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71화 (27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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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그냥 못 돌아가겠다.

‘끄으윽!’

강찬의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것을 석강호와 제라르도 느꼈다.

‘다예?’

제라르가 빠르게 시선을 돌렸을 때 석강호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 함께 있을 때, 옆에서 지켜줄 수 있을 때 블랙헤드를 이겨내겠다는 다부진 각오가 가득했다.

“헉헉! 헉헉!”

석강호와 제라르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동굴의 안쪽 벽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는 자리가 눈에 보였다.

석강호가 바로 악을 썼다.

“대장!”

“가! 가!”

강찬은 있는 대로 악을 썼다.

전기 고문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지금은 온몸의 신경이 모조리 타들어 가는 끔찍한 고통에 눈알이 깨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머리칼, 심지어 온몸의 솜털 하나하나가 모두 전선이 되어서 전기를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개새끼야!

내가 질 줄 알았지!

너도 불러!

다예와 제라르 같은 동료가 있으면!

억지로 부릅뜬 강찬의 눈에 붉은빛을 뿜어내는 곳이 들어왔다.

동굴에서 피어난 먼지가 빛의 결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끄아아!”

“대장!”

“가라고!”

레이저처럼 결로 뿜어져 나온 빛줄기가 강찬을 향해 집중되는 것을 석강호도, 제라르도, 뒤따라오는 최종일과 이두희까지, 모두 보았다.

화아악!

그리고 마침내 붉은빛이 뿜어지는 벽에 도착했다.

“놔!”

강찬은 악을 썼다.

우우우우웅.

“끄윽!”

빛은 거짓말처럼 강찬에게만 집중되었다.

어두운 동굴이다.

강찬의 몸이 피처럼 붉게 빛나면서 동굴 안쪽이 삽시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연결됐다!

이건 본능으로 알 수 있는 거다.

블랙헤드가 강찬에게 뻗어낸 에너지를 강찬도 분명하게 느꼈다.

강찬은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블랙헤드?

전에 가져갔던 에너지를 되찾겠다고?

내가 달랬어?

내가 다시 태어나게 해달랬냐구!

강찬은 어떻게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빼앗을 수 있는지를 몰랐다.

그저 영국에서의 느낌대로만 움직일 뿐이었다.

“끄으으!”

주먹만 한 크기의 돌에서 피처럼 붉은빛이 뿜어져 마치 태워 없앨 것처럼 강찬에게만 집중되었다.

강찬은 악착같이 손을 뻗었다.

머리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는 블랙헤드다.

우우우우웅.

강찬이 손을 뻗는 것을 아는 것처럼 블랙헤드가 좀 더 강렬한 빛을 뿜어냈고, 나직한 진동음까지 토해냈다.

개새끼야!

이제 영국에서 뒈진 놈 곁에 가서 편안하게 지내!

강찬은 악착같이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우웅!

‘끄으으으!’

블랙헤드에 손이 가까이 갈수록 몸 안에 있는 수분이 빠르게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가고, 몸뚱이에 있는 모든 기운이 빨려서 푸석푸석해지는 느낌.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마치 지금껏 밟고 지나온 흙처럼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피식.

강찬은 있는 힘껏 손을 밀었다.

자석의 같은 극이 맞닿은 것처럼 블랙헤드에 다가갈수록 손이 밀려났다.

잊고 있었다.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석강호와 제라르가 있는 걸.

저 두 놈이 이 빌어먹을 블랙헤드를 가져다가 어떡해서든 복수해 줄 거다.

쉽게 깨지지 않을 거라고?

엿같은 소리 지껄이지 마!

저 두 새끼를 몰라서 그런 거야!

콰아악!

마침내 강찬은 블랙헤드를 움켜쥐었다.

웅웅웅웅웅웅.

진동이 확실히 커졌다.

부스스슷! 부스스스!

그리고 머리 위에서 흙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

강찬은 몸에 있는 에너지와 블랙헤드의 에너지가 하나로 뭉쳐지는 것을 알았다.

단순한 에너지인 거다.

이 에너지가 강찬을 당기는 것은 본능인 거다.

잠재되어 있던 에너지를 폭발하고 싶어하는 욕구, 그것을 이룰 통로가 강찬인 것을 알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느낌!

그럼 부탁을 했어야지!

으드득!

강찬은 이를 악물었다.

거짓말처럼 블랙헤드를 손으로 잡고 난 이후부터, 심장의 울림을 다시 느낄 정도로 고통이 사라졌다.

우우웅.

부스스스! 부스스슷!

빛과 진동이 가라앉는 만큼 천장에서 쏟아지는 흙의 양이 늘었다.

석강호와 제라르가 천장을 보았다가 시선을 마주쳤다.

여차하면 강찬을 낚아채서 달릴 생각이었다.

우우웅. 우웅. 웅.

마침내 빛과 진동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달칵.

블랙헤드가 벽에서 떨어졌다.

“대장?”

부스스스슷! 부스스스스슷!

석강호가 부를 때 매달아 놓았던 흙자루의 밑이 뚫린 것처럼 천장에서 흙이 쏟아져 내렸다.

“다예! 일단 달리자!”

프랑스 말이다.

그런데도 석강호는 알아들은 것처럼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콰악! 콰아악!

올 때처럼 석강호가 왼쪽 겨드랑이를 감쌌고, 제라르가 오른쪽에 팔을 끼웠다.

부스스! 부스스슷! 부스스스! 부스스스스!

흙이 쏟아지는 줄기가 점차 많아지고 있었다.

“나가! 빨리 밖으로 달려!”

석강호가 최종일과 이두희에게 악을 썼다.

부서진 천장의 흙이 물줄기처럼 머리로 쏟아져서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다.

“달려! 밖으로 나가!”

제라르가 앞을 향해 악을 썼다.

“로베르! 나가! 밖으로 달려!”

부스슷! 부스스! 부스스스! 부스슷! 부스스!

이대로라면 아무래도 늦는다.

이미 떨어져 내리는 흙 줄기가 점차 뭉쳐서 폭포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차동균! 나가! 밖으로 달려!”

석강호가 악을 썼을 때였다.

“놔!”

강찬이 악을 썼다.

부스스슷! 부스스! 부스스슷! 부수수수수!

“대장!”

“놓으라고!”

강찬의 몸에 힘이 돌아오는 것을 못 느낄 두 사람이 아니다.

어깨를 받쳤던 팔을 빼냈을 때 강찬은 이미 제힘으로 달리고 있었다.

“헉헉! 헉헉!”

부수수수수수수!

아예 폭포 아래를 뚫고 달리는 느낌이었다.

앞에서 노인을 업은 프랑스 대원과 아이를 업은 차동균이 달리는 것이 보였다.

부수수수수수!

이젠 앞이 안 보였다.

머리로 어깨로 쏟아지는 흙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고, 발이 부서진 흙에 푹푹 빠졌다.

거친 숨이 턱에 차도 입을 열지 못했고, 코는 이미 흙으로 꽉 차서 숨을 참고 달리는 형편이었다.

부수수수수! 드드드드드드!

처음으로 바닥이 흔들렸다.

“뛰어!”

콰아악!

입구를 향해 최종일과 이두희가 뛰어들었고, 강찬과 석강호, 제라르가 동시에 몸을 던졌다.

콰작! 철퍼덕! 철퍼덕!

맨바닥에 몸뚱이가 처박히는 고통이 먼저 느껴졌고, 다음으로 눈 부신 빛이 눈을 파고들었다.

아프리카의 태양이 반갑기는 또 오랜만이었다.

“캐액! 캑!”

석강호가 고개를 처박고 흙을 토해냈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커억! 퉤에! ”

강찬도 예외는 아니어서 바닥에 머리를 대고 연신 흙을 토해냈다.

강찬은 그제야 오른쪽 다리를 짚고 있던 손에 블랙헤드가 쥐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개새끼!

처음부터 이렇게 얌전했으면 얼마나 좋아?

블랙헤드를 허벅지 옆의 주머니에 넣은 강찬이 고개를 들었다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머리는 물론이고, 볼과 눈썹에까지 하얗게 흙먼지를 뒤집어쓴 대원들이 붉게 변한 눈으로 강찬을 보고 있었다.

노인이 놀란 얼굴로 막혀버린 동굴의 입구를 손으로 만져대는 중이다.

“염병! 저쪽에 가서 담배 하나 피우고 가자.”

“그럽시다!”

석강호가 머리를 털어가며 답을 했다.

“야! 저쪽에 가서 털어!”

“다 털었소.”

로베르가 노인을 안심시키고 강찬을 따라 움직였다.

최종일이 담배를 꺼냈고, 제라르가 라이터를 켰다.

쩔껑! 치이익!

“후우!”

“퉤에! 다 끝난 거요?”

“응. 이번 놈은 그런데 다음에 또 마주치면 어떨지 모르지.”

“에이. 전에도 십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했던 놈 아니오? 이젠 아프리카 오지 맙시다. 이건 뭐! 퉤에! 퉤!”

“이번엔 오고 싶어서 왔냐?”

담배 하나가 금방 타버렸다.

“하나 더 줘.”

최종일이 기다렸다는 듯 담배를 내밀었고, 거짓말처럼 모두 담배를 하나씩 더 물었다.

“제라르. 오늘 일은 비밀로 하자.”

“알겠습니다.”

입술 한쪽에 담배를 깨문 제라르가 피식 웃으면서 발목에 걸린 대검을 뽑아들었다.

이 새끼는!

뭐 이런 걸 가지고!

강찬은 아차 싶었는데 이미 제라르가 대검을 뽑아든 다음이라 도로 집어넣으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석강호가 히죽 웃는 앞에서 최종일, 차동균, 이두희가 무슨 짓인가 하는 얼굴로 제라르를 보고 있었다.

꽈악!

제라르가 왼손으로 대검의 날을 꽉 쥐었다가 놓고는 로베르에게 건넸다.

최종일의 시선을 받은 강찬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렇게 대검을 쥐었다 놓으면 왼손에 두 줄기 칼자국이 나는데 그게 비밀을 지키겠다는 증표쯤 되는 거지. 저런 칼자국이 있다는 건, 동료에게 신뢰를 얻는다는 뜻이라 구대장쯤 되면 저런 거 서너 줄은 다 있어.”

그 사이 프랑스 대원들이 모두 대검을 쥐었다 놓았다.

제라르가 장난처럼 최종일을 보았을 때였다.

“프랑스 팀과 신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하고는 최종일이 손을 내밀었다.

염병!

꼼짝없이 왼손에 칼자국 만들게 생겼다.

결국, 최종일, 차동균, 이두희가 대검을 쥐었다가 놓았고, “미친놈들!” 이라고 투덜대며 석강호까지 따라 하는 바람에 강찬도 피할 수가 없었다.

꽈악!

상처라면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노인과 아크리온은 빤히 보이는 앞에서 저 인간들이 이번엔 또 왜 저러나 하는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가자!”

“그럽시다.”

“다예! 최종일과 앞쪽 열어라.”

“알았소.”

“제라르. 뒤쪽 맡아.”

“위.”

대충 먼지를 털고 아크리온에게 다가갈 때였다.

“이번엔 제가 업겠습니다.”

제라르가 강찬을 만류했다.

“넌 뒤편 경계해야 하잖아. 이제 기운 다 차렸다.”

강찬은 아크리온에게 고갯짓을 했다.

털었다고 해도 흙투성이 몸이다.

그런데도 아크리온은 이젠 제법 여유가 생긴 웃음을 달고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

라노크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로 재미있다는 얼굴이었다.

[“우리 애들을 아예 바보로 만들어 버렸더군.”]

말을 마친 바실리가 울분을 억누르는 것처럼 잠시 숨을 쉬었다.

[“그렇게 쫓지 않았어도 어차피 철수할 예정이었다.”]

“마지막 싸움은 외인부대 특수팀 사령관과 했다고 들었는데?”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나? 이 바실리가 한국까지 다녀왔는데 그런 자리에서 스페츠나츠가 따돌림을 당했다는 게 서운한 거지. 프랑스 교육에서도 그렇고!”]

“무슈 강이 한국에 돌아오면 자리를 한번 만들 테니 셋이서 한번 만나지.”

잠시 침묵이 있은 다음이었다.

[“무슈 강이 이번에는 확실하게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손에 넣었겠지?”]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는 대로 물어보기로 하자.”

[“무슈 강이야 거짓말을 하지 않겠지. 중간에 속이 시커먼 프랑스 조연은 몰라도.”]

라노크가 한쪽 입술을 들며 웃었다.

“러시아의 도움 없이 내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자네를 속인다고 해도 발각되는 데 15일이 안 걸릴 텐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나?”

[“라노크.”]

바실리의 음성이 달라서 라노크는 표정을 바꾸고 전화에 집중했다.

[“아비부가 중국의 일로 자네와 내 목에 엄청난 상금을 걸었다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라. 우리와 달라서 한국은 아직 테러에 대한 경계가 허술해.”]

“고맙군, 바실리.”

[“지금은 자네나 나, 어느 한쪽이 무너지는 순간에 남는 하나도 견딜 수 없게 되니까. 무슈 강이 오면 도움을 청해. 이제 그는 그 정도의 힘을 지녔다.”]

“알았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라노크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

기지로 돌아온 강찬은 당연하게 가장 먼저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다음, 옷을 갈아입었고 의료실을 다녀왔다.

오후 5시다.

하루만 자면 이 아프리카를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였다.

막사 앞의 벤치에 앉아 봉지 커피를 마셨다.

이 달달함은 정말 무엇으로도 대신할 것이 없는 거다.

“대장.”

제라르가 금방에라도 쇼를 펼칠 것처럼 장난기 가득 한 얼굴로 다가왔다.

왼손에 붕대를 감고서 말이다.

“그러게 왜 쓸데없이 대검을 뽑아서 설쳐?”

“애들이 대장하고 추억 하나쯤 나누고 싶어 하던 참이라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제라르가 막사에 대고 무언가 마시는 시늉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봉쥐-이!”

지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프랑스어인 줄 알겠다.

“아크리온은?”

“씻고 나서 우유 한 잔 마시고 잡니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일 때 곽철호가 제라르에게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앉아.”

강찬의 말에 제라르가 옆에 앉았다.

“한국에 있을 겁니까?”

“그럴 것 같은데?”

제라르가 커피를 입에 가져가며 피식 웃었다.

“왜?”

“그 짧은 순간에 참 많이도 다녔구나 싶어서 그렇습니다. 몽골에서 아쉬워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아프리카에서 이러고 있는 게 웃겨서요.”

말을 듣자 강찬도 픽 하는 웃음이 나왔다.

“너는 어디로 가냐?”

“아무래도 콩고에 가게 될 것 같은데요. 그쪽이 많이 심각한 모양입니다.”

강찬이 고개를 살짝 비틀어 보았을 때 제라르는 무심한 눈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함께 가주고 싶었다.

삶과 죽음이 뒤엉킨 전장에서 의지 되는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만큼 든든한 일은 없다.

“대장이 이래서 전에 날 다른 곳에 보냈군요.”

“뭐가 또?”

다예고 이놈이고 생각이 많아지더니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을 자주 지껄인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미친놈.”

제라르가 씨익 웃으면서 강찬을 보았다.

이 새끼는 이제 이런 욕쯤 눈도 깜짝 안 한다.

“제라르.”

“예.”

제라르가 고개를 돌려 강찬을 보았다.

“다음에도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너 먼저 찾을 거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제라르가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답을 했다.

“그러니까 콩고든, 망갈라든, 무조건 살아 있어.”

제라르는 웃는 얼굴로 커피를 훌쩍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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