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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 너무 무리하지 맙시다.
뜨거운 태양이 머리를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더위를 껴안은 바람이 지날 때마다 땅에서 열기가 올라왔고, 인질들과 그들이 주저앉은 땅에서 역겨운 냄새가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차동균! 위쪽과 올라오는 방향까지 저격수와 경계 세워! 그리고 남는 인원 중 다섯을 이곳에 배치해.”
답을 한 차동균이 무전으로 대원들에게 지시를 하는 동안 인질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강찬은 다시 헬멧으로 손을 올렸다.
치잇. “제라르! 뒤편에 경계 세우고 아래로 내려와.”
치잇. “알겠습니다.”
무전은 아래에서 기다리는 UN 지휘부 차량에서도 모두 듣는다. 그래서 강찬은 일단 무전으로 다른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안드레이가 총구를 아래로 향한 채 강찬에게 다가왔다.
“구하기는 하는데 살리지는 말라는 명령이다. 너는 이게 이상하지 않냐?”
“그렇더라도 지휘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안드레이.”
강찬은 안드레이의 말을 자르고 그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군인으로 명령을 따르겠다는 걸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저기를 봐라.”
안드레이가 강찬의 시선을 따라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소말리족을 빠르게 보았다.
“우리가 자리를 비우면 다시 인질이 되거나 죽어야 할 사람들이다. 우리가 구했기 때문에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구하지 않는 게 훨씬 더 좋았다. 그걸 막을 대책이 생기기 전까지 난 저 사람들을 버리지 못한다.”
안드레이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하긴 이런 새끼한테 뭘 바라고 말한 건 아니다.
저벅. 저벅.
그때 제라르가 대원 한 명과 강찬에게 다가왔다.
“무전은 들었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장. 이 녀석이 소말리어를 할 줄 압니다.”
“로베르입니다.”
제라르가 눈으로 가리킨 놈이 짧게 경례를 올렸다.
강찬은 우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제라르, 경계 세우고 당분간 이들을 지킨다.”
“음식과 최소한의 물품이 필요합니다.”
“우리 쪽 대원 6명과 외인 특수팀 6명이 기지에서 우리 분량의 음식과 담요, 그리고 필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오는 것으로 하자.”
“대장.”
강찬은 제라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안드레이 앞에서 함부로 토를 달고 싶지 않아 뒷말을 잇지 않았다는 것까지 말이다.
통역 대원이 석강호의 옆에서 빠르게 우리말로 대화를 전해주고 있었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내 지시로 했다고 하면 돼. 정보총국 부국장의 직위를 내세웠다고 하면 될 거다.”
제라르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다.
부총국장의 지위라는 사실에 놀란 것이 가장 커 보였다.
“나야 군복 벗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대장은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럼에도 제라르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제라르! 전에 내가 이런 일을 모른 척했다면 난 벌써 장군이 되고 남았을 거다.”
제라르가 입을 꾹 다물고 나직하게 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한국 팀을 지정해 주십시오.”
강찬은 고개를 돌려 차동균을 찾았다.
“3조가 외인부대 특수팀과 우리 분량의 점심과 저녁, 시레이션, 그리고 기본적인 침구를 가지고 와.”
“알겠습니다.”
지금껏 통역을 통해서 대화를 듣고 있던 차동균이 대원들을 앞쪽으로 모았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로베르입니다.”
강찬은 시선을 돌려 소말리족을 보았다.
“로베르, 여기 이 사람들, 우리가 지키겠다고 하고 다시 동굴로 들어가라고 해. 음식과 담요를 가져오는 대로 나눠 준다고 하고.”
로베르가 커다란 목소리로 소말리어를 쏟아냈다.
“정말 아프리카로 돌아오셨군요.”
제라르는 못 말리겠다는 투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불 피울 준비도 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손님을 따듯하게 모시지.”
둘이서 나눈 대화를 통역에게 전해 들은 석강호가 살짝 늦게 히죽 웃었다.
로베르의 말이 끝나는 순간, 곧바로 인질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의약품이 필요하답니다. 곪은 상처,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구급약이 필요하다는데요.”
“제라르, 알지?”
“그럼요! 장사 하루 이틀이 아니잖습니까?”
답을 한 제라르가 차동균과 움직였고, 로베르가 인질들에게 빠르게 내용을 전했다.
“지금 들어가라고 합니까?”
“그게 낫잖아?”
“그렇긴 합니다.”
로베르가 높다랗게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본 후에 답을 했다. 그가 다시 소말리아어를 지껄이자, 인질들이 우르르 동굴로 움직였다.
“석강호. 두 명 입구에 배치해.”
“알았소.”
석강호가 대원 둘을 불러서 짧게 주의사항을 전해 주었다.
지금은 얌전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거세게 항의하고 따질 때도 있으며, 다른 인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나온다.
그럴 때는 허공에 방아쇠를 당겨서 겁을 주고 필요하다면 격리시키는 것이 답이다.
강찬은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박철수에게 다가갔다.
“대령님. 이건 UN 지휘부의 지시를 어기는 일입니다. 만약 문제가 되면 국가정보원 부원장의 지시를 어기기 어렵다고 답을 하세요.”
박철수가 제라르와 비슷한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다.
코에 붙인 거즈가 시커멓게 변해 있어서 저것 때문에 오히려 상처가 덧날 것처럼 보였다.
“책임은 제가 집니다. 저는 분명히 이렇게 못했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박철수의 답을 듣자 마음이 한결 편했다.
“우린 일단 철수하겠소.”
그때 안드레이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강찬은 짧게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쩔걱. 쩔거덕.
소총과 장비 소리를 남기고 스페츠나츠가 산 아래로 내려갔다.
“저쪽으로 가서 담배 하나 피웁시다.”
석강호가 소총을 어깨에 건 채로 주머니를 뒤졌다.
하긴 아프리카의 강렬한 햇볕을 일부러 맞을 필요는 없다.
강찬을 시작으로 대원들이 적당한 바위 아래에 쭉 모였다.
“여깄소.”
찰칵! 화르륵!
“야!”
석강호가 라이터를 켜자 화염방사기 수준으로 불이 올라왔다. 이래서 아프리카에서는 휘발유에 석유를 섞어야 하는 거다.
“푸흐흐. 이걸 까먹었네!”
석강호가 넉살 좋게 웃고는 라이터를 조절했다.
찰칵! 찰칵!
“후우!”
담배를 물고 나자 갑자기 목이 말랐고, 이어서 달달한 봉지 커피가 떠올랐다.
자박. 자박.
“다예! 나도 하나 줘.”
“저 새끼가 이상하게 스타일이 바뀌었네!”
굳이 통역을 하지 않아도 이해될 때가 있다.
제라르에게 석강호가 담배를 건네고 불을 붙여주었다.
잠시 한국 여행을 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온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만큼 익숙한 광경이었다.
“후우!”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동안, 역겨운 냄새가 사라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아프리카의 냄새는 시시때때로 바뀐다.
아침과 점심이 다르고, 해가 높다랄 때와 해가 진 뒤의 냄새가 또 다르다. 그러니 익숙해질 틈이 없이 늘 노릿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물론 그것도 한 주일가량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하지만 말이다.
한 시간쯤 늘어져서 시간을 보냈을 때였다.
치잇. “기지에 갔던 대원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하는 무전이 들렸다.
강찬은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자리로 가서 상체를 내밀었다.
멀리서 보기에 그 옆의 바위에 올라가 아래를 굽어보는 게 그림과 감동이 죽여주겠지만, 그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어서 겸손하게 상체만 내민 거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들지 모르는 데 뭐 미쳤다고 바위에 올라가 아래를 굽어보겠냐는 말이다.
허머 세 대와 트럭 세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저거 들고 올 인원 좀 내려보내.”
“그럽시다.”
석강호가 걸터앉았던 바위에서 일어나 아래로 움직였다.
잠시 후, 차동균과 마중 나갔던 대원들, 그리고 외인부대 특수팀이 산더미 같은 짐을 들고 올라왔다.
제라르와 석강호가 대원들이 쓸 물품과 식품을 먼저 빼고 나머지를 추렸다.
“뭐가 이렇게 많아?”
“미국 그린베레가 준 것이 절반쯤 됩니다. 혹시 몰라서 그냥 받아왔습니다.”
준다는 걸 굳이 안 받는 게 더 이상하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제라르와 석강호가 대원들과 함께 물품을 들고 동굴로 들어갔다.
웅성웅성!
동굴 안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악을 쓰는 소리로 변했다.
푸슝! 푸슝!
총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는 순간에 칼로 자른 것처럼 소란이 사라졌다.
이것도 금방 적응된다.
인질들도 끼니마다 음식이 나오는 것을 알면 순서를 기다릴 줄 알게 되는 거다.
음식을 나눠주고 있을 때였다.
“끼아아아악!”
기다란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박철수가 화들짝 놀란 얼굴을 돌리는 것을 보며 강찬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기가 죽은 걸 거예요.”
“아기가요?”
“아마 한 번쯤 더 저런 비명이 있을 겁니다.”
박철수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다.
살릴 수 없냐고?
찰칵!
“후우!”
당장 의료진이 달려든다 해도 방금 전 죽은 아이와 강찬이 죽을 거라고 짐작한 아이는 못 살린다. 그래서 지금은 죽을 아이의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는 것이 최선의 선물이 된다.
잠시 후, 아이를 안은 여자가 깡마른 몸을 비척이며 동굴을 나왔다. 품에 안긴 까만 피부의 아이는 입에 삼키지 못한 음식이 하얗게 묻어 있었다.
아프리카 여자들의 울음은 비명처럼 들린다.
조금만 신이 나도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데 반대로 비통한 감정을 감추지도 않는다.
프랑스 특수팀 대원 둘이 아이를 안은 여자를 산의 안쪽으로 안내했다.
기다란 막대기로 땅을 파고 아이를 그 안에 묻는 것으로 또 하나의 힘겨운 삶이 아프리카를 떠난다.
비명처럼 울부짖는 울음에 동굴에서 나오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섞였다.
한쪽은 아이를 땅에 묻고, 다른 한쪽은 살기 위해 음식을 입에 넣는다.
담배를 끄고 멍하니 동굴로 시선을 주고 있을 때 산에서 여자가 휘청이며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흙투성이의 무릎, 손을 하고 동굴로 힘없이 들어갔다.
“이렇게 지켜주지 않으면 저 여자도 오늘 중으로 죽습니다. 특히나 우리가 구해냈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박철수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투로 고개를 돌렸다.
“그게 저도 이해가 안 갑니다. 구하면 반드시 보복을 받아서 죽게 되는데 그린베레가 부상까지 당하며 구한 인질들을 그대로 두고 오라고 했으니까요.”
“지휘부에서 모르고 있는 거 아닙니까?”
강찬은 피식 웃으며 동굴을 힐끔 보았다.
“이곳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놈들이 저놈들입니다. 그래서 제라르도 무언가 숨긴 게 있다고 하는 거고, 저 역시 께름칙해 하는 거죠.”
박철수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석강호와 대원들이 작은 상자를 하나 들고 강찬에게로 다가왔다.
“식사합시다.”
털썩!
상자에 담긴 것은 미군들이 먹는 시레이션이었다.
“제라르는?”
“잠깐 대원들 살피러 간 것 같소.”
이젠 한국과 프랑스의 편을 나누는 것이 더 불편할 지경이었다. 근처에 있는 대원들이 모두 모여서 음식을 먹었다.
물도 실컷 마셨다.
“쩝!”
석강호가 아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커피 한잔 하시겠습니까?”
곽철호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커피가 있어?”
“제가 봉지 커피 챙겨왔습니다. 저기 동굴 앞에서 불 피우면 대강 한 잔씩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찬이 웃는 것을 본 곽철호가 대원 한 명과 동굴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긴 사방에 깔린 게 검불과 바싹 마른 초목이니 커피 탈 물 정도는 얼마든지 끓일 거다.
잠시 후, 봉지 커피 특유의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이런 게 이렇게 신기하고, 반가울 수가 없다.
“배달입니다!”
곽철호가 커피를 들고 와서 나눠주었다.
“꽉!”
냄새를 맡은 건지, 나타날 놈이 나타난 건지, 제라르가 빠르게 오른쪽에서 내려와 커피를 받았다.
“좋군요!”
박철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에 털어낸 감탄사였다.
더럽게 더운 아프리카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게 좋을 줄은 몰랐을 거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도 없잖소?”
후루룩거리며 커피를 넘긴 석강호가 고개를 돌렸다.
통역 대원이 제라르에게 프랑스어로 석강호의 말을 전해주고 있었다.
강찬은 우선 제라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라르. 여기 소말리족이 600명이라고 하지 않았냐?”
이번엔 통역 대원이 석강호에게 말을 전했다.
어쩌다가 이런 부대에 뽑혔을까?
“저녁이 돼서 인질들이 좀 안정되면 물어볼 생각이었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이렇게라도 버텨보자. 우리가 손을 떼는 순간 죽는 걸 뻔히 알면서 버릴 수는 없잖냐?”
“괜찮겠소?”
“이런 게 어디 한두 번이냐?”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전해 들은 제라르도 어떻게 말리겠느냐는 투로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교대로 경계를 섰고, 돌아가며 휴식을 취했다.
동굴의 정면,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에서 주로 모여 앉았는데, 아래쪽을 향해 확실하게 저격수까지 배치해서 나름 여유가 있었다.
솔직히 이전에 경험한 그 어떤 작전보다도 수월한 전투였다. 그래서 그런지 대원들의 태도에 한결 여유가 묻어났다.
강찬은 소총을 어깨에 건 채로 바위에 기대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 개새끼들이 도대체 무얼 감추고 있는 거지?
전화라도 마음 놓고 쓸 수 있으면 안느에게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대한민국은 이런 상황에 힘을 쓰기 어렵지만, 프랑스라면 확실히 다르다.
아프리카의 곳곳을 식민지로 거느렸던 경력에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까지 감안한다면 그 차이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거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만 골백번 해놓고 결국은 아프리카의 산기슭에 앉아 프랑스의 힘을 빌려 쓸 궁리를 하고 있는 게 우습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
오후 5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조금 지나서 저녁을 가지고 와야 하고, 야간 경계를 설 대원들이 먼저 잘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밤이 되면 대략 20도 미만으로 기온이 떨어진다.
한국의 대원들이 그나마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그 기온에 인질들은 추위를 느낀다.
‘어머니는 잘 있을까?’
이번에도 가면 놀라서 울음을 터트리려나?
너무 자주 그래서 어쩌면 웃으며 맞아줄지 모른다.
강찬이 유혜숙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가에 웃음을 달 때였다.
제라르가 강찬에게 다가왔다.
“대장. 400명은 산 너머에 있답니다. 그쪽에 알비노가 있어서 습격당한 건 아닌가 하는 말도 있었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저었다.
“이슬람 반군은 그걸 믿지 않잖아?”
“그 외는 자기들이 습격당한 이유를 알 수 없답니다. 여기 온 200명도 일단 여자와 아기들만 우리 기지 쪽으로 피신시키려다가 급해서 동굴에 숨은 거라고 하던데요.”
제라르가 강찬의 곁에 털썩 앉았다.
기다란 속 눈썹, 그만큼이나 긴 팔과 다리, 서양놈 특유의 단단한 상체, 볼의 상처.
관록 있는 베테랑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 모습이었다.
“대장. 너무 무리하지 맙시다.”
강찬이 피식 웃는 것을 본 제라르가 정면에 펼쳐진 하늘을 보았다.
“알비노의 팔이나 다리 하나가 지금은 미화로 천 불이 넘습니다. 요즘은 머리를 잘라다가 알코올에 담가두는 게 유행이랍니다. 그건 또 만 불이 넘습니다.”
“제라르. 이슬람 반군은 주술을 믿지 않아.”
“여기 얘들만 챙깁시다. 전에도 이런 것 때문에 대장을 경계하는 놈들이 많았던 거 아닙니까? 지금은 그 상대가 UN입니다. 국제사회 전체를 상대할 건 아니잖습니까?”
진지하고 나직한 음성이었다.
전에 목이 뚫려 죽은 것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그래서 제라르답지 않게 이렇게 나직한 프랑스어로 다독이는지도.
그렇다고 사람이 어디 쉽게 바뀌나?
“제라르. 내가 다예나 너를 가슴에 담지 못했으면 지금 우리 모습이 어떨까?”
제라르가 천천히 시선을 돌려 강찬을 보았다.
“징그럽지 않습니까?”
“확!”
둘이서 킬킬거리며 웃었다.
“하아! 알았습니다. 무조건 따라가다 보면 언제고 끝을 볼 때가 있겠지요. 그나저나 죽어도 또 살아날 양반하고 있으니까 어쩐지 손해 보는 느낌인데요?”
강찬이 픽 하고 웃음을 터트린 다음이었다.
“다음번에 다시 태어난다면 가까운 곳에서 좀 태어납시다.”
제라르가 되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