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40화 (3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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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많이 힘든 것 같은데?

회의를 마치고 그냥 앉았던 자리에서 저녁을 먹었다.

배달한 음식이었는데 누구도 남기는 사람은 없었다. 이어서 커피를 마셨고,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저는 삼성동 사무실에 가 있겠습니다.”

강찬과 둘이 앉아 있던 김형정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건넸다.

“퇴근은 안 하세요? 집에도 한 번은 다녀오셔야죠.”

“저쪽에 최종일 요원부터 우희승, 이두희도 며칠째 집에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직업을 가졌다면 각오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팀장님이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시는 거니까 상관없겠지만, 가족분들은 외롭지 않을까요? 가장이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면 그럴 수 있잖아요?”

김형정이 커피잔을 보며 히죽 웃었다.이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안식구와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미안합니다. 기념일이나 명절에는 특히 더 그렇긴 한데…….”

김형정이 시선을 들어 창밖을 보았다.

“대한민국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일을 제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를 느낍니다.”

“나중에 자녀분들이 원망하면요?”

강철규처럼 술 먹고 때리지야 않을 거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가족을 외면하다시피 일만 하는 아버지에게 어떤 정이 남아 있을까?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제게 해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김형정이 씁쓸한 미소를 담은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TV를 보던 중이었는데 한국전쟁 이후에 원조품을 하역하는 장면이 나왔었습니다. 천으로 된 옥수숫가루 포대가 배에서 내려오면 바싹 마른 남자들 서넛이 달려들어서 악착같이 끌어안고 싸웠습니다. 그걸 운반해야 동전 한 닢을 받는 거였습니다.”

창밖이 어두워지는 시간이었다.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저게 가장의 모습이라고. 저렇게 악착같이 버텨내서 내 식구 입에 옥수숫가루 죽이라도 넣어주려고 버티는 게 가장이라고.”

이게 가장이 집에 없어서 서운한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강찬이 내심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면서 전 전혀 엉뚱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누군가 저 하역을 관리하고 줄 세워서 차례대로 받을 수 있게 했다면 힘없어서 밀려난 가장도 저녁에 옥수숫가루 한 줌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대꾸여서 강찬은 그냥 듣고만 있었다.

“저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우리가 좀 더 잘 사는 나라였다면 그때 TV에 보였던 가장들의 가족들이 모두 배불리 먹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 자연스럽게 군인이 되었고, 또 이렇게 국가정보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팀장님의 그런 생각을 가족분들도 이해하세요?”

“처음부터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군대에서야 한 달의 절반쯤을 막사에서 살았고, 지금은 이렇게 비상이 많고,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강찬은 픽 하고 웃고 말았다.하긴 당장 석강호만 해도 코앞에 집을 두고 며칠째 사무실에서 먹고 자는 형편인 거다.

“가보겠습니다.”

“예, 고생하세요.”

김형정을 배웅한 강찬은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서 창을 보고 앉았다.

강철규의 삶, 강찬 때문에 전화, TV, 인터넷을 모두 차단하고 집에만 있다가 해외로 나간 강대경과 유혜숙, 비상대기에 하루도 집에 안 들어갔다는 대테러 팀 요원, 그리고 김형정까지.강찬의 삶도 가족의 고통을 담보로 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강찬은 물끄러미 전화기를 보았다.

결정해야 한다.

김미영에게 어떤 답을 줄 건지에 대해.

기다리다 지쳐서 차갑게 받을 수 있지만, 기다리고 있다면 이제는 답을 주어야 할 시기였다.

과연 가정을 제대로 꾸릴 수 있을까?

언제 어디서 쓰러질지 모르는 삶의 한쪽에 김미영을 두어도 되는 걸까?

“뭔 생각을 그렇게 해요?”

그때 걸걸한 석강호의 음성이 강찬을 깨웠다.

“어디 있었냐?”

“담배 사러 다녀왔소.”

석강호가 비닐 봉투를 들어 보였다.

“김 팀장님은 가셨소?”

“응.”

“그 양반도 참.”

석강호가 강찬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집에 안 들어가?”

“어허! 대장 옆에 내가 있어야 하는 거요.”

“왜?”

“예?”

“왜 내 옆에 네가 있어야 하는 거냐고?”

석강호가 음흉한 눈빛으로 웃었다.

“뭐야?”

“생각해 보쇼. 내가 없으면 그 맛있는 커피와 이 담배는 어떻게 할 거요?”

“야! 봉지 커피 타면서.”

“거, 자꾸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면 안 되는 거요.”

이 새끼랑 있으면 이상하게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푸흐흐. 커피 한잔 하실라우?”

“지금 마셨어.”

둘이서 되지도 않는 대화를 나누며 킬킬거린 다음, 강찬은 전화기를 들었다.

신호음이 꼭 세 번 울린 다음이었다.

[“바쁠 텐데 전화할 여유가 있나?”]

그 흔한 ‘여보세요?’ 소리 한 번 없이 바실리의 차가운 말이 건너왔다.

강찬은 아비부를 통해 얻어낸 내용과 가방 속에 있던 OTP, 그리고 프랑스 대사관에서 피에르를 만난 일에 대해 알려 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또 다른 차세대 에너지 발전 시설을 짓는다는 건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는군. 그 정도 시설을 우리 눈을 피해서 준비한다는 것도 그렇고.”]

“일단 그렇게 들었어.”

[“흠. 전화 끊거든 OTP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겠나?”]

“알았어.”

[“내가 양범과 의논해서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 알아보겠다.”]

전화가 또 툭 끊겼다.

에이! 나쁜 새끼!

강찬은 안쪽 사무실에서 OTP 모습을 찍어 바실리에게 전송한 다음, 다시 번호를 뒤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대표님. 강찬입니다.”

[“그래! 강 선배님 바꿔줄까?”]

“천천히요. 지내시기는 어떠세요?”

[“우리보다 한국 쪽이 많이 힘든 것 같던데? 자넨 어때?”]

“저야 잘 있어요. 그런데 오광택이 저래서 대표님이 한동안 못 나오실 것 같은데요?”

김태진의 웃음이 넘어왔다.

[“선배님 모시고 있어서 난 지금 생활에 만족해. 보람도 있고.”]

김태진은 정말 행복해하는 음성이었다.

[“잠깐만, 선배님 오시니까 바꿔드릴게.”]

잠시 틈이 있은 다음이었다.

[“여보세요?”]

강철규의 음성이 건너왔다.

“이쪽 일이 적당히 마무리될 거 같아. 다른 일 없으면 이대로 조용하게 끝날 것도 같고.”

[“알았다.”]

그깟 일로 뭔 전화를 하느냐는 투의 답이었다.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툭.

전화가 끊겼다.

젠장!

***

프랑스의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도착한 강대경과 유혜숙이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 피곤하세요?”

“워낙 좌석이 좋아서 그런지 피곤한 줄 모르겠어요.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덕분에 좋은 구경하는데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내려가는 길이다.

차민정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본능적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로비에 정장 차림의 남자 셋이 기다리고 있다가 강대경과 유혜숙을 감쌌다.

그곳에서 잠시 기다린 다음이었다.

가방을 찾아온 김 대리가 문밖을 가리켰다.

“준비됐습니다. 가시면 됩니다.”

도착한 이후의 일정은 기존에 했던 예약을 취소하고 현지 요원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이것 또한 김 대리가 사전에 알려준 내용이었다.

SF 영화에나 나올법한 공항 건물을 나서자 넓은 인도가 펼쳐졌고, 그곳을 가로지른 곳에 또다시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합차와 승용차다.

강대경과 유혜숙을 승합차로 안내한 김 대리가 차민정과 함께 차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고, 조수석에 있던 김 대리가 차민정에게 무전기와 케이스에 담긴 권총을 건네주었다.

“앞에 탄 이곳 요원들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출국할 때 반납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오후에 호텔에만 계셔도 되겠습니까?”

권총을 보인 것이 미안했는지 김 대리가 고개를 돌려 말을 건넸다.

“괜찮아요. 저, 김 대리, 비행기 편은 확인했나요?”

“예. 내일 바로 출발하는 게 있습니다. 중국을 경유해서 가느라 시간은 좀 걸릴 텐데 그래도 이쪽 편이 가장 빠릅니다.”

“고마워요.”

강대경이 웃으며 답을 하고는 유혜숙을 돌아보았다.

비행기에서 아들과 20분 넘게 수다를 떤 이후로 한결 편안한 얼굴이었다.

“당신 정말 서운하지 않겠어?”

“괜찮아. 유럽에 온 거잖아. 나중에 마무리되면 우리 다 같이 다시 오자. 찬이 결혼한 뒤에, 넷이.”

“그럼 걔들이 불편하지 않겠냐?”

“우리 아들은 아닐 거야.”

두 사람의 대화에 김 대리와 차민정이 함께 웃었다.

“대표님. 삼성동의 김 팀장님께서 협조를 구해놓으셨으니까 이참에 유럽을 둘러보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김 대리가 조심스럽게 건넨 권유를 강대경이 담담하게 거절했다.

“사실 아침에 출발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그런 테러가 있는 줄 알았으면 전날 계획을 취소했어야 하는 거고, 아침에라도 알게 되었을 때 얼른 집으로 갔어야 하는 거지요.”

강대경이 말을 마치자 유혜숙이 손을 뻗어 옆에 앉은 차민정의 손을 살포시 쥐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집에 정이 들지 않아서 많이 힘들어해서, 그래서 이이가 억지로 부탁한 거예요. 짧은 생각에 어차피 온종일 민정 씨와 함께 있는 거라면 외국에 나가도 마찬가지겠지 싶어서.”

“사모님,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저희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유럽을 구경하셔도 됩니다.”

유혜숙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난 벌써 집이 그리워요. 배드민턴도 치고 싶고. 변덕 부려서 미안해요.”

차민정이 안쓰러운 얼굴로 유혜숙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사람에게, 가뜩이나 눈물 많고 정 많은 유혜숙에게 이런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지칠까?

못할 말로 아들 믿고 요원들 좀 무시할 수도 있는 거고, 주변에 힘 좀 쓰고 과시하면서 살아도 되는 위치다. 그런데 아직까지 강대경과 김형정은 김 대리와 차민정에게조차 말을 놓지 않았다.

“민정 씨. 우리 아들 욕먹을 일 같은 건 없나요?”

유혜숙이 불쑥 던진 질문에 강대경과 김 대리가 시선을 주었고, 차민정은 의도를 몰라하는 얼굴이었다.

“자꾸 아들 말이 나왔는데 지금은 어떤지, 혹시나 일하는 분들에게서 나쁜 평을 듣는 건 아닌지…….”

차민정이 지은 미소를 보며 유혜숙이 바로 말을 이었다.

“나한테 듣기 좋은 말만 하지 말고, 혹시 본인도 모르게 실수하는 게 있거나 하면 민정 씨라도 꼭 말해줬으면 싶어요. 아직 어려서 세상일을 잘 모를지도 모르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아쉬운 거 한 가지는 있습니다.”

차민정이 말을 꺼내자 김 대리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쉬셔야 하는데 전혀 그러질 못하세요. 사모님께 연락 드리지 못할 정도로 일이 몰려들어서, 우리 직원들 모두 그 점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고맙다. 이렇게 아들을 위해주는 것이.

그래서 유혜숙은 차민정의 손을 꼭 잡았다.

***

날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시간이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기가 울려서 강찬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보세요?”

[“바실리다.”]

이상하게 이놈과 통화하게 되면 “강찬이다.”하고 대꾸해야 할 것만 같다.

[“OTP 확인한 결과가 나왔다. 그 비밀번호는 우리 잠수함에서 탄도 미사일이나 핵미사일을 발사할 때 사용하는 번호 양식이 맞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말에 잠이 훅 달아났다.

[“현재 우리 잠수함의 항로를 비밀리에 확인하고 있으니 조만간 결과가 나올 거다. 근처에 갔던 잠수함이 나온다면 내가 따로 알려주지.”]

“수고했어.”

지금이겠지?

생각과 동시에 바실리의 전화가 뚝 끊겼다.

이제는 바실리가 전화 끊는 타이밍을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나갔다.

벽을 타고 놓인 간이침대에서 석강호를 비롯해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가 자고 있었고, 저 끝에 제라르가 있었다.

구석에 있는 생수병을 든 강찬은 다시 탁자로 움직였다. 유리창을 통해 허름한 운동복 바지와 면티 차림이 고스란히 비쳤다.

털썩.

자리에 앉은 강찬은 물을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 사는 거 참 별거 없다.

소속이 국가정보원인 남자들과 외인부대 특수팀이었던 외국인이 편한 차림으로 간이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는 거다.

‘저 새끼!’

강찬은 피식 웃으며 제라르를 보았다.

늘 저렇게 한 발을 아래로 떨어트리고 잔다.

강찬이 물을 한모금 더 마셨을 때였다.

부스럭거리면서 제라르가 몸을 일으켰다.

“벌써 일어났습니까?”

“전화가 와서.”

떡 진 머리칼을 손으로 쓱쓱 문댄 제라르가 구석으로 가더니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냄새 좋다.”

“바로 가져갑니다.”

저 새끼! 그러고 보니 손도 안 씻었을 텐데?

제라르가 컵을 들고 몸을 돌릴 때였다.

“어흑.” 하는 소리와 함께 석강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상 신호도 아니고.

석강호의 소리를 시작으로 최종일과 우희승, 이두희가 몸을 일으키고는 순서대로 물을 마시고, 다시 커피를 들고 테이블로 모였다.

“OTP 비밀번호 양식이 러시아에서 사용하는 거란다.”

“예?”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던 석강호가 놀란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비밀리에 잠수함의 항로를 알아본다니까 일단 안쪽 사무실에 있는 놈들에게 말 들어가지 않게 해.”

제라르에게까지 설명한 다음이었다.

석강호가 강찬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은 뭐할 거요?”

“글쎄, 당장 급하게 움직일 일은 없겠는데? 왜?”

“그럼 낮에 집에 좀 다녀오겠소.”

“그래.”

말릴 거 뭐 있겠나?

강찬은 답을 한 후에 커피를 홀랑 털어 넣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바쁘다. 아침도 먹기 전부터.

강찬은 전화기를 들여다본 후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대장, 납니다.”]

“스미든? 오랜만이다?”

[“예.”]

스미든이란 말에 석강호와 제라르가 강찬을 바라보았다.

[“대장. 오늘 바쁩니까?”]

“아니. 아직 약속은 없어. 왜?”

[“오늘 좀 만날까 하구요.”]

강찬은 석강호에게 시선을 주었다.

“너 어제 많이 마셨어?”

[“아닙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그냥 대장 만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피식 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언제 볼래?”

[“점심 같이 먹어도 됩니까?”]

“그러자. 마침 제라르도 와 있으니까 함께 나가면 되겠다. 어디서 볼까?”

[“전에 만났던 커피 전문점에서 뵙지요.”]

“전에 어디서 봤었는데? 잘 모르겠으니까 장소를 확실히 말해.”

[“사거리에 있는 커피 전문점, 거기에서 뵙죠.”]

“알았다. 또 여자 주렁주렁 달고 나올 거면 다음에 보고.”

[“이번엔 절대 아닙니다. 그럼 11시 30분에 그리 나갈게요.”]

“그래.”

전화를 끊은 강찬은 먼저 프랑스말로 제라르에게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이 새끼, 제대로 한국말을 쓰는데?”

“점심 같이 먹을 거요?”

“응. 왜?”

“나도 거기나 갈까 해서 그렇소.”

강찬은 먼저 픽 하고 웃었다.

“그러지 말고 집에 다녀와. 너도 벌써 며칠째냐? 빤히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건데.”

“봐서요. 우선 씻고 오겠소.”

석강호가 자리를 뜬 다음이다.

“스미든, 그 새끼 요즘은 좀 사람 같습니까?”

제라르가 강찬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뭐 안 좋은 일 있었냐?”

“작전 몇 번 함께 뛰는 동안 무지하게 뺀질거렸던 것만 기억납니다. 여자 더럽게 밝히고.”

제라르가 재수 없다는 투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때 한 번인가 죽여버리려고 했다가 대장 때문에 참은 적도 있는데요.”

“봐줘라. 몸뚱이 망가진 이후로 애새끼가 이상하게 약해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안쓰럽기도 하다.”

“그렇다는 겁니다. 변했다고 하지만 그 새끼 뺀질거리고 얍삽했던 거 생각하면 별로 그럴 것 같지도 않아서요.”

말을 마친 제라르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점심 먹으러 같이 갈 거지?”

“가야죠. 대신 주문은 내가 합니다.”

아차!

강찬은 혼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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