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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휘이이잉! 휘이이이잉!
적들과의 거리는 대략 500m.
막사와 적들 사이의 황야에서 회오리가 흙먼지를 움켜쥐고 치솟았다가 사라졌다.
“사격하지 마!”
강철규가 지른 고함이 옆에 있는 막사까지 고스란히 들렸다.
“고개 숙여!”
적들이 트럭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강철규는 최대한 막사의 뒤편에 서서 사격을 하지 못하게 고함을 지른다.
피식.
강철규가 적들을 노려보며 웃었다.
꼬드기는 거다.
이쪽에서 누군가 겨냥하려고 머리를 들 때 숨어있는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긴다.
그렇다면 날 잡아잡슈 하듯이 서 있는 강철규는?
그는 일부러 막사의 뒤편 끝에 서 있었다.
적의 저격수가 환장할 상황이다.
상체를 들어 저격용 총을 위로 올리면 강철규의 머리를 단박에 날릴 거리다. 하지만 강철규의 사격 솜씨를 알고 있는 저격수가 그런 무모한 짓을 할 리는 없었다. 더욱이 적의 저격수가 스페츠나츠 출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길리슈트처럼 갈기갈기 찢긴 황토색 천으로 온몸을 감싼 저격수를 한눈에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저놈의 길리슈트가 오히려 스페츠나츠 출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거다.
비무장왕.
지금은 그런 전설이 나오기 어렵다.
무엇보다 비무장지대에서 근접전이 사라졌고, 다음으로 초소를 직접 공격하는 일조차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강철규는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전성기에는 비무장지대에 러시아의 스페츠나츠와 중국의 화이트 울프가 나타난 적이 많았다. 놈들의 특수훈련에 비무장지대의 아군 목을 가르는 과정이 실제로 있었다.
피식.
강철규는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웃었다.
제발 그런 놈들의 모가지를 따지 말라고 부탁하던 상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 아군은요? 거기 있는 불쌍한 애들 모가지가 날아가는 걸 지켜보라는 겁니까?”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그래? 그냥 놔두라잖아! 거기에 가지 말라고! 오늘은 절대 막사를 벗어나지 마. 알았어? 이러다가 네가 죽어! 아니라도 다친다고! 러시아와 중국이 지랄하면 나도 너를 지켜줄 수가 없어!”
책상을 때려가며 악을 쓰던 상관의 얼굴이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도 강철규는 지금처럼 웃었다.
비무장 지대에 들어가는 수색대원들은 철책선을 지키는 대원들을 향해 “후방에서 근무하니까 맘 편해서 좋겠다!”라고 외치곤 했다.
지뢰 표시가 있는 지역은 우리와 북쪽 놈들 모두 이용하는 길을 따로 확보한다. 지랄 같은 건 밤에 몰래 움직여서 그 길에 지뢰를 묻어 놓는 거다.
강철규는 그럴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곤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지뢰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가 빠진 채로 수색에 나섰던 대원 중에는 발목이, 혹은 무릎까지 날아간 대원들이 나왔다. 그래서 강철규는 쉴 틈이 없었다.
스페츠나츠와 화이트 울프가 잠입할 때마다 강철규의 심장은 세차게 두근거렸다. 그런 날 작전에 나가지 못하면 아군 두세 명은 목이 갈라지거나, 아니면 머리를 잃은 채 몸뚱이만 남기고 죽는다.
그걸 알면서 막사에 남아 있으라고?
스페츠나츠는 아군의 귀와 귀를 관통하는 송곳을 꽂는다. 훈련을 완수했다는 표식이다. 화이트 울프는 반드시 목을 끊어서 북한군에 넘기고 갔다.
죽은 대원들을 보면 누가 죽였는지 확실히 알게 되는 거다.
그뿐이 아니다.
북한의 특종병과 공강병은 심장에 칼을 박고, 목이 뒤로 완전히 젖혀질 만큼 울대를 갈라버린다.
강철규가 하루를 쉬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목이 갈라지거나, 심장을 찔렸거나, 혹은 귀를 뚫리고 머리가 없어진 시체가 나왔다.
강철규는 모른척할 수가 없었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놈들이 바싹 긴장해 있다가 강철규를 보고서 기뻐하는 눈빛을 말이다.
직업 군인과 일반병이 섞인 수색대다.
“총기 확인!”
철커덕!
노리쇠를 당긴 대원들이 강철규를 보고 난 다음,
“암구어!”
“……, ……, 이상입니다!”
들리지도 않는 소리로 암구어를 확인했다.
그렇게 세 개의 철책선을 넘어가면 나올 때까지 입을 여는 일은 없다. 다시 철책선 밖으로 나왔을 때, 강철규는 대원들과 함께 담배를 나눠 피웠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다가오는 놈들을 두고 어떻게 막사에 편하게 있을 수 있겠나?
그때 삐약 거리며 담배를 가져왔던 병아리 소위 중에 김태진이 있었다.
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면 상관은 그날의 일을 대강 짐작했던 모양이었다.
“제발 철규야! 오늘 나가면 너 정말 죽어!”
그날, 이름을 부르면서 매달리던 상관의 음성 역시 어제 들었던 것처럼 또렷했다.
그래도 강철규는 심장이 전하는 경고대로 막사를 튀어 나갔고, 스페츠나츠와 화이트 울프의 목을 갈랐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막사로 돌아왔을 때 상관은 소리 없이, 눈물 없이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그리고 턱없이 사과했다.
그날 밤, 비상이 걸렸다.
강철규가 상황실로 뛰어갔을 때, 아군 초소가 기습당했고, 대원 다섯이 끌려갔다는 내용이었다.
비상이 걸렸는데, 아군이 끌려갔다는데, 출동 명령은 없었다.
“뭐하는 겁니까?”
“비상대기 명령만 내렸어! 강철규, 이리와 봐.”
상관은 강철규의 팔을 끌고 상황실 바깥으로 나섰다.
그리고 담배를 건네주었다.
철컹. 치이익!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난 다음이었다.
“이거, 널 잡으려는 거 같다. 러시아와 중국이 출동하지 못하게 압력을 넣고 널 도발하는 거야. 그러니 오늘은 나가지 마라. 이런 말이 내 입에서 나간 게 알려지면 내 모가지도 날아가겠지만 난 널 버릴 수 없다.”
상관은 한 모금 마신 담배조차 잊은 얼굴로 강철규에게 매달렸다.
“널 잡으려고 만든 미끼다. 저 새끼들이 언제 포로를 끌고 간 적이 있었냐? 틀림없이 엄청난 병력이 널 노리고 있는 거다. 봐라, 출동 명령이 없잖아? 널 알고 있어서 그런 거야. 그러니 오늘만 참자! 제발 부탁이다.”
강철규는 그날도, 그 순간도 상관을 향해 웃었다.
“야, 이 새끼야!”
분하고, 억울한 군인의 눈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상관의 눈이 꼭 그랬다.
“초소에 있는 애들은 전부 국가에 의무를 다하기 위해 온 놈들입니다. 힘없고, 빽 없어서 군대에 온 놈들은 모가지가 잘리게 생겼는데도 구하지 말라는 겁니까?”
“너는? 이제 갓 태어난 네 아들은? 제수씨는?”
“군인의 가족입니다.”
상관을 향해 마지막으로 주었던 것도 미소였다.
휘이이이이잉! 휘이이잉!
바람이 거세게 볼을 때리더니 다시 서너 개의 작은 회오리를 만들며 멀어졌다.
지옥이었다.
그 밤에 목에 칼을 박아 준 적의 숫자는 세지도 못한다.
스페츠나츠, 화이트 울프, 특종병, 공강병.
빗발처럼 소총이 날아왔고, 수류탄, 심지어 크레이 모아까지 터졌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다섯 놈의 아군을 끌고 나올 때 수류탄이 날아왔고, 강철규는 대원들을 감싸 안았다.
콰으으응!
뒤통수, 목, 등짝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달려! 이 새끼들아!”
피를 온통 뒤집어쓰고 악귀처럼 강철규는 대검을 휘둘렀고, 다섯과 함께 귀대했다.
철책을 넘어 완전 무장한 부대원들에게 다섯을 인계한 후, 강철규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를 기다린 것은 부대원만이 아니었다.
헌병대가 수갑을 디밀었다.
철커덕!
상관은 권총을 뽑았고, 대원들은 소총을 겨눴다.
“오늘은 돌아가라. 만약 여기서 한 발만 움직이면 헌병이고 지랄이고 모조리 죽인다. 가라. 내일, 내일 내 손으로 넘기마.”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막사에 누웠을 때였다.
상관은 담배를 건네주며 웃고 있었다.
“이런 환자한테 담배를 줍니까?”
“안 죽을 거잖아.”
철컹. 치이익!
“후우!”
상관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나 옷 벗는다.”
강철규는 질문도 하지 못했다.
명령을 무시하고 나갔고, 러시아와 중국의 콧잔등을 때리고 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당시에 대한민국은 그 정도로 힘이 없었다.
도끼에 찍혀 죽어도, 비무장 지대에서 목이 잘려 죽어도 그저 죽은 놈이 재수 없는 시절이었다.
“네가 구해온 놈들이 엉뚱한 진술서에 사인했다.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자.”
상관은 아프게 웃었다.
“난 옷 벗고, 너는 이병 제대다.”
강철규는 그때 상관의 손가락에 끼어있는 담배를 보았다. 마치 강철규 자신처럼 보였다. 덧없이 타들어 가는 것이 말이다.
“병원비는 내가 마련하마.”
“저도 돈 있습니다.”
“시끄러워, 이 새끼야! 생각해 주는 척할 거였으면 어젯밤에 그러지 말았어야지.”
상관이 “고생했다.” 하는 말을 들으며 강철규는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국립의료원이었고, 옷을 벗는다던 상관은 구속되었다.
수술은 받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지옥이 열렸다.
찌이이이잉!
시도 때도 없이 덮치는 통증, 그리고 끔찍한 환각이 달려들었다.
분명 집이었다. 그런데도 한순간에 스페츠나츠와 화이트 울프, 그리고 특종병이 달려들었다.
살아야 했다.
그래서 미친 듯이 버둥대고 나면 아내와 아들이 쓰러져 있었다. 피투성이의 아내, 그리고 눈물을 뚝뚝 떨구던 어린 아들을 보면서도 죄의식을 느낄 틈이 없었다. 심지어 아들은 아버지가 군인이었다는 것도 몰랐는데 말이다.
고통이 멈추기를,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랐다.
미안하다, 여보. 미안하다, 아들아.
강철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이 멀쩡했던 날,
강철규는 아내가 없는 틈을 타서 부엌칼을 들었다.
더 이상은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끼이익.
그 순간에 문을 연 아내는 강철규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도 덤덤한 눈빛이었다.
“사세요.”
그리고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삶에 지친 손이 조용하게 건너와 강철규가 들고 있던 부엌칼을 잡아갔다.
“술에 의지하고, 약에 의지해서라도 사세요. 버틸 때까지 버텨볼게요. 난 당신이 자랑스러웠어요.”
왜 하필이면 그때 그 모습이 떠올랐을까?
힘겹던 훈련 틈에 찾아와 환하게 웃어주던 아내의 눈과 하얀 이.
그래놓고 마지막 모습은 목을 매단 것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함정에 빠진 아내가 마지막으로 강철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거다.
이제는 정신을 차려달라고.
아들을 잃었다고.
그것도 머나먼 타국에서, 하필이면 군인이 되어서.
그때부터 약과 술을 끊었다.
매일 밤 달려드는 환각에 목을 내밀었다.
‘죽여라! 제발 죽여다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환각이 사라졌고, 전보다 더 끔찍한 고통만 남았다.
“납입니다. 녹이 슬기 시작했을 텐데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용합니다.”
그러면서도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위험한 부위입니다.”
강철규는 날카롭게 적들을 훑어보았다.
강찬이 맡긴 일이다.
그의 웃음, 그의 눈빛, 어쩐지 아들이 살아있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변명이라도 해보라고 했을 때, 미안하다고 답을 할 때, 아들과 대화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스페츠나츠? 러시아 마피아?
개새끼들.
너희 같은 병아리 말고 너희의 상관들은 한국말 ‘비무장왕’을 전부 기억할 거다.
감히 네놈들이 내 앞에서 강찬을 노려?
강철규는 날카롭게 앞을 보며 씨익 웃었다.
강찬은 자신이 어쩌지 못할 정도의 실력을 지녔다.
그리고 그런 강찬을 죽일 실력이 있다고 해도 강철규는 양보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가 아들의 유골이나 유품을 찾아줄 가장 확실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
막사의 소파에 앉은 김태진이 고개를 들어 맞은 편에 앉은 강찬을 보았다. 위성 영상 수신기에는 주변에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이 정도면 후속 병력이 없다고 봐야 하지 않나?”
“밤에 들이닥친다는 뜻입니다.”
김태진은 확신이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시간을 끌면서 우리를 지치게 한 다음, 밤에 다른 놈들이 기습하겠지요.”
“확실한가?”
“밤이 되면 답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도움을 청해야지!”
강찬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연락하면 무조건 국경 수비대가 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마피아와 손을 잡으면 우리는 그대로 전멸입니다.”
김태진은 설명을 요구하는 듯 놀란 눈을 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새벽에 도망간 것의 의미를 짐작하면 간단합니다. 바실리가 그 새끼들을 이용해서 합의하라고 했던 것도 그렇고요. 국경 수비대가 다가오면 우리는 어쨌든 먼저 총을 쏘지 못합니다. 그런데 놈들이 기지 안에서 지랄하면 당해낼 방법이 없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눈이 있는데도 그럴까?”
“마피아가 했다고 우기겠죠. 이곳에 돈 나가는 것만 전부 가져가면 국경 수비대는 그걸로 만족할 겁니다.”
“후우! 난 지금껏 너무 순진하게 살았군.”
“다른 곳의 전투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아프리카인가?”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언젠가 화병으로 죽을 거야. 자네 정체가 궁금해서.”
“오늘을 넘기고 봐야 가능한 일입니다.”
“흐흐흐.”
어이가 없는 웃음을 웃은 김태진이 강찬을 보았다.
“방법은 있나?”
김태진은 답을 듣지 못했다. 대신 무섭게 번들거리는 강찬의 눈만 보았다.
**
‘반드시 너를 찾아서 엄마 곁에 놓아주마.’
강철규는 적들을 노려보며 가슴 속으로 다짐했다.
지금은 강찬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도 아들에게 미안했다.
좋았다.
강찬이 막 대할 때마다 아들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아서, 아들이 저런 남자를 알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아들의 죽음을 자기 일처럼 분노해 준다는 것이.
강철규는 쓸데없는 감상을 털어내기 위해 적들을 좀 더 날카롭게 보았다.
스페츠나츠의 전통적인 방법이다.
선발대가 와서 정신을 사납게 한다. 그리고 온종일 신경을 곤두서게 한 다음, 다른 놈들이 뒤쪽으로 돌아서 밤에 기습하는 거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아직 이런 고전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건지.
강철규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황야의 한가운데 뚝 떨어진 것처럼 기지가 있다.
‘오늘 밤이다.’
적은 반드시 야간에 기습할 거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 줘도 모른다.
강찬 역시 본능으로 기습을 알아차린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위성 수신 영상을 확인하려는 걸 거다.
오늘 밤이 승부다.
이렇게 되면 반드시, 그리고 가능한 한 잔인하게 스페츠나츠를 해치운다. 그러면 사기가 꺾인 적은 반드시 협상안을 내놓거나 포기한다.
강찬이, 그리고 김태진이 아들의 유골이나 유품을 찾을 때까지 악착같이 싸운다.
죽게 된다 하더라도 김태진이라면 아내의 곁에 아들의 유품 정도는 묻어줄 거다.
구속되었던 상관은 그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너무 서운해하지 마십시오.’
아직 살아나 있을까?
담배를 너무 피워서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밤의 일로 강찬이 아들의 유품을 찾는 일을 돕겠다는 마음만 굳히면 된다.
불명예제대 이후에 진짜 군인을 처음 봤다.
저런 남자가 전에 있었더라면……?
강철규는 고개를 저었다.
상관도 지켜주지 못했는데 아마 강찬도 비슷한 모습으로 군에서 쫓겨났을 거다.
강철규는 문득 아들이 보고 싶었다.
욕을 해도 좋고, 사람들 많은 앞에서 따귀를 때려도 좋으니 아들을 단 한 번만 볼 수 있으면 싶었다.
철컥! 타아아앙!
한순간, 강철규는 번개처럼 소총을 들어서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를 들던 상대 저격수가 대가리를 급하게 처박았고, 아군은 놀란 시선으로 강철규를 보았다.
피식.
이왕 대가리 처박았으니까 밤이 될 때까지 그러고 있어라. 적어도 강찬이 작전을 세울 때까지는.
강철규는 흘깃 뒤를 보았다.
강찬이라면 총소리의 의미를 알아줄 것만 같았다.
이쪽의 신경을 긁고 싶은 거냐?
철컥! 타아아아앙!
차량 앞에서 설치던 적 한 놈이 흐물거리며 고꾸라졌다. 약을 올리려고 나섰던 모양인데 그거야 제 놈의 선택이니까.
두근두근. 두근두근.
강철규는 심장이 주는 경고를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여길 벗어나야 한다고 뛰고 있었다.
상관없다.
오늘 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강찬과 김태진만은 지켜 낸다. 그래서 강찬과 김태진이 대신 아들의 유품을 아내의 곁에 묻어줄 수 있게 할 거다.
이 밤에 아들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것도 상관없다.
몽골의 황야와 거친 바람 속의 전장이라면…….
피식.
피와 눈물로 채워진 삶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