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6 / 0419 ----------------------------------------------
16-8 믿었기 때문에.
둘이서 오광택이 좋아하는 허름한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것도 좀 먹어.”
집 나갔던 아들이 돌아오면 이럴 거다.
주인 할머니가 연신 이런저런 반찬을 가져다주며 오광택의 등을 쓸어댔다.
“그만 가져와. 밥 다 먹었어.”
“어째 그래? 한 공기 더 먹어.”
“벌써 두 공기 먹었어.”
이 새끼가 귀염을 떨어?
강찬은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물을 마셨다.
유혜숙이 보고 싶었다.
또 그런 생각 때문인지 어울리지 않게 응석을 부리는 오광택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놈에게는 주인 할머니가 어머니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더 지켜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 가자.”
“그래.”
둘이서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어디가! 커피 한잔 하고 가.”
할머니가 주방에서 머리를 빼고 오광택을 붙들었다.
“바빠서 가봐야 돼.”
“서운하게 왜 그래?”
“지금은 가야 한다니까.”
오광택을 따라 주인 할머니가 문 앞까지 나왔다.
“들어가. 왜 그래? 오늘따라!”
“또 올 거지? 밥 꼭 먹고 다니고.”
오광택이 속 썩이는 아들처럼 웃었다.
“갈게.”
아쉬움 가득한 할머니를 외면한 채로 오광택이 호텔로 걸음을 옮겼다.
높다랗게 뜬 해가 그림자를 짤막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난 여기서 올라갈 테니까 넌 볼일 봐라.”
“강 이사 만나는 것까지 봐야 안심할 거 같으니까 그냥 가자.”
“야! 나 오광택이라니까!”
“알아, 이 새끼야. 신사동 오광택이! 커피에 담배 하나 하고 가자. 이도 좀 닦고.”
강찬이 던진 욕을 처먹은 오광택이 픽 하고 웃은 다음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광택의 방으로 올라가 커피를 마신 강찬은 바로 강철규가 사용하는 방으로 함께 움직였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어쩌면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달칵.
문이 열렸는데 안에 남일규와 양동식을 포함해 서너 명의 비무장 팀 대원들이 보였다.
“난 약속이 있어서 바로 갈게.”
강찬의 말에 강철규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오광택 역시 힐끔 시선을 준 것이 전부였다.
강찬은 바로 엘리베이터로 움직였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갔다.
로비를 거쳐 호텔 입구로 나갔는데 말을 하지 않아도 승용차가 다가왔다.
강찬은 차의 뒷좌석으로 올라탔다.
“프랑스 대사관으로 가줘. 참! 무전기하고 권총 여분 있는 거 있어?”
“예. 지금 드릴까요?”
“아니. 대사관에서 나오면 그때 줘.”
잠이 부족해서인지 하품이 나왔다.
창밖은 늘 그렇듯이 평화로워 보였다.
지나가는 차 속의 사람과 걷는 사람들.
저들이 다 행복하지는 않을 거다.
분명 저 중에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사람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래도 강찬이 느끼는 세상과는 확실히 다른 평화로움이 있었다.
어쩐지 사자의 꼬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마음 같으면 ‘너 그냥 잘 살아라.’하고 버려두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차세대 에너지나 유라시아 철도와 연결되어 있을 거란 기분 나쁜 확신이 강찬을 옭아맸다.
아프리카 구덩이에서 강찬을 노려보던 블랙헤드처럼 말이다.
모처럼 온 프랑스 대사관이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루이가 건강해진 얼굴로 강찬을 맞았다.
둘이서 눈인사를 나누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무슈 강.”
“대사님”
깔끔한 정장 차림의 라노크가 반가운 표정으로 강찬을 맞았다.
“앉읍시다.”
강찬을 기다렸던 것처럼 홍차 주전자와 비어있는 잔 두 개, 그리고 시가와 담배, 재떨이가 탁자에 올려져 있었다.
쪼로록.
홍차 특유의 떨떠름한 냄새가 훅 끼쳤다.
차를 따른 라노크가 강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리비아 일은 더할 수 없이 멋지게 처리했으니 그 일은 아닐 거고?”
홍차 잔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가면서도 라노크는 강찬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대사님. 사실은…….”
강찬은 서도석이 습격당했던 일과 오광택이 우연히 제라르를 만나게 된 과정, 그리고 어제 동영상을 확인하며 있었던 일까지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흠.”
라노크가 시가를 들어 불을 붙였다.
“이후에 급한 약속이 있나요?”
“저는 괜찮습니다.”
라노크가 시가를 손가락에 꽂은 채 책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예. 대사님.”]
확실히 안느의 음성이었다.
“한 시간쯤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약속들을 조절하도록.”
[“알겠습니다.”]
그 흔한 부탁한다는 말조차 않는다.
강찬은 업무를 처리하는 라노크의 성향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혹시 그 동영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
강찬은 홍차 잔을 내려놓고 USB를 꺼내 라노크에게 건네주었다.
다시 책상으로 움직인 라노크가 몇 가지를 조작하더니 벽에 걸린 TV에 동영상을 띄워놓았다.
TV 화면에 가득한, 선글라스를 끼고 고개를 살짝 튼 남자의 얼굴을 라노크가 유심히 바라보았다.
딸칵.
버튼을 누른 라노크가 서랍에서 노란 커버의 서류철과 USB를 가지고 와서 강찬에게 건네주었다.
“정보총국에서 저 사건에 대해서 조사를 했었습니다.”
라노크의 손가락에서 꽂힌 시가가 진한 연기를 피워올렸다.
“그리고 의심스러웠던 정보 부국장 둘을 제거했었습니다. 강찬 씨가 프랑스에서 스페츠나츠와 대결을 벌였을 때입니다.”
“증거가 없었나요?”
“증거를 찾았다면 다른 방법으로 처리했을 겁니다. 그들의 배후를 알아본다는 이유로 그대로 두기에는 일들이 너무 긴박하게 흘렀으니까요.”
시가의 재를 떨어낸 라노크가 눈짓으로 건네준 서류철을 가리켰다.
“보시면 흥미로울 겁니다.”
라노크는 완벽하게 가면을 뒤집어쓴 얼굴이었다.
솔직하게 보고 싶지 않았다.
이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더는 얽히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강찬은 말없이 노란색 커버를 넘겼다.
그리고 나직하게 숨을 들이켰다.
‘제라르…….’
첫 장의 왼편 위쪽에 강찬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사진은 분명 제라르였다.
“강찬 씨의 명령으로 외인부대 특수팀 사령관이 되었을 때 그에 대해 정밀히 조사한 보고서입니다.”
강찬은 다음 장을 넘기기 전에 라노크를 보았다.
“제라르 드 미르미에. 무너진 귀족 가문 출신, 그래서 제라르 쥐이라는 이름으로 입양되어 성장했습니다.”
라노크가 말한 내용이 앞면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제라르 쥐이라는 이름을 준 그의 양아버지 이름이 세르게이 쥐이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기 전에 스페츠나츠로 활동했던 대원입니다.”
개새끼가 하필이면 그런 집에 입양이 된 거지?
입안에 침이 고였는데 삼키지도 못했다.
라노크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바실리가 그를 알고 있더군요. 오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능력이 좀 있다는 모든 정보국의 정보 책임자는 거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강찬은 잔을 들어서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뒷장을 보시면 흥미로운 사진이 있을 겁니다.”
정말 넘기고 싶지 않았다.
어쩐지 제라르의 뒤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고, 이런 행동이 해서는 안 될 죄를 짓는 느낌이어서였다.
어떻게 할까?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다시 덮으면 보지 않은 내용이 계속해서 강찬을 괴롭힐 게 분명했다.
사각.
사진을 넘기자 왼편 위쪽에 늙은 남자의 얼굴이 있었고, 아래쪽으로 상점 앞 인도에 자빠져 있는 남자의 사진이 있었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세르게이 쥐이는 길을 걷는 도중에 칼에 찔려 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에 보이는 양어머니와 딸은 각각 다른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사각. 사각.
못생긴 프랑스 여자와 확실하게 죽은 두 사람의 딸인 것 같은 젊은 여자의 사진, 그리고 완벽하게 찌그러진 소형 승용차와 바닥에 널브러진 딸의 모습이 있었다.
담당 경찰관, 사건의 내용이 요약본으로 적혀 있었다.
양어머니는 소형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트럭에 받혔고, 딸은 오토바이에 치여서 즉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더럽게 이상한 거다.
이렇게 세 사람이 죽은 데 분명 이유가 있는 거다.
사각.
이왕 볼 거라면 제대로 봐주고 싶었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긴 강찬은 시선을 고정한 채 다음 장을 넘기지 못했다.
밑단이 널따랗게 퍼진 촌스런 바지를 입은 아이 제라르가 강찬을 향해 애처로운 눈을 하고 서 있는 사진 때문이었다.
출신 학교, 성적, 성격.
성적은 형편없었다.
사각.
사진 속에서 제라르는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키도 자랐고, 무엇보다 지금 보는 눈매로 바뀌고 있었다.
사각.
그리고 외인부대 입대 신청서였다.
이후는 작전에 투입된 전력, 성과, 평가, 그리고 상훈 내용 등이었다.
“외인부대에 입대하기 전 1년이 완벽하게 빕니다.”
노란 커버를 덮어 탁자에 내려놓는 순간에 라노크가 무겁게 말을 건넸다.
“정보총국에서도 알아내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외인부대에 지원한 겁니다.”
강찬은 탁자에 놓인 담배를 집어 들었다.
“대사님. 동영상 속의 남자가 찍힌 시간에 제라르가 아프리카에 있었는지를 확인하면 알게 될 일입니다.”
“저 남자가 그의 말대로 르미에르 피를 타고난 사촌인지에 대해서는 정보총국을 이용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찰칵.
강찬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자꾸만 제라르의 사진에서 보았던 어린 제라르의 애처로운 눈빛이 어른거렸다.
“후우!”
강찬은 담뱃재를 재떨이에 떨며 라노크에게 시선을 들었다.
지금은 마음을 굳게 먹을 때였다.
“대사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아는 대로 말씀드리지요.”
“왜 샤흐란을 지금껏 로리암에 두신 건가요?”
“그가 이튼과 손잡고 블랙헤드를 빼돌리려 했다는 정황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튼은 영국에서 지층충격장치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건 다 아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샤흐란이 왜 한국에 왔는가 하는 겁니다. 그것도 공트 자동차에 마약까지 담아서. 물론 이튼이 나를 노린 거라면 답이 됩니다. 하지만 나는 샤흐란이 다윗의 별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공작을 진행한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라노크가 시가를 재떨이에 눌러서 껐다.
“이튼은 그런 일을 하면서 내 눈을 속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조쉬. 영국 정보국의 부국장입니다.”
“그게 샤흐란을 살려두는 이유가 됩니까?”
라노크가 눈 끝에 가벼운 웃음을 달았다.
“우리가 샤흐란을 제거하면 다윗의 별은 근심 하나를 덜게 됩니다. 반대로 지금처럼 계속 데리고 있으면 언제 입을 열지 모르는 근심거리가 되지요.”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더럽게 복잡하게 산다.
문제는 좋든, 싫든, 그런 일들이 끈적거리는 테이프처럼 강찬에게 달라붙는 거였다.
“우선 동영상 속의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사님. 정보총국이라면 샤흐란이 어떤 경로로,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인천에 있었는지를 충분히 알아봤을 것 같은데요?”
“복잡할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지금 던진 질문에 연결된 나라만 중국, 북한, 영국, 프랑스, 한국의 다섯 나라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동영상 속 남자의 신원을 밝히는 게 우선입니다.”
또 뭐가 있는 건가?
양파도 아니고 어떻게 열어도 열어도 안이 가려져 있는 건지, 이러다가 정작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닐까?
정말 양파 같으면 냅다 잘라버리기라도 할 텐데.
라노크가 주전자를 들어 홍차를 채워주었다.
“제라르는 어디에 있습니까?”
“점심 먹을 겸해서 외출했습니다.”
“내가 1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제라르를 특수팀 사령관에 임명하도록 한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강찬을 바라본 라노크가 오늘 처음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담은 표정을 떠올렸다.
“강찬 씨를, 강찬 씨의 판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같은 순간에 이보다 위로가 되는 말이 있을까?
어수선하고 복잡했던 가슴속이 한순간에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강찬 씨가 급하게 해야 할 다른 일이 있습니다.”
강찬의 시선을 받은 라노크가 다독이는 것처럼 미소 지었다.
***
압구정동의 대형 한식당에서 불고기를 먹은 제라르와 미쉘은 근처 공원 옆에 있는 작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지하 1층의 카페였다.
카페 입구가 계단을 내려가 저 안쪽에 있어서 계단 옆에 있는 탁자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뭐 마실래요?”
“커피가 좋겠소. 여기서도 봉지 커피를 팝니까?”
“봉지 커피요? 그런 건 여기서는 안 팔아요.”
“알았소. 그냥 커피 한잔 마십시다.”
제라르가 지친 얼굴로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직원이 다가와서 재떨이와 물을 놓아주고 주문을 받은 다음 안으로 사라졌다.
“음식이 안 맞았어요?”
“괜찮았소.”
제라르가 담배를 입에 무는 동안 미쉘도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철컹. 치이익. 치이익.
그런데 제라르가 꺼낸 지포 라이터가 불이 붙지 않았다.
찰칵.
미쉘이 가스라이터를 켜서 제라르에게 디밀었다.
“후우.”
둘이서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쯤 직원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성격이 어떤지는 상관할 바가 아니니까 말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성의를 대놓고 무시하지는 마세요.”
힐끔.
“사람 그런 식으로 보는 것도 고치고요! 기분 나쁘게 웃는 것도 좀 바꾸세요.”
제라르가 볼의 상처를 꿈틀거리며 웃었다.
“차라리 입에 안 맞는다고 하던지, 내내 불편한 얼굴로 그게 뭐예요? 대접한 사람 무안하게.”
“음식은 괜찮았소. 맛도 있었고.”
달칵.
커피를 마신 제라르가 잔을 내려놓았다.
“대장이 나를 부탁할 정도면 어느 정도 믿는 사람이라는 건데…….”
강찬의 이야기다.
미쉘이 확실하게 시선을 들어 제라르를 보았다.
“난 한국에 올 때 이런 옷이나 비싼 음식을 원했던 게 아니요. 그냥 대장하고 다니면서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총과 죽음이 없…….”
말을 하던 제라르가 아차 하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차니가 가끔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다고 힘들어하는 건 봤었어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그런 종류의 일을 하는 분인가요?”
제라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앞에서는 그런 걸로 힘들어합디까?”
“굉장히 슬픈 얼굴이었어요. 그래서 물었더니 그런 말을 했었어요.”
제라르는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웃었다.
“재미없는 얘기는 그만합시다.”
미쉘은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보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것 더 없어요?”
“불고기 먹었으면 됐소. 이거 마시고 호텔로 돌아갑시다.”
본인이 가겠다고 한 거다.
미쉘도 더는 말없이 그냥 커피만 마셨다.
“계산하고 올게요.”
“내가 사겠소.”
“오늘은 그냥 내가 낼게요.”
미쉘이 안으로 들어가 계산을 하고 나왔다.
계단을 올라간 두 사람은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부아앙.
그때 요란한 엔진 소리가 들렸다.
홰액!
제라르가 미쉘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번쩍하는 순간에 미쉘의 앞에 있었다.
콰악! 퍼버벅! 콰다당!
부으으응!
길의 한쪽에 처박힌 스쿠터가 엔진 소리를 쏟아냈고, 랩에 싸인 짜장면과 짬뽕이 길에 널브러졌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스쿠터를 몰던 남자는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죽은 것처럼 쓰러져 있었다.
“이게 무슨 짓……?”
겨우 고개를 돌린 미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끔찍할 정도로 번들거리는 제라르의 눈빛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미쉘이 제라르를 진정시키기 위해 억지로 말을 꺼낸 다음이었다.
제라르가 고개를 틀어 미쉘을 보았다.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한순간 제라르의 눈빛이 울기 직전처럼 애처롭게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