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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스미든이냐? 샤흐란이냐?
일요일은 운동을 쉰다.
솔직하게는 평일이었어도 하루 쉬었을 거다. 그 정도로 기력이 부족했다. 잠에서 깬 강찬은 겨우 침대에 기대서 아침을 먹을 정도였다.
사람 참 간사하다.
10년 용병 생활을 하다가 겨우 반 년가량 한국에서 살았던 건데 유혜숙이 비벼준 매콤한 비빔국수와 잡채가 떠올랐다. 물론 라면도.
‘그나저나 돌멩이를 어떻게 상대하지?’
이런 식으로 붙었다가는 결국 에너지를 뺏기고 죽는 것 말고는 답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돌멩이한테 ‘너 엄마 없지?’ 하고 약을 올릴 것도 아니고.
침대에 앉아 토스트를 먹은 강찬은 커피를 마시며 블랙헤드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끄응!”
조금이나마 회복된 느낌에 강찬은 억지로 침대에서 내려섰다.
몸뚱이가 어마어마하게 아팠다.
‘가만?’
침대에서 내려와 몸을 바로 세우던 강찬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에너지가 몸에 있다면 고글을 썼을 때 보였어야 하는 거다. 그러고 보니 차단복을 입어서 바깥에 있는 에너지는 보았는데 정작 몸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는 볼 기회가 없었다.
라노크와 연구진도 무전기를 먼저 착용한 거 같았는데?
혹시 고글을 쓴 사람은 없었을까?
강찬은 곧바로 전화를 들어 라노크의 번호를 눌렀다.
[“강찬 씨! 몸은 어떻습니까?”]
“이제야 기력을 좀 찾았습니다.”
나직한 숨소리가 들렸다.
몇 마디 안부를 묻고 난 다음이다. 강찬은 조금 전에 떠올렸던 생각을 이야기했다.
[“신기하군요. 마침 같은 생각을 한 연구원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강찬 씨가 차단복을 입기 전에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래! 이거지!
“뭐가 보였다던가요?”
[“짙고 강렬한 붉은색이었다고 했습니다.”]
이건 또 생각하고 다르다.
붉은빛이 그렇게 강렬하게 덤볐으니 필시 강찬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다른 종류가 아닐까 싶었던 거다. 그렇다면 색도 분명 다른 것이어야 맞다.
“붉은색이라는 뜻밖입니다. 저는 제가 다른 색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붉은색과 어울려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연구진에게 지금 내용을 알려주고 필요하다면 강찬 씨에게 전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사님.”
나직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유럽이 지금 위기를 알게 된다면 유럽인들 모두가 강찬 씨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아! 그전에 엄청난 소란을 먼저 거쳐야 하겠군요.”]
라노크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이 이었다.
[“강찬 씨. 이튼은 속이 검은 친구입니다. 영국이 이런 엉뚱한 짓을 했다는 것과 지층 충격기를 숨기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정보국에서 완벽하게 비밀을 지키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섬뜩한 이야기를 참 편안한 음성으로 전한다.
이후로 몇 가지 대화를 더 나눈 뒤에 전화를 끊었다.
‘그러니까 돌멩이와 내가 같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거고,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 차지해야 힘을 채운다는 건가?’
분명 9개의 에너지 중 2개를 잃어버렸고, 그중 하나를 강찬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강찬과 블랙헤드가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강찬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누군가 석강호처럼 다시 태어나 있는 거야?
머리가 자꾸만 복잡해진다.
‘하나씩 생각하자.’
지금 급한 것은 블랙헤드가 지닌 힘에 밀린다는 거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연구진들도 같은 생각을 할 거고, 차단복처럼 무언가 해결책을 만들어 내려고 애쓸 거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아후!”
신음이 저절로 나왔고, 그만큼 땀이 났다.
차라리 돌로 머리를 맞았다면 지금보다 자존심이 덜 상했을 거다.
저녁을 먹을 무렵에 피에르가 강찬을 찾아왔다.
다음날 시작되는 교육의 참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 번 생각할 게 없는 일이다.
지금 못하겠다고 하면 라노크가 프랑스 요원을 빼가면서 만들어준 기회를 걷어차는 꼴이다.
저녁을 먹은 강찬은 꾸준히 제자리를 걷고 스트레칭을 멈추지 않았다.
지고 싶지 않았다.
고작 돌멩이 따위에게 져서 죽는 것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부 506호, 부부장 검사 이승렬은 책상에 앉은 채로 들어서는 오광택을 보았다.
황색 미결수복에 수갑을 찼고, 그 위로 포승을 감았는데 뒤쪽에서 교도관 두 명이 오광택의 양팔을 붙들고 있었다.
털썩.
이승렬의 책상 앞에 놓인 철제 의자에 오광택이 철퍼덕 앉았다.
“하고 싶은 말 없어?”
“그만합시다. ‘불러뻥’, 이거 불법 아니오?”
이승렬이 재미있다는 투로 피식 웃었다.
오광택은 수염이 제멋대로 자라서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조사를 하는데 뭐가 문제야?”
“선수끼리 왜 이러쇼? 면회 못 하게 하려고 불러서 하루 종일 잡아놓고 형식적으로 잠깐 부르는 거 아니오? 적당히 하고 끝냅시다.”
이승렬이 똑같이 피식 웃으면서 엄지로 두툼한 서류를 빠르게 넘겼다.
“깡패 주제에 발이 넓어.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노이로제 걸리겠다. 그러니까 인제 그만 끝내자. 그럼 나도 너 괜히 불러다 온종일 좁은 대기실에 안 가둬서 좋고, 너는 너대로 편안하게 구치소에서 왕 노릇 하고, 서로 얼마나 좋겠냐?”
넘기던 서류를 멈춘 이승렬이 시선을 들었다.
“주차장 박기범이 다 불었어. 그 밑에 있던 애들도 죄 와서 진술했고. 호텔에서 호남과 영남 오야붕 만난 것까지 CCTV 다 확보했고. 그러니까 순순히 인정할 거 인정하고 넘어가자.”
“허! 그러니까 이 오광택이가 고등어 새끼하고 친구 먹었다는 거요? 아, 씨발. 쪽 팔려서 어디가 오광택이란 이름도 못 대겠네.”
오광택은 이승렬을 무시하는 것처럼 고개를 모로 틀었다.
“나도 그게 너무 궁금하다. 그러니까 친구 먹은 건 아니라는 거 아니냐? 그럼 한 가지만 분명히 하자. 강찬이 너희 식구지?”
“궁금하면 등본을 떼 보던가? 나는 오! 광택. 그 고등어 이름은 강! 찬. 어떻게 식구가 돼?”
이승렬이 같잖다는 눈빛으로 오광택을 보았다.
“강찬이 이 새끼, 프랑스인 살해, 공트 자동차 인수, 디아이 전 사주 김선일 폭행해서 회사를 뺏었고, 주철범이가 그 자리에서 김선일 따귀 때린 것까지 CCTV 다 확보돼 있어.”
“그건 주철범이한테 물어보시고!”
이승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알 거니까, 범단 수괴는 너고, 행동대장 강찬이, 조직원 주철범, 그다음으로 자금책이 있어야 하거든. 좋게 넘어가려던 걸 굳이 계좌까지 탈탈 털게 하는데 어디 한번 해 보자.”
“아예 소설을 쓰쇼. 크게 성공할 것 같은데?”
오광택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어차피 CCTV 다 있는 거 알잖아? 야, 오광택이! 편하게 가자. 그냥 강찬이 단독으로 프랑스인 살해 후, 서정 모터스가 가져야 할 공트 자동차 한국 영업권을 뺏은 거고, 다음에 디아이 전 사주 폭행해서 회사 뺏은 거, 주차장파 박기범이 애들 망가트린 거, 이 세 개로 마무리 짓자.”
오광택이 힐끔 시선을 돌린 순간을 이승렬은 놓치지 않았다.
“서도석이도 불쌍하잖아? 몸뚱이도 제대로 못 쓰는데 구치소에서 저게 무슨 고생이냐? 내가 말한 대로만 인정하면 너하고 서도석이, 주철범이 10년 구형에 선고 5년으로 끝내준다. 이번에 네가 칼질한 사람 중에 두 명이나 죽었어! 그 정도면 거저먹는 거야!”
오광택이 묵묵히 바라보자 이승렬이 고개를 디밀었다.
“솔직히 너 정도면 안에서도 황제처럼 지내잖냐?”
오광택이 고개를 비틀고 이승렬을 보았다.
“5년?”
“5년”
답을 들은 오광택이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고 상체를 세웠다.
“니미! 이 씨발! 오광택이가 쪽 팔리게 징역 5년 맞자고 고등어를 팔 줄 알았어? 너 이 씨발 놈! 이제부터 마누라 밖에 다닐 때 조심하라고 해.”
이승렬이 이를 꽉 깨문 순간이었다.
“또 이런 엿 같은 소리 할 거면 부르지 마라.”
오광택이 벌떡 일어나 문을 향해 걸었다.
당황한 표정의 검사 계장과 교도관이 이승렬을 보았다.
“데려가!”
오광택은 이미 문앞에 있었다.
***
월요일 아침에 일어난 강찬은 악착같이 운동실로 가서 평소처럼 달리고 근력운동을 마쳤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때에도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강찬은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블랙헤드와 강찬이 가진 에너지가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석강호가 하나, 나머지 하나는 과연 누굴까?
그러자 한 놈이 떠올랐다.
스미든!
분명 죽었어야 할 놈이 살아서 나타난 거다.
강찬은 석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요.”]
“통화 괜찮냐?”
[“지금 새로 꾸민 사무실에 나와 있소. 좀 전에 집기 전부 들어왔고, 운동기구까지 세팅 마쳤소. 얼른 오쇼. 둘이 커피 마시면서 담배 피우기 정말 좋소.”]
석강호의 너스레가 끝나자 강찬은 토요일에 있었던 일들을 있는 대로 알려 주었다.
[“스미든, 그 새끼라면 그럴 만도 하우. 누가 뭐래도 그 상태라면 뒈졌어야 맞는 거요.”]
“다예. 궁금한 게 있는데 도대체 그 당시에 블랙헤드가 어디 있었길래 우리가 에너지를 받은 거냐 하는 거다. 그냥 잘 놔둔 블랙헤드에서 에너지가 뿜어졌을 리는 없을 거고, 분명 무언가 일이 있어서 그랬지 않겠냐? 막말로 그때 죽은 게 우리 둘 만은 아닌 거잖아?”
석강호는 당장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걸 아는 게 중요한 거 같아.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에너지를 뿜어냈는지.”
[“그거라면 샤흐란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지 않겠소?”]
“그때 샤흐란이 돈을 받았다고 했었지 않냐? 그럼 그걸 사려고 했던 놈이 준 건데? 이튼? 이튼, 이 새끼는 무언가 알고 있는 거네? 그러네!”
강찬은 하나씩 실마리가 풀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안다고 해도 블랙헤드를 안정시킬 방법을 찾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일단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대장. 천천히 생각하쇼. 이번처럼 위험한 일이 계속된다면 다음번은 장담하지 못할 수도 있는 거요.”]
“일단 이튼을 만나봐야겠다. 안 되면 샤흐란을 만나보던가.”
[“마지막에 그 개새끼가 대장 만나자고 해서 풀어주면 뭔가 해준다고 하지 않았었소?”]
“그땐 내가 에너지 가진 것을 몰랐을 때 아니냐?”
[“그러니까요! 샤흐란 새끼는 블랙헤드에 어떤 문제가 있는 줄 아니까 그걸로 영국이랑 협상을 하려 했는지도 모르는 거잖소?”]
그게 그렇게 되나?
“다예!”
[“왜 그러쇼?”]
“내가 샤흐란, 그 개새끼 왼쪽 옆구리를 분명 갈랐거든. 그것도 뼈까지 긁었는데 살아 있는 거다.”
[“샤흐란이 에너지를 가졌다고 보는 거요?”]
“가능성도 있지.”
[“그래서 그 새끼가 대장한테 협상하자고 했을까요? 영국이 자기를 필요로 할 거라는 걸 아니까.”]
뭔가 풀려가는 것 같은데 반대로 엉키는 느낌도 있었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라노크 대사와 한번 의논해 보고 다시 통화하자.”
[“알았소. 그나저나 몸은 정말 괜찮은 거요? 뭐하면 내가 가겠소.”]
“봐서 하자. 잘못해서 너까지 블랙헤드에 당하면 뒤를 봐줄 사람이 없다.”
[“대장이 거기서 당하면 유럽 전체가 날아가는 한이 있어도 내가 가서 그 빌어먹을 블랙헤드를 아예 부숴버릴 거요.”]
“됐어. 하여간 전화 옆에 두고 있어라.”
[“알았소.”]
강찬은 전화를 끊고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여기에 뭔가 실마리가 있다는 생각이 확신처럼 들었다.
똑똑똑.
그때 노크가 있고, 피에르가 들어왔다.
강찬이 일어서는 동안 피에르의 뒤로 다섯 명의 남자가 들어섰다.
“강찬 씨. 이번에 함께 교육받게 될 동료들을 소개합니다.”
다섯 명 모두 전대극이나 김태진을 연상시킬 정도로 각진 턱에 당당한 체격이었다. 나이는 서른쯤이니, 이전의 삶에서 강찬의 나이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이분은 스페츠나츠 출신 안드레이.”
안드레이가 고개만 까닥했다.
“GSG-9 출신 레온.”
독일의 특수팀 출신인 레온이 손을 뻗어 강찬과 악수를 나눴다.
“사이렛 매트칼 출신 그라펠트.”
이스라엘 특수팀 출신인 그라펠트와도 악수를 했다.
“그린베레 출신 프레드릭.”
이놈이 그나마 가장 인상이 좋았다.
“SW 출신 장강린.”
장강린은 고개만 끄덕하고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강찬과 부딪친 적이 있는 스페츠나츠와 스노우울프 출신만 악수를 하지 않은 거다.
그거야 뭐 그리 중요한 게 아니고, 강찬이 아쉬울 것도 없다.
“오전은 각자 방을 배정할 거고, 오후부터 협상, 정보 교류, 위성 사용에 대해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피에르가 다섯 명을 데리고 방을 나서자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정보국끼리 기본 인맥이 없을 리도 없고, 문제가 된다면 얼마든지 소개를 통해 만날 수 있는 놈들이다. 그런데 굳이 불편한 놈들과 5개월을 함께 지내면서 저놈들의 나라에 돌아다닐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일단 지켜보자.’
강찬은 마음을 굳히고 라노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라파엘입니다. 무슈 강.”]
그런데 라노크의 전화를 보좌관인 라파엘이 받았다.
[“대사님께서는 중요한 면담 중이십니다. 급한 일이시면 전화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아, 라파엘. 앞으로 4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그 안에 면담이 끝나시면 전화를 부탁한다고 전해줘.”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슈 강.”]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라파엘의 목소리도 반갑다.
스미든이냐? 샤흐란이냐?
염병! 햄릿도 아닌데 별걸 다 고민해야 한다.
확인 방법은 간단한 거다.
에너지를 볼 수 있는 고글을 쓰고 샤흐란을 보면 끝이다. 몸뚱이에서 빛이 나면 샤흐란이 에너지를 가진 거고, 아니라면 고글을 들고 한국으로 날아가서 스미든을 보면 된다.
그나마 샤흐란은 프랑스의 로리암 기지에 있을 테니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 걸리지도 않을 거다.
강찬은 피식 웃으며 창밖을 보았다.
샤흐란이 에너지를 가졌다면 죽여서 에너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똑똑.
그때 평소와 듣던 것과는 다른 노크가 울렸다.
강찬이 고개를 돌리는 것과 비슷하게 문이 열리고 조금 전에 인사를 했던 다섯 놈이 주르륵 방으로 들어왔다.
“차 한잔 할 수 있나?”
참 불편하게 들리는 프랑스 말이었다.
“앉아.”
강찬의 대답에 다섯 놈이 테이블과 책상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가 각자 자리를 잡았다.
이런 때는 호텔처럼 0번을 누르라고 했었다.
강찬은 전화를 받은 직원에게 여섯 명이 마실 커피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서양놈들은 하여간 이런 뻔뻔함이 있다.
한국사람들 같으면 이런 때 커피를 준비해 올 텐데 말이다.
“당신이 갓 오브 블랙필드 맞나?”
안드레이가 거친 시선과 함께 질문을 던졌다.
장강린은 안드레이와 비슷한 시선이었고, 나머지 셋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이 새끼들이 가뜩이나 컨디션이 안 좋은데…….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게 생겼고, 너무 어려 보이는데?”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갓 오브 블랙필드가 맞냐고 물었다.”
“그게 왜 궁금하지?”
안드레이가 고개를 비틀었다.
“갓 오브 블랙필드가 맞는다면 모르지 않을 텐데?”
피식.
강찬의 웃음이 불쾌했는지 안드레이의 눈 끝이 꿈틀했다.
“안드레이, 교육 왔으면 얌전히 교육을 받는 게 좋아.”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꼬맹아.”
강찬은 아예 대놓고 웃음이 나왔다.
다시 태어난 몸뚱이가 어리니까 별 개 같은 소리를 다 듣는다. 하긴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파병되었을 때 저런 소리 몇 번은 들었었다. 그리고 그놈들은 물론…….
“경고하는데 앞으로 내 앞에서 함부로 웃지 마라.”
“푸흐흐흐.”
강찬은 아예 가슴을 들썩이며 웃었다.
프랑스 온 이후 처음으로 이렇게 웃는 건데 그게 러시아 놈 덕분일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스윽.
안드레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세만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강찬은 목을 좌우로 움직였다.
컨디션이 안 좋은 것과 시비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 거다.
상대가 누구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