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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내가 선택한 것 맞다.
강찬은 밤 10시에서 11시의 경계를 섰다.
원래는 오광택과 그의 동생들을 경계 임무에서 제외하기로 했는데 하루빨리 배우겠다는 오광택의 주장에 따라 요원과 오광택 쪽 식구들이 2인 1조로 경계를 섰다.
강찬을 따라나선 건 오광택이었다.
휘이이잉!
바람이 쓱 지나칠 때면 바깥에 드러난 눈가를 칼로 이리저리 후비는 느낌마저 들었다.
“씨이발!”
오광택이 덜컥 욕을 뱉었다.
영하 40도에 가까운 기운에 칼바람이 분다.
가만히 서 있으면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 들어서 오광택은 자꾸만 발을 동동 굴렀다.
“후회 되냐?”
“안 돼, 이 새끼야!”
숨을 내쉬며 올라온 습기가 오광택의 눈썹에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우선 멀리 봐. 아무리 어두워도 하늘과 땅의 경계는 반드시 다르다. 그곳부터 당기듯이 천천히 훑고, 다음은 좌에서 우로 지그재그 형태로 살피면서 다시 지평선으로 시선을 던져.”
“너는 이걸 어디서 배운 거냐?”
“인터넷.”
“개새끼!”
강찬은 욕을 먹고도 피식 웃고 말았다.
악이 받친 거다. 추운 날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 처음이라면 당연히 악에 받치는 게 맞다.
“몸을 꿈틀거린다고 생각하고 움직여, 근육을 천천히, 하나씩 움직이는 거다. 우리는 편한 거야. 이런 날, 전차에 처박혀서 대기하는 놈들 중에는 정말 하얗게 얼어 죽는 놈이 나온다.”
“아무렴 가만 앉아서 얼어 죽는 놈이 있겠냐?”
오광택은 강찬의 말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한번 몸이 얼면 모든 게 귀찮아져. 그리고 몸이 굳는다. 그 상태에서 서서히 피가 얼고 그렇게 한 시간이면 결국 죽는다.”
오광택이 놀란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전차부대원은 열기에 피가 끓어서도 죽고, 이런 날 대기하다가 얼어서도 죽는다. 단숨에 이런 곳에 있게 되면 놀라서 뛰쳐나가는데 서서히 피가 얼게 되면 고통을 못 느껴. 너도 이렇게 있다가 졸음이 온다고 느끼면 피가 얼고 있는 거다. 그럴 땐 무조건 안으로 들어가.”
“씨발! 얼어 죽으면 죽었지, 쪽팔리게 어떻게 들어가냐!”
강찬은 지평선에 두었던 시선을 천천히 당겼다.
“이렇게 보름만 지나면 거짓말처럼 적응한다. 네가 가장 큰 형이잖아. 그 보름 동안 동생들은 정말 얼어 죽는다. 쪽팔리는 게 무섭냐? 아니면 동생들이 얼어 죽는 게 무섭냐?”
오광택은 대꾸하지 못하고 강찬의 옆모습을 노려보았다.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할 거다. 이곳이 그 시작점이야. 어설픈 일 같으면 너보고 하자고도 안 했다. 그래서 너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반대로 너밖에 이걸 맡길 놈이 없었다.”
“그래야지! 이런 일은 이 오광택이에게 맡겨야지!”
“그러니까 보름 동안 적응하는데 부끄럽다는 생각은 버려. 그리고 유라시아 철도를 대한민국에 연결하자. 러시아, 중국, 몽골 놈들의 방해를 뚫고 아시아의 혈관을 우리 손안에 담는 일이다.”
“개새끼! 피가 바글바글 끓는다.”
강찬은 오광택을 보며 피식 웃고는 다시 시선을 멀리 두었다.
그때였다.
철컥!
강찬은 소총을 어깨에 걸고 날카롭게 겨눴다.
“뭐냐?”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른 다음이었다.
철커덕.
강찬이 소총을 아래로 내렸다.
“늑대인 것 같은데? 아까 먹다 남은 시체를 끌고 가는 모양이다.”
“히잇!”
“늑대를 보는 훈련부터 해. 멀리서 천천히 시선을 당기다 보면 늑대가 보일 거다. 지금처럼 훈련하기도 쉽지 않아.”
“어디?”
오광택이 5분쯤 강찬의 지시대로 시선을 움직였다.
“보인다!”
“소리는 죽이고. 지금 정도 목소리면 이 밤에는 1㎞ 너머에서도 들린다.”
오광택이 입을 다물고 시선을 멀리 두었다.
반나절 같은 한 시간이 지나고, 요원 한 명과 주철범이 막사 위로 올라왔다.
“야간 투시경은?”
“가져왔습니다.”
“수고해.”
“고생하셨습니다.”
요원과 주철범이 동시에 같은 인사를 했다.
강찬과 함께 좁은 철계단을 내려온 오광택이 단박에 상체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야! 야간 투시경이 있는데 왜 너는 안 썼어?”
“네가 여기 대장 할 거잖아? 그럼 그런 거 없이도 주변을 살필 능력 정도는 있어야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오광택이 눈을 번들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철컹.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어후! 아버지!”
오광택은 그대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오광택, 막사에 들어오면 소총의 안전장치부터 확인해. 그렇게 대충 걸쳐 놨다가 넘어지면 무조건 총알이 튀어 나간다.”
마스크를 벗은 강찬의 눈초리를 받은 오광택이 군소리하지 않고 M16의 안전장치를 걸고 한쪽에 세웠다.
동생들을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지시를 순순히 받게 만드는 눈치였다.
“씨발, 그래도 너랑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
“시끄러, 이 새끼야. 담배나 하나 피우자.”
“가만있어봐. 내가 커피 끓일게.”
바깥에 껴입은 방한 바지를 벗으며 강찬은 피식 웃었다. 천하의 오광택이 봉지 커피를 타겠다고 주방에 서 있었다. 그것도 괴뢰군 복장을 하고 말이다.
사내새끼들은 이럴 때 가슴에 담긴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 두 잔과 담배 두 개비.
강찬은 라이터를 꺼내서 오광택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찰칵.
“후우!”
담배 연기를 뿜은 오광택이 기가 막힌 지 웃음을 터트렸다.
“후회 안 하니까 헛소리하지 마!”
그리고는 강찬의 눈을 힐끔 보면서 투덜거렸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다.
강남을 주름잡던 깡패가 몽골의 황야에서 괴뢰군 복장으로 커피를 탈 줄 누군들 짐작이나 했겠나?
“내가 선택한 거다. 그러니까 후회 없다.”
“누가 뭐랬냐?”
둘이서 킬킬거리면서 커피와 담배를 함께한 다음,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갔다.
잘 수 있을 때 자고, 먹을 수 있을 때 먹는다.
전투에 나서거나 작전에 나서면 무조건 앞의 두 가지를 지켜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우선 지킬 건 지키고 보는 게 좋다.
강찬은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았다.
아프리카와는 달리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강대경, 유혜숙, 석강호, 그리고 김미영.
편히 주무세요, 잘 자.
그리고 강찬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부르릉! 부릉! 부우우웅!
강찬은 날카롭게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화다닥!
그리고는 서둘러 거실로 나가서 소총을 들었다.
그때 강찬의 눈에 탁자 위에 놓인 무전기가 보였다.
이럴 땐 우선 무전이 최고다.
치이익. “경계! 무슨 소리야?”
치잇. “국경 수비대가 귀대하고 있습니다.”
치잇. “지금 몇 시야?”
치잇. “새벽 4시입니다.”
애새끼들이 지랄, 지랄, 별 지랄을 다 떤다.
치잇. “우리가 탈취한 차는 그대로 있지?”
치잇. “키를 김태진 대표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그놈들이 간다고 그리 아쉽지는 않다.
혹시 이놈들이 러시아 마피아와 모종의 약속이 있나 싶기도 했는데 경계하는 요원은 특수부대 출신이다.
최소한 무방비로 당하는 일은 없을 거란 믿음은 있었다.
강찬은 소총을 내려놓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지만, 국경 수비대가 떠나는 것을 막을 권리는 없는 거라서 다시 잠을 청했다.
한 시간을 더 자고 일어난 강찬은 우선 막사 안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다음은 1.5ℓ 물병을 들어 한 모금을 마신 다음 화장실로 들어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우선 적실 정도의 물을 얼굴과 머리에 뿌리고 거품이 약간 일어날 정도만 비누칠을 한다. 그리고 남은 물을 위에서부터 똑바로 흐르게 부어서 흘러내리는 거품과 물을 이용해 몸을 닦는 거다.
듣기에는 지랄 같지만, 그나마 씻는 것과 안 씻는 것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 정도였다.
또 있다.
이렇게 한 병 가지고 샤워를 하다가 두 병, 혹은 세 병으로 샤워를 하라고 하면 물이 남아서 처치 곤란한 심정을 느낄 때도 있다.
강찬이 몸을 씻고 나오자 오광택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들어와 봐.”
어차피 이곳의 대장이 될 놈이다.
강찬은 옷을 벗은 오광택을 쪼그려 앉게 한 다음, 물 한 병으로 샤워를 마치게 했다.
“이야! 이거 죽인다.”
물기를 수건으로 닦은 오광택이 단박에 표정이 바뀌어서 화장실을 나섰다. 이렇게라도 샤워를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실감한 까닭이었다.
“얼마나 더 배워야 하는 거냐?”
그러면서 한편으로 걱정되는 얼굴이었다.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 그냥 적응하겠다고 마음먹고 달려들면 다 하게 되어 있어. 다만, 전투와 무기에 관한 것은 제대로 배우는 게 중요하다.”
오광택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전화기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던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먹통이다.
어제까지 석강호와 통화를 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전화기의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고 있었다.
“오광택, 전화기 한번 확인해 봐.”
“전화기? 왜?”
“먹통인데?”
“그래?”
두꺼운 옷을 끼어 입던 오광택이 불편한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야! 내 것도 먹통인데?”
그때 밖에서 요원이 들어왔고, 갓 잠에서 깨어난 주철범이 거실로 나왔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형님?”
“응. 밥 먹게 얼른 씻어라.”
주철범이 인사를 하고 화장실로 들어간 다음이었다.
“전화기가 먹통인데 아는 거 있어?”
강찬은 요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던 참입니다. 아무래도 국경 수비대가 이동 기지국을 가지고 가버린 것 같습니다.”
강찬은 단박에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어쩐지 개새끼들이 새벽같이 가더라니.
그렇더라도 소위 ‘포터블’이라고 부르는 이동 기지국의 크기가 만만하지 않아서 옮기기가 쉽지 않은데?
하여간 이동 기지국을 도둑맞을 줄은 몰랐다.
“우선 밥부터 먹자.”
주철범이 겨우 세수만 한 얼굴로 나왔다.
강찬은 식당으로 향하며 주변을 살폈다.
이번에도 막사 위에 강철규가 있었는데 날씨와 바람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늙은이가 빈속에 저렇게 서 있으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거 아냐?
강찬은 곧바로 머리를 저었다.
1㎞ 바깥에 있는 적의 목을 뚫는 사람이 이런 훤한 아침에 아무렴 다가오는 적을 놓치겠나?
공연히 마음 쓰이는 것이 싫어서 강찬은 빠르게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비닐이 씌워진 식판을 들고 밥과 국을 뜬 다음, 탁자에 앉자 김태진이 나타났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전화기가 먹통이 됐는데 연락할 방법이 있나요?”
“위성 전화기가 한 대 있어서 급하게 김형정 팀장에게 연락했다. 전화기가 필요하면 여기 요원에게 말하면 가져다주마.”
“필요하면 말씀드릴게요.”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김태진도 기가 막힌 얼굴이었다.
밥을 먹고 막사로 돌아온 시간은 7시 40분쯤이었다.
김태진까지 한꺼번에 와서 다 같이 커피를 마셨다.
“교육은 몇 시부터인가요?”
“9시부터 할 예정인데 괜찮을까?”
“문제가 있나요?”
“국경수비대가 새벽에 나간 것도 그렇고, 이동 기지국까지 가져간 것이 찜찜해서 그래.”
김태진이 커피를 마시며 강찬을 보았다.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김태진의 눈빛이 사납게 변하고 있었다. 아마도 긴장된 장소에 있으면서 예전의 감각이 빠르게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교육은 저기 늙은……, 영감님이 하나요?”
“그렇지.”
강찬의 말을 애써 외면하며 김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9시부터 제가 경계를 설 테니까 그냥 교육을 진행하는 걸로 하지요.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하지. 괜찮겠어?”
“당장은 할 일도 없는데요.”
대강 이야기를 마친 다음 김태진이 막사를 나갔다. 지시할 일들이 있기도 했고, 강찬과 오광택이 편하게 담배를 피우라는 배려도 있는 듯 보였다.
찰칵.
강찬과 오광택, 요원과 주철범이 다 같이 담배를 물었다.
“담배는 여유 있냐?”
“가방 하나가 다 담배다. 밥은 떨어져도 담배는 안 떨어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오광택의 답을 들으며 강찬은 뜬금없이 석강호가 그리웠다. 그 새끼는 이럴 때 정말 위로가 된다. 새카맣게 적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푸흐흐흐.” 하고 웃는 놈이 세상에 몇 놈이나 있겠나?
강찬은 8시 근처에 방한 바지를 껴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갖췄다.
“9시부터 선다며?”
“8시에 교대할 거 아니냐? 이럴 때라도 요원들이 조금 더 쉬게 해 줘야 밤에도 견디지.”
오광택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강찬을 따라 하지 못하는 것이 억울하기도 한 것 같았고, 더불어 얼른 저런 모습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것도 같았다.
철컥! 철커덕!
강찬은 탄창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노리쇠를 당겼다.
강찬과 함께 생활하는 요원이 같은 복장을 챙겨 입은 다음 무전기와 소총을 들고 따라 나섰다.
어차피 강찬과 함께 있는 게 임무처럼 보이는 터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휘이이잉! 휘이잉!
둘이서 막사를 나가자 미친년 바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이게 일정하게만 불어줘도 견디기가 조금은 나은데 하여간 땅이라고 참 지랄 맞기도 하다.
둘이서 막사를 돌아 좁은 철제 계단을 올라간 참이다. 위에 있던 강철규가 어색한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다.
“내려가요.”
강찬의 말에 강철규가 군소리하지 않고 철제 계단을 내려갔다.
빌어먹을 늙은이가 고분고분한 척하기는!
강찬은 소총을 오른쪽 어깨에 걸고 총구에 손을 얹은 채로 주변을 천천히 살폈다.
요원이 강찬의 곁에서 같은 자세로 소총을 들고서 반대쪽과 맞은 편을 살핀다.
휘이이잉! 휘이잉! 휘이이이잉!
“핫팩 하나 드릴까요?”
“괜찮아.”
그래도 나름 특수팀 생활을 거친 요원이다. 말을 건네면서도 시선은 먼 곳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해가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강렬하게 빛났다.
이런 햇볕을 일주일만 쐬면 누구든 얼굴이 시커멓게 탄다. 바닷가에서 기름 처바르고 태우는 것과는 달리 더럽고, 꼬질꼬질하게 타는데 주름 안쪽은 하얀 살이 그대로 있어서 한 마디로 거지꼴이 되는 거다.
강찬은 피식 웃으면서 시선을 천천히 움직였다.
괴뢰군 복장에 거지꼴이 되는 거다.
그래도 이마 위로 들렸던 챙을 내렸고, 마스크를 썼으니까 그래도 완전 거지꼴은 면할 거다.
끝없이 펼쳐진 평지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은 거짓말처럼 멀미를 한다. 특히나 대한민국처럼 고개만 돌리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던 사람은 열이면 열, 틀림없다.
아닌 게 아니라 함께 있던 요원이 자꾸만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멀미는 뱃멀미와 달라서 해상 훈련을 마쳤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밤엔 그나마 끝이 보이지 않아서 견딜만한데 이렇게 모든 것이 환하게 보이게 되면 피할 방법이 없다.
“무전기 놓고 내려가.”
“괜찮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쓰러진다. 지평선에 적응하려면 빠른 사람이 사흘, 느린 사람은 보름도 걸려.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쓸데없는 고집 피우지 말고 내려가서 막사 바깥을 보지 마.”
강찬의 눈빛과 말투를 본 요원이 “죄송합니다.”하고는 무전기를 건네주었다.
내려가기 전에 요원이 강찬을 똑바로 보았다.
‘정말 정체가 뭡니까?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고 있습니까?’
강찬은 그냥 웃고 말았다.
그걸 설명할 수 있으면 강철규는 벌써 죽었다.
그러고 보니 강철규는 멀미를 하지 않았다. 늙은이가 이래저래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당최 인간 같은 구석이 없는 거다. 하기야, 저러니까 자식 죽게 하고 마누라 목매달게 했겠지.
요원이 내려가고 15분쯤 더 흘렀다.
적어도 오전은 이곳에서 지내야 했다.
점심을 먹는 동안 누군가 올라와야 했는데 가능하리라 여겨지는 사람은 강철규와 김태진 정도였다.
서상현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강찬이 시선을 천천히 움직일 때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국경수비대가 새벽같이 사라지고, 거기에 이동용 기지국까지 가지고 갔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 몰랐다.
날카롭게 주변을 둘러보던 강찬은 멀리서 피어오른 흙먼지를 보았다.
저 정도면 꽤 먼 거리다.
강찬은 무전기를 들었다.
치잇. “미확인 차량 출현, 전 요원 무장한다. 반복한다. 미확인 차량 출현. 전 요원 무장한다.”
강찬은 무전기를 내려놓고 먼지가 피어오른 방향을 노려보았다.
와다다닥! 철컥! 철컥! 와다닥! 철컥!
소총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요란하게 기지 안쪽에 울려 퍼졌다.
저게 스페츠나츠 출신이라면 오늘은 정말 어려운 싸움이 될 거다. 그리고 이럴 때 확실히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은 역시 강철규와 김태진밖에 없다.
두근두근. 후욱후욱.
강찬이 막사 안쪽을 돌아볼 때였다.
철제 계단을 밟고 강철규가 올라왔다.
휘이이잉!
바람이 거칠게 두 사람 사이를 훑고 지나간 다음이다.
후욱후욱. 후욱후욱.
둘이서 시선이 딱 마주쳤다.
“스페츠나츠 출신일지 몰라.”
“알았소.”
강철규가 순순히 강찬의 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