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63화 (26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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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너 기다리고 있어!

“대장! 부상자와 사망자들을 모가디슈로 옮기겠답니다!”

트럭에서 내려온 강찬에게 제라르가 건넨 보고였다.

중상자를 위해서라도 모가디슈 근처의 미국과 프랑스 군기지로 이송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여주자 제라르가 곧바로 헬기에 명령을 전했다.

“확인사살 끝났습니다!”

이어서 블랑쉐의 보고도 있었다.

“블랑쉐! 차량 지원과 뒷정리를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프랑스 말을 모르는 러시아, 영국, 미국의 특수팀 대원들이 강찬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이다.

“모두 귀대한다!”

그러나 강찬은 그런 시선들을 싹 무시하고 명령을 내렸다.

철컥! 철커덕! 철커덕!

피투성이인 대원들이 허머 두 대와 트럭 한 대에 나누어 탔다.

그르르릉! 그르르릉! 부르르르릉!

아직도 꼬리를 달고 있는 연기가 높다란 곳에 올라가 멀어지는 강찬을 지켜보았다.

이겼다.

그것도 고작 60명쯤 되는 인원이 600명을 완벽하게 이겨낸 어마어마한 전투다. 그런데도 돌아가는 차 안의 분위기는 납덩이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죽거나 후송된 동료들의 모습을 지우지 못한 탓이다.

덜컹덜컹! 그르르릉!

멀리 보이는 땅의 경계에 시선을 둔 강찬 역시 이제야 병아리와 그때 죽어간 한국 특수팀 대원들의 모습을 제대로 떠올릴 수 있었다.

병아리는 몽골 작전에서 전해준 두건을 잠시도 떼어놓지 않았던 놈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리고 이곳에서도 보자마자 달려와 쑥스러운 웃음을 웃던 녀석이다.

함께 돌아가서 담배 나누어 피우며 킬킬거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표시 내지 않으려 애쓰고는 있지만, 제라르도 대원들을 잃은 상실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눈치였다.

4시간 같은 40분을 달려 기지에 도착하자 지치고 피곤한 기색의 대원들이 자연스럽게 강찬의 지시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렇다고 바로 들어가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팀별로 세 명씩 막사를 먼저 점검한다. 부비트랩을 특별히 조심해! 석강호! 차동균과 곽철호 데리고 가서 막사 점검해!”

“알았소!”

강찬의 명령에 대원들이 소총 소리를 철컥거리며 움직였다.

“블랑쉐! 외곽에 경계 세우고, UN 지휘부를 점검해라! 이상 없으면 그곳에 임시 의무실을 둔다!”

“위!”

블랑쉐가 힘차게 답을 하고는 대원들을 향해 움직였다.

강찬은 기지의 중앙에 서서 막사들을 둘러보았다.

5분쯤 지난 뒤였다.

“우리 막사는 이상 없습니다!”

안드레이의 껄껄한 음성이 날아왔다.

“스페츠나츠는 막사로 들어가.”

철컥! 철커덕! 철커덕!

말은 못 알아들어도 고갯짓은 얼마든지 알아듣는다. 강찬의 움직임에 따라 스페츠나츠 대원들이 자신들의 막사로 움직였다.

“우리도 이상 없소!”

타일러의 보고다.

당연하게 SBS 대원들도 막사로 향했다.

“이상 없소!”

석강호가 막사를 나오며 강찬을 향해 보고할 때였다.

제라르와 그린베레의 지휘관 로버트가 엇비슷하게 막사에서 나와 강찬에게 다가왔다.

“우리도 이상 없습니다.”

제라르의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남아있던 부상자 다섯이 모두 참수되었소.”

로버트가 참담한 표정으로 내용을 알렸다.

“도움이 필요한가?”

“부탁합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블랑쉐를 불렀다.

“그린베레 팀에 사망자 다섯 명이 있다. UN 지휘부로 옮기고 후송 계획을 세워.”

“의료팀 지원 헬기가 오고 있습니다. 그편에 보내겠습니다.”

귀찮을 만도 할 텐데 블랑쉐는 시종일관 듬직한 모습으로 움직였다.

“담배 있소?”

로버트의 질문에 제라르가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당연하게 강찬과 제라르, 그리고 말을 알아듣지 못해 지켜보고 있던 석강호까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철컹! 치이익!

“후우!”

로버트가 뿜어낸 연기가 길게 날아갔다.

반항조차 못 하는 대원 다섯이 목이 잘렸다. 아마도 로버트는 지휘관이 되어서 가장 끔찍한 순간을 맞은 건지도 모른다.

“쿠드스가 왜 우리를 공격했는지 짐작합니까?”

“그건 나도 알고 싶은 일이야.”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피우던 담배를 떨어트려 발로 밟았다.

“오늘 지휘와 도움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막사로 향했다.

막사에는 총격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사용하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저도 애들 좀 챙기고 오겠습니다.”

제라르까지 걸음을 옮긴 다음이었다.

강찬은 한국팀의 막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최종일! 위성 전화를 가져다줘!”

잠시 후, 최종일이 가져다준 위성전화를 받은 강찬은 곧바로 김형정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꼭 두 번 울렸을 때였다.

[“김형정입니다.”]

곧바로 김형정이 전화를 받았다.

“아프리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보안 때문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곳 시간으로 어제부터 두 시간 전까지 교전이 있었습니다. 적의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고, 한국 특수팀은 사망 11명, 박철수 대령을 포함한 부상자 6명인데 모두 중상으로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

잠시 멈칫했던 김형정의 요구에 강찬은 앞에 전했던 내용을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현재 UN 지휘부가 없는 관계로 이동이나 귀국을 결정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하루쯤 기다린 후에 그래도 UN 지휘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른 팀들과 의논할 생각이고 결정되는 사항이 있다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고생했습니다. 저……, 추가 사항이 있으면 또 연락 바랍니다.”]

김형정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보안 때문에 걸린다는 강찬의 말을 의식한 눈치였다.

“그럼 또 연락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쳤을 때였다.

두두두두두두두.

헬기가 다가오는 소리와 함께 먼동이 뿌옇게 터왔다.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 거친 바람이 있고, 의료진이 내렸으며 그린베레의 시체가 실렸다.

강찬은 우선 막사로 들어가 머리를 감고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씻었다. 시커먼 물과 핏물이 계속 흘렀는데 상처들에 물이 닿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 것처럼 온몸이 화끈화끈했다.

반바지에 면티를 입고 욕실을 나온 강찬은 이어서 의료실로 향했다.

소독약으로 목욕을 하다시피 상처를 소독하고, 석강호가 욱여넣었던 붕대들을 꺼냈다.

의무팀 직원이 강찬보다 더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은 견딜만하지만, 자고 일어나서 긴장이 풀어지면 죽었다고 보는 게 맞다.

“끄으으!”

그러나 그렇게 버티던 강찬도 유리막대에 감은 소독 솜으로 상처를 후벼가며 소독할 때는 결국 신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완벽하게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었는데 조금만 더 지났으면 적어도 아버지 강대경, 어머니 유혜숙이라는 정보 정도는 토해냈을 것 같았다.

끔찍한 소독이 끝나자 여기저기를 꿰맸고, 다시 맨살을 보기 힘들 정도로 붕대를 감았다.

지긋지긋한 치료가 끝났다.

임시 진료소를 나온 강찬이 막사 앞의 벤치에 도착했을 때 비슷한 복장에 붕대를 감은 제라르가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휘관이 감당해야 하는 고뇌와 아픔이 제라르의 눈과 볼의 흉터에 잔뜩 묻어 있었다.

“가서 좀 자.”

“UN에 연락해봅니까?”

“상부에만 먼저 보고하고 UN은 놔둬 봐.”

“상부 보고는 블랑쉐가 이미 했습니다. 한국 정부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좀 전에 했다.”

이왕 하는 전화라 라노크에게도 연락을 할까 했지만, 저녁 메뉴도 마음 놓고 말하지 못한다는 말이 떠올라 뒤로 미뤘다.

우선은 UN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판단하고 싶었고, 이곳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란 믿음도 있었다.

‘어떻게 나오나 보자.’

궁금한 것은 UN의 반응이었다.

글자 그대로 난리가 났는데 아직까지 대가리를 감추고 있는 건 사실 뭐라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짓인 거다. 그러니 하루쯤 기다려서라도 최소한 놈들이 뭐라고 지껄이는지를 들어보고 싶었다.

계속 나타나지 않으면?

기습을 지시한 놈들과 한통속이라고 자백하는 꼴이니 뒤에 가서 값을 치르라고 계산서를 디밀면 되는 일이다.

철컥. 철커덕.

그때 블랑쉐가 소총 소리를 울리며 강찬에게 다가왔다.

“대원들이 내려가 죽은 조종사를 올려 왔습니다. 헬기는 꺼낼 방법이 없어서 규정에 따라 폭파할 예정입니다. 부총국장의 허가를 바랍니다.”

“그쪽에 몇 명이나 있지?”

“모두 열 명이 대기 중입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붉은빛을 보았고,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느꼈다.

폭탄을 터트려서 묻어버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한 번 가서 안을 둘러보는 것이 맞는지, 결정이 서지 않았다.

규정대로라면 무조건 폭파하는 것이 맞다.

제라르가 왜 그러지 하는 눈으로 강찬을 보았을 때였다.

“폭파해.”

“알겠습니다.”

강찬의 명령을 받은 블랑쉐가 바로 몸을 돌려 기지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걸리는 것이 있습니까?”

“뭐?”

“헬기 폭파를 주저하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이놈한테 설명하려 해도 지금 바로 하기엔 너무 긴 이야기다. 확실히 한숨 자고 나서 하는 게 더 현명한 거다.

“자고 나서 나중에 얘기하자.”

“알겠습니다.”

제라르는 순순히 답을 하는 순간이었다.

석강호가 막사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라면 드쇼! 제라르! 너도 들어와!”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제라르가 강찬을 보았다.

“한국 음식을 준비했단다. 같이 오라는데?”

“가시죠?”

제라르와 함께 일어선 강찬이 안으로 들어서자 라면 특유의 냄새와 김치 냄새가 확 달려들었다.

“오우!”

제라르가 고개를 뒤로 쭉 뺐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식탁에 앉았다.

대원들이 요리용 볼에 가득 담긴 라면을 강찬과 제라르 앞에 놓아주었다.

“듭시다!”

석강호를 시작으로 다 같이 라면과 김치를 먹었다.

후루룩! 후루루룩!

밤새 처절한 전투를 치른 대원들이 반바지에 면티, 그리고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이라니.

“맵냐?”

“먹을만합니다.”

코를 훌쩍이는 제라르가 젓가락에 라면을 둘둘 말아가며 열심히 먹었다.

식사는 15분 만에 끝났다.

“최종일, 차동균, 곽철호, 우희승, 이두희. 다섯 사람은 점심 먹은 뒤에 어제 전투 현장에 함께 간다. 점심은 14시에 먹을 테니까 그때까지 잘 사람 자고, 쉴 사람 쉬어.”

지시를 마친 강찬은 봉지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다시 벤치로 나왔다.

“한국 음식이 이 커피만은 못합니다.”

제라르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꺼냈다.

석강호와 셋이서 불을 붙인 다음이다.

“아하함!”

석강호가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했다.

배가 부른 데다 치료하며 맞은 주사약의 효과까지 겹친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강찬도 갑자기 몸이 나른해졌다.

“제라르. 가서 자고 15시에 움직일 준비해.”

“어딜 갑니까?”

“어제 구덩이를 살펴볼 생각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일단 너만 가는 걸로 하자.”

“알겠습니다. 쉬십시오.”

제라르가 몸을 일으켜 막사로 걸어갔다.

“자자.”

“그럽시다.”

강찬은 막사로 들어가 양치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허공에서 붓는 것처럼 잠이 쏟아졌고, 바닥으로 푹푹 꺼지는 듯한 피곤이 느껴졌다.

살아있는 덕분에 느끼는 감각일 거다.

강찬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

황기현은 맞은 편에 앉은 바실리를 바라보며 막막한 심정이었다.

달칵.

찻잔을 내려놓은 바실리가 ‘이제는 답을 줘야지?’하는 표정으로 황기현을 바라보았다.

“제안은 충분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주신 제안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국가정보원 통역 요원이 황기현의 말을 곧바로 바실리에게 전했다.

“국장.”

바실리가 얇은 입술을 움직이며 황기현을 불렀다.

“이슬람 세력이 귀국의 대통령을 노리는 것까지 알려주었습니다. 나의 제안을 서둘러 공표하고 대한민국에서 차세대 에너지 총회를 개최할 것을 다시 한 번 권유합니다.”

바실리가 눈만 돌려 자신이 데려온 통역 요원을 보았다. 한국의 통역 요원이 바르게 말을 전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수일 내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오늘 내가 제안한 것과 비슷한 제안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야당의 의원들을 선동할 것이고 방송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에, 발표가 늦어지면 국장과 나의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번들거리는 바실리의 눈이 황기현을 압박하고 있었다.

“국장.”

통역이 아니더라도 바실리가 황기현을 부른 것은 분명히 알았다. 그런데도 바실리는 말을 내지 않고 황기현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말씀하십시오.”

바실리의 한쪽 입술을 올린 듯한 야릇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귀국의 국가정보원 부원장이 아프리카에서 엄청난 성과를 올렸습니다.”

황기현은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일이다.

“무슈 강이 아니라면 구차스럽게 이렇게 나서지도 않았을 겁니다. 내가 건넨 제안을 발표하는 대로 본국의 대통령께서 직접 대한민국이 차세대 에너지 회의를 개최해줄 것을 요구할 예정입니다.”

황기현이 나직하게 숨을 들이켰다.

대한민국과 러시아의 유전 공동개발, 그리고 대한민국은 공동개발한 원유를 얼마든지 원가에 가져다 쓸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듣는 순간, 황기현은 목구멍에서 손이 기어 나와 당장에라도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며 바실리를 붙잡고 싶을 심정이었다.

앞으로 100년이다.

황기현의 짧은 지식으로도 현재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가격으로 사오는 원유를 배럴당 30달러 수준에서 구입할 수 있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차세대 에너지 회의에는 본국의 대통령을 비롯해 에너지부 장관, 그리고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 7개국,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이 참여합니다.”

기회다!

황기현의 본능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악을 써댔다.

“국장이 답을 주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설득해 주면 되는 일입니다. 정보국의 생리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말을 마친 바실리가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하루 정도의 여유는 있지 않겠습니까?”

바실리가 대놓고 소리 나지 않는 웃음을 웃었다.

“이미 이슬람 전사 20명이 대한민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위조 여권을 소지했고, 그와는 별도로 오늘 밤에 인터넷을 통해 한국과의 성전을 발표할 것입니다.”

왜?

황기현의 표정을 본 바실리가 바로 말을 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대한민국이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를 내세울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자살 폭탄이 20번 터지게 됩니다. 국장의 지금 대답에 따라 러시아와 프랑스의 정보조직이 그들을 해결할지 아닐지가 결정됩니다.”

바실리가 이런 정보를 거짓으로 떠들지는 않을 거다.

“그들이 본국에 도착하는데 얼마나 여유가 있습니까?”

“2시간 뒤에 중국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수도에서 폭탄이 터지거나 총격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유전 공동개발을 제안할 거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되면 그 제안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습니까?”

“쯧.”

바실리의 표정을 보며 황기현은 자존심이 상했고, 이어서 아차 하는 심정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 수장이라는 사람이 전혀 사전 정보가 없었다는 것을 바실리에게 실토한 꼴이었다.

“당근과 채찍이 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세력의 성전을 막아주는 것을 빌미로 대한민국에 제안의 수락을 요구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대한민국은 100년 동안 차세대 에너지의 개발까지 사우디아라비아와 공유해야 합니다.”

“차세대 에너지가 무엇인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이왕 부족한 모습을 다 보인 마당이다.

이렇게라도 황기현은 얻을 것을 얻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후우!”

바실리가 한숨을 내쉬며 통역 요원을 잠시 보았다.

“조연이 되니까 별걸 다 설명해야 하는군.”

국가정보원 통역 요원이 빠르게 황기현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바실리가 뱉은 말이 혼잣말인지 들으라고 한 말인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바실리가 황기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로운 에너지가 개발되면 전기를 무제한으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 전기.”

황기현은 지금 들은 말이 정확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는데 통역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그 정도라면 나쁘지 않군요.”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도움을 주시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바실리가 기가 막힌다는 투로 웃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 세계 정보국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는 인물 때문입니다.”

통역 요원의 말을 전해 들은 황기현이 바실리를 보았을 때였다.

“내가 정말 한심하게 느껴지는군.”

바실리가 나직하게 혼잣말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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