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27화 (227/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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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가슴에 담기는 놈들은.

11시 20분에 대사관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강찬이 먼저 약속보다 일찍 도착해서 잠시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고, 라노크 역시 찬성했던 일이었다.

“강찬 씨!”

라노크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강찬의 얼굴을 살폈다.

이마에 두 곳, 그리고 볼에 한 곳, 볼썽사납게 밴드를 붙이고 있어서 보기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후회하지는 않습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집 한 채가 날아가고, 반경 100m 내외의 모든 유리창이 날아간 엄청난 사건이었다.

강찬은 그냥 멋쩍게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 했다.

“앉으시죠.”

홍차를 따라준 라노크가 자연스럽게 담배를 권했다.

“DIA가 곽도영을 통해서 한국에 있던 미국의 정보원 몇을 희생시킬 계획이었습니다.”

찰칵.

강찬의 담배에 불을 붙여준 라노크는 말을 멈추고 기다란 시가를 뻑뻑 빨아들이며 불을 붙였다.

“위민국을 통해서 강찬 씨에게 제동을 걸고 간첩들 명단으로 한국 사회가 어수선해지길 바랐던 거지요. 거기에 북한과 일본이 동조하면 제법 바라던 일들을 이루었을 겁니다.”

처음 듣는 내용이었는데 워낙 이런 일들을 자주 접해서 그런지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미국은 지난번 아프가니스탄의 지휘관이 강찬 씨인 것을 자연스럽게 발표해서 손발을 묶을 생각이었던 거지요.”

“그런 건 그냥 발표해도 되지 않나요?”

“명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작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북한과 위민국을 통해서 강찬 씨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낙인 찍으려던 계획이었습니다. 그걸 미국이 직접 발표하면 의도까지 알려지게 되어서 오히려 손해를 봅니다.”

“미국의 의도가 뭔지 아시나요?”

“한국에서 강찬 씨의 힘을 제거하고 싶은 겁니다.”

“제가 그 정도 영향력이 있습니까?”

강찬이 웃으며 던진 질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라노크는 진지한 눈빛으로 받았다.

“각국 정보국이 가장 위험인물로 꼽는 사람입니다. 아마 미국은 한 번 더 기회를 노릴 겁니다. 강찬 씨가 절대로 거부하지 못할 제안이 있겠지요.”

“정보총국에서 알아낼 거 아닌가요?”

“어렵습니다.”

이건 정말 예상을 빗나가는 답이다.

“강찬 씨. 미국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지금은 힘이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더라도 저들은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인물이나 국가를 절대로 지켜보는 곳이 아닙니다. 막대한 경제력과 정보력,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낸 영향력이라면 정보총국과 국가정보원이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싸움이 될 겁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는 건 강해지는 건데 어떻게 된 게 항상 그보다 강한 적이 먼저 나타나는 꼴이다.

“만약 강찬 씨가 정보총국의 부총국장이 아니었다면 미국은 반드시 아프가니스탄에서 강찬 씨를 제거했을 겁니다. 이건 확실한 증거가 있는 일입니다.”

염병!

강찬은 대뜸 욕이 먼저 떠올랐고, 다음으로 미운 놈의 이름과 얼굴이 떠올랐다.

“이튼은 어떻게 됐나요?”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라노크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나고 있어서 강찬은 더 묻지 않았다. 이 정도 눈빛이라면 알아서 했으리란 믿음도 있었다.

라노크가 살려두었다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강찬의 속을 읽을 것처럼 라노크가 미소 지었다.

“이튼은 아직 이용가치가 충분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미국에서 이곳으로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대사님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라노크가 멋진 미소를 다시 보여줄 때였다.

“양범 씨가 오셨습니다.”

라파엘이 조용하게 문으로 들어서며 말을 건넸다.

라노크와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에 양범이 안으로 들어왔다.

“대사님, 강찬 씨, 오랜만입니다.”

“이제는 정보국장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대사님이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잠시 못 본 사이에 양범은 실제로 정보국장의 무게를 담은 모습이었다. 눈빛과 표정, 심지어 동작이 다른 사람처럼 바뀌어 있었다.

“강찬 씨.”

양범이 단단한 눈빛으로 강찬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멋진 활약이었습니다.”

이런 건 웃으면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괜찮으시다면 바로 식당으로 가실까요?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차와 담배를 즐기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게 하시죠.”

라노크는 어느새 완벽하게 가면을 뒤집어쓴 표정으로 양범을 대하고 있었다. 하여간 저 재주는 정말 배워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라노크의 안내로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자 대기하던 직원들이 빠르게 와인을 가져다주었다.

프랑스 식사에서 동양인이 가끔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주인이 와인을 따라주고 났을 때 병을 받아서 주인의 잔을 채워주는 일이다.

나름 성의를 보인다고 하는 짓이다.

게다가 자기가 선물로 사간 와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프랑스 식사 예절에서 와인을 따라줄 수 있는 사람은 주인이나 초대한 주인공인 거다.

처음 프랑스에 갔을 때가 떠올라 강찬은 가끔 이런 자리에서 웃음이 나온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나요?”

강찬은 처음 프랑스 식사에 초대받았을 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때가 언제인가요?”

그런데 양범의 질문을 받으며 덜컥 말문이 막혔다.

시기가 맞지 않는 거다.

거기에 양범의 눈빛이 무언가를 잡으려는 것처럼 빛나는 것도 보았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강찬은 나름 뻔뻔스러운 얼굴로 답을 했다.

필요하다면 가면을 쓸 거다.

그래서 강해질 수 있는 거라면 세 개고, 네 개고 뒤집어써서라도 내 사람을 지켜낼 거다.

“자! 모처럼의 만남을 위해 건배합시다.”

쨍!

셋이서 각자의 가면을 쓴 채로 와인을 마셨다.

“위민국의 일은 유감입니다. 공연히 강찬 씨에게 부담만 지웠습니다.”

“잘 처리되었습니다. 비록 이런 훈장을 얻었지만요.”

강찬이 얼굴에 붙인 밴드를 가리키는 바람에 셋이서 함께 웃었다.

뒤이어 애피타이저가 나오면서 식사가 진행됐다.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던 강찬은 생각난 것이 있는 것처럼 양범에게 시선을 주었다.

“바실리와 만날 일이 있다고 하셨는데 내용을 들을 수 있을까요?”

입에 고기 조각을 넣은 양범이 냅킨을 들어 입술을 찍었다.

“몽골 지역에 출론크로루트 지역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몽골이 겹쳐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자바이칼스키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와인을 들어 입을 적신 양범이 강찬에게 시선을 주었다.

“전략의 요충지입니다. 러시아도 우리고 포기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최근에 러시아는 방법을 바꿔서 마피아를 그곳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명목은 데나다이트의 채굴입니다.”

데나다이트?

블랙헤드의 부족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사용했다는 광물의 이름이다.

강찬은 눈빛을 빛내며 양범을 보았지만, 뭔가를 알고 이러는 건지, 우연인지 알 길은 없었다.

“노천 광산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 처음 듣습니다.”

양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지역은 지표에서 1m만 파도 광석이 깔렸습니다. 그것도 반경 50킬로에 걸쳐 있어서 굳이 지하 갱구를 팔 이유가 없지요.”

“몽골 땅에 있는 광산이라면 소유권에 문제가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몽골의 국경수비대장이 러시아의 마피아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강찬도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양범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우리가 끼어들면 러시아와 우리는 국지전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의 데나다이트 개발권을 제3국에 팔 예정입니다. 조건은 간단합니다. 러시아 마피아를 이겨낼 수 있는 조직이 들어와야 합니다.”

바실리가 지랄 꽤나 하겠는데?

강찬은 차가운 바실리의 눈매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그 전에 확인할 것이 하나 있었다.

“데나다이트는 어디에 사용하는 건가요?”

“여러 곳에 사용합니다.”

양범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글라보나이트, 밀라보나이트, 데나다이트의 순으로 농도가 짙은데 가장 흔한 것으로는 염색과 탈색, 그리고 세척에 사용합니다. 중국과 유럽, 그리고 미국은 이제 석유화학에서 나온 황화소다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데나다이트의 수요는 엄청납니다.”

일부러 이런 답을 하는 건가?

강찬은 데나다이트라는 것이 정말 양범의 말대로 사용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데나다이트는 원래 물렁물렁한 광물입니다. 이것을 알코올에 넣으면 다이아몬드만큼 강한 물질로 변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에너지를 뿜어내지요.”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 상태에서 세티늄과 결합하면 엄청난 폭발력을 보이는데 러시아는 세티늄을 보유하고 있어서 중국은 그걸 지켜보기 어렵습니다.”

“러시아가 광산을 살 수도 있지 않나요?”

“몽골은 우리의 영향력을 무시할 만큼 경제가 단단하질 못합니다.”

대강 알 것 같았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 이렇다면 이 안쪽에는 분명 블랙헤드와 관련된 무언가가 숨어 있는 거다.

“강찬 씨. 바실리는 강찬 씨를 대놓고 막지 못합니다. 철도로 운송해야 하기 때문에 유니콘의 연장선이라는 명분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산된 데나다이트를 현지에서 바로 황화소다로 만들어 수출하면 됩니다. 공장을 설립하는 초기 비용이 들지만, 아마 1년에 한국 돈 3천억 이상의 수익이 나올 겁니다.”

“러시아 마피아를 이겨낸다는 조건이 붙겠군요.”

“미국과 캐나다의 광산 회사들이 달려들지 못하는 표면적인 이유가 그것입니다.”

“미국이라면 바실리가 그렇게 겁나지 않을 텐데요?”

“미국은 우리와 러시아가 함께 막아냅니다. 그들은 데나다이트에 세티늄을 결합하고 싶어 하니까요.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군이나 정보국이 개입하면 바실리가 그걸 핑계로 압박을 가할 겁니다.”

“특수팀에서 전역한 사람은 괜찮지 않나요? 러시아 마피아도 어차피 정보국이나 군 출신일 텐데요?”

“그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공장을 설립하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요?”

“한화로 대략 600억쯤 들어갈 겁니다.”

“급한 일입니까?”

“지금도 러시아 마피아가 대놓고 데나다이트를 걷어가는 형편입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데나다이트에 세티늄을 결합할 거란 생각은 안 하시나요?”

라노크가 서양 가면 같은 표정으로 양범을 보는 순간이었다.

“강찬 씨는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겁니다. 어떤 에너지의 파동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와 우리는 그 에너지 파동만으로도 강찬 씨가 데나다이트에 세티늄을 결합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새끼들이 다 알고 있었던 거네!

강찬은 새삼 정보국 놈들이 무서웠고, 이런 상황에서 위민국 따위의 일로 의견이 갈라지는 국가정보원의 수준이 아쉬웠다.

대강 마음은 굳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놈도 하나 있었다.

이런 일에 딱 맞을 깡패 새끼!

“계약은 어떻게 진행하면 됩니까?”

“회사를 정해주시면 몽골 자원부에서 연락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계약 전에 바실리와 기본적인 협상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강찬을 똑바로 바라본 채로 양범이 말을 이었다.

“희생을 한 명이라도 줄이는 데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겁니다.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양범은 와인잔을 강찬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럴 때 라노크를 세워주고 싶었다.

특히나 그를 납치했던 중국이다.

강찬의 시선을 받은 라노크가 알아서 하라는 의미로 미소를 보냈다.

강찬은 와인잔을 들었다.

“멋진 사업을 추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노크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와인잔을 들었다.

쨍!

절반도 먹지 않은 식사가 그렇게 끝났다.

이왕 식탁에 자리 잡았다.

직원들이 테이블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커피와 홍차, 그리고 재떨이를 준비해 주었다.

“왜 중국에서 마시면 이런 맛이 나지 않을까요?”

“보이차가 그렇더군요. 환상적인 맛이 기억나서 구해왔는데 막상 이곳에서 마시면 그 맛이 나질 않습니다.”

강찬은 떠오르는 차가 없었다.

그리고 봉지 커피는 언제 어디서 마셔도 맛이 항상 같다. 단맛!

“대사님. 미국이 UN을 움직일 것 같습니다.”

라노크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양범을 보았다. 이건 확실히 구렁이도 모르고 있던 일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의 뿔에서 대규모 내전이 일어납니다.”

“소말리아말이군요.”

양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스 외인부대를 시작으로, 각국의 특수팀을 모조리 아프리카의 뿔에 모아놓고 내전을 상대하려는 계획인 것 같습니다. 역시 목표는…….”

양범이 강찬을 확실하게 보았다.

“새로운 영웅이 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아직 몽골 사업도 시작하지 않았다.

뭔 미국놈들 때문에 아프리카에 가겠나?

강찬의 눈빛을 읽었는지 양범이 말을 이었다.

“한국 정부와 군에서 강찬 씨를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이 이번 파병에 동의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강찬 씨를 따르던 요원들과 대원들이 거의 포함된다고 보시면 맞을 겁니다.”

피식.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이 아프리카에 파병을 한다?

그것도 전투부대를?

아무튼, 조심할 필요는 있는 일이다.

이런 인간들을 상대하려면 정말이지 국가정보원과 군의 수준이 훌쩍 높아져야 할 것만 같았다.

양범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한 얼굴이었다.

“담배나 하나 피울까요?”

그래서인지 홀가분한 표정으로 강찬에게 담배를 권했다.

찰칵.

불을 교대로 붙이고 나자 좀 더 여유가 생겼다.

“강찬 씨. 정보국은 부침이 심합니다. 대사님이 계신 곳에서 말씀드리기는 뭐하지만, 누구도 살아 있을 거라는 자신을 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특히 수장의 자리는 더욱 그렇습니다.”

라노크가 시가의 연기를 뿜어내며 양범을 지켜보는 앞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강찬 씨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있지만, 언제 등에 총을 맞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위민국의 사건으로 본국 정보국내에서 강찬 씨에게 반감을 가진 이들도 상당수 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강찬은 담배 연기를 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공항을 폭파하고, 중국 요원인 위민국을 죽인 강찬을 좋아하기는 어려울 일이다.

“나는 분명 대사님을 지지합니다. 그렇다면 강찬 씨가 좀 더 빨리, 좀 더 강한 힘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우리 공통의 적은 미국이 될 것이고, 그 뒤에 숨은 적이 실제로 움직이면 지금 상태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유니콘 때문인가요?”

“세계 경제가 나뉘는 문제입니다.”

“미국보다 강한 적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미국의 돈을 흔드는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면 간단한 문제입니다.”

강찬은 그냥 웃음이 나왔다.

사방이 강력한 적투성이다.

이럴 거면 영국의 이튼을 꼬드겨서 지층 충격기를 한국에 하나 장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말 안 듣는 새끼들이 있는 나라에 지진을 확!

아서라,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은 무슨 죄가 있겠냐?

강찬의 표정을 읽었는지 라노크와 양범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가면을 쓰고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활약 때문에 우리 스노우 울프에서도 한동안 말이 돌았습니다. 장강린은 아예 강찬 씨의 열렬한 팬이 된 느낌이어서 불안하기도 합니다. 공항에서의 활약은 전해 듣기만 해서 실감이 안 나더니 직접 보고 나니까 겁도 납니다.”

어쩌면 인간이 전혀 겁먹지 않는 얼굴로 저런 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그저 웃음만 나왔다.

“이제 가봐야겠습니다.”

“벌써요?”

“맛있는 점심과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으니 이제 집안을 둘러봐야지요. 자리를 오래 비우면 책상이 없어지고, 관이 놓입니다.”

섬뜩한 대화였는데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양범을 배웅하기 위해 강찬과 라노크도 몸을 일으켰다.

얼핏 보면 옆 동네 중국 대사관에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대사님. 오늘 점심 고마웠습니다.”

양범이 능숙하게 라노크와 프랑스식으로 인사를 나눈 후에 강찬에게 몸을 돌렸다.

“강찬 씨. 중국 정보국장 양범은 강찬 씨를 지지합니다. 이점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어려운 때 나는 강찬 씨를 떠올릴 겁니다. 명심해 주십시오. 가장 어려울 때입니다.”

강찬은 웃음기를 지우고 양범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씨익.

그런데 양범이 보기 좋은 웃음을 웃었다.

“강찬 씨의 눈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든든합니다. 가끔은 그 눈을 보러 오겠습니다.”

악수를 할 줄 알았는데 양범은 프랑스식으로 강찬을 안았다.

그가 가고 나서 라노크는 강찬을 집무실로 안내했다.

“일이 정말 많아졌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부럽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대사님을 모시고 다닐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는데요?”

라노크는 가면을 벗어둔 얼굴로 웃었다.

“대사님. 안느와 루이를 정보총국에 계속 두어도 됩니까?”

“지금은 괜찮을 겁니다. 적어도 내가 무사하니까요.”

라노크가 괜찮다면 그런 거다.

점심 한 끼 먹었는데 할 일을 산더미처럼 받은 느낌이었다.

“강찬 씨.”

라노크가 불러서 강찬은 무심코 시선을 들었다.

“괜찮다면 부총국장의 권한을 사용하세요. 적이 너무 많으면 견디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을 대가로 내놓게 되지요.”

“암살을 지시하란 말씀인가요?”

“방법은 부총국장이 찾아내야 합니다.”

이런 진지한 눈빛은 오랜만에 본다.

강찬은 정말 궁금한 것을 묻기로 했다.

더 오래 두었다간 자꾸만 상상하며 결론을 낼 것만 같아서였다.

“대사님. 대사님의 정확한 지위를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라노크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리고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진정으로 힘을 가졌다고 느껴지면 그때 알려드리기로 하지요.”

강찬은 그 또한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이 사람도 가슴 속에 있는 사람이다.

믿는다.

강찬의 눈을 바라본 라노크가 알기 어려운 미소를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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