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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가만 있겠냐?
“강찬 씨!”
김형정과 눈인사를 마친 강찬은 고개를 힐끔 돌려 이승렬을 보았다.
“내가 가면 다 끝나는 거지?”
이승렬은 곧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당당할 줄 몰랐고, 무엇보다 고등학생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후회할 정도로 눈빛과 태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가 있어. 저녁에 따로 연락하고 갈 테니까.”
“같이 가야 합니다.”
염병! 염병! 염병!
수사관들이 다 보고 있는 앞에서 부부장 검사가 고등학생에게 존댓말을 쓰다니! 그것도 놈은 반말을 찍찍 지껄이고 있는데 말이다.
김형정에게 시선을 돌리던 강찬이 멈칫한 다음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좋은 말로 할 때 가 있어. 여기 팀장님이나 다른 분들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거니까. 아니면 정말 끝까지 가 보든가?”
강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승렬은 둘러싸고 있던 다섯 명의 표정이 확실하게 바뀐 것을 알았다. 강찬이 나타나기 전에도 물론 달려들려고 했지만, 지금은 아예 물러선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때 강찬은 시선을 돌리다가 피식 웃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최종일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이 보였다.
“정말 검찰에 출두할 거요?”
이번에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답을 대신했는데 이승렬은 더 강요하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부 506호로 나오면 됩니다. 일단 믿고 기다리겠소.”
“알았어.”
마른 침을 삼킨 이승렬이 잡상인 쫓겨나듯 물러나 승합차에 올라탔다. 강찬이 있기 전에는 어떻게 들이대 볼 만했는데 막상 강찬을 보고 나자 당장은 건드려서 안 된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
승합차 세 대가 출발하고 난 다음이었다.
강찬과 김형정은 최종일의 앞으로 다가갔다.
“뭐하는 거야?”
“중국에서 이야기 듣고 날아왔습니다. 차동균 중위도 근처에 있습니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는 거?
솔직히 넌덜머리가 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강대경을 지켜주는 김형정을 보고, 또 중국에서 날아와 식은땀 뻘뻘 흘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최종일을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예쁜 여자라서 마음이 흔들린 거라면 조금 덜 억울하지 않을까? 시커먼 사내들, 그것도 각진 턱에, 가슴과 허리에 총상을 입은 사내들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우선 자리를 옮기시죠.”
김형정의 시선이 강유 모터스를 향한 것을 보고 강찬은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만나보고 싶다.
강대경, 그리고 유혜숙을 만나서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검찰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였다.
“병원에 가 있어. 시간 봐서 갈게.”
“저한테는 안 오셔도 됩니다.”
최종일이 전한 답을 들으며 강찬은 김형정이 안내한 차에 올라탔다.
삼성동으로 가는 동안 전화를 걸었고, 지하주차장을 통해 5층에 올라가자 석강호가 기다리고 있다가 히죽 하고 웃었다.
“어서 오쇼. 몸은 괜찮소?”
강찬이 “응. 보면 알잖아.” 하고 답을 할 때 김형정이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아침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비행기에서 먹었어요.”
김형정의 질문에 답을 하고 셋이서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보셨던 대로입니다. 만약 영장을 집행하겠다고 하면 바로 김성웅 총장부터 그곳에 있는 검사들을 체포할 생각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죄가 없는 거잖아요?”
“강찬 씨의 아버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허하수 의장을 구하려는 기획수사지, 정당한 수사는 아닙니다.”
강찬은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면서 당장 강대경이 구속되지 않은 것만으로 한시름 덜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제가 오후에 검찰에 나가죠.”
“강찬 씨?”
“죄가 있다면 벌을 받는 게 맞지요. 걸리는 게 있다면 주차장 박기범이와 샤흐란 뿐인데, 다른 게 더 있나요?”
“디아이 인수 과정에서 김선일이 회사를 빼앗겼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서정 모터스로 계약되어야 할 공트 자동차 판매권을 샤흐란을 협박해서 강유 모터스로 뺏어왔다는 것 정도입니다.”
“샤흐란은 살아 있잖소?”
석강호의 말에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끼 데려오면 샤흐란을 살해한 죄는 털릴 거고, 주차장 박기범이야 내가 만나든가 해서 해결하면 되겠소.”
“강찬 씨가 들어왔으니 그 일은 우리가 해도 됩니다. 어지간한 건은 정당방위가 가능해서 문제 될 것도 없습니다.”
“오광택이 만나볼 수 있을까요?”
김형정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어차피 범죄단체로 엮으려던 생각은 포기한 것 같으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말을 마친 김형정이 책상에 붙은 전화번호를 검지로 쭉 훑었다.
***
유리 부스 안으로 책상이 놓였다.
변호사 접견을 하는 장소를 이용한 소위 특별접견이어서 그런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가운데를 막은 유리는 없었다.
달칵.
문이 열리며 오광택이 들어섰고, 뒤따라 교도관 두 명이 함께 왔다.
피식하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
부스 안으로 들어온 오광택이 맞은 편에 앉았고, 그 옆으로 교도관이 면담기록을 펼쳐놓고 적을 준비를 마쳤다.
오광택이 입술을 묘하게 움직이며 멋쩍게 웃었다.
“가뜩이나 너랑 나랑 식구라고 난린데 뭐하러 와? 얼른 가서 공부해라.”
어떡해서든 강찬과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기록장에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떻게 된 거냐?”
오광택이 교도관을 힐끔 보았다.
면회 기록부에는 ‘건강을 묻고 공부 잘하라, 배는 고프지 않으냐?’ 따위의 형식적인 내용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우리 쪽에서 얘기해 놓은 게 있으니까 안심하고 말해도 돼.”
강찬의 설명을 들은 오광택이 그제야 안심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작업 당한 것 같다. 처음 올 때부터 이상했거든. 야! 평범한 놈들이 연장을 들고 다니는 거 봤냐? 검찰에서는 전부 식당에 있던 거라는데 그 조그만 가게에 사시미칼이 다섯 자루나 있다는 게 말이 돼?”
강찬은 듣고만 있었다.
“나야 괜찮다만, 도석이는 아무래도 상태가 안 좋다. 그놈이라도 병원에 나가서 재판받게 해 주라.”
“필요한 건?”
“여기서 여자하고 고래고기 빼고 내가 갖고 싶은 건 다 가져.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너나 조심해. 하긴 이렇게 온 거 보니까 너는 무사한 모양이다만.”
“저녁에 검찰에 가기로 했다.”
“허! 이 씨, 미친 새끼! 그걸 나가겠다면 어떡하냐? 적어도 내가 형이 확정된 다음에 잡히든가 해야지!”
“내가 알아서 할게.”
“정말 괜찮겠냐?”
“그렇다니까.”
오광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많이 느꼈다. 아무리 점잔 떨고 무게 잡아봐야 깡패는 깡패인 거더라. 우리는 손만 대면 무조건 잡아넣을 구실이 있는 거야. 또 그렇게 살아왔고. 후우! 일 끝나면 그냥 모르는 척 살자.”
강찬이 피식 웃는 것을 본 오광택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새끼가 사람이 진지하게 말을 하는데 꼭 씨발, 기분 나쁘게 웃어?”
“이번에 나오면 이제는 마음 고쳐먹고 살 준비해.”
“뭔데? 카지노 허가권이라도 하나 받았냐?”
“확!”
강찬과 오광택이 동시에 웃었다.
“나는 됐다. 어찌 되어도 좋으니까 도석이랑 철범이는 좀 챙겨주라.”
“깡패 새끼가 의리있는 척하기는?”
둘이서 다시 웃을 때 교도관이 “시간 됐습니다.” 하고 상체를 세웠다. 노트에는 시시껄렁한 말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필요한 거 없냐?”
“그냥 가! 필요하면 내 방에 들러서 훈제 닭이나 몇 개 가져가던가?”
“닭이 있어?”
“동그랑땡, 땅콩, 빵, 과자, 다 있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애들 좀 챙겨줘.”
자리에서 일어나 주고받은 말인데 교도관은 그렇게 심하게 재촉하지 않았다.
“오광택.”
“왜?”
강찬의 진지한 표정을 본 오광택이 고개를 갸웃했다. 못 본 기간이라야 고작 한두 달인데 그 사이 강찬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 까닭이었다.
“이번에 잘 생각하고 나와. 정말 깡패짓 그만하겠다면 기회를 만들어볼게.”
“진심이냐?”
강찬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것이 오광택에게는 더 확실한 답으로 보였다.
***
김성웅은 미소 반, 걱정 반의 얼굴이었다.
“오후에 들어온다면 조사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구속하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이승렬이 기가 꺾인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말씀하셨던 기자들까지 전부 물러나 있었습니다. 총장님, 이 사건은 원점에서 다시 한 번 검토하시는 게…….”
김성웅의 눈빛을 받은 이승렬이 말꼬리를 흐렸다.
“강찬이란 놈은 어땠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 봐야 고등학생 아냐?”
“아닙니다, 총장님. 절대로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국가정보원에서 나이를 속여 위장 신분을 만들어준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정도라고?’
김성웅은 확연하게 놀란 얼굴로 이승렬을 보았다.
“더 놀라운 것은 강찬이를 대하는 요원들의 태도였습니다. 가식 없이 완벽하게 상관을 대하는 모습이었는데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새끼 정체가 뭐야?”
김성웅이 짜증 섞인 얼굴로 욕을 뱉어냈다.
분명 굵직한 줄거리를 잡았다.
통상 이런 경우는 정부나 여당에서 적당하게 협상이 온다. 허하수 의장을 풀어줄 테니까 이쯤에서 그치자던가, 그도 아니면 적당한 보상을 해줄 테니까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는 정도의 협상은 와야 하는 거다.
“내가 모르는 게 도대체 뭐가 있는 거지?”
김성웅은 허하수의 모습을 그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허상수가 정말 간첩질을?
한나라의 국회의장과 국회의원이 뭐 얻어먹자고 그런 짓을 했을까?
아니다!
김성웅은 속으로 단호하게 외쳤다.
이 자리를 준 것이 허하수고, 허상수다. 지금 밀려나면 앞으로 김성웅이 설 자리는 영영 없어질 수 있는 거다.
‘승부야, 승부!’
김성웅은 법무부 장관까지는 야심이 있었다.
***
“이 일은 강찬 씨 외에는 해결할 사람이 없습니다.”
황기현은 전에 없이 강한 어조였다.
이전에 전대극이 주로 말을 하고 묵묵하게 듣고 있었다면 지금의 황기현은 눈에 불을 켜놓은 것 같았다.
“허하수 의장이 북한에 요구했던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이번에 북한을 공격하는 것으로 미국은 오래된 무기를 털어내고, 군수산업을 통해 내수 시장을 활성화할 계획이 분명합니다. 걸프전과 아프카니스탄에서 전쟁이 벌어진 지도 이미 20년이 지나서 미국 군수산업 자체가 한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유라시아 철도도 자연스럽게 묶입니다.”
“끝이 없군요.”
“유라시아 철도의 전과 후로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확실하게 바뀐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문재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황기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러시아, 중국, 그리고 한국이 힘을 합해서 미국을 압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강찬 씨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말의 끝에 황기현이 “죄송합니다, 각하.” 하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내가 부족한 것은 사과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의 우리 내부사정이 하나로 모이질 않아서 그렇지요. 강찬 학생의 일만 해도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싸우고 있는 꼴이니……. 북한의 반응은요?”
“허하수 의장이 아마 우리 돈으로 2조가량을 전해주기로 했던 모양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국회의장의 자리에서 약속한 것이라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한, 우리와 대화는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살아남을 수가 없을 텐데요? 미국을 이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면 중국은 자동으로 개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북한은 최악의 상황에 핵무기를 터트릴 계획입니다. 물론 미국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대신 한반도는 완전히 망가져서 돌이키기 어렵게 됩니다. 플루토늄의 요오드 반감기는 2만 4천 년이고, 완벽하게 해소되는 데는 꼬박 10만 년이 걸립니다.”
“또 벼랑 끝 전술이군요. 그때까지 지구가 남아나 있을지 그게 더 궁금합니다.”
문재현의 농담에도 황기현과 전대극은 묵묵한 얼굴이었다.
“미국은 어떤 형태로든 얻는 것이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도 유라시아 철도의 한 축이 무너지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일본의 요구와도 꼭 맞는 일입니다.”
답도 없는 상황에서 숙제만 잔뜩 늘어지는 꼴이었다.
“각하. 꽃을 피우려면 우선 손과 발에 흙이 묻어야 합니다. 정당한 방법과 누구에게도 손가락질받지 않는 공정한 태도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필요한 일입니다.”
“강찬 학생은요?”
“오후에 검찰에 출두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문재현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물론 강찬 학생이 샤흐란이나 혹은 깡패조직과 마찰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샤흐란 이후의 일은 모두 정당방위입니다. 제가 국가정보원을 맡은 동안은 강찬 학생을 지켜낼 것입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재현이 책상에 두었던 서류를 들여다보고는 시선을 들었다.
“자칫하면 정치 공작이 됩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강찬 씨가 대한민국에 애정을 가지고 한반도를 살릴 수 있다면 구정물은 제가 뒤집어쓰겠습니다.”
“미국 대사가 굳이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이 문제를 의논하려는 것은 아닐 테고?”
“허하수 의장을 풀어주라는 뜻을 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허하수 의장이 전해 주려던 자료와 북한의 연결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죄를 허하수 의장에게 미룰 것입니다.”
문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하. 인재를 키우자고 하셨다면 적어도 국가정보원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폭은 주십시오.”
“정권 유지에 활용되는 일이 없으리라고 약속하겠습니까? 그것이 가장 무섭습니다. 지금은 국가를 위한 일이 되겠지만, 자칫 잘못되어서 한낱 정권을 유지하는 도구가 될까 봐 그것이 걱정입니다.”
“강찬 학생이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한번, 두 번, 맞아버릇하면 그것이 당연한 일이 된다고 말입니다. 적어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만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문재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하게 한숨을 토해냈다.
“알겠습니다. 이후의 일은 모두 국가정보원에 일임합니다. 나는 여당을 다독이고, 야당 대표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황기현의 대답이 끝난 다음이었다.
“원장님. 러시아와의 석유 개발권에 다른 문제는 없지요?”
“지금처럼만 해주시면 됩니다. 남은 후속 조치들은 러시아 마피아와 조율 중입니다.”
“기가 막히는 나라가 또 있군요. 국가 기관에서 승인을 해야 마피아와 의논을 할 수 있다니.”
“그것이 물러난 KGB 요원들이 사는 길입니다. 요즘은 핵잠수함을 구해달라면 미사일이 탑재된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말해달란다고 들었습니다.”
“요원들의 자긍심이 떨어지면 어떤 일이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농담이군요.”
“진담이라고 들었습니다.”
문재현이 기가 막힌 투로 웃었다.
***
점심을 먹은 강찬은 라노크를 찾았다.
“강찬 씨!”
불과 며칠 못 본 건데 이렇게까지 반가워할 줄은 몰랐다.
“유럽을 대신해서 강찬 씨에게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노크는 모처럼 가면을 벗은 표정으로 강찬을 대하고 있었다.
“검찰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선 아버지의 구속을 막았고, 오후에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따라 주었다.
“국가정보원에서 강찬 씨를 위해 정치공작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려 하고 있습니다. 보기보다는 국가정보원장이 강단이 있더군요.”
“정치 공작이라뇨?”
강찬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한 모금 마신 찻잔을 내려놓으며 라노크에게 반문했다.
“미국이 북한과의 전쟁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은 20%가 안 됩니다. 국가정보원은 그 일을 계기로 허하수 관련자들을 단숨에 제압할 계획일 겁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건가?
강찬의 표정을 본 라노크가 보기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 씨를 건드린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샤흐란의 일은 개인적인 일이라 처벌을 받아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데 국가정보원이 오욕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웃겼다.
“국가를 위한 일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멋모르고 시작해서 배신감이나 실망을 느낀 다음,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단계입니다. 요원 성장의 삼 단계라고도 하지요.”
“정말 그런 것이 있습니까?”
“국가정보원에 물어보셔도 답을 해줄 겁니다.”
세상에는 하여간 별의별 것이 다 있다.
‘나는 어느 단계인 거지?’
라노크의 말을 들으며 강찬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
대사관을 나온 강찬에게 우희승이 전화를 건네주었다.
“여보세요?”
[“강찬 씨. 황기현입니다.”]
“예, 원장님.”
그 사이 차는 강남을 향해 움직였다.
[“오후에 검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김 팀장과 함께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도 되나요?”
[“됩니다. 조치해 놓았으니까 삼성동에 들러서 김 팀장과 함께 움직이세요. 그리고 일을 번거롭게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일부러 그러신 거 아닌데요.”
적당하게 전화를 마친 강찬이 삼성동에 도착하자 입구에 김형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찬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요원이 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