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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피할 수 없을 거다.
“46층으로 내려가 주십시오.”
“그만합시다!”
차동균의 지시에 남자 한 명이 거칠게 나섰다.
검은색 군복과 소총에 놀랐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래로 내려올수록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더니 47층에서는 반항하는 기색을 보였다.
“위는 문제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우리를 못 돌아가게 합니까?”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동조를 구했다.서른 중반에 제법 체구가 컸다.
“건물 전체를 점검할 때까지 기존의 점검지에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퇴근하시던가 아니면 아래로 내려가 주십시오.”
“아 이, 씨이…….”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끝을 흐리기는 했지만 사내는 분명하게 ‘발’까지 내뱉었다.
당황한 눈치였다.
그런데도 주변의 시선 때문에 사내는 물러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차동균을 노려볼 때였다.
치잇. “강찬입니다. 옥상에 도착합니다.”
뜻밖의 무전이 차동균과 곽철호, 그리고 대원들의 귀에 들려왔다.
치잇. “알겠습니다. 상황실. 48층까지 방화벽 올려.”
치잇. “방화벽 제거합니다.”
차동균은 갑자기 어깨에 올려져 있던 짐이 반쯤 내려간 느낌이었다.
치잇. “팀장님. 위쪽에 사람들이 왜 철수하지 않은 건가요? 일단 그쪽 조명부터 빨리 끄세요.”
치잇. “코트라와 연관기관 직원들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틀 뒤에 있을 행사 준비 중이라고 국가정보원 대외협력국에서 버티는 바람에 당장 철수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잠시 멈칫한 다음이었다.
창밖으로 헬리콥터의 요란한 조명과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
치잇. “대외협력국과는 제가 말할게요. 위험하니까 일단 조명부터 내리세요.”
치잇. “알겠습니다. 상황실. 47층도 소등해.”
치잇. “방화벽 작동 후 소등하겠습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사람들이 차동균과 대원들을 따라 창밖의 헬리콥터를 살필 때였다.
측측측측측측측측.
규칙적인 벨트 소리와 함께 방화벽이 올라갔다.
***
아비부가 아쉬운 얼굴로 헬리콥터를 보았다.
“애송이……!”
지금껏 기다리던 강찬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순간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이대로 두 개 층만 더 내려가면 되는 거였다.
그곳에서 멋진 그림을 완성한 뒤에 나타나 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비부는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국제빌딩을 노려보았다. 헬리콥터가 커다랗게 돌아서 옥상에 내려앉고 있었다.
애송이가 과연 어떤 조치를 내릴까?
무전을 듣기는 하지만, 강찬이 어떤 조치를 내릴지 짐작하는 건 쉽지 않다.
뭐라고 해도 테러는 민간인의 희생이 많을수록 성공한 것이다. 전원을 내리기 전에, 한 명이라도 구출하기 전에 작전을 감행하는 것이 좋았다.
아비부는 손을 뻗어 장비의 버튼을 눌렀다.
띠루룩. “전사들 출발하도록.”
띠루룩. [“알라 후 아크바르(????????)!”]
띠루룩. “타그비르(????????).”
최후의 각오를 담은 말들이 다시 한 번 오갔다.
이제부터 국제빌딩은 아비부의 통제에 들어올 것이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고꾸라질 것이다.
***
악쓰던 사내를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위로 올라가는 방화벽으로 향했다.
“연락 온 거 맞지요? 그럼 올라가도 됩니까?”
사내가 차동균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었다.
터엉.
차단기가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47층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남자들이 두리번거렸고, 여자들의 짧은 비명도 나왔다. 계단 아래 비상구 표시등과 옆 건물에서 던진 조명에 의지해야 할 만큼 계단이 어두웠다.
“뭐하는 거야!”
“그러지 말고 내려가자.”
보다 못한 동료가 나섰다.
“놔봐! 이게 무슨! 우리가 죄지었어? 테러범이야? 니미, 서울 한복판에서 폭탄 펑펑 터져서 국가정보원장 죽어 나갈 때는 대가리 꼭꼭 숨기고 있다가!”
건물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사내가 악을 썼다.
“난 못 내려가니까 수색 책임자 불러!”
사내가 동료의 팔을 뿌리치고 차동균 앞으로 나섰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내가 틀린 말 했어!”
사내의 얼굴이 붉게 올라와 있었다.
“협조해주십시오.”
차동균이 나직하게 다시 입을 연 직후였다.
“당신 상관 부르라고 했잖아!”
사내가 재차 악을 썼다.
차동균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화를 내면 정말 웃기는 거다.
마음 같으면 조용한 곳에서 딱 20초만 단둘이 있었으면 싶기는 했다.
“그만해! 왜 이래!”
동료들이 막아섰다.
“놔 봐! 놓으라니까! 우리가 뭐 잘못했어!”
한바탕 쇼가 펼쳐질 때였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위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고, 차동균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위를 보았다.
“뭐해?”
강찬이었다.
석강호, 제라르, 최종일과 함께 강찬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헬멧에 복면을 하고 있어서 눈만 보였다.
철컥. 철컥.
그런데도 강찬이 걸어오자 악을 쓰던 남자가 마른 침을 삼켰다.
하긴.
지금처럼 본능이 주는 경고에 눈빛이 빛날 때는 석강호나 제라르도 함부로 대꾸하지 못하긴 하니까.
강찬이 날카롭게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문제가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남자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강찬도 그렇지만, 번들거리는 석강호와 제라르의 눈빛을 보자 완벽하게 기가 죽은 느낌이었다.
“저분들 빨리 내려보내.”
강찬이 차동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국제 호텔의 객실.
침대 위에 AK 소총과 권총, 탄창, 수류탄, 심지어 RPG까지 올려져 있었다.
헐렁한 황색 군복에 팔뚝과 정강이를 천으로 감았고, 얼굴을 검은색 두건으로 가렸다.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반달처럼 휜 탄창을 꽂은 사내가 소총을 오른쪽에 든 채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는 곧바로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띠루룩.
“우리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우리의 위대한 자유와 평화를 선포하기 위해 나섰다. 오늘 성전에서 흘린 피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지옥을 면하여 천국에 거할 것이며! 홍옥 왕관을 머리에 쓰고! 72명의 처녀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
듣고 있던 남자들의 눈빛이 두건 사이에서 번쩍였다.
“다하나 루치부(????????, 가자)!
와라락! 와락!
복면의 사내들이 뛰어나가는 순간, 같은 층의 방에서 비슷한 복장의 남자들이 뛰쳐나왔다.
“꺄아악!”
여자 투숙객의 놀란 비명이 신호처럼 들렸다.
***
띠루룩. “전사들이 출발했습니다.”
띠루룩. “1층을 점거해야 이긴다. 인질을 끌고 올 동안, 그들을 지켜라.”
띠루룩. “알겠습니다.”
아비부가 상체를 바싹 세우는 순간이었다.
쿠웅. 쿠우웅. 쿠웅. 쿠우웅.
묵직한 폭발음과 동시에, 국제빌딩의 로비와 45층에서 눈부신 광채가 튀어나왔다.
***
콰응! 콰으응! 콰응! 콰으응!
지하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와 비상계단에서 엄청난 파편이 튀었다.
김형정은 귀가 찢어질 것처럼 커다란 폭발음이 터진 직후에 몸이 붕 떴다.
철퍼덕! 털썩! 털썩! 털썩!
그뿐만 아니라 무장한 요원 셋도 모두 입구를 향해 던져진 것처럼 처박혔다.
***
투두둑! 투두두두둑! 투두둑! 투두둑!
구경하던 사람들이 머리를 감싸고, 도로를 향해 달려나갔다.
치잇. “사격해!”
누가 내린 지시인지 몰랐다.
그러나 사격 명령이 내려진 것만은 분명했다.
치잇. “외곽 저지선 지켜! 절대로 건물 밖으로 못 나오게 해!”
이제 알겠다.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장의 명령이다.
타다다당! 타다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다당!
적들은 연결 통로를 통해 국제빌딩 로비로 바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현관을 나서려다 다시 들어갔다.
투두둑! 털썩! 투두두둑! 털썩!
타다당! 타다당! 타다다다당!
대원들이 바닥에 쓰러졌다.
교전 덕분에 적들이 현관을 나오지는 못했다.
35여단 대원들이 아니었다면!
훈련된 대로, 목숨 걸고 외곽을 버텨내지 못했다면, 구경하던 사람들, 지금 엎어져서 버둥거리는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
사람들은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강찬이 악을 쓰고 석강호가 눈을 부라리자 그때야 후들거리는 몸을 움직여 47층의 사무실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대원 한 명 남기고, 아래로 내려가서 통로 확보해.”
강찬의 지시에 차동균과 대원들이 우르르 밑으로 달려갔다.
치잇. “상황실 보고해!”
치잇. “지하 1층과 45층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다급하게 날아온 무전이었다.
치잇. “무장 괴한이 1층 로비를 점거했습니다! 대략 50명 정도 됩니다!”
염병할!
위쪽에서 상황보고를 받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
치잇. “국제 호텔 직원과 투숙객을 인질로 데려왔습니다. 숫자를 파악 중입니다!”
강찬이 이를 악물었을 때였다.
치잇. “45층 통로 확보했습니다.”
차동균의 무전이 들렸다.
와라락!
강찬이 달려나갔고, 석강호와 제라르, 최종일이 그 뒤를 따랐다.
***
투두두둑! 투둑! 투두두둑! 투두둑!
푸슝! 푸슈슝! 퓨슝! 푸슝!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요원은 쓰러진 김형정과 세 명의 대원을 옮기고, 2층의 계단을 악착같이 사수하고 있었다.
푸슝! 푸슝! 푸슈슝!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고 요원 둘이 방아쇠를 당긴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융!
하얀 연기가 계단을 파고들었다.
“미사일! 피해!”
콰으으으응!
사격을 하던 요원 둘이 허공에 붕 떴다.
그리고 계단 아래로 떨어졌다.
투두둑! 투둑! 투두둑! 투두두둑! 투두두둑!
두 요원을 향해 AK 소총이 집중되었다.
***
치잇. “적은 소형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 반복한다! 적은 휴대용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
김형정의 보고와 함께 소총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치잇. “606! 상황 보고해!”
치잇. “지하 1층 입구입니다! 승합차 4대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정원민이 빠르게 보고했다.
치잇. “경계 섰던 대원 둘 사망, 부상 셋입니다.”
지하주차장 안쪽 벽으로 피범벅인 대원 다섯이 누워있었다.
치잇. “적이 1층을 점거했다.”
강찬의 설명이 아니어도 정원민 역시 그동안의 상황을 무전으로 모두 듣고 있었다.
치잇. “지하 통로 확보하고, 대기해!”
치잇. “알겠습니다!”
정원민이 검지와 중지를 벌려 앞을 가리켰다.
와다닥!
대원 넷이 날렵하게 계단으로 움직였다.
***
수행원이 무전에서 나오는 지시와 답을 아비부에게 전했다.
아비부가 손을 뻗었다.
띠루룩. “지하에 있는 계단을 확보하려는 모양이다. 적당한 기회를 봐서 공격해라.”
띠루룩. “알겠습니다.”
아비부가 만족한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
날다시피 뛰어 내려가는 길이다.
와락! 와라락! 와락!
부서진 계단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느라 시간이 걸린 것을 만회하기 위해 강찬과 대원들은 계단을 서너 칸씩 뛰어 내려갔다.
그런데도 아직 15층가량 남아 있었다.
치잇. “김형정입니다. 요원들과 2층에 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나가는 도중에 김형정에게서 무전이 들어왔다.
고통을 이겨내는 음성이었다.
치잇. “1분 안에 도착합니다.”
비상등에 의지해 달려 내려가는 길이다.
발걸음 소리, 철컥이는 소총 소리, 그리고 가쁜 숨소리가 들려오는 전부였다.
와다닥! 와닥! 와다닥!
7층에서 6층으로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쿠으응! 쿠응!
강찬은 세차게 벽에 부딪혔다.
귓속을 찢긴 것처럼 끔찍한 통증이 곧바로 몰아쳤다.
치잇. “지하 1층입니다! 적이 던진 가방이 폭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쪽 카메라가 나가서 지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상황실에서 보낸 무전이었다.
와락!
강찬은 이를 악물고 아래로 달려갔다.
치잇. “606이다. 계단에 폭발!”
곧바로 정원민의 무전이 들렸다.
투두둑! 투둑! 투두둑!
푸슝! 푸슝! 푸슈슝! 푸슝!
무전을 통해서, 계단을 타고서, 소총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치잇. “606! 소형 미사일 대비하고 지하를 지켜!”
치잇. “알았습니다.”
달리면서 주고받은 무전이었다.
“허억! 허억!”
두 번을 더 돌아내려 가자 아래에서 대테러 팀이 보였다.
***
두두두두두두두두!
국제빌딩 상공에 군용 헬기가 떠돌았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다른 나라의 기자들이 국제빌딩을 배경으로 보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김관식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옆에 김미영과 김관식의 부인도 앉아 있었다.
“폭발은 국제빌딩 옥상으로 헬리콥터가 도착한 직후에 벌어졌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국제빌딩 1층을 무장 세력이 점거했습니다.”
아나운서가 오늘 국제빌딩에서 일어난 일들을 시간대별로 빠르게 전해주었다.
“현재 1층 로비에 인질 10여명이 억류되어 있고,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45층 위쪽에 코트라와 연관 기관의 직원 70여 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가족과 연락한 분들의 말에 따르면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때였다.
폭발음과 함께 화면이 커다랗게 흔들리며 기자가 앞으로 몸을 숙였다.
“아!”
기자의 놀란 소리와 주변에서 터져 나온 비명이 TV를 통해 고스란히 들렸다.
“폭발입니다! 방금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화면이 흔들리며 건물을 보여주었고, 곧바로 로비 쪽을 가깝게 당겼다.
“지하에서 터진 폭발로 보입니다.”
조명이 꺼진 국제 빌딩 입구에서 연기가 피어나왔고, 둔탁한 총소리와 함께 불꽃이 번쩍였다.
“교전이 벌어진 모양입니다.”
화면이 확 바뀌었다.
건물을 향해 총을 겨눈 대원들의 모습이 나왔다.
“지금 보시는 대원은 35여단 소속 대원들입니다. 안으로 606 특임대,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헬리콥터로 내려간 인물이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장이란 소식이 있는데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강찬이구나!’
김관식은 입술을 꾹 다문 채로 TV를 보았다.
그가 김미영에게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화면이 확 바뀌어 스튜디오에 대기하던 아나운서가 나왔다.
“카메라를 잠시 스튜디어로 옮겼습니다. 현재 알아지라 방송에서 이번 테러를 주도했다고 주장하는 UIS의 발표를 보도한다는 소식입니다. 동시통역을 통해 화면을 우선 보시겠습니다.”
화질이 떨어지는 화면이 불쑥 올라왔다.
검은 복면을 쓴 사내가 책상에 앉아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가 입을 열자 한국어 통역이 그의 말을 건조한 말투로 전해주었다.
“우리는 우리를 모욕한 한국에 우리는 한국에 경고한다.”
화면의 위쪽과 아래쪽 구석에 알아보기 어려운 아랍어가 잔뜩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프리카에서, 리비아에서 우리를 모욕했던 한국이 모든 죄를 인정하고 우리에게 사과할 때까지 한국은 우리의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화면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