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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여길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강대경은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에도 종일 바빴다. 1년을 결산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해가 바뀌기 전에 재고차량을 처분해야 하는 자동차 판매업의 특성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요원으로 알고 있는 직원들이 실제로 자동차 판매에 열성이라는 것이었다.
권총을 소지한 국가정보원 요원이다.
평범하게 살아온 강대경은 평생 마주칠 일이 없던 사람들이 고객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면 고개가 갸웃해질 정도였다.
그것뿐이 아니다.
기존에 있던 직원들과도 호형호제하면서 실적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 온갖 진상 손님들에게 고개 숙이면서 말이다.
“대표님. 시간 됐습니다.”
“어? 그래요?”
강대경은 시계를 보며 확인하고 있던 컴퓨터 자료를 하나씩 정리했다.
“저기, 김 대리.”
“예, 대표님.”
강대경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아니에요.”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런 일이 지치지 않느냐는 것을 묻는 게 더 감정 상할 일이겠구나 싶어서였다.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 김 대리가 옷걸이에서 상의를 잡아 주었다.
“이런 것까지 하지 않아도 돼요.”
미안한 일이다.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 엄청난 시험과 고된 훈련을 통해 선발된 사람이 고작 평범한 강대경의 상의를 들어준다는 일이.
“가시죠.”
연달아 굵직한 일들이 있어서 요원들이 함께 움직이는 거다. 그러나 이렇게 개인비서처럼 바싹 붙어서 미안할 정도로 수행해 줄 줄 몰랐다.
주차장으로 움직이면서 강대경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강찬과 벌써 한 달째 통화를 하지 못했다.
중간에 일정이 변경돼서 2주 더 통화가 어렵다는 문자를 받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부모가 돼서 어떻게 맘 편히 그렇구나 하겠나.
유혜숙이 TV 앞에서, 아침에 따끈한 국을 뜨면서, 커다랗게 내쉬는 한숨과 자다가 몰래 거실로 나가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강대경은 모른 척 실없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꿈이 불안한 날 아침이면 유혜숙은 유난히 한숨이 깊었다. 호텔에서도 그러더니 집에 와서도 몇 차례 붉은 괴물이 아들을 향해 달려드는 꿈을 꾸었다고 불안해했다.
그러면서도 막상 아들과 통화할 때면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아들이 잘난 게 자랑스럽다.
뿌듯하다.
하지만 한순간도 걱정을 놓아본 적은 없다.
지하주차장에서 총격전이 있던 날, 승합차 옆을 달리는 아들을 보며 강대경은 간이 녹아서 없어지는 줄 알았다.
유혜숙이 목청껏 “아들!”이라고 외칠 때, 강대경은 이를 악물고 버텼는데 호텔에 도착한 후에 목이 뻣뻣해서 고생했을 정도였다.
부끄럽지만, 아버지로 꿋꿋한 모습을 보여야 했지만, 강대경은 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아들의 날카로운 눈빛이 유혜숙을 보며 부드럽게 바뀌는 것도 좋았고, 하나둘 고민하는 문제들을 불쑥 찾아와 의논할 때, 전화로 유혜숙이 상처받지 않게 도와달라고 할 때, 강대경은 그런 아들이 정말 좋았다.
보고 싶다.
손을 뻗어서 커버린 아들의 뒤통수를 쓸어줄 때, 어색하지만 가끔 기회가 있어서 녀석의 든든해진 어깨를 감싸 안을 때, 세상 그 무엇에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잘 있을 거다.
아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무사한 얼굴로 돌아올 거다. 그래서 또 세 식구가 함께 앉아서 아침 먹고, 토요일이면 치킨 시켜놓고 웃으며 영화 볼 수 있을 거다.
사무실이 2층이라 지하주차장은 주로 계단을 이용한다.
함께 퇴근하는 유혜숙이 조금 늦게 내려오기는 하는데 시간은 요원들이 알아서 조절하기 때문에 딱히 늦거나 오래 기다리는 일은 없었다.
김 대리가 사무실을 나서며 지하 주차장 요원들의 위치를 확인했고, 평소처럼 둘이서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 같은 날은 우리 김 대리도 집에서 가족과 함께했으면 좋을 텐데 미안하네요.”
김 대리가 강대경을 향해서 보기 좋은 미소를 보였다.
“대표님께서 모르시는 것 같아서…….”
입을 연 김 대리가 위와 아래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를 슬쩍 살피며 말을 계속 이었다.
“대표님과 사모님 경호하는 일은 언제고 휴직이나 이직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신청을 하면 대번에 20명쯤 달려들 겁니다.”
강대경은 이해하지 못해서 김 대리에게 시선만 주었다.
“저희 모두 아드님께서 업무를 수행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가진 걸 전부 던질 각오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대경은 얼른 고개를 앞으로 향해 계단을 보았다.
아버지로 이런 말을 들으면 괜히 고맙다.
그리고 지독하게 아들이 보고 싶다.
오늘처럼 크리스마스 캐럴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날은 더욱 그렇다.
끼이익.
김 대리가 주차장의 문을 열고 먼저 밖을 확인한 다음 강대경을 안내했다.
오늘은 유혜숙과 밖에서 저녁을 먹을까?
차로 다가가던 강대경은 얼른 김 대리를 살폈다.
평소와 다르게 요원 세 명이 모두 나와서 차를 둘러싸고 있어서다.
김 대리는 얼굴에 미소를 감추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눈치를 살피며 차에 다가간 강대경은 그만 입술을 삐죽이는 울음이 나오고 말았다.
강찬이다.
요원들 틈에 있던 아들을 보는 순간, 그 아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것을 보는 순간, 세상이 다 없어진 것처럼 아들만 보였다.
“아버지.”
“이 녀석이…….”
컸다. 그 사이 불쑥 커버린 아들이 강대경을 안아주고 있었다.
“죄송해요.”
“말을 하고 와야지!”
좋았다.
세상 그 무엇보다 지금 아들을 안고 있는 것이 좋았다.
어디 얼굴은? 어디 상한 곳은?
이 녀석이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이렇게 불쑥 컸지?
“엄마한테도 연락 안 했어?”
“예.”
강대경은 실없이 웃었다.
혼자 당한 게 아니라는 것과 유혜숙이 얼마나 기뻐할지를 떠올려서다.
끼이익.
때마침 주차장의 문이 열리고 여자 요원이 먼저 나서는 것이 보였다.
“이리 와라.”
강대경은 짓궂게도 강찬을 가리고 섰다.
눈치 빠른 김 대리가 강대경의 곁에서 강찬을 가려주었다. 강찬이 허리를 숙여서 강대경의 어깨에 고개를 숨기고 유혜숙을 살폈다.
요원들이 잔뜩 모여서 강대경을 싸고 있는 모양이어서 유혜숙은 당연히 당황한 얼굴이었다.
“여보?”
“다 끝났지.”
“응.”
유혜숙이 겁먹은 얼굴로 강대경의 좌우를 살핀 직후였다.
불쑥.
강대경의 어깨 위로 강찬의 얼굴이 올라왔다.
“어?”
유혜숙은 마법에 걸려 굳어버린 사람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강대경이 비켜주었고, 강찬이 유혜숙을 안아주었다.
“어머니.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흐으. 흐으으.”
“보고 싶었어요.”
“이이이-잉.”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만큼 울음소리가 이상했는데 누구도 그게 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총격전이 있을 때 승합차의 옆을 쩔뚝이면서 달리던 아들, 어느 날 갑자기 바뀐 것처럼 전혀 엉뚱한 삶을 살아가는 아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엄마다.
강찬의 등을 꽉 부여잡고 서럽게 우는 유혜숙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여자 요원은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서 코를 훌쩍였고, 남자 요원들은 시선을 주변으로 돌리며 경계를 핑계로 붉어진 눈을 피했다.
“이제 괜찮으세요?”
“응.”
눈물을 닦아낸 유혜숙이 억울한 눈으로 강대경을 흘겨보았다.
“왜?”
“당신은 알고 있었지?”
“아니야.”
그렇게 분위기가 진정된 다음이다.
“아버지, 괜찮으시면 저녁은 직원들하고 같이 먹을까 하는데 어떠세요?”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당신은 어때?”
“그럼, 좋지. 나도 서운했어.”
강찬은 시선을 돌렸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야?”
“오늘은 제가 맡고 있습니다.”
김 대리가 얼른 답을 했다.
“밖에 우희승도 있으니까 함께 저녁 먹자.”
“오늘은 세 분이 오붓하게 드시고 저희는 다음에 함께 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세요.”
유혜숙이 나섰고, 강대경도 “괜찮으면 같이 갑시다.”하고 나섰다.
김 대리는 강찬의 눈짓을 받고는 반가운 얼굴로 왼손을 들어 무전을 보냈다.
“식당을 예약하지 않아도 될까?”
“준비해뒀어요. 오늘은 어머니 근사하게 모실게요.”
“그래?”
“가세요. 장소는 우희승이 알고 있으니까 직원들 전부 그리로 오라고 해줘.”
“알겠습니다.”
선두를 지킬 요원의 차가 대기하자 강찬은 강대경, 유혜숙과 한 차를 탔다.
“어디로 가니?”
“이 앞에 인터내셔날 호텔을 예약했어요.”
“휴가 낸 거야?”
유혜숙은 이제야 마음이 좀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교육 끝나서 돌아온 거예요.”
“정말?”
“예. 교육 일정이 당겨지느라고 전화 못 드린 거예요. 이제 정말 끝났어요.”
강대경이 슬쩍 강찬을 돌아본 뒤에 앞을 보았다.
“잘 됐다, 아들.”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에 앞과 뒤에서 요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그것뿐이 아니다.
호텔에서 바로 강대경의 차를 챙겼고, 매니저 두 명이 입구에 있다가 강찬을 맞았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둥그렇게 둘러싸다시피 강대경과 유혜숙을 챙기며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다 같이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한쪽을 완벽하게 막았고, 기다랗게 연결된 탁자에 적당한 간격으로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강대경과 유혜숙은 은근히 놀라는 눈치였다.
예상보다 의자가 많았다.
“아파트에 배치되었던 직원들하고 비번들도 부를까 해서 넉넉하게 준비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 잘했다. 고생하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예, 아버지.”
직원이 안내해 주어서 가운데 강대경과 유혜숙이 자리했고, 강찬이 맞은 편에 앉았다.
잠시 후, 우희승과 이두희가 들어왔고, 이어서 김 대리를 비롯한 강유 모터스 직원들과 재단 직원들, 그리고 비번 직원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이젠 제법 얼굴을 익혔고, 정든 것도 있어서 반갑게 앉았는데 모르는 얼굴들도 들어왔다.
“고생해줘서 고맙다.”
강찬이 일어서서 고맙다고 인사를 할 때 그들은 모두 뿌듯해 하는 표정이었다.
코스요리다.
와인이 나왔고, 모두 편안하게 먹었다.
강대경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건배를 제의했고, 이어서 강찬이 두 분을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두 번째 건배를 했다.
4인조 악단이 잔잔하게 연주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는 것도 무척 즐거웠다.
유혜숙은 시종일관 행복한 얼굴이었다.
“어머니. 저 저녁에는 증평에 잠시 다녀올게요.”
덜컥 겁이 난 얼굴로 유혜숙이 시선을 들어서 강찬은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전에 함께 일했던 대원 중에서 부상당한 대원이 있어서 잠깐 들러보려구요. 바로 올 거예요.”
아파트 주차장에서 총을 맞는 직원들을 보았던 유혜숙이다. 곧바로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생각했다. 그런 자리는 꼭 가 봐야지. 밤에 길이 많이 막힐지 모르니까 여차하면 내일 와도 된다.”
“봐서 전화 드릴게요.”
“그래라.”
두 시간에 걸친 식사를 끝내고 다시 20분쯤 차를 마시고 나서 자리가 끝났다.
모두 일어나서 차례로 인사를 했는데 강찬은 요원 한 명, 한 명의 손을 전부 잡아주었다.
“고맙다.”
“고생하셨습니다.”
강대경과 유혜숙은 요원들이 왜 그렇게 강찬에게 ‘고생했다.’라거나 ‘고맙다.’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뜻을 전하고 있는 것만은 알았다.
호텔에서 식사를 마친 강찬은 다시 한 번 유혜숙을 안았다.
“건강하게 돌아와 줘서 고마워, 아들.”
“어머니 봬서 정말 좋아요.”
강대경은 소원하던 강찬의 머리를 쓸어주며 행복했다.
호텔에서 두 사람과 헤어진 강찬은 약속한 대로 삼성동 사무실로 움직였다.
전대극, 김태진, 김형정, 석강호가 기다리고 있다가 강찬을 맞았다. 특히나 지난번에 얼굴을 못 봐서 서운해하던 전대극은 아예 조카를 오랜만에 찾은 삼촌처럼 강찬을 반겨주었다.
“저녁은 맛있게 먹었어?”
“예.”
전대극은 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처럼 강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실장님. 이대로 출발하시죠. 시간이 늦을지 모릅니다.”
“그래. 그러자.”
일행은 그렇게 사무실을 내려와서 강찬, 석강호, 전대극이 한 차로 움직였고, 김태진과 김형정이 한 차로 움직였다.
“석 선생. 이렇게 마음 써줘서 고마워.”
“몰랐다면 모를까, 듣고 나서는 무조건 내려갈 생각이었습니다. 마침 대장이 같이 갈 수 있어서 더 잘됐습니다.”
“김 팀장에게서 전해 듣고 느낀 바가 많아. 우리는 아직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제대로 기억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차츰 좋아지겠지요.”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데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이거 늦겠소.”
“그냥 달려. 정 안 되면 딱지 끊자.”
강찬이 답을 하고 난 직후였다.
“잠깐만 그대로 가 봐.”
전대극이 말을 하고는 전화를 꺼냈다. 그리고는 어딘가에 전화해서 차량의 위치와 목적지를 설명했다.
5분쯤 지나서였다.
위잉. 위잉. 위잉.
경찰차 두 대가 빠르게 달려와서 강찬이 탄 차의 앞에 섰다.
이런 방법이 있었다.
덕분에 늦을 뻔했던 길을 예정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증평의 부대에 들어서자 최성곤이 사용하던 막사가 열리고 부관과 낯빛이 하얀 차동균이 힘겹게 걸어 나왔다.
강찬이 다가가자 차동균이 경례를 붙였다.
“뭐하는 거야?”
강찬은 열린 문으로 안쪽에 놓인 침대와 링거대를 보고는 차동균을 노려보았다.
“여길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강찬을 보자 차동균은 감정이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전대극도, 김태진도, 김형정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보내드려. 그리고 꿋꿋하게 버티는 모습을 보여드려.”
“알겠습니다.”
차동균의 답을 듣는 사람들이 모두 알았다. 그가 강찬을 보고서야 마음을 잡을 힘을 얻었다는 것을 말이다.
“같이 갈 거야?”
중위 예복을 갖춰 입은 차동균이 “예.” 하고 답을 할 때 대원들의 막사가 열리고 역시나 예복을 깔끔하게 갖춰 입은 대원들이 몰려나와 일행에게 인사했다.
“이거야 원. 완전히 아버지 잃은 동생 놈들이 맏형을 만난 꼴이니.”
전대극의 탄식을 들은 김태진이 쓰게 웃었다.
대원들의 얼굴에 피어나는 반가움, 그리고 그들의 눈에 올라오는 기운을 보고 다른 말을 하기는 어려웠다.
“늦겠다. 일단 가자.”
준비된 버스를 대원들이 탔고, 강찬 일행은 왔던 대로 승용차에 올라탔다.
가장 앞을 부관과 차동균이 탄 승용차가 달렸고, 그 뒤로 우희승과 이두희, 강찬이 탄 승용차, 김태진과 김형정, 그리고 마지막이 버스의 순이었다.
부대를 빠져나와 국도를 올라타면서 오른쪽으로 20분쯤 달리면 군인들 전용 아파트가 나온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낡은 아파트다.
그걸 지나서 5분쯤 구불거리는 길을 가자 교회가 나왔다.
강찬을 비롯해 전원이 교회 앞에 섰다.
부관이 안쪽으로 먼저 들어갔고, 잠시 후에 안에서 합창단 지휘자 복장의 여자가 나와서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다시 들어갔다.
추운 날씨다.
입에서 입김이 올라왔지만, 강찬을 비롯한 누구도 추운 줄을 몰랐다.
10분쯤을 그렇게 기다릴 때였다.
아까의 여 지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세요.” 라고 답을 했다.
강찬을 시작으로 주르르 안으로 들어가자 교회에 앉아있던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뒤로 돌아왔다.
개중에는 군인들도 있었는지 차동균과 부관을 보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독주를 하는 이유슬 양의 아버님과 함께 근무하셨던 분들입니다. 이유슬 양을 박수로 맞아주세요.”
놀라움 속에서 박수가 울렸다.
중앙의 계단에 강찬과 일행이 섰고, 대원들은 경계를 서듯 뒤쪽에 널따랗게 펼쳐 섰다.
반주가 연주되고 이유슬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곡이다.
손가락이 부러져 죽은 대원의 딸.
아빠가 죽은 것을 못 받아들여서 말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다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이다.
그 딸을 위해 대원들이 이 자리를 준비했고, 석강호가 알려서 다 같이 왔다.
객석의 가장 앞에서 여자 한 명이 손을 덜덜 떨면서 서럽게 울 때였다.
노래를 부르던 이유슬이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목을 놓아서 울기 시작했다.
“아빠아!”
강찬은 무엇에라도 끌린 것처럼 앞으로 나갔다.
무대는 강찬의 가슴 높이에 있었다.
“이리와.”
“어엉! 어어엉!”
“그래, 괜찮아.”
이유슬이 강찬에게 몸을 숙였고, 안겼으며, 목을 부여잡고 울어댔다.
강찬은 중앙통로를 걸어 대원들의 앞으로 이유슬을 데려갔다.
“우리도 아빠를 절대로 못 잊어.”
“으앙! 으아앙!”
“아빠는 정말 멋진 분이셨거든. 그러니까 아빠를 억지로 잊지 않아도 돼.”
목을 잡고 울어대는 이유슬에게 차동균이 다가왔다.
“유슬아. 아저씨가 아빠 대신이야. 알았지?”
그 뒤로 대원들이 한 명씩 다가와서 이유슬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아빠가 유슬이 노래 듣고 싶으실 텐데, 오늘은 이만 할래?”
“정말 아빠가 내 노래 들어요?”
“분명히 들으실 거야.”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리는 사이 강찬은 이유슬을 다시 무대에 올려주었다.
군복을 보면서 이유슬은 마음이 안정된 모양이었다.
“아빠! 꼭 들어!”
어린 딸의 바람이 교회 건물에 가득 찬 후에 아빠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