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49화 (34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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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어머니, 미안해.

“너 다시 한 번 말해봐.”

“엄 선배와 정보원을 잡으면 확인하고 바로 움직입니다. 우선 1차 거점, 그곳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엄 선배와 함께 안전 가옥으로 도주합니다.”

“안전가옥 위치는?”

“알 갈라고 사거리에 있습니다.”

“그쪽이 어려우면?”

“알 갈라사의 위장 상점으로 움직입니다.”

“무기는?”

“왼쪽 발목과 허리에 권총, 오른쪽 발목에 대검을 걸었습니다.”

답을 들은 분실장이 탄창을 확인한 후에 권총을 허리에 걸었다. 웃옷을 들었을 때 그의 허리에 감은 붕대 한쪽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엄지환.”

“예.”

엄지환이 고개를 들었다.

“알지?”

“예.”

엄지환의 답을 들은 신입 두 명이 눈치를 살폈다.

뭘 아느냐고 물었는지, 무엇을 알았다고 하는 건지 알지 못해서였다.

반대로 분실장은 눈이 타오르는 것처럼 빛났고, 엄지환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엄지환은 이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전에 작전에 나설 때 분실장이 지금 같은 질문을 왜 선배들에게 던졌는지 말이다.

‘후배들을 먼저 챙긴다.’

‘염려 마십시오.’

최선을 다해 지켜준다.

그래서 이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경험을 전달하게 해 준다.

“무전기 확인해.”

치잇. 치잇. 치잇. 치잇.

각자 순서대로 무전기의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준비가 모두 끝났다.

“승인 나지 않을 것 같아서 보고조차 안 했을 만큼 위험한 작전이다. 괜찮다. 부끄러운 일 아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빠지고 싶은 사람은 조용하게 자리에 앉아라.”

분실장이 엄지환과 두 신입 요원을 굳은 얼굴로 돌아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분실장이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

“대통령님께 보고까지 모두 끝났습니다. 해외 폭격을 위한 전투기의 출격이 이전까지 한 번도 없어서 그에 따른 지휘 체계와 법적 절차만 남았습니다.”

김형정이 무거운 얼굴로 보고처럼 말을 건넸다.

“대통령님께 보고가 끝난 직후에 증평 특수팀, 606 특임대대,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은 모두 비상대기에 들어갔습니다. 인원이 결정되면 바로 국가정보원 파견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강찬은 화이트보드에 붙여진 아프가니스탄의 지도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팀장님. 출발 전에 증평 특수팀과 606, 대테러 팀의 지휘관을 먼저 만날 수 있을까요?”

“장소는 이곳으로 하실 겁니까?”

아무래도 사무실에서 보는 것은 좀 그렇다.

“그러지 말고 국가정보원 지하에 있는 회의실에서 만났으면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가능할 겁니다. 시간은 언제로 하시겠습니까?”

“내일 오전이 좋겠습니다. 10시쯤?”

“준비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제라르가 두 번이나 나와서 지도에 적의 수뇌부 이름과 예상되는 병력을 빠르게 적어댔다.

가까워지고 있었다. 작전에 나설 시간이.

***

건물의 2층에서 내려다보이는 식당이었다.

“저 안에 있다.”

정보원을 미행하던 선배 요원은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식은땀을 흘리지 않았다면, 눈을 뜨고 있지 않다면 엄지환도 ‘죽었나?’ 싶었을 정도였다.

“현재 안에 있는 손님은 저놈 말고 세 명이다. 주방 직원을 둘로 잡고, 서빙과 주인을 계산하면 대략 여섯 명, 최악의 상황에 기본적으로 여섯 명이 적이고, 누가 더 숨어있을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말을 마친 선배 요원이 이를 악물며 창틀을 잡았다. 주저앉을 것을 겨우 버티는 모양이었다.

“저놈을 엮어내는데 10년을 공들였어. 지난번 총격전 이후로 숨어다니던 놈이 먼저 연락한 거니까 대략 80%의 확률로 우리 쪽에 붙을 거다.”

엄지환이 식당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그의 어깨로 선배의 손이 올라왔다.

“함정일 수도 있어. 저놈들 기지를 우리가 습격한 꼴이라 사고가 나도 우리는 항의조차 못 한다.”

죽어가는 사람의 눈에 담긴 의지를 본 적이 있나?

본인이 직접 달려들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억울한 눈빛, 후배들만 달랑 들여보내는 것이 분하고 분해서 죽을 수조차 없는 남자의 눈빛.

‘최대한 빠르게 데려오겠습니다.’

엄지환은 선배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 그가 지닌 불같은 의지를 전했다.

***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러시아, 중국, 독일에 이어 미국에서조차 각종 정보가 물밀듯 밀려들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리차 로드(Saricha Road)를 따라 판즈셔 강(Panjshir River) 인근 루카(Rukha) 지역.

산악 지역이라 몸을 숨길 곳이 많았고, 무엇보다 토굴을 주의해야 했다.

“대장. 저격수 숫자가 장난이 아닙니다.”

제라르가 바삐 강찬에게 서류를 가져왔다.

미국이 보내준 정보에는 저격수의 대략적인 숫자와 그 중 확실하게 파악된 명단이 들어있었다.

저격수는 골치 아프다.

그것도 산악지역에서 몸을 숨긴 저격수는 아군에게 치명적인 요수 중 하나였다.

쿠드스 출신만 30명이 넘는 데다, 다른 특수부대 출신까지 합하면 모두 60명이 넘는 저격수가 루카에 있었다.

“후우. 파악된 놈들이 60이라면 분명 수뇌부를 지키는 놈들이 더 있을 거다. 일단 지도에 표시하고, 내일 오전에 내가 가져갈 수 있게 USB에 지금까지 표시한 목록을 담아놔.”

“예.”

제라르가 다시 사무실 안쪽으로 움직였다.

석강호마저 의아한 눈으로 지도를 노려볼 만큼 UIS의 집결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대장. 저 새끼들, 아무래도 장기전을 준비하는 것 같지 않소?”

강찬은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장기전이 문제가 아냐. 저 정도 인원이면 화력도 장난이 아닐 텐데, 아직 미사일이나 다른 무기가 파악되지 않았거든. 그리고…….”

강찬은 잠시 뜸을 들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저렇게 모이면 다른 정보국들이 어차피 다 알게 된다. 그런데도 굳이 저 지랄을 할 때는 무언가 이유가 있는 거다. 우리나라를 치려고 모인 건 아닐 테고. 그게 뭔지 알아야 제대로 대응을 할 텐데.”

석강호가 강찬을 말을 듣고는 홱 지도를 노려보았다.

1,200명.

특수부대 출신의 저격수 60명.

그렇다면 단순 민병대 수준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말이 된다.

1,200명 중 60명이라니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특수부대를 제대할 정도의 저격수라면 경력이 짧게는 7년, 길게는 15년 이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부담이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원하는 게 뭐지?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때 강찬의 전화가 울며 강찬의 생각을 깨웠다.

“여보세요?”

[“내일 오전 10시에 국가정보원 지하 회의실로 1차 브리핑을 잡았습니다. 전투 비행단 소령 두 명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비밀 유지에 문제 없을까요?”

[“소령 두 분의 신원은 국가정보원에서 보장할 정도로 두텁습니다.”]

“예. 그럼 내일 뵙지요. 참! 샤흐란은 아직도 의식이 없나요?”

[“워낙 마약에 의지해서 움직였을 만큼 망가졌던 몸이라 산소호흡기를 떼면 바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개새끼!

죽기 직전에 목을 비틀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곱게 죽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산소호흡기 붙여두라고 말해 주세요. 적어도 죽는 것을 제가 직접 확인할 수 있었으면 싶습니다.”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전화를 내려놓은 강찬은 다시 지도를 보았다.

아비부를 한 번 더 족쳐 봐?

강찬은 고개를 저었다.

어설프게 아프가니스탄에 UIS가 모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놈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

엄지환은 신입 요원과 함께 건물을 나섰다.

이집트의 햇살이 창날처럼 내리꽂혔고, 그 아래를 걷는 사람들에게서 훅하고 특유의 향신료와 땀 냄새가 풍겼다.

차와 사람, 길가에 늘어놓은 골동품과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뒤엉켜서 넓지 않은 도로는 냄새만큼이나 복잡하고 어수선했다.

치잇. “진입해. 절대 무리하지 마라.”

무전을 들은 엄지환이 신입 요원을 보았다.

그리고 길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날카롭게 날이 섰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 내디디는 걸음이었다.

도로 폭은 짧았고, 가게는 작았다.

짙은 황토색의 나무로 된 문 앞에서 엄지환은 다시 한 번 신입 요원을 보았다.

‘준비됐지?’

다부진 신입 요원의 눈빛을 보며 엄지환은 손을 뻗었다.

대한민국이, 강찬이, 석강호가 기다리는 정보가 이 가게 안에 있을지 모른다.

테러를 막을 수만 있다면, UIS의 집결 이유를 알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손에 넣어서 전해주고 싶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둠이 먼저 달려들었고, 이후로 테이블 네 개가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손님은 두 테이블,

엄지환은 빠르게 식당 내부를 훑고, 혼자 앉아있는 테이블로 시선을 주었다.

본능을 자극하는 서늘한 분위기.

안쪽 테이블에 앉은 세 명의 날카로운 눈동자.

손님이 들어왔는데도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하는 주인.

‘잘못됐다!’

권총을 뽑고 싶었다.

하지만 황야의 무법자가 아닌 다음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지는 알아봐야 했다.

엄지환이 신입 요원을 바라본 후, 식당 주인에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철커덕!

테이블에서 소총 소리가 들렸다.

콰악! 콰다당!

엄지환은 신입 요원을 들이받았다.

철컥!

그리고 곧바로 허리의 권총을 뽑았다.

투두두둑! 퍼버버벅!

적의 소총이 불을 뿜었고,

타앙! 퍼억! 타앙! 퍼억!

엄지환은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두 놈을 쓰러트렸다.

오른팔을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두 놈을 쓰러트리는 순간에,

타앙! 타앙! 타앙!

신입 요원이 남은 한 놈을 향해 세 발의 권총을 발사했다.

“빨리 정보원 확보해!”

엄지환은 악을 썼다.

명치와 오른쪽 가슴이 뜨끔뜨끔했는데 당장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와락!

신입 요원이 혼자 앉아있던 남자의 소매를 끌어당겼을 때였다.

콰자작!

문이 부서지며 한 덩어리의 남자들이 식당 바닥에 나뒹굴었다.

엄지환은 권총을 겨눴다.

분실장과 신입 요원이 이집트 남자 세 명과 뒤엉킨 채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푸욱! 푹! 푹! 푹!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했다.

분실장이 대검으로 적의 목을 연달아 찌르고 신입 요원이 적의 심장을 찌르는 것만 보았다.

‘어? 왜……?’

털썩!

엄지환은 바닥에 무릎을 꿇는 자세로 무너졌다.

“야! 야 인마! 엄지환!”

피투성이가 된 분실장이 그의 상체를 안았는데 엄지환의 눈에는 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만 겨우 보였다.

“크르륵.”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피 거품이 먼저 올라왔고, 이어서 울컥하고 피만 올라왔다.

“저놈 데리고 올라가! 서둘러!”

분실장의 고함에 신입 요원 둘이서 정보원을 끌고 문을 나섰다.

됐다.

저놈을 확보했으니 정말 된 거다.

정보원이 가진 정보로 테러를 막을 수 있었으면 싶었고, UIS가 집결한 이유도 얻었으면 싶었다.

뒤에 남은 일들은 강찬과 석강호가 멋지게 해결해 줄 거다.

“야! 인마! 조금만 버텨! 야! 엄지환!”

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세상에 가득 찬 것처럼 엄지환은 환한 빛만 보였다.

- “아야! 객지에서는 야, 끼니때 꼭 국물을 챙겨라, 잉! 그래야 몸이 안 상해야.” -

좁은 빌라 앞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매달리던 노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미안해.’

- “그게 뭔 소리다냐! 모다 나보고 아들 덕에 호강한다고 했쌌는데!” -

시장 바닥에서 얼어가며, 더운 날엔 녹아가며 고생스럽게 키워야 했던 아들이 밉거나 원망스럽지는 않았을까?

- “어디 아픈 거 아니지? 꿈에 너 보이면 야! 난 온종일 암 것두 안 넘어가야.” -

가방을 들어준다고, 집 앞에서 차 타는 것을 보겠다고, 쪼그라든 몸으로 끝까지 따라 나오던 늙은 어머니.

- “이번에 가면 언제 온다냐?” -

‘어머니. 나 하나도 안 아프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

- “아야! 왜 그랴? 왜 무섭게 그랴?” -

“야! 야 인마! 엄지환!”

분실장이 이를 악물며 엄지환을 어깨에 짊어졌을 때였다.

그의 고개가 힘없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

더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료가 사무실에 모였다.

확대한 루카 지역의 지도에 위성으로 확인한 병력과 정보국이 보내준 자료들을 기입하자 전체적인 윤곽도 나왔다.

“저녁이나 먹고 합시다.”

통역 대원까지 소매를 걷어붙이고 정보를 챙기는 사이, 석강호가 불만을 터트렸다.

창밖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알아서 좀 시켜.”

“나중에 딴소리 마쇼.”

석강호가 우희승을 향해 움직였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강찬의 전화기가 울었다.

왜 이러지?

어깨에 매달렸던 찜찜함이 끈적하게 들러붙는 느낌을 받으며 강찬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김형정입니다.”]

복잡한 음성이었다.

강찬이 숨을 들이마실 때 수화기를 통해 그의 음성이 이어졌다.

[“이집트에서 위성좌표를 구할 때 연결점이었던 정보원을 확보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무기 밀매상 이반 드리트리예비치 례배제브(Иван Дмитриевич Лебедев)가 OTP를 러시아에 판매하려고 했다는 내용입니다.]

“그 정도 거래를 할 놈이면 잔챙이는 아니겠네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정보원이 보호를 조건으로 또 다른 정보를 제시하긴 했는데 아직 확인은 못 했습니다.”]

“뭔데요?”

[“UIS가 이번에 집결한 이유가 아프가니스탄에 신생 독립국을 선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에 맞춰서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테러를 계획했고, OTP는 그때 핵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보입니다.”]

미친 새끼들!

강찬은 어이없는 심정으로 화이트보드에 걸린 지도를 보았다. 그러나 UIS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는 집단이란 생각도 들었다.

“부원장님.”

그때 갑자기 축 가라앉은 김형정의 음성이 들렸다.

찜찜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강찬은 대답하지 않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정보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엄지환 요원이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보고도 함께 들어왔습니다.”]

시선을 돌린 곳에서 석강호가 우희승에게 저녁 메뉴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특수 요원의 숫자를 단기간에 불릴 수도 없어서 현재 중동, 아프리카 지역은 특수 요원의 숫자가 엄청나게 부족합니다.”]

강찬은 먼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고생하셨어요.”

전화를 내려놓은 강찬이 고개를 들었다.

“뭔 전화요?”

석강호가 히죽거리며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표정이 또 왜 그래요?”

“다예.”

강찬의 표정을 본 석강호가 바로 웃음을 지웠다.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 그리고 무언가 자료를 가지고 화이트 보드로 향하던 통역 대원까지 강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집트에서 정보원을 찾았고, 중요한 정보가 넘어왔다.”

‘이집트’란 이름이 나오는 순간, 석강호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지환이가 그 작전에서 사망했단다.”

꽈악!

이를 얼마나 세게 악무는지 석강호의 양쪽 볼 안쪽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떨렸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석강호가 테이블로 다가와 자리에 앉았고 담배를 물었다.

분하고, 화나고, 억울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석강호의 행동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찰칵. 찰칵.

석강호가 불을 붙였다.

이래서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건 무서울 만큼 힘겨운 일이다.

이런 삶에서는 말이다.

“후우.”

그가 뱉어낸 담배 연기가 환풍기를 향해 소용돌이치며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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