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56화 (25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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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확신이 들었다.

멍하니 김미영이란 이름을 들여다볼 때였다.

“뭐하십니까?”

샤워를 마친 모양으로 제라르가 개운한 얼굴을 하고 다가왔다.

“편지가 왔는데…….”

“어? 대장도 편지를 받습니까?”

강찬은 피식 웃으며 제라르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놈하고 다예하고 강찬은 편지란 걸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긴!

편지 보낼 애틋한 누군가가 있는데 굳이 용병으로 올 놈이 몇이나 되겠나?

“누가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내용 아닙니까?”

그리고 제라르 역시 편지라는 단어에 가지고 있는 감상은 강찬과 다르지 않았다.

“뭐하쇼?”

염병할!

이런 놈들과 있으면서 무슨 애틋함을 바라겠나?

분위기라고는 키위에 박힌 씨만큼도 없는 놈들!

“어? 편지가 왔어요?”

석강호도 제라르와 한치도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누구요?”

“유슬이하고 어머니, 그리고 미영이가 보냈다.”

“여기 있는 걸 안다는 거요?”

석강호가 놀란 눈으로 편지봉투와 강찬을 번갈아 보았다.

“나도 모르겠다.”

“김 팀장이 손을 쓴 건가? 얼른 보쇼.”

“나중에 봐도 돼. 가서 커피나 한잔 타와 봐.”

“그럴 게 뭐 있소? 그냥 읽으면 되는 거지.”

석강호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편지를 들여다볼 때 제라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틀림없이 통역 대원을 찾는 걸 거다.

이런 때는 역시 시선을 돌려주는 게 최고다.

“제라르! 귀대 신고는 확실히 했냐? 이상한 점은 없었고?”

“끝났습니다. 알고 있었던 일이라 그런지 덤덤하게 받아주던데요? 안심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건 그냥 제 짐작입니다.”

프랑스 말로 대화를 나누자 이번엔 석강호가 막사 쪽을 보았다.

“대장. 어쩐지 누군가 UN을 핑계로 우리를 여기 모아두려고 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왜?”

강찬은 제라르의 말을 받아주며 편지를 일단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대장 덕분에 특수팀 최고 지휘관이 되지 않았습니까? 위성 전화로 콩고에 있는 11연대 특수팀을 찾았는데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여기 태평하게 이러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콩고에 일이 있어?”

콩고란 이름을 들은 석강호가 강찬과 제라르를 번갈아 보았다.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프랑스 식민지가 콩고다.

피로 범벅된 살육, 처절한 전투, 대원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땅!

알파벳 ‘C’로 시작되는 아프리카 나라들이 대부분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고 보면 맞는데, 콩고(Congo)는 그중 대표적인 내전 국가였다.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냈으며, 목을 자르고, 기름에, 불에, 튀기고 태워 죽이는 참혹한 살육전이 벌어졌었다.

아프리카 내전의 절반은 과거 지배했던 나라가 아프리카에서 시행하는 정책 때문이고, 나머지 절반은 점령국가 마음대로 쭉쭉 선을 그은 국경 때문이었다.

지금도 프랑스는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 언제고 군대를 주둔시킬 권리를 쥐고 있어서 지방의 권력자가 내전을 일으키면 항상 외인부대를 파견했었다.

그런 부족 전쟁에 달려가서 엉뚱한 부족을 구해내던 강찬이다. 그래서 강찬은 늘 엄청난 전공을 쌓고도 수당을 깎이거나 훈장을 뺏기곤 했었다.

“콩고 반군이 우리가 지원하던 부투바를 공격해서 위태롭답니다. 그런데도 13연대 특수팀이 이곳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부투바? 지금 부투바라고 했소?”

석강호가 이름만 알아듣고도 눈빛을 번들거렸다.

그 정도로 부투바의 전투는 항상 처절함의 끝을 보여주었었다.

“아! 답답해서 안 되겠네! 얘는 샤워를 도대체 얼마나 오래 하는 거야?”

석강호가 툴툴거리면서 막사로 향했다.

“통역! 아직도 안 씻었냐!”

걸걸한 고함에 머리에 물기도 안 마른 대원이 튀어나왔다.

저놈은 이제 프랑스어가 싫어졌을 거다.

“보십시오. 스페츠나츠도 대장이 있어서 꺾였지, 안드레이 저 새끼도 아마 분명 최고 지휘관일 겁니다.”

강찬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스페츠나츠 대원들을 보면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SAS도 아니고 SBS가 땡볕에 늘어져 있습니다. 나라별로 가장 강력한 팀이 이러고 있을 만큼 이곳이 급한 곳도 아니잖습니까?”

통역이 말을 전해주자 석강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라르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이곳에 있는 병력이라면 근처에 반군 소탕령을 내려도 엄청난 전과를 올릴 겁니다. 들어보니까 그린베레는 재수 없게 자살 폭탄에 당한 데다 곧바로 RPG를 얻어맞아서 그런 거였지, 화끈한 전투가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미국을 빼면 네 나라의 제일 강력한 팀이 여기 묶여 있는 거다?”

“실제로 그렇잖습니까?”

“듣고 보니 그러네!”

석강호가 맞장구를 치며 끼어들었다.

“무어으씨(moi aussi).”

통역 대원이 ‘나도!’라는 이상한 말로 석강호의 말을 전달하고는 강찬의 눈치를 살폈다.

이런 건 그냥 모른 척해주는 게 맞는 걸 거다.

강찬은 눈 끝을 찌푸리며 허공에 시선을 두었다.

한국이야 힘이 약해서 이곳에 모여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프랑스나 러시아, 영국, 미국은 왜 이곳에 와 있는 거지?

모르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군인의 숙명이 장기판의 말처럼 움직이는 대로 달려가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겠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당하는 것은 전생까지다.

더구나 용병이 아닌 대한민국 특수팀이 이런 곳에서 이유도 모른 채 개죽음을 당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 제라르가 던진 의문에 대해 가장 정확한 답을 줄 사람은?

라노크가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뭐지?

도대체 뭐가 있길래 UN까지 움직여가며 이 멍청한 짓을 시키고 있는 거지?

강찬은 벤치에 앉아 있는 스페츠나츠와 SBS 대원들을 보았다.

안드레이나 고릴라 새끼와 이런 말을 해봐야 어설프게 의혹만 넘겨주는 꼴일 거다.

“일단 지켜보자. 내일까지 몇 곳과 통화를 해보면 대강 윤곽이 나올 거다.”

강찬의 말에 석강호와 제라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

DIA 국장 브랜든은 순금으로 만든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 끝을 미묘하게 움직였다.

이런 빌어먹을 사치를 위해 수도 없는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그중에는 그가 아꼈던 요원이나 대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다고 그가 그런 감정을 표시 낼 만큼 미련하거나 둔하지도 않다. 그런 짓은 영국의 이튼이나 할 법한 짓인 거다.

시원한 바람이 내부를 스쳐 갔다.

에어컨을 켠 것일 텐데 어디서 바람이 나오는지는 브랜든도 알기 어려웠다.

특유의 아치 바탕으로 화려함이 돋보이는 이슬람 공간이었다.

브랜든이 방안을 잠시 둘러볼 때 안쪽과 이어진 문에서 압둘 아비브가 토베(thobe) 차림으로 들어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권력자이며 정확하게 얼마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지 CIA도 매일 헛갈린다는 인물이 압둘 아비브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능숙한 영어로 말을 건넨 아비브가 브랜든을 붙잡고 그의 두 볼에 소리만 요란한 인사를 건넸다.

“앉읍시다.”

손을 뻗어 의자를 가리킨 아비브가 자리에 앉자, 그의 협탁으로 포도와 한잔의 차가 올라왔다.

“아프리카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미 처리되었습니다.”

“라노크와 바실리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커다란 반지로 장식된 손가락이 포도알을 집어 아비브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들은 쉽게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문재현도 그렇겠지요?”

“그 또한 한국의 대통령입니다.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포도알을 고르던 아비브가 시선만 들어 브랜든을 보았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결과물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들의 계획이 우리가 짐작하는 것이라면 미국도 우리도 더는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없게 됩니다. 거기에 유라시아철도로 숨통까지 막히게 됩니다.”

포도에 흥미를 잃은 것처럼 아비브가 자세를 바로 세웠다.

“내일 이후로 아프리카의 특수팀은 더 이상 국장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브랜든이 놀란 시선을 들었으나 아비브는 태연했다.

“UN과 국제사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직 확인 과정이 필요합니다.”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면 돌이킬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꼬레아의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웠을 때, 국장도 성과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브랜든은 아비브의 말에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DIA 국장이라고 해도 이건 독단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본국에서는 아직 승인이 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곳에는 우리 대원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특수팀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했다가 실패할 경우, 그들의 경각심만 높여줄 우려가 있습니다.”

아비브가 한쪽 입술만 올리며 웃었다.

“국장은 우리 이슬람 전사들의 위력을 늘 과소평가해 왔지요. 그동안 국장의 의견을 반영해서 참았던 것을 그런 식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합니다.”

아비브의 단호한 눈빛을 보며 브랜든은 지금의 결정을 돌이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몽골의 기지도 더는 두고 보지 않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세계의 온갖 정보를 주무르는 브랜든조차 절로 고개가 저어지는 말이었다.

“지금은 국장의 의견보다 능력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어설프게나마 블랙헤드와 데나다이트, 세티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니까요. 그 모든 것을 우리의 손에 넣지 못할 바엔 철저하게 부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유라시아 철도도 자연 무너지게 되겠지요.”

브랜든은 입을 꾹 다물고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두 건의 일에 관여된 중요인물이 라노크, 바실리, 그리고 빌어먹을 갓 오브 블랙필드이기 때문에 아비브의 말은 틀린 것은 없었다.

“블랙헤드의 가능성을 알고 있는 정보국의 수장이 모두 제거되면 독일과 스위스는 자연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조금만 여유 있게 진행하실 수는 없겠습니까?”

아비브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우리의 우려대로 블랙헤드와 두 가지 광물의 조합이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가 된다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 가지고 있는 석유 관련 엔진, 부품, 산업 전반의 지적 재산권도 없어집니다. 오늘 국장의 말은 무척 실망스럽습니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지?

브랜든은 낯빛을 굳히고 아비브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미 우리의 전사들이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만약 국장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라노크와 바실리를 상대할 것입니다.”

“라노크는 한국에 있고, 바실리는 러시아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아비브가 눈 끝에 웃음을 달고 브랜든을 보았다.

“국장은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항상 암살을 먼저 떠올리지요. 그리고 꼬리를 감출 생각부터 합니다. 그러나 우리 전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더구나 꼬레아는 폭탄 테러를 경험하지 못해서 방비조차 허술합니다.”

“뒷감당을 계산하고는 있으십니까?”

“시간을 끌다가 차세대 에너지가 성과를 이루어도 미국은 자신이 있는가 봅니다? 그렇게 되면 꼬레아, 프랑스, 러시아로 지금 우리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방향을 바꿉니다.”

손으로 물고기가 방향을 틀듯 움직여 보인 아비브가 고개를 저었다.

“그 막대한 수입을 미국은 감당할 수 있습니까? 달러? 꼬레아가 몽골 기지를 기반으로 차세대 에너지를 손에 쥐는 순간, ‘원’이라는 새로운 화폐가 국제 사회의 결제 수단이 될 것입니다. 영국의 이튼이 멍청하게 차세대 에너지를 무기로 오해해서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우리도 속을 뻔했던 일이지요. 그러니 지금은 뒤를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지하드로 만들 계획이시군요.”

“마침 꼬레아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의 전사들을 욕보였고, 프랑스가 동조를 했었지요.”

브랜든의 굳은 얼굴을 본 아비브가 다시 포도에 시선을 주었다.

“독일이 비밀리에 전기 자동차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 회사의 지분 상당수를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비브는 입술을 위로 올리며 형식적인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석유나 우라늄으로 만드는 전기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자동차입니다. 엔진 부분 부품 수가 현재의 45% 수준으로 줄어드는 획기적인 기술입니다.”

브랜든은 나직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건 DIA도 아직 알지 못했던 일이다.

“더구나 독일의 정보국이 폐기물 재활용이라는 명목으로 비밀리에 설립한 회사의 개발 자금을 전혀 엉뚱한 곳에서 조달했더군요. 일본입니다.”

퍼뜩!

브랜든은 좌우의 볼을 연타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우리와 미국이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고 느낀 나라들이 독자적으로 살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래도 내 계획이 잘못되었다고 여깁니까?”

“적어도 일본에게 경고를 해줄 필요는 있겠군요.”

“해저 터널을 포기하게 할 수는 없지요. 만약 새로운 에너지가 개발된다 하더라도 그 지분은 반드시 우리와 미국의 것이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브랜든이 결심을 굳히고 난 다음이었다.

“오늘 밤, 아프리카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아비브의 음성이 느긋하게 건너왔다.

“그리고 그 전에 국장의 계좌로 우리의 성의가 건너갈 것입니다.”

브랜든은 결심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

라면과 즉석 짜장, 그리고 김치로 즐기는 식사에 만족한 오후를 보냈다.

편지를 읽고 싶었지만, 당장 그럴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솔직히 마음만 먹는다면 그까짓 시간이야 왜 만들지 못하겠나?

하지만 처음 받아보는 편지를, 그것도 ‘이유슬’, ‘유혜숙’, ‘김미영’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급하게 읽고 싶지는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면 이해가 될까?

그래서 강찬은 시간 여유가 생기자 먼저 위성전화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이 빌어먹을 곳에 왜 처박아두었는지를 아는 것이 우선이었다. 또 그래야 좀 더 편한 마음으로 편지를 열어볼 것 같았다.

비겁하게 라노크를 의심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미리 캐내려는 것처럼, 안느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그를 믿고 있다면, 아군으로 생각한다면, 곧바로 라노크와 통화하는 것이 강찬다운 일이었다.

위성 전화의 통화 버튼을 누르자 라노크가 바로 받았다.

[“강찬 씨!”]

번호를 알고 있었나?

강찬은 새삼 라노크의 정보 수집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사님. 강찬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느끼는 소감은 어떻습니까?”]

질문을 한 라노크와 강찬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서운하거나 아쉬운 것이 있다가도 목소리만 들으면 반갑고 좋은 내 편, 아군은 이런 느낌인 거다.

“대사님. 바쁘실 것 같아서 용건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곳에 온 진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강찬은 시간을 끌지 않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우선 대원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고, 다음으로 의문점을 가슴에 담은 채로 웃고 떠들고 싶지 않았다.

[“무슈 강.”]

라노크의 음성이 달라져 있어서 강찬은 좀 더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이 전화로는 저녁 메뉴조차 말하기 어렵습니다. 답답하겠지만, 지금은 무슈 강이 보고 느낀 대로 나를 믿으면 됩니다.”]

“무조건 목숨을 걸어야겠군요?”

정말 짧은 침묵이 흐른 다음이었다.

[“하하하!”]

라노크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위성전화를 통해 들려왔다.

[“이 전화를 함께 듣는 사람들이 놀랐겠습니다. 조만간 연락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사님.”

[“강찬 씨.”]

“예.”

또다시 호칭과 음성이 달라졌다.

미묘한 차이인데 강찬은 이제 라노크가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알 것 같았다.

[“이 전쟁은 우리가 이길 겁니다.”]

무슨 말이지?

아!

강찬은 라노크가 언급한 발표회장의 장면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갓 오브 블랙필드란 적이 붙여준 이름이란 말을 했었고, 죽음을 선사하는 신이란 뜻을 알려준 다음, 이 전쟁은 우리가 이길 거라는 말을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강찬이 했던 말도 떠올랐다.

“제가 뒤에 있으니까요.”

라로크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곳에서 선사할 화끈한 선물을 준비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적에게 선사할 죽음을 단단히 준비하란 뜻일 거다.

물론 누군가 엿들었다면 이 정도 대화에 담긴 속뜻을 못 알아챌 리는 없었다. 하지만 당장 적이 닥칠지 모른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적이었다.

심증이 확신으로 굳었다.

이제 다른 정보국의 시선을 피해서 무슨 일인지를 아는 일만 남았다.

해가 대지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강찬은 바지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읽어볼까 싶어서 문을 바라보았다.

잠가둘 걸 그랬나?

웃긴다.

뭐 편지 세 통 읽는데 문을 살피고 있는 거지?

강찬이 편지를 읽기로 마음을 굳히는 순간이었다.

콰당!

거칠게 문이 열렸다.

“대장! 밖에 얼른 나가봅시다!”

석강호가 다급한 얼굴로 상체를 디밀었다.

이런 건 물어볼 시간도 없다.

화다닥!

강찬은 곧바로 움직여 석강호가 가리키는 막사 밖으로 뛰어 나갔다.

뭐지?

벤치 옆에서 머리와 팔뚝, 손과 정강이가 피투성이인 소말리아 여자가 강찬을 보고는 바로 달려들었다.

“수르드카드! 이까아위야(i caawiya)! 이까아위야!”

강찬은 소매를 붙잡고 울부짖는 여자의 얼굴을 살핀 뒤 고개를 돌렸다.

“반군이 왔었답니다! 흥분해서 대장을 찾는 바람에 사정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죽어간다고 무조건 도와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수르드카드!”

강찬을 보자 마음이 흔들렸는지 여자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까아위야! 이까아위야!”

부족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여자의 입이 바싹 말라 있었다.

차로 40분이나 되는 거리를 달려온 거다.

“누가 물 좀 가져다줘!”

강찬이 소리 지르자 대원 한 명이 머그잔에 물을 가져다주었다.

“수르드카드!”

여자는 물에 시선 한번 안 주고 강찬의 앞에 몸을 수그렸다.

피가 범벅인 팔과 다리로 달려온 여자다.

그런 여자가 지금 이 시간에도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을 부족민을 구해달라고 매달리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고된 삶을 노래로 이겨내던 그 안타까운 사람들을 말이다.

UN? 국제정세? 적십자?

그 어떤 것을 갖다 붙여도 강찬은 당장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이런 사람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수르드카드! 이까아위야!”

여자가 눈물이 흥건한 얼굴을 들어 강찬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제라르!”

“위!”

“전원 무장하고 출동한다!”

“위!”

후다닥!

강찬의 명령을 받은 프랑스 특수팀이 막사로 달려나갔다.

“우아아!”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여자가 입을 커다랗게 벌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다예! 차동균! 전원 무장!”

“알았소!”

“알았습니다!”

후다닥!

한국의 특수팀이 안으로 달려가고 대원 한 명이 강찬의 소총과 조끼, 헬멧을 들고 나왔다.

“마하드! 마하드! 수르드카드!”

고맙다는 말을 겨우 마친 여자가 소리도 내지 못하는 울음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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