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204화 (20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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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가만 있겠냐?

링거, 삑삑거리는 기계, 그리고 몸에 연결된 몇 가닥의 줄, 잠에서 깬 것처럼 의식이 돌아왔을 때 익숙한 병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블랙헤드는 해결된 모양인데 강대경이 구속된 건 아닌가 싶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시선을 돌리자 문 앞에서 손을 맞잡고 있던 프랑스 요원 두 명이 강찬에게 다가왔다.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던 거지?”

“이틀입니다. 무슈 강.”

젠장! 젠장! 젠장!

강찬은 몸을 일으키며 코 너머로 꽂혀 있던 관을 뽑았다.

“전화기는?”

“여기 있습니다.”

요원 한 명이 탁자 서랍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역시나 가장 먼저 찾은 건 석강호의 번호였다.

[“여보세요? 어디쇼? 괜찮은 거요?”]

걱정 가득한 질문이 연달아 날아들었다.

“아버지는? 아버지 어떻게 되셨냐?”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힘겨루기 양상으로 버티고 있소. 경호 요원 전체가 독이 잔뜩 올라서 검찰도 함부로 달려들지는 못하는 눈치요.”]

“내가 들어가면 되는 거냐? 그때까지 버틸 수 있겠어?”

[“지금 들어오면 일이 복잡하게 꼬일 거요. 우선 통화부터 해보쇼. 몸은 괜찮소?”]

“당장은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아. 그럼 김 팀장님과 먼저 통화해보고 전화할게.”

[“알았소.”]

전화를 끊은 강찬은 곧바로 라노크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

[“강찬 씨! 깨어났습니까? 몸은 좀 어떤가요?”]

“당장은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강찬이 대답할 때 밖으로 나갔던 요원 한 명이 커다란 쟁반에 수프와 빵, 그리고 몇 가지 먹을 것을 가지고 들어왔다.

[“다행입니다. 병원에서도 특별한 증상을 찾지 못했고, 연구원들의 말로도 에너지파가 잡히질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블랙헤드에서도 에너지 파장은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결국, 그저 그런 돌멩이가 되어 버린 건가?

뭔가 시원섭섭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아차! 지금은 그따위 감정에 흔들릴 때가 아니다.

“대사님. 한국으로 출발하겠습니다.”

[비행기를 대기시켜 놓았으니 요원들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대사님.”

강찬은 전화를 끊고 앞에 놓인 수프와 빵을 먹었다. 배도 고팠고, 무엇보다 기운을 차리려면 잘 먹어야 하는 게 맞다.

잠시 후, 방으로 들어온 의료진이 팔에 꽂힌 바늘과 기계 장치들을 제거했다.

“샤워할 수 있는 곳이 있나?”

“복도 끝에 따로 있습니다.”

“옷은?”

“준비해 두었습니다.”

옷장을 열자 새 옷이 분명한 양복이 걸려 있었다.

염병할! 칼을 맞지 않았더니 돌멩이가 옷을 망쳐 놓는다.

요원 둘이 앞을 막는 바람에 샤워부스 10개쯤 되는 작은 샤워장을 강찬 혼자 쓰는 거다.

지금은 사소한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간단하게 몸을 씻은 강찬은 환자복을 벗어 던지고 준비해 간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비행기가 있는 곳은 알지?”

“아래쪽에 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강찬이 막 엘리베이터를 향해 움직일 때였다.

“미스터 강!”

영국 요원이 빠르게 달려와 뭐라고 지껄였다.

“뭐라는 거야?”

“이튼의 허락 없이는 병원을 나서는 것이 곤란하답니다.”

강찬의 눈빛이 번득하고 바뀌자 영국 요원이 또다시 길게 지껄였다.

이런 걸 기다릴 시간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이튼하고 통화할 테니 그렇게 알라고 해.”

프랑스 요원이 강찬의 말을 전할 때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강찬이 올라탔고, 요원 둘이 뒤를 따랐는데 영국 요원은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제지하지는 못했다.

자동차에 올라 병원을 나선 강찬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보국 소속 병원입니다.”

“지진이 심하게 난 곳은 없어?”

“다 그렇진 않은데 주거 지역 한 곳에서 피해가 컸습니다. 사망자가 천 명이 넘는 모양입니다.”

염병! 그러게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지층 충격기는 만들어서!

“다른 나라는?”

“유럽 전체에 지진이 있었지만, 영국의 피해가 가장 심했습니다.”

아무튼, 끝난 일이다.

요원의 말을 들으며 강찬은 전화기를 들었다.

급한 일이 있는지 이튼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번호가 남았을 테니 나중에 알아서 할 거다.

공항은 30분 거리에 있었다.

요원 둘이 비행기까지 함께 올라와서 강찬을 챙겼고, 곧바로 이륙했다.

영국이나 프랑스나 한국으로 가는 비행시간은 거기서 거기다.

“커피가 있나?”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요원 한 명이 빠르게 커피와 재떨이를 가져왔다.

강찬은 멍청이가 아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석강호라도 눈치챌 정도였다. 프랑스 요원들이 전에 없이 공손하게 대하고 있는 것을 말이다.

“무슨 일이야?”

요원은 강찬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뭣 때문에 나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데? 이유나 알자.”

“무슈 강. 프랑스의 니아플르 교육 대상자는 정보총국의 꽁듀터(Conducteur) 지위를 받습니다. 이번에 정보총국에서 무슈 강의 지위를 꽁듀터로 격상시켰기 때문에 차장급으로 대우하게 됩니다.”

미치겠군!

정신을 잃고 있다가 깨어났더니 프랑스 정보총국 간부가 되어 있는 거다. 라노크가 생각 없이 그랬을 리는 없을 테니 당장은 뭐라 하기도 어렵다.

강찬이 아무 말도 않고 담배를 집어 들자 요원이 밖으로 나갔다.

철컥!

“후우!”

연기를 내뿜자 살아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담배를 끄고 커피를 마실 때 김형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강찬 씨. 김형정입니다. 석 선생에게서 깨어났다는 소식 듣고 전화합니다. 크게 다치거나 한 것은 아닙니까?”]

석강호가 뭐라고 둘러댔는지 몰라서 강찬은 “별일 아닙니다.”하고 답을 하고 말았다.

[“한국에 들어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예, 팀장님. 지금 가는 길이고, 대략 12시간 후면 도착할 것 같은데요. 아버지는 괜찮으신 건가요?.”]

“당장 검찰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감정을 조금은 가라앉히고 들어오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건 뭐 질풍노도의 십 대도 아니고 아무렴 가자마자 검찰총장을 어쩌기라도 하겠나?

전화를 끊자 요원 한 명이 먹음직스럽게 생긴 스테이크를 가져다주었다.

역시 강찬에게는 격식을 따져 천천히 나오는 음식보다 이렇게 한 번에 나오는 게 훨씬 더 좋다.

식사를 마친 강찬은 방에 들어가 누웠다.

이틀 만에 깨어났다는데 마치 아침에 일어나서 밤을 맞은 느낌이었다.

***

김성웅은 블라인드를 조절해 창밖을 보았다.

아예 ‘우리 국가정보원 요원이다.’라는 투로 승용차 두 대 옆에서 양복 차림의 요원 둘이 무거운 얼굴로 있었다.

그 바람에 부부장검사 이승렬이 직접 강대경의 회사 앞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김성웅은 함부로 명령을 내리기 어려웠다.

강대경을 잡으면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김성웅을 내란죄로 체포하겠다는 뜻이다.

‘정말 그렇게 할까?’

김성웅은 마지막에 보았던 황기현의 눈빛을 떠올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허하수가 국가의 기밀을 팔아넘겼다고?

그 부분에 대한 확신은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권이라면 중국에서 사형당한 허상수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미국과 일본에 도움을 청하는 게 맞는 거지, 오히려 국회의장을 이적행위로 체포할 수는 없는 거다.

설사 이적행위가 조금 있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전에 쌓은 공이 얼만데,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단순하게 죄만 따진단 말인가?

지금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래놓고 고작 고등학생을 앞세워서 검찰의 정당한 법 집행을 방해해?

두 가지는 안다.

강찬이란 학생이 평범한 놈이 아니라는 것과 강대경은 죄가 없다는 것.

그래서 더 강대경을 구속해야 하는 거다.

국가정보원도 부담스럽기는 비슷한 상황이다.

백 배 양보해서 허하수가 이적행위를 했다손 치더라도, 김성웅은 그런 일을 정말 몰랐다.

김성웅은 입술에 힘을 준 채로 전화기를 노려보았다.

거대 야당, 최후의 보루가 바로 김성웅 자신이었다.

국가정보원이 내란죄나 이적죄로 체포하면 바로 억울함을 호소할 방법도 있다.

사람의 인생은 승부를 걸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승부는 서둘 필요가 없다. 완벽하게 짜고 또 짜서 결정적인 순간에 패를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김성웅은 전화를 들어서 번호를 눌렀다.

“오늘은 우선 철수해.”

준비가 필요하다. 대대적인 준비가.

***

“저놈들 철수하나 봅니다. 들어가시죠.”

“철수하는 거 보고 간다.”

최종일은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철수 맞습니다. 정 염려되면 차에라도 들어가 계세요.”

승용차에 기댄 최종일이 고개를 저었다.

“마음 불편하게 왜 이러십니까? 팀장님 아시면 저희 다 죽습니다.”

“시끄러워.”

최종일이 나직하게 소릴 지르고 인상을 찌푸렸다.

“검사고 지랄이고, 누구든 헛짓거리를 하면 내가 나설 테니까 너희는 뒤로 빠져.”

“근무자가 아니잖습니까?”

“흥! 만약 아버님이 구속되면 그분 성격에 가만 있겠냐?”

우희승은 대답하지 못했다.

“난 중국에서 죽었어도 더 바라는 것 없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뒤로 빠져. 그리고 지켜라. 우리가 스페츠나츠, SBS, SW, 상대한 거 누구 덕인지 잊지 마. 은혜를 갚자는 게 아니다. 정말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나라를 지켜줄 사람을 지키는 일이다. 난 그 일에 목숨 걸었다.”

“우리 목숨은 형수님께 걸렸습니다. 들어가세요. 쟤네 다 철수했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쉰 최종일이 옆구리를 붙들고 겨우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이두희가 상체를 감싸다시피 부축해 준 덕분이었다.

“형님.”

창문을 내린 틈으로 최종일의 창백한 얼굴이 나왔다.

“저 요즘처럼 요원 된 것이 보람차고 자랑스러웠던 적 없습니다. 그러니까 들어가세요. 지금 비번인 요원들까지 자진해서 전부 나와 있어요. 하늘이 쪼개져도 쟤들은 아버님께 손 못 댑니다.”

“자신 있냐?”

“여기서 막는 게 화난 그 양반 상대하는 것보다 백 번 편하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세요. 차동균 중위가 떠들어댄 바람에 특수팀 중에서 비번인 놈들 올라온다는 거 겨우 말렸습니다.”

우희승이 고갯짓을 하자 이두희가 빠르게 운전석에 앉았다.

“그 몸으로 들어온 거 알면 그 양반이 가만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형수님께 딱 붙어 계세요. 이쪽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명령까지 받았는데 뭐가 무섭습니까?”

최종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차가 출발했다.

***

“요원들을 대놓고 깔았습니다. 여차하면 저희를 체포하겠다는 투였는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김성웅은 고개를 비튼 채로 입술에 힘을 주었다.

“먼저 건드리지는 않겠다?”

“총장님. 차라리 강찬이를 자수시켜 달라고 하시면 어떻습니까?”

“자수하겠다고는 했었어. 날짜와 시간을 정해주지 않아서 그렇지. 자칫하다가는 멍청하게 기다리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차마 허하수의 죄가 증명되기 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김성웅도 꺼내지 못했다.

이승렬을 비롯한 간부들이 김성웅의 눈치를 살폈다.

도대체 강찬을 수사하는데 왜 국가정보원이 저렇게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방송에 태운다.”

이승렬이 깜짝 놀란 눈으로 김성웅을 보았다.

“기자들과 함께 들이닥치면 국가정보원도 함부로 대들지는 못할 거다.”

“총장님! 국가정보원이 나서면 기사쯤 내릴 수도 있습니다.”

“3대 일간지가 우리 편인데 인터넷 뉴스까지를 전부 막지는 못해. 이건 여론만 타면 우리가 전적으로 유리해.”

김성웅은 거의 결론을 내렸다.

한 가지, 꼭 한 가지만 확실해진다면 다른 걸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도대체 대통령 문재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국가기관끼리 날카롭게 대립한 순간을 모른 척하고 있는 건가?

김성웅은 움직이기 전에 그 답을 얻고 싶었다.

***

다음날, 아침 일찍 이승렬이 상당수의 수사관과 함께 강대경의 사무실 건물 앞에 나타나자 분위기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김형정이 직접 나타나서 현장을 지휘했고, 심지어 강유 모터스 직원으로 위장하고 있던 요원들은 매장에 모조리 남아 대기하고 있었다.

강대경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하는 순간,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이승렬과 동행한 수사관을 체포하는 거다.

강대경은 꿈에서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접근한 회사들과 납품 관련 상담을 하느라 밖으로 신경을 쓸 여유도 없었고, 검사며,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나름 시선을 신경 쓴 탓도 있었다.

이승렬이 전화를 받고 굵직하게 답을 하자 건물 앞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준비해.”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세 대의 승합차에서 검사 한 명과 수사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시는 이승렬의 앞으로 김형정이 천천히 나섰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공무집행 중입니다. 방해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일이고,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승렬 검사. 지금 이곳에서 저 건물을 향해 한 걸음만 움직여도 전원 간첩죄를 적용해 현장에서 체포합니다. 신중하게 생각해 주기 바랍니다.”

이승렬이 좌우의 수사관을 둘러보았을 때였다.

“기자들을 믿고 있나 본데 이미 모두 철수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얌전히 차에 타고 돌아갑시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김성웅 총장도 같은 혐의로 체포할 거란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형정의 눈을 본 이승렬이 마른 침을 삼켰다.

지금껏 많은 사건을 다루었지만, 이렇게 무서운 눈빛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이승렬은 꼼짝도 않고 김형정을 노려보았다.

김성웅은 어떤 경우라도 강대경을 구속하라고 했다. 뒤에 분명한 조처가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다.

이승렬이 좌우의 수사관을 다시 한 번 살핀 직후였다.

김형정이 고갯짓을 하자 요원들 다섯 명이 날렵하게 이승렬과 수사관들 주변에 둘러섰다.

기가 막힐 일이다.

고작 다섯 명이 나타난 건데 이승렬은 엄청난 위압감을 느꼈다.

‘과연 국가정보원 요원이라는 건가?’

아는 선배, 후배가 국가정보원에 있지만, 자세한 내막을 듣지는 못했다. 그중에서도 실제로 요원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기도 하거니와 물어봐야 답을 해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나 위압감이 대단한 줄은 정말 몰랐다.

“이승렬 검사.”

이승렬은 퍼뜩 김형정을 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직전과는 확실하게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도 나도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겁니다. 만약 차에 올라타지 않으면 간첩죄와 내란죄를 적용해서 체포할 거고, 반항하면 발포하겠습니다.”

이승렬은 표시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숨을 들이마셨다.

이대로 밀리는 건 자존심이 상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어차피 김성웅 총장이 날아가면 검사 생활 끝나는 건 분명한 일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 부부장 검사를 하다가 어디 한적한 시골에서 널어놓은 고추나 개 훔쳐간 좀도둑 조서를 받으라고?

안 되면 옷 벗고 변호사를 해도 한평생 떵떵거리고 먹고살 정도는 된다. 거기에 허하수 쪽에서 손만 뻗쳐주면 금배지 달고 국회에서 손가락질하며 김형정을 부를 지도 모를 일이다.

막말로 정권이 바뀌면 지금 이 일이 영웅담이 될지 누가 아나? 그때가 되면 지금 코앞에서 매섭게 눈빛을 빛내는 이 멍청이가 직권 남용으로 이승렬의 조사를 받을 수도 있는 거다.

이승렬이 이를 악물면서 결심을 굳힌 순간이다.

김형정의 지시로 다가온 다섯 명의 요원이 고개를 짧게 숙이며 인사하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얼마나 높은 사람이 온 거야?

이승렬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지? 무슨 일이길래 눈앞의 사내가 저렇게 놀란 표정을 짓는 거지?

김형정을 따라 시선을 돌린 이승렬은 놀라서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워낙 사진을 봐서 원래부터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강찬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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