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12화 (31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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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이해할 수 있다.

대원들의 방검복이 너덜너덜했다.

피가 배어 나온 대원들도 적지 않았다.

“차 대위.”

“예! 선배님!”

“훈련은 이만 하자.”

“알겠습니다.”

강철규의 말에 따라 대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가장 먼저 대검을 챙겼고, 다음으로 방검복을 벗기 시작했다.

“괜찮아?”

“예, 선배님.”

남일규가 안쓰러운 얼굴로 윤상기를 살폈다.

좀 전까지 죽일 것처럼 대검을 휘둘러 놓고 말이다.

남일규를 오늘 처음 보았다면, 윤상기는 틀림없이 그를 변태나 정신이상자라고 여겼을 거다.

“그래도 후배들이 있어서 동식이 살았다.”

“예?”

방검복에서 다리를 빼내던 윤상기가 뭔 소린가 해서 고개를 돌렸다.

“아까 난 동식이 강 선배에게 맞아 죽는 줄 알았다.”

윤상기는 힐끔 강철규를 살폈다.

저런 분이 사람을 때린다고?

윤상기의 표정을 읽은 남일규가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었다.

“동식이는 원래 막 나가던 놈이야. 저놈이 그나마 사람 된 건 모두 강 선배 덕분이지. 동식이가 한창때, 비무장 지대에서 저 성질을 못 이겨서 함정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 사이 방검복을 모두 벗었다.

“주십시오.”

“괜찮아. 뭐 무겁다고.”

둘이서 막사 쪽으로 걸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뭐? 동식이?”

“예.”

이번엔 남일규가 고개를 돌려 강철규를 보았다.

“강 선배가 대원 넷과 달려가서 구해왔지.”

“그렇군요.”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여서 윤상기는 적당하게 맞장구를 쳤다.

“그때 구하러 갔던 대원 둘이 죽었다.”

윤상기는 빠르게 남일규의 눈치를 살폈다.

이렇게 아픈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다.

“동식이가 욱해서 중국 백랑대를 쫓아가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지. 그날 강 선배가 피투성이인 동식이를 끌고 창고로 들어갔었는데 우린 죽어서 나오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런 건 입을 열기도 어렵다.

그렇더라도 부상 당한 대원을 그렇게 때려야 했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때 죽은 두 놈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윤상기가 시선을 돌린 곳에서 남일규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한 놈은 부인이 임신 중이었고, 다른 한 놈은 부친상을 막 마치고 돌아온 놈이었는데…….”

막사에 도착했다.

윤상기가 뺏다시피 남일규의 방검복을 받아서 창고로 움직인 직후였다.

양동식이 막사를 열고 밖으로 나왔다.

목에 하얗게 붕대를 감고 있었다.

“괜찮냐?”

“미안하다.”

“이 새끼야, 좀!”

양동식이 대답 없이 머리를 긁어댔다.

대원들이 하나둘 막사 앞으로 도착했고, 마지막으로 강철규가 도착했다.

“괜찮냐?”

“죄송합니다.”

강철규의 질문에 양동식의 고개가 뚝 떨어졌다.

“동식아.”

“예.”

대원들이 모두 있는 자리다.

“너도 나이가 있는데 후배들 앞에서 내가 심했다.”

“예?”

“미안하다.”

양동식의 눈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다.

“서운했더라도…….”

“흐으! 흐으으.”

느닷없이 양동식이 팔등으로 눈을 가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흐으으. 잘못했습니다.”

흉하게 벌린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강철규가 다가가서 양동식의 어깨를 다독였다.

“이번 작전엔 너 믿어도 되겠지?”

“흐으으! 흐으.”

뭐가 저렇게 서러울까?

증평의 대원 중에서 윤상기만 어렴풋이 양동식의 울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

함께 집으로 가는 줄 알았다.

제라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었다.

[“아들! 7시까지 집으로 와.”]

유혜숙이 들뜬 음성으로 전한 말이었다.

요원들이 있으니까 집이야 찾아가겠지만, 이사한 집인데 같이 가는 게 맞는 거 아닐까?

틀림없이 음식을 만들고 싶어서일 거다.

강찬은 웃으면서 전화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대장. 와인하고 꽃을 사고 싶은데 근처에 그럴만한 곳이 있습니까?”

“집에 가지고 가려고?”

“예.”

어차피 가는 길이다.

그 정도 지출이 제라르에게 부담되는 것도 아니고, 선물을 받는 사람이 강대경과 유혜숙이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강찬은 이두희가 가져온 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커다란 쇼핑센터로 향했다.

와인 매장은 지하 1층에 있었다.

퇴근 시간이다.

저녁을 준비하려는 주부와 퇴근길에 들른 여자들이 바늘을 문 물고기 같은 눈으로 제라르를 돌아보았다.

신기하다.

아프리카나 아프가니스탄에선 그저 그런 놈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모든 여자가 놈을 돌아본다.

제라르와 와인 매장에 들어서자, 늘씬하게 생긴 여직원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도와드릴까요?”

제라르가 강찬을 바라보았다.

설명을 대신해 달라는 뜻일 거다.

말이 안 통하는 놈은 또 얼마나 답답하겠나?

하지만 강찬은 다시는 제라르와 물건 사는데 함께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꽃은 다행히 쇼핑센터 옆에서 바로 살 수 있었다.

이두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한남대교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올라가 다시 언덕을 타고 또 돌았다.

차에서 내린 강찬은 눈앞의 빌라를 보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대경과 유혜숙은 이 집이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새로 산 옷이 담긴 쇼핑백과 제라르의 낡은 가방, 꽃다발, 와인을 들고 현관으로 다가서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누군가 CCTV로 지켜보고 있다가 열어준 모양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 벨을 눌렀다.

띠루룩.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어서 와요!”

“안뇽하세요? 어므니.”

“네? 아, 예. 어서 와요.”

제라르가 웃으면서 꽃과 와인을 유혜숙에게 건넸다.

“어쩜! 고마워요.”

“고맙승니다.”

제라르가 엉뚱한 대꾸를 했을 때였다.

“왔니?”

강대경이 현관으로 다가왔다.

“안뇽하세요? 아브지.”

“아, 예! 얼른 들어와요.”

강찬도 이 집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제라르와 둘이 두리번거리면서 거실의 소파로 움직였다.

“저녁 안 먹었지?”

“예, 어머니. 제 방은 어딘가요? 옷을 갈아입고 오려구요.”

“그렇지 참! 당신이 찬이 방에 좀 데려다줘.”

“이리 와라.”

강대경이 몸을 돌려 계단으로 향했다.

위쪽에는 방이 두 개 있었다.

“안쪽을 네 방으로 꾸몄다. 친구가 이방을 쓰면 될 거 같은데?”

“이사하시느라고 고생하셨어요.”

“다 해주셔서 정말 손 하나 까닥 안 했다. 그럼 옷 갈아입고 내려와라.”

“예.”

강찬은 우선 제라르가 사용할 방을 함께 들어갔다.

“오우!”

제라르가 감탄사를 터트리며 방을 둘러보았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도 그렇거니와 방안에 따로 있는 욕실과 붙박이장, 침대까지 꽤 고급스러웠다.

“굉장한데요?”

“당분간 이방을 써. 옷 갈아입고 바로 밥 먹을 거다.”

“알았습니다.”

강찬은 제라르의 방을 나와서 안쪽 방으로 움직였다.

달칵.

제라르의 방과 좌우만 바뀐 구조였다.

전에 쓰던 책상만 옮겨왔을 뿐이고, 침대와 다른 모든 것들은 새 가구였다.

책장에 익숙한 책들이 보였다.

몇 번 들춰보지도 않았던 책들이 반가웠다.

옷장을 연 강찬은 편안한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낯설었다.

집에 온 것이 아니라 고급 호텔에 들어선 느낌이어서 전에 살던 아파트가 그리웠다.

“후.”

그러나 강대경과 유혜숙을 생각해서라도 이 집에 정을 들이는 게 좋았다.

손을 씻은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복층이다.

계단을 내려와 거실을 거쳐 주방으로 걸어야 했다.

이렇게 걸으면 없던 식욕도 생길 거다.

그나마 강찬을 위로해 준 것은 식탁에 놓인 잡채와 돼지고기 볶음, 김치, 국, 그리고 강대경과 유혜숙이었다.

어쩌면 두 사람은 강찬보다 이 집이 낯설고 불편할지 모른다.

그러니 어떻게 싫은 내색을 하겠나.

“와!”

강찬은 일부러 좀 더 과장된 감탄사를 쏟아냈다.

“얘는! 얼른 앉아.”

“뭐 도와드릴 거 없어요?”

“다 됐어. 얼른 앉아.”

유혜숙이 국을 옮기는 동안, 강찬은 물을 떴다.

“얼른 들자. 많이 들어요.”

강대경을 시작으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제라르는 포크를 놓아주었는데도 굳이 젓가락을 사용했다.

사람은 확실히 적응의 동물이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동작으로 젓가락질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제라르는 매운 음식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는데 김치만큼은 아직 어려운 모양이었다.

방식이 다른 것도 있었다.

이 새끼는 상추쌈을 쌀 때 꼭 젓가락을 사용한다.

그런 다음 먹을 때만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잡았다.

“오늘 친구 구경은 좀 시켜줬니?”

“예. 우선 강남 쪽 보여줬어요.”

높은 데서 내려다보았으니까 거짓말은 아닌 거다.

질문에 답을 한 강찬은 멍한 눈으로 제라르를 보았다.

가을 맞은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는 것도 아니고.

샌드위치처럼 만들어 먹으려고 저러나?

제라르는 앞 접시에 상추 두 장을 나란히 놓은 다음 밥과 돼지고기 볶음을 올리고 있었다.

강대경과 유혜숙도 먹던 것을 멈추고 제라르를 보았다.

주먹을 움켜쥔 것처럼 젓가락을 움직여 돼지고기 볶음을 옮기는 놈의 얼굴이 꽤나 진지했다.

“뭐하냐?”

참다못한 강찬이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제라르가 왼쪽에 있던 상추쌈을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들었다.

“아브지.”

그리고 강대경 앞으로 내밀었다.

강찬은 아차 싶었다.

“어머니가 낮에 저 주신 걸 보고 묻길래 가족 같은 사이에는 그럴 수 있다고 설명했었어요. 그걸 기억해서 저러나 봐요.”

강대경은 사업을 하던 사람답게 표정을 수습했다.

그리고 제라르가 내민 상추쌈을 향해 입을 벌렸다.

“음! 맛있어요! 고마워요!”

강대경의 표정과 말투를 본 제라르가 만족한 얼굴로 다음 상추쌈을 들었다.

“어므니.”

유혜숙이 강찬을 힐끔 보았다.

말릴 수가 없었다.

제라르의 가정사를 알았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먹어봐. 맛있어.”

“그러세요. 어머니. 이번 한 번만요.”

유혜숙이 손을 들어 제라르가 내민 쌈을 받아먹었다.

“맛있어요. 고마워요.”

제라르가 볼의 상처를 늘이며 웃었다.

“제라르. 한 번이면 충분한 거다.”

“알겠습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증평의 새벽은 아직도 추운 기운을 간직하고 있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식사를 마친 비무장 팀 대원들이 버스 앞에 모였다.

“선배님.”

“그래.”

윤상기의 손을 남일규가 잡아주었다.

고작 하루 합동훈련에 하룻밤 같이 지냈다.

그런데도 몇 년쯤 같이 살았던 사람들처럼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증평의 대원들은 세월의 굴곡이 새겨진 선배들의 얼굴이 안쓰러웠고, 비무장 팀 대원들은 이렇게 씩씩한 후배들이 마음에 걸린다.

“곧바로 뵙겠습니다.”

차동균의 말에 강철규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가자.”

강철규가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선배님!”

곽철호가 피를 토할 것처럼 고함을 질렀다.

비무장 팀 대원들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대원들이 약속했던 것처럼 일제히 악을 써댔다.

“선배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남일규가 엉뚱하게 뒤를 향해 시선을 돌릴 때였다.

“부대! 차렷!”

척!

“선배님들께 대해 경례!”

척!

증평의 대원들이 단단한 모습으로 경례를 올렸다.

***

아침은 시리얼과 토스트, 그리고 계란 후라이였다.

흡사 제라르을 위한 식단처럼 보였는데, 뭐 간단한 게 나쁘지 않았다.

넷이서 식탁에 앉았다.

“방은 어떠냐?”

“너무 넓어서 어쩐지 불편하던데요?”

“그렇지?”

강대경 역시 그런 생각이었는지 반가운 표정으로 강찬의 말을 받았다.

“어머니는 어떠세요?”

“나도 그렇긴 한데, 다른 건 몰라도 주방은 정말 마음에 들어.”

“다행이네요. 아버지, 이 집도 정이 들면 포근하게 느껴지겠죠?”

“어디 있느냐보다 누구랑 있느냐가 더 중요한 거 아니겠냐? 아버지랑 엄마, 처음 살던 집이 꼭 이 주방만 했는데 그때도 아버지는 행복했었다.”

강대경의 능청이 재미있어서 웃었는데 제라르가 눈을 껌벅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들어요.”

강대경이 손으로 빵을 가리키며 말을 던지자 제라르가 “고맙승니다.” 하며 웃었다.

애새끼가 눈치는 제법 있다.

“아들, 오늘은 뭐해?”

“둘이 나가서 좀 더 돌아다녀 볼 생각이에요.”

“그래.”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쳤다.

방으로 돌아온 강찬은 옷을 갈아입었다.

일단 제라르와 사무실로 나갈 생각이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김형정입니다. 대테러 요원들이 몽골로 출발했습니다.”]

강찬은 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전화 한 통 안 할 줄 알았다.

원래 그런 영감인 거다.

[“여보세요?”]

“아! 들었어요. 오광택은요?”

[“함께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시간이 어떠십니까?”]

“제가 두 시간 안으로 전화 드려도 될까요?”

[“알겠습니다.”]

강찬은 얼른 전화기의 번호를 눌렀다.

정보총국과의 오해가 풀렸다.

그러니까 제라르를 미쉘에게 부탁해도 그럭저럭 문제가 없을 거다. 아무렴 멀쩡한 놈을 사무실에 처박아 놓는 것보다야 “미쉘!”, “제리!” 하면서 투닥거리는 게 낫지 않을까?

전화를 받은 미쉘은 흔쾌하게 강찬의 부탁을 받아주었다. 그날 있었던 사고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강대경과 유혜숙을 배웅한 강찬은 잠시 있다가 제라르와 집을 나섰다.

이두희가 준비한 차로 사무실로 향했다.

“제라르. 오늘은 국가정보원에 다녀와야 하니까 미쉘과 좀 지내고 있어.”

제라르가 웃는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너도 그러고 싶었던 거지?”

“가브리엘을 찾았기 때문에 정보총국이 날 제거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안심하는 거 아닙니까?”

이 새끼가?

“대장, 그 표정은 뭡니까? 아무렴 내가 다예 같은 멍청이인 줄 알았습니까?”

“야! 요즘 다예 머리 엄청 써.”

“그 새끼가 머리 써봐야 헤딩하는 거겠지요.”

둘이서 프랑스 말로 킬킬거렸다.

차는 한남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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