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45화 (24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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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함께 싸워보자.

라노크는 프랑스인 특유의 뾰족한 표정을 하고 막사로 들어섰다.

“어서 오게.”

바실리가 소파를 향해 손짓한 후에 찻주전자를 기울였다. 홍차의 향이 사방으로 퍼진 다음이다. 이어서 바실리는 작은 잔에 보드카를 가득 채워 소파로 향했다.

달칵.

바실리가 잔을 내려주자 라노크는 안주머니에서 두 개가 들어가는 작은 시가 케이스를 꺼냈다.

찰칵.

라노크가 빨아들일 때마다 시가 끝에 불꽃이 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후우.”

한쪽으로 뿜어낸 연기를 바라보며 바실리는 보드카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보드카가 달게 느껴지는군.”

바실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보드카 병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바실리.”

“이미 조치했다. 더는 우리의 영웅에게 마피아가 가는 일은 없어.”

쪼로록.

바실리가 잔을 채운 다음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믿고 가자는 말을 가장 경멸하며 살았어. 개도 먹지 않을 서류의 사인 따위도 믿지 않는다.”

벌컥.

바실리가 두 번째 잔을 털어 넣고 라노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죽는 게 두려워서 이러는 게 아니야.”

라노크가 재미있다는 투로 입 한쪽을 올리며 웃었다.

“스페츠나츠의 전설이 죽음을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거지.”

“강찬은 아직 어려.”

“그를 지금껏 지켜봤으면서 그런 소릴 하나?”

바실리는 도전적인 시선이었다.

“마피아를 핑계로 스페츠나츠를 보내면 무슈 강이 죽어줄 것 같은가?”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후우. 무슈 강에게 비무장왕이 있다는 사실을 아나?”

“뭐?”

그런데 라노크의 한마디 질문에 바실리의 눈빛이 삽시간에 부서져 나갔다.

“무슈 강은 그런 남자야. 스페츠나츠가 유일하게 못 넘었던 남자가 스페츠나츠에게 최대의 치욕을 안겨 준 무슈 강을 따른다. 어떤가? 이 정도면 러시아는 인정할 만한데?”

“빌어먹을 코레야!”

“그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지.”

라노크는 여유가 있었고, 바실리는 억울한 얼굴이었다.

“일이 성공하기 전에는 반드시 두 가지 조짐이 있지. 하나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또 한 가지는…….”

“일이 알아서 달려오지.”

“이 정도면 인정해야지.”

쪼로록.

바실리는 잔을 채운 뒤에 숨도 쉬지 않고 입으로 털어 넣었다.

“자네는 무슈 강을 진심으로 믿나?”

“후우!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제거하지 않았을까?”

“시커먼 프랑스인의 속을 누가 알겠나?”

“러시아인의 무모함보다야 효과적이지.”

“후우!”

바실리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털어냈다.

“늘 이런 때를 꿈꿔 왔지. 그리고 항상 주인공은 나였어. 그런데 고작 조연이 돼서 주인공의 눈치를 살피게 될 줄은 몰랐다.”

“자넨 두 번째 중요한 조연이다. 자부심을 가져.”

“조연에서도 순서가 밀리는군. 그것도 속이 시커먼 프랑스인에게 뒤지다니.”

“싸울 마음이 생겼나?”

“그래야 하겠지.”

라노크가 기다란 손가락에 시가를 걸고 홍차 잔을 들었다.

“이걸로 정보 세계에 지옥문이 활짝 열리는 거다, 바실리.”

“다음번에도 살아있는 라노크를 보고 싶군.”

“무모한 러시아인보다야 오래 살아 있을 거야. 자네 관에 꽃을 얹어줄 때까지는 살아 있도록 하지.”

바실리가 픽 하고 웃은 다음 보드카 잔을 채웠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하겠지?”

“그의 코드명이 만들어진 곳이니 영웅의 전설이 시작되기에 그곳만 한 장소도 없다.”

“갓 오브 블랙필드? 흣! 어쩐지 처음 들었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더니!”

바실리가 보드카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

두두두두두두.

헬기 소리가 위안이 될 줄은 몰랐다.

특수팀 출신의 국가정보원 요원과 그래도 강남을 장악했던 오광택의 식구들이다.

야간 기습에 겁먹을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헬기 소리가 들리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고,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끝없는 황야, 멀미가 날 것 같은 지평선, 이가 갈리는 바람, 뼈를 파고드는 추위, 지긋지긋한 흙먼지, 그리고 시체를 뜯어먹는 늑대에 지쳤는지 모른다.

그래서 산, 그 위를 덮은 초목, 김치, 소주, 그리고 북적이는 사람이 그리웠나 보다.

저걸 타면 서울, 아니라도 최소한 사람 북적이는 울란바토르까지는 가는 거다.

고개를 돌린 사내들의 꼬질꼬질한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올라와 있었다.

“선배님. 빨리 돌아오십시오.”

“고맙다.”

가벼운 짐 가방을 든 강철규가 시선을 돌렸다.

석양이 거친 대지를 피처럼 물들인 시간이었다.

강찬은 막사 위에서 소총을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황야를 향해 서 있었다.

한 번쯤은 돌아봐 줘도 좋을 텐데.

두두두두두두두.

“이사님! 오실 때 소주 몇 병 챙겨주십쇼!”

오광택이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얼굴로 다가왔다.

두두두두두두.

그리고 그 순간에 헬기가 만든 바람이 기지를 덮쳤다.

무전기를 통해서 강찬과 조종사가 나누는 프랑스말이 고스란히 들렸는데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마침내 헬기가 기지 바로 앞으로 내려앉았다.

꽈악!

강철규가 내민 손을 김태진이 힘껏 잡았다.

‘꼭 돌아오십시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백 마디 말보다 진한 감정이 오갔다.

구질구질한 모습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강철규는 애써 강찬을 외면한 채로 헬기를 향해 움직였다.

혼란스럽다.

황량한 벌판이어서, 모처럼 전투를 치러서 그런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이유가 어쨌든 간에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살아서 돌아오라고 할 때 강찬은 분명 완벽한 아들이었다.

두두두두두두.

헬기가 이륙하자 유리를 통해 붉은 석양이 달려들었다.

굳게 마음을 먹었으나 강철규는 끝내 시선을 돌려 강찬을 찾았다.

내려다 보이는 시선 속에서 강찬은 요원 한 명과 막사 위에 서 있었다.

더 바라서는 안 된다.

이 정도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감사한다.

그러니까 한 번쯤 돌아봐 주었으면 하는 욕심 따위 내서는 안 된다.

그저 저 모습이라도 볼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무슨 자격이 있다고…….

강철규가 이를 악물고 시선을 거두려는 순간이었다.

막사 위에 있던 강찬이 고개를 돌렸다.

이런 거리에서 시선이 마주칠 줄은 몰랐다.

‘살아 돌아와!’

강찬의 시선이 그대로 강철규의 가슴에 담겼다.

이제 더 바라는 거 없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바라봐 주어서 정말 고맙다!

강철규는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시며 시선을 돌렸다.

두두두두두두.

헬기가 석양을 파고드는 것처럼 날았다.

***

“여보, 왜 전화가 안 되지?”

“사정이 있겠지. 몽골은 우리나라와 달라서 도시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연결이 안 된다잖아.”

전화기를 들여다보는 유혜숙을 강대경이 넉넉한 음성으로 달랬다.

“걱정하지 않기로 했잖아.”

“보고 싶어서 그래. 당신은 안 보고 싶어?”

“보고 싶다.”

강대경의 대꾸에 유혜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에는 이럴 때 순순히 그렇다고 답한 적이 없었다.

“마음 같으면 꽁꽁 묶어서 사무실에 가둬두고 싶다.”

기가 막힌 대꾸에 유혜숙이 웃음을 터트린 다음이었다.

“크리스마스 때 갑자기 돌아왔잖아?”

“응. 그게 왜?”

“찬이가 나를 보면서 웃는데 눈물이 왈칵 났었다.”

“이이는!”

유혜숙은 그때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그새 눈시울을 붉혔다.

“그때부터 이번에 다시 출국할 때까지 힘들어 보였잖아?”

“그래! 그래서 지금 더 걱정돼.”

“그런데도 찬이가 당신 걱정을 나보다 더하더라.”

유혜숙이 입을 삐죽였다.

“사실 나한테 몇 번 찾아오고 전화도 했었어. 우리 사무실과 당신 재단 사무실을 옮기는 것도 먼저 말했었고. 어떤 소식이든 당신이 놀라거나 걱정할까 봐 늘 내게 먼저 의논하고 했어.”

“흐으으!”

유혜숙이 애들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당신 걱정하는 아들인데 우리가 이렇게 마음 졸이고 있는 걸 알면 마음 놓고 일 못 해. 그러니까 이럴 때는 그냥 전화 연결 안 되는데 나갔구나 하고 이해하자.”

“그걸 꼭 이렇게 얘기해야 해?”

“어이구, 사모님!”

강대경이 팔을 뻗어서 유혜숙을 안아주었다.

“이번에 오면 정말 꽁꽁 묶어서 방에 가둬둘까?”

유혜숙이 울다 말고 픽 하고 웃었다.

“잘 있을 거야.”

“응.”

유혜숙이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이틀 뒤면 파병이다.

세계적인 특수팀과 합동 작전, 그것도 실전에 바로 투입되는 작전이다.

혹시라도 부족하거나 빠진 것은 없는지, 준비를 맡은 부관은 아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서 막사 앞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눈을 번들거리던 석강호는 김형정과 통화를 마치고 여유를 찾았다.

군데군데 반으로 자른 드럼통에 불을 피워서 막사 앞은 냉기와 온기가 힘겨루기하듯 번갈아 오갔다.

그 앞에서 멍하니 있는 석강호에게 차동균이 다가왔다.

“여기 있습니다.”

석강호는 차동균이 건네는 종이컵을 받았다.

“이따가 돼지 한 마리 굽기로 했습니다.”

“좋네!”

석강호가 조심스럽게 커피를 한 모금 하고는 불꽃이 올라오는 드럼통을 보았다.

“대장 생각하십니까?”

“응.”

석강호가 곧바로 답을 했다.

“악착같이 졸라서 몽골에 같이 갈 걸 그랬어.”

그리고는 아쉽다는 투로 말을 덧붙였다.

“더럽게 외로울 텐데…….”

“대장이요?”

히죽 웃은 석강호가 커피를 홀랑 털어 넣고는 상체를 비비 꼬았다.

“어우! 더럽게 뜨겁네!”

차동균은 뭔가 속은 듯한 표정이었다.

“담배 있냐?”

“저 지금은 안 피웁니다.”

“에이!”

석강호가 투덜대자 차동균이 막사 앞에 있는 대원 한 명을 불러서 담배를 받았다.

석강호가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이었다.

“대장이 외로워하기도 합니까?”

“왜? 그 양반은 안 그럴 것 같아?”

“저는 어쩐지 상상이 안 갑니다.”

차동균의 답에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알게 되면 느낄 거다. 그것 때문에 사람이 가슴에 담기는 걸 더럽게 싫어했거든.”

차동균의 의아한 눈빛을 본 석강호가 히죽 웃었다.

“너희를 대할 때 나도 좀 놀랐다. 그렇게 말 많아진 것도 그렇고, 이거저거 챙겨주는 것도 그렇고.”

“그동안의 작전을 생각하면 지금도 꿈만 같습니다.”

“내가 그렇다.”

석강호가 다 피운 담배를 드럼통을 향해 휙 던졌다.

“아프리카에 가면 잘해라.”

“알겠습니다.”

“너희가 엉뚱한 곳에서 죽어 나가면 그 양반 말릴 사람 아무도 없다. 가슴에 담긴 사람을 잃으면 대책이 없거든.”

“예.”

차동균이 답을 들은 석강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씨발! 차라리 북한에서 달렸던 것처럼 또 달리고 말지, 사는 거 더럽게 재미없네.”

“금방 만나실 거잖습니까?”

“돼지 안 굽냐?”

차동균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

저녁을 먹고 나서 경계 순서를 짰고, 이틀 뒤에 서상현이 올 때까지 교육은 김태진이 맡기로 했다.

“자넨 좀 쉬지?”

“요원들이 쉬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앞으로 두 시간은 제가 맡는 게 좋습니다.”

“나랑 가면 되지?”

질문을 던진 오광택이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두꺼운 겉옷을 들었다.

“야! 조금 있다가 입어.”

“같이 가는 거야? 아니야?”

“같이 간다.”

강찬의 답을 들은 오광택이 그제야 소파로 돌아왔다.

“무기가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중병기 말인가?”

“예. 소총만 가지고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데요.”

“이따가 내가 김 팀장, 그 친구와 통화해서 방법을 찾아보마.”

“내일쯤 국경 수비대가 다시 올 겁니다. 러시아 마피아가 포기했다는 걸 알면 모른척하기 어려울 거예요.”

“개새끼들!”

오광택이 씹는 것처럼 욕을 뱉어냈다.

“너는 적당히 놈들을 상대해. 뭐라고 해도 여기가 몽골 땅이니까 우리가 완벽하게 힘을 갖기 전까지는 좋게 대하는 게 좋아.”

“에이, 씨발!”

“자네가 이곳의 대표니까 우리끼리 있을 때는 몰라도 국경 수비대 앞에서는 좀 참아야 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오광택은 김태진 앞에서 욕을 한 것이 미안했는지 순순히 답을 했다.

“넌 언제 가냐?”

“2진이 합류하는 거 보고.”

“부럽다.”

“아프리카 가는 거야. 여기보다 더 살벌할 거다.”

“어? 서울에 가는 거 아니었어?”

강찬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럴 거면 그냥 여기 있었을 거다.”

“하여간 너도 참!”

오광택이 안 됐다는 투로 투덜거린 다음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강찬을 들여다보았다.

“왜?”

“너 혹시 흑인 여자 좋아하는 거 아니냐?”

“에이, 확!”

모처럼 웃을 수 있었다.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강찬과 오광택은 두꺼운 외투와 바지를 덧입었다.

잠시 후에 두 사람은 경계 막사로 향했고, 김태진은 자신이 쓰는 막사로 돌아갔다.

휘이이이잉!

지겹고 지겨운 바람이 강찬과 오광택이 반가운 것처럼 달려들었다.

요원과 주철범을 내려보내고 둘이서 황야를 향해 섰다.

황야라 그런가?

눈앞에 떠오른 달에도 붉은색이 섞여 있었다.

“너는 마음 먹으면 편하게 살잖아? 나처럼 아무 때나 잡혀갈 것도 아니고, 뭐하러 이 고생이냐?”

오광택은 질문을 던지면서도 강찬이 가르쳐 준 대로 시선을 황야에 두고 있었다.

왜 이러냐고?

“그냥 같이 싸우는 게 좋아서 그런가 보다.”

강찬은 솔직하게 답을 했다.

닭살 돋을 것 같은 이유이긴 하지만 가슴에 담기는 사람을 외면하지 못해서다. 문제는 아프리카에서는 그게 한두 명이었는데 한국에 다시 태어나고 나서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비웃을 줄 알았던 오광택은 잠시 말이 없었다.

“씨발! 다 그런 사람들만 모인 거네.”

그리고는 푸념처럼 말을 뱉어냈다.

“엿같이 살았지. 공부는 원래 못하는 대가리고, 성격 이러니까 지는 건 죽어도 못하겠고. 그런데 따르는 동생 놈들이 생기니까 그게 그렇게 좋더라. 지금은 돈에 팔려가는 세상이지만, 나 꼬마 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나았다.”

말을 마친 오광택이 힐끔 강찬을 보았다.

“다른 소리 하지 마, 새끼야! 깡패 때려치우려고 여기 와 있는 거니까!”

강찬이 픽 하고 웃는 것을 본 오광택이 핏빛 달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강남의 숙소에서 꼬마 생활 할 때였다. 원룸에 처박혀서 형님들이 부를 때까지 밥 처먹고, 온종일 몸 만들 때.”

오광택은 달을 향해 말을 건네는 것처럼 보였다.

“몸살이 나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한남동에 사는 형님이 부르는 거야. 주머니에 있는 돈 탈탈 털어서 택시 타고 달려갔더니 욕조에 가득한 빨래 좀 하라고 시키더라. 전부 손빨래해야 하는 거라고.”

이 새끼가 술을 처먹었나?

강찬이 시선을 준 앞에서 오광택은 달빛에 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그걸 다 빠는 데 네 시간 걸리더라. 찬물로 해야 되는 것들도 있어서 죽는 줄 알았다. 다했다고 했더니 수고했다고 가서 쉬라는 거야. 니미! 차비 한 푼 안 주고. 한남대교를 걸어서 넘어오는데 눈이 하얗게 달려들더라고! 그때 맞았던 바람이 꼭 지금 이 바람 같다.”

꽁꽁 언 얼굴을 돌린 오광택이 강찬을 보았다.

“그땐 깡패짓을 하려고 그랬다. 지금은?”

질문을 던진 오광택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하는 거다. 너하고 같이! 그러니까 아프리카 같은 데서 벌렁 뒈져 나자빠지지 말고 빨리 끝내고 돌아와.”

휘이이이잉!

오광택이 뱉은 말을 바람이 훌렁 삼키고 달려갔다.

“씨발놈아. 나도 너랑 함께 총질 한 번은 해 봐야 할 거 아냐?”

강찬은 웃고 말았다.

하다 하다 이젠 깡패 새끼가 다 마음에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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