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15화 (31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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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시작된 거였구나.

들을 것 들었고, 내용 알았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이 너무 큰 걸 손에 쥐었으니 두들겨서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뺏어야겠다는 거다.

양보하고 물러서?

그게 전쟁 나는 거보다 낫지 않겠냐고?

니미! 가슴 저리도록 대원과 요원 죽여가며 얻은 거다. 그런데 그걸 두들겨서 뺏겠다는 놈에게 고개를 조아리자고?

그렇게 해서 이번을 넘어가면 그 뒤는?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다음번엔 뭐든 그 새끼에게 가져다 바쳐야 하는 거다.

최종일이 무슨 일인가 해서 강찬의 옆에 다가왔다.

“커피 있어?”

“어떤 걸 말씀하십니까?”

“봉지 커피.”

최종일이 그럴 것 같았다는 얼굴로 움직였다.

잠시 창밖을 보고 있는 동안 최종일이 종이컵에 커피를 가져왔다.

강찬은 테이블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최종일이 강찬의 눈빛과 표정을 살폈다.

아직은 전쟁 이야기를 함부로 하기 어렵다.

결심이 선 다음에, 그래서 이들이 전쟁이란 말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겠다고 결심했을 때에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냥. 우리가 차세대 발전 시설을 짓겠다는데 워낙 지랄들을 해서.”

“마음에 안 들겠지요.”

강찬의 시선을 받은 최종일이 씁쓸하게 웃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틈에서 줄다리기하며 버텨왔던 우리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중심에 선 겁니다. 뺏을 수 있으면 뺏고 싶을 거고, 공연히 밉지 않겠습니까?”

최종일도 강찬과 비슷한 생각을 털어내고 있었다.

“전에도 뛰어난 분들은 한두 분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미국에 정착한 것으로 압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그렇게 하라고 권유까지 했다고 들었습니다.”

종이컵에 시선을 주었던 최종일이 말을 이었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거지요. 세계적인 인물을 데리고 있어 봐야 주변 강대국이 자꾸 눈치를 주니까 작은 것 얻고 데려가라는 그런 뜻이었습니다.”

강찬은 종이컵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부원장님께 대원들과 요원들이 끌리는 건 비록 희생이 따르지만, 이전처럼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피식.

강찬의 웃음을 본 최종일이 멋쩍게 따라 웃었다.

최종일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물러나지 말아 달라는 부탁 같은 거였다.

하나씩 준비해야 할 때였다.

독선적인 일이다.

제라르에게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로망이 돌아선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강찬은 전화기를 들어서 정보총국의 번호를 눌렀다.

[“위고입니다.”]

“한국에 와 있는 제라르 드 미르미에의 전역을 신청한다. 승인받는데 얼마나 걸리지?”

잠시 멈칫한 다음에 답이 있었다.

[“그는 외인부대 특수팀 사령관입니다. 승진은 몰라도 당장 자리를 비우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위고의 음성에 당혹감이 섞였지만, 상관없었다.

“위고. 내가 궁금한 건 너의 의견이 아니라 승인을 받는데 걸리는 시간이야. 이 건의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야?”

[“정보총국에서 명령을 내리려면 총국장님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승인을 신청하면 결과를 언제쯤 알게 되지?”

[“24시간 내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기다리겠다.”

전화를 끊은 강찬은 잠시 창밖을 보았다.

그런 다음, 다시 김형정에게 전화를 넣었다.

[“김형정입니다.”]

“팀장님. 시간 되시는 대로 뵙고 싶습니다.”

시간과 일정을 확인하는 것처럼 잠시 뜸이 있었다.

[“중요한 일이시면 지금 움직이겠습니다.”]

“사무실입니다. 이곳에서 뵙고 싶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강찬은 다시 번호를 뒤졌다.

아직 한 통을 더 해야 할 곳이 남았다.

***

헬리콥터가 또다시 도착했고, 차동균과 윤상기를 비롯한 대원 열 명이 사복 차림으로 몽골 기지에 도착했다.

“어서 와.”

김태진과 오광택이 그들을 맞았고, 이어서 강철규와 남일규, 양동식이 막사에서 나왔다.

다른 거 다 치우고 우선 만났다는 것이 반가웠다.

어깨를 다독이고, 먼 길에 수고했다는 말들을 주고받은 다음이었다.

띠르르르. 띠르르르. 띠르르르.

김태진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김태진은 잠시 한쪽으로 걸어가며 전화를 받았다.

“아! 어떻게 지내? 그래! 이쪽은 다들 잘 지내지. 지금 막 후배들이 휴가 와서 인사하던 참이었어.”

김태진이 힐끔 강철규를 보았다.

“잠시만 기다려.”

그리고는 그를 향해 움직였다.

“선배님.”

김태진은 눈짓으로 전화기를 가리켰다.

누구라고 말하기 곤란하다는 의미였다.

전화기를 넘겨받은 강철규가 막사 한 편으로 움직였다.

“여보세요?”

[“바쁠 테니까 용건만 말할게.”]

강찬의 음성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느낌이 안 좋아서 그런데 터무니없이 들릴지 모르지만…….”]

“알고 있다.”

강철규가 힐끔 대원들이 모인 곳을 바라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모르는 변수가 있을 것 같다.”

강찬은 대꾸조차 없었다.

“부원장.”

[“듣고 있어.”]

“이곳은 반드시 지켜낸다. 그러니까 부원장 주변을 좀 더 보강하는 게 좋겠다.”

전화기를 통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다음번엔 뭐 먹을지 생각해 둬.”]

강철규가 피식 웃었고, 전화기 너머에서 비슷한 웃음이 건너왔다.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강철규는 걸음을 옮겨 김태진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증평에서 온 대원들이 막사로 옮겨간 뒤라 주변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아무래도 기습이 만만치 않을 모양이다.”

김태진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저녁 전에 일규와 동식이 데리고 나갔다 올 테니까 그동안 경계를 좀 더 강화해라.”

“알겠습니다.”

언젠가 비무장 지대를 들어가기 전에 나누었던 대화가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펼쳐진 느낌이었다.

***

김형정은 날아왔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도착했다.

“오시라고 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가끔은 저도 사무실에서 나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강찬은 김형정을 테이블로 안내했다.

종이컵을 본 김형정이 봉지 커피를 말해서 최종일이 준비해 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커피를 마신 김형정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강찬은 우선 ‘다윗의 별’이라는 조직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차세대 에너지 시설을 막기 위해 전쟁을 준비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또 그만한 능력과 힘이 있으리란 말도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최근 북한의 동향도 그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관련은 있을 것 같아요.”

아픈 사람처럼 김형정이 한숨을 쏟아냈다.

전쟁이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하는 전쟁.

그것들이 실체를 드러내며 한 걸음씩 다가오는 느낌.

“팀장님.”

강찬이 나직하게 김형정을 불렀다.

“제 개인적인 조직이 필요합니다.”

김형정이 의아한 눈으로 강찬을 주시했다.

“보고나 결재를 받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국가정보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후우.”

김형정은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찬이 원하는 조건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반응이었다.

무리한 요구, 어쩌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요구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조직이 필요한 때였다.

“혹시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까?”

김형정의 입장에서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최소한의 보고라도 해야 할 거다.

“팀장님.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조직과의 싸움입니다. 당장 몽골 기지를 기습하는 놈들이기도 합니다.”

강찬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첫 번째 임무는 암살입니다.”

가족 중 누가 빚보증 섰다가 전 재산을 날린 듯한 표정으로 김형정이 강찬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임무도 암살입니다.”

김형정이 마른 침을 삼켰다가 급하게 커피를 마셨다.

“이건…….”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김형정은 고개를 흔들었다.

“프랑스의 정보총국과 같은 조직이라고 생각하시면 틀리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는 몽골 기지를 기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응하느니 아예 계획한 놈을 제거할 생각이니까요.”

김형정이 남은 커피를 홀랑 털어놓고는 담배를 들었다.

강찬도 손을 뻗었다.

그리고 둘이 불을 붙였다.

“앞으로 더 많은 특수팀이 필요합니다. 증평의 특수팀에 근접한 실력을 지닌 팀이 있을까요?”

“606 특임대대가 가장 뛰어납니다. 증평의 특수팀을 주로 그쪽에서 선발했으니까 실전 경험이 문제지, 훈련이나 기본기는 별반 차이 나지 않을 겁니다.”

대답을 한 김형정이 뒤늦게 떠오른 것이 있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국방위에서 국회동의 없이 해외파병을 한 것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606 특임대대까지 국회동의 없이 해외에 파병한다면 뒤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팀장님.”

강찬이 피식 웃으면서 김형정을 불렀다.

“전쟁이 났을 때 그 국방위의 국회의원들이 어디 있을 것 같습니까? 그들이 국민을 지킬까요? 총이라도 한 자루 들고 적을 향해 뛰어갑니까?”

“하아. 말씀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말을 하면 저는 당장 실업자가 될 겁니다.”

진지하게 한 말일 텐데 표현이 웃겨서 강찬은 헛웃음을 웃고 말았다.

“지금 말씀하신 것은 원장님께 보고 드리고, 다시 대통령님의 재가를 얻어야 합니다. 대신 보고드릴 때 암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은 빼겠습니다.”

“그건 알아서 해주세요. 다만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형정이 담배를 끄고 창밖을 힐끔 바라보았다.

당장 황기현에게 보고할 수 있을지를 계산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보겠습니다. 결과를 가능한 한 빠르게 알려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강찬은 김형정을 배웅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함께 걸었다.

***

프랑스 로리암 기지에서 앰블런스 한 대와 검은색 승합차 다섯 대가 출발한 것은 새벽 이른 시간이었다.

응급차에 앉은 로망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침대에 누운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는 거요?”

샤흐란이 꺼져가는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는 뼈에 가죽을 씌워 놓은 것처럼 말라서 마치 해골이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보겠나?”

썩은 냄새가 날 것 같은 샤흐란의 눈빛이 로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왜 갓 오브 블랙필드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조쉬와 내가 만든 완벽한 계획을 어떻게 라노크가 알아챘는지를 알고 싶다.”

샤흐란이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믿기 어려우실 거요.”

“판단은 내가 한다, 샤흐란.”

로망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샤흐란.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라노크의 손에서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을 높이 평가하지만, 너는 이미 쓸모가 없어. 그러니 어설프게 목을 세우지 않는 것이 좋아.”

“흐흠.”

샤흐란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로리암을 나온 앰블런스는 국도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그리고 그동안 샤흐란은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털어놓았다.

“후우.”

로망이 기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겠군.”

그리고는 샤흐란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배운 적도 없는 프랑스 말을 유창하게 지껄이고, 터무니없을 정도로 뛰어난 작전 능력, 통솔력, 심지어 제라르가 그를 따르는 것까지. 그렇다면 앞뒤가 맞기는 하는데…….”

“놈이 작전을 뛰었소?”

“말도 못할 성과를 이뤘다.”

샤흐란의 눈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정보총국이라면 놈을 죽일 수 있지 않겠소?”

로망의 답이 없자 샤흐란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놈의 치명적인 약점을 내가 알고 있소. 그러니 놈을 내게 맡겨주시오.”

로망은 비웃는 듯한 얼굴로 답을 하지 않았다.

“순도 99%짜리 코카인을 주시오. 내 손으로 놈의 목을 딸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소.”

“정보총국이 그만한 능력이 없을 것 같은가?”

“정보총국이 하기엔 너무 더러운 방법을 쓸 생각이요. 놈의 주변 사람들을 짓밟을 테니 내게 기회를 주시오. 반드시 미쳐 날뛰는 놈을 보여드리겠소.”

로망이 처음으로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

라노크는 오후 늦게 두 명의 방문객을 맞았다.

“저녁 먹기 전에 간단하게 차를 할까?”

“흥. 십 년이 넘도록 그 떫은 홍차를 잘도 먹이는군.”

툴툴거리는 바실리를 보며 양범이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의 주연께선 어떻게 하고 계신가?”

“고민하고 있겠지.”

라노크가 홍차를 따르며 건넨 답이 바실리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어, 라노크. 내가 조쉬를 죽이지 않은 것은 핵탄두가 걸렸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반드시 머리에 구멍을 내줬을 거다.”

라노크가 시가에 불을 붙인 후에 바실리를 보았다.

“핵탄두가 어떻게 다윗의 별로 넘어갔는지를 아는 것이 먼저다, 바실리.”

달칵.

바실리가 거칠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세르게이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핵탄두를 처리하지 못했던 거지.”

양범이 전에 없이 날카로운 눈으로 바실리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알아낸 것들을 종합해보면 다윗의 별이 가브리엘에게 접근해서 미르미에 가문을 일으켜 주는 조건으로 핵탄두를 빼돌리게 했다는 게 가장 유력하다.”

“가브리엘이 제라르의 얼굴로 성형한 이유와 한국에 와서 샤흐란을 빼돌린 이유도 거기에 있겠군.”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바실리가 시선을 돌려 양범을 보았다.

“당시에 한국에서 샤흐란과 관련 있던 조직을 깊게 조사했습니다.”

양범은 기다렸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관련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놈 저놈 잘도 죽어 나자빠지는군.”

바실리가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는데도 양범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을 열었다.

“그 외에 몽골로 제법 많은 병력 이동이 포착되었습니다. 분산된 인원이라 잡기가 쉽지 않지만 필요하다고 하면 어느 정도는 제거할 수는 있습니다.”

“그건 무슈 강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핵탄두를 찾아내는 것이 먼저다.”

바실리가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후후후. 멍청한 놈들. 비무장왕이 있는 곳에 머리를 들이밀다니. 그것도 기습을? 흥! 밤을 노려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군.”

“그가 그렇게 뛰어납니까?”

“스페츠나츠에 신입이 오면 전해주는 말이 두 개 있었지. 비무장 지대에 밤이 깔리면…….”

바실리가 굴욕을 감내하는 얼굴로 한숨을 커다랗게 토해냈다.

“죽음의 신이 움직인다.”

바실리는 지금 뱉은 말이 못마땅한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양범은 남은 하나를 요구하는 시선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와 단둘이 마주치면 최선을 다해 방아쇠를 당겨라.”

양범이 고개를 갸웃했다.

적을 만난 스페츠나츠라면 당연한 조언이라고…….

“그런데 그와 단둘이 마주친 대원 중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이건 무슨 소리야?

양범이 고개를 돌려 바실리를 보았을 때였다.

“궁금하면 밤에 비무장왕을 찾아가 봐.”

바실리가 툴툴거리며 엉뚱한 소리를 지껄였다.

***

부르릉! 덜컹! 덜컹!

지프는 거칠게 황야를 달렸다.

바퀴에서 일어난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흩어져서 마치 황토색 안개가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부르릉!

강철규는 손을 들어 둔덕이 시작되는 앞쪽을 가리켰다.

끼이익!

고개가 앞으로 쏠릴 정도로 거칠게 멈춰선 지프에서 강철규를 따라 남일규, 양동식이 차에서 내렸다.

“어? 어?”

그런데 세 사람이 내리자 지프가 스르륵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 이 씨……!”

남일규와 양동식이 빠르게 달렸는데 운전석 쪽에 있던 양동식이 조금 더 빨랐다.

끽.

운전석에 올라 지프를 세운 양동식이 클러치 옆에 있는 파킹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남일규가 강철규를 힐끔 보며 으르렁거렸다.

“정신 좀 차려라!”

“이 씨……! 누가 일부러 그랬냐? 전에 타던 차는 세우면 알아서 파킹 브레이크가 작동했다니까!”

양동식도 지지 않았는데 강철규를 살피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강철규는 둔덕과 기지로 이어지는 황야를 예리하게 살피고 있었다.

저벅저벅.

남일규와 양동식이 그의 곁으로 움직였다.

세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선배님. 감이 안 좋으신 겁니까?”

남일규를 슬쩍 바라본 강철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안 좋습니까?”

양동식의 질문이었다.

강철규가 피식 웃으며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말입니다.”

남일규가 입을 열어서 강철규와 양동식의 시선을 가져갔다.

“선배님께서 구해주셨을 때 말입니다.”

“다 지난 얘기를 뭐하러 꺼내?”

“사회에 나가서 생각해 보니까 그때 제가 감사하다는 말씀을 못 드렸었습니다.”

양동식이 강철규와 남일규를 번갈아가며 살필 때였다.

“선배님. 고맙습니다.”

강철규가 웃은 다음이었다.

“태극기 달고, 국가의 명령을 받아, 이런 싸움에 다시 서게 해 주신 것,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강철규가 고개를 돌린 옆에서 양동식은 감동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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