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96화 (19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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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해보자 이거지?

승용차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오산으로 향했다.

“외교관은 주재국을 함부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번에 출국하는 것 역시 비밀리에 움직이는 것이고, 니아플르(Niafles) 근교에 내려서 강찬 씨를 소개한 후에 바로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라노크는 이른 시간임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영국에는 본국의 연구진이 함께 시찰해서 어떤 경우에도 ‘강찬 씨의 안전을 보장해야 도움을 줄 수 있다,’ 라고 조건을 걸어두었습니다.”

“받아들일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라노크가 가벼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지층 충격기의 비밀을 모두 털어놓는 꼴인데 함부로 보일 수는 없겠지요.”

영국이 안 받아들이면 프랑스도 충격이 적지 않은 일이다. 이튼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말이다.

“이런 일일수록 칼자루를 누가 잡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굳이 쥐고 있는 칼자루를 상대에게 넘겨줄 필요는 없지요.”

1억 명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만약 한국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라노크가 목숨을 걸어주어야 한다면 강찬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오산 공항에 도착하고 자가용 비행기에 올랐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식사를 하지요. 저쪽에 있는 방을 이용하면 됩니다.”

굳이 사양할 일은 아니어서 강찬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정말 침대와 벽에 옷걸이, 그리고 작은 등만 있었다.

두 끼 식사를 하며 13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프랑스의 니아플르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경이었다.

거친 바람 속에 흙먼지가 섞여 들어오는 황량한 공항이었다.

실컷 자고 났더니 오히려 몸 상태가 좋았다.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1시간가량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조그만 도시였다.

전원 풍경의 배경으로 형성된 유럽의 도시는 음침함과 적막함,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위압감을 지닌다. 승용차가 도착한 건 중심부에서 살짝 벗어난 건물이었다.

차에서 내린 강찬은 마치 가평의 읍내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노동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꾸민 요원들이 건물의 앞에 쭉 깔려서 강찬과 라노크를 날카롭게 보았다.

건물은 7층으로 꽤 오래된 건물이었다.

주변에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상 카페, 작은 빵 가게,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서 이런 곳에 정보국의 건물이 있어도 되나 싶은 정도였다.

달칵.

안으로 들어가자 로비는 오래된 프랑스의 아파트 건물과 흡사했다.

이 새끼들은 현관문을 열면 꼭 계단이 있다.

라노크는 계단을 무시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도착하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현재로 날아든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카펫이 깔린 복도 좌우로 있는 유리 칸막이, 컴퓨터 시설 등등.

강찬이 빠르게 안을 살핀 직후에 뚱뚱하게 생긴 40대 남자가 라노크의 앞으로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Entrez).”

라노크와 강찬은 사내를 따라 유리 칸막이를 거쳐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집기로 꾸며진 사무실이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니아플르 책임자 피에르 로망(Pierre Lomans)입니다.”

“라노크요. 이쪽이 강찬 씨.”

피에르 로망이 내민 손을 잡은 라노크가 강찬을 소개했다.

“앉으십시오.”

라노크와 강찬은 책상을 향해 놓인 의자에 앉았다.

피에르는 한쪽에 있던 차 주전자를 들어 직접 차를 따라 주었는데 라노크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준비는 모두 갖추었습니다. 우선 이것을 확인하시고.”

피에르가 책상 위에 있던 종이봉투를 건네주었다.

“간단한 소개와 휴식을 취하고 바로 교육을 진행하겠습니다.”

강찬이 꺼내 든 서류에는 여권과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사용할 신분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앞으로 프랑스에서는 그 이름으로…….”

“피에르.”

라노크가 피에르의 말을 자르고 나섰다.

“무슈 강에 대한 정보를 잘 못 들은 모양인데 이미 유럽 정보국 모두가 인정하는 분에게 이런 대우를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야. 이 서류는 넣어두는 것으로 하지.”

“알겠습니다.”

서류를 돌려주는 강찬이 무안할 정도로 냉정한 대응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부탁하는 사람이 조금 더 고개를 조아리고 맡는 사람이 여유를 부리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데 라노크의 표정과 말투가 바뀔 때마다 피에르는 대놓고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을 보였다.

20분에 걸쳐 묘한 면담이 끝나자 라노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찬 씨. 영국과의 조율이 끝나면 돌아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라노크가 시선을 돌려 피에르를 한번 보고는 방을 나섰다.

뭐야?

이렇게 그냥 돌아갈 걸 굳이 프랑스까지 날아오고 한 시간씩 자동차로 달린 거야?

웃음이 나올 만큼 당황스러운 일이었으나 이미 라노크는 사무실을 나선 다음이었다.

피에르는 강찬을 데리고 7층부터 3층까지의 전 층을 보여주고, 다시 5층의 방 하나를 정해 주었다.

거실, 침실, 그리고 샤워실, 간단한 주방까지, 시설이 나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쓸데없이 넓은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여행 중간에 적당한 숙박 시설에 들어선 것 같았는데, 하긴 방이 좁았다면 갇혀 있는 분위기가 날 수도 있겠다.

“강찬 씨는 앞으로 이곳 503호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5층에는 506호까지 여섯 개의 방이 있었는데 다른 방에 누가 묵고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호텔의 이용방식과 같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여기 전화의 0번을 누르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피에르는 강찬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는 듯 공손한 태도였다.

늘 같은 질문을 받는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어디에서 전투 기술과 프랑스어를 배웠느냐?

그런데 강찬은 오늘 또 라노크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 인간이 그걸 알려줄 수 있을까?

“궁금한 것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여간 정보국에 소속된 인간들은 다른 건 몰라도 눈치 하나는 끝내준다.

“그럼 1시간쯤 뒤부터 간단한 교육 과정을 거치고 저녁을 드시면 됩니다.”

달칵.

하여간 애새끼들이 사무적인 건 좋은데 인간미가 부족하다. 강찬은 한국에서 만난 대원들을 떠올렸다.

강찬은 간단하게 씻고 방의 곳곳에 있는 수납장들을 열어보았다.

방 안에 있는 벽장에는 옷이 잔뜩 들었다.

편한 옷, 운동복, 양복 5벌, 그리고 그에 맞는 모자와 신발, 심지어 권총과 탄창까지.

‘도착했으니까!’

가장 먼저 한 일은 서울에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강대경과 유혜숙, 석강호, 그리고 김형정과 통화를 하고 나자 더 급한 연락은 없었다.

***

오전은 암호 해독법, 정보 위성의 관리, 각국 정보국의 지휘체계, 세계 경제에 대해 교육, 다시 오후에는 심리학, 영어, 그리고 사교춤의 과정이 있다.

강찬이 정말 놀란 것은 위성의 활용법과 프랑스 정보총국을 비롯한 유럽, 미국, 중국 정보국의 활동 범위였다.

정보국의 활동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이렇게까지 깊숙이 개입해 있는 줄은 짐작조차 못 했다.

그 외에 국제사회의 역학관계, 그에 따른 경제 동향을 알고 나자 한국의 힘이 부족한 것에 무력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래서 그렇게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하고 싶어 했었나?’

막말로 미국, 중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한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는 거다.

배우면 궁금한 것이 떠올랐고, 현재의 모습과 비교할 수 있는 이야기라 귀에 쏙쏙 들어왔다. 빌어먹을 영어와 사교춤만 아니라면 견딜만한 교육이었다.

프랑스에 도착하고 꼬박 11일 동안 건물에서만 지냈다.

새벽에 일어나면 운동실에 들어가 러닝머신에서 달리고 각종 기구로 운동하는 것과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의 통화가 유일한 낙이었다.

식사도 방에서 혼자 한다.

이게 갇혀 있는 것과 뭐가 다르지?

혹시 6개월을 가둬두려고 이러나?

여태껏 열흘이 지나도록 라노크는 연락이 없었다.

라노크가 알아서 할 거다.

강찬은 그렇게 믿었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식사를 준비해주는 나이 든 직원과 친분이 생겨서 이제는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는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가량 휴식을 취한다.

학교 축제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석강호가 매일, 이틀 간격으로 미쉘과 김형정이 번갈아 전화를 주었다.

***

12일째, 오전 수업과 점심을 마쳤을 때였다.

달칵.

문이 열리고 뜻밖에도 라노크가 들어섰다.

“대사님.”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프랑스식 인사를 마친 강찬은 라노크와 마주 앉았다.

“지내기는 어떻습니까?”

“이럴 거라면 굳이 프랑스에 오지 않았어도 될 것 같은데요?”

실제로도 프랑스로 와 있어야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나온 답이었다.

“기본 교육이 끝나면 이해하게 될 겁니다.”

라노크가 특유의 미소를 보이며 강찬을 다독였다.

“이튼이 몹시 급한 모양입니다. 정보총국과 본국 과학자들의 참관을 결정했습니다.”

라노크에게서 칼자루를 지켜낸 사람의 여유가 보였다.

“괜찮다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시죠.”

옷장에 양복만 다섯 벌이고, 그에 맞춰 입고 신을 수 있는 것들이 가득 들었다.

강찬은 옷을 갈아입고 발목에 권총을 건 다음, 라노크와 방을 나섰다.

건물 앞에서 차를 탔고, 1시간여를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자가용 비행기의 편리함은 굳이 설명한 필요가 없다.

공항에 도착하면서 출발하고, 수속 절차 없고, 그 흔한 좌석 벨트 한 번 매라는 법도 없다.

이륙 후, 보좌관이 준비해 준 차를 라노크가 따라주었다.

“강찬 씨의 습득력에 피에르가 놀라고 있더군요. 통상 정보국에서 일정 기간 복무한 요원 중에서 정보총국으로 이동하게 될 경우, 강찬 씨가 받은 것과 같은 교육을 다시 받습니다.”

간부가 되기 위한 기본 교육쯤 된다는 건가?

뭐라도 상관없다. 이 과정을 거쳐야 강한 사람이 되는 거라면 지겹든, 지치든 간에 견뎌낼 생각이었다.

“한 달간의 교육이 끝나면 각국에서 온 요원들과 5층에서 함께 지내게 됩니다. 다시 이스라엘로 가서 한 달, 그리고 독일에서 한 달, 마지막으로 러시아로 이동해서 한 달을 지내고 니아플르로 돌아오지요.”

“대사님도 이 과정을 거치셨나요?”

“그렇습니다. 그때 함께 한 동료들이 지금 바실리와 루드비히, 반트 등입니다. 모두 13명이 교육을 받았는데 살아있는 건 5명입니다.”

사는 바닥이 워낙 험한 곳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역시 강찬 씨는 그렇게 놀라지 않는군요.”

“놀랄 걸 그랬나요?”

“하하하하.”

커다랗게 웃고 난 라노크가 찻잔을 들면서 강찬을 보았다.

“강찬 씨. 러시아를 포함한 각국의 정보국 요원이 함께 교육을 받는 것은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보를 교환할 비선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강찬 씨가 동양인이고, 프랑스를 대신해 교육에 나섰기 때문에 다음 달에 합류할 교육생들이 거칠게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상 참 쉬운 게 없다.

“강찬 씨가 그들을 잘 이끌어주리라 기대합니다.”

강찬이 피식 웃자 라노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세 시간쯤 날아간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렸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데다가 날씨마저 우중충했다.

“이튼의 시커먼 속과 같은 날씨군요.”

라노크의 농담을 끝으로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이튼은 영국군의 군복을 잘라 만든 것 같은 코트 차림으로 우산을 들고 있었다.

“어서 오게, 라노크. 환영합니다, 강찬 씨.”

짧은 악수를 나눈 다음 준비된 승용차에 올랐고, 바로 출발했다. 경호 차량이 분명한 승합차와 승용차만 다섯 대가 넘게 서 있었다.

이튼은 확실히 굳은 얼굴이었고, 서두르는 동작이었다.

“우리 쪽 연구원과 요원들은?”

“준비를 마치고 자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지.”

조수석에 앉은 이튼이 뒤를 돌아보며 답을 했다.

“데드햄(Dedham)이라니, 도시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군.”

이튼은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같은 유럽인데 프랑스와 영국은 차이가 분명하다.

건물의 형태며, 사람들의 체형, 분위기까지.

이 동네는 어쩐지 많이 먹고 힘을 좀 써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20분쯤 달린 승용차는 한순간 방향을 틀어 좁은 도로로 들어섰다.

두근두근.

그런데 그때부터 강찬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날카롭게 주변을 살폈는데 앞뒤로 따라오는 차부터 모두 이튼이 준비한 것이라 당장 믿을 수 있는 것은 발목에 걸린 권총밖에 없었다.

두근두근.

강찬의 표정을 본 라노크가 번득하며 눈빛을 빛냈다.

이런 건 말이 필요 없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눈빛을 주고받았고, 차에서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승용차는 20분쯤을 더 달려 바리케이드를 통과했고, 마침내 목적지에 들어섰다.

‘킹스턴 연구소.’

이름 한번 더럽게 촌스럽다.

차에서 내리자 전면이 완벽하게 내려다보였다.

강찬은 라노크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평원에 에스키모들이 만들어 놓은 것처럼 둥그렇게 올라온 시멘트 건물들이 볼록볼록 서 있었는데 창문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내린 바로 앞에도 둥그렇게 만든 시멘트 건물이 있었는데 크기가 강남에서 들렀었던 백화점 건물만 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완벽하게 경고했다.

들어가지 말아야 하나?

강찬의 눈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튼은 시멘트 건물의 철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쪽입니다, 강찬 씨.”

“우리 요원들은?”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다. 위성의 감시를 생각하면 이곳에서 만나는 것은 위험하지.”

그 사이 승합차와 승용차에서 내린 요원들이 주변을 빙 둘러쌌다.

여기까지 와서 버티는 것도 우습다.

“들어가시죠.”

강찬의 눈을 본 라노크가 잠시 멈칫한 다음 걸음을 옮겼다.

낡은 것 같은 문이 소리조차 없이 열렸다.

형광등 불빛이 먼저 보였고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철제 계단과 허리춤에 올라오는 난간이 있었다.

태어나서 이런 엄청난 시설을 본 것은 처음이다.

볼록 볼록한 시멘트 건물마다 높다란 시설이 솟아 있었고, 축구장 열댓 개를 펼쳐놓은 듯한 넓은 실내엔 각종 장비와 위생복을 입은 사람들이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선 강찬은 소름이 쭉 끼쳤다.

시설물이나 기계 장치가 커서 그런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우우우우웅.

옅은 진동음, 텁텁한 공기, 그리고 형광등에만 의지한 불빛.

강찬은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고, 다음으로 위압감을 느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적과 마주친 느낌이었는데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내려가시죠.”

딸캉. 딸캉. 딸캉. 딸캉.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판이 소리를 냈다.

돌고, 다시 돌아서 10m를 내려가자 기다란 연결 통로가 보였다.

강찬은 죽음으로 다가가는 듯한 공포도 느꼈다.

이를 악물고 견디고는 있었지만, 처음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렇게 되면 몸이 굳고, 그만큼 동작이 무뎌진다.

지금껏 상대했던 그 어떤 적 앞에서도 몸이 굳어져본 적은 없다.

강찬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신 다음 피식 웃었다.

고작 기계 따위가 사람을 겁줘?

고개를 좌우로 비틀어 목을 풀었다.

후욱후욱. 후욱후욱.

우습게도 걸음을 옮기는 동안 숨소리까지 들렸다.

몸이 완벽하게 긴장했다는 뜻이다.

족히 100m는 걸었을 거다.

날이 완벽하게 서서 모든 것이 서서히 움직이는 느낌이 들 때쯤 이튼이 멈춰 섰다.

바닥으로 뚫고 들어간 기계가 위쪽으로 볼록한 시멘트건물의 끝까지 높다랗게 치솟아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프랑스 요원들이 라노크에게 아는 척을 하며 먼저 다가왔고, 그 뒤를 양복과 안전모를 쓴 사내들이 따랐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긴장한 적이 숨을 내쉬는 소리처럼 기계음이 바뀌었다.

이튼은 당황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프랑스 요원들 주변에 있던 위생복 차림의 연구원들을 향해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What the hell happened the Shock wave!”

“I don't know, sir! Suddenly happen!”

연구원이 답을 하며 강찬을 보았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유리다.

우주선의 머리를 바닥에 박아놓은 것 같은 형태의 기계장치는 강찬이 서 있는 앞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후욱. 후욱. 후욱. 후욱.

볼록 올라간 시멘트 지붕에 연결될 만큼 기다란 아홉 개의 기계 장치가 메인 기계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강찬이 다가갈수록 점점 더 진동이 커지고 있었다.

강찬은 유리 너머를 꼼짝도 않고 노려보았다.

‘해보자 이거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검붉은 색을 깜박이는 커다란 광물, 블랙헤드가 점차 빛을 강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후욱. 후욱.

이튼은 물론이고, 라노크와 함께 서 있는 모두가 놀란 눈으로 강찬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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