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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해결하시겠습니까?
중국을 떠난 직후에 전화기가 울었다.
통화 버튼을 누른 강찬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창밖을 보았다.
[“그렇게 해서 찾았을 때 국제빌딩이 가장 유력하게 걸렸습니다.”]
강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보세요? 부원장님! 듣고 계십니까?”]
“예. 저기, 아비부가 언제 출국하죠?”
김형정이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흘 뒤에 출발입니다.”]
“파크 호텔에서 국제 빌딩이 보이나요?”
[“중간에 걸리는 게 없어서 바로 보입니다.”]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좌표가 하루 사이에 두 개나 나와?
이건 의심스럽다.
아비부, 이 개새끼가 눈앞에서 폭죽을 터트리려고 했다는 거지?
이건 어쩐지 납득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리고 미칠 것처럼 화가 치민다.
그 개새끼의 눈빛을 생각하면 말이다.
“팀장님. 2시간 정도 뒤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제가 공항으로 나가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증평의 특수팀과 606 특임대대, 35여단에 비상령 내려주세요. 거기에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전원 완전 무장 상태로 출동시켜주시구요.”
석강호와 최종일이 놀라서 고개를 돌렸고, 제라르가 의아한 눈으로 세 사람을 살폈다.
[“606 특임대와 35여단은 원장님의 허가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보고 드리고 조치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강찬은 전화를 내려놓고 다시 두 번에 걸쳐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이 짓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지, 제라르에게 한국말을 가르칠까 싶을 정도였다.
“어쩌실 거요?”
“일단 국제 빌딩 점검해야지. 몰랐으면 모를까, 이렇게 된 거라면 밤에라도 뒤져볼 참이다.”
“그럼 얼른 한숨 자 두쇼. 지금 자도 두 시간은 잘 거요.”
“그러자. 먼저 자라. 난 김 팀장님과 통화하고 잘 테니까.”
강찬이 설명하자 제라르까지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혔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잔다.
최종일 역시 이런 상황에 제법 잘 적응하고 있었다.
***
김형정은 내곡동 본관 건물로 움직였다.
고건우는 타고난 행정가답게 업무를 파악하는 동안 집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흠. 이게 강찬 부원장이 요구했던 사항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고건우는 이런 경우를 처음 겪는다.
그는 다시 한 번 두 장짜리 서류를 날카롭게 살폈다.
“김 팀장. 지난주에 중동 지역에서 작전에 사용한 특별업무비가 모두 23억입니다. 피 같은 국민의 세금을 23억이나 들여서 얻어낸 자료가 확신할 수 없는 좌표 두 개인 겁니다.”
빛나는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고건우는 지친 기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이제 겨우 긴장이 풀어지는 단계에서 자칫하면 없어도 될 공포심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까? 그것도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김형정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질책이 아니라 사태를 냉정하고 살피고 있음을
“원장님. 과도한 조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 빌딩에서 일어날 수 있는 테러와 전쟁을 막는 일입니다. 정보의 가능성을 따지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요원들과 대원들이 직접 확인하는 게 옳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게 강찬 부원장의 판단입니까, 아니면 우리 김 팀장의 생각입니까?”
고건우가 김형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부원장님의 뜻에 제가 따르는 겁니다.”
고건우의 입 끝이 웃음을 붙드는 것처럼 묘하게 움직였다.
짧은 침묵이 스쳐 지나갔다.
“후우.”
고건우가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보았다.
“결재는 어디다 합니까?”
“이곳에 하시면 됩니다.”
김형정이 재빨리 사인할 곳을 앞쪽으로 올려주었다.
고건우는 주저하지 않고 사인을 마쳤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김 팀장.”
“예.”
고건우가 불렀고, 김형정이 답을 했다.
“고맙다는 인사는 내가 해야지요. 가르쳐줘서 고맙고, 대한민국을 위해서 이렇게 애써줘서 고맙습니다. 대원들과 요원들을 잘 인솔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김형정이 뜨거워진 가슴을 억지로 누르며 답을 한 다음이었다.
“얼른! 얼른 서두르세요.”
고건우가 김형정에게 손까지 내밀며 그를 부추겼다.
김형정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 고건우의 집무실을 나섰다.
***
따르르릉. 따르르릉.
“증평훈련소입니다!”
곽철호가 구내전화를 받았다.
이쪽은 통신보안이니, 감사하다느니, 직급이니 대지 않는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는 고작 대답 세 번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책상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곽철호가 막사의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을 때였다.
콰악!
군복 바지에 전투화를 신은 차동균이 옆의 막사에서 뛰어나왔다.
“국가정보원에서 내린 대테러 비상이랍니다. 완전무장으로 20분 뒤 출발입니다.”
차동균과 곽철호가 동시에 씨익 웃었다.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팀장이 바로 강찬인 거다.
와다닥!
정말 짧은 웃음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바로 막사로 달려들어 갔다.
대테러 작전은 검은색 군복에 헬멧과 두건까지를 전부 착용해야 하고, 하네스부터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
띠익. 띠익. 띠익. 띠익.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의 비상 대기실이다.
붉은색 등이 돌아가며 듣기 거북한 사이렌을 울렸다.
와다닥! 와락! 와라락!
철컥! 철컥! 철커덕! 철커덕!
12명이 움직이는데 단 한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옆으로 두 개의 방이 있고, 모두 합쳐 36명이다.
그런데도 복도에 그 흔한 “무슨 일이야?” 소리 한마디 나지 않았다.
요원들의 눈이 독기로 번들거렸다.
원장을 잃었다.
소중한 동료들 역시 폭탄 테러로 희생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범인의 윤곽조차 못잡고 있는 거다.
비상.
얼마나 기대하고, 기대하던 비상출동인지 모른다.
심지어 비번인 대원들이 악착같이 집에 안 가겠다고 버티던 바로 그 비상 출동인 거다.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의 출동은 테러 상황밖에 없다.
철커덕! 철컥! 철컥!
와다닥! 와락! 와라락!
소총의 노리쇠를 당긴 대원들이 밖으로 달려나갔다.
***
위이이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이잉!
“606 대테러 비상!”
당직 사관의 명령이 복도 스피커를 타고 울렸다.
와다다닥! 와다다! 콰앙!
화장실에 있던 대원들과 난간에서 휴식을 취하던 대원들이 문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철컥! 철컥! 철커덕! 철컥!
대테러 비상이다.
맡은 역할 따라 무기가 다르고, 하네스부터 챙길 것이 많았다.
철컥! 철컥!
606 지휘관 정원민은 소총과 권총을 챙기면서 강찬을 떠올렸다.
어려 보였다.
그런데 유라시아 발표회장에서 미사일을 짐작해냈고, 대통령과 주요 인사들을 모두 구했다.
나중에 알았다.
프랑스 정보총국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인물인지를.
정원민은 하마터면 전 세계 정보국 서열 5위 안에 드는 인물을 사살한 606대원이 될 뻔했었던 거다.
철컥! 척! 척!
대검과 탄창을 꽂으면서 정원민은 가장 먼저 입구로 달려나갔다.
모를 거다. 보통사람은.
작전에 나서며 설레는 이런 심정을.
바라는 지휘관이 지휘하는 작전이다.
대한민국을 침범한 적들을 상대로 하는 작전.
와다닥! 와닥! 와다닥!
정원민은 뛰어나오는 대원들을 자랑스럽게 살폈다.
오늘 밤 작전에서 반드시 성공하고 돌아온다.
우리는 606 특임대대니까.
***
김형정의 보고를 확인하고 한 시간쯤 자고 났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배에 올려놓은 전화기가 울렸다.
강찬은 고개를 털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위성 감시조입니다.”]
목소리에 담긴 긴장을 느끼는 순간 잠이 확 깼다.
“무슨 일이야?”
[“민간 선박으로 짐작되는 배가 위성좌표 지점을 향해 이동하고 있습니다.”]
강찬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평범한 소식이었다.
[“선박 자동식별장치와 GPS 확인 장치를 모두 꺼놓았습니다. 위성 사진이 아니었다면 절대 발견 못 했을 겁니다.”]
강찬은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배가 위성좌표 지점까지 도착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야간이라 속도를 많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략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러시아 공항이 어디야?”
[“잠시만……, 블라디보스톡 공항입니다.”]
“알았다. 그 선박 절대 놓치지 마.”
[“알겠습니다.”]
강찬은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바실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슈 강. 도착한 걸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는데.”]
“바실리. 지금 비행기를 돌려서 블라디보스톡 공항으로 가겠다. 헬리콥터와 네 사람이 무장할 무기가 필요하다.”
[“상대는?”]
단박에 착 깔린 바실리의 질문이 넘어왔다.
“미확인 민간 선박인데 아무래도 총격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도착 예정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제대로 준비해 주지.”]
전화를 끊은 강찬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조종실을 향했다.
문을 열자 지친 기색의 조종사 두 명이 강찬을 바라보았다.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야해.”
기장이 멍한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하긴 콜택시도 아니고 잘 가던 길을 돌리라고 했으니 당황할 만은 하다.
“갈 수 있어? 없어?”
기장이 계기판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슬아슬합니다.”
“한 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게 해 줘.”
국가정보원 소속의 조종사다.
그가 강찬을 빤히 바라보았다.
“요원들이 목숨 걸고 건네준 정보다. 이걸 놓치면 그 친구들을 볼 낯이 없어.”
기장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에어포켓이 심할 겁니다. 움직일 만한 물건 고정하시고, 반드시 벨트 착용하십시오.”
그리고는 다부진 얼굴로 주의사항을 건넸다.
“고마워.”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주고 자리로 돌아왔다.
다들 잠이 깨서 눈이 벌겋게 되어 있었다.
“우선 움직일만한 것들 전부 집어넣고 안 되는 건 어디든 묶어서라도 고정시켜.”
띵. 띵. 띵. 띵.
서두르라는 것처럼 안전벨트 경고등이 울렸다.
석강호와 최종일이 음식과 가방 등을 뒤쪽 공간에 담았고, 강찬은 노트북을 의자에 붙은 주머니에 넣었다.
기이이이잉.
작은 비행기다.
옆으로 비틀리는 것처럼 방향을 틀었고, 용을 쓰듯이 위로 올라갔다.
“벨트 꼭 매란다.”
강찬의 지시에 셋이서 의자에 앉아 벨트를 채웠다.
대강 정리가 끝나자 강찬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두 번에 걸쳐서 말이다.
“한 시간쯤 걸린다니까 그동안 좀 더 자라.”
“대장은요?”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통화 끝내고.”
강찬은 전화기를 들어 보였다.
“알았소. 그럼 먼저 잡니다.”
석강호가 눈을 번들거리며 답을 했다.
저 새끼는 저런 눈을 하고도 편하게 잠을 잔다.
알기 때문에 잘 수 있는 거다.
지금 한 시간이라도 자 두는 게 결정적일 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말이다.
강찬은 전화를 받았다.
[“김형정입니다.”]
“예. 팀장님. 말씀하세요.”
[“국제 빌딩 외곽 35여단, 입구 606 특임대대, 그리고 내부에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과 증평 특수팀이 투입되어 있습니다.”]
“팀장님. 그럼 지금부터 건물 전체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하시고, 체크 딱지 붙이세요.”
[“알겠습니다.”]
김형정의 답이 건너온 다음이었다.
강찬은 현재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고 있는 것과 그 이유를 설명했다.
[“당장 그곳까지 병력을 이동하기 어렵고, 전투기의 경우에도 러시아와 중국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지원을 못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국제 빌딩 정보를 알려주신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필요한 게 생기면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국제빌딩 잘 부탁드려요.”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찬은 시선을 밖으로 두었다.
문득 라노크와 함께 처음으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움직였던 때가 떠올랐다.
그 언저리에서 제라르를 만났었던 것도 같고.
황기현도 생각났다.
병실에서 석강호가 세수대야에 비벼놓은 밥을 맛있게 먹던 국가정보원 원장.
피식.
국가를 사랑하냐고 묻던 송창욱을 생각하자 툭 하고 웃음이 나왔다.
***
아비부는 방의 불을 끈 채로 국제빌딩을 노려보았다.
“애송이가 저걸 알아차렸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는 터져 나오는 분노를 낮게 깔린 목소리에 구겨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중무장한 특수팀을 저 정도로 배치했다는 것은 우리의 계획까지 완벽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잖나?”
수화기 너머에서 건너오는 답을 듣는 중간에 아비부는 이를 악물었다.
“전사들의 위치는?”
그는 눈을 치켜뜨는 것처럼 국제빌딩을 노려보았다.
“흠. 현재 애송이는 어디에 있지?”
아비부가 계산을 하는 것처럼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겠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아비부가 엄지와 검지, 중지를 비볐다. 고민이 생길 때면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
띵. 띵. 띵. 띵.
기이이이잉!
강찬이 고개를 털어내며 일어날 때, 함께 있던 세 사람도 비슷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켰다.
“어흑!”
석강호가 거북한 소리를 뱉어냈다.
토막잠을 잔 데다, 비행기 안이 건조해서 목이 갈라지는 모양이었다.
의자의 등받이를 세웠을 때 제라르가 물병 두 개를 가지고 왔다.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꼭 부대에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짜가락.
제라르가 물병의 뚜껑을 열어주었다.
둘이서 마주앉아 물을 마셨다.
기이이이이잉!
연료가 바닥나서 떨어지는 것처럼 비행기가 무섭게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대장.”
강찬은 시선만 들었다.
“나, 행복합니다.”
“시끄러워, 이 개새끼야.”
제라르가 볼을 꿈틀거리며 웃었고, 강찬이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좋아하는 놈 셋이 모두 여기 있는 거다.
이놈들이 전부가 아니다.
다 불러 모으면 이 비행기 꽉 채울 정도는 된다.
외로웠던 전의 삶에서 늘 꿈꾸던 모습이 이런 거였다.
더 뭘 바랄 게 있지?
강찬은 피식 웃었다.
라노크나 송창욱의 바람이 떠올라서였다.
우우우웅!
내려앉던 비행기도 살짝 들리는가 싶은 순간이었다.
드드드! 드드드드드드드드!
곧바로 활주로에 내려앉았고, 심한 진동이 느껴졌다.
위이이이이잉!
엔진이 악을 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이 멍청한 놈들아!
너희 큰 실수 하나 한 거거든.
내가! 이제부터 다윗의 별 다 깨부술 거고!
대한민국을 정말 강한 나라로 만들 거니까.
강찬은 고개를 좌우로 비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