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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혼자 가지는 마라.
솔직히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셋이서 떠들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날아가는 것처럼 흘러버렸다.
“자고 가쇼.”
거기에 아쉬워하는 석강호와 제라르의 표정 때문에 강찬은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세 번째 두들겨 맞고 내가 서럽게 울었잖냐!”
빤한 얘기다.
강찬과 처음 마주쳤던 다예, 그 뒤에 외인부대에 들어갈 때의 상황, 그리고 다예와 제라르가 마주치는 순간부터 으르렁댄 이유들.
몇 번이나 우려먹은 이야기인데도 이상하게 그때 이야기를 하면 킬킬거리고 웃게 된다.
자정쯤 간호사가 석강호의 링거줄에 주사약을 두 개 넣어주었다. 제라르를 힐끔거리면서.
물론 힘들었던 전투 이야기도 떠올렸다.
그러나 가슴에 남겨진 대원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굳이 상처를 들출 필요는 없는 거다.
새벽 한 시가 돼가자 석강호의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주사약의 약효를 이기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자라. 우리도 좀 자야겠다.”
“그럽시다.”
강찬과 제라르도 잠이 부족하던 참이다.
잘 수 있을 때 자는 게 남는다.
대강 씻었다.
안쪽에 남은 침대에 강찬이 누웠고, 제라르는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몸을 눕혔다.
부족한 잠이 천장에서 쏟아지는 것처럼 강찬을 덮쳤고, 침대가 깊게 떨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석강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강찬도 깊은 잠에 빠졌다.
***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은 강철규는 대원들과 함께 오전 9시에 방을 나섰다. 국가정보원 요원 두 명이 체크아웃까지 깔끔하게 챙겨주었다.
호텔 입구에 버스가 서 있었다.
강철규가 올라 통로에 서자 남일규가 “전원 탑승했습니다.” 하고 간단하게 보고를 마쳤다.
버스가 출발했음에도 강철규는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오늘 증평으로 간다.”
모이라는 말만 했지, 어디로 왜 가는지는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곳에서 후배들과 합동훈련을 할 예정이다. 이후의 일정은 훈련이 끝난 다음에 알려주겠다. 후배들과 함께하는 훈련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있다면 악착같이 하나라도 더 전해준다.”
말을 마친 강쳘규가 버스 안을 둘러 본 후에 오광택의 옆자리에 앉았다.
“저도 훈련합니다.”
“오 대표는 부담 갖지 않아도 돼.”
“왜 이러십니까? 무조건 할 겁니다.”
강철규는 특유의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앞을 달리는 검은색 승용차와 뒤를 따르는 검은색 승합차를 대원들 모두 보았다.
“야. 저거 우리를 호위하는 거겠지?”
“그런 거 같다.”
양동식이 질문을 던졌고, 남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씨발!”
뜬금없는 양동식의 욕이었다.
남일규가 힐끔 보았을 때 그는 창으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현역 때도 못 받아봤던 대우를 받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이걸 죽은 우리 마누라가 꼭 봤어야 하는데. 나 이제 죽어도 마누라에게 당당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너 딸 하나 있었잖아? 걔는 뭐하냐?”
“소미? 그년은 말도 마라. 신월동인가에서 중국집 한다는데 전화도 제대로 안 받는다.”
남일규가 못 들은 척 시선을 돌렸다.
이 버스에 탄 대원들 거의 전부가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
한창 예쁠 때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고, 철이 들 때쯤의 아버지는 능력 없이 사회에 내팽개쳐진 퇴물이었다.
쥐꼬리만 한 연금, 비무장 지대에서 겪은 처절한 살육전에서 생긴 트라우마, 그런데 사회에서 겨우 얻은 직장은 대개가 막노동이었다.
지금처럼 경호회사라도 몇 개 있었다면…….
조직폭력배가 된 전우도 있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군에서 배우고 익힌 건 사회에서 전혀 쓸모가 없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힘으로 찍어 누르려 하는 걸 견디지 못했다.
깡패?
지랄들 하는 소리다.
마음만 먹으면 모가지를 홱 돌려 죽여버릴 수 있고, 팔 하나쯤 꺾어버리는 건 일도 아닌 거다.
새파란 깡패에게 고개 숙이라고?
고급 승용차를 몰고 온 건물주 아들놈에게 머리 조아리라고?
누구 때문에 마음 편히 차 몰고 건물 짓는데?
회칼 따위 애교처럼 보이는 삶을 살았다. 그러니 깡패가 무서워야 고개를 숙일 게 아닌가.
세상에 대한 억울함도 있었다.
서운하고 분한 것이 터져 나온 것도 있었다.
가끔 양동식과 둘이서 술 처마시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깡패 여럿 두드렸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언제고 태극기를 보면 눈물이 쏟아지는 거다.
“야!”
양동식이 남일규의 생각을 깨웠다.
“우리 월급 나오는 거지?”
“몽골에 갈 때부터 월급은 나왔잖아. 왜?”
“그럼 죽었을 때 국가 유공자 연금도 나올까?”
양동식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게, 소미 년이 요즘 힘든 모양이더라구. 월급이야 내가 보내주면 되는데 혹시 죽어서 유공자 연금이 나오면…….”
“씨발 놈이.”
양동식이 남일규의 눈치를 살폈다.
“야, 이 새끼야! 끝까지 살아서 강 선배 뒤를 지킬 생각은 안 하고, 뭐 유공자 연금? 이 씨발 놈이! 연금이 세겠냐? 월급이 세겠냐? 이 돌대가리 새끼야!”
“야!”
양동식이 목소리를 낮추라는 표정으로 강철규를 힐끔 보았다.
강철규가 타고 있는 버스다.
남일규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들었다.
심지어 오광택까지 말이다.
***
확실히 무언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차동균과 곽철호,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혈받았던 대원들의 회복이 다른 대원들에 비해 월등히 빨랐다.
강찬이 부상을 당한 몸으로 굳이 수혈한 이유가 이건가?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한 건가?
하지만 섣불리 말하기 어려워서 차동균과 곽철호만 대강 짐작할 뿐이었다.
완벽하게 복장을 갖춘 대원들이 증평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일 계급 특진이다.
차동균은 대위를 달았고, 곽철호는 중위가 되었다.
그리고 특수팀을 책임지는 박철수는 별을 달았다.
입구 쪽에서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승용차가 먼저 들어섰다.
그를 따라 버스가 막사 쪽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부대! 차렷!”
윤상기의 고함이 차의 엔진 소리를 이겨냈다.
버스가 막사 앞에서 멈춘 다음이었다.
치이익.
문이 열렸고.
“경례!”
척!
증평의 특수팀 전원이 버스를 향해 경례를 붙었다.
강철규가 먼저 내렸다.
그리고 대원들을 향해 섰다.
이어서 내려온 대원들이 감격한 표정으로 강철규의 뒤에 섰다.
강철규가 대표로 경례를 했다.
“바로!”
척!
“어서 오십시오.”
차동균이 앞으로 나가는 것을 신호로 증평의 특수팀이 일제히 비무장 팀 대원들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어깨 때문에 힘들 텐데 왜 이러고 있었어?”
남일규가 곽철호의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눴다. 다른 대원들 역시 비슷한 모습이었다.
“선배님.”
승용차에서 내려 기다리던 김형정이 요원 한 명과 강철규에게 다가왔다.
“선배님들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언지 모른다.
하지만 김형정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강철규가 시선으로 지시하자 비무장 팀 대원들이 모두 그의 뒤에 섰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선배님들을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특수요원으로 임명합니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무기를 받은 대원들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김형정의 말을 듣자 비무장팀 대원들은 슬며시 감동이 올라오는 얼굴이었다.
김형정의 뒤에 있던 요원이 들고 있던 요원증을 김형정에게 건네주었다.
김형정은 강철규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살아서는 그림자, 죽어서는 이름없는 별이 됩니다. 영혼은 태극기에, 뜨거운 피는 조국에 묻겠습니까?”
강철규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요원증을 받았다.
다음은 남일규다.
“우리는 살아서는 그림자, 죽어서는 이름없는 별이 됩니다. 영혼은 태극기에, 뜨거운 피는 조국에 묻겠습니까?”
“예.”
남일규가 단단한 얼굴로 분명하게 답을 했다.
태극기란 말만 들었는데 또 눈물이 울컥 올라왔다.
***
좁은 병실 화장실에서 교대로 샤워를 마쳤다.
제라르가 사 두었던 셔츠와 속옷 덕분에 옷도 갈아입을 수 있었다.
아침은 석강호가 노래를 부른 갈비탕을 시켜서 먹었다.
“어! 살 것 같다.”
석강호가 그릇을 뒤집다시피 해서 국물을 마시고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제라르도 입에 맞는 모양인지 제법 먹었다.
하긴 아프리카에서 역겨운 음식들도 견뎌왔던 세 사람이다. 이 정도면 그냥 훌륭한 거다.
“오늘은 뭐할 거요?”
“아버지랑 어머니 뵈러 가려고.”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유헌우가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어? 언제 왔어요?”
“어젯밤에 와서 여기서 잤습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 다음이다.
유헌우가 석강호의 상처를 살폈다.
“저분이 우리말 알아듣나요?”
“아뇨. 그렇진 않아요.”
“그렇다면 말해도 되겠네요. 상처 치유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이대로라면 강찬 씨보다 빠르다고 할 정도입니다.”
강찬은 석강호를 돌아본 다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좋은 거 아닌가요?”
“너무 빠른 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말했던 대로 노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으니까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반대의 경우요?”
“알기 쉽게 표현하면 젊어진다는 건데 말이 그런 거지 실제로는 굉장히 위험한 현상입니다. 돌연변이 세포가 생기면 손을 쓰지도 못합니다.”
강찬은 심오한 표정으로 석강호를 보았다.
피가 나거나 살이 갈라진 게 아니라서 어쩐지 유헌우의 경고가 실감 나지는 않았다. 막말로 강찬도 그런 이유로 조직 검사까지 했는데 지금껏 멀쩡한 거다.
“하여간 지켜봅시다. 석 선생님은 조금만 이상한 점이 생기면 반드시 알려 주세요. 아셨죠?”
“그러지요.”
석강호의 답을 들은 유헌우가 인사를 나누고는 병실을 나섰다.
“내가 많이 먹는 게 회복력이 좋아지려고 그랬던 거 아뇨?”
“그거야 모르겠는데 저녁에 한번 물어보기는 해라.”
“알았소.”
“그럼 우린 간다.”
당장 조치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다.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초이!”
제라르가 반가운 얼굴로 최종일과 인사를 나눴다.
“좀 더 쉬지?”
“제 안식구 아시잖습니까? 쉬는 동안 부원장님께 일 생기면 책임질 수 있냐고 눈을 부라리는 바람에…….”
우희승과 이두희가 웃음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렸다.
주차장에서 이럴 게 아닌 거다.
강찬은 병원에 타고 왔던 차를 탔고, 그 뒤를 최종일 조가 따라왔다.
대략 20분쯤 걸려서 강찬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전망이 기가 막힙니다.”
탁자에 앉은 제라르가 머그잔을 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원들에게 연락 한번 해 줄래? 아버지와 어머니 건물에 계신지?”
최종일이 대답을 하고 요원들과 무전을 했다.
“아마 아래층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실 거야. 이거 마시고 인사드리러 가자. 그리고 오늘부터는 집에서 지낼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어쩌면 호텔이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놈을 그런 곳에 두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함께 있자고 온 놈이니까 말이 안 통하더라도, 불편하더라도 이렇게 함께 다니는 게 맞는 거다.
거기에 CCTV의 비밀이 풀리기까지는 제라르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강찬은 느긋하게 커피를 마셨다.
궁금한 것도 있었다.
완벽하게 사라졌었다는 1년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제라르가 말할 때까지 물을 생각은 없었다.
아프리카로 갈 때의 강찬 같을 수 있는 거다.
절대로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상처.
아비부의 방문과 몽골 기지의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당장은 마음이 홀가분했다.
“두 분 모두 사무실에 계신답니다.”
최종일이 무전의 결과를 알려주었다.
인사가 급한 일은 아니다.
제라르와 나누는 이런 여유가 나쁘지 않아서 조금은 여유 있게 커피를 즐겼다.
“가자. 너는 프랑스에서 온 친구라고 말씀드릴 거다. 두 분 모두 프랑스 말을 모르니까 우리끼리는 편안하게 말을 하면 돼.”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최종일과 우희승이 함께 움직였는데 말린다고 들을 것이 아니어서 그대로 두었다.
오전 11시쯤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강찬은 우선 유혜숙의 재단 사무실로 갔다.
최종일이 무전으로 점검한 이후다.
복도에 나와 있던 차민정이 반가운 얼굴로 아는 체를 했다.
강찬은 사무실 안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느냐는 뜻이다.
차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
유혜숙을 놀라게 하는 일에 재미가 들린 얼굴이었다.
똑똑똑.
노크를 한 강찬은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니.”
요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유혜숙이 멍한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아들!”
그리고 최면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강찬을 향해 움직였다.
“언제 왔어?”
“지금요.”
강찬의 곁에 서 있는 제라르 때문인지 유혜숙은 강찬을 안지 못했다. 대신 강찬의 손과 팔을 꼭 잡고 있었다.
“어머니. 프랑스에서 온 친구예요. 제라르라고 해요. 제라르, 이분이 어머니.”
“안용하세요?”
제라르가 서투른 한국말로 인사했다.
“어서 와요.”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인사였다.
강찬은 유혜숙, 제라르와 함께 소파에 앉았다.
그동안 괜찮았냐는 질문에 답을 했고, 이사했다는 말을 들었다.
“김 팀장님이 알려주셨어요. 전 또 제가 속 썩여서 몰래 이사하신 줄 알았어요.”
“그런 말이 어딨어?”
워낙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나는 일이 잦은 데다, 제라르까지 있어서 유혜숙은 전처럼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줄곧 시선을 강찬에게 주는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제라르가 그런 유혜숙을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살폈다.
“아버지 뵈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점심도 함께 먹게요.”
“그럴까?”
“예. 그리고 이 친구 오늘부터 집에서 함께 지내고 싶은데 아버지께 허락받을 수 있게 어머니가 좀 도와주세요.”
“얘는! 아빠는 그런 거 더 좋아하실 거야.”
“어머니는 괜찮으신 거지요?”
“그럼.”
강찬은 유혜숙, 제라르와 함께 강대경의 사무실로 움직였다.
“이 녀석!”
강대경이 유혜숙보다 좀 더 격하게 강찬을 맞았다. 게다가 확실히 강찬의 위아래를 살피기까지 했다.
“아버지. 프랑스에서 온 제라르라는 친구예요.”
“반가워요.”
“안용하세요?”
제라르가 또다시 어색한 한국말로 인사했다.
“앉아서 차 한잔 할 시간 되니?”
“어? 아버지께 점심 사달라고 할 참이었는데요? 바쁘세요?”
“그래? 그러면 더 좋지. 가만있자. 뭘 먹어야 하지?”
“이 친구는 한국 음식 잘 먹어요. 그냥 맛있는 거 사주세요.”
“그래? 그럼 우리 불고기 먹으러 가자.”
“그러세요.”
이상하게 외국인에게 밥을 먹이라면 첫 번째로 불고기를 떠올린다.
그래도 강대경의 제안이었다.
강찬은 두말하지 않고 강대경을 따라나섰다.
식당은 사무실 뒷골목에 바로 있었다.
길에서 마주친 여자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로 다 함께 식당에 들어갔다.
불고기다.
강찬이 많이 먹으라는 강대경의 말을 전해주었고, 제라르가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했다.
좋았다.
제라르는 움켜쥔 것처럼 젓가락을 움직여 고기를 먹었고, 심지어 국물을 떠서 밥에 비비기까지 했다.
눈빛과 표정, 그리고 함께 나누는 감정으로 안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강찬을 아끼는 마음을 말이다.
제라르가 묘한 얼굴로 강찬과 강대경, 유혜숙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유혜숙이 강찬을 챙기는 것을 보면서 웃곤 했다.
대강 식사가 끝났을 때였다.
“음식 괜찮냐?”
강찬이 질문을 던졌고,
“이렇게 행복하게 느껴지는 식사는 처음이었습니다.”
제라르가 나직하게 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