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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이대로 끝날 줄 알아?
푸시이이이! 푸시이이이!
헬파이어 미사일이 적이 있는 건물로 사라지는 순간,
콰으으응! 콰아아앙!
건물의 모든 창에서 화염이 솟구쳤다.
투두둑! 투두두둑!
간헐적으로 반항하는 적이 있었지만,
투타타타타타타타!
30미리 기관포에 찢겨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섯 대의 아파치 헬기가 아군의 건물을 감싼 채로 사방에 미사일과 기관총을 갈겨대는 바람에 커다란 화염이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두두두두두두두두!
프로펠러에서 뿜어낸 바람이 빗질이라도 한 것처럼 옥상의 잔해들을 구석으로 밀어냈다.
치잇. “전원 옥상으로 움직여!”
이미 석강호에게 던진 다부진 욕을 들은 다음이었다.
아파치 헬기가 범위를 넓혀가며 주변 건물을 부수는 동안, 블랙 호크 한 대가 옥상으로 다가왔고 곧바로 줄이 내려왔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거친 프로펠러의 바람을 타고 양복 차림의 강찬이 가장 먼저 옥상에 내려섰다.
무섭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옥상을 둘러본 강찬의 뒤를 따라 델타포스 대원 여섯 명이 내려와 옥상의 네 귀퉁이를 지켰다.
“괜찮아?”
“그렇습니다.”
차동균이 답을 할 때 옥상 입구로 대원 하나가 석강호를 어깨에 둘러멘 채로 올라섰다.
곽철호와 대원 한 명이 달려들어 석강호를 붙잡아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이었다.
“대장.”
“너는……!”
석강호가 힘겹게 웃는 것을 본 강찬이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차동균은 대원들을 인솔해 아래층에 있던 죽은 대원들을 옮기게 했다.
“부상자를 먼저 올린다! 서둘러!”
강찬은 한눈에도 상태를 바로 알 수 있도록 오른손을 치켜들고 있던 통역 대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대원의 머리를 두드려주었다.
손가락 두 개가 잘려나가 울고불고하던 대원이다.
그런데 표창을 받은 것처럼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강찬은 말없이 통역 대원 옆에 떨어진 소총을 집어 들었다.
철커덕!
신기한 일이다.
귀를 파고드는 헬리콥터의 엔진 소리 사이에서도 강찬이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것은 말이다.
그 순간, 곽철호는 터무니없게도 ‘이제 정말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강찬의 손짓에 델타포스 대원 한 명이 로프에 몸을 묶고 부상자를 안았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그런 다음, 빨려가는 것처럼 헬기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온 델타포스 대원이 석강호를 끌어안았다.
강찬이 힐끔 돌아보았을 때 석강호도 시선을 돌렸다.
“대장.”
“살아. 무조건 살아나.”
“알았소.”
입술이 움직인 것으로 뜻은 충분히 알았다.
투다다다다다다!
멀리 있는 아파치 헬기가 새하얀 빛줄기를 쏟아내며, 적들의 소총과 RPG를 막아내는 상황이었다.
부상자를 올리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마음 같아선 헬기가 좀 더 아래로 내려와서 부상자를 들어 올리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지막은 통역 대원이었다.
부상자를 모두 실은 헬기가 아파치 두 대와 함께 움직이자, 다음으로 사망자를 태웠다.
비참하지만, 태울 수 있는데 한계가 있어서 시체는 촘촘히 실을 수밖에 없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다음으로 전투가 가능한 대원들이 빠르게 남은 블랙호크 두 대에 옮겨 탔다. 혼자 올라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엄청나게 줄였다.
“Go! Go!”
델타포스 지휘관 마크가 악을 쓰자 헬기가 바로 방향을 잡고 움직였다.
거센 바람이 머리카락과 옷을 뒤흔들었다.
처참한 결과였다.
반수 이상이 사망했고, 허리쯤에 감아놓은 붕대에 피가 잔뜩 배어 나온 차동균처럼 멀쩡한 대원이 하나도 없었다.
응징에 나섰다는 상징적인 의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기에 빠진 대원들을 구출한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 외에 건진 것이 하나도 없는 작전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아파치 헬기가 고도를 조절하며 선두에 섰고, 블랙 호크가 그 뒤를 쫓으며 날았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 뛰어들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능력은 무조건 반복된 훈련에서만 나온다.
감각과 타고난 능력이 있는 대원이 훨씬 효과적으로 적응하는 것뿐이지, 훈련이 부족하면 절대로 목이 날아가고 몸뚱이가 찢기는 상황에서 견디지 못한다.
심지어 훈련받았다는 병아리가 최후의 순간에 제 머리에 총구를 대는 것이 전투고 작전인 거다.
그래서 전투가 끝나면 결과에 상관없이 허탈해진다.
지휘관은 지휘관대로, 대원은 대원대로.
그런데 결과가 지금 같으면 허탈함을 넘어서서 사기가 부러진다.
우리가 하지 못했던 일을 미국이란 나라가 너무 쉽게 해내고, 그 손에 구출까지 되면 더욱 그렇다.
지금 헬기 안에 있는 특수팀과 요원들처럼 말이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어둠을 뚫으며 날아간 헬기가 트리폴리 공항에 내려섰다.
앞선 부상자는 이미 미군의 응급센터로 옮겼고, 델타포스 대원들이 전사한 대원과 요원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강찬이 헬기에서 내리자 케빈이 빠르게 다가왔다.
“서두르겠습니다! 함께 온 대원들은 응급센터로 옮기고 미스터 강은 케빈과 이동하시면 됩니다!”
헬기 소리를 이겨내려고 통역이 악을 쓰다시피 말을 전했다.
혼란스러운 활주로에서 강찬은 차동균과 시선이 마주쳤다.
“응급센터에 가 있어!”
차동균이 거수경례로 답을 대신한 것을 본 케빈이 강찬을 자가용 비행기로 안내한 후에 통역과 함께 탑승했다.
급하긴 급한 모양이었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렸다.
탁자를 마주 보며 거창한 의자가 두 개씩 놓였는데 케빈과 통역이 강찬의 맞은 편에 자리했다.
석강호에게 피를 나눠주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아쉬웠고, 특수팀 대원들을 끝까지 챙겨주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미국의 의도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함부로 석강호에게 수혈하겠다고 나서기는 어려웠다.
“어디로 가는 거지?”
“아테네 공항입니다. 그리스.”
지겨운 새끼들.
도대체 국경이나 출입국 사무소란 개념이 있기는 한 건가?
하긴 남 말 할 게 아니다.
강찬 역시 함께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차를 한잔 드릴까요? 아니면 와인?”
“괜찮으면 한숨 잘 테니까 도착하면 깨워줘.”
“알겠습니다.”
통역에게 뜻을 전한 강찬은 곧바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붙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깊게 잤다.
그러다 비행기가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드드드드드드득!
거칠게 활주로를 달린 비행기가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움직였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느낌이 아침 아니면 해가 지는 저녁인데, 돈을 걸라면 아침에 걸었을 느낌이었다.
비행기가 멈춰 섰고, 곧바로 문이 열렸다.
세 개짜리 계단을 내려가자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 요원들이 검은색 리무진 앞을 지키고 있었다.
달칵.
요원이 열어주는 문 안쪽은 역시나 마주 보게 좌석이 꾸며져 있었고, 케빈과 통역이 강찬의 맞은 편에 앉았다.
같은 색의 옷과 선글라스, 그리고 자동차.
애들이 어째 창의성이 없어 보였다.
미끄러지는 것처럼 차가 출발하고 나서 시선을 돌리자 관광객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던 이들의 활기가 길가에 가득했다.
아침인 거다.
20분쯤 달린 차는 ‘센트럴 호텔’이라고 쓰인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다시 요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7층의 방까지 이동했다.
달칵.
‘저 인간이 셔먼이겠구나.’
요원이 방문을 열자 검은색 양복 틈에서 회색 양복에 노타이 차림의 서양 남자가 다가왔다.
“미스터 강? 셔먼이오.”
“강찬입니다.”
프랑스 말을 능숙하게 하면서도 절대 ‘무슈 강’이라 부르지 않는다.
“앉읍시다. 아침 식사 괜찮소?”
“그러죠.”
아테네의 전경이 창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져서 전망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요원 둘이 커다란 접시를 강찬과 셔먼 앞에 놓아주었고, 이어서 주스, 우유,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듭시다.”
베이컨, 계란 후라이, 토스트, 버터, 잼.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엉덩이춤을 추는 것보다는 나았소.”
말을 한 셔먼이 혼자 웃었다.
누구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조연을 지껄이더니, 이 인간은 더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웃기까지 한다.
“흠. 그동안 브랜든이 약간의 실수를 저지른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하오.”
“실수요?”
강찬은 포크로 계란 후라이의 한쪽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방송 말이오. 어제 이튼을 용서했던 것처럼 우리의 일도 용서했으면 싶소.”
이튼, 이 얍삽한 새끼!
“브랜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오.”
강찬의 눈빛을 본 셔먼이 빠르게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는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소. 더불어 이번 기회를 통해 차세대 에너지 사업에도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정부의 방침을 제가 결정할 능력은 없습니다.”
셔먼이 입술을 늘려서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다.
“다만, 이번 도움에 감사하는 의미로 협조 가능한 사안들을 말씀하시면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달칵.
강찬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먹는 걸 중단한 것이 아니라 이미 다 먹은 거였다.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 사건을 잊고 우호적인 관계가 되고 싶은 것뿐입니다.”
강찬은 커피를 마시며 셔먼의 말을 들었다.
우호적인 관계?
그게 나쁠 일이 뭐가 있겠나.
막말로 관계가 없거나 부족하면 서너 번 관계를 가져 주면 되는 거 아니겠나?
“셔먼.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나라를 치겠다는 건 아니겠지요?”
“차세대 에너지는 우리 정부와 라노크 대사님을 비롯한 정보국의 수장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셔먼이 굳은 얼굴로 강찬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니 앞으로 차세대 에너지에서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보다는 우리 정부와 의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차세대 에너지보다는 어제 우리 대원들에게 공격을 지시한 놈과 직접 지휘한 놈을 찾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알게 되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 말고 다른 것이 있습니까?”
“흐흠.”
답을 듣는 순간 셔먼의 나직한 한숨을 터져 나왔다.
강찬은 그제야 제대로 깨닫는 것이 있었다.
라노크가 가면을 쓴 것처럼 변하지 않는 얼굴로 속을 감춘다면, 셔먼은 수시로 변하는 표정 뒤에 생각을 감춘다.
“정보총국이라면 충분히 알아낼 것 같은데요?”
“그럴 겁니다.”
지금도 그렇다.
궁금해하는 것 같은 표정이긴 한데 정말 궁금한 건지, 알고서 저러는 것인지를 알아차리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혹시 국장님께서 알게 되시면 알려주었으면 싶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까?”
“아시겠지만, 이번 일로 정보총국의 요원들 역시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래서 해결 방안 정도는 다른 곳에서 알아내고 싶었습니다.”
셔먼이 재미있다는 투로 픽 웃었다.
“미스터 강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인 권한을 알고 부탁하는 겁니까?”
“그건 잘 모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혹시 내가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가능하다면 들어드리죠.”
“몽골에서 나오는 데나다이트의 독점 판매권을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론 생산은 한국이 계속하게 될 겁니다.”
강찬은 셔먼을 똑바로 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아시겠지만, 그런 결정을 저 혼자 하게 되면 우리 정부와 라노크 대사님, 그리고 정보국의 수장들이 무척 곤란해 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드리죠. 대신…….”
셔먼의 눈 끝이 살짝 흔들린 직후였다.
“미국이 차세대 에너지에서 더 요구하는 것이 없다는 조건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흐흠.”
셔먼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황기현은 통역 요원이 전해주는 말을 들으며 속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이다.
그런데도 숨 가쁘게 달려올 수밖에 없었는데 역시나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라노크야 한국에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바실리, 양범, 이튼, 그리고 로망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냉정하게 표현해 찾아가서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해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세계적인 정보국 수장들이 한자리에 앉아 그를 부른 것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이런 모임을 국가정보원에서 전혀 몰랐다는 것인데, 당장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한국의 대원들과 요원들은 현재 그리스에 있습니다. 미국이 수송편을 준비하고 있으니 그 점은 안심해도 좋습니다.”
라노크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설명을 이었다.
무섭다. 그리고 부럽다.
이렇게 모여 앉아서도 미국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말이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유라시아 철도와 차세대 에너지의 책임자를 선임해 주었으면 합니다. 물론 무슈 강이 실질적인 책임자이긴 하지만, 표면적인 수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점을 심도있게 논의해 주었으면 합니다.”
“차세대 에너지 계획에 대해 우리 정부가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제안이 들어오곤 있지만, 블랙헤드와 두 가지 광물을 이용한 전기 에너지의 생산 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 점에 대해 자세하게 알 방법이 있겠습니까?”
황기현은 인사를 나눌 때를 제외하곤 계속 듣고만 있어서 실제로는 지금 처음 입을 연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국 정부가 진행해야 할 가이드 라인을 먼저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이행되면 다음으로 프랑스와 영국의 연구진이 도착할 겁니다. 그때 한국의 연구원을 투입하면 거의 모든 기술을 이전하게 됩니다.”
“연구진이라면 전기 에너지 전문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황기현의 질문을 들은 라노크가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튼은 비웃는 것이 분명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 정부는 현재 데나다이트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그동안의 정권이 석유화합물을 생산하는 대기업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황기현은 결국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황화소다를 축출하고 난 데나다이트는 다시 밀라보나이트가 됩니다. 그것에서 또 다른 재료를 축출하고 나면 글라보나이트가 되지요.”
설마 화학 공부를 시키려고 이러지는 않을 거다.
“간단한 예입니다. 이 과정을 익히기 위해 일단 한국에서 이공계 연구원 약 30명을 준비해주면 프랑스와 영국의 연구원들이 함께 연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교육이 끝나면 다시 2차 연구진을 투입했으면 합니다.”
“총 몇 명의 연구진이 필요할까요?”
“글쎄요.”
라노크가 이튼을 한번 본 다음에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대략 100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막막한 심정으로 황기현이 답을 한 다음이었다.
“서두를 것은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수장이 결정되면 그와 관련한 자료와 가이드 라인을 건네드릴 테니 그에 맞춰 움직이면 무리는 없을 겁니다.”
묵묵하게 보고 있는 양범, 로망과 달리 라노크는 시종일관 우호적인 음성으로 황기현에게 말을 건넸다.
“그 외에 이곳에 있는 네 나라와 독일, 스위스의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고 무슈 강을 통해서 요청해주면 됩니다.”
말을 마친 라노크가 홍차 잔을 들었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마쳤다는 의미였다.
프랑스 정보총국장 로망이 한마디도 못하고 라노크의 눈치를 살피는 자리다. 막말로 그가 지시 한번 내리면 황기현은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되는 위치인데 말이다.
이제 인사를 하고 일어서야 하나? 아니면 가라는 말을 들을 때 듣더라도 조금 더 있어야 하나?
이런 자리에 처음 앉아 있는 황기현은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달칵.
그때 라노크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차갑고 날카롭고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황 국장.”
그러자 바실리가 황기현을 불렀다.
“무슈 강은 당분간 한국에 있을 시간이 별로 없을 거요.”
통역이 빠르게 바실리의 프랑스 말을 전달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이 워낙 걱정이 많아서…….”
‘주인공?’
황기현의 시선을 받은 통역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네 나라에서 두 사람씩 요원을 파견할 생각이오. 총 8명, 그들이 쓸 사무실과 숙소, 그리고 똑같은 인원수의 믿을 수 있는 한국 요원이 필요하오.”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할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바실리가 입맛이 쓰다는 투로 말을 꺼냈다.
“한국에 이양할 위성의 사용법, 그리고 우리 네 나라 정보국에서 넘겨 줄 정보의 이용법에 대해 가르칠 생각이오.”
황기현이 멍한 얼굴로 바실리를 보고 있을 때였다.
“UIS가 한국을 노릴 것은 분명한 일이고. 그러다 잘못돼서 무슈 강이 놈들을 모조리 죽이겠다고 나서면 우리도 뒤를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그래서 위성을 넘겨준다고?
가만! 지금 위성이라고 했나?
“국가정보원이라기보다는 무슈 강에게 힘을 실어주는 거라고 이해하면 되는 거요.”
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황기현은 문재현이 그토록 외치던 인재가, 강찬이란 인물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