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10화 (3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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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 정말 잘 가르쳤다.

사람이 정도라는 게 있다.

그 정도를 잔인할 정도로 깨버린 사람을 꼽으라면 차동균은 무조건 강찬을 떠올린다.

아마 증평의 특수팀 대원들 모두 다르지 않을 거다.

그런데 이번엔 떼로 달려드는 괴물을 만난 느낌이었다.

“배는 괜찮냐?”

“어깨가 그래서 어쩌냐?”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후배들의 상처를 보던 선배들이다.

안쓰럽고 안타까워서 대신할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자신의 생살을 찢을 게 분명한 눈빛을 짓던 바로 그 선배들 말이다.

푸슝! 푸슝!

산악전이다.

실탄 훈련에 적응한 대원들이 하는 산악전.

몽골의 기지를 사수하기 위한 훈련이란다.

증평의 특수팀이 침투조, 비무장 특수팀이 방어조다.

산의 중간에 꽂힌 깃발을 뽑으면 끝난다.

차동균은 대원 둘과 바쁘게 방아쇠를 당겨댔다.

스윽!

바닥에서 사람이 올라와 목을 대검으로 긋는다.

훈련용 대검이다.

날이 없어서 망정이지 저 미친 인간……, 선배들은 날을 세웠어도 목을 그어댔을 거다.

그 증거로 날이 없는 대검에 목을 베인 대원들은 살 껍질이 벌겋게 벗겨져 있었다.

푸슝! 퍼억!

차동균이 선배 한 명을 잡았다.

헬멧이 뒤로 벗겨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털썩.

그래서 귀신처럼 흙을 뚫고 나왔던 선배는 이마가 뚫린 것처럼 뒤로 넘어갔다.

이런 방식의 싸움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비무장 팀의 무서움을 새삼 깨달았다.

강찬 덕분이었다.

긴장할 때면 숨소리를 들으라는 강찬의 말을 따랐고, 그동안의 처절한 전투에서 쌓인 경험도 이런 전투를 이겨낼 수 있게 도왔다.

부스럭.

철컥!

차동균은 반사적으로 소총을 돌렸다.

뭔가 근처에 있다.

숨소리! 이럴 땐 무조건 숨소리를 들으라고 했다.

스윽! 철컥!

푸슝! 푸슝!

사람과 하는 대결이 아니라 어디 귀신 밭에 뛰어든 느낌이라면 딱 맞을 거다.

분명 바닥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났는데 총을 쏘았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흙에 숨으면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그런데 시커멓게 죽은 흙에서, 발자국 흔적 하나 없는 오래된 흙을 뚫고 선배들이 올라왔다.

뭔 놈의 인간들이 아직까지 한 발도 쏘지…….

푸슝! 퍼억! 푸슝! 퍼억!

그때 두 발의 총소리가 울리며 차동균을 따르던 대원 둘이 뒤로 처박혔다.

강철규다!

철컥!

차동균이 방향을 짐작하고 소총을 틀었을 때는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겨울의 끝물이었다.

나무는 헐벗었고, 땅은 단단했다.

차동균은 천천히 좌우를 살폈다.

뒤를 지켜주어야 할 대원 둘이 사살된 꼴이라 완벽하게 혼자 남았다.

분명 저 너머에 강철규가 있을 텐데 차동균은 전혀 흔적을 찾지 못했다.

나무와 나무가 겹치는 뒤로 몸을 숨긴 강철규는 한쪽 입술을 올리며 웃었다.

호흡을 듣는 후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저런 후배에게 대뜸 대검을 들이대면 운이 좋아도 함께 죽는다.

차동균이라고 했었다.

증평 특수팀의 실질적 지휘자.

강철규는 자세를 낮춘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훈련은 비무장팀에게 불리했다.

헬멧과 방탄복을 입으면 바닥에 몸을 숨기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렇더라도 저 정도 실력이면 인정할 만한 거다.

깃발의 바로 앞에는 오광택을 숨겼다.

아직 어설퍼서 대원 둘이 도와주었는데도 흔적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오광택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멀리 차동균이 두어 걸음을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강철규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소총을 겨눴다.

목표는 차동균이었다.

스윽!

그의 뒤에서 비무장 팀 대원이 올라왔다.

철컥! 푸슝! 퍼억!

그러나 차동균의 총에 맞고 고개가 젖혀져서 넘어갔다.

저 정도라고?

강철규는 고개를 갸웃했다.

소총을 들고 반응하는 지금의 동작은 특급 수준이었다.

그것도 뒤에서 덮치는 비무장 팀 대원을 상대로.

스페츠나츠나 백랑대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수준.

후배들이 이렇게나 발전했을 줄은 몰랐다.

리비아에서 보았던 것이 우연히 나왔던 실력이 아닌 거다.

소총을 정말 잘 다룬다.

강철규는 가늠자 안에 담긴 차동균을 노려보았다.

방아쇠를 당기면 차동균은 끝난다.

천부적인 감각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노리는 적을 알아채기는 어렵다.

피식.

강철규는 소리 나지 않게 소총을 내렸다.

굳이 저런 후배의 기를 죽일 필요가 뭐 있겠나?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잘 가르쳤다.

스윽!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흙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윽!”

놀라서 지른 비명이었다.

비무장 팀이 증평의 특수팀 한 명을 해치웠다는 뜻이 된다.

이 정도면 됐다.

강철규가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결과야 불을 본 것 같다. 그러나 죽고 살자는 게 아닌 훈련에서는 이 정도가 적당한 거다.

강철규는 무전기에 손을 올렸다.

치잇. “강철규다. 훈련을 종료한다.”

차동균이 긴 숨을 내쉬며 허리를 펴는 것이 보였다.

스윽! 부스스!

그런 차동균의 근처에서 양동식이 흙을 뚫고 올라왔다.

철컥!

“후배! 나야! 나! 훈련 끝났어!”

양동식이 흙이 쏟아지는 손을 위로 들고 외쳤다.

오른손에 든 대검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괜찮지?”

“훈련 끝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가 너무 긴장해서.”

“무슨 소리야? 우리가 어쩌지 못하겠던데! 아직 부상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정말 대단했어!”

양동식이 시끄럽게 움직일 때였다.

강철규와 남일규가 함께 걸어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차동균의 인사에 강철규는 미소 지었고, 남일규는 “굉장하던데!” 하며 대견한 표정을 지었다.

“내려가자. 오후에 한 번만 더 하면 훈련은 충분하겠다.”

강철규의 말에 총구를 아래로 내린 대원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자네 혹시 전투 중에 호흡 소리를 듣나?”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걸 알아보는 법도 있습니까?”

강철규의 질문 하나에 차동균은 두 개의 질문으로 맞섰다.

“동작이 다르지. 결정적인 순간에 그 호흡만큼 방아쇠를 빨리 당길 수 있거든.”

차동균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배우는 사람처럼 강철규에게 집중했다.

“긴장하면 몸이 굳는다. 그건 아무리 훈련받은 대원이라도 마찬가지지. 호흡을 듣게 되면 그만큼 몸이 부드러워져. 그 차이가 방아쇠를 당기는 타이밍과 정확도의 차이로 나오지.”

“차 대위가 호흡을 듣습니까?”

남일규의 질문에 강철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터면 동식이 헬멧에 구멍이 날 뻔했군요.”

“근데 이 새끼가 꼭…….”

확 달려들던 양동식이 강철규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먼저 내려온 대원들이 막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들 했다. 점심 먹고 쉬었다가 근접전 훈련을 할 테니까 준비해라.”

강철규의 말에 대원들이 흩어졌다.

밥을 먹기 전에 흙이라도 씻는 게 좋았다.

“선배님. 근접전 훈련은 어떻게 합니까?”

“이곳 대원들이 다른 동작은 나무랄 데가 없는데 근접전 경험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서. 우리 쪽 아이들이 대검으로 스페츠나츠나 백랑대와 싸웠던 경험이 있으니까 좋은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알겠습니다.”

차동균은 바로 답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대검을 뽑지도 않았는데 움직임만 보고 근접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건가?

“차 대위.”

“예, 선배님.”

“오후에는 날이 서 있는 대검을 준비했으면 싶다.”

“예?”

차동균이 놀란 눈으로 반문한 다음이었다.

“실탄으로 훈련하는 사람이 왜 대검에 놀라?”

강철규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이었다.

***

배불리 먹고 식당을 나섰다.

제라르의 잘 먹었다는 인사를 강찬이 전한 다음이었다.

“바쁘니?”

사무실로 걸어가는 길에서 강대경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오늘은 괜찮아요. 왜 그러세요?”

“차 한잔 할까 하고.”

“그러세요. 저도 부탁드릴 게 있어요.”

“부탁?”

“아 참! 여보. 찬이가 저 외국 친구 우리집에서 같이 있었으면 한대.”

강대경이 힐끔 제라르를 바라보았다.

“당신만 괜찮으면 나야 좋지. 친구가 와서 같이 지내는 건데. 그런데 저 친구가 불편해하지 않겠니?”

“이미 다 말해 두었어요.”

강대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하는 친구냐?”

“예?”

이런 질문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강찬은 얼떨떨한 눈으로 제라르를 보았다.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학생? 직장인? 군인?

“하는 일이 없으면 어떠냐? 당장 일이 없는 게 흉은 아니다. 이런 여행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고.”

강찬의 반응을 본 강대경이 넉넉하게 제라르를 이해하고 나섰다.

외인부대 특수팀 사령관이 단숨에 무직자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강대경은 사무실이 아니라 근처의 커피전문점으로 들어갔다.

“뭐 마실래? 친구는 뭐가 좋은지 물어봐.”

“왜 여기서 드세요?”

“사무실에 친구가 좋아할 만한 차가 없을지 몰라서 여기로 했다. 그러니까 얼른 물어봐.”

강찬은 제라르와 의논해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강대경과 유혜숙은 녹차를 선택했다.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에 주문한 차가 나와서 넷이 차를 앞에 두었다.

“찬아.”

“예.”

강대경이 유혜숙을 한번 본 후에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다. 엄마는 재단을 정부에서 지정해주는 기관에 넘길 생각이고.”

“예?”

강찬은 당장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랑 엄마랑 좀 쉴 생각이거든.”

놀면 병이 나는 양반들이?

어떻게 얻어낸 공트 자동차 판매권인데, 그리고 얼마나 만들고 싶어 했던 재단인데?

“유라시아 철도 발표회 이후에도 조짐이 있었는데, 지난번에 대통령님의 담화 발표 뒤에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워서 엄마랑 의논해 결정한 거다.”

“무슨 일이신데요?”

이해가 되나?

유라시아 철도 발표와 차세대 에너지 사업 발표가 왜 강유모터스와 강유재단을 처분해야 할 이유가 되는지?

“자동차 주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들어온다. 엄마 재단에는 100억이 넘는 기부금 제안이 들어왔고.”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들이켰다.

“자동차 주문과 재단에 기부금 의사를 밝힌 곳이 같은 그룹과 그 계열사들이더구나. 그나마 지금은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인데 만약 네가 차세대 에너지에 깊게 관련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때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

강대경은 만들어낸 것이 분명한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냥 차를 사겠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재단에 돈을 내는 건데 그게 문제가 되나요?”

“법인 차량을 신청한 기업이 그대로 엄마 재단에 기부금 제안도 넣었어. 너와 연결될 고리를 만들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아버지는 그런 차를 팔고 싶지 않다.”

유혜숙이 안쓰러운 것처럼 강찬을 보았다.

“네가 아버지 손에 쥐여주다시피 한 강유모터스고, 네 돈으로 만든 재단이다. 그래서 네 동의를 받고 싶었다. 대신 재단에 넣었던 네 돈의 절반 정도는 아버지가 강유모터스 매각한 돈으로 메워주마.”

“아버지.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어머니는요? 어머니는 돈을 버시려고 시작한 일이 아닌 거잖아요?”

“엄마는 괜찮아. 그러니까 아들, 너무 마음 쓰지 마.”

“그게 어떻게 괜찮으세요?”

강찬은 안에서 화가 치밀었다.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더러운 손길로 강대경과 유혜숙을 욕보이는 거다.

그룹이라면 시쳇말로 배고픈 놈들도 아니다.

법인 차량까지 사는 놈들인 거다.

좀 더 벌어먹겠다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이런 짓을 할 시간과 노력으로 정당하게 벌어먹을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건가?

“아버지 회사 전무님 알지? 그분이 회사를 인수하기로 했다. 우선 반은 넘길 때 받고, 나머지 반은 1년 뒤에 받기로 했다.”

이런 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이 기회에 엄마랑 여행도 다니고, 전에 못했던 공부도 할 생각인데 네가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하셔야겠어요?”

강대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어떻게 해서든 아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눈빛을 하고 말이다.

“아버지. 조금만 더 생각해 보세요. 방법이 있나 알아볼게요. 그런 사람들이 차를 사거나 기부를 한다고 해서 제게 얻을 게 없잖아요?”

“사람 일이 어디 그러냐? 좋을 때야 눈치를 보겠지만, 혹시라도 뭐 하나 잘못되면 이게 너를 옥죌 구실이 될 거다.”

강대경은 의외로 단호하게 뜻을 밝혔다.

제라르가 눈치를 살피는 앞에서 강찬은 시선을 떨구고 말았다.

빌어먹을!

죽어라고 일을 한 결과가 아버지가 몇 년을 노력하던 회사를 팔아야 하고, 어머니의 바람을 날리는 것일 줄은 몰랐다.

차라리 강대경과 유혜숙이 적당히 욕심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싶었다. 숙맥같이 이러지 말고 적당히 눈 감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으면…….

“대장.”

그때 제라르가 강찬을 불렀다.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함께 앉아있기 난처하거나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라르가 강대경과 유혜숙을 향해 미소를 짓고는 몸을 일으켰다.

“잠깐 나갔다 오겠대요.”

제라르가 커피 전문점 여자들의 시선을 모아, 모아서 테라스로 나갔다.

저 새끼……?

그리고는 바로 유리창 건너 빈자리에 앉아 여유 있게 담배를 물었고, 불을 붙였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얼른 시선을 가져왔다.

“프랑스에서는 담배를 가리지 않는데 제가 깜박 잊고 말을 안 했어요. 죄송해요.”

“집에서만 안 피우면 괜찮다. 그리고 한국에 왔으니까 그 정도 에티켓은 알려주는 게 맞지만 심하게 하지는 마라.”

“예.”

제라르가 연기를 뿜어낼 때 여자 셋이 앉아 있던 테이블에서 “어쩜!” 하는 감탄사가 들려왔다.

“저 눈 좀 봐. 안아주고 싶다.”

“몰락한 귀족 분위기 아니니?”

저년은 정체가 뭐길래 한방에 그걸 알아보는 거지?

“찬아.”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결심한 대로 할 수 있게 해다오.”

왜 이렇게 착해 빠졌을까?

어떻게 하면 자식에게 이런 걸 부탁할 수 있는 걸까?

여기서 강찬이 버틸수록 강대경과 유혜숙을 아프게 하는 일이 될까 봐 그게 가장 걱정되었다.

“아버지. 정말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

“그렇게 하자.”

“김 팀장님과는 의논해 보셨어요?”

강대경이 고개를 저었다.

“ 차를 사겠다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냐?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걸 막을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강찬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유혜숙을 보았다.

제라르가 뿜어낸 담배 연기가 유리창에 부딪힌 다음 허공으로 사라졌다.

“아들…….”

유혜숙은 강찬을 부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한 거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로 마음 쓰는 아들이 안쓰러운 거다.

“죄송해요. 그냥 두 분이 얼마나 바라셨었던 일인지 아는데 저 때문에 못하시게 된 것 같아서 그게 속상해서 그래요.”

“아냐, 아들…….”

유혜숙이 울컥했던 눈에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제라르가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인 것을 보고 나서였다.

강찬은 그만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강대경도 보았던 모양이었다.

강찬을 따라 흐느끼는 것처럼 웃었고, 유혜숙 역시 민망한 얼굴로 웃고 말았다.

“저는 신경 쓰시지 마세요.”

“고맙다.”

제라르의 두 번째 담배 때문에 분위기가 나아졌다.

“친구 오래 기다렸다. 그만 일어나자. 아버지가 미안하다고 전해 줄래?”

“예. 그럴게요.”

셋이서 거의 비슷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글쎄요. 이따가 두 분 퇴근하실 때 맞춰서 집에 갈까 하는데요? 제라르 시내 구경도 좀 시켜 주고요.”

“그럼 저녁은 집에서 먹어. 엄마가 저녁 준비할게.”

“예. 그렇지 않아도 자랑하고 싶었어요.”

세 사람이 커피 전문점을 나서자 제라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저녁에 뵐게요.”

“그러자.”

“집에서 봐, 아들. 저녁에 봐요.”

유혜숙이 어색한 얼굴로 제라르에게까지 인사를 전했다.

제라르도 눈썰미는 있는 놈이다.

뭔가 구부정하고 어정쩡한 자세지만 제 나름대로 익힌 인사를 했다.

어쩐지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태권도 대련을 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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