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21화 (22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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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어떤 놈이 시켰어?

강찬만큼이나 석강호도 이런 경험은 풍부하다. 그리고 그보다는 좀 못하지만 제라르도 익숙한 장면이었다.

강찬이 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동안 제라르와 석강호는 몸을 살폈다.

언제 총성이 있었냐는 듯 침묵이 겨울 황량한 땅을 뒤덮는 순간이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아이의 몸에서 초침이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찬은 아이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본 상태에서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뒤로 물러나.”

아이의 고사리 같은 엄지는 제 손톱보다 큰 버튼에 얹혀 있었다. 누르기 위해 큰 힘을 쓸 필요도 없다. 그저 움직이기만 해도 바로 터질 정도로 예민한 장치다.

“3시 방향, 3m.”

제라르가 나직한 음성으로 최악의 순간에 피할 곳을 알려주고, 대원들과 함께 천천히, 그리고 최대한 아이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며 뒤로 물러났다.

후욱. 후욱.

‘걱정하지 마. 풀어줄 수 있을 거다.’

처음 보는 아이다. 알고 있는 언어도 다르다.

그런데 이런 순간에는 눈빛이 전하는 의사를 알아듣는다.

자극하지만 않으면 된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조심스럽게 물러나는 대원들의 태도와 강찬의 시선을 보면 대개의 아이들은 버튼을 스스로 누르지 않았다.

‘괜찮을 거다.’

강찬이 눈빛으로 뜻을 전한 직후였다.

쿵. 쿵. 쿵. 쿵.

심장이 무겁게 뛰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겁에 질린 채 울고 있는 아이를 버려본 적은 없다.

저 아이가 유혜숙처럼 자상한 엄마가 될지, 미쉘처럼 매력적인 아가씨가 될지, 김미영처럼 똑똑한 학생이 될지 알 길은 없다. 그러니 우선 살려서 최소한의 기회라도 주고 보는 것이 맞는 거다.

“다예.”

강찬이 부르자, 석강호가 나직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폭탄을 제거할 테니까 침착하게 있으란 말을 전했다.

‘정말이요?’

아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흥분만 하지 않으면 된다.

저 또래의 아이들은 폭탄이라는 걸 알면서도 놀라거나 흥분하면 엄지를 누르는 일이 흔했다.

‘이런 일 아프리카에서 많이 해봤다. 그러니까 내가 다가갈게.’

쿵. 쿵. 쿵. 쿵.

아이를 포기하라고 심장이 거세게 요동쳤다.

“좀 더 물러나.”

강찬의 말에 대원들이 확실하게 뒤로 물러났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시간이 급하다고 확 달려들거나, 아이가 놀랄 짓을 하는 건 절대로 금물이다.

이가 갈릴 만큼 지겹더라도 인내하고 인내하며 천천히, 그리고 최대한 아이가 이해할 만한 동작을 보여야 한다.

쿵. 쿵. 쿵. 쿵.

저런 눈을 하고 있는 아이를 포기하라고?

지금은 누가 뭐래도 안 돼.

강찬은 서서히 무릎을 구부리며 자세를 낮췄다.

철커덕.

소총을 바닥에 놓았다.

이제 발목에 달린 대검을 꺼내서…….

두두두두두두.

그때였다.

구릉 저쪽 끝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파치 헬기가 날아왔다.

빌어먹을!

아이가 강찬에게서 시선을 돌려 아파치 헬기를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뺏긴 거다.

‘괜찮아! 괜찮은 거야!’

개새끼들아! 얼른 돌아가!

요란한 헬리콥터 소리에 아이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돌아가라니까!

피이이이융!

그리고 그때 아파치 헬기가 미사일을 발사했다.

다 죽어 자빠져서 반항하는 놈도 없는데!

콰아아아앙!

곧바로 저 너머에서 엄청난 폭음과 불꽃이 피어올랐다.

“꺄아아악!”

“안 돼!”

달칵. 홰액!

강찬은 움푹 팬 바닥에 몸을 처박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콰으으응! 부스스스스!

높다랗게 솟구친 흙과 돌가루들이 강찬의 위로 떨어졌다.

덩치가 워낙 작았고, 그나마 표시 내지 않기 위해 폭탄을 적게 감아서 망정이지…….

빌어먹을! 빌어먹을!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제라르가 무전으로 사격을 중지하라고 악을 써대고 있었다.

저놈들도 아군의 주파수를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미사일을 먼저 날렸다. 그것도 다 죽어 자빠져 있는 적의 시체에 대고 말이다.

강찬은 몸을 일으켜 헬기를 노려보았다.

두두두두두두두!

바람이 확 하고 느껴지고 날렵하고 위협적인 자태로 아파치 헬기가 강찬의 정면에 섰다.

이 개새끼가!

소총으로 안 뚫린다고 이글라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대장!”

제라르가 먼저 악을 썼고, 석강호가 빠르게 달려와 강찬을 안았다.

“참읍시다! 프랑스 애들도 생각해 줘야지요. 그리고 부상자도 돌봐야 하오! 그러니까 이번은 참읍시다.”

두두두두두두두!

개새끼들, 늦게 나타나서 생색내는 놈들은 많이 봤지만, 시체에 미사일을 갈기는 놈은 처음이다.

알고 있었을 거다.

TV를 보았다면 분명 무얼 하는지 보고 있었을 거다.

아파치 헬기도 지지 않겠다는 듯 강찬을 정면으로 노려보며 떠 있었다.

너희! 언젠가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주마.

“대장! 부상자들이 트럭하고 폐가 앞에 있어요!”

강찬은 석강호를 보았다.

“제발! 지금은 이대로 갑시다.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요. 어떤 개새끼가 이런 명령을 내렸는지 찾아서 모가지를 돌려주면 되잖소.”

강찬이 다시 시선을 돌릴 때 헬기가 달라진 엔진음을 내며 몸을 틀었다.

지금은 석강호의 말이 맞다.

“가자.”

강찬은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 사이, 여자아이가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파인 것이 보였다.

제라르와 프랑스 대원, 다예루, 폭탄 테러까지.

아프리카에 돌아와 있는 느낌이었다.

구릉을 내려와 가장 먼저 트럭으로 향했고, 다른 대원 셋이서 가장 먼저 쓰러졌던 대원을 향해 달렸다.

운전석에 탔던 대원은 의식이 없었고, 처음 쓰러졌던 대원은 왼쪽 무릎 위가 날아갔다.

대원 한 명이 트럭을 가져왔고, 모조리 올라탔다.

끝났다.

징그럽고 끔찍했던 전투가 이렇게 끝난 거다.

부우우웅. 덜컹! 덜커덩!

트럭의 뒤에 서 있던 강찬은 마지막으로 구릉을 보았다.

***

상가르에 도착하자, 먼저 출발했던 대원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인질들은 한쪽에 둥그렇게 앉아 머리를 모으고 있었다.

“출발 후에 부상자나 사망자는?”

“그 이후로 교전은 없었습니다.”

곽철호가 대답하는 사이, 의료진이 달려와서 부상당한 프랑스 대원 둘을 살폈다.

“제라르! 담배 있어?”

강찬의 질문에 제라르가 주머니에서 담배와 익숙한 지포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앉자.”

트럭 세 대가 널따란 공터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강찬을 시작으로 죄 트럭에 기대앉았다.

철컹. 치이익!

“후우!”

살 것 같았다.

목에서부터 주둥이까지만 복면을 올리고 피우는 담배다. 지켜보는 사람은 더럽게 흉한 꼴이겠지만, 그렇다고 담배 맛이 달라지는 것은 아닌 거다.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것처럼 제라르는 강찬의 곁에 바싹 붙어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후우. 참! 너 아까 멋진 척하던데 귀족이었냐?”

“나처럼 멋지게 생긴 놈이라면 한 번쯤 의심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주둥이만 움직이는 꼴이 별로 보기 좋지는 않았다.

“하나 더 드릴까요?”

강찬이 담배 하나를 더 받아서 불을 붙인 다음이었다.

“몰락한 가문은 주로 다른 이름을 씁니다. 이름 때문에 오히려 불편하고 멸시받는 일이 많으니까요. 대신에 목숨 걸 일이나, 절대로 어기지 않을 약속을 할 때는 한 번씩 씁니다. 그게 제법 멋져 보이거든요.”

강찬이 피식 웃자 제라르가 입술을 길게 늘이며 따라 웃었다.

“네가 특수팀 최고참인가?”

“지금은 그렇습니다.”

강찬의 시선을 받은 제라르가 트럭의 바퀴에 대고 담배를 비벼껐다.

“제대 신청서 냈습니다.”

“그거 취소해라.”

제라르가 눈만 돌려 강찬을 보았다.

“제13연대 말고 특수팀 전체를 맡게 할 테니까 잠시 남아 있으라고.”

이번에는 제라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중에 내가 갈게.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저도 같이하는 일입니까?”

강찬은 주변을 슬쩍 보고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특수팀 전체가 필요한 일입니까?”

“어쩌면.”

“그렇다면 저밖에 없군요.”

이럴 때 “씨발! 나밖에 없소!” 하는 것보다는 표현이 훨씬 더 여유로워 보이긴 한다.

“아프리카가 갑자기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너무 설치지 말고 조용히 있어.”

“맡겨 주십시오.”

강찬이 바닥에 담배를 끄고 꽁초를 바퀴 옆에 내려놓았을 때였다.

두두두두두두.

더럽게 시끄러운 헬기 소리가 들렸다.

“가시죠.”

제라르가 일어났고, 대원들이 차례로 일어섰다.

웬만하면 주변에 있는 부상자들을 먼저 치료할 만도 했는데 의료진이나 장비가 형편없어서 속히 카불로 움직이는 게 나아 보였다.

두두두두두두.

치누크 세 대가 커다란 덩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강찬의 지시에 따라 상태가 위독한 대원들이 먼저 올라탔고, 다음으로 인질들, 그리고 한국과 프랑스 대원들이 섞여서 헬기에 올랐다.

가는 동안 벌어질지 모르는 전투에 대비하는 게 좋았다.

두두두두두두.

강찬은 인질들이 탄 헬기에 석강호, 그리고 프랑스 대원들과 함께 탔다.

복면은 이제 피가 굳어서 아예 딱딱하게 꺾이는 수준이었고, 전신이 온통 피와 흙먼지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강찬은 시선을 돌렸다가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언제 올라탔는지 프랑스 막내 대원이 헬기의 문 쪽에 발을 걸치고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물론 등에 안전띠를 걸었다.

특수팀은 이렇게 완성된다.

이런 지옥 같은 전투에서 얻은 것들이 쌓이기 시작하면 훈련에 임하는 자세부터가 달라진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다.

황량한 들판이 헬기의 문을 통해 보였고, 섬뜩한 겨울바람이 들이닥쳤다가는 빠르게 빠져나갔다.

인질들은 몸을 웅크리고 바싹 붙어 앉았다.

죽을 맛일 거다.

전투의 한 중간에 앉아서 아래는 젖어 축축할 거고, 코에서는 피비린내가 비릿하게 나는 데다, 죽은 적과 여자아이의 모습이 떠나가지 않을 테니.

두두두두두두.

여자 인질 한 명이 강찬을 힐끔 보았다.

***

카불 공항에 도착하자 외교부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분들은 이곳에서 민간 항공기로 갑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강찬은 인질들이 탈 버스 앞까지 함께 걸었다.

공항 건물에 사진기자들이 엄청나게 몰려 있었는데 활주로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병력이 막아서고 있었다.

“얼른 버스에 타세요.”

외교부 직원이 인질들에게 버스를 타라고 알려주었다.

안심되고, 한편으로는 지켜주는 대원들과 떨어지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고. 인질들은 복잡한 표정이었다.

버스에 오르는 동안, 누구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안 하는 게 아니다. 정말 당황하고 놀라서 못하는 게 맞다. 한 마디로 얼이 빠진 상태여서 전혀 서운해할 일이 아니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진심으로 감사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강찬의 손을 꼭 잡았던 직원이 버스에 오르자 문이 닫혔다.

강찬은 다시 비행기로 걸어왔다.

제라르와 프랑스 대원들, 석강호와 곽철호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대원들이 서 있었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강찬이 피식 웃을 때 제라르를 시작으로 프랑스 특수팀이 경례를 했고, 강찬과 대원들이 답례를 했다.

“가자!”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고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는 앞에서 오래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것은 없었다.

강찬이 걷는 왼편에서 석강호가 걸었고, 오른편을 곽철호가 따랐다.

덜컹. 덜컹.

수송기의 안으로 들어서자 간이침대에 링거줄과 혈액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고, 그 옆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이이이잉.

수송기의 문이 닫혔다.

띵. 띵. 띵. 띵.

뭐가 그리 급한지 엉덩이도 제대로 붙이기 전에 빨간 불이 깜박이고 수송기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딸각.

강찬을 시작으로 대원들 전체가 헬멧을 벗었다.

다음은 두건이다.

얼굴을 내내 감싸고 있던 두건을 벗자 세상 살 것 같았는데 다들 피가 굳어 시커멓게 변한 조각들을 얼굴에 붙이고 있었다.

크으으으으응!

수송기가 활주로를 힘차게 달렸고, 곧바로 솟아올랐다.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석강호가 비틀거리며 걸어서 생수를 들고 와 강찬에게 부어주었다.

이륙 중이라고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걸 보면 저놈들은 좀 더 경험을 쌓아야 한다.

강찬은 세수를 한 뒤에 다시 석강호에게 물을 부어주었다. 얼굴을 씻고 물을 실컷 마시자 세상이 제대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커피 있냐?”

세수를 하던 대원 중 하나가 빠르게 뒤로 가더니 “있습니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 같이 커피를 마셨다.

강찬은 고개를 돌리다 간이침대에 누워 있는 윤상기와 눈이 마주쳤다.

“커피 줘?”

“예.”

입 모양으로 답을 알았다.

대원들이 킬킬거렸고, 누군가 커피를 조금 따라다 주었다. 군의관이 질색했지만, 감히 말릴 생각은 못 하는 눈치였다.

한 가운데 산더미 같이 시레이션을 쌓아놓고 다같이 달려들어 먹었다.

그러는 동안 군의관이 강찬을 시작으로 대원들의 상처를 보아주었는데 바늘로 상처를 꿰매는 동안에도 먹는 걸 멈추는 대원들은 없었다.

대원들을 돌아보던 곽철호가 기가 막힌 지 웃음을 웃었다. 초콜릿을 씹고 있어서 이가 시커멓게 보이는 곽철호를 보며 또 다들 웃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다친 대원들이 마음에 걸려서 풀 죽어 있던 놈들이 이제는 부상자를 옆에 두고 시시덕거리면서 음식을 먹는다.

죄책감?

아니! 이 중 누가 저기 침대에 자빠져 있어도 남은 대원들이 배를 채우는 것을 원망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다.

“곽철호.”

“예.”

강찬이 부르자 곽철호가 석강호나 제라르처럼 표정을 바꾸며 답을 했다.

“가능하면 사흘 정도는 돌아가면서 휴가를 다녀와. 이 상태에서 무리하면 다음 작전에 차질 생긴다.”

“알겠습니다.”

강찬은 대원들을 주르륵 돌아보았다.

“이번 작전에서 보여준 능력이라면…….”

정말 궁금한 표정들이었다.

“어디 내놓아도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수고 많았다.”

“고생하셨습니다.”

배가 적당히 차자 다시 커피를 한 잔 더 마셨고, 여기저기 대원들이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강찬은 비행기의 벽에 기대앉았다.

여자아이를 하나도 살리지 못했다.

웃고, 배불리 먹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도 가슴 한쪽에 죽은 여자아이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있었다.

아프리카에서처럼 한 명쯤은 구해주었어야 하는데.

힘이 더 있었다면, 미국 놈들이 함부로 미사일을 날리지 못할 정도로 힘이 있었더라면.

서울은 밤이다.

시차가 4시간 30분 정도 나니까 깊은 밤이 될 거다.

강찬은 한쪽에 두었던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강대경과 유혜숙, 라노크, 전대극과 김형정, 전부 전화를 기다릴 사람들이다.

강찬은 가장 먼저 김형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찬 씨! 김형정입니다.”]

소리 지르는 것처럼 커다란 목소리에 웃음이 먼저 나왔다.

[“고생했습니다.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대꾸할 틈도 없이 김형정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직 강찬은 한마디도 못했다.

[“찬아.”]

걸걸한 전대극의 음성이다.

[“애썼다. 정말 고생 많았고, 고맙다.”]

그의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우리 지금까지 이렇게 자랑스러웠던 적 없다.”]

강찬은 또 웃기만 했다.

[“우선 쉬어라. 남은 이야기는 얼굴 보면서 하자.”]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을 때까지 겨우 한마디 했는데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으으응.

비행기는 한국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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