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7 / 0419 ----------------------------------------------
18-9 준비됐지?
다음 날, 정오가 될 때까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들이 러시아, 중국, 독일에서 넘어왔다.
그것만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의 요원들이 각국에서 얻어낸 정보들을 쉼 없이 보내주었다.
믿는다.
이렇게 피를 담보로, 목숨을 던져 얻어낸 정보를 보내준 국가정보원 요원들을 말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정보들을 일일이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보내준 정보와 비교했다.
“이거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라르가 커다란 지도에 붉은색으로 이름을 적어나갔다.
애새끼!
어쩌면 글씨를 저렇게 망나니처럼 쓰는 건지!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UIS 지도부 놈들이 전부 아프가니스탄에 모여 있습니다. 병력도 그렇고. 숫자만 보면 완전히 전면전입니다.”
쉽지 않겠는데?
강찬은 고개를 갸웃하며 지도에 적힌 이름과 대략 파악된 병력을 날카롭게 보았다.
UIS 핵심 간부와 병력이 집결한다고?
그것도 한 자리에?
“아비부를 체포한 것에 대해 대대적인 반격을 계획한 것은 아닌가 싶은데요?”
“제라르. 당장 저 개새끼들이 이동하는 데만도 엄청난 돈이 들어갔을 거다. 자금줄을 찾아달라고 해 봐.”
“알겠습니다.”
제라르가 답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강찬은 피식 웃으며 지도를 보았다.
자금줄을 댄 것이 아비부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아비부에 대한 충성을 보여야 다른 누군가가 또 자금을 댄다.
그런데 지금은 아비부가 이렇게 잡혀 있는 마당이다.
또 다른 어떤 새끼가 엄청난 뒷돈을 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강찬은 지도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저 정도 병력이라면 아예 전쟁을 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다.
게다가 UIS는 국가 세력이 아니다.
느닷없이 한국을 때린다고 해도, 한국과 테러세력 간의 다툼이지 국가 간의 전쟁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다.
이 정도라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다.
증평의 대원에, 606은 물론이고, 대테러 팀까지 전부 나서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다.
강찬이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을 때였다.
“시간 됐습니다.”
최종일이 다가왔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오쇼.”
“정보 좀 잘 챙겨놔.”
“알았소.”
강찬은 석강호와 짧은 대화를 끝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타고 성남 비행장으로 향했다.
함께 움직이는 승합차만 네 대가 넘었다.
‘너무 거창한 거 아니냐?’
강찬은 앞과 뒤를 돌아본 다음 최종일에게 시선을 주었다.
“원장님 특별 지시입니다. 전 국장을 체포한 상황이라 아마 더 신경 쓰셨나 봅니다.”
“가뜩이나 일이 많을 텐데 특수 요원들이 죽을 맛이겠는데?”
“그렇진 않습니다.”
강찬의 옆에 앉은 최종일이 나직하게 답을 했다.
“황 원장님 테러 이후로 다들 독이 잔뜩 올라서 비상 출동이 있으면 서로 나서려고 달려듭니다.”
강찬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기현과 송창욱의 억울한 죽음을 아직 풀지 못했다.
OTP를 받으려고 했던 놈이 어떤 놈인지도 모른다.
‘하나씩 하자.’
전쟁?
당장 UIS가 한국에서 마음 놓고 총질하고 폭탄 터트리는 게 전쟁보다 더 무섭다.
길은 그렇게 막히지 않았다.
덩치가 커다란 새카만 승합차, 그리고 중간에 낀 검은 승용차가 주는 위압감 때문인지 도로에 있던 사람들과 운전하는 이들이 힐끔거렸다.
그렇게 성남 비행장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40분이었다.
점심은 성남 비행장 근처의 식당으로 잡았다.
아예 하루를 완전히 사용하는 것으로 예약했고, 이미 요원들이 완벽하게 진입로와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고 들었다.
공항 건물을 지나 활주로까지 곧바로 들어선 강찬은 차에서 내렸다.
“담배 있어?”
최종일이 담배와 라이터를 건네주었다.
찰칵.
“후우.”
연기가 넓은 활주로를 향해 삽시간에 흩어졌다.
커피 한잔 마시면 딱 좋을 텐데.
강찬은 활주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강대경, 유혜숙을 위해 공트 자동차 일에 끼어들었다고 얼결에 밀리고 밀려서 지금은 성남 비행장의 활주로에 서 있는 거다.
다시 태어난 것보다 지금 이러고 있는 게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강찬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요원들이 주변을 완벽하게 둘러싸고 서 있었고, 바로 옆에는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가 버티고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아니.”
강찬은 다시 활주로로 시선을 돌렸다.
최종일과 함께한 전투가 몇 개지?
그사이 참 많이도 뛰었다. 끔찍한 놈으루다가.
UIS?
저 끝에 선글라스를 끼고 양손을 앞에 모은 요원들이 가슴에 담고 있는 각오,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요원들의 온몸을 도는 피보다 진득한 사명감을 알아?
국제 빌딩에서 총구에 몸을 던진 606대원들과 11미터를 거꾸로 떨어지다시피 내려선 증평 특수팀 대원들의 의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UIS의 숫자가 떠올라서였다.
누구 한 사람 뒤로 빠지겠다는 요원이나 대원은 없겠지만, 희생 역시 불가피한 거다.
“부원장님.”
최종일이 부르는 소리가 생각을 잘랐다.
고개를 든 강찬의 눈에 멀리서 내려앉는 비행기가 들어왔다.
5분도 채 안 돼서 활주로로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끼이익! 끼익!뒷
바퀴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이어서 커다랗게 엔진음이 터져 나왔다.
위이이잉.
활주로의 끝에 도착한 비행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강찬에게 다가왔다.
날렵하게 생긴 자가용 비행기였다.
군용이라면 기종과 성능까지 줄줄이 꿰겠지만, 저런 개인용 비행기는 아무래도 좀 알아보기 어렵다.
강찬의 앞까지 온 비행기가 움찔하면서 멈춰 섰고, 잠시 후 문이 열렸다.
강찬이 다가갔을 때 정장 차림의 바실리가 뾰족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와.”
비행기에서 내린 바실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강찬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양범이 비행기에서 내리며 강찬의 손을 잡았다.
비행기를 함께 타고 올 줄은 정말 몰랐다.
양범이 내린 뒤다.
그런데도 바실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안쪽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이놈이 선물을 가져왔을 리는 없고?
함께 시선을 주었던 강찬이 힐끔 바실리를 보았다.
셔먼이 복잡한 얼굴로 내려서고 있었다.
“더 있을지 모른다던 한 명이 함께 온 거다.”
이왕 온 거다.
그걸 굳이 불편하게 맞을 필요가 없어서 강찬은 두말하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그렇군요.”
강찬의 말투에 눈을 번득이긴 했지만 셔먼은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저쪽에서 기다리지.”
바실리가 주변에 서 있는 요원들을 둘러보고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넷이서 자동차까지 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도 한잔 준비했어야 하는 건데…….
언젠가 활주로에서 홍차를 꺼냈던 바실리가 떠올라서 강찬이 아쉼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다.
“차를 드릴까요?”
최종일이 다가와서 나직하게 질문을 던졌다.
양범은 한국말을 알아듣는다.
이런 때 놀란 척하면 촌스러워 보이는 거다.
강찬은 중요한 지시를 전하는 것처럼 최종일에게만 들릴 정도로 질문을 던졌다.
“그걸 준비했었어?”
바실리와 양범, 셔먼이 무슨 일인가 싶은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승합차에 봉지 커피까지 다 있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럼 부탁해.”
염병!
이왕 가져온 거면 아까 담배 피울 때 좀 주지.
바실리와 셔먼이 ‘저놈들이 뭔 이야기를 저렇게 긴밀하게 하는 거지?’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앞이다.
최종일이 고개를 돌려 눈짓을 하자 요원 두 명이 보온병과 잔을 가져왔다.
“차 한잔 할까 해서.”
강찬의 말에 바실리가 특유의 표정으로 다가왔다.
쪼르륵.
한낮이다.
정오의 햇볕이 내리쬐는 활주로에서 승용차의 트렁크에 올려놓은 잔에 차를 따른다.
봉지 커피가 생각나기는 했는데 최종일이 따라준 홍차도 향이 나쁘지 않았다.
“담배도 주고 가.”
최종일은 조용하게 담배와 라이터를 찻잔 앞에 놓아주었다.
“담배?”
“좋지.”
바실리와 양범은 손을 내밀었고, 셔먼은 거절했다.
찰칵. 찰칵. 찰칵.
갑자기 부는 바람 때문에 불을 붙이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는 태풍과 마주쳐서도 불을 붙일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강찬이 불을 붙인 다음 라이터를 건네주었다.
바실리가 후회하는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다가 몸을 돌려서 바람을 등지고 불을 붙였다.
비겁한 새끼!
“후우.”
강찬이 연기를 뿜을 때 바실리가 몸을 돌렸다.
양범의 차례다.
그런데 그는 강찬을 바라보고 있어서 어차피 등을 돌린 듯한 자세였다.
운이 좋은 놈이다.
홍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그동안 특별한 말은 없었다.
10분쯤 지나서 좀 더 덩치가 있는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섰다.
다시 5분쯤 지나서야 강찬의 앞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루드비히가 내렸다.
“무슈 강.”
“어서 오세요.”
루드비히와 허그를 하던 강찬은 갑자기 마음 한쪽이 아렸다.
라노크가 이 자리에 있어야 했다.
로리암의 그 깊고 음습하고, 답답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자리에 함께 있어야 하는 거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루드비히를 안내했다.
함께 차로 움직인 루드비히가 바실리, 양범, 셔먼과 인사를 나눴다.
“차를 먼저 하시겠습니까?”
“그보다는 바로 식당으로 가는 게 좋겠군요.”
루드비히의 의견을 들은 강찬은 최종일을 바라보았다. 곧바로 연예인들이 주로 타는 커다란 승합차가 앞으로 다가왔다.
“타시죠.”
다른 게 있을 리가 없어서 차에 오르고 바로 출발했다.
공항을 나와 큰 도로를 따라 잠시 달렸고, 다시 작은 도로, 이어서 비포장 길로 들어섰다.
루드비히가 앞과 뒤에서 함께 움직이는 차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마치 강찬에게 ‘이 정도로 거물이 되었군요.’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10분쯤 산길을 돌아서 올라간 자동차가 널찍한 주차장에 멈춰 섰다.
입구의 간판에 ‘불타오르는 오리’라는 간판이 보였다.
한글이기에 망정이지 좀 우습다.
아차차! 양범은 한글을 알아본다.
강찬은 모른 척하고 일행을 이끌고 식당 건물로 향했다.
주차장과 건물을 빙 돌아서 무장한 요원들이 지키고 있었고, 그 안쪽을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요원들이 경계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강찬은 힐끔 최종일을 보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운동장만 한 홀이다.
그런데 커다란 테이블 한 개만 달랑 있었다.
게다가 직사각형의 테이블은 분명 따로 준비한 듯한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어쩐지 로또 맞은 촌놈이 친구들 불러서 돈 자랑하는 느낌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이미 차려진 식탁이다.
이제 와서 뭐랄 것도 아니어서 강찬은 잠자코 테이블로 움직였다.
“식사를 먼저 할까?”
“그게 좋겠지.”
강찬이 끄덕이자 최종일이 눈짓을 했고, 식당 직원 복장의 여자 세 명이 음식을 내왔다.
요원이 분명했다.
여직원의 움직임이나 눈빛이 딱 그랬다.
숯불이 나왔고, 이어서 참기름에 주무른 듯한 오리가 연달아 나왔다.
치이익.
원래 이런 인간들이 음식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래서 식사는 그냥 요식행위 같은 거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루드비히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구워진 오리를 가져갔고, 바실리도 평소와 다르게 포크를 움직였다.
오리를 먹는 동안, 고기가 담긴 국물이 나왔고, 잠시 후에 다시 칼국수가 또 나왔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누구 한 사람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다들 만족한 얼굴로 등받이에 등을 기댔을 때, 테이블이 깨끗하게 치워졌고, 홍차와 커피, 담배와 시가, 그리고 재떨이가 각자의 앞에 놓였다.
그리고 주방에서부터 식당 안에 있던 요원들 모두가 조용하게 밖으로 나갔다.
차를 마신 강찬이 담배를 들자 양범과 바실리가 손을 내밀었고, 루드비히는 시가를 집어 들었다.
“무슈 강.”
바실리가 뾰족한 표정으로 강찬을 불렀다.
“UIS에 대한 정보는 우리 모두 공유했다. 아프가니스탄에 잔뜩 모여 있던데 인원수가 이천 명이 넘어. 그래도 공격할 생각인가?”
저 새끼는 분명 아직 할 말이 남았다.
강찬이 바라보고 있자 바실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그 정도를 상대할 정규 병력이 움직이면 가장 먼저 북한과 일본이 반응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원하지 않는 전쟁이 일어나. 또 한가지.”
바실리가 테이블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이천 명을 상대로 전투가 벌어지면 이건 단순하게 한국과 UIS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UN의 눈과 입을 막을 필요가 있다.”
강찬은 담배 연기를 내뿜은 뒤에 재떨이에 담배를 눌러껐다.
“바실리. 그 정도 의견을 제시할 정도라면 대책도 세워놓았을 것 같은데, 시간 끌지 말고 바로 말하는 게 어때?”
바실리가 입 끝을 들며 차갑게 웃었다.
“조연의 비애를 또 느끼게 하는군.”
양범과 루드비히가 비슷하게 웃었고, 셔먼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북한은 중국의 양범 씨가 해결하고, UN은…….”
바실리가 셔먼을 보았다.
네 사람의 시선을 받은 셔먼이 헛기침을 한 다음 강찬을 향해 입을 열었다.
“UN은 우리가 알아서 조율하겠소. 대신 우리도 바라는 것이 있소.”
셔먼이 단순히 불타오르는 오리고기를 처먹으러 온 건 아닐 테니 당연히 할 말이 있을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제 놈들끼리 말을 마쳐놓고 온 건 누가 뭐래도 불쾌한 일이다.
강찬은 날카롭게 바실리를 노려보았다.
“내가 전화를 받을 때 이미 셔먼은 활주로에 내려서고 있었다. 그리고 적의 적은 동지가 아닌가? 정보 세계에서 권총을 들었던 손으로 악수를 나누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변명처럼 말하는 게 불쾌했는지 바실리의 눈빛이 좋지 않았다.
“무슈 강.”
그때 루드비히가 넉넉한 표정으로 강찬을 불렀다.
“조쉬와 로망을 제거하는데 셔먼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루드비히가 셔먼을 잠시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하는 말에 대해서 딴소리 하지 말라는 뜻처럼 보였다.
“로망을 제거하는 것만큼이나 라노크를 로리암에서 꺼내오는 것도 중요합니다.”
라노크를 꺼낼 수 있다면야!강찬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셔먼을 보았다.
“원하는 것을 말해.”
“우리는 한국과 달리 치욕스럽게 테러에 당했소. 그래서 우리 정부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거요.”
“셔먼. 원하는 것을 말해.”
강찬은 담배를 들어 불을 붙였다.
찰칵.
불을 붙인 강찬이 담배를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였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도주한 탈레반과 알카에다 지도자는 우리가 제거하겠소.”
강찬은 의아한 시선으로 셔먼을 보았다.
미국이 지닌 군사력과 미군 특수팀의 능력을 감안하면 굳이 이런 말을 지껄일 필요도 없는 거다.
강찬의 시선을 받은 셔먼이 멋쩍은 듯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최소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원합니다.”
“알아듣게 설명해.”
셔먼이 이번엔 바로 답을 했다.
“특수팀 16명이 완벽하게 적을 사살하고 한 명의 부상도 없이 돌아와야 합니다.”
피식.
이 미친 개새끼가!
이천 명에게 둘러싸인 적의 수뇌부를 사살하고 멀쩡한 몸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강찬은 보란 듯이 재떨이에 담배를 꾹 눌렀다.
“셔먼. 우리 대원들의 피를 담보로 미군 특수팀이 한 명도 피를 흘리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조건이야. 당신이 특수팀 경험이 없거나 아니면 선거에 미쳤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 조건은 없던 걸로 해.”
“대신 라노크를…….”
“셔먼.”
셔먼이 하려던 말을 멈추고 강찬을 보았다.
“만약 로망 혹은 프랑스가 대사님의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게 한다면 프랑스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놈을 적으로 맞게 될 거다. 그리고.”
강찬은 바실리와 양범, 루드비히를 돌아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이천 명에게 둘러싸인 UIS 수뇌부를 사살하려는 특수팀이 절대로 다치지 않게 한다는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요구인지를 먼저 생각해.”
셔먼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처럼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강찬 씨.”
양범이 한국식으로 강찬을 불렀다.
“한번쯤은 양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갑자기 한국말을 꺼내는 바람에 바실리와 루드비히, 셔먼이 의아한 시선으로 강찬과 양범을 번갈아 보았다.
“셔먼이 쥐고 있는 열쇠가 지금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UIS가 아프가니스탄에 모일 수 있는 자금의 출처가 다윗의 별에서 나온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역시!
이놈들도 자금의 뒤를 추적하고 있었던 거다.
“다음으로 조쉬는 몰라도 로망을 꼬드겨 내는데 셔먼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보총국이 셔먼을 노릴 텐데요?”
“당장은 대통령 선거가 그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거지요.”
양범이 셔먼을 힐끔 보았다가 시선을 가져왔다.
“셔먼을 제외하고 나와 여기 두 분은 모두 강찬 씨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바실리의 체면을 세워주시는 것도 필요합니다.”
강찬은 말없이 양범을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셔먼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실리의 뜻을 거절하기 어렵다.”
바실리가 빠르게 강찬과 양범을 살핀 다음이었다.
“우리 전투기가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할 수 있도록 주변국을 설득해. 그 조건이라면 미국이 원하는 조건을 받아주지.”
셔먼은 굳은 얼굴로 답을 하지 못했다.
바실리, 양범, 루드비히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바라보는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