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92화 (29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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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 멋질 것 같은데?

식사가 대충 끝난 다음이었다.

한쪽에 차려진 차 종류 중에서 각자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 식탁에 앉았는데 역시 압도적으로 커피가 많았다.

창밖으로 상점들의 불빛과 자동차, 그리고 도로를 밝히는 가로등이 펼쳐진 시간이었다.

강찬은 우선 프랑스 요원을 불러서 사용할 수 있는 방이 있는지를 물었다.

“총국장님이 사용했던 방과 그 주변 세 개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도청 염려는?”

“7층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잠깐 얘기 좀 하고 올게.”

“그래.”

오광택에게 말을 건넨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철규에게 갔다.

“잠깐 같이 가.”

강철규가 군소리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종일, 윤상기.”

강찬은 세 사람을 불러서 로망을 만났었던 맞은 편 방으로 움직였다.

침대 옆에 있는 탁자를 움직이고 건너편 방에서 의자를 가져다가 넷이 앉았다.

“영감하고 인사는 했어?”

“비행기 안에서 인사드렸습니다. 아마 우리 동기들은 비무장왕이라는 이름을 거의 알고 있을 겁니다.”

최종일이 답을 했고, 윤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걸 잠깐 봐.”

강찬은 안주머니에 넣고 있던 지도와 로망이 건네준 서류를 꺼냈다. 그리고 이어서 강철규를 위해 이번 일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을 먼저 했다.

“여기가 트리폴리 공항이고, 이곳이 알아지지야.”

강찬은 도로를 따라 검지를 움직여서 알아지지야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원래 내 목표는 여기 타라불루스에 있는 석유 시추 시설을 파괴할 생각이었는데…….”

강철규가 놀란 기색으로 지도에서 시선을 들었다.

“왜?”

“그렇게 하면 리비아 정부에서 가만있나? 리비아군 전체를 상대하기에는 우리 인원이 많이 모자랄 텐데?”

“미국이 반 카다피 정권을 지원해 주는 대가로 이번 작전을 묵인해 줄 거야.”

강철규는 강찬에게 따귀를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내가 외국어는 잘 몰라도 밖에 있는 애들에게 사용하던 말이 프랑스어 아니었나?”

“이 호텔의 경비와 그리스에서의 지원은 프랑스 정보총국이 맡아.”

강철규가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었다.

“미안하다. 다른 뜻은 없고, 중국과 러시아의 눈치를 살피던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미국과 프랑스의 협조를 받는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렇다.”

강철규가 지도에 다시 시선을 떨궜다.

그러면서 복잡한 심경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줄 때가 아니어서 강찬 역시 지도로 시선을 가져갔다.

“이건 프랑스 정보총국에서 전달해준 자료. 나중에 천천히 보기로 하고, 우선 이놈을 먼저 봐. UIS 리비아 책임자, 모하마드 즈리프, 이 새끼를 포함해서 모두 7명이 이번 우리 요원 살해를 지시하고 지휘한 놈들이라는 건데…….”

강찬은 모하마드 즈리프의 얼굴을 가장 앞에 오도록 서류를 펼쳐서 탁자에 올려놓았다.

“여기 이 번호가 앞에 지도에 표시된 지역이고, 이 숫자가 예상되는 경호 인원, 그리고 이게 무장 상태를 의미해.”

“경호 인원을 전부 합치면 몇 명이나 되나?”

“150명쯤.”

강철규가 날카로운 눈으로 모하마드 즈리프의 사진을 노려보았다.

“영감이 지휘하는 비무장지대 팀, 최종일이 지휘할 국가정보원 요원 한 팀, 그리고 차동균이 지휘할 증평 특수팀, 우리는 이렇게 세 팀으로 움직인다.”

“중위님이 작전을 뛸 수 있습니까?”

“못하게 하면 병원을 탈출할 거 같아서.”

윤상기의 질문에 답을 한 강찬은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내 생각으로는 증평 특수팀이 타라불루스의 시설 파괴를 맡고, 비무장팀과 국가정보원 요원이 적을 제거하면 어떨까 싶은데…….”

강철규, 최종일, 윤상기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모하마드 즈리프를 지키는 경호 인력만 50명쯤 된다. 이곳은 나와 최종일 팀이 움직이고, 영감이 비무장 팀과 나머지 여섯을 해결해 줬으면 싶어.”

“시간 여유가 얼마나 있나?”

“최대 5시간을 넘기면 안 돼. 출발부터 따져야 하니까 이동 시간을 빼면 실제로 타겟을 잡을 시간은 3시간 정도? 그 시간을 넘어가면 리비아에 있는 수니파나 그 외에 UIS 병력이 넘어올 수 있어.”

“흠.”

강철규가 입을 꽉 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이 여기 8번부터 제거해서 올라오고, 나는 이 새끼부터 시작해서 숫자 순서대로 내려가는 걸로 하지.”

“도로 안내는?”

“정보총국에서 위장 트럭과 안내원을 붙여줄 거야.”

“전체 브리핑은?”

“작전 예정 시간이 내일 오후니까 병원에 있는 특수팀이 합류한 뒤에 함께 점심 먹고 나서 할 생각이야.”

강철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질문을 끝냈다.

“팀별로 필요한 무기와 동선을 계산해 놓는 게 좋아. 트리폴리 공항에 도착한 이후로 목표 지점까지 이동시간이 달라서 아무래도 영감이 맡은 지역의 저항이 가장 강할 거야.”

“굳이 전면전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조용하게 처리하면 그만큼 좋겠지.”

강철규가 무언가를 계산하는 것처럼 번호가 찍힌 지도를 찾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

문재현과 함께 회담실을 나선 고건우가 비서실 직원을 불렀다.

“대통령님의 다음 일정은?”

“페루 대통령이 제2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담화 발표는?”

“결과가 오는 대로 공식 발표할 예정입니다.”

걷는 도중에 주고받은 대화다.

그 사이, 집무실로 들어선 문재현이 책상에 앉아 쌓인 서류들을 빠르게 훑었다.

옆으로 고건우와 비서실 직원이 기다리는 앞이다.

서류의 가장 윗면에 적힌 커다란 제목과 서너 줄의 개요들만 겨우 읽은 문재현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정말 이대로 진행될까요?”

“대통령님께서 사인만 하시면 모두 끝납니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부원장은 분명하게 해결하고 돌아올 겁니다. 우리보다 프랑스와 러시아, 중국이 더 부원장을 믿고 있더라는 원장의 보고가 답입니다.”

고건우가 분명하게 답을 했다.

“페루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문재현을 재촉하는 것이 분명한 말을 덧붙였다.

***

병원으로 돌아온 강찬은 통역 대원에게 컵라면과 봉지 커피를 나누어주었다.

최종일에게서 받아온 것인데 통역 대원은 눈물을 글썽이며 컵라면을 쓰다듬었다.

병실에는 뜨거운 물이 없다.

강찬은 밖에서 봉지 커피 두 잔을 만들어서 석강호의 병실로 들어갔다.

드르륵.

힐끔 시선을 주었던 석강호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붓기가 반쯤 빠져서 이젠 사람처럼 보였다.

“뭐요?”

강찬은 머그잔을 탁자에 올려놓고, 석강호의 침대를 좀 더 바짝 세웠다.

“어디서 구한 거요?”

“아픈 너를 위해서 특별히 구해온 거 아니냐?”

강찬은 침대에 붙은 간이 탁자를 세운 다음 그 위에 머그잔을 놓아주었다.

석강호가 왼손으로 잔을 잡는 것을 보며 강찬은 테이블 옆에 앉았다.

“언제요?”

“뭐가?”

“대장 성격에 그냥 돌아가지는 않을 것 아뇨?”

석강호는 아예 확신을 가지고 말을 던지고 있었다.

숨기려고 했지만, 이 정도면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게 차라리 낫다.

“저녁 내내 없다가 갑자기 봉지 커피를 가져온 거요. 거기에 밖에서 라면 냄새도 나고. 애들 도착했소?”

“응.”

“작전 시간은 언제요?”

“내일 저녁쯤 될 거다.”

석강호가 잔을 든 것보다 고개를 더 깊게 숙인 자세로 커피를 마셨다.

“이야! 정말 좋소!”

강찬이 피식 웃은 다음이었다.

“내일 작전 끝나면 같이 컵라면 먹읍시다.”

석강호가 머그잔에서 시선을 돌리며 말을 건넸다.

***

아침을 먹은 강찬은 차동균, 곽철호, 엄지환을 포함한 여섯 명의 대원들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

프랑스 정보총국에서 제공한 승합차다.

강찬은 차동균을 보며 피식 웃었다.

부상을 표시 내지 않으려 애쓰는 얼굴이었는데 벌써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30분 거리다.

호텔의 뒤편에 승합차가 섰을 때 차동균은 이를 악물며 차에서 내렸다. 곽철호와 엄지환이 힐끔거렸지만, 정작 강찬은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7층에 도착하자 비상구와 복도에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프랑스 요원들과 함께 서 있다가 일행을 맞았다.

“최종일과 윤상기 있는 곳으로 이 친구들 데려다 줘.”

강찬은 다른 네 명을 복도에 있던 요원에게 맡긴 후, 차동균, 곽철호와 함께 복도 안쪽에 비어있는 방으로 움직였다.

“앉아.”

차동균이 굳은 표정으로 테이블 앞에 앉은 다음이었다.

강찬은 다시 지도와 서류를 꺼내 어제 설명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을 알려주었다.

“특수팀은 여기 타라불루스에 있는 시추시설을 파괴하는 거다. 공항에서 내려서 자동차로 한 시간, 다시 산악과 평지를 달려야 한다. 지휘자는…….”

“저는 이곳에 남겠습니다.”

강찬의 말이 끝나기 전에 차동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시가전이라면 악착같이 매달렸겠지만, 이런 이동을 감당할 자신은 없습니다.”

차동균이 참담한 얼굴을 들어서 강찬을 보았다.

“이 작전을 계획하셨다면 제가 거기까지 못 갈 거라는 것도 아셨을 텐데 왜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까?”

“지휘관이니까.”

차동균은 알아듣지 못한 얼굴이었다.

“증평의 특수팀을 이끌 사람에게 앞으로 이런 일은 끝없이 생긴다. 대원을 잃을 때마다, 작전에 실패할 때마다 의지가 이성을 누르는 순간이 생긴다. 그럴 때면 오늘을 생각해. 그래서 전투 실력만큼이나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휘관이 돼.”

차동균의 대답이 없었지만, 그걸 탓할 상황은 아니었다.

“전투 실력뿐만 아니라 지휘관의 이런 경험도 아래로 내려간다. 그래야 두 개, 세 개로 조를 나눠도 대원들끼리 냉정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알겠습니다.”

답을 한 차동균만큼이나 곽철호도 다부진 눈매를 하고 있었다.

강찬은 곽철호에게 충분하게 계획을 설명했고, 몇 번이나 질문을 받았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마침내 곽철호가 지도에서 시선을 들었다.

“점심 먹고 전체 브리핑이 있을 거다. 그때까지 윤상기와 의논해서 필요한 무기와 조를 나눠.”

“예.”

“어차피 점심시간일 텐데 미리 회의실로 가지?”

방에 셋이 따로 있기도 뭐해서, 강찬은 두 사람과 함께 방을 나섰다.

그런데 복도로 나섰을 때는 이미 회의실 입구에 대원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윤상기였다.

경례를 하려다 움찔한 윤상기가 차동균과 곽철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음은 최종일과 우희승이 다가와 인사를 나눴고, 지켜보는 강찬에게는 오광택이 다가왔다.

“넌 정말 정체가 뭐냐?”

“뭘?”

이 새끼가 또 실컷 울고 나서 누가 죽은 거냐고 묻는 것처럼, 여태껏 잘 있다가 작전 나가기 직전에 느닷없는 질문을 던진다.

“아니! 이게 보면 볼수록 이해가 안 가잖냐.”

“오광택.”

“왜? 뭔데?”

“앞으로 이런 싸움이 계속 있을 거다. 그러니 이번에 잘 배워둬라.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놈이 돼주라.”

“이 새끼! 걱정 마라!”

오광택이 다부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그러면서도 이놈은 절대 누군가와 협상할 자리에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도 섰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강찬은 3시까지 다시 회의실로 모이라는 말을 전했다.

점심에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최종일이 한쪽에 쌓아둔 컵라면이었다. 그리스식 기름진 볶음밥에 컵라면을 먹었고, 마지막으로 봉지 커피를 마셨다.

점심을 먹은 강찬은 방에서 정보총국의 위고, CIA의 셔먼과 한 시간가량 통화했고, 다음으로 강대경, 유혜숙과도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창밖은 신화의 세상 아테네다.

마음만 먹으면 공항으로 가서 서울로 향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세상이 강찬을 얽어맨다.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소중한 사람을 지키겠다고 버둥대다가, 주변을 둘러보니 소용돌이의 한중간이었다.

작전에 나가서도 이런 일은 있었다.

적의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퇴로까지 막혀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

답은 하나밖에 없는 거다.

눈앞에 보이는 적을 모조리 죽이는 거.

***

“비무장 팀은 강철규 이사, 증평 특수팀은 곽철호, 국가정보원은 내가 지휘합니다.”

강찬을 향해 앉은 이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 요원을 UIS가 먼저 살해한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어떤 적을 만나더라도 무조건 대응을 원칙으로 하겠습니다. 질문 있습니까?”

비무장 팀을 배려해서 평소와 다르게 존댓말로 브리핑을 끝냈을 때였다.

탁자 중간에서 비무장 팀 대원 한 명이 손을 들었다가, 강찬의 시선을 받은 후에 입을 열었다.

“국가정보원과 증평의 특수팀은 국가 조직이지만, 우리는 어떤 명분으로 이 작전에 참여하는 겁니까?”

질문은 뜻밖이었다.

그래서 시선이 모두 쏠렸는데 질문한 대원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국가에 충성한다는 마음으로 달려왔지만, 어제 강 선배의 말을 듣고 생각한 겁니다. 우리는 군에서 물러난 사람들입니다. 이 작전에서 사망할 경우, 우리는 어떤 대우를 받습니까?”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물론 회사 차원에서 보상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없더라도 강 선배와 함께 작전을 뛴 것에 감사합니다.”

질문을 해놓고 미안했는지 얼른 말을 덧붙였지만, 쉽게 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금전적 보상이야 적당한 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명예와 관련된 부분은 함부로 답을 하기 어려웠다.

아직 배울 게 많다.

조직을 만들려면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거다.

강찬은 참 오랜만에 말문이 막혔다.

그때였다.

강철규가 손을 들어서 앉아있는 이들의 시선을 당겨갔다.

강찬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강철규가 단단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무장 팀을 맡은 강철규요.”

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자리다. 그럼에도 강철규는 나직한 음성으로 본인을 소개했다.

“개인적으로 우리 팀과 나눌 이야기겠지만, 어제의 일에 대해 변명도 할 겸 해서 일어났소.”

저 영감이 뭔 소릴 하려고 저러지?

강철규는 고개를 잠시 움직여 비무장팀들을 천천히 보았다.

“나를 비롯해 너희 모두는 불행한 시절을 보냈다. 어제 저녁 식사 때 내가 했던 말을 모두 기억할 거라고 믿는다. 나는 이 작전에 나서면서 국가를 위한다는 마음은 없었고, 그건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강철규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비무장 팀을 시작으로 증평의 특수팀, 그리고 국가정보원 요원들의 자세가 점점 더 꼿꼿해지고 있었다.

비무장 지대의 전설, 그리고 특수팀 선배에 대한 예우가 저절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몽골에서 출발하기 전에 나눴던 각오를 잊지 말자. 이 작전에 나서기로 했을 때, 너희와 나는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자랑스러운 후배들을 거드는 것에 만족한다고 했었다.”

강철규의 눈빛과 말, 그리고 표정이 앉아있는 모든 사람을 압도하고 있었다.

“국가를 위해 나선 게 아니다. 그런데 국가가 이런 우리를 위해 뭔가를 해주길 바라는 건 염치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권용희!”

“예! 권용희!”

느닷없는 강철규의 부름에 질문을 던졌던 권용희가 상체에 힘을 주며 커다랗게 답을 했다. 나이가 사십 중반은 된 남자인데 말이다.

“설명을 들었듯이 우리 중 몇이 죽고 몇이 살지 모르는 위험한 작전이다. 우리 앞에 나섰던 후배들이 반수 이상 희생되었다고 들었다.”

강철규가 매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이 작전에서 죽더라도 우리는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돌아가겠나?”

“아닙니다!”

증평의 대원들이 놀란 눈을 할 정도로 권용희가 커다랗게 악을 썼다.

“나는 죽은 아들을……, 내가 돌보지 못했던 아들을 위해 싸운다. 내 죽은 아들이 원하는 것이 이 자리에 있는 후배들을 돕고 지켜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한 시대는 우리가 짊어지고 가고, 후배들이 더는 그런 대우를 받지 않도록, 앞으로 이런 작전에서 더는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돕는 것이 나의 목표다.”

모두 바싹 긴장한 얼굴로 말을 멈춘 강철규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강철규가 피식 웃으며 비무장 팀 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비무장 지대를 누가 지키나?”

“우리가 지킵니다!”

회의실이 쩌렁쩌렁 울리는 답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나?”

“국가와 동료입니다!”

비무장 지대로 나설 때 외쳤던 구호가 분명했다.

촌스럽기도 하고, 나이 든 사람들의 외침이 애처기도 했는데 그만큼 가슴 찡한 무언가가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의 구호!”

“가족아! 미안하다! 나는! 국가와 동료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구호가 끝나자 강철규가 자리에 앉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숙연함이 회의실에 가득했는데, 증평의 특수팀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를 악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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