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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더 감춘 것은 없나?
연구진이 들고온 것은 우주복과 똑같아 보였다.
“재킷을 벗고 착용하시는 게 좋습니다.”
강찬이 벗은 재킷을 요원이 얼른 받아들었다.
“우선 하의입니다.”
강찬이 부츠와 일체형으로 되어 있는 바지에 다리를 꿰자 연구원이 한 뼘 넓이의 끈을 양쪽 어깨에 걸쳐 주었다.
“팔을 드세요.”
상의는 두 사람이 잡아서 위에서 뒤집어씌우는 것처럼 입혔다. 그러자 알루미늄처럼 보이는 재질의 띠를 가져온 연구원이 상의와 하의의 중간 고리를 완벽하게 연결했다.
“헬멧을 쓰면 바깥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는 무전을 통해 들리는 겁니다.”
맞은 편에서 라노크가 무전기와 헤드셋을 거는 것이 보였다.
“공기는 90분 분량입니다. 왼편 팔등 부위에 액정으로 표시되고, 20분, 40분, 60분, 그 뒤는 10분마다 알려 들릴 겁니다. 최소 10분 전에는 이 자리로 돌아올 계획입니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구원 둘이 헬멧을 높다랗게 들어서 머리를 감쌌다.
철컥. 철컥.
이건 뭐지?
헬멧을 쓰고 나자 바깥에 여러 가지 색의 선들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강찬 씨. 들립니까?”
“예, 잘 들립니다.”
숨 쉬는데 매운맛이 살짝 올라왔다.
“여러 가지 색으로 된 선들이 보이는데 이것이 에너지인가요?”
“헬멧의 렌즈를 통해 에너지 파장이 보일 겁니다. 이동하겠습니다.”
연구원이 안내하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터걱. 터걱.
발을 옮길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하얀 광선이 이리저리 꿈틀거리는 유리공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서자 볼록한 시멘트 건물에서 색색의 에너지 파장이 거미줄처럼 나와 주변을 훑다가는 사라지고 있었다.
우주복을 입어서 그런지 강찬의 주변을 훑은 에너지는 다른 곳을 훑었을 때와 마찬가지 움직임을 보이며 멀어지곤 했다. 강찬은 첫날 느꼈던 것이 실제로도 일어났던 일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후욱. 후욱.
굉장한 광경이었다.
연구원들이 볼록한 건물의 문을 열자 안쪽에서 ‘띠잇! 띠잇! 띠잇!’ 하는 경고음과 ‘통제가 안 되는 상태’라는 여자의 멘트가 함께 들려왔다.
후욱. 후욱. 터걱. 터걱.
걷기가 지랄 같은 건 나중 문제다.
볼록한 건물 안은 그야말로 거미줄이 빼곡하게 쳐진 것처럼 보였다.
모든 시작은 주기계 장치의 블랙헤드에서였다.
색색의 광선 중에서 붉은색 광선이 유독 빠르고 거칠게 움직이며 강찬과 연구원들을 훑고 지나갔다.
어떤 것은 실처럼 가늘고, 어떤 것은 밧줄처럼 두껍다.
그런 것들이 번개처럼 구불구불하게 뻗쳐서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강찬 씨. 괜찮습니까?”
고글을 쓴 라노크가 주변과 강찬을 둘러보며 던진 질문이었다.
강찬이 기력을 잃었던 것은 이곳에서 라노크만 안다.
이제 왜 그랬는지를 강찬과 라노크 모두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아직은 전혀 영향이 없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멍청한 놈들! 이런 시설을 할 거면 최소한 엘리베이터는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10m를 내려간 강찬은 다시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연구원 다섯, 라노크, 이튼, 그리고 양쪽의 요원 다섯 명씩.
주기계 장치를 지나친 연구원이 통로의 중간에 T자형으로 연결된 곳을 가리켰다.
띠잇! 띠잇! 띠잇! 띠잇!
“Warning! Warning! Shock wave is out of control!”
차라리 일반 무전기였다면 저 지랄 같은 경고음을 안 들을 수 있었을 거다.
9개의 보조장치 중 하나에 도착하는데 15분은 족히 걸렸다. 연구원이 보조장치에 손을 뻗어서 5㎝ 두께쯤 되는 케이블을 당겨냈다. 겉모양은 완전 굵직한 전기선이었다.
후욱. 후욱.
“이 케이블은 세티늄과 연결되어 있고, 에너지 파장을 전달합니다. 이걸 우주복에 연결하면 강찬 씨의 에너지가 세티늄에 전달되고 다시 블랙헤드에 도달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그렇게 했을 때 블랙헤드의 에너지가 안정을 찾는 것입니다.”
강찬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이 케이블을 몸쪽으로 당기면 자동으로 연결이 해체됩니다. 이해됐습니까?”
지금도 셀 수없이 많은 에너지 선들이 연구원과 강찬,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훑고 지나가는 중이다.
“알았습니다.”
강찬의 답이 있자 연구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케이블을 당겼다. LPG 가스를 충전할 때 봤던 것과 입구가 비슷하게 생겼다.
“연결합니다.”
후욱. 후욱.
강찬의 눈을 바라본 연구원이 오른쪽 허리에 케이블을 가져갔다.
철컥!
케이블이 연결된 순간이었다.
우우웅!
가벼운 진동음과 함께 붉은색 파장들이 한꺼번에 강찬과 연결된 보조장치에 달려들었다.
“강찬 씨! 괜찮습니까?”
라노크의 음성이 고스란히 들렸고, 놀란 연구원들이 본능적으로 서너 걸음을 물러났다.
고글을 쓰지 않았을 때는 몰랐던 현상이었다.
“대사님. 아직은 괜찮습니다.”
실제로도 그랬다.
강찬은 연구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헬멧이 돌아가는 게 아니어서 고개를 돌린 이후에 상체를 틀었다.
“상태는 어떤가요?”
“아직은 효과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보조 장치 주변이 온통 붉은색으로 빛났다.
후욱. 후욱.
보고 있으려니까 끔찍하기는 한데 생각보다는 견딜만했다.
“세티늄의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게 뭔 소린지 모른다.
강찬이 상체를 돌렸을 때 연구원들은 보조장치에 연결된 패널을 들여다보며 수치를 옮겨적고 있었다.
띠잇! 띠잇! 띠잇! 띠잇!
“Warning! Warning! Shock wave is out of control!”
저걸 끌 수는 없을까?
어차피 문제가 있다는 걸 다 아는데 공연히 불안감만 더 고조시키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강찬의 심장이 위험하다고 악을 써대기 시작했다.
나가! 여기서 나가!
뭐지? 무엇 때문에 이러지?
후욱. 후욱.
강찬은 호흡을 조절하며 고개만 돌려 좌우를 보았다.
그때였다.
화아악!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온통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뭐지?
순간, 강찬의 몸에서 기운이 쭉 빠져나갔다.
띠잇! 띠잇! 띠잇! 띠잇!
“Warning! Warning! Shock wave is out of control! Please get out everyone in Shock wave immediately!”
“케이블을 제거해!”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라노크의 다급한 명령에 연구원들이 억지로 한 대답이었다.
후욱. 후욱.
강찬이 겨우 시선을 돌린 곳에서 연구원들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강찬 씨! 붉은 에너지가 강찬 씨를 덮쳤습니다. 케이블을 제거할 수 있습니까?”
대답을 해야 하는데?
강찬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쿠웅!
그리고 통로에 엉덩방아를 찧는 것처럼 주저앉았다.
후욱. 후욱.
숨소리는 놓치지 않았다.
고개를 숙였는데 헬멧은 그대로 있어서 케이블을 볼 수는 없었다.
‘케이블을 몸쪽으로 당기라고 했었나?’
연결을 끊어야 했다.
그런데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헬멧의 바깥은 피를 뒤집어쓴 것처럼 온통 검붉은 색이었다.
블랙헤드와 곧바로 연결된 거다.
케이블 때문인가?
어떡해서든 강찬의 에너지를 뺏으려던 블랙헤드에게 아예 길을 열어준 꼴이었다. 기관총은 고사하고 발목에 건 권총도 꺼내지 못한 상태인데 말이다.
띠잇! 띠잇! 띠잇! 띠잇!
“Warning! Warning! Shock wave is out of control! Please get out everyone in Shock wave immediately!”
후욱. 후욱.
앞으로 꺾인 고개를 들 힘조차 없었다.
씨발!
기가 막혔다.
고작 돌멩이 하나가 가진 에너지 때문에 엉뚱한 몸뚱이에 태어나더니 이제는 돌멩이가 가진 힘을 억제하려다가 목숨을 빼앗기는 거다.
“가아앙차아아안씨이이.”
라노크가 부르는 소리가 늘어진 테이프를 틀어놓은 것처럼 길게 들렸다.
후우욱. 후우욱.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는 거다!
강찬은 눈동자를 최대한 위로 들어서 헬멧의 바깥을 보았다.
여전히 검붉은 색으로 감싸 있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강찬에게 연결된 케이블처럼 굵직한 파장이 강찬을 향해 뻗쳐 있었다.
저렇게 연결되려고 했었던 건데 그날은 권총을 쏴댄 거였구나!
케이블을 몸쪽으로!
오른쪽 허리에 케이블이 걸려 있었으니까 그쪽으로 넘어지면 되는 거지?
라노크와 연구진의 대화가 뒤엉킨 채로 지나갔다.
이렇게 앉은 채로 죽으면 석강호가 뭐라고 할까?
그 새끼는 틀림없이 이곳으로 달려와 총질을 하거나 총을 못 구하면 칼질이라도 해 댈 거다.
하긴! 그전에 폭발이 일어나겠지만 말이다.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려 했는데 기운이 나지 않았다.
검붉은 선들은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었고, 여자는 지치지도 않는지 똑같은 음성으로 당장 밖으로 나가라고 지랄을 떨어댔다.
여기서 죽으면 또 다른 곳으로 가나?
정말 죽는 거여서 지옥에 가게 되면 한동안 그곳이 시끄러울 텐데……. 장광택부터 양진우,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죽인 놈들이 죄다 달려들 게 아닌가?
피식.
최성곤부터 대원들 몇 명이 돕기는 하겠다.
힘이 완전히 빠져나가서 혼만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 “엄마는 오늘 너무 행복해서 세상에 부러운 게 하나도 없어.” -
- "찬아! 우리 아빠한테 저녁 사달라고 할까?” -
- “찬이가 나더러 고맙다고 했어.” -
- “아들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데!” -
강찬의 입 끝이 슬쩍 들렸다.
블랙헤드? 너 엄마 없지?
그게 말이야, 생각만 했는데도 눈물이 울컥 나는 거네.
그러니까 이상하게 힘도 나고.
기우뚱.
강찬의 몸이 오른쪽으로 서서히 넘어갔다.
스으윽. 철컥! 쿠웅!
검붉은 광선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
국가정보원장 황기현, 대통령 경호실장 전대극, 그리고 국가정보원 특수지원팀장 김형정은 모두 무거운 얼굴이었다.
“김성웅 총장이 사건 수사에 검사를 추가 배치했습니다. 더구나 허하수 사람이라 만약 외압을 받는다고 느끼면 바로 언론 플레이를 시도할 상황입니다.”
“형사 면책권으로 넘어가면?”
“기록을 공개하라면 아무래도 날짜가 맞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대극의 질문에 답을 하던 김형정이 말꼬리를 흐렸다.
“대통령님께서 그걸 용인하실 리가 없지. 애초에 그런 중요한 자리를 상대 쪽에 넘겨주신 것부터가 검찰의 수사에 결백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라고 하셨던 분이니.”
“호텔 CCTV 자료에 강찬 씨의 얼굴이 너무 확실하게 나왔고, 주차장파 박기범이까지 진술을 마친 상태입니다. 지금 상태로 봐서는 재판을 통해서 형을 받고 특별 사면을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전대극이 신음을 쏟아낼 때, 김형정이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그 외에도 용인 도로에서 찍힌 인터넷 영상, 호텔에서 오광택이와 함께 부산과 호남의 실제 보스들을 만난 것까지, 증거만 가지고는 무죄를 증명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작전에 나가서 세웠던 공을 선전할 수도 없는 거잖나?”
“고등학생이 그렇게 했다고 하면 믿지도 않을 겁니다.”
“발표회장은?”
“그것도 강찬 씨가 활약했다는 자료가 없습니다.”
김형정이 말을 마치자 전대극은 지금껏 듣고만 있는 황기현을 힐끔 보았다.
“아직 강찬 학생이 귀국할 때까지 시간이 있습니다. 다행히 출국 기록이 없기 때문에 프랑스에 협조 요청을 하지도 못하고. 일단 이 건이 보도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 뒤에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원장. 오광택을 만나봐야 하는 것 아니겠소?”
“지금은 위험합니다. 자칫 이 모든 불똥이 대통령님에게로 향할 수 있지요. 우선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방안을 찾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강찬 학생에게는 알리지 않겠습니다.”
황기현의 말에 김형정이 말을 더했다.
“그래야겠지.”
“석 선생에게는 그래서 모른 척하고 있습니다.”
“방법이 없나? 뭐 좋은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전대극은 얼굴을 쓸어 대며 짜증을 털어냈다.
***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걱정하는 라노크의 얼굴이었다.
“정신이 듭니까?”
이런 순간에 저렇게 덤덤한 표정을 짓는다는 게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폭발은요?”
“다시 안정을 찾았습니다. 이 상태가 얼마나 갈지는 아직 장담하지 못한답니다.”
강찬의 시선을 따라 라노크가 고개를 숙였다.
“붉은색 광선이 그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라노크가 붕대를 감은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강찬 씨가 앉아있던 바닥이 거의 녹았습니다. 만약 시간을 더 끌었다면 아래로 추락했을 겁니다.”
“열이 발생했던 건가요?”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프랑스로 돌아가겠습니다. 이곳에 간이 가림막을 설치하기는 했는데 언제 붉은색 광선이 들이닥칠지 몰라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라노크의 지시에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입구를 지키고 있던 요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후, 이동용 침대가 들어왔는데 낱개로 판매하는 케이크처럼 투명막을 씌운 형태였다.
“저 안에 있으면 에너지를 차단할 수 있답니다.”
라노크도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요원들이 바닥에 깔린 메트리스를 들어 강찬을 이동용 침대로 옮겼다.
투명한 커버가 씌워지자 기분이 더러웠다.
드르르륵.
염병할! 깨끗이 지고 도망가는 심정이라니!
그것도 방아쇠를 당기기는커녕 꼴사나운 우주복까지 차려입고 말이다.
완벽한 탈출 작전을 보는 느낌이었다.
엠불런스의 뒤로 강찬의 침대를 올리자 라노크와 요원 한 명이 그 옆에 앉았다.
이튼은 그때야 얼굴을 봤다.
“라노크! 부탁한다!”
강찬을 잘 살펴달라는 말인 줄 알았는데 라노크의 표정으로 보아서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철컥! 부우웅!
문이 닫히고 엠불런스가 급하게 출발했다.
“비밀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더군요.”
“지금 몇 시나 됐습니까?”
바깥이 어두운 것을 본 강찬은 우선 시간을 알고 싶었다.
“오후 7시입니다. 강찬 씨는 5시간가량 의식이 없었습니다.”
“제대로 졌는데요?”
투명막이라고는 해도 유리처럼 깨끗하지는 않아서 라노크의 얼굴이 이리저리 뭉개져 보였다.
“연구진이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20분쯤 달린 후에 엠불런스가 방향을 돌리자 요원이 위에 덮여있던 커버를 차의 벽 쪽으로 넘겨주었다.
“대사님은 이렇게 하고 또 한국에 가시는 거지요?”
“이동 간의 휴식은 나의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강찬이 피식 웃자 라노크가 눈 끝만 살짝 움직여 웃었다.
공항에 도착했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출발한 직후에 잠이 든 강찬은 프랑스 공항에 착륙하고서야 잠이 깼다.
“강찬 씨. 중요한 일정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바로 한국으로 가야 합니다. 혹시 견디기 어렵다면 나와 함께 지금 한국으로 가도 괜찮습니다.”
라노크는 원래 속을 읽기 어려운 타입이다.
그런데 지금은 분명하게 진심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블랙헤드도 그렇고, 월요일부터 있을 교육도 그렇고.
“대사님. 이 싸움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습니다.”
강찬은 라노크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지고 싶지도 않고요.”
“내가 뒤에 있으니까요.”
발표회장에서 강찬이 했던 말을 흉내 냈다는 것은 둘만 아는 사실이다.
라노크가 손을 뻗어 강찬의 손을 잡아 주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이기고 다쳐서 꼼짝 못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깨지고 힘을 못 쓴 적은……. 지난번하고 이번, 두 번뿐이다.
이동용 침대로 대기 중이던 엠불런스에 옮겨 탔고, 다시 숙소인 니아플르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어.’
강찬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쩐지 붉은 돌멩이가 알아듣고 있을 것 같았다.
‘이 엄마 없는 불쌍한 새끼야!’
조금은 속이 후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