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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281화 (28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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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지켜보자

김형정이 워낙 바빠 보여서 함께 저녁 먹자는 말을 하기는 어려웠다. 때문에 일찌감치 삼성동을 나선 강찬은 석강호와 함께 사거리 커피 전문점에 앉았다.

“이렇게 되면 정말 졸업식은 가기 어렵겠소.”

주문한 커피를 내려놓은 석강호가 의자에 털썩 앉으면서 투덜거렸다.

“요원들 13명이라니, 개새끼들! 내가 한번 가보면 어떻겠소?”

“어딜?”

“알제리가 리비아 바로 옆 동네 아니오? 이번에 요원들 갈 때 함께 가면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 않겠소?”

뜨거운 커피를 조심스럽게 마신 강찬이 잔을 내려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나나 너를 노리고 있을 텐데 함부로 움직이기도 그렇다.”

“대장도 알잖소? 이런 식으로 상대해서는 공연히 희생만 늘 거요.”

석강호가 독이 잔뜩 오른 눈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대기하고 있을 요원들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증평 애들처럼 여기 요원 애들도 경험이 필요해 보이우. 지금껏 눈치 보며 임무 수행하느라 마음 놓고 방아쇠도 못 당겼던 거 같은데, 저놈들한테도 자신감과 방식을 알려줄 필요는 있잖소?”

“침착해. 그리고 말이 났으니까 말인데, 우리도 전투에 익숙한 것뿐이지 쟤들이 겪는 정보전은 잘 모르는 거잖냐?”

“그게 다를 게 없지 않겠소?”

석강호가 인상을 찌푸린 다음이었다.

“다예.”

강찬은 조용하게 석강호를 불렀다.

“네가 요즘 증평 대원들과 요원들에게 마음 가는 건 나쁘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에 다 나서려고 하거나 냉정함을 잃는 건 곤란해. 네가 흥분하면 너를 바라보거나 따르는 대원들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 몰라서 그래?”

석강호가 먼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소.”

“지켜보자. 우리가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잖냐.”

강찬의 말에 석강호가 우두커니 커피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죽은 요원 중에 아는 사람이 있었어?”

“그런 건 아니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그래?”

석강호가 고개를 들어 강찬을 보았다.

“그냥 밥 같이 비벼 먹고, 오늘처럼 족구 하면서 가까워지다 보니까 안 돼서 그렇소.”

전의 삶에서 더럽게 외롭던 석강호다.

강찬은 느닷없이 몇 번을 두들겨 맞은 뒤에 엉엉거리며 울던 다예루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증평 놈들도 그렇고, 저기 요원 놈들도 그렇고. 도대체 이렇게까지 목숨을 바쳐가며 제 몫을 다하고 있는데 최소한 억울한 죽음은 없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오?”

강찬에게 답은 했지만, 석강호는 분명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이었다.

“담배 있어?”

석강호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강찬에게 디밀었다. 그리고 강찬이 받자 제 입에도 물고 라이터를 켰다.

“지금은 발전소 건설과 유라시아 철도를 잇는 게 중요해. 그 외에도 어떤 개새끼가 우릴 아프리카로 부른 건지도 파악해야 하고.”

“알았소.”

답을 한 석강호가 연기를 내뿜으면서 커피잔을 들었다.

강찬은 물끄러미 석강호를 보았다.

대원들이 가슴에 담기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다예루다. 그래서 강찬이 그런 대원을 잃고 눈이 뒤집히는 것 또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러던 다예루가 증평의 대원들을 받아들이더니 이번엔 요원들마저 모조리 가슴에 담았다.

“후우.”

강찬은 담배 연기를 내뿜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저 상태에서 아끼던 대원이나 요원을 잃으면 속이 얼마나 아프고 저릴까.

미친놈처럼 굴거나, 혼자 복수한답시고 알제리로 날아갈지도 모른다.

강찬이 겪고, 제라르가 아파했던 일들을 다예루는 이제 시작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잠시 앉아서 커피를 반쯤 마신 다음이었다.

“저녁은 어떻게 할 거요?”

“집에 가서 먹으려고. 내일모레가 졸업식인데 일찍 들어가서 미리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도 그렇소. 두 분이 많이 서운해하시겠소.”

“어떡하겠냐? 잘 말씀 드려봐야지.”

강찬은 석강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파트 앞에서 석강호와 헤어져 집의 현관문을 열자, 유혜숙이 맞아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녁 먹고 들어오나 전화해볼 참이었어.”

“먼저 전화 드릴 걸 죄송해요.”

“제시간에 왔는데 뭘. 지금 밥 먹을까?”

“아버지는요?”

“오늘 약속이 있으신가 봐.”

“그럼 옷 갈아입고 손만 씻고 나올게요.”

강찬은 방으로 들어가 권총과 무전기를 책상 서랍에 넣고 옷을 갈아입었다.

간단하게 손을 씻은 후에 주방으로 향했을 때 유혜숙은 밥을 담고 있었다.

“무슨 반찬이 이렇게 많아요?”

“잡채랑 어제 먹었던 돼지 불고기뿐인데?”

그 외에도 쌈을 쌀 수 있는 상추와 쑥갓, 깻잎, 그리고 오징어를 데친 것들이 식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른 드세요.”

“그래, 아들.”

유혜숙이 마지막으로 김칫국을 떠주고 강찬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리운 맛이었다.

파는 음식에 비해 특별히 맛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쩐지 늘 생각나는 맛, 그리고 먹으면 어딘가 모르게 행복해지는 맛이었다.

“아버지 많이 늦으신데요?”

강찬이 국물을 뜨며 입을 열었을 때였다.

삑삑삑삑삑. 뚜르르.

현관이 열리며 강대경이 들어섰다.

“어? 여보?”

“아버지 오셨어요? 약속 있으셨다면서요?”

“일찍 끝났어. 여보, 내 밥 있지?”

“응. 얼른 손 씻고 와.”

강대경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재킷만 벗은 차림으로 식탁으로 다가왔다.

“여기!”

유혜숙이 밥과 국을 준비해 주는 동안 강찬은 수저와 물을 준비해 주었다.

“아! 행복하다! 얼른 먹자.”

강대경이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었고, 다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식사 후가 나을까?

강찬은 일단 잠자코 식사를 마쳤다.

함께 설거지와 뒷정리를 마친 다음이었다.

유혜숙이 랩으로 감싸두었던 멜론 반쪽을 가지고 왔다.

설마 김미영과 먹고 남았던 그 반쪽은 아닐 거다.

셋이서 식탁에 앉아 멜론을 먹을 때였다.

“모레가 학교 졸업식이에요.”

“응.”

강대경과 유혜숙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저는 못 갈 것 같아요.”

강찬은 곧바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하는 일과 관련해서 한국에 전기 발전 시설을 건설할 예정인가 봐요. 새로운 신기술이라서 원유 생산국의 반대가 심하니까 혹시라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요.”

말을 마친 강찬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강대경이 안쓰럽게 보는 시선 앞에서 유혜숙은 서운한 감정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다.

“너는 서운하지 않겠니?”

“두 분께 죄송해서 그렇지, 전 상관없어요.”

강대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기 발전 시설이라는 것에도 네가 관련되는 거냐?”

“조금은요. 아무래도 프랑스의 기술이 도입되는 거라 빠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김 대리가 요즘 더 예민한 느낌이었던가?”

“그랬어요?”

강대경의 유혜숙을 힐끔 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느낌이 그랬던 거다. 당신 서운해서 어떡해?”

“아냐. 아들이 위험한 일이라면 우리 때문에 억지로 가는 것보다 차라리 안 가는 게 더 나아.”

경호 요원과 함께 생활한 지 좀 됐고, 지하 주차장에서의 총격전, 호텔에서의 생활을 겪어서인지 강대경과 유혜숙은 예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졸업장은 받아다 주겠지?”

“그러지 않을까요?”

“그럼 우리 그 졸업장 가지고 셋이 사진 한번 찍자.”

강찬이 의아한 시선을 들었을 때였다.

“아파트 벤치 같은 곳에서 찍으면 되지. 나중에 너 장가가고 나면 엄마랑 둘이 그거 보면서 이런 일도 있었지 하고 추억하게.”

오히려 더 초라하고 가슴 아프지 않을까?

그런데 유혜숙이 진지한 얼굴로 강찬을 보고 있었다.

“그럼 그날은 멋지게 차려입어야겠는데요?”

“교복을 입어야지.”

강찬이 얼른 맞장구를 쳤고, 강대경이 그걸 또 받아주었다.

“어머니. 저 꽃다발 주시는 거죠?”

“꽃다발?”

“어? 졸업사진 같은 거 보면 다들 꽃다발 들었던데요?”

“아들이 받고 싶다면 해야지! 엄마가 멋진 걸로 해줄게.”

“저녁도 같이 먹구요.”

“그건 아버지가 사마.”

어쩐지 애처로운 느낌이 들었다.

“많이 서운하시죠? 죄송해요.”

그래서 강찬은 얼른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건넸다.

“아버지는 김 대리와 요원분들 볼 때마다 미안했다. 저분들도 가족이 있고, 의미 있는 날이 있을 텐데 쉬는 걸 한 번도 못 봤거든.”

“그러네, 여보. 민정 씨도 하루를 거른 적이 없어.”

“그렇지? 그러니 우리는 아파트에서 함께 사진 찍는 것으로도 만족하자. 그리고 아들이 아……!”

강대경이 유혜숙의 눈치를 힐끔 살피고는 정말 어색한 동작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프리카’를 말할 뻔한 것을 억지로 막은 눈치였다.

“당신 왜 그래?”

“갑자기 배가 아파서. 이제 괜찮아.”

“어디 심한 거 아니야? 언제부터 그랬어?”

유혜숙이 저렇게 순진하니까 강대경의 지금 같은 연기력이 발휘될 수 있는 걸 거다.

“화장실 가고 싶어서 그런 거야.”

“이이는, 애도 아니고!”

유혜숙의 투정을 받으면서 강대경이 강찬을 보았다.

“아무튼, 아들이 몽골에 있지 않은 게 어디야? 졸업장 받으면 우리 사진 찍고 저녁 먹고 하자.”

“엄마가 꼭 예쁜 꽃다발 선물해 줄게.”

“고맙습니다.”

강찬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

벌써 회의는 1시간을 훌쩍 넘겼다.

황기현을 중심으로 좌측부터 부원장, 1국장, 2국장, 3국장, 4국장이 순서대로 앉았고, 그렇게 빙 도는 바람에 황기현의 바로 오른편에 김형정이 앉았다.

“일본 정보국이 외교부를 통하지 않고 총리의 방문 의사를 전달해 왔습니다. 대통령님과 면담이 허락되면 공식적으로 방문을 신청할 예정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제1국, 아시아 제2국, 유럽 제3국, 북한 제4국이다. 그 외에 특수임무를 담당하는 삼성동 분실을 김형정이 맡았고, 제5국은 아프리카와 비수교국을 담당한다.

그래서 지금 보고는 제2국장이 한 것이었다.

“공식 면담이 성사된다면 독도의 한국 영토 인정, 과거사 공식 사과, 그리고 배상에 대해 합의하겠답니다.”

지친 얼굴이던 국장들이 놀란 눈을 할 만큼 엄청난 내용이었다.

“셔먼 국장도 출국 전에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동맹국 지위 강화, 그리고 한미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러시아 대통령 방한 요청에도 아직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과 영국의 총리 방문에 대한 답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요청들에 대해서는 빠르게 답을 해주는 것이 도리여서 국장들의 보고는 곧 답을 재촉하는 것이기도 했다.

“각국에 파견된 요원들에 대한 경계는 충분합니까?”

“위험하다고 여겨지면 곧바로 대응 사격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답은 부원장이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견 또한 부원장의 것이었다.

“원장님. 사격 대응이 의미하는 바를 아시리라 믿고 다른 말씀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자칫 파견국의 정보국과 마찰이 생기면 이후의 문제를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1년에 평균 10명에서 20명의 요원들을 그런 이유로 잃어 왔습니다. 앞으로는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총을 들고서도 헛되이 죽는 일이 없게 할 것입니다.”

부원장과 국장들이 굳은 얼굴로 황기현을 보았다.

10여 년 전 북한 고위급 인사의 망명으로 국가 정보원 요원들 17명이 희생되었을 때가 떠올라서였다.

당시 중국에서 망명한 그를 지키는데 6명, 다시 필리핀으로 이동한 뒤에 북한 요원들과의 총격전으로 5명, 마지막 이동 경로인 홍콩을 거칠 때 다시 6명의 요원이 희생되었다.

북한 서열 2위였던 그를 지키는 임무인데도 필리핀을 제외한 중국과 홍콩에서 우리 요원들은 총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하고 죽어갔었다.

그 뒤로도 유럽에서 활동하는 우리 요원들은 적국 요원들과 마주쳤을 때 변변한 대응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정보국 간의 불평등한 협약 때문이었다.

국력이 달리면, 외교력이 부족하면, 같이 사고를 쳐도 부족한 나라의 정보국 요원들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는 탓이었다.

“조만간 대통령님께서 공식적으로 방문을 신청한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들을 공식 초청할 예정입니다. 시간이 길게 걸리지 않을 겁니다.”

황기현의 답이 곧 문재현의 답이어서 국장들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외에 우리나라에 대한 테러가 예견됩니다. 그와 관련한 정보는 사소한 것이라도 특급으로 처리해서 혹시라도 놓치는 것이 없도록 부탁합니다. 다른 보고나 질문 있습니까?”

황기현이 돌아보았을 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김형정 팀장은 잠깐 남았다 가지.”

“알겠습니다.”

부원장과 각국 국장들이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간 다음이었다.

“인원 선발은?”

“상주할 요원 13명, 그리고 추가로 20명의 요원을 선발했습니다.”

“흐흠.”

황기현이 커다랗게 숨을 토해냈을 때였다.

“절반 이상이 특수팀 출신이고, 지원자 위주로 선발했습니다.”

“인원을 늘리는 것은 검토해 봤나?”

“어차피 대대적인 전투를 치를 것이 아닌 데다, 아직 확실한 타겟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너무 많은 인원을 파견했을 경우, 리비아에서는 역효과가 우려됩니다. 또한, 대대적인 인원 파견 시 현지 정보원들과의 연락이 끊길 위험도 있습니다.”

“이런 발령을 낼 때는 늘 편치 않군.”

“요원들 모두 사명감으로 뭉쳐서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 가슴에 얹히는 거지.”

굳건하게 답을 하고 있었지만, 김형정의 눈매 또한 황기현과 다르지 않았다.

***

셔먼은 백악관의 경제 수석, 안보 수석, 아시아 담당 수석 보좌관, 그리고 미 합중국 대통령 라우드와 함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국의 대통령 문재현이 이번 신에너지 개발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셔먼의 보고가 끝났음에도 누구 한 사람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남은 결정은 프랑스, 러시아, 한국에 매달려 옵저버라도 그 계획에 참여하느냐, 아니면 사우디아라비아에 확실하게 동조하느냐, 둘 중 하나겠군요.”

“프랑스의 정보총국과 러시아의 KGB를 상대로 우리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완벽하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라우드의 질문에 의견을 제시한 안보 수석이 셔먼을 향해 말을 이었다.

“여기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한국에 발전시설을 최초로 건설하겠다는 것은 아랍과 유대계의 반응을 미리 보는 것이니 충분히 인정합니다. 그런데 왜 라노크나 바실리라는 거물이 한국에 저렇게 우호적인가 하는 점입니다.”

“영국에서의 일에 대해 모릅니까?”

“알고 있습니다. 블랙헤드를 그 어린 학생이 해결했다고 들었습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셔먼이 피곤하다는 투로 눈을 껌벅인 다음 입을 열었다.

“하나씩 짚읍시다.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라노크, 바실리와 친분이 두터운 데다, 몽골에서 프랑스 외인부대 특수팀 사상 최고로 완벽한 작전을 수행했으며…….”

말하기도 지친다는 것처럼 셔먼은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프랑스,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프랑스 정보총국 부총국장, 그리고 한국 국가정보원 부원장으로 대테러 팀장입니다. 이런 사람을 단지 어린 학생이라고 취급할 수 있습니까?”

“셔먼. 그러니까 그런 괴물이 어째서 느닷없이 한국에 나타난 것인지를 알아내는 게, CIA가 제대로 보고조차 않는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이유 아닙니까?”

안보 수석의 질문에 셔먼이 완벽하게 비웃는 듯한 웃음으로 답을 했다.

“나 모르게 브랜든과 뒤를 쑤시다가 일이 꼬이니까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거요? 어디 사우디아라비아와 어떤 컨넥션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파헤쳐 드릴까?”

“국장. 너무 멀리 가지는 맙시다.”

마른 체형에 파란 눈을 가진 미국 대통령 라우드가 두 사람의 시선을 당겼다.

“북한의 반응은 어떻소?”

“한국과의 경제 협력 조치에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쉽지 않군요. 우리가 한국의 편에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우선 경제적인 효과, 그리고 한국인이 특히나 중요시 여기는 감정적인 면을 다독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과의 일을 말하는 겁니까?”

“현재로선 그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셔먼이 답을 한 직후였다.

웅웅. 웅웅.

그의 앞에 놓인 전화가 짧게 울렸다.

달칵.

셔먼은 전화기를 열어서 내용을 확인했다.

“후!”

그는 기가 막힌 모양으로 짧게 숨을 토해냈다.

“일본이 먼저 선수를 친 것 같습니다. 독도를 포함한 동해의 한국 지배권 인정, 그리고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조건으로 총리의 한국 방문을 신청했습니다.”

라우드는 왼손을 들어 이마에서 볼을 두어 번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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