히 조심해라. 주저하는 순간 동료가 죽고, 작전이 망가진다.”

강찬은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더는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질문 던지는 것으로 하고 도착할 때까지 편히 쉰다.”

강찬이 마이크를 건네자 최종일이 받았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뭐하려고 저러지?

설마 ‘비상구는 여러분이 보시는 앞쪽에 있고!’ 따위를 하지는 않을 테고?

“이 앞쪽 조리실에 라면과 커피, 뜨거운 물이 있고, 뒤편 카트에 도시락이 있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언제고 편하게 드시면 됩니다.”

강찬의 시선을 보았는지 최종일이 얼른 안내를 끝내고 마이크를 놓았다.

강찬은 복도를 걸어 뒤편으로 움직였다.

강철규와 남일규, 양동식을 향해서였다.

이미 리비아에서 함께 뛰었던 사이다.

남일규와 양동식을 비롯한 대원들이 강찬을 반갑게 맞았다.

강철규는?

뭘 바라겠나?

그는 전과 같이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작전에서 궁금한 게 있어?”

“아군 저격수 숫자는?”

“팀별로 세 명씩이라고 보면 맞아.”

강찬이 대답한 다음이었다.

대원들이 섞이면서 앞쪽이 시끌시끌해졌다.

어차피 출신을 물어보면 대개 공수부대와 606을 거친 대원들이라 바로바로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향긋한 커피 냄새도 풍겼다.

고개를 돌렸을 때 눈빛을 번들거리며 석강호가 다가왔다.

어쩐 일로 커다란 쟁반에 종이컵을 잔뜩 얹었는데 그 뒤로 최종일이 비슷한 모습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비무장 팀 대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쟁반을 받아주었다.

“아까 증평 특수팀을 이끌 거라고 했던 석강호, 이분이 비무장왕.”

“석강호입니다.”

“강철규요. 그리고 이쪽이 남일규, 양동식.”

염병!

석강호가 이렇게 고개를 조아리는 인사하는 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전생의 아버지란 말을 기억해서인지 놈은 남들이 의아한 눈으로 볼 만큼 공손하게 강철규의 손을 잡았다.

종이컵을 나눠 들고 이야기를 나눠볼까 했는데 이번에는 차동균과 곽철호, 윤상기, 정원민, 강민구가 떼로 뒤편으로 옮겨왔다.

“선배님!”

“그래! 잘들 지냈지!”

곽철호와 양동식은 피난 때 잃었던 아버지와 아들이 만난 것처럼 반가워 어쩔 줄 몰랐다. 이어서 차동균이 인사하고, 다시 정원민과 강명구를 소개했다.

비행시간 길다.

선배들은 반짝이는 후배들을 만나서 반갑고, 후배들은 대한민국 전설을 만나서 기쁘다.

그런 걸 굳이 막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올게.”

강찬의 말에 강철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은 비행기의 앞쪽으로 움직였다.

잘한 짓이다.

강철규에게, 비무장 팀 대원들에게 인사하겠다고, 대원들이 통로에 길게 서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강찬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잘 됐다.

늦게나마 전설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것이, 쓸데없는 늙은이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는 전설이라는 것이.

“눈매가 대장과 똑같아서 놀랐소.”

“그래? ”

어쩐지 좋은 말 같지는 않았다.

중간의 조리대를 지나 비지니스 석에 들어서자 대원들이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라르는?”

“앞쪽에 있습니다.”

강찬은 석강호와 함께 다시 움직였다.

다 좋은데 비행기가 너무 크다.

일등석 칸이다.

제라르가 통역대원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강찬은 중간 자리에 편안하게 앉았다.

“대장.”

“왜?”

“나 한국에 잘 온 것 같습니다.”

제라르가 담배를 디밀며 웃었다.

“이 새끼가 뭐라는 거요?”

담배는 석강호가 받았다.

***

로리암의 지하 감옥이다.

얇은 시사 잡지를 내려놓은 라노크가 손을 뻗었다.

벽 한쪽의 침대, 그 옆의 책상, 그리고 소파가 가구의 전부였다.

쪼로록.

라노크는 소파의 맞은편에 앉은 로망에게 홍차를 따라주었다.

“이제 와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무슈 강이 나를 노린다면 위원장님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홍차를 자주 마시면 감정이 가라앉아서 냉철한 판단을 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지.”

“위원장님.”

달칵.

라노크가 홍차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로망의 말에 관심도 없다는 투로 시가를 입에 물었다.

찰칵.

그가 시가를 빨아들일 때마다 라이터의 불꽃이 반대쪽 끝으로 빨려들었다가는 다시 피어났다.

“후우. 무슈 강의 개성을 받아들여야지.”

라노크가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냉정한 얼굴로 로망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다윗의 별 소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상황에서, 다윗의 별이 한국에서의 테러에 개입했다. 그렇다면 무슈 강은 당연히 자네를 제거하겠다고 나서지 않을까?”

“우리는 그를 제거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되는 거다.”

라노크는 더 이상 거론할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말을 던졌다. 그리고는 홍차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정보총국장이 되면 대개 오해를 하게 되지.”

달칵.

전에 없이 날카로운 라노크의 시선을 로망은 묵묵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세상의 뒤편을 조절할 힘이 생겼다고 과신하는 순간, 앞쪽의 핸들도 마음대로 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의 자네처럼.”

로망은 대꾸하지 못했다.

“대통령과 정권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프랑스의 영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정보총국은 존재 가치가 없다.”

“대통령은 아직 나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까? 정권에 치명적인 치부가 드러나고, 프랑스의 영광에 해가 되는 일들이 벌어져도?”

“위원장님의 뜻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 제 판단대로 하겠습니다.”

라노크가 한쪽 입술을 들고 웃은 다음 잡지를 집어 들었다.

“위원장님은 정보총국이 그를 제거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치켜뜨는 것처럼 시선을 든 라노크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는 별로 관심이 가질 않는다는 것처럼 다시 잡지로 시선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로망은 결심이 선 표정과 음성이었다.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신 라노크가 천천히 내뱉으며 잡지를 내려놓았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지?”

“닷새 정도는 드리겠습니다.”

“안느는?”

“가족은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 막힌 일이다.

답을 들은 라노크가 다시 잡지로 시선을 준 것은.

“위원장님이 그 애송이를 얼마나 믿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전투에서 그는 절대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합니다. 닷새는 그 기간입니다.”

로망은 라노크의 태도가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가 죽고 나면 러시아와 중국, 독일과 스위스가 준비하던 모든 계획도 물거품이 됩니다.”

“그렇군. 갑자기 궁금한 것 한 가지가 생각났는데 말이지.”

잡지를 내려놓는 라노크를 로망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장과 청장을 살해한 것이 다윗의 별인가, 자네인가?”

잠시 날카로운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정보총국입니다.”

“흠.”

라노크가 커다랗게 숨을 내쉬고는 얼굴을 쓸었다.

어지간해서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라노크로서는 엄청난 심정 표현이었다.

“황기현은 한국의 국가정보원에 비해 너무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

“무슈 강이 그를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를 알고도 감히 그런 짓을 했단 말이지?”

“이번 전투에서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라노크와 로망이 눈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의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남은 닷새를 소중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음번에는 우리 두 사람 중 누구 하나는 반드시 죽은 모습이겠군.”

자리에서 일어난 로망은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무슈 강이 정말 이 전투에서 살아나서 정보총국을 이겨내고, 다윗의 별과 겨룰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자네는 정말 무슈 강이 이 전투에서 죽을 거라고 믿나?”

또다시 눈과 눈이 맞부딪쳤다.

“닷새입니다.”

“결과를 지켜보지.”

로망이 묘한 미소를 남기고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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