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42화 (242/520)

0242 / 0419 ----------------------------------------------

13-5 한 번에 알 수는 없잖아.

막사를 나서자 흙먼지를 잔뜩 품은 바람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김태진은 바람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비틀다가 옆에서 걷고 있던 강찬을 보았다.

번들거리는 눈빛,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 판단, 그리고 뛰어난 전투 능력까지.

가장 먼저 든든하다는 생각을 했고, 다음은 강찬의 눈빛이 번들거리는 만큼 처절한 전투가 있으리라는 긴장감을 느꼈다.

“나는 이걸 전해주고 가마.”

“그러세요.”

김태진은 위성 영상 수신기를 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오광택에게 전달해서 다가오는 이들이 있는지를 지켜보라고 할 참이었다.

강찬은 곧바로 강철규가 버티고 있는 막사를 향해 움직였다.

두 발의 총성을 들었다.

길게 울리는 소리로 보아 강철규가 발사한 걸 거다.

휘이이이잉! 휘이잉!

철계단을 올라가자 강철규와 요원들의 시선이 달려들었는데, 강찬은 먼저 강철규를 보았다.

저격수를 비롯한 적들을 제대로 묶었으니 기대했던 대로 잘 지켜준 것 맞다.

그러나 강찬은 적을 향해 시선을 준 채로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본 강철규의 얼굴 때문이었다.

눈가의 주름, 핼쑥한 광대와 거죽이 늘어진 볼, 그리고 입가와 턱선을 따라 붙어있는 고통스러운 삶의 흔적이 자꾸만 떠올랐다.

병신같이!

자식을 이렇게 만들고, 마누라를 그렇게 했으면 혼자라도 좀 떵떵거리고 잘 살던가.

멍청이! 바보! 미련퉁이!

강찬이 앞을 보고 있을 때였다.

털썩!

기다렸던 것처럼 강철규가 무릎을 꿇었다.

“끄으으!”

앞으로 숙인 강철규의 머리와 소총을 붙잡은 오른쪽 팔이 무섭게 떨었다.

요원들이 빠르게 강찬과 강철규를 번갈아 보았지만, 함부로 몸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적들도 지금 이 모습을 분명하게 보았을 거다.

그래서 강찬은 강철규를 살피고 다시 시선을 들었다.

도대체 몸이 이 정도가 될 때까지 그동안 뭘 하고 지낸 건지!

동정보다는 짜증이 먼저 솟구쳤다.

“제발……!”

뭘 원하는지 모른다.

강찬은 힐끔 시선만 주었다.

안쓰럽고, 짜증 나지만, 적을 지켜보는 게 우선이다.

“하루만! 하루만……!”

강철규의 간절한 바람이 들린 직후에 그의 코에서 피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철커덕! 타아아앙!

어디서 대가리를 들어?

적 저격수가 상체를 들다가 강찬이 쏜 총에 놀라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신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강철규는 계속해서 몸을 떨었다.

전에 저런 모습을 본 기억은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이렇게 몸을 떨지도, 그래서 코피를 쏟은 적도 없었다.

처음으로 불쌍하다는 생각, 그리고 애처롭다는 동정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몰핀 줘?”

“끄으으!”

강철규가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지랄! 그럼 그냥 아프던가!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고, 김태진이 막사 위로 올라왔다가 놀란 눈으로 강찬과 강철규를 보았다.

“저격수가 겨누고 있습니다. 자세 낮추고 제 뒤로 움직이세요.”

강찬의 뒤로는 까딱하는 순간에 막사 아래로 떨어질 정도의 작은 공간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김태진은 빠르게 움직여 강철규의 어깨를 잡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선배님!”

“괜찮아! 괜찮아…….”

강철규는 기다렸던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붉게 충혈된 눈 아래로 입술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흡!”

강철규가 소매로 코 아래를 닦자, 볼을 가로질러 핏자국이 이어졌다.

“내려가세요. 진통제나 몰핀이 있습니다.”

“안 돼.”

강철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잠깐 내려가서 쉬시기라도 하지요.”

강철규가 시선을 드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요원들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대표님과 내려가지?”

강찬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강철규는 군소리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어쭙잖은 소리 지껄이며 버텨봐야 전혀 도움되지 않는 것을 잘 아는 탓이다. 게다가 강찬은 강철규도 한 수 접어야 할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

덜컹. 덜컹.

강철규가 거친 동작으로 계단을 내려갔고, 그 뒤를 김태진이 따랐다.

두 사람은 우선 김태진의 막사로 움직였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서 강철규는 소파에 앉았고, 김태진은 주전자의 물을 레인지에 올렸다.

“정말 약을 안 드셔도 되겠습니까?”

“약을 먹으면 환각이 보여. 내가 이곳에서 엉뚱하게 방아쇠를 당기면 어쩌려고 그래?”

“그동안 계속 이런 식이었습니까?”

“아니.”

강철규는 화장지를 들어서 코를 막으며 답을 했다.

“비행기를 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날씨 탓인지 갑자기 심해졌어. 통증이 오는 주기도 그렇고, 코피도 그렇고.”

적당하게 물이 데워지자 김태진은 봉지 커피 두 잔을 타고 남은 물을 종이컵에 부어서 탁자로 움직였다.

“우선 이걸 좀 드십시오.”

김태진은 커피를 내밀고 화장지를 한 움큼 뜯어서 물에 적셨다.

“이걸로 닦죠.”

강철규는 김태진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김태진이 닦을 수 있도록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내밀기까지 했다.

“담배 있나?”

“안쪽에 있을 겁니다.”

“하나만 가져다주겠나?”

“알겠습니다.”

김태진이 안으로 들어가서 요원이 놔둔 담배를 가져오는 동안 강철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여기 있습니다.”

김태진이 담배를 권해주고 라이터를 켜주었다.

찰칵.

“후우.”

연기를 내뿜은 강철규는 손에 들린 담배를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밤에 기습이 있을 것 같다.”

“강찬도 같은 말을 하더군요.”

“짐작하는 것 같더군.”

강철규는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후우. 부탁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오늘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자네가 살아 있다면 아들의 유품을 찾아서 아내 곁에 놓아다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강철규가 입술만 움직여 미소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뜻은 없어. 그저 적을 맞을 때 조금이나마 안심하고 싶어서 그렇지. 보시다시피 몸 상태도 이렇고.”

김태진은 나직한 한숨을 먼저 뱉었다.

“제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찬이 저 친구가 알고 있다니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구요.”

“그래. 부탁하자.”

강철규는 담배를 종이컵에 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더 쉬시지요.”

“충분히 쉬었어.”

김태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철규를 따랐다. 상황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아직도 강철규의 눈빛을 받으면 다른 말을 하기 어려웠다.

거친 바람과 흙먼지를 뚫고 두 사람이 다시 막사에 올랐을 때 강찬은 이전과 변함없는 자세로 있었다.

강철규가 소총을 오른팔에 걸치고 강찬의 곁에 선 직후였다.

“대표님. 지금부터 밀어내기로 30분씩 쉬게 해주세요. 돌아가면서 밥도 먹어야 하구요.”

“막사별로 고작 두 명이야. 여기서 더 뺄 인원이 있나?”

“우선 이곳의 요원 두 명부터 쉬게 하면 됩니다.”

김태진이 강철규를 보았다가 “알았다.”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휘잉! 휘이이이잉!

소총을 겨누고 있던 요원과 미스트랄을 맡았던 요원이 김태진의 지시에 따라 뒤쪽으로 몸을 뺐다.

아침을 먹은 직후부터 꽁꽁 얼었던 몸이다. 그래서 30분만 해도 감사하고 고마울 일이었다.

“대표님도 요원들과 함께 쉬시고, 영감이 교대로 쉴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지.”

지금은 사양할 틈이나 여유가 없음을 김태진은 분명하게 알았다. 무엇보다 강찬과 강철규, 두 괴물이 밤에 기습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 마당이다.

이럴 바에는 쓸데없이 시간을 끌기보다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쉴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현명한 일이었다.

해가 막사의 바로 위에 다가온 시간이었다.

뿌연 흙먼지, 강렬한 햇빛, 미친년 바람, 그리고 뼈마디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 당장 강찬에게 다가오고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밤에 적들의 기습이 있을 거요.”

단 둘만 막사 위에 남은 상황에서 강철규의 나직한 음성이 건너왔다.

“짐작하고 있다고 들었소.”

강찬이 힐끔 준 시선 앞에서 강철규는 단단한 얼굴로 적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아들의 유품을 찾아 아내 곁에 놓아주는 것 말고 바라는 것 없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강철규가 고개를 돌려 강찬을 보았다.

“나를 못마땅해 하는 거 아니까 마음 편히 부탁합시다. 비행기 탓인지, 차가워진 날씨 탓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소. 뒤통수에 박혀 있는 파편 때문에 코피를 흘리면 응급상태란 말도 있었고.”

강찬은 시선을 마주치는 와중에도 빠트리지 않고 적을 살폈다.

“밤에 내가 나가겠소.”

강찬이 노려보듯 던진 시선을 강철규는 피하지 않았다.

“어떤 놈들이 오든 내가 상대하겠소. 그러니 만약 내가 오늘 밤을 막으면 아들의 유품이나 유골을 찾아 김태진에게 전해 주겠소?”

“혼자서 기습 인원을 다 해결하겠다는 거야?”

“그렇소.”

강찬이 피식 웃는 것을 본 강철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실패한다고 해도 어차피 곧 쓰러질 늙은이 하나 없어지는 거요. 그리 큰 손해는 아니잖소?”

“김 대표님도 그 계획을 아나?”

“그 친구가 알면 가만 안 있을 거요. 그러니 지금 하는 부탁은 대장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합시다.”

강철규가 말을 마쳤을 때였다.

그의 코에서 다시 피가 쭉 흘러나왔다.

강철규는 코피를 닦은 왼손을 들여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보시다시피 남은 시간이 별로 없소. 그러니 마지막으로 기회를 한 번만 주시오.”

강철규의 눈빛이 강찬만큼이나 번들거렸다.

“아들의 유품을 찾는 일만 도와주면 되는 거요. 비무장왕이란 이름을 걸고 밤에 기습하는 인원을 해결할 거고, 다 막지 못하더라도 분명하게 사기는 꺾어 놓겠소.”

“내려가.”

강철규는 의아한 눈빛이었다.

“가서 저녁까지 쉬어. 그래야 나가든가 하지.”

“부탁을 들어주는 거요?”

“아니면? 내가 영감 어디가 예뻐서 쉬라고 하겠어?”

“고맙소.”

강찬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본 강철규가 인사를 전하고 막사를 내려갔다.

휘이이잉! 휘이이이잉!

바람이 삽시간에 솟구쳐서 흙먼지를 사방에 뿌려놓았다.

강찬은 소총의 방아쇠 고리에 검지를 댄 채로 앞쪽에 시선을 두었다.

저 인간도 행복한 시절이 있었을까?

대원들을 악착같이 챙기다가 저 꼴이 되었다는데 그때는 행복했었나?

강철규의 주름진 얼굴과 코에서 떨어지던 피가 자꾸만 떠올랐다.

오늘 밤 혼자 보내달라고?

염병할! 사람을 뭐로 아는 거야?

강찬은 문득 석강호가 더럽게 보고 싶었다.

개새끼!

이럴 때 함께 있었으면 엄청 힘이 됐을 텐데.

강찬이 주변을 느긋하게 훑어볼 때였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김태진이 머리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왜 이렇게 바쁘세요?”

“자네 혼자 있는 게 마음에 걸려서 왔다.”

“그러지 마시고 영감 좀 챙겨주세요. 밤에 이곳을 맡길 사람이 영감밖에 없으니까 점심 먹고 밤까지 푹 쉬는 게 좋아요.”

김태진이 의아한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밤에 기습이 있을 거라면서?”

“조를 나눠야지요. 방어조가 저놈들을 맡고, 나머지 절반은 나가서 다가오는 적을 맞을 생각입니다. 위성 영상 수신기가 있으니까 어디쯤 오는지 알 수 있잖아요.”

“정말 도움을 청할 생각이 없는 건가?”

“유라시아 철도의 끝을 잡은 겁니다. 여기에서 손을 벌리면 두고두고 멱살을 잡힙니다. 마피아 정도는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지요.”

김태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사 아래로 내려갔다.

***

[“완전히 고립된 상황입니다. 몽골 국경수비대도 발을 뺏습니다.”]

라노크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로 위성 사진과 지도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정면 벽에 걸린 TV에 몽골 기지의 영상이 떠 있었다.

“무슈 강은?”

[“독자적으로 해결할 계획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한국에도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라노크가 영상을 힐끔 보았을 때였다.

[“한국에서 출발한 철도가 중국을 관통할지, 아니면 러시아를 관통할지에 따라서 두 나라의 입지가 전혀 달라집니다. 지금은 양국이 무슈 강의 요청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바실리가 죽을 맛이겠군. 한 번쯤 거절한 후에 손을 내밀려고 했는데 몽골 국경수비대가 이동 기지국을 훔쳐가 버렸으니.”

[“그 점은 저희도 짐작하지 못했었습니다. 바실리가 위성 전화를 이용할 가능성은 남았습니다.”]

라노크는 야릇하게 웃으며 책상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상황을 바실리가 만들었다고 실토하는 꼴이 되지.”

묘한 미소를 지은 라노크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의 반응은?”

[“특수팀의 파병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는 상태입니다.”]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그 외에 특이사항으로 미국의 제거 대상이었던 강철규란 인물이 합류해 있습니다. 현재 조사 중인데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새로운 보고가 이어졌다.

[“강철규의 아들이 우리 외인부대 제 13연대 특수팀에서 사망한 강찬입니다.”]

라노크가 빠르게 인상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그 기록을 누구까지 알고 있지?”

[“부총국장과 관련한 정보는 제가 먼저 확인합니다.”]

“그렇다면 그 기록은 파기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의 특수팀이 대기 중에 있습니다.”]

“알았다. 새로운 사항이 생기면 바로 연락할 수 있도록. 그리고 신경을 늦추지 마라.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바실리와 내가 당황할 만큼이라면 전혀 뜻밖의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라노크가 앞쪽의 TV에 시선을 주었다. 잠시 후, 라노크는 책상에 놓인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다.

“라파엘. 러시아로 가겠다. 비행편을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대사님.”]

답을 들은 라노크는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고 TV에 시선을 주었다.

***

두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동안 30분 간격으로 요원들이 쉬었는데 강찬과 네 명은 주먹밥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자네는 안 쉬나?”

“젊잖아요.”

주방에서 가져온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강찬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분명 펄펄 끓여왔을 텐데 고작 막사에 올라오는 사이 미지근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러지 말고 강 선배와 교대해서 잠시라도 쉬지.”

“코피 흘리는 영감에게 맡겼다가 아까처럼 주저앉으면 바로 끝입니다.”

“요원들도 있잖아?”

“저기까지 사격할 만한 요원은 없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저격수에게 머리를 뚫립니다.”

김태진은 나직하게 신음을 뱉으며 강찬이 건네주는 컵을 받았다.

“영감은 좀 괜찮아졌습니까?”

“야간에 움직이려면 필요하다고 잠이 들었어. 교대할 시간에 깨워달라고 하더군.”

강찬을 힐끔 본 김태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 해도 되나?”

이 양반들이 짜고 교대로 온 건 아닐 거고?

강찬은 말없이 김태진을 보았다.

“저 선배가 살려낸 대원들의 숫자가 얼마인지 자넨 상상도 못 할 거야. 마지막에도 그랬지. 죽을 것을 빤히 알면서 뛰어갔으니까.”

김태진이 아픈 표정으로 웃었다. 가슴이 말이다.

“선배는 이곳에서 마지막을 맞을 생각인 것 같다. 낮에 내게 부탁했던 것도 그렇고. 저 양반 성격에 아무래도 밤에 혼자라도 뛰어 나갈 것 같은데. 그래서 말인데 야간 기습조에 선배와 나를 넣어줄 수 있겠나? ”

김태진이 강찬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저분 덕분에 몇 번이나 목숨을 구했으면서도 지금껏 그걸 잊고 있었지. 죽을 걸 알면서 대원들을 버리지 못해 달려나갔던 분을 마지막까지 혼자 뛰어가게 둘 수는 없지 않나?”

김태진의 눈빛이 완벽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비무장왕이 사라지고 전 실장님, 그리고 내가 그 뒤를 이었지. 하지만 세월이 바뀌어서 그런 거지, 전처럼 스페츠나츠와 화이트울프가 비무장지대에서 훈련하던 때라면 나는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을 거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대표님은 남겨진 가족이나 직원분들은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강 선배도 똑같은 상황에서 다섯을 구하러 달려나갔었지. 오늘 밤 기습은 강 선배와 내가 맡겠다. 대신 자네가 강 선배 아들의 유품을 챙겨서 사모님 곁에 놓아다오. 그럼 난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강 선배를 따르겠다.”

휘이이이잉! 휘이이이이이이잉!

바람이 김태진과 강찬의 사이를 스쳐서 적을 향해 달려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