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38화 (338/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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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긴박하거든.

유리 너머에서 아비부가 들것에 실려 가는 것을 보며, 강찬은 전화기를 꺼냈다.

느닷없이 발생한 테러로 뒤로 밀리기는 했지만, 라노크가 로리암의 지하로 가는 것만은 막아볼 생각이었다.

거기에 안느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다음이었다.

[“알루?”]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왔다.

“안느?”

[“부총국장님. 안느입니다.”]

“불편하게 왜 그래? 그리고 난 이미 그만두겠다고 했다.”

[“아직 처리가 안 됐어요.”]

“우리끼리 불편하게 지내지는 말자. 지난번에도 내가 말했었잖아.”

안느는 답이 없었다.

면담이 있어서, 혹은 다른 바쁜 일 때문에 대신 받았나 했던 강찬은 갑자기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안느?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혹시 대사님께 일이 생겼나?”

[“차니. 미안하지만 지금 대사관으로 와 줄 수 있어?”]

“알았다. 바로 갈게.”

전화를 끊은 강찬은 가장 먼저 최종일을 찾았다.

그다음, 차에 두었던 셔츠를 갈아입었고, 이두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바로 대사관으로 향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로망이 허튼짓을 한 건가?

가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대사관은 여전히 606 대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강찬을 본 대원들이 고개를 짧게 숙이는 것으로 그들만의 존경과 친근함을 표시했다.

“무슈 강, 이쪽으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던 라파엘을 보았을 때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무언가 대사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강찬은 잠자코 안으로 들어갔다.

2층 집무실이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인 사람은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키는 안느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뵙습니다. 부총국장님.”

책상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네는 남자는 정보국 니아플르 책임자 피에르였다.

뭐지? 왜……?

“피에르, 당신이 왜 거기 앉아 있지?”

“제가 새로 한국에 온 주한 프랑스 대사입니다.”

강찬은 꼼짝 않고 서서 피에르를 노려보았다.

똑똑똑.

라파엘이 홍차를 가져오지 않았다면 좀 더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앉아서 말씀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강찬은 먼저 안느에게 시선을 주었고, 다음으로 문 앞에 서 있는 루이를 보았다.

안느가 위협 속에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부총국장님.”

강찬은 다시 피에르에게 시선을 주었다.

“지금은 그냥 이름을 불러.”

“알겠습니다, 무슈 강.”

다른 것은 몰라도 피에르가 강찬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만은 일단 분명했다.

라파엘이 방을 나선 뒤에야 강찬은 테이블로 움직여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된 거지?”

“총국장이 저를 이 자리에 앉혔습니다.”

“대사님은?”

“로리암에 계십니다.”

담배를 향해 손을 뻗던 강찬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다시 말해봐, 피에르.”

“로리암의 지하에 계십니다.”

두 번씩이나 같은 말을 들었고, 안느가 손으로 입을 가리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더는 들은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샤흐란을 만나기 위해 갔었던 그 살벌한 로리암의 지하 감옥에 라노크가 갇혀 있다는 것이.

“로망이 지시한 일이지?”

“로리암은 완벽하게 정보총국이 관리합니다.”

“피에르, 경고하는데 내 앞에서 대사님 문제를 가지고 말장난하지 마라. 로망이 지시한 일인가?”

“그렇습니다, 무슈 강.”

강찬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흘 정도는 여유가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달려와 아비부에게서 들었던 말을 전하고 로망을 어떻게 할지를 의논하려고 했었다.

바실리에게 들었었던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급하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막상 일이 벌어진 것을 확인하게 되자 독이 바짝 올랐다.

“피에르. 안느와 루이, 라파엘은 내가 데리고 가겠다.”

“그건 어렵습니다.”

피식.

“오해하시지 않았으면 싶습니다. 지금 안느와 루이, 라파엘이 대사관을 떠나면 대사님이 정말 위험해지셔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강찬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피에르를 노려보았다.

“총국장은 저를 통해서 부총국장님과 협상을 원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안느와 루이, 라파엘이 대사관을 나가는 것은 총국장의 경계만 높여주는 꼴이 됩니다.”

테이블의 대각선 앞에서 안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급하게 가신 거지?”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프랑스 정보총국이 언론에 무슈 강을 공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찬의 표정을 살핀 피에르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국제빌딩 테러 당시 UIS가 방송했던 협박 동영상은 원래 5분 정도의 분량이었습니다.”

“어제 있었던 그 영상?”

“그렇습니다. 그 분량 안에 무슈 강의 얼굴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동영상, 아프리카에서의 UN기지 자료 사진과 쿠드스 사살 현장, 그 외에 리비아 작전 지역의 사진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비부! 이 개새끼!

털어놓지 않은 죄가 하나 더 있었던 거다.

“정보국 사이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UIS는 그 짓을 벌여서라도 무슈 강을 묶으려 했었고, 대사님이 그걸 막으신 겁니다.”

“후!”

매번 이렇게 얻어맞고 복수하는 것이 지겨워서 이제 강한 대한민국과 정보국을 만들어보겠다고 설치고 다녔었던 건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세계는 끝없이 주변을 잃어가며 사는 건가?”

강찬은 혼잣말처럼 말을 뱉어냈다.

강대경과 유혜숙은 해외로 떠났고, 라노크는 로리암의 지하에 갇혔다.

최성곤, 황기현과 송창욱도 있다.

정말 죽어라 달렸다.

김관식이 농담처럼 권유했음에도 아직 김미영에겐 전화 한 통 못하고 뛰어다녔는데,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차니.”

그때 안느가 강찬을 불렀다.

“아버지가…….”

강찬은 덤덤하게 안느를 보았다.

“프랑스를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누군가 후계자가 나온다면 차니가 꼭 지켜달라고, 그렇게 부탁하셨어.”

빌어먹을.라노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바실리는 다윗의 별을 잡기 위해 로리암을 택했다고 하고, 피에르는 강찬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강찬은 피에르를 보았다.

“피에르. 안느의 안전을 지킬 자신이 있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슈 강.”

강찬은 고개를 돌려서 루이를 보았다.

“루이. 대사관 요원 중에 바뀐 직원이 있어?”

“없습니다, 무슈 강.”

“안느를 부탁한다.”

“맡겨주십시오.”

루이가 고개를 숙이며 답을 했다.

***

청와대의 산책로를 걷던 문재현이 걸음을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아비부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습니까?”

”계산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제빌딩 테러는 증거품이 확실해서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황기현 전 원장이나 송창욱 청장 건은 진술뿐이라서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문재현이 쓰게 웃었다.

그냥 한 진술이 아니라 고건우가 놀라서 달려왔을 정도로 구타가 있었다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두들겼길래 의료팀이 겨우 생명을 구했다는 보고를 한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사실 국제빌딩의 테러만으로도 국민 정서상 아비부를 놓아주기는 어렵습니다. 이 문제는 좀 더 고민을 하기로 하지요.”

“예.”

고건우가 무거운 얼굴로 답을 했다.

“다른 일은 어떻습니까?”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미사일 발사 OTP 장치를 얻었으니 엄청난 성과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하나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흠.”

두 사람의 앞으로 청와대가 어깨를 벌린 것처럼 서 있었다.

“부원장에게 너무 많은 짐이 지워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에게 국가정보원의 전권을 주기도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경력, 나이, 파벌, 야당이나 국민의 시선을 감안할 때 부원장에게 국가정보원을 맡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과격한 성격도 문제가 될 겁니다.”

고건우의 대꾸가 있고 나서 두 사람이 비슷하게 웃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원장께서 잘 지켜주셔야지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후임자는 알아보고 계십니까?”

문재현이 뭔 소리냐는 눈으로 고건우를 보았다.

“대통령님. 저는 국가정보원의 수장이 될 그릇이 아닙니다. 부원장이 아비부를 상대하는 것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고건우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까지 젓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일한다는 말뜻을 지금처럼 확실하게 느낀 적이 없습니다. CCTV 기록을 보셨겠지만, 국제빌딩 로비에서 몸을 던지는 요원들과 대원들을 볼 때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리던지.”

그 장면을 떠올린 것처럼 고건우는 긴장한 기색을 띄웠다. 평생을 행정가로 살던 사람이 느닷없이 그런 작전 한가운데 떨어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대통령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당분간은 부원장을 대신하는 원장이라고 생각하고 가능한 한 그의 뜻을 따를 생각입니다.”

“과격한 성격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런 부분을 조절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외에 행정적인 문제라는가, 파벌 문제 등 조율해야 할 부분도 아직 남았습니다.”

문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성의 토지는 매입이 끝났습니다. 도로 공사도 시작했고, 앞으로 1년, 꼭 1년만 견뎌내면 우리가 원하는 그림이 어느 정도 완성됩니다. 그때까지만 고생합시다.”

“대통령님은 다음 정권이 이 일을 지금처럼 단호하게 밀고 나갈 거라 믿으십니까?”

고건우의 질문에 문재현이 시선을 주었다.

“다음 정권은 모릅니다.”

그리고는 다시 청와대를 바라보았다.

“나는 우리 국민을 믿습니다. 그동안 그토록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음에도 오늘 같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능력과 근성이 있는 분들입니다.”

고건우의 시선 앞에서 문재현은 단단한 각오를 올린 얼굴이었다.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을 세계 초강대국으로 만들 능력이 있는 분들이고, 또 그런 나라에서 살 권리가 있는 분들입니다.”

고건우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청와대를 보았다.

‘국가정보원장을 계속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

증평의 막사 앞에 버스가 멈췄다.

치이익.

문이 열리고 차동균을 시작으로 대원들이 내리고 있을 때 바로 앞 막사의 문이 열렸다.

“부대 차렷!”

차동균의 명령에 대원들이 일제히 자세를 갖추는 순간이었다.

“뭐하냐?”

인상을 있는 대로 써가며 박철수가 차동균을 노려보았다.

“빨리 팔 좀 잡아!”

부관이 왼팔을 잡고 있었는데도 박철수는 막사의 문에 끼인 사람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차동균이 혼자서 잽싸게 경례를 하고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박철수의 오른팔을 잡아주던 차동균의 표정이 곧바로 어두워졌다.

“대위 되더니 간이 부었나? 장군이 팔 좀 부축하랬다고 인상을 써?”

“왜 이런 몸으로 움직이십니까?”

“배에 구멍 나서도 작전에 나갔었던 네가 그게 할 소리냐?”

박철수는 아직 혈색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거기에 가슴에 붕대를 두툼하게 감고 있어서 한눈에도 이런 외출을 감당할 상태가 아니었다.

대원들이 주르륵 달려들어서 그대로 뜨다시피 박철수를 들었다. 막사 아래로 조심조심 움직이는 동안 부관이 휠체어를 가져왔다.

다 같이 박철수를 휠체어에 앉혔고, 부관이 담요로 박철수의 몸을 감아주었다.

“차동균.”

“대위, 차동균.”

박철수가 힘없는 얼굴에 웃음을 올렸다.

“장군이 되니까 좋은 게 있더라.”

“진급을 축하드립니다.”

“그래. 덕분에 이렇게 도망 나올 수도 있고, 네놈들을 위한 선물도 살 수 있고.”

박철수가 아픈 와중에도 짓궂게 웃었다.

“한우를 사 왔다. 내 진급 턱이니까 오늘은 마음껏 먹자.”

“정말 무단 외출하신 겁니까?”

“왜? 한 번 해볼래?”

차동균이 부관을 슬쩍 보았다.

박철수는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농담은 또 이전의 그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두 달 뒤에나 돌아올 거 같다.”

그때 박철수가 진지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난 좀 편하게 지낼 생각이다. 행정적인 면 지원하고 가끔 소고기나 조달하는 정도.”

대원들이 장비를 다 내리자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금부터 이 부대는 네가 이끌어.”

차동균이 뭐라 입을 열기 어려울 정도로 박철수는 단호하고 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원, 장비, 필요한 건 모두 부관에게 말해둬라.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받아오마. 대신 아프리카에서도 살아오고, 어제 같은 테러에서도 살아오는 그런 부대. 우리가 나섰다는 말만 들어도 테러범들이 오금이 저릴 그런 강한 부대를 만들어라.”

말을 마친 박철수가 천천히 시선을 돌려 모형도시로 향하는 길을 보았다.

“별을 달고 나니까 알겠다. 최성곤 장군님께서 왜 이 막사를 떠나지 못하셨는지.”

모형도시로 향하는 길에 시선을 주었지만, 차동균은 박철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별을 달아야 이해한다고 했으니 어쩌면 차동균은 영영 이해하지 못할 말일지도 모른다.

***

대사관에서 나온 강찬은 건물로 돌아가는 길에 김 대리에게 전화를 넣었다.

[“여보세요?”]

“나야. 아버지와 어머니 전화기가 꺼져 있어서.”

[“예, 부원장님.”]

김 대리가 나직한 음성으로 답을 했다.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상황도 이런데.”

[“며칠 전에 계획하셨던 일입니다. 예약도 이미 해놓은 상태였고, 전날 밤의 상황도 모르고 계셨습니다. 아침에 공항에서 테러에 대해 아셨는데 의논 끝에 일단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전날 밤의 상황을 모르셨다고?”

[“전화, TV, 인터넷까지 모두 꺼두셨었습니다. 그래서 외부 사항을 전혀 모르고 계셨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부원장님 기사가 프랑스 쪽에서 흘러들어온 뒤로 주변 전화에 시달리시기도 했고…….”]

“후우.”

강찬은 해외여행을 떠난 두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외부와 연락을 모두 끊고 집에만 있으면 그건 보호가 아니라 감금과 다를 바 없는 일인 거다.

차라리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하루든, 이틀이든 속 시원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지금 옆에 계셔?”

[“두 분은 일등석으로 업그레이드 해 드렸습니다. 바꿔 드릴까요?”]

“그럴 수 있어?”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기내에서 들리는 소음, 김 대리가 승무원에게 내용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들린 다음이었다.

[“여보세요?”]

강대경의 음성이 들렸다.

“아버지. 이거 반칙이에요.”

최종일이 힐끔 돌아봤다가 얼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엄마하고 신혼여행 제대로 가는 거야.”]

옆에서 ‘찬이에요?’ 하는 유혜숙의 음성도 들렸다.

일부러 투정처럼 말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죄송해요.”

[“무슨 소리냐?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우리 걱정하지 말라고 가는 여행이다. 그런데 엄마랑 같이 비행기 타고 외국 나가는 거, 생각보다 기분 좋다.”]

강찬은 “예.” 하는 답만 했다.

[“엄마 바꿔주마. 잠시만.”]

강찬이 유혜숙을 떠올린 순간이었다.

[“아들!”]

유혜숙의 반가운 음성이 불쑥 달려들었다.

“어머니.”

[“어디야? 밥은 먹었어? 다친 곳은 없고?”]

안쓰럽고, 미안한 가운데 웃음도 나왔다.

“저는 잘 있어요. 죄송해요. 제대로 연락도 못 드리고.”

[“바빴잖아. 아버지가 일할 때는 다른 곳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면서.”]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예상보다 유혜숙의 음성이 밝게 느껴져서였다.

“필요하신 건 없으세요?”

[“그런 거 없으니까 우리 걱정하지 말고 밥 거르지 마.”]

“그럴게요.”

[“아들.”]

“예.”

유혜숙이 불렀고, 강찬이 답을 했다.

[“아빠하고 엄마하고 결혼할 때부터 꼭 해보기로 했었던 여행이야. 기회가 되어서 가는 거니까 마음 불편해하지 마. 알았지?”]

연습했구나!

강찬은 이제야 유혜숙의 목소리가 이렇게 명랑하게 나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행이 싫지는 않지만, 그래도 강찬과 통화하게 되면 이런 식으로 대답하자고 연습했었던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평소와 다르게 책 읽는 듯한 말투가 그랬다.

“동생 기대해도 되는 거예요?”

[“얘는! 징그럽게!”]

최종일이 힐끔 보았는데 상관없었다.

유혜숙과 함께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30분쯤 통화했나 보다.

사무실에 도착해서야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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