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11화 (31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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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 정말 잘 가르쳤다.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사무실로 움직였다.

알고 보면 강대경, 유혜숙과 같은 건물로 향한 건데 따로 들어온 꼴이었다.

서울구경?

제라르의 머리를 잡아서 위로 들어주는 거라면 모를까, 칙칙하게 사내놈을 데리고 무슨 궁, 무슨 건물 따위를 돌아다닐 마음은 없었다.

거기에 몰려드는 여자들의 시선도 신경 쓰였다.

“무슨 일입니까?”

제라르의 질문에 강찬은 알기 쉽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정말 그렇게 하셨단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왜요? 그냥 차 팔고, 재단 후원금 받는 건데요?”

“그게 나중에 뭔가 이권을 차지하려고 내민 거라서 문제가 되는 거지.”

제라르는 쉽게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하긴 한국놈, 서양놈을 떠나서 총질만 하던 놈이 이해하기에는 오묘한 부분이 있는 거다.

“그런데 한국에선 음식을 그렇게 입에 넣어주기도 합니까?”

강찬은 피식 웃었다.

유혜숙이 상추에 싼 불고기를 내밀어서 받아먹었다.

오래 떨어져 있던 것이 미안해서 그랬는데 제라르가 보기에는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냥 한국에선 고맙고 감사하다는 표현으로 밥 한번 먹자고 하는데, 가족이나 가족이라고 느낄 정도의 친분이 있으면 그렇게 해.”

“그렇군요.”

제라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뭐 그렇게 틀린 답은 아닌 거다.

“대장. 그러면 한국에서는 가까운 사람의 부모를 어떻게 부르는지 한국말로 알려주십쇼.”

이 새끼가 집에서 함께 지내자니까 별걸 다 따지고 든다.

“아버지.”

“아뻐지.”

“아버지.”

“아부지?”

“그냥 처음 걸로 해라.”

“아브지?”

“그래! 그거 좋다!”

“아브지? 아브지? 그럼 메어(mère, 어머니)는요?”

“어머니.”

“어므니.”

“그래!”

강찬이 픽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무는 동안 제라르가 계속해서 ‘아브지’와 ‘어므니’를 중얼거렸다.

강찬도 어쩐지 ‘아브지와 어므니’가 맞는 말처럼 느껴질 때쯤이었다.

웅웅웅.

강찬의 전화기가 울렸다.

문자다.

전화기를 꺼낸 강찬은 발신 번호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정보총국의 번호였다.

문자를 확인하자 엄지손톱만 한 사진 세 장이 떴고, 아래로 ‘베를린 국제공항’이라는 지명이 찍혀 있었다.

얼핏 보아도 정장 입은 남자 사진이었다.

정보총국이 갑자기 양복을 팔기 시작한 것은 아닐 거고.

강찬은 가장 아래에 있는 사진을 엄지로 눌렀다.

전화기 화면 가득 사진이 확대되었다.

“어?”

강찬의 놀란 소리에 제라르가 고개를 가져왔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제라르! 아니 제라르를 닮은 놈이다.

베를린 국제공항이란 글씨 옆에 작은 숫자로 어제 날짜가 찍혀 있었다.

강찬은 사진을 왼쪽으로 밀어서 다음 사진도 보았다.

선글라스를 낀 놈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지막 사진은 CCTV와 반대편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확실히 제라르의 볼과는 다르게 말끔한 얼굴이었다.

“이게 뭡니까?”

“정보총국에서 보낸 사진인데 밑에 어제 날짜로 베를린 국제공항이라고 적혀 있다.”

보고 나니까, 이렇게 증거가 나오니까 날아갈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확실히 정보총국의 능력은 인정해 줄만 했다.

제라르 역시 정보총국의 능력을 대충이나마 짐작한다.

그래서 강찬만큼이나 후련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사진까지 찍었다는 것은 이미 이 빌어먹을 놈의 뒤를 쫓고 있다는 의미와 같았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비밀이 어느 정도 풀릴 거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강찬이 오묘한 미소와 함께 사진을 노려보는 중간에 라노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감사하다는 전화를 할 참이었다.

“대사님.”

[“사진 확인했습니까?”]

“예. 그렇지 않아도 지금 보던 중이었습니다. 베를린 국제공항에 어제 있었다는 뜻인 게 맞나요?”

[“그 사진으로 강찬 씨의 마음이 조금은 풀렸으면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사님”

강찬은 진심이 가득 담긴 인사를 보냈다.

[“하하하. 강찬 씨는 뜻밖의 상황에서 감동을 줄 때가 있습니다.”]

뭐라고 해도 좋다.

제라르가 그 빌어먹을 CCTV에 있는 놈만 아니면 되는 거다.

[“강찬 씨. 사진 속 남자의 이름은 가브리엘입니다.”]

“가브리엘이요?”

제라르가 깜짝 놀란 얼굴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바실리가 그를 찾았습니다. 가브리엘은 제라르의 작은 아버지의 아들로 정확하게는 사촌 형제입니다.”]

이번엔 강찬이 제라르를 보았다.

사촌 형제를 못 알아볼 정도로 멍청한 놈은 아니다.

[“세르게이 쥐이가 러시아에서 빼돌린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 부분에서 러시아 정보국의 감시망에 걸렸습니다. 강찬 씨.”]

“예.”

라노크가 말끝에 묘한 느낌으로 강찬을 불렀다.

[“가브리엘은 다윗의 별 소속의 요원일 확률이 높습니다.”]

피식.

어쩐지 처음부터 쉽게 갈 것 같지 않았다.

[“제라르가 사라졌던 1년에 비밀을 풀 열쇠가 있을지 모릅니다. 정보총국이 제라르를 심문하기 전에 강찬 씨가 그 비밀을 풀어주었으면 싶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돌렸다가 제라르와 눈이 마주쳤다.

일단 이 새끼가 정보총국의 총에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대사님. 그건 제게 맡겨주시겠습니까?”

[“강찬 씨에게 맡길 마음이 없었다면 사진을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라노크의 말이 강찬의 가슴에 묘한 감동을 남겼다.

“고맙습니다.”

[“조만간 제라르와 함께 식사라도 하지요. 나도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전화기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가브리엘이 네 사촌 형제냐?”

“대장! 그놈은 절대로 나처럼 생기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정보국에서 놈을 찾았단다. 다윗의 별 요원일 확률이 높다는데?”

“흠.”

제라르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생각하자. 일단 누명을 벗었으니까 그걸로 된 거다. 내가 시간 봐서 오광택이한테도 이 사진 보여줄게.”

이제까지 강찬이 속앓이를 했다면 지금은 제라르가 골머리 아픈 얼굴이었다.

“지금부터 알아보자. 가브리엘이란 놈이 왜 너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다윗의 별 요원이 됐는지. 이왕 이렇게 된 거니까 이 기회에 다윗의 별이란 놈들 꼬리를 잡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알겠습니다.”

제라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

국가정보원 삼성동 분실, 김형정의 사무실이다.

황기현은 탁자에 앉아서 김형정이 가져다준 서류를 보며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정말 정보국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부끄러운 모습이었군.”

혼잣말이다.

그래서 맞은 편에 앉은 김형정은 잠자코 있었다.

“위성 자료도 그렇고, 네 나라 정보국이 보유한 기본 자료도 그렇고. 저들은 이름있는 특수팀 대원들의 신상을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말인데…….”

황기현이 천천히 서류를 넘겼다.

라노크와 바실리의 제안에 따라 네 나라의 요원들이 상주할 공간을 삼성동 분실에 마련해 주었다.

가장 먼저 러시아와 중국이 지원해 준 위성을 사용하는 방법과 그 정보를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다음으로 네 나라 정보국이 기본적으로 보유한 자료가 넘어왔는데 내용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황기현은 처참한 얼굴로 서류들을 살폈다.

기본적인 것들을 전해 준 거다.

아무리 강찬이 있다고 해도 저들이 최고급 정보를 넘겨줄 거라고 믿는 건 금치산자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정보들이 국가정보원의 정보와는 차원이 달랐다.

“후우. 마음만 먹으면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간식으로 뭘 먹는지도 알겠군.”

“당장 우리 정보원에서 취급하는 정보에 대한 보안에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황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워라, 김 팀장. 저들이 어떤 모욕을 주고, 어떤 굴욕을 강요해도 이 악물고 배워. 그래서 우리 다음 대는 이런 비참한 심정을 느끼지 않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김형정의 답을 들은 황기현이 자료에서 시선을 들었다.

“증평 상황은?”

“훈련은 오늘로 끝낸답니다.”

“그럼 출발은?”

“내일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김형정이 밑에 깔렸던 서류를 꺼내 황기현이 보기 좋게 놓아주었다.

“증평에서 열 명을 데려가겠다는 건가?”

“휴가로 처리해 달라는 부원장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황기현이 무거운 얼굴로 서류를 노려보았다.

“이번 작전이 실패할 경우, 사직서 따위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짐작하지?”

“알고 있습니다.”

“리비아 건도 국회 동의 없이 파병했어. 가뜩이나 국회 국방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이번 작전이 발각되면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야당 의원이 리비아에서 희생된 요원들과 대원들의 집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훈련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입니다.”

서류에 다시 시선을 주었던 황기현이 결심한 것처럼 시선을 들었다.

“자넨 이 보고서에서 이름을 빼.”

김형정이 놀란 얼굴로 황기현을 보았다.

“대원들에게는 위장 여권을 지급해라. 그리고 이번 작전은 내가 직접 관리했고, 내 전결로 처리한 것으로 하겠다.”

“원장님. 이 작전은 삼성동 분실에서 독자적으로 시행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삼성동 분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됩니다.”

황기현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삼성동 분실을 내놓으면 안 돼. 솔직히 말하자. 나 같은 원장 백 명보다 지금은 강찬 부원장이 소중해. 그러니 삼성동 분실은 어떡해서든 지켜야 한다.”

이를 꽉 깨문 바람에 김형정의 볼이 꿈틀했다.

“다른 정보국에서 우리 특수팀 대원들의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을 테니 위장 여권 지급하고, 보고서는 내 전결로 일괄 처리해.”

“원장님이 자리를 비우시게 되면 어차피 삼성동 분실은 드러나게 됩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대테러 팀은 부원장 직속으로 바꾸고, 내게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삼성동 분실 자체를 국가정보원에서 빼겠다.”

“원장님?”

황기현은 아예 마음이 편해진 얼굴로 김형정을 보았다.

“언젠가 병원에서 내가 요원들에게 한 말 기억하나?”

“알고 있습니다.”

“나는 현장에서 피를 흘리지는 못한다. 대신 이런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요원들에게 약속했었다.”

답을 못하는 김형정을 보며 황기현이 미소 지었다.

“다시는 없을지 모를 기회다. 자네나 나나 이 일이 어떻게 끝나던 이름을 남기지는 못하겠지만, 이름없는 별이 된 요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자.”

김형정은 테이블에 시선을 준 채로 끝내 답을 하지 못했다.

***

대검을 써본 사람은, 근접 격투술을 해본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총이야 한 방에 끝날 수도 있지만, 대검은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말 그대로 피투성이가 되어서야 승부가 난다.

대결이 끝나고 둘 다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

허벅지의 동맥 하나 끊겨도 적을 물리칠 때면 이미 과다출혈로 돌이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격투술을 연습할 때는 방검복을 입고 나무로 만든 검에 석회가루를 바른다.

몸뚱이에 묻은 석회가루가 실전에서는 살이 갈라진 자리를 의미한다.

나무 인형이 아닌 다음에야 칼을 들고 목을 디미는 적은 없다. 그래서 훈련이 끝났을 때 둘러보면 대개는 석회가루를 온몸에 바른 꼴이 된다.

대원들 모두 방검복을 입었다.

특수팀이다.

중국, 북한, 아프가니스탄, 프랑스, 그리고 아프리카를 거쳐 리비아에서의 처절한 전투를 경험한 대한민국 최강의 특수팀 대원들.

선배들 앞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들의 눈에서 번들거렸다.

“양동식.”

“예! 양동식!”

강철규가 나직하게 불렀고, 양동식이 악을 바락바락 쓰며 답을 했다.

“남일규.”

“예! 남일규!”

이번엔 남일규다.

“너희 두 사람이 후배들 앞에서 우선 시범을 보인다.”

“알겠습니다!”

방검복을 입은 두 사람이 대원들의 앞으로 나섰다.

서늘하게 날을 세운 대검을 들었다.

곽철호는 등골이 서늘했다.

훈련에 들어서기 전까지 그렇게 다정하던 선배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버지 죽인 원수를 만난 것처럼 눈빛을 번들거린다.

증평의 특수팀 대원들이 익힌 근접 격투술 자세와 달랐다. 거기에 강찬이 그랬던 것처럼 대검의 날을 아래로 들었다.

핏! 피윳! 턱! 핏! 핏! 터억! 피윳! 피윳!

눈 깜짝할 사이다.

윤상기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상대의 오른손을 막아대며 대검을 휘둘렀는데 남일규와 양동식 모두 방검복의 소매가 너덜거렸다.

피윳! 핏! 핏! 턱! 터덕! 피윳! 피윳!

침을 삼킬 틈이 있어?

두 번째 부딪쳤을 때 양동식의 목에 피가 흘러내렸다.

“이익!”

양동식은 그 상태에서 곧바로 남일규에게 뛰어들었다.

피윳! 핏! 핏! 핏!

그러나 남일규는 잔인할 정도로 냉정한 자세로 양동식의 겨드랑이와 어깨, 그리고 다시 한 번 목덜미를 갈랐다.

“그만.”

강철규의 나직한 음성엔 어기지 못할 힘이 있었다.

남일규가 뒤로 물러났고, 양동식은 그 자리에서 굳은 것처럼 서 있었다.

“양동식.”

“예. 양동식.”

“이리와.”

양동식은 방검복의 목덜미가 흥건하게 젖었을 정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훈련장을 짓눌렀다.

“후배들이 보고 있다. 네놈이 이성을 잃고 칼질하는 꼴을 보자고 여기 모인 게 아니란 말이다.”

“시정하겠습니다!”

마흔이 넘은 양동식이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술 처먹다 시비 붙었어?”

“아닙니다!”

“적을 만났을 때 그렇게 흥분하면 누가 죽어?”

“동료가 죽습니다!”

“고개 돌려 뒤를 봐라.”

강철규의 말에 양동식이 증평의 특수팀 대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작전에서 네놈이 이성을 잃으면 적이 아니라 저 후배들이 죽는다.”

“잘못했습니다!”

양동식의 고함이 애처롭게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그의 목에서 ‘저대로 두면 안 되겠는데?’ 싶을 정도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서 치료해.”

“감사합니다!”

양동식은 바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몇 걸음을 걸어 증평 대원들의 앞에 섰다.

치료하라고 했는데?

실제로 양동식은 정말 치료가 급해 보였다.

증평의 대원들이 무슨 일인가 해서 그에게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후배들아. 미안하다.”

윤상기는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에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내 앞에서 절대로 후배들이 죽게 두지 않겠다.”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말을 마친 양동식이 꿋꿋하게 막사를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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