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68화 (268/520)

0268 / 0419 ----------------------------------------------

14-8 기회요.

석강호가 라면과 즉석밥을 노려보았으나, 강찬은 아침을 UN이 제공하는 식사로 결정했다.

식당이다.

눈치를 살피며 들어선 노인과 아크리온은 제라르와 로베르의 보살핌에서도 불안해하다가 강찬이 들어서는 것을 보자 마음이 놓이는 표정을 지었다.

우스운 것은 사내 녀석인 아크리온이 강찬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거였다.

“수박 와낙산(Subax wanaagsan)!”

거듭 이야기하지만, 아프리카 장사 10년 경력이다.

강찬의 인사에 아크리온이 쑥스럽게 웃으며 훨씬 더 능숙한 소말리어로 인사했다.

“왜 이거밖에 안 떠?”

강찬의 말을 로베르가 빠르게 전해주었다.

표정에 답이 있었다.

아크리온의 옆에 선 강찬은 집게를 들어 무식할 정도로 커다랗게 음식을 담았다.

“영양실조라면서? 많이 먹어야 낫지. 소화시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마음 놓고 먹어도 돼.”

아크리온은 노인을 살폈다가 다시 강찬을 보았다.

“할아버지도 그만큼 떠드리면 되지.”

강찬은 비슷한 고기를 떠서 노인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이가 위에 두 개, 아래에 하나다.

고기는커녕 면 종류도 제대로 먹기 어려워 보였다.

감자 으깬 것, 샐러드, 빵, 스튜, 또다시 고기 등을 잔뜩 얹었다. 그렇게 푸짐한 접시를 든 노인과 알비노 아이가 강찬의 맞은 편에 앉았다.

“얘 우유 좀 가져다줘라.”

곽철호가 웃는 얼굴로 아크리온의 앞에 우유를 가져다주었다.

“마하사니드(Mahadsanid).”

노인의 감사 인사가 있은 후에 식사가 시작되었다.

“같이 앉아도 되겠소?”

그런데 안드레이를 시작으로 타일러, 그리고 로버트까지 같은 식탁으로 몰려들었다.

의도가 뭐야?

강찬이 피식 웃으며 둘러볼 때였다.

“식사 끝나고 잠시 시간 되시오?”

로버트가 조용하게 질문을 건넸다.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오늘 철수하게 될 것 같아서 차라도 한잔 나누고 헤어질까 합니다.”

“다들?”

“일단 우리는 그렇게 결정되었소.”

로버트의 답이 있자 곧바로 타일러가 “우리도 오늘 철수할 예정이오.”라고 답을 했다.

제라르야 강찬의 지시에 따를 거고, 남은 것은 역시 맷집 좋아 보이는 안드레이였다.

“안드레이?”

“예.”

묘하게 반항기 가득한 답이었다.

이 개새끼가 진짜!

강찬은 아크리온을 보며 피식 웃었다.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왜 불렀소?”

이 새끼는 붉은빛을 본 이후에 미쳐가는 게 분명했다. 하여간 이렇게 꾸준하게 밉상인 놈을 찾기도 쉽지 않을 거다.

“식사 끝나고 로버트와 타일러 잠깐 볼 테니까 같이 가던가, 아니면 여기 두 사람에게 궁금한 거 물어봐. 대신 제라르와 다예, 두 사람이 있을 때 해.”

“알았소.”

안드레이가 불편하게 답을 하며 포크를 탁 내려놓았다.

제라르가 볼을 꿈틀했다가 강찬의 눈치를 받고 음식으로 고개를 묻었다.

아크리온과 노인이 겁을 먹을지 모른다.

강찬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포크로 양고기를 크게 썰어서 입에 욱여넣었다.

우걱우걱.

아프리카 아이 중에는 재미있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사슴처럼 고개를 돌리며 웃는 아이들이 많다.

아크리온이 그랬다.

강찬이 있어서 그런지 아크리온은 제 키에 비해 높은 식탁에 앉아서도 정말 잘 먹었다.

저런 아이를 두고 어떻게 포크를 놓을 수 있겠나?

강찬은 아이가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앉아서 버텼다.

이 녀석 탈 나는 거 아냐?

하얀 머리칼, 눈썹, 그리고 병적으로 하얀 피부.

이런 아이들의 팔과 다리를 잘라 집에 놓으면 부자가 되고, 머리를 잘라 가지고 있으면 집안이 잘 된다는 미신 때문에 언제나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는 아이다.

그런 알비노 아이가 하얀 팔을 움직여 접시에 담은 음식을 다 먹어치운 다음 만족한 얼굴로 물러났다.

일단 소화는 시켜야 하는 거다.

안드레이의 시선을 외면한 채로 강찬은 노인과 아이를 데리고 벤치로 나왔다.

그리고 유치한 대화와 놀이를 잠시 즐겼다.

“나는 저기 보이는 막사에 잠깐 다녀올 테니까 저 사람 보이지? 그래. 할아버지와 안드레이가 이야기하는 거 보고 있어.”

로베르의 말을 들은 노인이 먼저 답을 했고, 아크리온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이따가 보자.”

강찬은 손을 흔들어준 뒤에 그린베레의 막사로 움직였다.

“어서 오시오.”

로버트는 대원들과 짐을 싸던 중이었다.

“다른 이야기는 어제 다 했고, 이걸 전해드리고 싶었소.”

로버트는 그린베레 헬멧 다섯 개를 내밀었다.

“의미는 아실 거라 믿소. 여기에 남아있던 대원들의 것이오. 나와 우리 팀은 갓 오브 블랙필드의 지휘와 한국 특수팀의 헌신에 감사하고, 훗날 복수할 기회가 생긴다면 우리를 빼놓지 말아 달라는 의미로 이 헬멧을 전합니다.”

서양놈 특유의 깊은 눈이 강찬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이건 뭐 어쩐지 아군이 많은 죽은 전투 뒤에 받는 표창 같은 느낌마저 든다.

강찬은 말없이 로버트를 보았다.

이 헬멧을 받는 것은 그린베레가 강찬과 한국 팀에게 한번은 완벽하게 졌다는 의미이고, 아군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복수를 함께 한다는 약속이 된다.

피식.

강찬은 손을 내밀어 헬멧을 받았다.

척.

로버트가 볼을 꽉 깨문 채로 경례를 올렸다.

죽은 대원들을 넘기는 심정일 거다.

강찬이 답례를 했고 함께 손을 내렸다.

“행운을 빕니다.”

“잊지 못할 작전이었어.”

강찬의 영어에 로버트가 놀란 얼굴을 했다.

“영어를 알고 있었습니까?”

“이 정도까지.”

프랑스 교육에서 논 건 아니니까.

악수를 마친 강찬은 포개진 헬멧 다섯 개를 들고 한국팀의 막사로 움직였다.

“이거 안에 넣어둬! 우리 팀의 헌신에 대한 그린베레의 예의라고 생각하면 돼.”

곽철호가 다가와서 두 손으로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은 SBS다.

강찬이 움직일 때 타일러는 벤치에 있었다.

“커피?”

“좋지.”

그러고 보니 커피 한잔 제대로 못 마셨다.

강찬이 벤치에 앉자 타일러가 담배를 디밀었다.

쩔컹!

“후! 우리 헬멧은 가지고 있을 테니 더 필요 없을 거라고 믿소.”

고릴라는 농담인지, 시비를 거는 건지 모를 진지한 얼굴이었다.

이런 건 역시 특유의 웃음으로 받아주는 게 최고다.

강찬을 힐끔 본 타일러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았다.

뭐야?

이렇게 밟아주고 싶었다는 거야?

“인정하긴 싫지만, 이번 작전에서 지휘해 준 것에 감사하오.”

타일러가 단단한 어깨를 세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는 적으로 만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럴 수 있다면.”

악수를 나눈 타일러가 막사로 향했다.

합동작전의 마지막치곤 씁쓸한 모습이었다.

강찬은 담배를 끄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석강호와 제라르가 보이지 않았다.

식당에 다시 들어갔나?

그럼 커피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줄까?

아서라. 짐 싸느라 바빠서 잊어버린 거면 커피 한 잔에 사람 꼴만 우습게 된다.

강찬은 몸을 일으켜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당기는 순간이었다.

콰악! 퍼억!

둔탁한 소리가 훅하고 달려들었다.

제라르의 팔꿈치가 안드레이의 볼을 갈기고, 안드레이의 뾰족하게 만든 왼손이 제라르의 옆구리를 찍고 있었다.

퍼억! 퍽! 퍼억! 꽈드등! 콰악! 콱!

삽시간에 손이 오가고 탁자가 뒤로 밀렸다.

강찬은 겁에 질려있는 아크리온에게 다가가 아이를 번쩍 들었다.

살벌한 싸움이다.

안드레이는 그동안 쌓였던 것을 털어내겠다는 듯 독이 잔뜩 올랐고, 병아리를 잃은 것에 대한 분노와 놈의 태도를 못마땅해 하던 제라르는 제라르대로 눈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퍼억! 퍽! 퍽!

섬뜩하게 치고받는 소리가 울릴 때마다 아이는 몸을 움찔거렸다.

제라르는 왼쪽 눈 위와 볼이 찢어졌고, 안드레이는 주둥이와 코가 터졌다.

퍼버벅! 퍼벅! 타악! 타다닥!

노인을 막아선 로베르가 이를 악물고 있었다.

특수팀의 싸움이다.

그것도 지휘자 간에 벌어진 싸움.

이건 강찬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누구 한 놈이 더는 싸울 수 없을 정도로 쓰러져야 끝나는 싸움.

퍼억! 콰자작!

안드레이에게 옆구리를 맞은 제라르가 몸을 비틀면서 팔꿈치로 놈의 코와 볼 사이를 팔꿈치로 갈겼다.

꽈드드등!

안드레이가 뒤편 테이블에 기댔던 반동으로 몸을 세웠고, 제라르는 이를 악물며 손을 뻗었다.

퍼억! 퍽! 퍽! 퍼억! 퍼억! 퍼억!

승부다.

제라르는 팔꿈치로 연속해서 놈의 볼을 갈겼고, 안드레이는 주먹으로 제라르의 옆구리와 겨드랑이를 때려댔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꽈드드등!

마침내 안드레이의 상체가 테이블로 완벽하게 기울었다.

퍼억! 퍼억! 퍼억! 콰작!

이 정도면 됐다.

강찬의 눈짓을 받은 석강호가 달려들었다.

“그만하자!”

“허억! 허억!”

석강호가 제라르를 감싸고 당긴 다음이었다.

꽈드등! 철퍼덕.

테이블이 조금 더 밀려나며 안드레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치워.”

강찬의 시선을 받은 스페츠나츠 대원들이 한국말인데도 알아들은 것처럼 안드레이를 부축했다.

“로베르.”

“위.”

“따듯한 차 두 잔만 준비해.”

“위.”

로베르가 막사로 움직일 때 왼쪽 눈 위쪽과 볼에서 길게 피를 흘리는 제라르가 다가왔다.

“가서 치료하고 와. 갈비뼈 꼭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제라르가 답을 하고는 인상을 찌푸린 채 막사를 나갔다.

“무슨 일이야?”

“알아들었어야 무슨 일인지를 알지요.”

아!

석강호는 프랑스 말을 모른다.

강찬이 픽 하고 웃자 아크리온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나가자. 애들한테 이것 좀 치우라고 해.”

“알았소.”

강찬은 아크리온을 안고 벤치로 나왔다.

참 끝나는 날까지 쉽지 않다.

한국 막사의 벤치로 움직인 강찬은 아크리온을 옆자리에 앉혔다.

노인이 조심스럽게 아이의 옆에 붙어 앉았다.

프랑스 막사에서 로베르가 머그잔 두 개와 비스킷 서너 개를 들고 와서 노인과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무슨 일이야?”

“질문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가만 안 두겠다는 말을 하다가 바로 싸움이 시작되는 바람에…….”

아득. 아드득.

비스킷 소리에 놀란 아크리온을 본 강찬이 기분 좋게 웃어주었다.

뭐가 그렇게 부끄럽냐?

강찬은 아이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더 크게 웃었다.

“애들 보냈소. 이야! 저 새끼! 그새 많이 늘었네!”

“뭐가?”

막사에 들렀던 석강호가 봉지 커피가 담긴 잔을 강찬에게 건넸다.

“아까 보셨잖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야! 어지간하면 싸우지 말아야겠는데? 저 봐! 제 말 하니까 나타나는 거! 저런 새끼가 무슨 귀족이라고.”

얼굴 두 곳에 접은 거즈를 반창고로 고정시킨 제라르가 강찬에게 다가왔다.

“어깨 꿰맸던 곳은? 거기도 찢어졌을 거 아냐?”

“다시 꿰맸습니다.”

재봉틀을 돌린 것도 아닌데 그새 그걸 끝내고 올 수가 있는 건가?

“그냥 두시지 그랬습니까?”

“죽일 생각이었어?”

“아예 다시는 특수팀에 발 못들이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강찬이 웃는 것을 본 제라르가 담배를 꺼내다가 아크리온을 보고는 얼른 집어넣었다.

염병할!

원래 장난스러운 표정을 잘 짓던 놈인데 퉁퉁 부은 얼굴로 웃으니까 괴물이 따로 없다.

“제라르. 이대로라면 괜히 일만 커지겠다. 스페츠나츠는 우리가 붉은빛을 욕심낸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상황 봐서 일단 철수하자.”

“저거는요?”

제라르가 눈짓으로 산 있는 쪽을 가리켰다.

“노인 말대로라면 우리는 절대 못 찾는 거잖냐? 누구든 확인하고 싶은 놈들이 있으면 실컷 뒤져보라고 하는 거지. 대신 놈들이 못 찾게 되면 가장 먼저 여기 노인과 아이를 노릴 게 분명하니까 우리는 일단 나간다. 여기서 또 전투가 벌어지면 그때는 버티기도 어렵다.”

“알겠습니다.”

상황을 정리한 강찬은 아이를 달랜 다음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연락 온 것 없어?”

“수송기가 내일 도착할 예정이랍니다.”

“모가디슈의 부상자는?”

“아직 그대로인 모양입니다.”

차동균이 확실하게 답을 했다.

“힘들겠지만, 미국과 영국 팀이 나가는 시간부터 대충 기본적인 무장은 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강찬이 밖으로 나왔을 때 그린베레가 짐을 챙겨서 나와 있었고, 그 옆에 UN 직원 한 명이 함께 있었다.

“여기! 그린베레 간다는데 인사들이나 하지!”

강찬이 걸어가는 동안, 막사에서 대원들이 나와 입구로 몰려들었다.

팔꿈치를 접어 손을 든 채로 맞잡아주는 악수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고갯짓을 한 번씩 하면 합동작전은 끝난다.

프랑스 팀과 한국 팀의 배웅을 받으며 그린베레가 입구를 나섰고, 이어서 SBS가 뒤를 따랐다.

두 팀이 나가고 나자 갑자기 기지가 썰렁해진 느낌이었다.

배웅을 마친 강찬은 주변에 있던 한국과 프랑스 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시간부터 다들 기본 무장을 하고 있어.”

그리고 프랑스어로 외인부대 특수팀에게 명령을 내렸다.

제라르를 시작으로 막사로 들어갔고, 강찬도 막사로 돌아와 무기를 챙겼다.

허리와 왼쪽 발목에 권총 하나씩, 그리고 오른발목에 대검 정도다. 그 외에 언제고 착용할 수 있는 조끼에 탄창을 챙겨놓으면 기본은 갖춘 거다.

막사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아크리온이 까르르하며 웃고 있었다.

하여간 제라르 저 새끼도!

조금 전까지 눈이 파랗게 돼서 싸웠던 놈이 무장까지 한 채로 애 앞에서 지랄은!

강찬이 지켜보고 있자니 석강호가 다가왔다.

“쟤는 어떻게 하기로 했소?”

“일단 제라르 통해서 프랑스로 보내기로 했다.”

“어쩌면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소.”

말을 마친 석강호가 입구 쪽에 있는 막사를 보았다.

“숫자가 줄어서 몇 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나갔다고 휑하우.”

“장사 하루 이틀 하냐?”

“애 때문에 담배가 줄어드네!”

석강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투덜거렸다.

아프리카다.

뜨거운 태양, 땅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 푸석거리는 땅에 있으면 정말이지 느는 건 커피와 담배밖에 없다.

“한국은 아직 정말 부족한 게 많소.”

“왜?”

“철수가 결정 나면 사실 당일에 날아와야 맞지, 고작 수송편 해결하기 위해서 하루 이틀 더 있어야 하는 게 말이 되는 거요? 대장이 없는 데서 이런 꼴을 당했으면 UN 지휘부에게 천덕꾸러기 취급당하기 딱 좋았을 거요.”

툴툴거린 석강호가 말을 마쳤을 때였다.

러시아 팀의 막사가 열리고 얼굴이 엉망인 안드레이와 대원들이 짐을 들고 나왔다.

“저 새끼, 그냥 있기는 안 되겠다 싶었나?”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프랑스에서 교육받을 때 음식을 씹지 못해 수프만 먹을 때도 끝까지 식탁에 함께 있었던 놈이?

저놈은 절대 그런 일로 부끄러워서 먼저 갈 놈이 아니다.

불편한 기색으로 제라르의 곁을 지난 안드레이가 강찬의 앞으로 왔다.

“가겠소.”

퉁퉁 부어서 제대로 들여다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안드레이가 강찬을 보았다.

“연락이 왔나?”

“그렇소.”

“다음에 보자.”

“알았소.”

단순한 놈이다.

무식할 정도로 더럽게 단순한 놈.

“안드레이.”

돌아서던 안드레이가 강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특수팀 대원으로 한 편이라면 너는 무척 탐나는 놈이다. 하지만 지휘자로서는 어설퍼. 네가 그렇게 여기저기 끝없이 부딪치는 동안 대원들이 꺾인다는 것을 잊지 마.”

왜 그럴까?

무엇이 이 단순한 새끼의 입 끝을 움직여 웃게 했을까?

안드레이의 가려진 눈이 강찬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알았소.”

그리고 놈이 입구를 향해 떠났다.

마지막까지 이렇게 밉상으로 떠나는 놈은 정말 처음이었다.

러시아 팀이 입구를 향해 움직였고, 잠시 후 차량이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걸 버릇을 고쳐서 보낼 걸 그랬나?

강찬이 입맛을 다실 때였다.

석강호가 불쑥 머리를 디밀었다.

“기회요.”

“뭐가?”

“미국, 영국에 이어 느닷없이 러시아가 빠졌잖소? 여기에 우리와 프랑스, 그리고 저기 둘만 남은 거요.”

석강호의 시선을 따라 강찬이 노인과 아크리온을 보았다.

제라르는 물이 잔뜩 올라서 아크리온을 상대로 온갖 쇼를 펼치고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