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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그냥 못 돌아가겠다.
염병할!
가장 먼저 공기가 확 바뀌는 것이 느껴졌고, 다음으로 사방이 어둑해졌다.
강찬은 새파랗게 독이 오른 눈으로 안쪽을 살폈다.
이미 익숙한 얼굴의 프랑스 대원들, 당황해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있는 한국 대원들이 강찬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굴은 천연적인 느낌이었는데 산이 그래서 그런지 안쪽 역시 부서지기 쉬운 형태로 되어 있었다.
높이 25m, 가로 6m 정도의 동굴은 입구에서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달빛 떠 있는 밤에 서 있는 느낌도 들었다.
“랜턴!”
강찬의 지시에 프랑스 대원 두 명과 최종일, 차동균이 랜턴을 켜서 소총에 걸었다.
그리고,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심장의 경고를 느끼는 순간, 강찬은 안에 블랙헤드가 있음을 확신했다.
같았다.
영국의 지하에서 느꼈던 그 지랄 같은 짜릿함이 말이다.
제라르가 강찬을 보고 놀란 눈을 했다.
왜 저러지?
강찬의 표정을 읽은 제라르가 대원들을 돌아보며 다가왔다.
“대장.”
동굴이다.
나직하게 말을 걸었는데도 소리가 울렸다.
“왜? 왜들 그래?”
강찬은 석강호를 비롯해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수르드카드!”
노인이 강찬을 놀란 눈으로 부르는 앞이다.
“대장 지금 눈이 붉습니다.”
“뭐?”
“대장. 지금 눈에서 붉은색 빛이 납니다.”
강찬은 석강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장. 제라르가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지금 눈에서 붉은색 레이저 나오우.”
이것들이 지금 단체로 사람을 바보 만드는 거야, 뭐야?
“전날 식당에선가 안드레이 새끼가 대장이 뭐라고 할 때 눈이 흔들렸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 정도로 깡이 없는 새끼는 아니라서 의아했는데 그때도 이랬던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찌릿. 찌르르.
제라르의 말을 듣고 있는 순간에 강찬은 몸을 감싸는 블랙헤드의 기운을 확실히 느꼈다.
“지금 조금 더 강렬해졌습니다.”
제라르가 강찬의 눈을 바라보며 상태를 알려주었다.
겁이 난다기보다는 걱정되는 얼굴이었다.
강찬이 고개를 돌릴 때 석강호가 입을 열었다.
“대장. 위험할 것 같으면 돌아갑시다. 이거 아무래도 이상하우.”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심장이 석강호의 말이 옳다는 듯 날뛰었다.
“다예. 너도 에너지가 있을지 몰라. 그러니까 너는 후방을 맡아.”
석강호가 잠시 강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알았소.”
그런 다음에 단단하게 답을 하고 차동균을 불러 강찬의 뒤편으로 움직였다.
“로베르! 동굴에서 갈라지는 길이 있는지, 목적지까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를 알아봐.”
“위!”
로베르가 노인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도 제라르는 강찬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후욱. 후욱.
돌멩이! 오늘 여기서 아예 승부를 보자!
강찬은 결심을 굳혔다.
지금은 피한다고 해도 언제고 마주칠 놈이다.
그렇다면 질질 끌려다니기보다는 성격대로 한방에 승부를 가르는 게 맞는 거다.
“동굴은 외길이고, 여기서 안쪽으로 뱀이 쥐를 삼킬 정도만큼 걸어가야 한답니다.”
염병할!
도대체 어느 정도의 뱀이 어떤 크기의 쥐를 삼키는 건지나 좀 알려주든가!
“제라르! 내가 선두에 서겠다. 이곳에서 대원 둘과 아이를 보호하면서 따라와!”
“위.”
무언가 말하려던 제라르가 답을 하고 볼을 씰룩였다.
작전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토를 다는 대원을 강찬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로베르. 노인과 내 뒤를 따라와.”
“위!”
“최종일, 이두희, 좌우를 맡고.”
“알겠습니다.”
강찬은 이두희가 건네주는 랜턴을 소총에 걸었다.
“출발한다.”
어깨 위로 소총을 들어 겨눈 자세로 하는 전진이다.
저벅. 부슷. 저벅. 부스슷.
딱딱하게 굳은 모래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제법 한참을 걸었다.
후욱. 후욱.
이 정도 걸은 게 뱀이 쥐의 어디까지 처먹은 거리인지가 궁금했다.
빨리 걸으면 좀 더 빨리 처먹는 건가?
쿠웅. 쿠웅. 쿠웅. 쿠웅.
난 분명 경고했다.
네가 무시한 거야.
변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그것뿐이 아니다.
찌르르. 찌르르르.
어디선가 전기가 흘러드는 것처럼 온몸에 찌릿찌릿한 기분 나쁜 감각이 느껴졌다.
그래 봐야 돌멩이인 거다.
날고 긴다고 해도 발도 손도 없는 돌멩이!
저벅. 부스. 저벅. 부스슷.
강찬이 소총을 움직이는 대로 랜턴에 비친 동굴의 내부가 보였다.
다리가 징그럽게 많은 벌레가 빠르게 빛을 피해 달렸고, 굽고 기다란 다리를 가진 놈이 겅중거리며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저벅. 부스. 저벅. 부스슷.
제법 많이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큼큼한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도대체 쥐 한 마리를 언제까지 처먹는 건지.
강찬은 좀 더 날을 세운 채로 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랜턴을 비칠 때마다 벌레들의 다리 숫자가 점점 많아졌다.
강찬이 좌에서 우로 소총의 방향을 바꾸며 걸음을 내디딘 직후였다.
‘끄윽!’
찌릿! 찌르르르르!
누군가 전기선을 몸에 꽂아 버린 것처럼 온몸에 짜릿한 충격이 전해졌다.
강찬이 멈칫하자 뒤따르던 모두가 꼼짝도 못 하고 강찬을 살폈다.
찌르르르르르!
충격은 직전과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강렬해서 당장은 앞으로 나갈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끄으으!’
강찬이 일단 이를 악물며 견딜 때였다.
갑자기 동굴 안쪽에서 붉은빛이 강렬하게 피어올랐다.
“수르드카드! 수르드카드!”
노인이 놀라움인지 감격인지 모를 음성으로 지겹기 짝이 없는 이름을 불러댔다.
찌르르르! 찌르르르르르!
염병!
아무튼, 이름을 뭐라고 불러대든 간에 강찬의 몸이 찌릿한 전기에 타들어 가는 느낌은 변함이 없었다.
이건 아니다!
대책도 없이 서 있다가 죽는 건 절대로 현명한 짓이 아니다.
강찬은 이를 악물며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어?’
이런 개새끼!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걸렸구나!’
영국의 지하에서와 똑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강찬은 묶인 상태에서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는 거다.
“제라르!”
“위!”
바로 뒤에 최종일과 이두희가 있는 데도 강찬은 엉겁결에 제라르를 불렀다.
“나를 뒤로 당겨!”
후다닥!
제라르가 달려들었다.
터억!
그리고 강찬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털썩!
모두가 놀랐다.
강찬이 이렇게 맥없이 뒤로 주저앉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지이이이익!
제라르가 강찬을 뒤로 끌자 최종일과 이두희가 달려들어서 양팔을 잡고 힘껏 당겼다.
지이이이익!
거의 10m 이상을 물러나자 붉은빛이 사라지며 찌릿한 감각만 남았다.
“됐어. 됐어!”
강찬을 동굴의 벽에 기대놓은 제라르와 대원들이 당황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둘러쌌다.
염병할!
돌멩이 때문에 제대로 개망신을 당했다.
목 뒤에서 다리가 많은 벌레가 지나가는 바람에 강찬은 훌쩍 벽에서 등을 뗐다.
“무슨 일입니까?”
“괜찮소? 괜찮은 거요?”
이걸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그리고 누구까지 듣게 해야 하나?
가뜩이나 지랄 같은데 이젠 별 게 다 고민이 된다.
“로베르! 노인한테 나를 여기 데려온 이유를 알아봐. 내가 수르드카드라고 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노인과 대화를 나눈 로베르가 빠르게 답을 했다.
“이유는 모른답니다. 수르드카드가 돌아오면 수호신이 있다는 동굴 안쪽까지 안내하는 것이 부족민의 임무랍니다. 주술사가 있었어야 하는데 지난 학살에 죽었답니다.”
이렇게 되면 답이 안 된다.
강찬은 우선 제라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 엊그제 내가 해줬던 얘기 기억하지?”
“예.”
“그때 영국에서 있었던 일과 똑같은 현상이 있었다. 갑자기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꼼짝도 못 하겠는데 기운이 점점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거든.”
“흠.”
제라르가 힐끔 동굴 앞을 들여다본 다음, 시선을 가져왔다.
“이러지 말고 그냥 돌아가십시다.”
제라르의 시선에 담긴 것은 완벽한 걱정이었다.
“잠시만.”
강찬은 다시 석강호를 불러서 지금 제라르에게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대장 생각은 어떻소?”
셋이 있는 자리다.
당연하게 강찬이 통역을 맡게 되었다.
“다예. 일단 돌아가는 게 대장을 위해서 좋지 않겠냐?”
“나도 말은 그렇게 했었지. 그런데 이런 일이 계속 있으니까 우리 없을 때 이런 일이 생길 바엔 차라리 여기서 담판을 지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다.”
“그런가? 방법은 생각해 본 게 있냐?”
이런 엉뚱한 새끼들이!
통역을 해준다고 제 놈들끼리만 말을 주고받아?
강찬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각났다.
“로베르!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하는지 물어봐.”
어쩌면 쥐 삼킨 뱀 길이만큼 남았다는 답을 들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말을 하면 들릴 거리랍니다.”
염병!
목소리를 얼마나 크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다, 좀!
당장 튀어나올 뻔한 고함을 꿀꺽 삼킨 강찬은 로베르의 말을 석강호에게 들려주었다.
“대장. 그러지 말고 나나 제라르가 먼저 들어가서 확인하고 오면 어떻소?”
강찬은 석강호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 새끼는 이제 완전히 진화를 마친 게 분명했다.
“다예가 뭐라고 했길래 그럽니까?”
“너랑 둘이서 먼저 가서 확인하고 오겠다는데?”
“오! 그러면 되겠습니다.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보고 결정하지요.”
제라르의 말까지 듣고 나자 마음이 한결 편했다.
담배를 하나 피우고 싶었는데 동굴 안에 아크리온이 있었다.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에게로 움직였다.
“로베르. 수호신이 산다는 곳까지 제라르와 다예를 데려다 줄 수 있는지 물어봐.‘
“위.”
로베르가 빠르게 말을 전했다.
그런데 답을 하는 노인의 표정이 어째 시원치 않아 보였다.
“수르드카드가 직접 들어가지 않으면 찾지 못한답니다. 이것도 주술사가 있었어야 하는 일이랍니다.”
젠장.
이러게 되면 기껏 준비했던 계획이 말짱 헛것이 되었다.
제라르는 이미 프랑스 대화를 들었기 때문에 강찬은 다시 돌아와서 말을 못 알아듣는 석강호에게 내용을 설명했다.
그동안 대원들은 적당하게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있었다.
“그러니까 노인은 여기에 데려와야 하는 건 아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른다는 거 아뇨?”
“그렇지.”
“대장 생각은 어떻소?”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영국에서 있었던 걸로 보자면 저 돌멩이가 아무래도 내가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서 내 몸에 있는 에너지를 빼내려고 하는 것 같거든. 그때도 그래서 악착같이 다가가서 케이블을 연결했었던 거고.”
강찬은 같은 내용을 제라르에게도 전해주었다.
“혹시 대장이 만지거나 손에 쥐면 반대로 저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빼앗게 되는 건 아니겠소?”
“만질 방법이 있어야지. 그때 입었던 우주복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강찬은 동굴의 안쪽을 살펴보았다.
돌멩이 새끼가 어쩐지 강찬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 개새끼를 어떻게 죽여주지?
강찬은 독이 잔뜩 올라서 동굴 안을 노려보았다.
“다예. 너랑 제라르가 날 붙잡고 안으로 달려가 보면 어떨까?”
“뭔 소리요?”
“이대로 물러나도 블랙헤드의 위험은 언제고 있을 것 같거든. 그럴 바엔 아예 이참에 아예 끝장을 보고 싶어서 그렇다. 일단 들어가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지 않겠냐?”
“아니! 요 앞에서도 꼼짝 못 해놓고, 더 들어갔다가 큰일 나면 어쩌려고 그러쇼? 그런 무식한 방법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 안전한 방법을 찾아봅시다.”
세상 참!
다른 사람도 아닌 다예에게서 무식한 방법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게 영국에서도 그랬었다니까! 대신 내가 블랙헤드를 움켜쥐거나 직접 에너지를 만지게 되면 영국에서처럼 쓸모없는 돌멩이로 만들 수 있을지 몰라.”
“그때 그건 우리 때문에 에너지가 불안했었다는 놈 아뇨?”
“그렇긴 하지.”
제라르가 궁금한 눈을 하고 있어서 강찬은 지금의 대화를 전해주었다.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못 견디겠으면 아까처럼 소리 지를 테니까 그때 다예랑 네가 뒤로 빼내 주면 되지.”
강찬의 눈빛을 본 제라르가 입술을 올리며 웃었다.
“이미 결정하신 거군요.”
“이대로는 그냥 못 돌아가겠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석강호가 궁금한 눈을 하고 있는 중이라 강찬은 내용을 설명했다.
“그럼 최종일이랑 이두희까지 데리고 갑시다.”
“그러자.”
계획이 섰다.
망설일 게 없는 거다.
아크리온만 아니라면 정말이지 셋이서 담배 하나 피우고 시작하고 싶었다.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확실히 찌릿한 기운이 걸어간 만큼 강하게 느껴졌다.
“최종일. 이두희.”
강찬은 두 사람을 불러 대략적인 계획을 설명했다.
앞과 뒤를 뚝 자른 설명이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움직임에 대한 것만 몇 가지 물어볼 뿐, 블랙헤드나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질문하지 않았다.
“준비하자.”
강찬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염병할!
두꺼운 고압케이블을 몸에 대기 직전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다.
개새끼!
돌멩이 새끼!
어디 두고 보자.
영국에서처럼 이곳에서도 반드시 죽여주마.
석강호와 제라르가 강찬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위로 들었다.
“준비됐소?”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심장이 미친 짓이라고 악을 쓰는 참이다.
석강호의 염려 가득한 질문이 마치 죽을 준비가 끝났냐고 묻는 것처럼 들렸다.
석강호와 제라르가 자세를 잡자, 최종일과 이두희가 소총을 겨누고 뒤를 받쳤다.
후욱. 후욱.
강찬은 독이 잔뜩 오른 눈으로 앞을 보았다.
차라리 영국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좀 더 쉽게 달리라고 했을지 모른다.
“대장. 무리하면 안 됩니다.”
제라르가 나직하게 건넨 말을 듣고서도 강찬은 대꾸하지 않았다.
돌멩이!
너도 내가 다가가는 거 겁나지?
그래서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거지?
영국에서도 그랬었던 거 맞지?
내 눈이 빨갛게 빛나는 게 너도 무서운 거지?
후욱. 후욱.
강찬은 동굴 안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출발해!”
그리고 악을 썼다.
석강호와 제라르가 강찬을 번쩍 들었다.
“간다! 제라르!”
석강호의 고함이 떨어지고 세 사람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삽시간에 아까 되돌아왔던 곳에 도착했다.
번쩍!
그리고 그 순간에 동굴 안쪽에서 피처럼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