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79화 (27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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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만만치 않구나.

강대경이 퇴근했고, 모처럼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행복하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시간이었다.

TV 보며 시간 보내기가 아까워서 함께 설거지를 마친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았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여보. 오늘 미영이 와서 점심 먹고 갔어.”

유혜숙이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그래?”

“찬이는 지금 하는 일들 때문에 미영이를 힘들게 할까 봐 걱정되나 봐.”

이어진 유혜숙의 말에 강대경이 뜻밖이라는 시선으로 강찬을 보았다. 마치 ‘넌 뭐든 빠르구나.’ 하는 눈빛이었다.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지금은 건전하게 친구로 사귀다가 나중에 대학 졸업할 때쯤 진지하게 생각하면 되지.”

교과서에 나올만한 답인데 의외로 맞는 말 같기도 했다. 그놈의 여행만 빠진다면 말이다.

하긴 그것도 건전하게 다녀오면 문제는 없는 거다.

어쩐지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지.

부족하지 않은 식탁의 조명, 온기가 느껴지는 거실, 그리고 웃음과 차, 엊그제 겪었던 아프리카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강대경, 유혜숙과 충분히 시간을 보낸 강찬은 방으로 들어갔다.

잘 수 있을 때는 자 두는 게 좋다.

모처럼 깊게, 그리고 푹 잤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과 마음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주변을 잠시 걷고 들어온 강찬은 강대경, 유혜숙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다녀오세요!”

그리고 강대경과 유혜숙의 출근을 지켜보았다.

이제 슬슬 커피를 한잔 마시고…….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조금 있다가 마셔야 할 모양이었다.

방으로 가서 전화를 들었을 때 발신번호는 라노크였다.

“대사님.”

[“강찬 씨. 나를 놀라게 할 생각이었습니까?”]

라노크의 음성에 웃음이 묻어 있었다.

“대사님께서 경호는 제게 맡겨주신다고 하셔서 가장 믿을 만한 두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군요.”]

“제겐 대사님의 안전이 유라시아 철도와 발전소, 그 모든 것에 앞서는 일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유치한 질문이었지만, 답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얻는 게 있다면 안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안느는 한국에 있는 것이 좋다고 여겼습니다.”

[“계속해서 멋진 선물을 안겨주는군요.”]

“선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진심이었다.

그래서 전화기를 타고 건너오는 라노크의 웃음이 뜻밖으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조연이 약간은 무리를 해야겠군요.”]

뭐야?

지난번엔 바실리가 그러더니.

“대사님. 조연이 무슨 뜻입니까?”

[“조만간 알게 될 겁니다. 오늘 저녁은 강찬 씨 덕분에 모처럼 안느와 함께 식사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럼 또 전화하겠습니다.”]

***

전화를 끝내고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부상자들과 사망자들이 한국으로 건너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중간에 석강호를 만났으며, 전대극, 김형정과 한 번 만난게 전부였다.

얼핏 듣기에 바빴던 것 같지만 지나온 시간과 비교해보면 정말이지 태평한 시간이었다.

오광택, 김태진과 통화한 것과 하루에 한 번씩 전화로 김미영의 목소리를 들은 건 뭐 따질 것도 아니다.

발전소가 하루이틀사이에 지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거야 시간 급할 일은 없는데, 그렇더라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을 만큼 아무 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어깨의 붕대를 풀었고, 손의 딱지도 거의 사라졌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아침에 두 사람이 출근한 다음이다.

이건 번호를 안 봐도 딱이다.

강찬은 전화를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뭐하쇼? 오늘도 사무실 안 나갈 거요?”]

“나가서 할 일도 없잖아?”

[“병나겠소. 그러지 말고 미사리라도 한번 다녀옵시다.”]

“우리 움직이면 요원들 힘들다.”

[“어허! 그러지 말고 같이 바람 한번 쐬고 옵시다. 가서 카페 다 차지하고 함께 커피 마시면 좋잖소?”]

“그런가?”

[“얼른 나오쇼. 나 지금 나가요.”]

전화를 끊은 강찬은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았다.

이런 날, 미사리라! 나쁘지 않겠다.

편한 바지에, 두꺼운 티, 그리고 재킷, 권총, 무전기.

강찬은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아파트 건물 현관을 나서자 알싸한 겨울 공기와 함께 요원들의 시선이 달려들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던 강찬은 그만 픽 하고 웃고 말았다.

벤치 쪽에서 최종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함께 싸우던 전우를 만나는 것은 언제고 반갑다.

“언제부터 있었어?”

“오늘부터 나왔습니다. 희승이랑 두희도 대기 중입니다.”

“잘 됐다. 미사리에 갈 건데 함께 커피나 마시고 오자.”

“알겠습니다.”

강찬이 입구로 걸어가는 동안, 최종일이 무전으로 요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석강호의 차는 입구의 오른편에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뒤로 승용차 세 대가 섰는데 그중 하나는 이두희가 운전하는 차였다.

“날씨 좋소.”

강찬이 조수석에 앉자 석강호가 곧바로 차를 움직였다.

“우리 그냥 가평 갈까요?”

“가평?”

“날씨가 아깝잖소? 증평이나 가평 가서 쟤들이랑 닭을 삶아 먹든, 고기를 구워 먹든 하고 옵시다.”

한적한 자동차 전용도로를 기분 좋게 달리는 참이다.

헐벗은 나무 사이로 햇살이 길게 비춰서 자동차 안은 다가올 봄을 미리 맛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애들 훈련은 끝났대?”

“푸흐흐. 열 명 충원했습디다. 애새끼들, 눈에 독기가 번들번들한 게 동균이가 어지간히 굴렸구나 싶었었소.”

“어째 점점 제라르랑 비슷해지는 거 같지 않냐?”

“어? 대장도 그 생각 했소? 푸흐흐흐!”

핸들에 왼팔을 걸친 석강호가 “날씨 좋다!” 하고 또 한 번 감탄사를 뱉었다.

“어쩔 거요? 가평이요? 증평이오?”

강찬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정 그러면 가평 가자.”

“캬하! 알았소.”

뜬금없이 감탄사를 뱉은 석강호가 무전으로 방향을 알려주었다.

“새로 뽑은 대원들 때문에 그런 거요?”

강찬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같은 때 분위기 깨면 병아리들 정신 못 차린다. 차라리 나중에 연락하고 제대로 찾아가는 게 맞아.”

“그건 그렇소. 참! 다음 주에 대원들 장례식 있답디다. 정식 파병이어서 제대로 치르는 모양인데 방송까지 잡혀서 대장하고 나는 참석하기가 좀 그럴 것 같소.”

“할 수 없지.”

가평을 향하는 국도로 들어서자 길은 더욱 한적해서, 석강호가 아는 백숙 집에 도착하는 데까지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입구를 차로 막아. 그러면 들어서는 사람들 바로 보이잖아? 그렇게 해놓고 다 들어가자.”

석강호가 요란스럽게 머리를 써댔다.

산을 타고 올라가다 왼편에 있는 가게였는데 요원들이 차량 세 대로 입구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겨울, 평일, 손님이 없는 날인 데다 단체 손님 수준이어서 주인이 앞장서서 차 막는 것을 도왔다.

석강호는 백숙과 도토리묵, 그리고 막걸리를 주문했다.

요원들이다.

경호 때문에 난감해 했으나 석강호가 커다란 단지에 막걸리 세 병과 사이다 세 병, 그리고 요구르트를 잔뜩 섞어서 돌린 것은 한 컵씩 받았다.

“건배!”

밑도 끝도 없는 석강호의 외침에 다 같이 컵을 입에 가졌다.

“오!”

강찬이 석강호를 다시 바라보았을 만큼 괜찮은 맛이었다.

***

문재현의 좌측에 황기현, 우측에 셔먼이 앉았다.

이례적으로 백악관이 미 대사를 통해 비공식 회담을 요구해 급조된 자리였다.

둥그런 원탁 탁자, 그리고 의자 사이마다 협탁.

문재현과 셔먼 사이의 협탁에 찻잔이, 그 앞 원탁에 재떨이와 담배가 놓였고, 두 사람 사이에 작은 수첩과 볼펜을 든 통역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Mr. President. 우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작전에 누를 끼친 점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통역이 빠르게 셔먼을 본 이후에 말을 전했다.

아무리 비공식 회담이라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유감을 표한다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셔먼은 지금 분명하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표현을 썼다.

“다음으로 UN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되었다가 희생된 대원들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통역이 보다 편안한 얼굴로 셔먼의 말을 전했다.

“본국은 이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의 의미로 DIA 국장을 교체하였습니다.”

문재현과 황기현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말이 CIA 국장이지, 저 사람이 목숨 걸고 독한 마음을 먹는다면 황기현은 말할 것 없고, 문재현도 안전을 장담하지 못할 힘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느닷없이 날아와서 정보공작의 최고 지위에 있는 DIA 국장의 교체를 알리고 사과라는 표현을 쓸 때에는, 그만한 요구와 목적이 있으리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Mr. President. 본국은 지금까지 우호적이고 발전적인 동맹 관계를 유지해오던 대한민국과 앞으로 보다 긴밀한 관계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두꺼운 안경 때문에 눈이 커다랗게 보이는 셔먼이 말을 마치고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국장. 먼 길을 와서 솔직한 사과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달칵.

문재현의 말에 집중하는 것처럼 셔먼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대한민국과 나 역시 앞으로 미국과 우호적이고 발전적인 관계가 지속되기를 희망합니다.”

문재현의 말을 들은 셔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Mr. President.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은 조금 특별한 청과 제안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차세대 에너지 개발은 본국과 함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질문을 던진 셔먼이 빠르게 살폈으나 문재현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본국과 한국,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연결하는 에너지, 통화 협정을 원합니다. 이 제안을 한국이 승인하게 된다면, 앞으로 한국은 제한 없는 원유 수급, 사우디아라비아가 무제한 매입하는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되며, 본국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여 1조 달러에 이르는 달러를 비축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게 됩니다.”

셔먼의 입끝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태연한 척하고는 있지만, 문재현과 황기현의 눈 끝이 떨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본국은 이 제약과 관련해서 별도의 제안을 하나 더 준비했습니다.”

전철 안에서 ‘한 개만 드리면 서운해서!’ 라고 외치는 것처럼 셔먼은 문재현과 황기현의 시선을 당겼다.

“이번 제안을 한국이 받아들이면 본국은 한국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 그리고 F22 랩터의 구매를 승인할 것입니다.”

‘이런 너구리가?’

문재현과 황기현이 펄쩍 뛰며 반길 것을 기대했던 셔먼은 내심 불편한 시선으로 앞을 보았다.

문재현은 원탁에 두었던 담배를 집기 위해 상체를 숙이고 있었다. 그 바람에 황기현이 자연스럽게 표정을 감추며 문재현에게 시선을 돌리기까지 했다.

‘워싱턴에서 보통이 아니라더니.’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 든 문재현이 느긋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국장은 담배를 피우시나요?”

“괜찮습니다.”

찰칵.

“후우.”

대화의 줄기가 정말 오묘한 곳에서 끊겼다.

문재현과 갓 오브 블랙필드의 호흡이 환상이라는 말과 깊은 심계를 조심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대범한 인물일 줄은 몰랐다.

“국장.”

재떨이에 담배를 턴 문재현이 말을 건넸다.

“러시아에서 핵미사일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은 이루어지기가 어렵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재현이 셔먼의 말에 동조하고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저 빌어먹을 담배 때문에 자꾸만 대화의 맥이 끊긴다.

셔먼은 담배를 빼앗아 재떨이에 짓이기고 싶었다.

“그것과 비슷하게 대한민국이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F22를 사들이게 되면 주변국들의 엄청난 반발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거야 본국에서…….”

“심할 경우에는 러시아, 중국, 일본의 세 나라가 협약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기술이 아직 부족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굳이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할 필요가 있을까요?”

“Mr. President. 일본은 이미 구매 신청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국장. 일본이 F22를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셔먼은 대꾸를 하지 않고 문재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미국이 일본에 동조하는 것을 먼저 멈추어야 합니다. 자위대의 자위적 진출, 독도를 포함한 동해의 명칭과 영토문제, 신사 참배, 그리고 과거의 잘못 등에 대한 사과와 배상,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일본이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데는 미국 정부의 태도 표명이 크다고 판단합니다. 이번 F22 구매도 그런 것들과 연관된 것이 아닙니까?”

셔먼은 찻잔을 얼른 들었다. 이런 회담에서 상대의 말에 마른 침을 삼키는 것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생산을 중단한 F22를 일본과 한국에 판매하겠다는 것이 본국에 대한 효과적인 제안입니까? 결국, 본국과 일본은 공연히 무기 증강에 따른 긴장만 조성될 것이고, 더불어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에 시달려야 할 텐데요?”

만만치 않구나!

갓 오브 블랙필드라는 어린놈이 나온 뒤에는 문재현이 있는 거구나!

찻잔에 비친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며 셔먼이 떠올린 혼잣말이었다.

문재현이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 협탁에 두었던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았다.

“에너지 협약 문제는…….”

물티슈를 옆의 휴지통에 넣은 문재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어서,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질 시간이 필요합니다.”

셔먼을 결국 마른 침을 삼키고 말았다.

더 나갈 것이냐?

아니면 여기서 멈출 것이냐?

“Mr. President. 북한의 반응도 검토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요즘 자존심이 무척 상해 있을 테니까요.”

셔먼은 이 회담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승부를 걸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한반도 최대의 약점을 꺼내 들었다.

“개성을 산업기지로 제공한 것이 그들에게는 끔찍한 굴욕인 것은 국장도 잘 아실 일이고.”

뭐라고?

셔먼이 눈을 깜박이며 그 핑계로 시선을 들었다.

“북한 최대의 군사 요충지를 달러가 부족해서 내놓은 것입니다. 그들의 인민들이 우리의 경제력을 하나둘 알게 되는 데다, 무엇보다 그곳이 파괴될 경우, 북한의 기갑사단이 우리에게 넘어올 가장 중요한 길목이 한동안 막히게 됩니다.”

셔먼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재현이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는 것을 지금의 대화로 확실히 알았다.

경제력? 기갑사단?

설마 문재현이 정말 저따위 이유로 북한의 반응을 염려하고 있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북한의 군사력이 어쩌니, 개성의 산업기지가 사실은 군사 요충지가 아니니 떠들어봐야 어차피 중심 화제는 저 멀리 달려나가게 될 게 뻔했다.

“혹시 에너지 협약과 관련해서 본국에 요구사항이 있습니까?”

그래서 셔먼은 솔직하게 마지막 패를 꺼내 들었다.

정말 원하는 건 뭐냐?

너희가 솔직히 얻고 싶은 것.

오냐!

갓 오브 블랙필드 덕분에 에이스를 석 장쯤 든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거라면 이쪽은 아예 백지 수표를 내밀어 주마!

“Mr. President. 한국의 대통령 임기는 5년입니다. 대통령님이 이번 협약을 체결한다고 해도 다음 대통령은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는 겁니다. 그렇다면 임기 뒤를 고민할 필요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셔먼은 문재현의 아픈 곳을 힘껏 찔렀다.

아니나 다를까.

문재현이 처음으로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땐 찌른 칼을 비트는 잔인함도 필요하다.

“당장 한국은 석유의 예비율이 45일을 넘지 못합니다. 먼 미래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봄부터 굶어서는 가을의 수확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상태에서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은 그대로 파산 선고를 할 수밖에 없겠지요.”

잘 알면서!

셔먼의 눈 끝이 날카롭게 위로 올라갔다.

아직은 아니다.

미국을 완벽하게 배제하기에 한국은 아직 어설프다.

함께 잘 살자.

너희만 유라시아 철도와 러시아 원유, 차세대 에너지로 배 터지려 하지 말고 함께 잘 살아 보자.

당근을 던진 뒤에서 채찍을 휘두른 셔먼이 만족한 웃음을 삼킬 때였다.

문재현이 무심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국장. 그래도 난 우리의 가장 우방국인 미국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국장을 먼저 만난 겁니다.”

뭐? 뭐라고?

‘바실리? 양범?’

셔먼은 무방비로 따귀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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