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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놓칠 것 같아?
문재현은 초췌한 얼굴이었다.
“국가정보원만큼은 지켜야 합니다. 지금 언론 보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됩니다.”
고건우가 굳은 얼굴로 문재현의 맞은 편에 있었다.
국가정보원 원장 자리다.
군과 정보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고건우가 맡기에는 너무 버거운 자리였다.
“삼성동 분실과 강찬 부원장을 지켜줄 인물이 필요합니다. 몽골에 공장이 건설되고, 고성에 공사가 시작될 때까지 국가정보원을 맡아주세요.”
고건우가 생각해도 딱히 추천할 인물은 없었다.
그동안의 해외파병, 심지어 몽골에 휴가를 빌미로 파견한 특수팀 문제만 외부에 알려져도 정국은 수습하기 어렵게 돌아간다.
언젠가는 알려질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닌 거다.
“알겠습니다.”
고건우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담배를 괜히 끊었나 봅니다.”
그리고는 애잔하게 웃는 문재현을 보았다.
“김 팀장의 계획대로 내일 몽골에서 포로들을 데려올 생각입니다. 이 기회에 아예 공식 발표를 할 테니 다른 건 몰라도 이번 테러를 저지른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건우는 나직하게 답을 했다.
***
두두두두두.
헬기가 연달아 기지 앞에 내렸다.
비무장 팀 대원들과 주철범이 소총을 들고 경계하는 동안, 헬기에서 네 명의 남자들이 내려 다가왔다.
“국가정보원 대외 특수팀입니다.”
김태진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강철규에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강 선배님.”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대외 특수팀 요원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강철규를 불렀다.
강철규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보았다.
“황하령?”
“예! 선배님. 저 황하령입니다.”
강철규가 반갑게 내민 손을 황화령이 공손하게 마주 잡았다.
“인사해라. 이쪽은 김태진. 하령이는 태진이 네가 오기 전에 부서를 옮겼었지.”
김태진이 황하령과 인사를 나눴다.
강철규는 손을 들어 남일규와 양동식을 불렀다.
철컥. 철컥.
서둘러 다가온 두 사람이 놀란 눈으로 황하령을 보았다.
“야! 너? 너 하령이지? 황하령이?”
“선배님!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야, 이 새…….”
양동식이 강철규의 눈치를 살피며 하려던 말을 삼켰며
“그런데 네가 여기 어쩐 일이냐?”
“포로들 인솔자로 왔습니다. 국가정보원 대외 특수팀에 있습니다.”
“햐! 이게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다 만나는구나!”
“여기 오면서 알았습니다. 같은 회사에 있어도 부서가 다르면 누가 있는지 전혀 모르니까요. 책임자와 관리자 명단에 익숙한 이름이 있길래 혹시나 했는데…….”
“가만! 바로 가는 거냐?”
“예.”
이미 수갑과 밧줄로 결박된 포로들이 헬기에 오르고 있어서 오래 시간을 끌기는 어려워 보였다.
“커피 한잔도 안 돼? 내가 얼른 가서 가져올 테니 그거라도 마시고 가라.”
말을 뱉은 양동식은 말릴 틈도 없이 막사를 향해 달려갔다.
“양 선배님은 변함이 없으시네요.”
남일규가 양동식이 달려간 방향을 보며 웃었을 때였다.
“내일 이곳으로 장비와 건설 인원이 넘어옵니다. 중국 기술자와 몽골 기술자들이 포함되었는데 아무래도 정보국 소속 인원이 있을 것 같습니다.”
황하령이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일본이 내각총사퇴를 통해서라도 입장을 바꿀 준비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헬기에 포로들이 줄줄이 올라가고 있었다.
일본의 내각총사퇴가 어째서 입장을 바꾸는 일이 되는지는 제대로 알아들은 건 김태진뿐이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것만은 강철규와 남일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저녁은 석강호와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를 모두 불러서 함께 먹었다.
인내심이 엄청나게 필요한 저녁 식사였다.
제라르가 직접 주문 하겠다며 절대로 나서지 말라고 부탁한 탓이었다.
강찬이 들어도 알아듣지 못한 한국말이었는데 제라르는 최선을 다했다.
염병할.
돼지를 직접 잡았어도 지금보다는 빨리 삼겹살을 구웠을 거다.
어렵사리 주문한 식사를 빨리 마쳤다.
솔직히 더 먹고 싶어도 제라르가 주문하는 꼴을 보느니 그냥 참았을 거다. 오죽 답답하면 식당 사장이 “노 잉글리시?” 하고 여러 차례 물었겠나?
그걸 빤히 지켜봐야 하는 답답함과 미안함이라니.
커피 전문점으로 가자는 제라르를 봉지 커피가 없다는 핑계로 붙들었다.
또 그 어설픈 한국말로 “엄슴니까?” “이씀니까?”를 반복하는 제라르를 상상하면?
절로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었다.
사무실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가 얼마나 여유롭고 감사한 일인지를 강찬과 석강호, 최종일이 새삼 깨달았을 때였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김형정이 들어왔다.
“저녁은요?”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뒤통수를 때려서라도 한숨 재워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김형정은 지친 기색이었다.
“606 특임대에 사살 명령을 내리셨습니까?”
“예. 오늘부터 로망을 대사관에 사흘간 구금할 생각이거든요. 그가 밖으로 나오면 사살하라고 명령을 내리긴 했어요.”
“로망이라면?”
“프랑스 정보총국장입니다.”
충격이 조금만 더 컸으면 기절할 수 있었을 텐데 싶을 만큼 김형정은 놀란 얼굴이었다.
내용을 알아들은 석강호가 옆에서 “푸흐흐” 하고 웃었는데 그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김형정은 정신을 추슬렀다.
“그래도 됩니까? 괜찮을까요?”
“대사님이 함께 계셨던 자리에서 지시한 일입니다. 확인할 것도 있어서 그런 거니까 괜찮을 거예요. 참! 테러 단체나 지휘자를 찾는 일은 진척이 좀 있나요?”
“경찰청 외사과에서 입국자 명단 11만 명을 다시 조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위조 신분인 것 같은데 여권과 숙소, 혹은 카드 따위의 증빙이 전혀 없어서 당장 진전은 없습니다.”
김형정이 분한 얼굴로 답을 했다.
“국가정보원 전체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원장님과 청장님을 잃은 일입니다. 반드시 범인을 잡고 복수하겠다는 의지로 움직이고 있으니 조만간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말을 하는 동안 눌러두었던 분노가 치민 것처럼 김형정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팀장님. 아비부를 만난 이후에 중국과 러시아, 필요하다면 독일과 영국을 돌아볼 생각입니다. 그쪽 정보 담당자들과 의논하면 방법이 있을 것도 같거든요.”
“알겠습니다. 혹시 제가 준비해드릴 것이 있습니까?”
“비행기가 필요한데 그것도 될까요?”
“자가용 비행기는 빌릴 수 있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일정을 짠 다음에 알려드릴게요. 도청은 막을 수 있는 거죠?”
“그때 호텔에서 보셨던 장비를 탑승하면 됩니다.”
그 정도라면…….
“강찬 씨.”
짧은 침묵을 깨고 김형정이 강찬을 불렀다.
“고건우 총리께서 국가정보원 원장을 맡으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이번 북한 방문에 강찬 씨가 함께 가 주셨으면 어떨까 하십니다.”
“저를요?”
강찬이 반문하자 김형정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강찬 씨가 함께 가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전쟁의 위험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강찬은 잠시 고건우를 떠올렸다.
그 양반이 판단한 거라면 일단 존중해줄 필요가 있는 거다.
“일정을 한번 짜 볼게요. 방북 일자는 나왔나요?”
“이번 일로 일정은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편안하게 시간을 정하셔도 되는 일입니다.”
“그럼 제가 돌고 와서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진행해 주세요. 다른 정보국 담당자들을 만나서 밖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북한을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긴박하게 돌아간다.
테러를 일으킨 범인을 잡아야 했고, 전쟁의 위협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연일 라노크의 행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척하면서 강찬을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내일 몽골에서 포로들이 도착하면 일단 국내의 테러범과 공범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언론의 관심을 그쪽으로 돌리면 여유가 좀 생길 겁니다.”
여유라는 말이 실제로는 강찬에 대한 기사를 덮겠다는 것처럼 들렸다.
“아비부 측에서 보면 외교적 결례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테러와 관련한 보도라 대놓고 항의하지는 못할 겁니다.”
외교적 결례?
강찬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있었던 테러와 몽골에서 넘어오는 포로들의 연관은 밝혀진 것이 없다. 하지만 얻어들은 이야기로 비추어볼 때 아비부가 개입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런 개새끼한테 무슨 외교적 결례씩이나!
몇 가지를 더 의논한 김형정은 숨돌릴 틈도 없이 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저러다 저 양반 쓰러지는 거 아니오?”
석강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구를 보았다가 안쪽에 있는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 새끼는 저 안에서 뭘 하는 거야?”
투덜거리며 시선을 가져온 석강호가 커피를 마셨다.
“하긴 저 새끼가 애들 상대하니까 훨씬 편해지긴 했소.”
강찬은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4개국 정보요원들은 프랑스말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이 활동하는 방에 들어가면 제라르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퍼덕거렸다.
강찬 역시 신기하기는 했다.
사무실에 앉아서 원하는 지역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다니!
외인부대가 주둔한 아프리카 지역을 주로 살폈던 제라르는 그 뒤로 원하는 지역의 범위를 넓혔다. 거기에 관련 정보들을 모으고 있어서 마치 정보국에 오래 근무한 놈처럼 보였다.
그 빌어먹을 한국말 연습만 아니면 참 괜찮은 놈인 거다.
***
테러사건이 있고 처음으로 있는 정부의 공식 발표다.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하는 발표.
기자들이 빽빽하게 대기하고 있는 현장을 TV 채널 모두가 생중계 중이어서 다른 것을 볼 수도 없었다.
“오늘 발표는 96년 김포공항 폭발 사건 이후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테러 사건에 대해 정부가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발표회장을 비춘 화면 뒤에서 기자의 설명이 들려왔다.
“세계 유수의 언론과 방송이 기자를 파견해서 이번 발표를 동시에 중계하고 있습니다. 오늘 발표에서는 테러를 주도한 단체에 대한 경고와 각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 지금 문재현 대통령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촤자자작! 촤자자자자작! 촤자작!
카메라 플래시가 문재현이 단상에 서서 시선을 들 때까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내외신 기자 여러분.”
촤자자자작! 촤자자작! 촤자자자자작!
TV 화면에 다른 나라의 방송사 표시를 단 방송 카메라가 가득 잡혔다.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 원장과 연료자원청의 청장이 자살 폭탄 테러에 희생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먼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두 분과 경호 중에 사망한 요원들의 명복을 빕니다.”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요란해서 문재현은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또한, 국내에서의 테러와 동시에 몽골에 있는 대한민국 자원 기지를 적이 기습한, 전쟁에 준하는 침략 행위가 발생했습니다.”
플래시 소리만큼이나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몽골 기지를 침략한 적은 총 301명으로 교전 중 사살 249명, 이송 중 사망 6명, 그 외에 포로 46명이고, 포로들은 어젯밤 비밀리에 우리나라로 이송되었습니다.”
플래시가 뜨문뜨문 터질 정도로 놀라운 발표였다.
TV 앞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지금 제대로 들은 건가 할 정도로 충격적인 발표이기도 했다.
“몽골 기지를 지휘한 책임자는 오광택 대표로 직원 세 명과 함께 국내에 후송되어 입원치료 중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 오광택 대표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촤자작. 촤작. 촤자자작.
이 정도로 놀라운 발표가 연달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에 일어난 국내와 몽골에서의 테러를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침범한 전쟁 행위로 간주합니다.”
발표회장에서 일어난 숨 막히는 긴장감이 TV를 타고 전해졌다.
“이 시간 이후로 대한민국은 테러를 지시한 단체나 국가를 적과 적국으로 간주할 것이며, 대한민국과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직접 응징도 불사할 것입니다.”
문재현이 화면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을 전한 뒤로 기자들이 미친 듯이 손을 들고 질문을 요청했다.
***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포로가 40명이 넘는다. 그것도 몽골의 한국 기지를 습격한 범인들인 거다.
방송은 대통령의 발표 이후로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김형정의 계획대로 온통 관심이 몽골로 쏠린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취재가 시작되면서 한순간에 오광택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말았다.
조직폭력배 두목에서 한국 기지를 지켜낸 영웅.
TV를 켜면 10분 안에 반드시 한 번은 오광택의 이름이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국가정보원이 제공한 사진이 제대로 한몫했다.
회백색 군복을 입고, 왼쪽 팔뚝에 태극기, 거기에 소총을 아래로 들고 있는 오광택.
강찬은 바실리와 양범을 만나기로 했고, 루드비히와 통화를 마쳤다.
***
강대경과 유혜숙은 갇혀있는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거기에 프랑스에서 라노크의 보도가 나왔고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강찬을 암시하는 의혹이 연신 터져 나오는 상황이었다.
회사와 재단을 서둘러 넘겼고, 남은 업무를 원래 있던 직원들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심지어 전화기까지 꺼 놓았다.
“어머! 혜숙아! 마음 많이 상하지? 어떡하니!”
물론 걱정하는 전화도 있었다.
그러나 걸려오는 전화 중에는 ‘그렇게 설치더니 꼴좋다!’ 하는 비웃음도 적지 않았다.
모처럼 한가한데 TV를 켜기도 겁이 났다.
전화, TV, 심지어 인터넷 검색도 안 한다.
급한 연락이야 위 아래층에 있는 김 대리와 차민정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강찬은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도 두 사람은 아침을 먹은 후에 차를 들고 마당에 놓인 원형 탁자로 움직였다.
점심을 먹을 때까지 심심할 때마다 강도 바라보고,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점심을 먹고 나면 김 대리와 차민정의 권유로 배드민턴을 넷이서 했다. 솔직히 김 대리와 차민정이 함께할 때가 훨씬 재미있다.
그냥 마트에 나가 쇼핑하고, 백화점도 가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다. 심지어 집 앞을 걸어나가 조그만 카레 가게에서 값싼 메뉴로 한 끼를 때우고 싶을 때도 있었다.
꼭 하겠다고 나서면 말릴 요원들은 아니다.
그런데 테러사건까지 난 마당에 짜장면이나 카레 덮밥 먹자고 요원들을 줄줄이 끌고 나갈 수는 없는 거다.
“우리 외국에 다녀올까?”
“외국?”
유혜숙이 눈을 껌벅이며 강대경을 보았다.
“회사 정리해서 여유도 있고, 당신 유럽 여행하고 싶어 했잖아? 요원들도 훨씬 덜 고생스러울 것 같은데?”
“글쎄.”
유혜숙이 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넓었던 사무실이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당장 지원 나온 4개국 요원들이 안쪽 방을 세 개나 차지하고 아예 숙소처럼 생활했다.
거기에 강찬과 석강호, 제라르를 위한 간이침대에, 최종일, 우희승, 이두희까지 남자만 여섯이다. 김형정이 회의실 소파에서 자고 갈 때도 있었다.
아침은 시리얼과 토스트로 때웠다.
강찬은 편한 복장으로 늘 앉았던 창가의 원탁 테이블에 자리했다.
“집에 한번 다녀오지 그러쇼?”
석강호가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앞에 놓아주었다.
“가고 싶다.”
진심이었다.
장소만 사무실이지 완전 야전군 생활에 하루에도 걸려오는 전화도 엄청나게 많았다.
“너는?”
“이게 꼭 외인부대에 있는 느낌이요. 대장 있고, 제라르 있고, 안쪽에 외국에서 온 놈들 8명이나 있는 데다, 종일이네 애들까지 있으니까.”
강찬이 픽 하고 웃으면서 커피를 마셨다.
솔직히 강찬의 심정도 다르지 않았다.
“이제 슬슬 옷 갈아입어야겠소.”
“벌써 그렇게 됐냐?”
“삼성동 파크 호텔 10시 아니요?”
“맞아.”
“지금 9시요.”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옷 가져올 테니 여기 계쇼.”
석강호가 안쪽 방으로 들어가자 교대하는 것처럼 제라르가 나왔다.
“대장.”
이건 한국말이다.
“왜?”
“담배 피우겠습니까?”
어떤 놈이 가르쳤는지 제라르는 한국말을 다 익히기 전에 분명 폐병으로 먼저 죽을 거다.
“이리 앉아.”
“예.”
그래도 무섭게 는다.
외국 놈들은 뻔뻔스럽게 틀리건 말건 끝없이 지껄여서 그런지 다른 나라말을 정말 빨리 익힌다.
찰칵.
둘이서 담배를 물었다.
“뭐 좀 나온 거 있냐? 뭘 그렇게 뒤져?”
“자료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넘어오는 자료들이 한정적인 부분도 있어서 나중에 대장에게 의논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강찬의 질문에 제라르가 프랑스 말로 답을 했다.
“어딘가 엮여있는 느낌입니다. 세르게이 쥐이가 러시아에서 핵탄두를 꺼내왔잖습니까?”
제라르가 탁자에 있는 담배를 핵탄두라는 것처럼 한가운데로 옮겼다.
“이걸 러시아가 감시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라이터를 담배 옆에 두었다.
“세 사람이 죽은 다음에 가브리엘이 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드드득.
제라르가 머그잔을 담배 옆에 놓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전쟁 위협이 있는데 핵탄두가 떨어질 수 있다, 이거거든요.”
“그래서?”
정말 뭔가 찾아낸 건가?
제라르가 드디어 한 건 하나?
“연결고리가 가브리엘과 다윗의 별쯤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까진 다들 아는 거잖아?”
“그런가요?”
강찬은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껐다.
이 두 놈에게서 큰 걸 기대해서는 안 되는 건데 자꾸만 속는다.
커피를 다 마셨을 때 김형정이 들어섰다.
모처럼 단정한 모습이었다.
“어서 오세요. 차 한잔 드실래요?”
“시간이……?”
김형정이 시계를 확인하고는 “얼른 마시고 갈까요?” 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번엔 석강호가 옷을 들고 나타났고, 제라르는 정보 분석실로 향했다.
“아비부는 야당 의원들과 조찬을 함께했고, 지금은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김관식 청장님은 호텔 로비에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경호는요?”
“순찰차까지 동원했으니까 안심하셔도 될 겁니다.”
최종일이 머그잔에 그득하게 커피를 담아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