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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여기 살아야겠다.
강대경과 유혜숙은 김형정이 소개한 빌라에 들어선 이후로 입을 닫지 못했다.
복층 빌라다.
거실에서 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강대경은 ‘거실 등이 나가면 저걸 어떻게 갈지?’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주방은 한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거실에서 왼편으로 돌아 계단을 세 개쯤 올라서서 있었다.
“세상에……!”
유혜숙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방을 둘러보았다.
벽에 완벽하게 몸을 감춘 냉장고와 오븐.
대리석으로 주방을 감싼 것처럼 놓인 식탁, 그리고 벽에 살짝 붙은 고리를 당기면 나오는 보조 식탁.
인덕션, 4구짜리 가스레인지.
김형정이 기다리고 있어서 강대경과 유혜숙은 얼른 몸을 돌렸다.
“아래층에 방이 두 개, 위층에 두 개가 있습니다.”
달칵.
거실을 가로 지른 김형정이 문을 열자 역시나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방이 나왔다.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고개만 넣고 두리번거리는 두 사람에게 김형정이 웃는 낯으로 권했다.
드르륵.
옷장이 역시 벽으로 들어가 있었고,
달칵.
거품욕이 가능한 욕조와 샤워부스,
달칵.
그 옆으로 별도의 화장실까지.
강대경은 이번에도 천장을 확인했다.
거실부터 주방, 그리고 안방에도 천장에 에어컨이 설치되었다.
“작은 방을 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강대경이 빠르게 답을 했다.
세 사람은 거실로 나왔다.
“저희보고 여기에서 살라는 말씀이십니까?”
“부탁드리는 겁니다.”
유혜숙이 긴장한 얼굴로 강대경의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앉아서 차라도 드시면서 말씀하시는 게 어떨까요?”
김형정이 손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TV에서 오디오, 침대까지, 어지간한 가전제품과 가구는 모두 있었다.
김형정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한 강대경과 유혜숙이 불편한 자세로 소파의 끝에 걸터앉은 다음이다.
김형정이 왼손 소매를 입으로 가져갔다.
“차 좀 가져다주지?”
요원들을 봐왔던 강대경과 유혜숙이다. 그래서 무전 하는 김형정의 모습을 거부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에 대통령님께서 발표하신 내용을 알고 계십니까?”
“그거야……, 예.”
강대경이 어색하게 답을 했다.
“유라시아 철도가 연결되면 우리나라는 엄청난 화물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항만에서 전부 소화할 수 없어서 결국 해저 터널을 연결해 일본의 항구를 쓸 정도로 많은 물량입니다.”
아무렴 사업을 하는 강대경이 그 정도를 모를까.
거기에 연일 방송에서 부산항과 평택항이 50개에서 최대 100개쯤 더 필요한 규모라고 떠들어대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 철도 연결이 시작됩니다.”
“벌써요?”
“나라별 철로의 규격을 맞추는 작업을 제외하면 기존에 있는 철도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고, 그 외에 육로는 트레일러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 전용 도로를 설립하는 공사만 대략 9조의 예산이 필요한 사업입니다.”
띠루룩.
김형정의 말이 끝났을 때 차민정이 차를 들고 들어왔다.
유혜숙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이제는 가족 같은 차민정의 얼굴을 보자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민정 씨도 같이 앉지?”
김형정의 권유에 차를 내려놓은 차민정이 조용하게 소파의 한쪽에 앉았다.
“차 좀 드십시오.”
긴장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얼굴로 강대경과 유혜숙이 차를 마셨다.
“차세대 에너지 사업이 있습니다.”
입술에 묻은 차를 닦아내며 김형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 예상이익이 얼마인지 짐작도 못 하는 사업입니다.”
유혜숙이 차민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긴장을 이기기 어려울 때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돌아가는 눈치였다.
“다만,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공동 개발을 동시에 제안했을 정도로 미래를 선도할 사업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팀장님.”
말을 마친 김형정을 강대경이 불렀다.
“혹시 우리 가족이 이곳에 살기를 바라셔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는데 김형정은 순순히 답을 했다.
“이곳은 저희에게 너무 과분합니다. 게다가 우리 수입으로는 이런 집을 유지하기도 벅찹니다.”
김형정이 빙그레 웃었다.
“혹시 제가 러시아 석유 개발권을 강 대표님께 드리면 제게 어떤 선물을 주시겠습니까?”
“예?”
어쩌면 기분 나쁜 질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형정의 표정과 태도에서 전해지는 우호적인 분위기 때문에 불쾌한 느낌은 없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만약 제가 러시아 석유 개발권을 우리나라에 가져왔다면 저는 한남동 전체를 달라고 했을 겁니다. 물론 유지비를 국가에서 지급하는 조건으로요.”
차민정이 힐끔 김형정을 살핀 다음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1층은 차민정 요원과 함께 이사장님을 경호하는 요원들이, 그리고 3층은 강 대표님을 경호하는 요원들이 사용합니다.”
강대경과 유혜숙이 멍한 눈으로 차민정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아드님이 러시아 석유 개발권을 우리나라에 가져온 주역입니다. 차세대 에너지 발전 시설을 가져온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곧바로 김형정에게 돌아왔다.
“지금 아드님이 프랑스, 영국, 러시아, 미국, 중국, 독일, 스위스, 일본 중 어느 나라에라도 손을 뻗기만 하면 아마 그 나라 대통령이 비행기로 당장 달려와 직접 모시고 갈 겁니다. 한남동쯤은 조건에 들지도 못합니다.”
유혜숙이 입을 삐죽였다.
아들을 크게 말해주는 것이 고맙고, 또 말을 들으니 아들이 보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당장 이 집과 경호 요원이 전부입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일을 아드님께 부탁해야 합니다. 이 집을 거절하시면 대통령님과 총리님이 당장 뛰어오실 겁니다.”
차민정이 유혜숙을 살폈다.
눈물 많은 유혜숙이 염려되는 얼굴이었다.
“두 분께서 이 집의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있다면 차라리 어려운 아이들을 살피고 싶어 하실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드님이 절실하고 절박하게 필요합니다.”
김형정이 진지한 얼굴로 강대경과 유혜숙을 번갈아 보았다.
“만약 두 분께 해가 되는 일이 생기면 아드님이 어떻게 할 것 같으십니까?”
유혜숙이 또 입을 삐죽였다.
“그때는 누구도 아드님을 말릴 사람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외람되게도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서 제가 두 분께 이곳에서 지내 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아드님이 만들어 준 유라시아 철도와 차세대 에너지 사업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거실을 환하게 비치는 오전이었다.
강대경은 거실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호대교 아래의 강변도로와 저 건너 올림픽 도로를 달리는 차들, 그리고 그 사이를 가득 메운 한강이 볕을 잡아다 잘게 뿌리는 풍경이 눈에 가득 찼다.
이 녀석은 매번 이렇다.
불쑥 사라졌다가는 늘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말을 듣게 한다.
아직 어린 아들이다.
이번에도 또 전보다 넓어진 어깨를 하고 웃으며 나타날 아들.
매번 느끼지만, 이럴 땐 그저 고맙기만 하다.
아버지로서 이런 말을 들으면 먼저 한없이 고맙다.
그리고 아들이 보고 싶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또 어딜 다쳐서 혼자 병원에 있는 건 아닌지…….
강대경은 유혜숙을 대하는 강찬의 눈빛을 떠올렸다.
악착같이 승합차 옆을 달리던 모습도.
그 녀석이 혹시라도 유혜숙이 다친 걸 보게 된다면?
“여보.”
강대경이 부르자 “응?” 하고 고개를 들었던 유혜숙의 눈에 왈칵 눈물이 맺혔다.
“왜 그래?”
“당신 눈이……, 그렇잖아.”
강대경이 “어이그.” 하면서 웃었고, 김형정과 차민정이 잔잔하게 미소 짓는 앞이다.
“우리 여기 살아야겠다, 그렇지?”
유혜숙이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고도를 잡은 비행기가 안전벨트해제 시그널을 몇 차례 깜박였다.
“야. 우리 정말 태극기를 달고 일할 수 있다는 거지?”
“아이, 씨! 그만 좀 물어봐라.”
양동식의 질문을 남일규가 짜증 섞인 답으로 받았다.
이게 한두 번일 때는 감동도 생기고 웃었는데 10분에 한 번씩이다 보니 변태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강찬이라고 그랬지?”
“그래, 이 새끼야! 우리가 속할 대테러 팀장, 강찬! 국가정보원 부원장!”
남일규의 거친 대꾸에 양동식이 눈을 위아래로 흘겼다.
“이 새끼는 나잇살이나 처먹어서! 야! 그거 좀 대답해주면 주둥이가 닳냐? 썩어?”
“선배님.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그때 뒤에서 엄지환의 질문이 조심스럽게 넘어왔다.
“어? 시장? 그래! 시장하지! 왜?”
“기내식을 언제고 먹을 수 있답니다. 혹시 시장하시지 않을까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그래? 그럼 우리 먹을까?”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엄지환이 일어나서 움직였다.
“선배님.”
두 칸 건너 앉아있던 차동균이 나직하게 부르자 강철규가 왜 그러냐는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커피 한잔 가져다 드릴까요?”
“난 괜찮소. 커피를 마셔 버릇하지 않아서……. 나 신경 쓰지 말고 드시오.”
“아! 지금 식사를 나눠주나 봅니다. 밥먹고 마시겠습니다.”
차동균이 상체를 들어서 앞쪽을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대테러 요원이 되실 겁니까?”
“글쎄……, 아직 잘 모르겠소.”
지금 대답은 강철규의 진심이었다.
강찬을 위해 일한다고는 생각했지만, 국가정보원 요원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이 때문에 불편할 대원들이 많을 거고, 또 내가 그래도 되나 싶기도 해서…….”
“선배님.”
엄지환이 카트를 밀고 와 바퀴를 고정하는 소리가 울린 다음이었다.
“대장이 말투가 거칠어서 그렇지, 나이를 불편해하는 분은 아닙니다.”
“그게 불편했다면 이 비행기에 없었을 거요.”
강철규가 보기 좋게 웃으며 답을 했다.
“왜 특수팀이 되었소?”
“예?”
“비무장 팀에 지원한 후배들에게 늘 던지던 질문이었소. 왜 비무장 팀이 되었냐고? 진급도 어렵고, 언제 죽을지 모르고, 훈련 고된 비무장 팀에 왜 지원했느냐고.”
차동균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비무장 특수팀, 국가정보원 요원, 그리고 증평의 특수팀이 뒤엉켜서 떠들고 있었다.
“식사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그때 엄지환이 커다란 기내식을 순서대로 건네왔다.
달칵.
강철규가 기내식의 뚜껑을 열자 불고기를 비롯해 정갈하게 담긴 반찬들이 쌀밥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한동안은 도망치려고 했었습니다.”
강철규가 기내식에서 시선을 들었을 때, 차동균은 굳은 얼굴이었다.
“보수도 짜고, 죽어도 개값이고, 남은 가족만 불쌍해진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돌아가신 장군님이 아니셨다면 저는 아마 그때 옷 벗었을 겁니다.”
강철규는 아무 말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 저를 장군님께서 악착같이 붙들어 주셨습니다. 사고 칠 때마다 달려오셔서 합의도 해주셨고, 사건 무마도 해주시고…….그러다가 지치셨던지 한번은 장군님이 제게 원하는 부대가 있으면 말하라고 하셨었습니다. 대가를 먼저 바라는 놈은 진정한 특수팀이 될 수 없다시면서요.”
강철규가 애잔한 미소를 달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제 가족은 어떻게 하냐고 제가 대들었었습니다. 제가 덜컥 죽고 난 다음에 돌봐줄 사람 없는 제 가족은 어떻게 하냐고?”
“장군님께서 뭐라 셨소?”
“정말 가족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장군님을 믿으라고 하셨었습니다. 국가가 못 해주는 만큼 조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지켜내시겠다고. 그래서 제가 왜 그렇게까지 하시면서 절 붙잡느냐고 또 악을 썼었습니다.”
차동균이 나직하게 숨을 조절했다.
최성곤의 모습이 떠올라 감정이 울컥한 모양이었다.
“국가에, 특수팀에 저 같은 놈이 꼭 필요해서 그러신다고. 장군으로 저 같은 놈이…….”
차동균이 “후”하고 숨을 내쉰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특수팀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가려면 저 같은 놈이 꼭 필요하다고. 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국가에 필요한 놈이라서 붙잡는 거라고…….”
붉게 눈이 변한 차동균이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선배님.”
감정을 가라앉힌 차동균이 강철규를 찾았다.
“대테러 팀에 꼭 들어와 주십시오. 그래서 증평에 오셔서 저희에게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십시오.”
“장군님을 위해서 그러는 거요?”
“아닙니다. 지금은 정말 강한 특수팀이 국가에 필요한 시기이고.”
차동균이 의지 가득한 눈으로 답을 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배님 같은 분의 가르침이 꼭 필요해서입니다.”
강철규가 피식 웃은 다음이었다.
“부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말해 보시오.”
“이제는 우리 대원들에게 말씀 편하게 해주십시오.”
강철규가 기분 좋은 얼굴로 웃었다.
“푸흐흐흐!”
그때 앞쪽에서 석강호가 터트린 특유의 웃음이 들려왔다.
일등석 좌석을 길게 펴서 부상이 심한 대원들을 눕혀놓았고, 그쪽에 의료진도 있었다.
강찬과 석강호, 제라르, 그리고 통역 대원이 모여 앉은 일등석 가장 앞쪽 자리였다.
“밥 안 먹소?”
“너 지금 생라면 두 개를 먹었어.”
“얼래? 다 같이 먹은 걸 왜 나만 먹은 것처럼 그러쇼?”
통역 대원이 제라르의 곁에 딱 붙어서 동시에 말을 전하는 바람에 다국어 방송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왕 먹을 거면 라면이랑 같이 먹읍시다.”
강찬의 기가 찬 시선에도 석강호는 꿋꿋했다.
“어허! 생라면과 끓인 라면은 전혀 다른 음식이오.”
“너한테 뭐는 같은 음식이겠냐?”
강찬이 고개를 젓는 사이, 통역 대원이 빠르게 뒤편 조리실로 움직였다.
“인원 보강도 되었고, 이제부터 내가 좀 더 활약해야겠소.”
“확!”
“푸흐흐.”
석강호가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대장.”
“왜?”
“고맙소.”
강찬이 힐끔 석강호를 보았다가 피식 웃었다.
“얼른 일어나. 그래서 대가리를 부숴버리자. 그래야 쉬든가 하지, 이게 사람 사는 거냐?”
“박진감 넘치고 좋구만 그러쇼?”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지만 석강호는 완벽하게 살아난 얼굴로 떠들고, 강찬이 시선을 돌린 곳에서 제라르가 척 늘어져서 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좋았다.
이렇게 두 놈과 있으니까 당장은 부러울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통역 대원이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과 기내식을 들고 들어왔다.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놈이 뭐가 좋은지 밝은 얼굴이었다.
좌석에 붙은 선반을 내려놓고 기내식과 라면을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대원 한 명과 의료팀이 움직여서 부상당한 대원들에게 죽이나 편한 음식을 가져다주고 있어서 완벽하게 식사 분위기였다.
“너는 이제 뭐할 거냐?”
면발을 빨아들인 석강호가 고개를 들어 통역 대원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제대로 모른다.
검지와 중지가 날아가서 포크로 면발을 말아먹던 놈이 당황한 눈으로 석강호를 보았다.
“어차피 제대 아니냐? 뭐할 거냐고?”
“어디 기업체 알아볼 생각입니다.”
“가족은?”
이 새끼가 밥 먹다 말고 뭔 호구조사를?
“이제 육 개월 된 딸이 있습니다.”
“뭐야? 너 결혼했어?”
“예. 왜 그러십니까?”
솔직히 좀 의외였다. 외모로만 따지면 강찬만큼이나 앳되어 보이는데 딸이 있다니.
하기야 딸을 만드는 건 그다지 많은 나이가 필요한 건 아닌 거다.
그런저런 이야기로 식사를 마쳤을 때 엄지환이 커피를 가지고 왔다.
“너는 밥 먹었냐?”
“예.”
강찬은 기가 막혀서 픽 웃었다.
엄지환은 처음 다예가 강찬을 따르기 시작할 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람 일은 참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전투 능력과 경험만 넘어가면 좋은데 이렇게 따르는 놈과 의지하는 놈까지 비슷하게 생긴다.
강찬은 커피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물병을 들고 기다리던 녀석과 아프리카에서 담배조차 다 못 피우고 죽은 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