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8 / 0419 ----------------------------------------------
11-2 더 감춘 것은 없나?
평소대로 잠을 깬 강찬은 팔에 꽂혀 있는 바늘을 뽑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쳐 잠만 잔 꼴이라 12시간을 넘게 자고 일어난 거다.
기력이 부족하긴 했지만 어제에 비할 바는 아니었는데 다만, 몸뚱이가 나무토막처럼 뻣뻣했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강찬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실로 향했다.
6층에 있는 운동실은 이 시간에는 늘 비어 있었다.
몸을 좀 더 풀어준 강찬은 창밖으로 향해 놓인 기계에 올라가 버튼을 눌렀다.
위이잉. 턱. 턱. 턱. 턱.
천천히 속도를 높였고, 이어서 평소에 달리던 속도에 숫자를 맞췄다.
누가 뭐래도 블랙헤드에 에너지를 빼앗긴 거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헉헉. 헉헉.”
체력이 떨어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달리는 것을 그만둘 정도는 아니었다.
프랑스 연구진이 방법을 찾아낼까?
특별한 내용이 없다면 이튼의 말대로 별도로 설치된 장치에 앉아볼 생각도 있었다.
기가 막힌 일이다.
보석에서 빠져나온 에너지가 죽은 강찬을 엉뚱한 사람 몸뚱이에 처박아 놓더니 이제 뺏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탁탁탁탁.
“헉헉. 헉헉.”
느낌이고 감이다.
하지만 어제 에너지를 빼앗겼다면 반드시 지진이 일어났을 거라는 것, 한 가지는 분명했다.
처음 만든 기계이기 때문에 설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에너지의 조합에 실패했을 수도 있을 거다.
강찬은 우선 체력을 끌어올리는 일에 집중했다.
1시간쯤 달린 후에 근력 운동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오자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었다. 이럴 때 유혜숙이 “아들! 오늘은 좀 쉬지!” 하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기운이 훅 솟아날 것도 같았다.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였다.
똑똑똑.
평소와 같이 노크가 있었다.
아침 식사가 들어올 시간이었다.
달칵.
“강찬 씨. 몸은 좀 어떻습니까?”
식사가 아니라 니아플르 책임자 피에르가 들어섰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앉으시죠.”
“괜찮다면 식사를 함께해도 될까요?”
“그럼요.”
강찬의 답을 들은 피에르가 문을 향해 “식사를 준비해 주지!”라고 외쳤다.
음흉한 인간!
이미 2인분의 식사를 준비해놓고 뻔뻔스럽게 함께해도 되느냐고 물어?
직원이 이동용 테이블을 가져와 양옆을 펴자 식사를 위한 탁자가 되었다.
“다음 주에 5개국의 요원들이 이곳에 도착합니다.”
토스트에 버터를 잔뜩 바르면서 피에르가 입을 열었다.
“러시아, 이스라엘, 독일, 미국, 그리고 중국의 요원입니다.”
강찬은 빵을 뜯어 입에 넣으며 듣고만 있었다. 입을 움직일 때마다 볼 안쪽이 욱신욱신했다.
“괜찮겠습니까?”
“그게 제 결정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강찬 씨가 거절할 경우 앞에 말씀드린 요원들은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교육을 받으러 온 것이니까 계획대로 따르는 게 맞지요.”
라파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얇게 썰어놓은 바게트를 집어 들었다. 아침 식사를 참 꿋꿋하게 먹는다.
“강찬 씨. 이번 교육의 목적은 정보국 간의 교류입니다. 그리고 강찬 씨가 추천되는 바람에 본국은 인원을 배정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가시가 있는데?
냅킨으로 입을 닦은 강찬은 상체를 세우며 피에르를 보았다.
“강찬 씨가 동의한 이후에 특별대우나 교육에서 빠지겠다고 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번 교육에서 얻은 것들로 본국에 위해가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알겠습니다.”
강찬은 순순히 답을 했다.
비록 라노크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일지라도 정보국의 한 지역을 담당하는 책임자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식사가 끝낸 라파엘이 방을 나가자 강찬은 전화를 꺼내 들었다.
오전 9시, 한국시간으로는 오후 5시쯤 되었을 거다.
하울링 가득한 통화 연결음이 서너 번 울렸을 때였다.
[“나요!”]
투박한 석강호의 음성이 들렸다.
매일 듣다시피 하는데도 반갑다.
강찬은 우선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석강호에게 충분히 알려주었다.
[“지금은 괜찮은 거요?”]
“응. 견딜 만은 해. 그런데 네 목소리는 왜 그래?”
[“그게 오광택이 구속되어 있었소.”]
“뭐?”
깡패가 구속된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마음을 잡고 사업가의 길을 들어서겠다고 했던 놈이 느닷없이 구속되었다니까 뜻밖이기는 했다.
[“술집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일반인을 자기를 노리고 온 깡패들인 줄 알고 칼질을 했답디다. 다섯 명인데 둘은 아무래도 위험한 모양이우.”]
쯧! 언젠가 겁이 나네, 어쩌네 하더니!
[“주철범이도 구속돼 있던데 현장에 없었는데도 나중에 구속됐답디다. 낯부끄러워서 연락을 못 했나 싶어 가봤더니 변호인 외에는 접견이 안 된다고 해서 그냥 돌아왔소.”]
김형정에게 부탁하면 접견은 될 텐데?
강찬은 당장 말을 하지 못했다.
[“김 팀장에게 부탁할까 했는데 이건 뭐 명분이 없어서 얘기하기도 그렇고 그렇수.”]
석강호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럼 구속된 건 어떻게 알았냐?”
[“서 이사한테 들었소.”]
“서 이사 만났냐?”
[“어제 저녁 먹고, 김 대표, 서 이사, 팀장님, 이렇게 술 한잔 했소.]
“쯧! 그럼 내용은 알고 있는 거네?”
[“그래서 더 말하기가 그렇습디다. 대장이 있으면 핑곗김에 우겨보기라도 할 텐데.”]
미친 새끼가 왜 엉뚱한 사람들에게 칼질을 해서!
“당분간 지켜보자.”
[“접견이 제한되는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4조로 수사하는 것 같다는 말은 있었소.”]
“4조는 또 뭐냐?”
[“범단 구성이라 최고는 사형까지 나오는 모양이오.”]
“염병!”
[“하여간 1심 끝나고 상황을 볼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쇼.”]
“알았다.”
전화를 끊고 나자 속이 시끄러웠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다.
전화를 끊자 곧바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8명이 들어와서 하는 상황극이다. 강찬까지 9명.
영어로 지껄이는 역할을 9번 완벽하게 해내야 과정이 끝난다. 한국에 가서 이런 교육 과정을 만들면 돈 좀 벌 것 같았다.
다음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심리학 과정이 있었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는 동안 체력이 서서히 올라왔다.
***
교육을 받으며 보냈다.
모든 것이 규칙적으로 흘렀고, 어느 정도 니아플르에서의 삶에 적응도 되었다.
라노크가 찾아온 것은 꼬박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오전이었다.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도착한 터라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구진이 흥미로운 보고를 내놓았습니다.”
궁금했던 이야기다.
라노크는 바게트를 집어들며 입을 열었다.
“블랙헤드는 일종의 에너지 집합체라는 분석입니다. 아홉 개의 에너지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중 두 개를 잃어버린 상태라는 겁니다.”
설마 연구진이 기껏 밝혀냈다는 게 그건 아니겠지?
구렁이, 구렁이, 정말 이런 구렁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라노크의 표정만 봐서는 연구진이 해결책을 내놓았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잃어버린 두 개의 에너지를 대체하기 위해 세티늄과 데나다이트를 사용한 이유가 중요합니다. 본국의 연구원들은 영국이 두 가지 대체물로 에너지를 공급한 이유가 지진을 일으키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진을 막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분석했습니다.”
이건 또 뭔 소리야?
남은 바게트 조각을 입에 넣은 라노크가 잠시 시간을 끌었다. 프랑스인들의 식사법을 모른다면 울화통이 터질 일이었다.
“지층 충격기에 블랙헤드를 연결하는 순간에 이미 통제 불능 상태를 맞았을 거라는 분석입니다. 그대로 두면 영국에 엄청난 지진이 발생할 수 있어서 안정을 시키려는 의도로 두 가지 에너지원을 대체했던 거지요.”
“그 뒤에도 계속 통제 불능 상태여서 도움을 청했던 건가요?”
라노크는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를 넣자 블랙헤드의 에너지만 커지는 효과가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튼의 말대로 지진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는 말씀이시잖아요?”
“연구원들의 말로는 지진을 일으키는 파장의 크기로 봐서 영국에 국한될 확률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이튼이 다급해서 과장했다고 볼 수 있는 거지요. 다만, 지각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시뮬라시옹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 그것이 나오면 거의 확실한 결론도 나오리라 봅니다.”
어쩐지 이튼이 저자세로 나오더라니!
아직 해결책에 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강찬 씨의 방문 이후에 안정을 찾았다가 목요일 저녁부터 다시 진동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층 충격기를 우선 안정시킨 후에 다음으로 블랙헤드를 제거한다면 지진 없이 모든 것이 마무리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지난번처럼 주기계와 마주쳐야 하는 겁니까?”
“강찬 씨에게 위험한 것을 알았으니 무방비로 그럴 수는 없지요. 에너지 차단복을 이용해 블랙헤드와 에너지 연결을 끊고 또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에너지의 파장을 볼 수 있는 고글을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에너지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고?
그렇다면 지난번 방문 때 느꼈던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강찬의 표정을 본 라노크가 한쪽 입술을 올리며 미소 지었다.
***
라노크에게 비하겠냐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두 시간 가까이 승용차도 타야 한다.
그나마 날씨가 화창한 게 위안이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참이다.
“월요일에 5개국의 요원들이 합류한다는 소식은 들었습니까?”
“피에르가 알려주었습니다.”
라노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 씨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을 겁니다.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겠지만, 혹시나 불편한 사항이 있다면 바로 피에르에게 요청하면 됩니다.”
아직 비행시간이 충분히 남았다. 그래서 강찬은 궁금한 것을 묻기로 했다.
“대사님. 프랑스는 요원을 파견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 때문에 곤란해지시는 건 아닙니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이 교육은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대개 5년에 한 번씩은 있으니까 프랑스는 다음번에 참여하면 됩니다.”
“저는 괜찮으니까 이번에 프랑스 요원도 파견하시죠?”
“이 교육은 다섯 명이 추천하는 나라만 참석합니다. 당연히 자신이 속한 나라의 정보국 요원을 추천하는데 이번에 제 추천이 강찬 씨였기 때문에 본국은 참석하지 못합니다.”
순간 강찬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추천을 받아야 들어가다니!
원래대로라면 강찬은 이런 교육을 받기가 애초에 불가능했었을 수도 있었던 거다.
라노크는 모처럼 감정이 담긴 미소를 보여 주었다.
“언젠가 강찬 씨가 힘을 얻게 되면 프랑스의 인재가 나왔을 때 도움을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합니까?”
“예.”
“현재 프랑스에는 이 교육에 참여할 만한 인재가 없습니다. 내가 강찬 씨를 이 교육에 넣은 것이 당장 인재가 없는 프랑스의 앞날에 커다란 도움이 되리란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라노크가 정말 원하는 게 무얼까?
입과 눈을 길게 늘이며 미소 짓는 라노크를 보며 강찬은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무슈 강, 나를 비롯해 바실리, 루드비히, 반트, 심지어 양범까지 짧으면 5년, 길게 잡아봐야 10년 이내에 정보국 일선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일인자를 만들지 못했지요. 나는 앞으로 다가올 정보국 세상에서 강찬 씨가 일인자가 되리란 확신이 있습니다. 그때 프랑스를 지켜주기를, 프랑스에서 나온 인재를 돌봐주기를 부탁합니다.”
확실하게 가면을 벗어던진 라노크의 눈빛을 보며 강찬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어볼까 말까?
라노크가 재미있다는 듯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주저하는 강찬 씨의 모습은 처음 봅니다.”
라노크가 저렇게 웃는 것도 처음 보는 거다.
“대사님. 솔직하게 대사님이 정보국에서 어떤 위치인지 궁금했었습니다.”
라노크는 대답 대신 찻잔을 잡으며 소리 내 웃었다.
“이번 교육이 끝나면 대답하기로 하지요. 강찬 씨가 정식으로 정보국의 일원이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강찬은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함께 웃었다. 그만큼 지금 보이는 라노크의 미소는 보기 좋았다.
***
공항에 마중 나온 이튼은 다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라노크라면 절대로 저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 거다.
악수를 나누고 승용차로 이동하면서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강찬은 바깥의 풍경을 주시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엄청나게 강한 적과 일대일로 다시 맞붙는 심정이었다.
오늘은 어떨까?
강찬은 도로에서 빠져나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승용차가 외곽도로로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전과 똑같이 강찬에게 경고를 보냈다.
에너지 파장을 볼 수 있는 고글이 있었으면 싶었다.
정확하게는 몰라도 이 지점부터 강찬과 블랙헤드가 연결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기관총을 가져올 걸 그랬나?
강찬은 피식 웃으며 호흡을 조절했다.
에너지 차단복이 있다고 들었고, 고글도 있을 테니 블랙헤드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거다.
고작해야 기계 나부랭이다.
엉뚱한 몸뚱이에 살게 해놓았다고 해서 다시 내놓으란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다. 그게 기계가 아니라 신이라고 해도 말이다.
처음이 아니어서 약간의 여유도 있었다.
20분쯤 달린 승용차가 목적지에 했다.
달칵.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심장이 전과 다르게 커다랗게 뛰었다.
볼록한 건물들만 보이는데도 주변에 무거운 침묵과 긴장이 깔린 것처럼 느껴졌다.
“우선 이쪽으로 오시죠.”
차를 마셨던 건물을 향해 이튼이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연구진과 요원들이 건물 로비에 모두 서 있었다. 건물을 보며 느꼈던 그대로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쪽입니다.”
연구진은 라노크와 강찬을 곧바로 가장 오른쪽 방으로 안내했다.
“진동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얼굴 아래쪽이 하얀 수염으로 덮인 사내가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현재 건물 내부에 있는 모든 인원이 철수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연구원이 무언가 주저하는 얼굴로 이튼을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빨리 하도록.”
“분석한 내용으로 볼 때 최악의 상황이라 해도 지진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라노크가 빠르게 이튼을 본 다음 연구원을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폭발이 일어납니다. 실험에 사용되었던 티차르 봄바 20개를 동시에 폭발시킨 위력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폭발이 일어나면 프랑스는 물론이고, 유럽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됩니다.”
라노크의 매서운 눈빛을 이튼은 묵묵하게 받아냈다.
“왜 보고와 다른 결론이 나온 거지?”
“주기계 장치에 대한 이중 설계도면을 늦게 받아서 블랙헤드 자체의 폭발을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막을 방법은?”
“말씀드린 대로 해보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라노크가 나직하게 숨을 내쉬는 동안 침묵이 흘렀다.
“시간 여유가 얼마나 있나?”
“예상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기가 막히는군.”
실제로도 라노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알았으니까 준비를 서두르도록.”
연구진들이 빠르게 움직이자 라노크는 강찬을 향해 몸을 돌렸다.
“티차르 봄바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러시아에서 개발한 핵무기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튼이 힐끔 강찬을 보았다가 얼른 시선을 떨궜다.
“지금까지 개발된 핵무기 중 가장 위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버섯구름의 높이가 60㎞, 폭발이 천 킬로미터 바깥에서 보일 정도로 무서운 위력을 지닌 폭탄입니다.”
외인부대 교육에서 들었던 것 이후로 처음 이름을 들어보았다.
“차라리 지진이 나기를 바랄 상황이 되었군요.”
강찬만큼이나 라노크의 눈도 날카로웠다.
“대사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도움이 되어서 블랙헤드를 해결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거지요.”
“강찬 씨가 해결하는 겁니다.”
말을 마친 라노크가 이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더 감춘 것은 없나?”
“없다. 라노크.”
라노크의 나직한 한숨이 들릴 때 연구진들이 우주복 같은 옷을 들고 다가왔다.
쿠웅. 쿠웅.
강찬은 심장이 이렇게 뛰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