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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많이 힘든 것 같은데?
아침을 먹은 뒤에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이 흘렀다.
강찬은 테이블에 앉아서 화이트 보드를 보고 있었다.
황기현은 어디에서 좌표를 얻었을까?
리비아 요원들은 또 어떻게 아프가니스탄 납치가 단순 납치가 아니란 정보를 얻어낸 걸까?
그렇다면 송창욱에 대한 테러는?
쿠드스는 왜 아프리카에 나타났던 거지?
강찬이 여러 가지 질문을 떠올릴 때 석강호가 앞을 지나다녔다.
‘저놈 말대로 아비부를 한 번 더 두들겨?’
지금 또 한 번 그렇게 두들기면 놈은 살아남기 어렵다. 거기에 아비부 또한 이용당한 꼴과 다르지 않았고, 조사를 할 수 있다면 먼저 차세대 발전 시설을 어디에 짓는지부터 알아봐야 했다.
그 외에도 이집트에 있는 요원들이 정보원과 다시 연락해서 어떻게 그 좌표가 나왔는지를 알아내는 것과 다음으로 바실리가 말한 잠수함을 확인하는 것도 급했다.
강찬이 답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화이트 보드를 노려볼 때였다.
“사거리에 있는 커피 전문점, 오전 11시 30분이시죠?”
최종일이 다가와 약속을 확인했다.
“응. 어차피 같이 갈 건데 뭘 일일이 확인해?”
“외곽 경호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짜야 해서 그렇습니다.”
“스미든은 봤잖아?”
“그렇습니다.”
최종일에게 스미든은 보기만 한 게 아니라 전에 있었던 인질극의 주인공이어서 누구보다 잘 아는 놈 중 하나일 거다.
“그럼 11시쯤 출발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최종일이 시간을 정하는 순간에 우희승이 무거운 얼굴로 다가왔다.
‘뭐지?’
최종일의 눈치를 살핀 우희승이 입을 열었다.
“인터넷에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국가정보원에서 이번 테러의 주범으로 아비부를 체포했다고 했고…….”
강찬의 표정을 본 우희승이 마저 말을 이었다.
“현재 대테러 팀을 맡고 있는 부원장님의 고문을 받아 생명이 위태롭다는 내용입니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생겼지?
강찬보다 최종일이나 우희승이 더 놀란 눈치였다.
이런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런데 기사가 나간 거다.
“기사 볼 수 있어?”
“저쪽 모니터에 올려놨습니다.”
강찬은 우희승이 가리킨 책상으로 움직였다.
고건우, 김형정, 통역요원, 녹음요원, 그리고 취조실에 있던 무장 요원 둘, 정장 요원 둘, 의료팀, 그리고 또 누가 있지?
걸어가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두희가 비켜주었음에도 강찬은 책상에 팔을 짚고 상체를 기울인 채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먼저 헬멧에 복면을 한 강찬의 사진이 커다랗게 확대되어 올라 있었고, 그 아래쪽에 아비부가 활짝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사진이 보였다.
기사는 속보 형태여서 우희승이 전해준 것이 거의 전부였다.
쯧!
강찬은 모니터를 노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되면 UIS와 극단주의자는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조차 공식적으로 한국에 반감을 표시하게 된다.
‘누구지?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강찬이 몸을 일으켜 테이블로 옮겨갈 때 석강호가 다가와 기사를 보았다.
“뭐야? 이게 어떻게 이렇게 기사로 나오지?”
석강호의 말이 꼭 강찬의 심정이었다.
강찬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럴 때 강대경과 유혜숙이 유럽에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후우.”
연기를 뿜어내며 가장 먼저 국가정보원을 믿을 수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정보총국 같은 조직을 만들려고 해도 국가정보원과는 전혀 다른 정보 루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 된다.
석강호가 툴툴거리며 다가와 맞은 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어떻게 할 거요?”
“일단 지켜봐야지.”
“기사가 나왔으니 멀지 않아서 지랄들 할 거 아니요?”
“그럴 거다. 일단 전화 한 통 해놓고.”
담배를 끊은 강찬은 전화기를 들어서 김 대리의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나야. 지금 어디 있어?”
[“프랑스 샤를 드골 국제공항을 막 출발했습니다. 한국으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강찬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럽에 있더라도 보도 못 보게 신경 쓰고, 경호에 좀 더 집중하라는 말을 하려는 참인데 한국에 온다는 거다.
“한국에? 왜?”
[“테러가 생겼는데 유럽을 돌아다니는 것이 경호 요원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라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워낙 확실하게 말씀하셔서…….”]
강찬은 창밖을 잠시 보았다.
사건을 저지른 게 강찬이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아주는 듯한 기사가 나간 다음이다.
테러의 대상이 되는 것과 별개로 여차하면 한국에서의 시선을 감당하기 어렵다. 거기에 언제까지 TV나 인터넷, 전화를 끊고 있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직항이야? 서울로 바로 오냐고?”
[“중국을 거쳐 들어갑니다.”]
강찬은 곧바로 결심을 굳혔다.
“그럼 중국에서 바로 몽골 기지로 가. 김태진 대표는 알지? 유비캅 김태진 대표.”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거기 계시니까 도와주실 거야. 지금 한국에 오는 것은 정말 안 좋아. 항공편과 헬기는 준비할 수 있겠어?”
[“협조를 구하겠습니다. 저, 그런데 두 분께서 많이 놀라실 거라 통화를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바꿔줘. 그리고 부탁해.”
[“염려 마십시오.”]
김 대리가 전화기를 들고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해야 하지?
강찬이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여보세요?”]
강대경의 음성이 들렸다.
미안했다.
유럽까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길에 몽골로 가야 하는 상황이, 그리고 마치 천덕꾸러기가 된 것 같은 그림도.
“아버지. 한국의 상황이 별로 안 좋아요. 그래서 중국에서 바로 몽골 기지로 가 계셔야 할 것 같아요. 어머니가 놀라실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흠.”]
강대경이 시간을 끌기 위해 뱉어낸 소리가 먼저 들렸다.
[“네가 그렇게 보여주고 싶다면 엄마와 한번 의논해 보마. 마침 중국에 들렀다가 가는 비행기 편이긴 한데 김 대리와 의논하면 되겠니?”]
“고맙습니다, 아버지.”
[“다른 일은 없는 거지?”]
“그럼요.”
[“바쁜 모양이니까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엄마에게 꼭 전화해라.”]
“그럴게요.”
강찬은 답을 한 다음 곧바로 강대경을 불렀다.
“아버지?”
[“왜?”]
“죄송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어머니가 좋아할 거야.”]
강대경의 최선을 다한 능청스러운 대꾸를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석강호의 시선을 받으며 강찬은 새로 번호를 찾아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대표님. 강찬입니다.”
[“자주 전화하네? 강 선배님 바꿔드릴까? 좀 멀리 계신데…….”]
“그건 나중에요. 아마 12시간 근처로 그곳에 부모님이 가실 거예요. 유럽에 가셨다가 들어오는 길인데 아무래도 한국이 위험할 것 같아서 그리 가시라고 했어요.”
[“무슨 일인데? 이쪽에서 뭘 하면 좋겠나?”]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드릴게요. 강 이사님께도 그렇게 말해주시고, 막사 하나 준비해 주세요. 요원 두 명이 함께 갈 거예요.”
[“일단 그렇게 알고 있을게.”]
“부탁드려요.”
[“최선을 다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전화를 끊은 강찬은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몽골로 싸움을 몰고 가게 될지도 모른다면서요? 그렇게 되면 두 분이 정말 위험해지지 않겠소?”
“당장 유럽이나 이곳에 계신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그래. 만약 싸움을 그리 몰고 가게 되면 중국이나 러시아 쪽으로 모실 수도 있고. 그리고 황 원장님이나 송 청장님 일에서도 느꼈지만, 한국은 테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는 아직 분위기가 어렵다.”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여기 요원들은 자살 폭탄 테러로 의심된다고 해도 먼저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할 거요.”
“후우.”
강찬은 답답한 속을 털어내는 것처럼 연기를 뿜어냈다.
“그런데 몽골로 싸움을 가져갈 수는 있겠소? 놈들이 바보도 아니고 자살 폭탄을 터트리려고 황량한 벌판을 걸어올 건 아니잖소?”
상황은 상황이고 놀란 건 놀란 거다.
강찬은 석강호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냈냐?”
“어허! 또 그런다. 내가 제라르보다는 낫다니까요.”
석강호가 거만한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무슨 일입니까?”
제라르가 다가왔다.
강찬은 기사 내용과 강대경, 유혜숙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대장이 몽골로 가봐야 UIS나 극단주의자 놈들은 분명 한국을 노릴 겁니다. 그리로 대규모 병력을 움직이기 어려우니까요.”
석강호와 비슷한 지적이었다.
이 새끼들이 갑자기 왜 이렇게 똑똑해져서 이러지?
“좀 지켜보자.”
“알겠습니다.”
답을 한 제라르가 볼의 흉터를 늘이며 웃었다.
“왜?”
“하여간 대단합니다. 이제는 UIS까지. 대장은 뭐든 어설프지 않아서 좋습니다.”
“이게 확! 가뜩이나 정신 사나운데…….”
“짐 챙깁니다. 갈 거면 얼른얼른 갑시다.”
제라르는 오히려 신이 난 얼굴이었다.
“몽골로 안 올 거라면서?”
“대장이 오게 만들 거 아닙니까?”
“저 새끼는 뭐가 좋아서 저러는 거요?”
“갈 거면 얼른 출발하잔다. 짐 챙긴다는데?”
“하여간 미련한 새끼! 그리 오기 힘들다니까!”
“내가 오게 만들 거란다.”
“어? 그건 그러네. 그럼 나도 얼른 집에 다녀오겠소. 푸흐흐. 갑자기 식욕이 확 땡기우.”
이 미친놈들이?
강찬은 고개를 젓고 말았다.
***
고건우는 무거운 얼굴로 문재현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국가정보원에서 이런 말이 새나갔다는 것은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일입니다.”
고건우는 침통한 표정으로 답을 하지 못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석방을 요구하던 비공식 채널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아마 조만간 공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흠.”
문재현이 손가락을 비비며 신음을 쏟아냈다.
“어떤 이유에서든 구타를 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긴 합니다. 부원장도 이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텐데.”
문재현은 입술을 모았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원장 생각은 어떻습니까? 방법이 있기는 합니까?”
“두 가지 방법밖에 없어 보입니다. 하나는 증거를 보이고, 테러 주범이라고 발표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고 체포할 때 반항이 워낙 심해서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밀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텐데요?”
“그렇다고 구타를 했다는 발표를 하면 뒷수습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우리는 아비부가 테러 사건을 희석시키려고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현이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방법은요?”
“아비부와 협상하는 수가 남았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대로 풀려날 경우 우리에게 준 정보 때문에 살해 위협을 받는다고 했으니까, 테러를 자백하고 체포당시 반항했던 것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폭력이 있었다고 발표하게 하는 겁니다.”
“그가 그말을 따를 이유가 있습니까?”
“대통령님께서 사면을 해주시는 조건이라면 따를 겁니다.”
문재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되면 황 원장과 송 청장의 테러도 덮어주는 꼴입니다. 그 외에 요원들과 대원들의 희생도 죄를 묻지 못하게 됩니다.”
고건우는 답을 하지 못했다.
“이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아비부의 입이 필요하고, 처벌을 하자니 재외 공관과 우리 국민의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거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문재현이 생각난 것처럼 시선을 들었다.
“부원장을 일단 지켜주세요. 취조실에서 했다는 말처럼 혼자 몽골로 가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공식 발표를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식 입장이 언제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중으로는 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고건우의 답이 있고 나서도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갔다.
***
“조석도 기자랍니다. 데스크에 허락 없이 속보 기사를 올렸습니다. 지금 억지로 기사를 내리면 의혹만 가중시키게 됩니다.”
김형정이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모니터에 새로운 보고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김 팀장. 정정기사보다 외교부와 우리 대사관에 지침을 내려주는 게 급해요. 말한대로 아비부와 협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일단 부원장을 만나서 다른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말해 주세요.”]
고건우는 평소와는 달리 말이 굉장히 빨랐다. 행정가로 잔뼈가 굵은 그가 당황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알겠습니다, 원장님.”
[“부원장과는 통화했습니까?”]
“아직 못 했습니다. 지금 찾아가서 만나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부원장을 잃으면 우린 견디기 어렵습니다. 서둘러서 상황 전하고 좋은 결론을 내주었으면 합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김형정은 바로 강찬에게 전화를 넣었다.
“부원장님. 사무실에 계시면 바로 건너가겠습니다.”
[“예.”]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난 김형정은 곧바로 요원을 불렀다.
“조석도 소재 파악되는 대로 내게 알려줘. 그리고 아비부 체포 당시 움직였던 요원, 취조실에 있었던 요원, 의료팀, 아비부 입원 사실을 아는 경찰 병원 명단, 전부 추려놔.”
“알겠습니다.”
“결재 라인과 체포 당시에 무전 들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대테러 상황실 인원까지 전부 추려.”
문을 나서던 김형정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부원장님을 노렸다. 자칫하면 우리 부원장님 혼자 이 모든 걸 뒤집어쓰는 거다. 명단에서 한 명이라도 누락되는 일 없이 챙겨.”
“걱정하지 마십시오.”
답을 하는 요원은 김형정보다 더 분한 표정이었다.
***
주사기를 뽑는 순간 스미든이 기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너무 센 걸 준 건가?”
“혹시 중간에 약효가 떨어지면 다리의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이 정도는 주는 게 맞습니다.”
샤흐란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잠시 스미든을 노려보았다.
“가슴 상처와 폭탄이 발견되지 않도록 입혀.”
“준비해 두었습니다.”
주사기를 쓰레기통에 버린 사내가 탁자를 가리켰다.
바지, 면티, 캐쥬얼한 재킷과 양말까지 모두 있었다.
“폭파 장치는?”
“원격입니다.”
사내가 주먹만 한 네모난 상자를 들어 보였다.
“설치해.”
샤흐란의 말에 사내들이 스미든에게 다가갔다.
“우히히!”
하의가 원래 벗겨져 있던 스미든이다. 그는 사내들이 웃옷을 벗기는 것이 무척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홀랑 벗은 스미든의 몸은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가슴에는 칼로 난도질한 상처들이, 양쪽 허벅지는 칼로 가른 흉터를 중심으로 화상이 흉측하게 번져 있었다.
찌익. 찍.
사내들이 능숙하게 C4가 네 덩어리 붙은 띠를 스미든의 허리에 두르고, 타이로 단단히 고정했다.
“아-하!”
뭔가 짜릿한 쾌감을 느낀 것처럼 스미든이 탄성을 질렀다. 탁자에 기댄 샤흐란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는 앞에서 말이다.
***
김형정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우희승이 커피를 가져다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김형정이 담배를 꺼내 강찬에게 권하고 불을 붙이는 동안 침묵이 흘렀다.
“원장님께서 아비부를 만나실 계획입니다.”
담배 연기가 천장의 환풍구로 회오리쳐서 올라갔다.
“테러 자백과 체포 시 반항으로 인한 폭력이 있었다는 발표를 아비부가 직접 하게 할 생각입니다.”
“아비부가 그걸 그냥 받아들일 리는 없고, 조건은요?”
김형정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 사면입니다.”
강찬의 표정을 본 김형정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과 원장님께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부원장님이 몽골에 가는 것을 두 분은 받아들이지 못하시겠다고. 제게 부원장님을 잘 설득시켜 달라고 하셨습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기현, 송창욱, 그리고 죽어간 대원과 요원들을 팔아서 사건을 무마하는 꼴이었다.
“부원장님. 잠시만 여유를 가지십시오. 일단 아비부가 우리에게 보호를 요청했으니 그는 당분간 한국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강찬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통령님이 사면을 하시면 처벌할 기회가 없어집니다.”
“그렇더라도…….”
“팀장님.”
강찬은 김형정의 말을 잘랐다.
“냉정하게 생각하세요. 테러범과 협상을 하게 되면 모든 게 끝입니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제2, 제3의 아비부가 나옵니다. 우리 요인을 죽인 놈과 협상을 하신다구요? 그것도 테러가 무서워서요?”
강찬은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몽골로 출발하면 바로 공식 발표를 하세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부원장님을 잃은 데다, 집중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아비부가 사용한 그 증거 때문에 제가 체포했는데 체포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은 유감이다, 이 정도면 될 겁니다.”
“부원장님. 그건 아닙니다.”
“그럼 황 원장님요? 송 청장님요? 죽어간 요원들과 대원들은요?”
“그건 저도 피눈물이 날 만큼 억울합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한국의 재외 공관과 해외 거주자는 우선 테러 대상이 됩니다. 부원장님을 잃고도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를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도 비슷하게 갚아주더라도 이번 만은 참으셔야 합니다.”
강찬은 물끄러미 김형정을 보았다.
힘이 없어서 생기는 일이다.
테러에 적응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한번 꺾이면 그다음에도 테러는 계속 일어난다.
때린 것은 잘못한 거 맞다.
그러나 테러의 징후가 보이면 선제공격이라도 감행해야 하는 시점에서 재외 공관과 국민이 다칠까 봐 테러범과 협상을 해?
“후우.”
강찬은 길게 숨을 토해냈다.
“부원장님. 우리는 아직 테러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런 보도가 나가고 강남역쯤에서 폭탄 테러라도 일어나면 우리 국민은 견디질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모든 화살이 부원장님께 달려올 겁니다.”
김형정이 피를 삼키는 느낌으로 꺼낸 조언이었다.
아비부를 두들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개새끼가 끝까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면 과연 어떤 발표를 할 수 있었을까?
증거를 내놓고 국제빌딩 테러의 주범이라고 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순순히 인정했을까?
강찬은 답답한 속을 대신해 담배를 꾹꾹 눌러 껐다.
“솔직히 이건 아닙니다.”
“부원장님. 대통령님과 원장님께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이번만은 따라주십시오.”
강찬과 김형정이 동시에 한숨을 뱉어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하지만 누가, 왜, 이런 정보를 흘렸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던간에 요원들끼리 의심하는 일이 생깁니다.”
김형정이 안도의 숨을 내쉰 것이 곧 답이었다.
“이제 일어나세요. 원래는 약속을 깰까 했는데 이렇게 된 거라면 거기나 가볼까 합니다.”
강찬이 고개를 돌리자 제라르와 최종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한 약속이십니까?”
“스미든이라고 기억하시죠?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답답하기도 하니까 그냥 만나고 올까 해서요.”
“스미든? 공트 자동차 한국 지사장 스미든, 말씀이시죠?”
“예.”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스미든 씨가 부모님께도 만나자고 했었습니다. 출발하시던 날 아침에요.”
김형정이 함께 일어서며 기억이 떠오른 것처럼 말을 뱉어냈다.
“공트 자동차를 넘긴 것이 서운해서 그런다고는 했는데 꼭 만나야 한다고 했다가, 유럽 어디로 가는지 알려달라고까지 했다고 들었습니다.”
강찬은 시선을 돌려 석강호를 돌아보았다.
히죽.
석강호가 재미있다는 투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