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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255화 (25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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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수르드카드

본격적인 열기가 땅에서부터 피어올랐고,

철컥. 철컥.

걸음을 걸을 때마다 소총과 조끼에 꽂은 탄창, 그리고 권총이 존재를 알려왔다.

강찬은 헬멧을 벗어 왼쪽 어깨에 걸고 두건을 꺼내 이마에서부터 싸맨 다음 뒤로 묶었다.

석강호와 제라르를 비롯한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 제라르와 프랑스 대원 중에는 선글라스를 착용한 놈들도 꽤 되었다. 멋 부리려는 게 아니라 서양놈 들은 이상하게 햇빛을 힘들어해서 늘 있던 일이었다.

30분쯤 걸었다.

소말리족은 그때까지도 특유의 노래를 불러댔는데 딱히 지친 표정은 아니었다.

대원들 역시 씩씩했다.

솔직히 이 정도 걷는 것으로 지친다면 특수팀 자격이 있는지 먼저 의심해 보아야 하고, 다음으로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를 살피는 게 맞다.

잠시 쉴까?

강찬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부러 산에서 제법 떨어져 걸었다.

누군가 숨어 있다가 총을 쏘더라도 단숨에 모조리 쓰러지는 일이 없어야 하고, RPG를 날리더라도 피할 최소한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찜찜한 기분은 남았지만, 당장 심장이 요동치지는 않았다.

10분쯤 더 걸었을 때였다.

소말리족의 노래가 묘하게 바뀐 것을 느낀 강찬은 손을 들어 행진을 멈추게 했다.

“물을 나눠주고 이곳에서 5분간 쉰다!”

강찬의 프랑스 말을 통역 대원이 빠르게 우리 말로 바꿔서 전했다.

앞서 가던 차량도 곧바로 멈추었다.

물을 좀 가져다줄까 했는데 아쉬우면 저놈들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에 모른 척했다.

대원들이 차에서 물을 가져와 소말리족에게 부어주었다.

주르륵.

회색의 손바닥으로 물을 받은 여자들이 몇 모금의 물을 마시고 뒤로 물러났다. 고작 세 끼의 음식을 나누는 동안, 굳이 욕심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익힌 덕분이었다.

“마하드(mahad)!”

고맙다는 소말리어 말이다.

물을 마신 여자들이 대원과 강찬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비릿한 냄새, 노린내, 그리고 상한 음식에서 나는 냄새가 소말리족에게서 풍겨왔다.

저들 중에 분명 배급한 음식을 옷 틈에 감춘 사람이 있는 거다.

그렇다고 그걸 뺏거나 욕할 마음은 없었다.

그런 음식 하나가 너무도 간절한 삶을 사는 게 저들만의 잘못이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

좀 더 먹이고, 좀 더 가르치고, 조금만 더 지켜 주면 저 하얗고 순수한 눈으로 꿈을 이뤄 이 아프리카를 일으켜 세울 인재가 나올지 모른다.

구호물자처럼 그 꿈을 뺏는 새끼들을 모조리 죽이기 전에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여깄소.”

석강호가 강찬에게 물이 담긴 팩을 디밀었다.

강찬은 뚜껑을 열어 입에서 살짝 뗀 채로 마셨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소말리족도 모두 목을 축였다.

“출발하자.”

“알았소.”

물 주머니를 받은 석강호가 다시 제자리로 움직였다.

“출발!”

강찬의 지시에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이와-야!”

“우이와이-야!”

목이 안 아픈가?

강찬의 걱정에 상관없이 소말리족은 낭랑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걸었다.

20분만 걸으면 이들을 인계한다.

언제고 비상이 걸려서 달려오게 된다면 이들 중 상당수가 또 죽어 있겠지만, 그것 또한 아프리카의 삶이라 강찬이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었다.

15분쯤 더 걷자 선두 차량의 방향이 산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까지의 거리가 100m쯤 되었을 때였다.

강찬은 손을 들어 행렬을 멈추게 했다.

“제라르!”

“위!”

제라르가 빠르게 강찬에게 다가왔다.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을 내리게 해. 그리고 차에 있는 중화기 트럭에 배치하고, 열 명 선발해라. 앞쪽 산에 거점 확보한다!”

“위!”

제라르가 빠르게 답을 하고 뒤쪽으로 움직였다.

“석강호! 허머 한 대는 선발대와 갈 거니까, 나머지 한 대 앞쪽으로 가져와서 대원 배치해!”

“알았소!”

석강호가 답을 하고 돌아섰다.

강찬은 어깨에 걸었던 헬멧을 머리에 썼다.

아직 감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지형에 들어갈 때 거점을 확보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부우우웅!

허머 한 대가 앞을 막았고,

철컥! 철컥!

대원들이 그 뒤에서 총을 겨누는 순간에, 제라르가 대원 열 명과 함께 강찬에게 다가왔다.

강찬은 뒤편의 트럭을 바라보았다.

중기관총이 트럭의 운전석 위에 있었고, 대원 한 명이 이글라를 들고 앞쪽의 산을 노리고 있었다.

“가자!”

부르릉!

이두희가 운전하는 허머가 앞에 나섰고, 강찬과 제라르, 대원들이 넓게 퍼져서 뒤를 따랐다.

선두에 섰던 소말리아 정부와 적십자 차량이 못마땅하다는 듯 산을 향해 앞서 나갔다.

상관없다.

저 새끼들이 반군과 손잡지 않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거다.

부르릉. 저벅저벅.

50m쯤 걸었을 때였다.

“거기 둘! 저쪽 바위 확보해!”

강찬은 대원 둘에게 가장 가까운 바위를 가리켰다.

와다닥!

둘이 달려가는 동안 나머지는 걸으면서 언제고 사격할 수 있도록 소총을 어깨에 올리고 걸었다.

바위에 몸을 감춘 대원이 공중에 검지를 한 바퀴 돌린 후, 산 위를 가리켰다.

이 정도면 안심해도 좋다.

그리고 그 사이 산과 거리는 30m쯤 되었다.

먼저 도착한 정부 관리와 적십자 직원이 지친다는 태도로 지켜보는 앞이다.

강찬은 대원 둘을 더 보내 중간의 언덕을 확보했다.

10m다.

강찬은 제라르에게 고갯짓을 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와다닥! 부스스스!

부서지는 흙이다.

걸음이 퍽퍽 밀렸지만 그렇다고 모래처럼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제라르는 의도적으로 강찬의 서너 걸음 대각선 뒤에서 걸었다.

10분쯤 올라가자 주변이 훤히 보이는 곳이 나왔다.

강찬은 그곳에 올라서서 주변을 살폈다.

뒤는 돌산, 그 외에 보이는 모든 곳은 말라 비틀어진 얇은 초목들뿐이어서 몸을 감출 곳은 없었다.

치잇. “석강호. 출발해.”

치잇. “알았소.”

강찬의 명령이 떨어지자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작 100m고, 다음으로 산을 올라와 강찬의 아래에 놓인 길을 지나야 한다.

“후우!”

제라르가 소총의 방아쇠 고리에 검지를 걸치고 강찬의 옆에 섰다.

“대장. 우리 애들 다 군복 벗을 테니까 여기 와서 나라 하나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강찬은 피식하고 웃으며 안쪽을 살폈다.

“대장이 그렇게 하겠다면 한국 팀에서도 옷 벗을 대원들 꽤 나오겠습니다. 소말리족 사이에서 인기도 많은데 한 번쯤 고민해 보십시오.”

“다국적군과 싸우고 싶냐?”

“흥! 달려들었다가 얻어먹을 것 없으면 도망가는 놈들 아닙니까? 이쪽을 통일하면 오히려 대장과 잘해 보려고 기웃거릴 겁니다.”

제라르의 말이 끝날 때쯤 소말리족이 산으로 들어섰다. 어제 나눠주었던 담요를 머리에 이고 있어서 무척 더워 보였다.

가장 앞에 정부 관리와 적십자 직원이 있었고, 대원들이 소말리족을 둘러싼 채로 이동하고 있었다.

“올라가자.”

“알았습니다.”

강찬은 제라르와 둘이서 길이 난 방향의 위쪽으로 움직였다.

함께 움직였던 선발대 대원 열 명이 돌아가면서 강찬과 제라르가 확보한 거점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긴장한 것이 맥빠질 만큼 순탄한 행렬이었다.

산으로 들어서고 다시 30분쯤 더 걷자 아프리카 특유의 흙으로 만든 가옥이 가득한 평지가 나타났다.

일행의 도착을 알아챈 마을 사람들이 나왔고, 함께 걸어왔던 소말리족이 그들에게 달려갔다.

시끌시끌.

“이제 만족합니까?”

적십자 직원 마이크가 가시 돋친 말을 던졌는데 강찬의 피식 웃어주고 말았다.

“내려가자.”

“그럽시다.”

강찬이 석강호에게 말을 하고 몸을 돌리려는 참이다.

“수르드카드!”

소말리족 여자 한 명이 커다랗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강찬이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수르드카드! 뭉갈라 이니바! 이니바!”

여자는 분명 강찬을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이 새끼는 이럴 때 어디 있는 거야?

강찬이 고개를 돌리기 전에 로베르가 빠르게 다가왔다.

“대장을 수르드카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와 달라는 겁니다.”

갓 오브 블랙필드라는 코드명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기가 막혀 하는 강찬을 제라르와 석강호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가 또다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빠르게 쏟아냈다.

“주술사를 만나보고 가야 한답니다.”

“후유!”

한숨이 절로 나올 말이었다.

한쪽에서 정부 관리와 적십자 직원이 빨리 돌아가 주었으면 하는 얼굴로 서 있는 마당에 주술사를 만나라고?

그것도 UN의 지시까지 어겨가며 온 길에서?

“적당히 둘러대.”

로베르가 대꾸하는 틈에 강찬은 몸을 돌려 왔던 길을 향해 걸었다.

뒤편에서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리고, 그중에 ‘수르드카드’란 말이 계속 들렸지만, 강찬은 진심으로 주술사를 만날 마음은 없었다.

내려오는 길은 확실히 빨랐다.

단숨에 산을 빠져나온 강찬은 앞쪽이 훤히 보이는 곳에 도착해서 잠시 쉬기로 했다.

철퍼덕!

경계병 여섯 명을 제외하고 모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배 피워도 되는 거요?”

“나도 하나 줘.”

석강호가 담배를 건네주자 제라르가 라이터를 켰다.

철컹. 치이익!

“후우!”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소?”

“나도 그렇긴 하다.”

담배 연기를 뿜어낸 석강호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소말리족이 있는 방향과 정부 관리를 번갈아 보았다.

제라르의 눈짓을 받은 통역 대원이 다가와서 지금의 짧은 대화를 프랑스 말로 전해주었다. 아무래도 저놈은 두 번 다시 파병은 안 나올 것 같았다.

“UN이 기껏 구한 쟤들을 모른 척하라는 것도 그렇고, 대장이 지키고 나서니까 정부 관리와 적십자 직원들을 보내서 돌려보낸 것도 그렇고,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짓 아니오?”

“누가 아니래냐? 일단 돌아가서 샤워하고 천천히 생각해 보자.”

말을 전해 들은 제라르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저 새끼들 좀 보쇼.”

석강호가 고갯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정부 관리와 적십자 직원이 차량 근처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려는 모양인데 우리가 여기서 뭐 훔쳐갈 것도 아니고……?”

강찬과 석강호의 시선을 본 정부 관리가 얼른 고개를 돌려 적십자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꼭 할 말이 있다기보다는 시선을 외면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내려가자.”

“알았소.”

담배도 피웠고, 일도 끝났다.

우르르 일어나 아래로 내려갔다.

“마이크! 우리는 돌아가겠다.”

“수고했소!”

헤어지는 마당에 센 척하기는!

강찬은 박철수, 석강호와 함께 허머에 올랐다.

프랑스 팀에 허머 한 대, 그리고 남은 대원들이 알아서 트럭에 오르고 난 뒤다.

부르르릉!

기분 좋은 엔진 소리와 함께 기지로 출발했다.

40분쯤 달리자 기지가 보였고, 도착을 무전으로 먼저 알렸다.

끼이익.

차에서 내려 기지로 들어설 때였다.

짝짝짝짝! 휘이이익!

“굳 잡(Good job)!"

입구에 서 있던 미군 그린베레가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강찬과 대원들을 맞았다.

벤치에 앉아 있던 스페츠나츠와 SBS는 멋쩍은 얼굴이었는데, 적대감은 보이지 않았다.

“제라르, 복귀 신고해라.”

“알겠습니다.”

각자의 막사로 가는 길이다.

고작 하루 같이 있었다고 프랑스 특수팀과 한국 대원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지랄!

강찬은 막사로 들어갔고, 바로 샤워를 했다.

촤아아악!

물을 뒤집어쓰자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아프리카다.

물을 함부로 쓰기도 어렵고, 달랑 두 개 있는 샤워실을 오래 차지하는 것도 미안해서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순서를 기다리며 목을 빼고 있어야 할 대원들이 엉뚱한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게 뭐야?”

“한국에서 물품이 왔다고 해서 샤워하는 동안 가서 찾아왔소.”

어지간한 책상 크기의 박스가 두 개, 그리고 사과 상자만 한 박스가 열 개였다.

“뭐가 들었는데?”

“뜯어봐도 되겠소?”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얼른 뜯어.”

대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서 박스를 열었다.

“어?”

커다란 상자 하나를 뜯던 대원이 놀란 소리를 냈다.

안쪽에 알루미늄 박스가 들었고, 위 뚜껑을 열자 드라이아이스 주머니, 그리고 그 안쪽에 다시 스티로폼 상자가 있었다.

“상자를 열면 더 작은 상자들이 계속 들어 있는 거 아니야?”

석강호가 툴툴거린 다음이었다.

스티로폼 상자의 뚜껑을 연 대원이 “우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김치인데요?”

“뭐?”

석강호가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대원이 두 손에 들어 보인 김치 포장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세상 참!

박스를 열 때마다 대원들이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석강호가 바라던 라면, 컵라면, 초콜릿 과자, 즉석밥, 즉석 비빔밥, 즉석 짜장까지.

이건 뭐 애들 수학여행 간식도 아니고.

박스 하나는 아예 봉지 커피가 가득 들어 있었다.

중간에 있던 박스를 뜯은 대원이 손을 넣더니 편지를 잔뜩 꺼내 들었다.

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편지씩이나.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이 상자에서 쏟아진다.

어차피 강찬과 석강호는 편지를 보낼 사람도 없는 처지다.

“안 씻냐?”

“씻고 나올 테니 김치에 라면이나 얼큰하게 끓여 먹읍시다.”

석강호와 박철수가 수건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강찬은 세탁된 군복 바지를 꺼내 입었다.

상처투성이의 상체에 반소매 면티를 입었을 때였다.

“편지입니다.”

대원이 강찬에게 세 통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이곳에 온 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데?

이건 강찬도 멍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얼결에 편지를 받은 강찬은 우선 겉봉을 보았다.

가장 위에 놓인 알록달록한 편지의 겉봉에는 연필로 ‘이유슬’이라고 적혀 있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전생을 합쳐서 지금까지 개인적인 편지는 처음 받아보는 거였다.

죽이겠다는 협박 편지라면 몰라도 솔직히 이런 걸 받아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었다.

강찬은 편지를 들고 막사를 나왔다.

조용하게 보고 싶어서였다.

벤치로 향하며 노란색의 두 번째 편지 겉봉을 보았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유혜숙의 편지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곳에 유혜숙이 갑자기 나타난 것만큼이나 놀랄 일이었다.

아직 하나가 남았다.

두 번째 봉투를 뒤로 넘기자 분홍색 편지봉투가 나타났다. 그런데 편지의 겉봉에 적힌 이름을 보자 강찬은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김미영.’

예쁜 여자 글씨로 쓰인 이름은 분명 김미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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