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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스미든이냐? 샤흐란이냐?
안드레이의 입 끝이 살짝 들렸다.
원하던 대로 일이 풀렸다는 뜻이다.
똑같다.
처음 용병으로 가서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놈과 마주했을 때와 말이다. 거기에 강찬이 구대장이 되자 시기하던 놈들이 꼭 지금의 안드레이처럼 굴었다.
자세?
엿이나 먹으라고 해라.
이런 때는 눈빛이 먼저 반은 먹고 들어간다.
안드레이가 일어서고도 함부로 손을 뻗지 못하는 이유인 거다.
똑같다.
그때도 구경하는 놈들은 지금처럼 결과를 보고 행동하겠다는 것처럼 말리지 않았다.
동양인 한 놈이 묵사발 나면 자존심 챙기는 거고, 만약 강찬이 이겨내면 구대장이라 따른다는 식으로 나왔었다.
개새끼, 가뜩이나 기분도 엿 같은데!
병아리를 잃은 건 아니지만, 돌멩이에 지고 와서 기분이 지랄 같은 때란 말이다.
똑똑똑.
그때 노크가 들렸다.
“들어와.”
강찬의 말에 문을 연 직원이 안을 빠르게 훑은 다음 끌고 온 테이블을 자리 가운데 두었다. 분위기를 충분히 느꼈을 텐데 행동과 태도가 태연하기만 했다.
장강린이 강찬과 안드레이를 빠르게 보고 난 다음이었다.
“끄응.”
안드레이가 고개를 틀며 자리에 앉았다.
중간에 끝나는 경우는 아프리카에선 없었다.
강찬이 자리에 앉자 프레드릭이 커피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지휘자를 뽑으라고 하던데?”
이 새끼도 억양이 지랄 같다.
“내가 하겠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드레이가 나섰다.
강찬은 관심도 없던 일이다. 그래서 대꾸도 하지 않고 앞에 놓인 잔에 커피를 따랐다.
“반대하는 사람?”
뭔 놈의 자리 욕심이 그렇게 나는지 안드레이가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조바심을 냈다.
해라, 해.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강찬이 잔을 내려놓을 때였다.
“어이, 꼬맹이!”
안드레이가 강찬을 불렀다.
홱! 턱!
강찬이 날린 엄지를 안드레이가 쳐냈다.
타악! 탁탁! 타다닥!
강찬이 눈과 목을 노리고 뻗은 손을 안드레이가 다급하게 막아낸 직후였다.
콰작!
안드레이가 벌떡 일어나며 건드린 탁자를 그라펠트가 움켜쥐었다.
타악! 탁! 탁! 타닥!
정신없이 엄지와 팔꿈치가 오가는 틈이다.
개새끼가 어디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콰악!
강찬은 중지를 세운 주먹을 안드레이의 옆구리에 꽂아 넣었다.
퍼억! 퍽! 퍽! 퍽! 퍽! 퍽!
다예루만도 못한 게!
삽시간에 목과 옆구리, 겨드랑이, 명치를 찍힌 안드레이의 상체가 앞으로 숙어지는 순간이었다.
홱!
강찬은 무릎을 세차게 들었다.
콰작!
안드레이의 고개가 뒤로 젖혀질 때였다.
콰작! 콰작! 콰작!
강찬은 양손으로 안드레이의 얼굴을 번갈아 갈겼다.
털썩!
강찬이 번쩍하고 눈을 돌린 곳에서 움찔했던 장강린이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앞으로 나를 부를 땐 반드시 무슈 강이라고 예의를 갖춰. 내가 친구로 인정하는 놈만 내 이름을 부른다.”
레온과 그라펠트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강찬을 보았다.
“그럼 지휘자는…….”
프레드릭이 잠시 강찬을 바라본 다음 말을 이었다.
“무슈 강이 하는 걸로 하지.”
“Oui(위).”
레온이 답을 했고, 그라펠트가 같은 답을 했다.
강찬이 힐끔 바라본 곳에서 볼을 씰룩이던 장강린이 마지막으로 “Oui.”라는 답을 뱉어냈다. 동양인치곤 굉장히 체격이 단단해서 서양인의 피가 섞인 것은 아닌가 싶은 정도였다.
“끄엉.”
안드레이가 상체를 일으키며 손등으로 코와 입 사이의 피를 닦아냈다. 이미 코와 왼쪽 광대뼈가 주저앉아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강찬이 시선을 돌려서 안드레이를 보았다.
이건 사자나 호랑이나 늑대나 하다못해 개새끼들 사이에서도 똑같이 통한다.
여기서 눈을 내리깔지 않으면 한 판 더 하자는 뜻이고, 눈을 내리깔면 그것으로 끝나는 거다.
안드레이가 몸을 일으킨 후 고개를 비틀며 강찬을 보았다.
“잉정한다. 꼬…….”
콰작!
강찬의 주먹이 안드레이의 얼굴에 처박히자 프레드릭이 인상을 찌푸렸다.
털썩!
안드레이는 엉덩방아를 찧은 것처럼 주저앉아서 그렁그렁 숨을 쉬었다.
“안드레이?”
“왜, 꼬…….”
퍼억!
“커헉!”
안드레이가 지금처럼 상체를 비틀지 않았다면 죽었을 정도로 모진 발길질이었다. 명치에 꽂혔으면 분명하게 죽었다.
솔직하게 말해 보라고?
정말 죽일 생각이었다.
저렇게 반기를 든 새끼를 뒤에 두면 반드시 뒤통수에 총알이 박히거나 등에 칼이 박힌다.
그런 생활을 십 년 가까이했다.
이런 일은 무조건 마무리를 확실히 하는 게 맞는 거다.
어차피 특수팀끼리 섞인 곳에서는 특히나 더.
“안드레이?”
이번에도 반항하면 무조건 죽인다.
대신 맞아줄 다예루도 없다.
방안에 묵직한 침묵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피식! 이 개새끼가?
“Oui, Monsieur Kang(위, 무슈 강).”
걷어차기 직전에 답이 있었다.
여기서 뒈지면 러시아만 교육에 빠진 꼴이 되는 거겠지? 그것도 전혀 명분 없는 싸움에서 뒈지는 바람에 말이다.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고 탁자에 앉았다.
“앉아, 커피 마셔.”
안드레이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테이블에 앉았다. 코에서 수도를 덜 잠근 것처럼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안드레이가 커피잔을 입에 댔다가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별수 없이 카펫을 갈게 생겼다.
“그런데 담배 피우는 사람은 없나?”
“안에 가서 담배와 재떨이 가져와.”
그런데 이 개새끼들이!
신병 때도 커피 안 탔던 나보고 담배를 가져오라고?
강찬을 노려보던 그라펠트가 한숨을 푹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는 느낌이었다.
교육이라고 해서 화기애애하길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특수팀 출신들을 모아놓고 이긴 놈이 ‘대장’하는 분위기일 줄은 몰랐다.
달칵!
그라펠트가 재떨이와 담배를 탁자에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 하나씩 들었다.
“뭐야? 다 피우고 싶었던 거잖아?”
기가 막힌 듯한 표정으로 그라펠트가 투덜거렸지만, 그런다고 미안해할 놈은 하나도 없었다.
“점심 먹은 후부터 교육이 있다고 들었다. 특수 부대 출신들이니까 못마땅한 구석이 있어서 주먹질하는 건 얼마든지 인정한다. 하지만 한 가지만 기억해라. 함께 있는 동안 등은 찌르지 마라.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반드시 죽여버릴 거다.”
담배를 끄고 난 세 놈이 강찬을 진지한 얼굴로 보았다.
점심을 먹을 때까지 안드레이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피에르 역시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전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세 놈과 함께 점심을 먹었고, 커피와 담배를 즐기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안드레이가 들어왔다. 무슨 괴기 영화에 나오는 놈같이 주둥이와 눈, 코 모양 아래만 나온 하얀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개새끼가 이대로 안 끝나겠는데?
확실히 저런 새끼는 차라리 죽여버리는 게 낫다.
부대의 명예를 짊어졌다고 생각하는 놈만큼 무모한 놈들도 없기 때문이다.
강찬의 눈빛이 번들거리자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
집무실로 들어온 라파엘이 라노크의 책상으로 다가왔다.
“무슈 강이 러시아의 안드레이를 꺾은 모양입니다. 코뼈와 광대뼈가 함몰되어서 급하게 수술을 받았는데 안드레이가 후송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늑대가 사자에게 덤빈 꼴이니까 살아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흠. 그렇다면 지금 전화하는 것은 좋지 않겠군. 안느는?”
“정보총국의 작전 1과에 있습니다.”
라노크가 차가운 눈빛으로 라파엘을 보았다.
“그렇다는 것은 내 예상이 맞다는 건가?”
“저는 대사님의 판단을 따를 뿐입니다.”
라노크가 입을 꾹 다물고 시계를 노려보았다.
“인재를 얻는 건 쉽지 않지. 욕심부린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쓸데없이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군. 연구진의 보고는?”
“아직 다른 내용이 올라온 것은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라노크가 시선을 들었다.
“라파엘?”
“예, 대사님.”
“나는 내 결정이 조국 프랑스를 위한 것이라 확신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무슈 강은 나와 우리의 조국 프랑스를 지켜줄 사람이다.”
“알겠습니다. 차와 시가를 준비해 드릴까요?”
“마음에 드는군.”
고개를 숙인 라파엘이 방을 나선 다음이었다.
“무슈 강.”
책상에서 상체를 든 라노크가 의자를 커다랗게 돌려 뒤에 걸린 프랑스 국기를 보았다.
“프랑스를 부탁합니다.”
라노크의 바람이 집무실을 울렸다.
***
태극기와 검찰을 상징하는 깃발 앞에서 김성웅은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증거는 확실합니다. 진술이 없더라도 재판에서 강찬의 죄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승렬의 보고에 함께 앉아 있던 검사들 역시 동조하는 눈빛이었다.
“오광택은?”
“범단은 아무래도 자금책을 증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계좌를 추적해도 안 나와?”
“깡패치고는 수입원이 깨끗합니다.”
“살인교사 쪽도 나온 거 없고?”
“범단으로 묶지 못하면 강찬과의 관계를 증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김성웅이 번들거리는 이마를 숙이며 신음을 쏟아낸 다음이었다.
“국가정보원이 개입한 정황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심지어 특수팀이 움직인 정황도 있습니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김성웅이 버럭 지른 고함에 이승렬이 얼른 시선을 탁자로 가져갔다.
“본질을 흐리지 마! 이 사건은 유라시아 철도라는 명분을 등에 업은 강찬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살인, 공갈, 협박, 강탈을 자행한 범죄에 관한 수사야!”
“알겠습니다.”
“흠.”
김성웅은 시선을 돌려 이승렬의 맞은 편에 있는 검사를 보았다.
“강유 모터스, 강유 재단, 강찬 소유의 빌딩에 대한 압수수색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다만, 압수수색에 나서게 되면 방송에 보도되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국가정보원에서 막고 있다면서?”
“아무리 그렇더라도 압수수색에 관한 정보를 모두 막기는 어려울 겁니다. 물론 하루 안에 통제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전면전이 되겠군?”
“강대경은 구속 수사할 생각입니다.”
“유혜숙은?”
“당장 구속하기에는 혐의가 부족하고 외부 시선도 있어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별도로 판단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전화의 통화기록이 남지 않는 놈이 있다니! 기가 막힌 일이군.”
국가정보원의 협력이 있다는 것을 김성웅은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결정되면 알려주겠다. 언제든 압수 수색과 구속 영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준비해.”
“알겠습니다.”
검사들의 대답에 묘하게 힘이 부족했다.
***
교육은 그동안 받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용 따분하지, 분위기 지랄 같지!
정말이지 이런 교육이 왜 필요한지 알기 어려웠다.
막말로 강찬을 정보총국에 집어넣고 여섯 달을 보내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은 정도였다.
각국 위성의 위치와 성능을 익히고 난 후에 잠시 쉴 때였다.
강찬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서 창밖을 보았다.
‘누가 또 위험해지는 건가?’
창밖을 본다고 답을 알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뻥 뚫린 풍경을 보는 것이 조금은 나았다.
그라펠트가 달각거리며 커피를 따랐다.
애새끼, 징그럽게 커피 많이 마신다.
어딘지 끈적거리는 느낌이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잔인한 인상을 가졌다.
다시 돌아온 안드레이는 말이 전혀 없었다.
하긴 분위기가 이 지랄인 것도 저 새끼 책임이 절반은 있는 거다.
달칵.
방문이 열렸다.
학교처럼 종이 울리는 게 아니어서 누군가 들어오면 교육이 시작되는 거고, 나가면 끝난다.
들어온 두 사람은 탁자에 커다란 지구본을 올려놓았다.
평소에 보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서 전 대륙이 한눈에 들어오게 제작되어 있었다.
‘저건?’
강찬은 지구본에 집중했다.
진한 금색으로 칠해진 선은 분명 유라시아 철도였다.
“이제부터 유라시아 철도가 연결된 이후에 예상되는 경제적 효과와 각국의 손익을 따져 보겠습니다.”
‘이거였구나!’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위성의 위치에 따라 감시할 수 있는 지역을 따지고, 국제 경제를 가르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을 거다.
유라시아 철도가 연결되고 바뀌는 세상에 대한 대비.
1세대가 라노크와 바실리, 루드비히, 이튼의 시대였다면 유라시아철도가 연결된 이후의 세상은 2세대가 될 것이다.
다음 세대의 정보국을 책임질 인물, 그리고 결국 이들이 유라시아의 각국 담당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말이다.
라노크는 이 중요한 자리를 왜 강찬에게 양보했을까?
프랑스를 지켜달라고 하기는 했지만, 프랑스인을 집어넣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아니다.
강찬은 최선을 다해 교육에 집중했다.
가슴이 답답한 것만 아니라면 훨씬 좋았을 거다.
강찬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이 시간을 통해 향후 각국의 이익이 조정될 수도 있는 거다.
왜 안드레이가 앞에 서려고 설쳤는지 이해가 갔다.
그렇다면 라노크는 이런 것을 계산해서 강찬을 이곳에 보낸 것일까?
어설픈 프랑스 요원을 보내느니 강찬을 우두머리로 만들어서 프랑스의 이익을 부탁하고, 강찬 이후의 인재를 찾아내 키워달라고?
교육이 모두 끝난 후,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강찬의 방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쭉쭉.
지랄도 참!
안드레이는 빨대를 이용해 수프처럼 보이는 국물을 빨아 먹으며 끝까지 식탁에 남아 있었다.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은가?
아니면 저를 빼고 다른 얘기를 하는 게 불안한 건가?
시간이 지나면 강찬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거다.
“그럼 내일 보자.”
끝날 때까지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눈빛, 표정, 행동, 말투에 담은 채로 다섯 놈이 방을 나갔다.
“아후!”
늘 처음은 이렇게 피곤하고 신경 쓰인다.
남자 새끼들은 참 오묘한 구석이 있어서 이렇게 지랄들을 떨어대던 놈들이 한 달 정도만 같이 지내면 자연스럽게 서열이 생기고, 어지간해서 바뀌는 법이 없다.
강찬은 테이블의 의자를 옆으로 돌려 창밖을 향해 앉았다.
답답한 가슴이 풀리지 않았다.
강대경, 유혜숙, 석강호, 라노크가 모두 멀리 있다.
최성곤이 죽었을 때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김태진이나 김형정이 문제가 생기는 건가?
위민국이 이 개새끼가 또 무슨 사고를 치나?
바깥이 어두워진 탓에 거실의 유리가 거울처럼 옅게 강찬의 모습을 비춰주었다.
눈빛이 무섭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뭐지? 뭐가 있는 거지?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때 강찬의 전화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