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9 / 0419 ----------------------------------------------
10-7 괜찮다고 했어요.
“얼굴이 안 좋아, 차니.”
“일이 좀 많았어.”
미쉘은 어떤 일인지 묻지 않고 곧바로 화제를 바꿨다.
“다음 주 금요일이 공휴일이어서 그때 학교 축제가 있을 거야.”
강찬은 피식 웃었다.
바로 어제 동료가 죽어 나오는 싸움을 하고 왔는데 다른 한쪽에선 축제가 중요한 이야깃거리다.
“애들 딴엔 열심히 준비했어.”
성질 나쁜 남동생을 달래는 것처럼 미쉘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면 강찬이 부탁한 일이다. 적어도 고맙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야 맞다.
“그리고 차에 등기 서류 있으니까 가져가. 입주는 2주일 뒤에 된대. 1층 상가하고 나머지 사무실 분양은 어떻게 할까?”
미쉘의 질문이 끝났을 때 커피가 왔다.
“1층은 아버지 자동차 전시장으로 쓰고 싶었는데 옮기시라는 말씀 드리기가 애매하네. 나머지 사무실이야 내가 쓰는 곳과 겹치지만 않으면 상관없어. 참, 디아이는?”
“우리, 7층하고 8층을 쓸까 해, 그래도 될까?”
커피잔을 들던 강찬은 편안하게 웃었다.
“건물 관리는 알아서 하라고 했잖아? 마음 놓고 써. 1층하고 어머니 재단 사무실이 거기 있었으면 싶은데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자.”
“사실 금융회사 한 곳이 1, 2, 3층을 은행과 증권사 건물로 쓰고 싶다는 연락이 있었어.”
강대경, 유혜숙과 같은 건물에 있어도 괜찮을까?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지는 않을까?
강찬은 당장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미쉘, 내일모레 펜션 다녀오기로 했거든. 그 뒤에 결정해도 되지? 어차피 1층 전시장만 결정되면 나머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잖아?”
“펜션?”
“응. 그냥 부모님과 다녀오려고.”
맥주나 칵테일을 비롯한 술을 파는 곳이라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리곤 했다.
“다음 주에 드라마가 끝나. 시청률도 제법 잘 나왔고 해서 디아이 직원들과 그 외에 조연 연기자들 해서 해외에 다녀올까 해.”
“그건 알아서 하고.”
“거긴 같이 가기 어렵지?”
“우리 직원이나 연기자는 몰라도 다른 연기자들이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커다란 눈으로 강찬을 들여다보며 미쉘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상한데?
어딘지 모르게 순종적인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미쉘이 돈 때문에 그럴 리는 없을 거고.
“왜?”
“너 뭐 있지?”
강찬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받은 미쉘이 짓궂게 웃었다.
“드라마 성공했고, 건물 인수, 내부 공사, 다 잘했으니까 디아이 해외여행 다녀오고 나서 나랑 발리 다녀오자.”
그럼 그렇지!
어쩐지 고분고분하더라니.
“어때?”
“내 대답은 알지?”
“가자-아!”
미쉘이 탁자에 엎어지다시피 팔을 길게 내밀어 강찬의 팔뚝을 잡고 칭얼거렸다. 주변 놈들의 표정으로 보아 대신 가고 싶은 놈 손 들어보라고 하면 서빙하는 직원까지 나설 기세였다.
“정신 차려라.”
“가자-아!”
작정한 것처럼 미쉘은 매달렸다.
주변에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알아서 예약할게, 차니.”
“그냥 하루 놀자. 신디랑 세실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하루? 24시간?”
“적당히 하지?”
미쉘이 새초롬한 얼굴로 상체를 세운 다음 강찬을 빤히 보았다. 커다란 눈을 껌벅이면서 말이다.
“알았어. 대신 그 날은 내가 가고 싶은 곳 가는 거야.”
“그래.”
레스토랑이나 식당을 정하는 건 미쉘이 한 수 위다. 그런 거라면 아예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옴브화스 모아(embrasse moi).”
키스를 해달라고? 여기서?
느닷없이 지껄인 프랑스 말에 주변 놈들의 귀가 쫑긋 섰다.
“다음에. 자! 담배나 하나 피우고 들어가자.”
“차니는 이럴 때 정말 사람을 달아오르게 해.”
그러면서도 미쉘은 강찬이 디민 담배를 받았다.
찰칵.
둘이서 불도 붙였다.
“드라마 제작 투자받은 건 해외 판권으로 상환이 가능할 것 같아.”
담배를 받아들자 정신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이런 애한테 6개월 정도 연수를 가 있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둘이서 한 시간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아파트 앞에서 내렸다. 디아이가 해외여행을 가기 전에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기로 한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강찬은 우희승과 이두희에게 다음 날 보자고 하고 우선 집으로 올라갔다.
***
다음 날 새벽은 천천히 뛰었다.
아직 작전에서 쌓였던 피곤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느낌이어서 무리를 하기 어려웠다.
푸시업과 몇 가지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왔다.
“좀 쉬지!”
“이렇게 하면 피곤이 더 빨리 풀려요.”
전 같으면 귀찮아할 만한 대화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함께 식탁에 앉았는데 강대경과 유혜숙은 호텔에서보다 만 배쯤 편안한 얼굴이었다.
“피곤은 좀 풀리셨어요?”
“그러게나 말이다. 호텔에서 잘 때는 뭔가 불편한 느낌이었는데 그런 거 없으니까 정말 푹 잤다.”
유혜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즐겁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섰을 때 전화가 울렸다.
정말 라노크가 집에 카메라를 달아놓았나?
강찬은 방을 한번 둘러보고 전화기를 들었다.
“대사님. 강찬입니다.”
[“강찬 씨. 오늘 10시 30분쯤 괜찮은가요? 대사관에서 만났으면 합니다.”]
“예, 그렇게 할게요.”
내용은 간단하게 끝났다.
밖으로 나왔을 때 강대경과 유혜숙이 함께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저도 도울까요?”
“아서라. 이런 거 방해하면 불효자 되는 거다.”
강대경이 고개를 저어대서 강찬은 녹차를 탔다.
“프랑스 대사관에 다녀올게요.”
“그래라. 내일 펜션 가는 건 괜찮은 거지?”
“그럼요.”
차를 마시고 옷을 갈아입은 강찬은 느긋하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아파트 입구를 향하는 길에 전화기를 꺼내서 우희승과 이두희를 찾았다.
“대사관에 갈 거야. 같이 차 한잔 하고 싶은데 어때?”
[“바로 앞에 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골목에서 차가 나와서 강찬의 앞에 섰다.
강찬이 올라타자 차가 바로 출발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 같이 했던 일이야. 희생된 대원들도 있고.”
우희승과 이두희를 보자 여러 가지 감정이 함께 솟았다.
“당분간 둘이 다닙니다.”
“그거야 두 사람이 판단할 일이고. 대사관에는 10시 반까지만 가면 되니까 어디서 차나 한잔 하자.”
“대사관 앞에 적당한 곳이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서 이두희는 테라스가 예쁘게 꾸며진 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
“이런 곳이 있었네?”
“커피도 제법 맛있습니다.”
셋이서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고, 담배를 나눠 피웠다.
“종일이는 어때?”
“많이 회복됐답니다. 아직 비행기를 타는 게 위험해서 그런데 아마 한 달 정도면 돌아올 모양입니다.”
“집은? 안 식구랑 애도 있다던데?”
“형수님이 워낙 강해서요.”
우희승의 표정을 보자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차동균의 소식도 들었다.
오랜만에 전우를 만난 느낌으로 30분쯤 떠든 다음 다시 대사관으로 향했다.
이제는 낯익은 요원들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로 들어갔을 때 라노크가 강찬을 맞아주었다. 프랑스식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라파엘이 차와 시가를 가져왔다.
“이렇게 다시 마주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굉장한 작전이었습니다.”
“대사님께서 뒤를 지켜주셔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대사님.”
라노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에 입을 열었다.
“숨겨진 뒷이야기가 조금 있지요.”
무언가 강찬이 모르는 다른 일이 또 있는 거다.
연수를 권하는 것과는 다른 표정이어서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영국에서 강찬 씨를 급하게 보고 싶다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나도 아직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강찬 씨만 괜찮다면 함께 만났으면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하여간 일 참 두서없이 벌어진다.
“대사님 생각은 어떠세요?”
“내 의견을 묻는 거라면 일단 만나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시면 대사님께서 알아서 판단해 주시죠? 대신 내일은 부모님과 펜션에서 하루 지내고 올 생각이어서 그 시간은 좀 빼주셨으면 싶습니다.”
워낙 말 떨어지기 무섭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인간들이라 강찬은 미리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 정도 여유야 충분합니다.”
라노크가 흔쾌히 받아들인 다음에 시가를 집었다.
이제부터 하는 말이 조금은 부담된다는 의미여서 강찬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가 제안했던 연수는 생각해 보았습니까?”
“예. 아직도 자격이 된다면 부탁드릴 생각이었습니다.”
“탁월한 판단입니다. 강찬 씨.”
라노크가 만족한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영국의 이튼을 만나고 나서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일정을 짜야겠군요.”
“대사님. 만약 연수를 받는다면 언제쯤 출발합니까?”
“10일 정도 후에 출발한다고 생각하면 맞을 겁니다.”
그렇게나 빨리?
6개월씩 걸리는 일을 10일 뒤에 출발하라고?
설득하고 인사해야 할 사람이 가득 널린 참이다.
그런데도 답을 한 라노크는 왜 그러냐는 투로 강찬을 보았다.
10일이 뒤면 다행히 다음 주 축제는 보고 가겠다.
“기간은 6개월이 맞는 거구요?”
“그렇습니다.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가는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다녀오는 게 낫고, 막무가내로 기다리는 것보다는 이렇게 날짜가 정해지는 게 좋다.
“연수 동안 한국에 계신 분들과 연락할 수는 있나요?”
“물론입니다. 특정 시설에 들어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문제 없을 겁니다.”
잘 됐다. 예상보다 훨씬 덜 빡빡한 거다.
이렇게 되면 내일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말하기도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강찬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고 라노크의 점심 약속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사관을 나왔을 때는 대략 12시쯤이었다.
강찬은 우희승과 이두희를 불러 함께 움직였다.
“점심 같이 먹을 수 있지?”
두 사람이 좋다고 하고 나자 이번에는 석강호가 떠올랐다. 전화 한 통 하는 거, 어려울 거 없다.
[“나요. 어디쇼?”]
석강호는 당장에라도 뛰쳐나올 기세였다.
“우희승하고 이두희 보는 김에 같이 점심 먹으러 간다. 시간 어때?”
[“푸흐흐. 어디로 갈 거요?”]
강찬은 “잠깐만!” 한 다음에 우희승에게 무얼 먹으러 갈 건지 물었다. 아직 위민국이 있어서 넓은 장소나 사람 많은 곳은 피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결정된 장소는 전에 강대경, 유혜숙과 함께 고기를 먹었던 식당이었다. 도착했을 때는 집에서 가까운 석강호가 역시나 먼저 도착해 있었다.
“좀 쉬었냐?”
“내내 잤소. 대장은요?”
“나도 그냥 쉬었어.”
고작 하루 지난 거다. 그리고 석강호와는 얼굴 한번 보면 대강 알아챈다. 그 사이 우희승이 등심을 시켰고, 고기는 이두희가 구웠다.
사람들이 있어서 그저 빤한 근황 묻고 고기 맛이 어쩌네 하며 밥 한 끼 같이 먹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프랑스, 중국에서 생사를 함께 넘은 동료로, 지금은 살아왔지만, 언제 죽음이 덮칠지 모르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이런 시간이 주는 소중함은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이전의 삶에서는 다예루와 제라르, 둘만이 이런 감정을 공유했다면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다는 것이 다르다.
“내일 부모님하고 가평에 있는 펜션에 다녀올 거다.”
“내일이요?”
뜨거운 고기를 겨우 씹어가며 석강호가 강찬을 보았다.
“응. 호텔에만 계셨던 분들을 다시 집에만 있으라고 하기 뭐해서. 지난번에 제주도 가기로 한 거, 깨진 것도 죄송하고.”
“잘 생각했소.”
그 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끝냈고, 함께 사거리 커피 전문점으로 움직였다.
우희승과 이두희는 잠시 앉았다가 차에 있는 것이 편하다고 자리를 피했다.
“저것들 아무래도 외곽에 요원들이 더 있는 눈치요.”
“그런 거 같지? 둘이 근접 경호를 하고 2선을 따로 만든 눈친데? 거기에 너도 경호 요원이 붙었을 테니 우리 앞에서 무전하기 곤란하겠지.”
“고생들 하는 거요.”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위민국, 이 개새끼 모가지를 확 돌려놔야 많은 사람이 편해질 텐데.
강찬은 기회가 있을 때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내가 얘기했었냐? 라노크가 연수 가라고 했던 거?”
강찬은 오늘 라노크와 만나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석강호에게 전했다.
“나쁘지 않겠소.”
이것도 뜻밖이다.
심심하다. 혼자 두고 그럴 수가 있느냐? 뭐 이렇게 길길이 뛸 줄 알았던 석강호가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제 미쉘 만났는데 2주 정도 뒤에 건물 입주할 수 있다더라. 내가 프랑스에 가면 우선 거기에서 지내. 그리고 다음 주 금요일이 공휴일이라면서? 그때 축제한다던데?”
“시험을 앞둔 3학년들이 그날 학교에 안 나와서, 매년 그 날짜에 맞춰서 했었소.”
“그렇구나.”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전 실장님하고 김 팀장에겐 얘기해야지 않겠소?”
“해야지. 우선 너한테 했으니까 다음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시간 되는대로 알려드려야지.”
“그 안에 다른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전화 쓰는 데 지장 없다더라.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될 텐데 뭐가 문제냐?”
강찬은 담배를 집어 들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설마 지금처럼 정신없는 일이 또 일어나겠냐? 솔직히 위민국하고 한 놈 도망친 것도 요원들이 충분히 알아서 할 일이지.”
“그렇긴 하우.”
석강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집었다.
***
집에 들어온 시간은 오후 4시쯤이었다.
어제는 지친 모습이었다면 오늘 강대경과 유혜숙은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얼굴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프랑스로 6개월간 떠나는 걸 의논해야 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펜션에서 조용한 시간에 의논하는 게 맞을까?
강찬은 결심이 서질 않았다.
“점심은 먹었지? 과일 먹을래?”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을 때 유혜숙이 편안한 얼굴로 건넨 말이었다.
“드실래요?”
“그래. 먹자.”
강대경의 말에 유혜숙이 사과 두 개를 가지고 거실로 나왔다.
만약 반대의 입장이라 강대경과 유혜숙이 무언가 결정하고 강찬에게 이야기할 타이밍을 노린다면 어떨까?
강찬이 듣는 입장이라면 한 시간이라도 빨리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싶었을 것 같았다.
사과를 깎아서 잘라놓은 유혜숙이 강대경에게 먼저 한쪽을 건네주고, 다음으로 강찬에게도 주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두 사람이 긴장하는 게 느껴져서 강찬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라노크 대사가 제게 프랑스 단기 유학을 권했어요. 대략 6개월 정도 걸릴 거라는데 앞으로 제가 살아갈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괜찮으시면 그 단기 유학을 가고 싶어요.”
유혜숙이 빠르게 강대경을 보았다.
“흠. 대학으로 가는 거냐?”
“그렇진 않구요, 아마 프랑스 정부에서 지정해 주는 과정이 따로 있나 봐요.”
적당히 둘러대는 참이다.
정보국이나 정보총국을 설명하고, 그들이 하는 일이 넓게는 요인 암살까지 있다는 걸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거다.
“너 혹시 정치나 혹은 정부 일을 배워볼 생각이니?”
강대경이 두루뭉술하게 던진 질문이었다.
강찬은 이참에 생각하고 있던 바를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유라시아철도 관련된 일에서 손을 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라노크 대사도 그렇고, 그분이 소개해 준 분들이 주축이 되어 있어서 자꾸 연결되거든요. 사실은 유라시아철도 한국 담당을 맡아달라는 제안도 있었는데, 이왕 그렇게 될 거라면 제대로 공부하고 좀 더 많은 사람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강대경은 반쯤 베어 문 사과를 그대로 들고 있었고, 유혜숙은 아직 한 입도 먹지 못했다.
“대학은?”
그리고 유혜숙이 던진 질문이 강찬에게 날아왔다.
“6개월 과정이 끝나고 후년에 갈까 해요.”
“그 과정에 간다면 언제 출발하는데?”
강찬은 강대경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허락하시면 열흘 뒤에 출발할 거 같아요.”
용병이 되기 위해 프랑스로 갈 때도 말 한마디 안 했던 강찬이다. 그런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허락하시면’이란 말이 나왔다.
강대경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고, 유혜숙은 놀란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