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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이해할 수 있다.
사무실에 도착한 강찬은 제라르와 둘이 편안하게 커피를 마셨다.
다음으로 제라르와 함께 디아이 사무실로 움직였다.
불편하게 사무실 들어가서 쭉 인사할 게 뭐 있겠나.
강찬은 미쉘을 잠시 나오라고 했다.
“잘 지냈어요?”
미쉘이 제라르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고,
“오늘은 모터사이클 없는 곳으로 갑시다.”
제라르는 뻔뻔하게 답을 했다.
“부탁할게.”
“걱정하지 마.”
강찬은 짧은 한국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대장. 저녁에 뵙죠.”
“오늘은 사고 치지 마.”
고개만 돌리고 한 대꾸였는데 픽하는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만 끼워 넣으면 영락없이 외국인 유치원에 애 맡기는 꼴이다.
사무실로 올라온 강찬은 김형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사무실인데 언제가 편하세요?”
[“지금 삼성동으로 와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죠. 그럼 바로 출발할게요.”
옆에 누가 있나?
김형정의 음성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생각할 게 뭐 있겠나?
어차피 가 보면 알게 될 일이다.
강찬은 최종일과 함께 삼성동 사무실로 향했다.
“집에서 자고 나온 거야?”
“어제는 빌라 3층에 있었습니다.”
확실히 경호만 따진다면 빌라가 아파트보다 월등히 낫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삼성동 사무실에 도착했다.
강찬은 바로 5층으로 향했다.
달칵.
벨을 누르기 전에 문 열리는 거 하나는 정말 편하다.
역시 문은 김형정이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안에 원장님이 계십니다.”
김형정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서자 황기현이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곳에서 보니까 이상하게 반갑습니다.”
황기현이 손을 내밀어서 강찬의 손을 잡았다.
“앉읍시다.”
“예.”
강찬의 자리에 음료수, 생수, 그리고 컵이 놓여 있었다.
“좀 쉬었습니까?”
“예.”
황기현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특수팀 대원 열 명에게 위장 여권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대원 선발과 지휘는 차동균 대위로 되어 있고 출발은 내일 오전입니다.”
김형정이 강찬의 앞으로 명단을 놓아주었다.
“차동균과 곽철호는 아직 부상이 심할 텐데요?”
“현재 최고 지휘자가 차동균 대위라 그의 판단을 믿었습니다. 혹시 통화를 해보시겠습니까?”
리비아 작전을 스스로 포기했을 정도로 냉정해진 차동균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의 판단을 믿어주는 게 좋았다.
“아니요. 차동균이 그렇다면 믿을 만은 하지요.”
강찬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부원장.”
“예.”
“부원장의 예상대로 아비부가 부원장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명목은 유라시아 철도 발표회장에 있던 주역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황기현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시간이 괜찮다면 내일쯤 송창욱 청장과 김관식 위원장을 미리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부러 일정을 짜달라고 부탁했던 마당이다.
당연하게 만나야 할 두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의 표정이 모두 무거웠다.
라노크의 말대로 아비부가 강찬의 면담을 요청했다는 건, 몽골의 기지 습격 역시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의미가 된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황기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난번 아프가니스탄 작전은 워낙 국민적 지지가 확실했기 때문에 국회도 추후 승인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리비아 건은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강찬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야다.
이럴 땐 일단 듣고 있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국방위 소속 의원들이 희생된 가족과 대원들을 상대로 출정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말이 나오지는 않지만, 이런 일은 반드시 밝혀집니다.”
“그렇겠죠.”
“사태를 지켜보다 국방위 의원들과 모종의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지만 최악의 경우, 내가 물러날지 모릅니다.”
강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황기현은 말을 이었다.
“한반도는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지금껏 중국과 일본, 미국이 우리의 통일을 바라지 않은 데에는 아시아의 요충지를 좌지우지하려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 교육을 하겠다는 건 아닐 테고,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가는 게 아닐까?
강찬이 눈을 갸름하게 떴을 때였다.
“북한으로 상당한 자금이 흘러들어 가고 있습니다.”
강찬의 의문을 알아챈 것처럼 황기현이 말을 이었다.
“미국 주도로 북한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중입니다. 비공식적인 통로이긴 하지만 자금이 흘러들어 간다는 것은 미국이 이 일에 동조했거나, 적어도 묵인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얻는 건 뭐가 있나요?”
“한반도의 긴장 조성, 혹은 전쟁입니다.”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다른 뜻은 없고, 그저 기가 막혀서……. 혹시 누가 자금을 보냈는지 알고 계신가요?”
“송금처는 서류상 회사입니다. 스위스의 계좌를 이용했습니다.”
다윗의 별이란 놈들이 한 짓일까?
강찬은 프랑스 대사관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한국 경제를 파탄시키지 못한다는 계산에서 북한을 지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무거운 침묵이 사무실에 가득했다.
“네 나라에서 파견한 정보국 요원들 여덟 명이 아래층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 정보도 우리는 얻지 못했을 겁니다. 부끄럽지만, 부원장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황기현이 김형정을 힐끔 본 뒤에 입을 열었다.
“당장 중국과 일본, 미국 정보국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북한이 서울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변하게 됩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부탁이었다.
한 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북한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정권의 기반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북한 독자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외부의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도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장 보급품을 풍족하게 늘리고, 남조선과 미제라는 외부의 적을 공고히 하는 것이 정권 유지에도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반격하면요?”
“전쟁이 일어나겠지요. 차세대 에너지 개발권을 빼앗긴 산유국 전체가 기쁜 마음으로 북한을 지원할 겁니다.”
“미국도 신나겠군요.”
“일본도 싫지는 않을 겁니다.”
그야말로 헛웃음이 나오는 말이었다.
버둥버둥 산을 넘었더니 눈앞에 에베레스트가 딱 펼쳐진 꼴이었다.
“원장님. 이런 일도 정보국에서 해결할 수 있나요? 실제로 돈을 보내주는 곳이 사우디아라비아라면 그들을 상대로 전쟁을 할 것도 아닐 테고. 만약 미국이 관련되어 있다면 더 난감한 거 아닐까요?”
황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정보원은 이런 일을 처리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일이 더 확대되기 전에 주변 정보국의 조언과 도움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김형정이 무거운 표정으로 시선을 떨궜다.
“이번에 대통령님이 담화를 서둘러 발표한 것과 일본과의 해저터널 협상도 전쟁을 억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들이 투자한 금액이 클수록 전쟁 반대편에 설 테니까요.”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정치란 참 오묘한 구석이 있다.
뭐 그렇게 느닷없이 담화를 발표하나 했더니 뒤에서 저런 계산을 하고 있었던 거다.
“게다가 이런 정보가 조금씩 퍼지고 있습니다. 차세대 에너지 사업을 계속 고집하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비부가 입국하는 목적이 거기에 있을까요?”
“의원들과 접촉하면서 정보를 흘릴 가능성이 큽니다. 비약해서 생각하면 보상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회 의원들 입장에선 전쟁도 막고 보상도 받는 일입니다. 그런 와중에 북한이 미사일을 무인도쯤에 쏘게 된다면 국민적 반대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개새끼가!
리비아 건도 아직 계산이 안 된 마당에 자꾸 외상값을 부풀려?
“부원장.”
강찬은 화를 누르고 황기현을 보았다.
“북한은 미사일 하나 날려주는 조건으로 막대한 수입을 얻습니다. 전쟁이 나더라도 지원군이 든든한 입장입니다. 거기에 산유국과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면 우리나라는 견디지 못합니다. 도움을 청해 주시겠습니까?”
국가정보원의 수장이다.
그런데도 김형정이 시선을 떨군 앞에서 강찬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전에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일단 라노크 대사님을 만나서 의논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황기현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김형정을 보았다.
“김 팀장. 지금 부끄럽다고 느낀 만큼, 아니 그 이상 노력해야 돼. 유라시아 철도와 차세대 에너지 건설에서 얻을 이익에 우리 정보원의 발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어쩐지 물러날 사람이 주는 퇴임사 같은 느낌이었다.
“부원장. 그럼 먼저 일어납니다.”
강찬과 김형정이 황기현을 따라 몸을 일으켰다.
“자!”
강찬은 황기현이 내민 손을 잡았다.
말은 없었다.
그저 아쉬운 미소로 강찬의 손을 꽉 잡아주었을 뿐 황기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바실리는 정보국 수뇌들을 만날 때면 늘 특수군이 지키는 막사를 이용했다.
무엇보다 경비가 철저해서 좋았고, 다음으로 혹시나 누군가 암살을 감행하더라도 바로 응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라노크, 양범, 셔먼, 루드비히 정도면 굳이 바실리를 죽이고 그 자리에서 사살될 짓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막사에서 수뇌부를 만날 때면 적어도 안전을 걱정할 일은 없었다.
물론 이튼도 다녀갔었다.
그러나 그는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이튼은 그 정도로 바실리의 적수가 아닌 거다.
바실리가 막사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랜만입니다.”
젊은 영국 남자였다.
그가 유창한 러시아어로 인사하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구불거리는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전반적인 분위기가 냉혹한 바실리와 많이 닮아 있었다.
“진짜가 나타난 건가?”
바실리는 눈을 갸름하게 뜨고 남자를 살핀 다음, 한쪽 벽에 있는 바로 움직였다.
“보드카가 있으면 부탁합니다.”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앉지.”
“그럴까요?”
영국 남자가 움직이는 동안 바실리는 보드카 한 병과 잔 두 개를 내려놓았다.
쪼로록. 쪼로록.
잔에 술을 채우고, 바를 사이에 둔 채로 마주 앉았다.
“이튼은?”
“워낙 헛손질을 하고 다녀서요.”
바실리가 웃는 것을 본 남자가 잔을 들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잔을 털어 넣었다.
“조쉬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라노크나 로망이 잠 좀 설치겠는걸?”
쪼로록. 쪼로…….
“오늘은 다른 일로 찾아왔습니다.”
술을 따르던 바실리가 치켜뜬 눈으로 조쉬를 보았다.
강찬이 나타나기 전까지 다음 정보 세계의 우두머리가 될 거라고 평가받던 조쉬다.
라노크가 있어서 지금의 프랑스가 힘을 얻었다면, 다음 세대는 조쉬 덕분에 영국의 입김이 세질 거라는 추측도 있었다.
라노크가 강찬에게 프랑스를 부탁한 이유, 영국 정보국의 수장이 되는 것을 막으려 바실리조차 신경 쓸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은 인재였다.
바실리의 눈빛에도 조쉬는 꿋꿋했다.
“나는 말장난을 좋아하지 않아.”
“알고 있습니다.”
바실리가 술병을 내려놓고 고개를 바로 세웠다.
“하고 싶은 말은?”
“한국에 관한 일입니다.”
바실리가 픽 하고 웃은 다음이었다.
“차세대 발전 시설의 지분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조쉬가 엉뚱한 말을 꺼냈다.
“블랙헤드가 수십 년에 한 개 정도 나온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영양가 빠진 돌덩이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조쉬가 술잔을 만지며 말을 이었다.
“갓 오브 블랙필드가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것은 라노크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보물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아비부가 또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 말고도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역시 러시아 정보국은 무섭군요.”
부인하기는커녕 조쉬는 재미있다는 것처럼 웃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분의 절반을 준다는 놀라운 제안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들을 수 있을까?”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생각입니다.”
바실리는 꼼짝도 않고 조쉬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된다면 유라시아철도와 차세대 에너지 시설을 세우겠다는 계획은 깨끗하게 사라지게 됩니다.”
“북한이 그 정도로 무모한 놈들은 아니야. 한국이 그 도발에 쉽게 넘어가지도 않을 테고.”
“서울 한복판에 미사일이 세 발이나 떨어지는데 한국이 참는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지요.”
바실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중 하나는 핵탄두를 장착합니다.”
퍼뜩!
바실리의 눈빛이 삽시간에 번들거렸다.
“세르게이 카라카야프, 다른 이름으로 세르게이 쥐이가 빼돌린 핵탄두를 국장님도 아실 것 같은데요?”
“그를 죽인 게 영국 정보국인가?”
바실리는 당장에라도 총을 뽑아들 기세였다.
“러시아 정보국이 감시하던 사람을 헛손질의 대가 이튼이 어떻게 죽였겠습니까? 그는 아마 지금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조쉬. 네가 능력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내 앞에서 설칠 정도는 아니란 걸 알아두는 게 좋아.”
“물론입니다. 그리고 세르게이 카라캬아프를 알게 된 것은 저 역시 우연이었습니다.”
“흐흠.”
바실리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닥이 참 좁지 않습니까? 아! 세상이 좁은 건가요?”
“제라르 드 미르미에와 연관이 있나?”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지요?”
“조쉬.”
바실리가 나직하게 이름을 부르자, 조쉬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이점은 저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원래는 블랙헤드를 빼돌리는 계획 속에서 죽었어야 했습니다. 그저 사망자 명단에 이름 하나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작전 직전에 다른 곳으로 보내졌더군요.”
바실리는 듣고만 있었다.
“그 뒤로 핵탄두를 해결하느라고 잠시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외인부대 특수팀이니까 적당히 죽을 줄 알았거든요.”
조쉬가 기가 막힌 것처럼 웃었다.
“악착같이 살아있더군요. 제대하기 전에 죽일 계획이었습니다.”
“외인부대 특수팀 구대장을?”
“그 사이 제법 경력이 붙었더군요.”
“그쪽 특수팀에서 그 정도 위치라면 인정해야겠지.”
조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걸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라노크가 갓 오브 블랙필드를 통해서 우리를 견제하는 거라고 믿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바실리가 무슨 소린가 하는 느낌으로 눈살을 찌푸린 다음이었다.
“계획을 세워두면 느닷없이 몽골로 날려 보내고, 다음번은 내전 중에 저격하려고 했는데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갔고, 이번에는 아프리카에서 우환을 다 없애나 했더니 600명의 쿠드스를 뚫고 살아났으니까요. 마지막은 더 기가 막힙니다.”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바실리가 고개를 저을 때였다.
“아시는 것처럼 콩고 내전을 이용할 계획이었는데 느닷없이 휴가를 신청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간 것 말이군.”
“그렇습니다.”
조쉬가 어이없다는 투로 웃었다.
“이러다간 망신만 당하겠다 싶어서 비행기에서 심장마비로 처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비행기를 바꿔 타더군요. 그것도 역시 갓 오브 블랙필드의 지시로 말입니다.”
바실리가 가슴을 들썩이며 웃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웃음으로 어쩐지 섬뜩해 보이기도 했다.
“조쉬.”
웃음을 뚝 자른 것처럼 바실리가 표정을 날카롭게 바꾸었다.
“다윗의 별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가?”
“연관이 없다고는 않겠습니다.”
조쉬는 밀리지 않는 눈빛과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곳에서 내 말 한마디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잘 알고 있을 텐데?”
“설마 라노크와의 의리 때문에 러시아의 크나큰 이익을 포기할 생각입니까?”
“몇 마디 말로 날 흔들 생각이라면 이쯤에서 마지막 말을 준비해 두는 게 좋아.”
바실리가 보드카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바 아래로 고개를 내리며 손을 뻗쳤다.
철컥.
상체를 세운 바실리의 손에 Gsh-18 권총이 들려있었다.
“세르게이가 빼돌린 핵탄두야 네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지. 하지만 이미 한국에 차세대 발전 시설을 건설하는 것과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하는데 너무 많은 투자가 들어가서 발을 빼기가 어려워.”
“러시아가 우리와 손을 잡으면 중동의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을 줄일 겁니다.”
“끝까지 장난을 치겠다?”
쪼로록.
바실리가 왼손으로 보드카를 채웠다.
그러나 조쉬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만큼 그의 자세는 전혀 빈틈이 없었다.
“러시아의 유명한 노래 정도는 알겠지? 차가운 보드카가 목을 불태우기 전에…….”
“붉은 피가 바닥을 적시겠지. 맞나요?”
바실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왼손으로 잔을 잡았다.
뱀눈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말이다.
“라노크가 죽은 다음이라면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바실리의 뱀눈이 조쉬를 뚫을 것처럼 강렬하게 빛났다.
“가브리엘이란 놈도 다윗의 별과 관련이 있나?”
“조금 전에 사망했습니다.”
바실리의 눈이 더욱 작아졌다.
“화장실에서 심장마비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평소에 심장이 좋지 않았습니다.”
“라노크를 제거할 방법은?”
조쉬가 비릿한 미소를 얼굴에 올렸다.
“정보국의 생리를 잘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결과를 질문할 수는 있지만, 과정을 묻는 것은 실례입니다.”
“북한에 송금한 것도 다윗의 별이겠지?”
“셔먼의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답을 한 조쉬가 잔을 들었다.
“서울에서 핵이 터지면 북한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그들은 미사일에 핵이 달렸다는 걸 모릅니다. 그것만큼은 우리가 제공한 잠수함에서 발사할 테니까요.”
“미군의 희생은?”
“영양가가 모두 빠진 돌멩이로 차세대 에너지의 주역을 꿈꾸고 있습니다. 적당한 희생이 있어야 차후 한반도의 지분을 확보할 거란 계산인 것 같은데 이미 일본과 비밀리에 손을 잡았습니다.”
“내가 널 죽여도 전쟁은 일어난다?”
조쉬가 보드카를 단숨에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몽골 기지로 대규모 병력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바실리가 눈살을 찌푸린 순간이었다.
“하필 러시아는 인근의 국지전 때문에 돌아볼 정신이 없게 됩니다.”
“기지를 파괴할 셈인가?”
“기지에 있던 모든 인원을 사살할 계획입니다. 목격자가 전혀 남지 않는 전투가 될 겁니다.”
“흐흠.”
한숨을 내쉰 바실리가 보드카를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