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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만들어 보고 싶었다.
사무실의 입구는 역시나 카드와 지문, 둘 중 하나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리고 지하와 사무실 입구에 CCTV 카메라가 두 대나 있는 것까지, 기본적으로 삼성동 사무실의 보안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 놓은 느낌이었다.
철컥.
우희승이 카드를 대자 문이 열렸다.
강찬은 기가 막혀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회색 카펫을 깔아놓은 사무실 중앙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텅 비어 있어서였다.
왼편 창으로 회의실, 응접실, 오른쪽으로 커피 머신과 각종 음료가 준비되어 있는 바, 중앙 창가에 탁자, 그리고 오른쪽으로 책상 세 개가 전부였다.
“어서 오쇼.”
석강호가 강찬을 맞으며 오른쪽 안쪽을 가리켰다.
밖에서 보던 것보다 안은 훨씬 넓었다.
석강호가 가리킨 곳으로 가자 역시나 카드로 여는 문이 있고, 완벽하게 분리된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개인 사무실, 운동실, 맞은 편에 샤워실과 휴게실이 있었다.
“이곳이 대장 방이오. 난 여기, 옆방을 쓰기로 했고, 희승이와 애들은 이 방과 밖의 책상을 쓸 거요. 여직원이 한 명 필요한 것 같기는 한데 대장과 의논해서 하려고 아직 구하지 않았소.”
능숙한 부동산 업자처럼 석강호가 구조들을 설명했다.
“입구에서 대장 방으로 따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굳이 중앙을 들를 필요는 없수. 나중에 필요하면 파티션을 나눠서 다른 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거니까 생각해 보쇼. 가서 커피나 한잔 합시다.”
뻥 뚫린 공간으로 나왔다.
“뭘로 드실라우?”
“봉지 커피 있냐?”
“푸흐흐흐.”
석강호가 웃으면서 커피를 꺼냈고, 우희승과 이두희가 편안하게 책상에 앉았다.
“저길 보쇼.”
커피를 가져온 석강호가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삼성동 사무실에서 회오리처럼 바람을 빨아들이는 장치를 이곳에도 한 모양이었다.
“이제 의논할 일이 있을 때 주변 시선 눈치 보지 않아도 돼서 그거 하나 정말 좋소.”
강찬은 소파의 옆에 서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널따란 도로에 차가 가득했고, 멀리까지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경계는?”
“이 창이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이고, 방탄 페어 글라스요. 김 팀장이 지원해 주었소.”
강찬은 다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당장 저격을 하기에 마땅한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김 팀장이 완벽하게 보안을 갖추려면 적어도 5명의 직원이 있어야 한다고 합디다. 괜찮으면 김태진 대표님과 의논해서 그쪽 직원과 시스템을 도입할 생각이긴 한데 그것도 대장과 의논해서 결정할 생각이었소.”
강찬은 힐끔 석강호를 보았다.
“왜 그러쇼?”
“갑자기 똑똑해졌으니까 그렇지.”
“푸흐흐흐.”
석강호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강찬의 옆에 섰다.
“대장이 프랑스에 간 다음 생각 많았소. 작전 말고도 도움되는 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듭디다. 이건 내 나름으로 발버둥 치는 거요. 그냥 받아들이쇼.”
농담처럼, 창밖을 살피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진심이란 걸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다예.”
석강호가 긴장한 얼굴로 강찬을 바라보았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 보자.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을 계획할 때…….”
강찬은 창밖에서 시선을 돌려 석강호를 똑바로 보았다.
“네가 가장 앞에 있어.”
피식. 히죽.
“커피 다 식소.”
둘이서 웃으며 창가에 둔 탁자에 앉았다.
“야! 정서 불안 걸리겠다. 화분이라도 몇 개 가져다 놔라.”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강찬은 생각난 것처럼 우희승을 불렀다.
탁자로 다가온 우희승이 자리에 앉아 궁금한 얼굴로 강찬의 말을 기다렸다.
“우리 증평에 가서 본 이유슬 말이야. 집에 갈 때 보니까 오래된 소형 승용차를 타고 있더라고. 그런데 만약 군인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우희승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석강호를 힐끔 볼 때였다.
“병원에서 최종일 볼 때도 그랬어. 사치하거나 호사를 누리자는 건 아니지만, 최종일 안 식구가 입었던 티셔츠, 그거 팔꿈치가 헤져서 형편없던데 정말은 보상이나 급여가 어느 정도인 거야?”
뜻밖의 질문이어서인지 우희승은 우선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아는 대로 말해 봐.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대원의 가족들이 힘겹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러니까.”
“급여는…….”
우희승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특수팀은 그나마 급여가 많은 편인데, 생명 수당을 포함해서 받는 걸 전부 합치면 하사 급여가 1년에 3천이 조금 안 됩니다.”
강찬은 멍한 느낌이었다.
“죽은 대원은?”
“국가 보훈처에서 지정해 주는데 대략 한 달에 120만 원을 유족에게 줍니다.”
“후우.”
고개를 돌린 강찬은 나직하게 한숨을 토해냈다.
“이번에 희생된 대원들도 다 그런 거야?”
“예. 그나마 김 팀장님과 실장님이 힘써 주셔서 장례비와 위로금 등은 최고의 예우를 받았습니다.”
“그럼 유슬이는? 군인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면 나가야 할 거잖아?”
우희승이 잠시 머뭇거린 다음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 때문에 대원들끼리 돈을 좀 걷었습니다.”
기가 막혔다.
독립운동하는 시절도 아니고.
희생정신이 없다면, 투철한 사명감이 없다면, 누구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유슬이네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우선 근처에 월세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강찬은 숨을 내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라며 쭉 다녀왔는데 현실은 월세로 옮기는 거였다.
아빠 덕분에 모두 살았다고 하더니 군인 아파트에서 나가야 하고, 그나마 대원들이 도움 준 돈을 모아서 월세로 옮겨야 하는 거다.
월 120?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는 돈이다.
하지만 평생 아빠 없이 살아야 하는 딸에게 그건 너무 잔인하고 가혹한 짓이다.
“다른 대원들도 비슷한 거야?”
“형편이 나은 대원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대원들은 비슷하다는 거잖아? 그럼 최 장군의 유족분들은?”
“사모님께서 식당을 하십니다. 위로금과 연금 나오는 것 모두 대원들 가족에게 전해주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뭔가 잘못된 거다.
정작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은 곤궁한 삶을 면하기 어려운데 허하수 같은 놈들은 떵떵거리며 산다.
강찬은 결심을 세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예.”
“예.”
“오늘 돈 찾아줄 테니까 가서 이번에 희생된 대원들 전부 중형 아파트 하나씩 사주는 걸로 하고 우선 2억씩 주고 와.”
“알았소.”
우희승이 멍한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그리고 여기 임대료 나오는 거, 미쉘하고 의논해서 남는 돈 전부 유가족에게 공평하게 매달 전해 주라고 하고.”
석강호가 입에 힘을 꾹 주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강찬은 바로 전화기를 들어서 세실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차니! 어쩐 일이야?”]
“세실. 난데 다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내가 석강호란 분을 보낼 테니까 200억을 1억짜리로 찾아서 건네줘. 되겠어?”
[“그건 어려워, 차니! 뭐라고 해도 본인의 사인이 있어야 해.”]
“그럼 서둘러서 서류를 가져다줘.”
[“급한 일이야?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할게. 돈 준비해서 갈 테니까 바로 사인해 줘야 해. 아니면 우리 지점 사고 터져.”]
“새로 인수한 건물에 있으니까 그리 와서 전화해.”
[“알았어! 15분! 아니 20분 안에 도착할게.”]
전화를 끊은 강찬은 우희승을 보았다.
“우희승.”
“예.”
“증평의 대원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경계하는 요원들, 그렇게 1억씩 전해 줘. 그리고 최종일과 차동균은 3억씩 전해 주고. 마지막으로…….”
우희승이 숨을 나직하게 들이마실 때였다.
“최성곤 장군댁에 20억 드리고 와. 대한민국 특수팀 장군이셨던 분이다. 그분의 후손이 적어도 돈 때문에 식당을 하시는 일은 없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우희승이 먹먹하게 답을 했다.
강찬이 식은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보고 있을 때였다.
“저, 죄송하지만, 지금 근무하는 요원들에게 전하시겠다는 돈은 그냥 두시면 어떻겠습니까?”
강찬의 시선 앞에서 우희승은 결심한 듯한 표정이었다.
“모든 요원이 그렇게 받지 못하는데 이곳 경호 요원들만 돈이 생겼다면 오해의 소지도 있고, 또 다른 요원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있습니다.”
우희승은 꿋꿋하게 하고 싶은 말을 마저 꺼냈다.
“최성곤 장군님, 부상당한 최 조장, 그리고 특수팀은 다르지만, 국가정보원은 그런대로 급여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번은 제 뜻대로 해주십시오.”
우희승의 눈에 담긴 것은 자긍심이었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자부심일 수도 있었다.
이런 건 현장에 있는 사람이 가장 잘 안다.
“알았다. 내가 너무 감정에 치우쳐서 그랬나 보다.”
“아닙니다. 단지 저는…….”
강찬이 피식 웃자 우희승이 묘한 미소를 얼굴에 담았다.
“그럼 오늘 중으로 최장군 댁에는 다녀올 수 있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15분쯤 지나서 전화가 울렸고, 강찬과 석강호, 그리고 우희승이 1층으로 내려가 사인을 했고, 돈을 받았다.
“곧바로 다녀와.”
우희승이 망설이는 이유를 강찬도 분명히 알았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두희가 있잖아? 필요하면 같이 다닐 테니까 얼른 다녀오기나 해.”
강찬의 말을 들은 우희승이 그때야 인사를 하고 건물의 지하로 걸음을 옮겼다.
“차니! 외국에 있다고 들었어!”
세실은 반갑고 놀라운 얼굴이었다. 옆에 지점장이 있다가 명함을 주고 공손하게 인사를 전했다.
“모처럼 와주셨는데 어쩌지요? 제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요.”
“무슨 말씀을요! 앞으로도 필요하시면 언제고 연락 주십시오.”
대신 그 바람에 적당하게 헤어질 수 있었다.
세실과 헤어진 강찬은 바로 17층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이두희와 둘이 있는 사무실이다.
이번에는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만들어서 창밖을 보고 앉았다.
당장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할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처리할 조직 말이다.
창밖을 보며 강찬은 이유슬을 떠올렸다.
손가락이 부러진 채로 달리고 달려서, 고작 시레이션 하나 먹은 후에 죽었다. 그 와중에도 대원들에게 부담 주지 않겠다고 신음 한번 흘리지 않았던 대원이다.
그 아이에게 아빠가 평생 자랑스럽게 기억되었으면 싶었다.
“씨발!”
욕이 벌컥 나왔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조금 더 판단이 빨랐더라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당장 손에 쥐어지는 몇 푼의 돈보다 아빠가 훨씬 필요한 아이가 있는 거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감정을 채 가라앉히기 전에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차니! 건물에 있어?”]
미쉘이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음성으로 하는 질문을 들어 보면 세실과 통화한 것이 분명했다.
“어디야?”
[“7층! 우리 전부 7층에 있어. 정말 우리 건물에 있어? 맞아?”]
“그래. 지금 내려갈게.”
미쉘이 커다랗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끊은 강찬은 이두희에게 7층으로 가자고 알렸다. 아직 카드키를 받지 않았고, 사용하는 법도 제대로 몰라서 내려가는 건 몰라도 올라올 때 불편할 것이 싫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서 내렸고, 다시 카드키로 문을 열자 그제야 평범한 건물의 공간이 보였다.
‘디아이’란 간판이 커다랗게 달린 공간 앞에 선 강찬은 입구에서 벨을 눌렀다.
자동문이 열렸다.
사무실은 미쉘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처럼 세련되고 깔끔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강찬이 들어서자 연기자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커다랗게 떴고, 임수성, 김재태가 달려와 인사했다.
반갑다. 그런데 어쩐지 가라앉은 가슴이 쉽게 올라오지는 않았다.
“보스!”
미쉘은 완전히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달려왔다.
와락!
강찬은 달려든 미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언제 왔어?”
“지금.”
직원들이 있는 앞이다.
미쉘이 표정을 가다듬으며 강찬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벽에 못 보던 포스터와 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연습생들이 멋진 모습으로 담겨 있었고, 드라마 제목이 커다랗게 들어 있는 사진도 있었다.
미쉘의 방은 7층 창가여서 전망이 나쁘지 않았다.
경리 최유진이 커피를 주고 나갔을 때 미쉘은 반가움과 걱정을 담은 얼굴로 강찬의 맞은 편에 앉았다.
“차니. 무슨 일 있어?”
“그냥. 교육이 좀 힘들었었나 봐.”
미쉘이 강찬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변했어. 차니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거친 것들이 안으로 싹 들어간 대신, 그만큼 응어리가 커진 사람? 그런 느낌이야.”
차를 마신 강찬은 피식 웃으면서 잔을 내려놓았다.
드라마를 한다더니 하여간 표현은 죽인다.
“미쉘.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강찬은 석강호에게 했던 말을 미쉘에게 전해주었다.
“그런 거라면 오히려 잘 됐어. 지난번에 법인을 만들어두었으니까 이곳에서 차니의 배당 이익까지 그쪽으로 돌려놓을게. 그럼 차니가 원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참! 1층은 어떻게 할까?”
“그건 내가 오늘 아버지께 의논드려 볼 테니까 그다음에 결정하자.”
“그래, 차니.”
답을 한 미쉘이 강찬을 조심스럽게 보았다.
“정말 괜찮아?”
“괜찮다니까. 동료들 때문에 감정이 좀 복잡해서 그래.”
“이럴 때 위로 되는 사람 없었어?”
강찬은 시선만 들어서 미쉘을 보았다.
“차니. 이런 건 오래 두어서 좋을 것 없어. 이 건물 꾸미면서 차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은 알 수 있었거든. 그러니까 위로가 돼 줄 사람 있으면 만나. 내가 아닌 게 조금 아쉽지만, 오늘은 용서해 줄게.”
강찬이 피식 웃는 것을 본 미쉘이 코를 찡그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미영이란 학생이지?”
“응.”
이런 건 부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안 만나?”
강찬은 미쉘을 물끄러미 보았다. 어쩌면 미쉘에게는 잔인한 대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괜찮다니까. 그러니까 왜 안 만나는지 말해 봐. 응?”
“그냥. 어쩐지 이런 기분을 풀자고 누군가를 만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리고…….”
강찬은 슬쩍 창밖을 본 다음에 다시 입을 열었다.
“함께 일하다가 죽은 대원들이 있어.”
미쉘이 놀란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그놈들이 가슴에서 떠나질 않아. 남은 가족들을 본 건 처음이었어. 믿기지 않겠지만, 전에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내가 볼 필요가 없었거든. 그래서 대원들을 가슴에 담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가족들을 보고 나니까 그게 쉽게 털리지 않네.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왜 이런 소리를 미쉘에게 하는지, 그리고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입을 열고 나자 쌓여있던 것들이 나오는 것처럼 술술 나왔다.
“전에는 어땠었어?”
“전에? 글쎄, 전에는 이럴 때 눈이 번들거렸던 것 같은데? 그래서 누군가 날 건드리면 끝을 봤었던 것 같아.”
“그럴 때 미영이 만나면 좀 편해지긴 했었어?”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그! 차니는 사랑 정말 모르네.”
미쉘의 말을 듣자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 아프고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것도 사랑이야. 내가 미영이라면 차니가 그럴 때 날 찾아주는 게 정말 기쁘고 고마울 것 같은데?”
나이가 같고, 사는 게 비슷하다면 그렇겠지.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다.
그렇지만, 정말 서로를 이해하려면 다시 태어난 것까지 모두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만나면 좋은데 헤어질 때는 늘 그런 의문이 남는다.
강대경과 유혜숙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 아닐까?
강찬의 표정을 본 미쉘이 안타깝고 아프게 웃었다.
“미영이를 못 봤다니까 안아주지도 못하겠네.”
그래도 대원들 일을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이런 일이 가슴 한쪽에 웅크리고 있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으니까 말이다.
강찬은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죽어간 놈들이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이유슬이 자랑스럽게 살아갈 나라.
꼭 만들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