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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나는 행복하다.
목표를 정하면 나머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총을 맞으면? 적이 많으면?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물러설 것도 아닌 거다.
후욱. 후욱.
60m쯤 떨어진 건물이다.
달리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겪어왔던 전장이 다시 펼쳐지는 것뿐이다.
장광택, 이 개새끼.
최성곤을 죽이고,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총질했고, 그 외에 몇 번이나 지랄을 떨었으니까 이제 그 값을 치러라.
강찬은 망루 위를 힐끔 보았다.
하나, 둘! 와락!
후욱. 후욱.
염병할! 달리는 복이 터진 날이다!
장광택은 책상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무언가 께름칙하고 불안한 느낌이 어깨에 걸터앉아서 이마를 잡고 있는 느낌.
장광택은 인상을 찌푸렸다.
‘내래 늙었나? 남조선 아새끼 하나 때문에 이딴 생각을 하는 기야?’
한숨을 쉬어도 불길한 느낌은 줄지 않았다.
당 지도부가 체포하러 온다?
아직은 군부가 그쪽으로 기울어지지는 않았다.
만약 당 지도부가 그따위 무모한 행동을 한다면 죽기 살기의 교전이 벌어진다.
경보병이 적을 포위한 채로 소탕 중이라고 했다.
남조선에 저렇게 지독한 놈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미제의 자본과 추악한 향락에 빠져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놈들!
증평의 특수팀이다. 알고 있던 놈들이다.
요즘 설친다는 소리를 들어서 본보기로 최성곤도 죽였다.
그런데 그런 놈들 20명이 벌써 경보병을 60명 이상 죽였다.
헬기로 내린 경보병 30은 반항 한 번 못해보고 몰살, 포위하고 있던 경보병 역시 30이 넘게 죽었단다.
장광택은 이를 악물었다.
우선 남조선 아새끼와 특수팀을 몰살한다.
그다음으로 당을 장악하고, 남조선의 허하수를 밀어서 대통령이 되게 하면 1차 목표는 끝나는 거다.
그렇게 되면 중국과 러시아도 다시 편을 들어줄 거다.
“썅!”
아무리 다짐을 해도 본능은 장광택의 어깨에 매달려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인생을 건 도박이다.
고작 스물 남짓한 남조선 특수팀 때문에, 간을 보는 간부들에게 비상소집령을 내리면 인민무력부장 장광택의 명성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장광택은 위대한 인민의 용사이자 가장 공들인 경보병을 믿는다. 믿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경보병 때문에 당 지도부도 눈치를 살핀다.
살뜰하게 챙긴 경보병 덕분에 군부의 간부들도 함부로 돌아서지 못한다.
믿는다.
북조선의 위대한 용사들은 반드시 남조선 아새끼와 그 졸개들의 모가지를 자르고 이리로 돌아올 거다.
턱.
장광택은 버릇처럼 담배를 들었다.
그런 다음 라이터를 집어 들고 창으로 몸을 돌렸다.
쩔컹!
유리를 향해 몸을 돌린 장광택은 뚜껑까지 연 라이터를 켜지 못했다.
‘저거이……?’
건물을 향해 똑바로 달려오는 놈이 있었다.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심장부터 온몸의 피가 주르륵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고작 한 놈이다.
‘남조선의 아새끼……?’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달려도 8시간 걸리는 거리를?
경보병의 포위를 뚫고?
고작 혼자서 건물을 향해 뛰어든다고?
북조선의 인민무력부 건물을?
퍼뜩 정신을 차린 장광택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콰악!
그리고 책상 뒤의 벨을 세차게 때렸다.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강찬은 소총을 어깨에 걸었다.
비상벨이다.
정면 건물이 열리며 안쪽에서 위병들이 달려 나왔다.
푸슝! 푸슝! 푸슝! 푸슝!
위이이이이이잉!
석강호가 당긴 블라디미로프가 커다랗게 울었다.
대낮인데도 하얗게 빛나는 빛이 뭉텅이로 날아갔다.
콰자자자자작!
씨발 놈들, 마중 나와? 뭐 한 줄로 뛰어 나와?
푸슝! 푸슝! 푸슝! 푸슝!
강찬은 입구에 뛰어들었다.
널브러진 시체들을 건너뛰었고, 바로 중앙 계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경보병을 부르라우!”
경비전화를 든 장광택이 악을 쓸 때였다.
벌컥!
부부장이 달려 들어왔다.
위이이이이이잉! 콰자자자자작! 위이이이이잉!
창밖에서는 섬뜩한 빛무리가 옆 건물을 향해 날아간다.
콰자자자자자작!
본관 건물은 전투 병력이 별로 없다!
“부장 동지! 날래 이쪽으로 오시라요!”
장광택은 전화기를 팽개치듯 내려놓고 부부장을 따라 집무실을 나섰다.
푸슈슝! 푸슝! 푸슝!
적의 고개가 뒤로 젖혀질 때마다 붉은 피보라가 허공에 그려졌다.
찰카닥! 철컥!
강찬은 오른손으로 탄창을 빼고 곧바로 왼손으로 새 탄창을 꽂았다. 다예루가 흉내 내다가 오발사고까지 일으켰던 동작이다.
푸슝! 푸슝! 푸슝! 푸슝! 푸슝!
죽일 땐 좋았지? 이 개새끼들아!
콰앙! 푸슝! 푸슝! 털썩! 털썩!
문이 열리며 튀어나오던 놈 둘의 이마가 그대로 뚫렸다.
자박! 자박! 자박! 자박!
이럴 때 뒤는 모른다. 소리를 죽일 필요도 없다.
그저 계단을 빨리 올라가는 게 최고다.
죽인다. 죽이고 만다.
푸슝! 푸슝! 푸슝! 푸슝!
씨발 놈들아! 난 천천히 보인다니까!
그래서 내가 죽음을 결정하는 신이 된 거라니까!
철컥! 푸슝! 푸슝! 푸슝! 푸슝!
튀어나오는 놈들마다 이마를 뚫었다.
그러게 왜 최성곤을 죽여?
푸슝! 푸슝! 푸슝!
국제 정세? 한반도의 역학?
다 좋아!
그런데 이 개 병신 같은 새끼들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푸슝! 푸슈슝! 푸슝!
위이이이이잉! 콰자자자작!
타다다다당! 타다다다다다당! 타당! 타아아앙!
바깥쪽에서 본격적으로 반격이 있었다.
어딘가 빈틈을 노리고 적이 나온 거다.
강찬은 4층 계단을 돌아 복도의 좌우를 보았다.
씨발!
강찬이 달려왔던 반대편 쪽이다.
복도 끝의 문이 열려 있었다.
와다다닥!
강찬은 있는 힘껏 열린 문 쪽으로 달려나갔다.
섬뜩! 두근두근!
후욱. 후욱.
누군가 주변을 꽉 움켜쥔 것처럼 사물이 느리게 흘러갔다.
벌컥!
강찬이 스치고 지나가는 문이 열렸다.
가장 먼저 총구가 보였다.
강찬은 몸을 돌리면서 그대로 뻣뻣하게 뒤로 넘어갔다.
타아다아다아다아앙! 푸슈웅! 푸슈우웅! 푸슈웅!
털썩!
푸슝! 푸슝! 푸슝! 푸슝! 푸슝!
개새끼들, 많이도 숨었다.
등짝이 무지하게 아팠다.
벌떡! 와다닥!
몸을 일으킨 강찬은 바로 열린 문을 향해 달렸다.
찰카닥! 철컥!
탄창도 갈았다.
확!
복도에 나서자 강한 빛이 눈을 덮쳤다.
뒤쪽에 차가 가득 있었다.
강찬은 바로 총을 겨눴다.
열 놈쯤?
푸슝! 푸슝! 푸슝! 푸슝! 푸슝! 타다다다당! 파바바박!
밖으로 난 복도는 시멘트 난간이 있다.
강찬은 몸을 숙이고 빠르게 아래로 달렸다.
타다다다다당! 파바바바바박!
위쪽의 벽이 터졌다.
와락! 푸슝! 푸슝! 푸슝!
상체를 세운 강찬은 소총을 든 놈들을 먼저 갈겼다.
여전히 브라디미로프의 거친 발사음이 들렸다.
강찬이 아래로 내려섰을 때였다.
타아앙! 타아앙! 타앙! 타앙!
권총 소리다.
하나, 둘! 불쑥! 푸슝! 터억! 푸슝! 카앙!
한 새끼는 이마가 뚫렸고, 다른 한 새끼는 차에 맞았다.
이 새끼가?
본능적으로 피한 거다. 옆 놈이 이마를 뚫리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그 짧은 순간에 주저앉은 거다.
와다다닥!
강찬은 놈에게 달려들었다.
철컥!
그리고 총을 겨눴다.
“장광택?”
기가 막히고, 분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가, 악에 받치는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마주하고 있는 늙은이가 보여준 눈빛이었다.
“남조선 아새끼?”
“최성곤 장군에게 안부 꼭 전해줘.”
푸슝! 푸슝! 푸슝!
강찬은 이마, 목, 그리고 심장을 뚫어버렸다.
끝났다.
위이이이이잉! 콰자자작! 콰자자자작!
반항하던 총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인민무력부에 이렇게 병력이 없지?
혹시 엉뚱한 놈을 죽인 건가?
사진에서 본 놈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개새끼, 별것도 아닌 게!
푸슝!
강찬은 장광택의 이마에 한발을 더 갈기고 건물을 뒤로 돌았다.
뭐지? 무슨 인민무력부가 이렇게 헐렁해?
강찬은 망루와 초소에 손을 흔들었다.
남은 두 개의 초소는 아예 형체가 없어졌고, 건물이라고 전면은 그야말로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찢긴 몸뚱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데다 한쪽에 쌓인 시체가 끔찍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인민무력부가 이 정도로 허술한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석강호와 윤상기, 그리고 홍기윤이 급하게 달려왔다.
“홍기윤, 확인해.”
강찬이 뒤를 가리키자 홍윤기가 다급하게 달려갔고, 석강호와 윤상기가 주변을 경계했다.
“맞습니다. 장광택이 확실합니다.”
목표는 해결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빨리 돌아가는 일만 남은 거다.
또 뛰어서는 가망이 없다.
산과 장광택을 번갈아 본 강찬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장광택이 새끼 차로 달려볼까? 저 새끼 차도 초소에서 검문 하나?”
홍기윤이 멈칫했다가 곧바로 반기는 표정을 지었다.
“비상등을 켜고 달리면 절대로 잡을 놈 없습니다.”
“그럼 죽은 놈 상의만 뺏어 있고 운전해.”
푸슝! 푸슝! 푸슝! 푸슝!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강호와 윤중기가 사격을 가했다.
“아직 남은 새끼들이 있소.”
석강호의 번들거리는 눈앞에서 홍윤기가 피범벅인 옷을 주워입고 있었다.
***
달칵.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가 엄청나게 넓은 공간을 가로질러 책상으로 다가왔다.
그는 상체를 숙여 책상의 주인에게 고개를 디밀었다.
“인민무력부장 장광택, 부부장 하득서가 죽은 것을 확인했습네다.”
책상의 주인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남조선의 공수가 기랬나?”
“그렇습네다.”
“이야!”
최고지도자는 고개를 저으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포위됐다고 하더니! 군부도 기거이 믿고 눈치만 보고 있었을 텐데, 그 사이를 빠져나와서 장광택이를 죽인거구만? 경보병과 헬기까지 썼는데? 장광택이 죽어서도 눈을 못 감았갔어. 기래, 남조선 공수는?”
“인민무력부장의 차를 타고 포위된 동료들에게 돌아간 모양입네다.”
최고지도자는 한숨처럼 신음을 뱉었다.
“초소에 연락해서 모른 척하라고 전하라우. 남조선 놈들이 경보병에게 죽으면 우린 꿩 먹고, 알 먹고이고, 그럴 일은 없갔지만, 경보병이 전멸하믄 장광택이 따르던 놈들을 처단한 꼴이야.”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장광택과 하득서는 적당한 죄명을 붙여서 총살당한 거로 하라우.”
“남조선에는 어케 공작을 하시갔습네까?”
“우선 총살 발표를 하고 상황을 보자우! 남조선 공수가 이기믄 이긴 대로, 경보병이 이기믄 이긴 대로 답이 다르니까. 긴데 남조선 공수가 어케 신평까지 벌써 다녀갔지?”
“그거이 묘합네다.”
“차후에 철저하게 알아보라우. 기카고 대기하던 820 전차군단을 인민무력부로 보내서 군부를 장악하는 거이 급해. 장광택이 따르던 놈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처단하라.”
“알갔습네다.”
사내가 빠르게 방을 나가자 최고지도자는 허공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중국하고 러시아가 밀어준다더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구만.”
최고지도자의 혼잣말이 방안에 흩어졌다.
***
장광택을 붙들고 있는 윤상기는 눈시울이 뜨거웠다.
몸을 눕히다시피 해서 밖에서 보면 뒷좌석에 장광택이 앉아 있는 꼴이었다.
천으로 된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숙여서 강찬의 총에 구멍 난 곳을 가린 참이다.
북한이 장광택을 버린 건가?
터무니없이 경비가 허약한 인민무력부가 의심스럽긴 했지만, 아무튼 혼자 달려가더니 지금은 장광택의 시체를 잡고 있다.
장광택? 정말 장광택?
윤상기는 정말이지 믿기지 않았다.
‘살아 있어! 살아만 있어!’
그러면서 윤상기는 마음속으로 외치고 외쳤다.
***
부스럭. 푸슝! 타다다당! 타당! 타다당!
적은 대놓고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가까이 온다고 총구에 머리를 대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포위망이 좁아지는 만큼 가운데 몰려 있는 아군이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게다가 그동안의 사격을 통해 대원들의 위치가 모두 노출된 상황이다.
남은 대원은 곽철호 포함해서 9명이었다.
24명이 와서 헬기의 공격에 넷이 죽었으며, 넷은 장광택을 죽이러 갔고, 이곳에서 7명이 죽었다.
타다당! 퍼버벅! 퍼벅!
죽은 대원들을 악착같이 끌어다가 안쪽에 놓았다.
그들의 몸에 적의 총알이 박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해가 산 너머에 걸려서 그늘이대원들을 덮치고 있었다.
소강상태다.
적도 더는 다가오지 않고 안쪽에 포위된 아군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하기야 반대의 입장이라도 이렇게 완강하게 저항하면 단숨에 제압하기가 쉽지 않을 거다.
‘뭐가 있는데?’
곽철호는 날카롭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선 정규군의 지원이 없고, 두 번째로 박격포나 탱크의 공격도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수류탄과 같은 개인 화기 공격도 없는 거다.
부스럭.
날카롭게 눈이 간 곳에서 대원 하나가 물을 꺼냈다.
쭈욱. 쭈욱.
링거 팩처럼 생긴 물주머니라 입구를 입에 대고 빨아 마실 수도 있었다. 이런 대치 상태에서는 현명한 일이다.
부스럭.
곽철호도 물을 꺼내 마셨다.
꿀꺽. 꿀꺽.
살 것 같았다.
혹시 저녁 먹자고 잠시 쉬는 건가?
이런 여유가 가장 무섭다.
방심하는 사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곽철호는 왼손으로 세수하는 것처럼 얼굴을 문댔다.
더 버티기에는 실탄도 문제가 된다.
적은 50명에서 60명 사이다.
남은 9명이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
잘했다. 잘 버텼다.
8시까지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견딘 것만 해도 충분히 칭찬받을 만했다.
바스락! 바스슥! 자박!
그때 적들이 일제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온다!’
적들은 그늘 속에서 포위를 좁힐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곽철호는 소총을 겨누고 주변을 훑었다.
부스럭. 부스슥. 스으윽.
그늘이 지자 어른거리는 목표를 확실하게 잡지 못했다.
프랑스 작전에서는 어둠에서도 잡았었는데?
타다다다다당! 타다다다다당! 타다다다다당!
곽철호의 옆으로 서넛이 동시에 사격을 가했다.
푸슝! 푸슈웅! 푸슝! 푸슝!
대항 사격을 한 직후였다.
타다다다당! 파바바박! 타다다당! 파바바박!
불꽃을 보고 짐작했는지 곽철호가 의지했던 나무가 커다란 비명과 함께 터져나갔다.
바스락. 바스슥.
푸슝! 털썩! 타다다다다당! 파바바바박! 타다당! 피잉!
적은 확실히 포위망 전체를 두 걸음 이상 줄였다.
15m 주변이 완전히 적이라고 보면 된다.
‘라디오를 못 듣는 게 한이다.’
달려간 강찬의 결과만큼은 알고 죽고 싶었다.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바스락. 바스슥.
다가오는 것은 알겠는데 적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가까워서 무전을 하기도 어렵다.
이 고요한 산속에서 15m 거리면 속삭임도 들릴 수 있다.
10m일 거다.
거기서부터 일제 사격을 가하면 다들 총알에 뚫려 죽는 수밖에 없다.
부스슥. 스스슥. 푸슝! 푸슈웅! 푸슝!
적은 아예 대응 사격조차 않고 있었다.
부스슥. 사사삭. 사아악.
풀이 움직인다. 아예 엎드려서 기어오는 모양이다.
푸슝! 털썩! 푸슝!
총알이 부족할 수도 있어서 함부로 쏘지도 못한다.
12m쯤 왔다.
개새끼들이 교본대로 한다.
곽철호는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고맙다.’
‘고생하셨습니다.’
둥그렇게 포위된 상태에서 9명이 50명이 넘는 적을 상대한다는 것은 뭐라고 해도 무리다.
다들 시선을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함께 했던 훈련, 지금까지 겪었던 치열한 작전까지.
이 경험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못하는 것이 한일뿐, 특수대가 되어서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
찰칵.
곽철호가 발사 스위치를 연사로 바꾸는 순간이었다.
푸슝! 털썩! 푸슝! 털썩! 푸슈푸슈웅! 털썩! 털썩!
산의 아래쪽에서 소총 소리가 들리고, 그럴 때마다 적이 고꾸라지고 있었다.
타다다, 푸슝! 푸슝! 털썩! 푸슝! 털썩! 푸슝! 털썩!
총을 쏘던 적이 쓰러지면서 주변의 적들이 또 연달아 쓰러졌다.
강찬이다.
푸슝! 털썩! 푸슝! 털썩! 푸슝! 털썩!
어떻게 저렇게 거침이 없지?
왜 꼼짝도 못 하겠지?
심지어 적들도 짚단 넘어가듯 넘어가고만 있었다.
타다다다다당!
곽철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놀란 적들이 강찬에게 돌아서는 사이 틈도 있었다.
푸슝! 푸슝! 푸슝! 털썩! 타다당! 푸슝! 털썩!
싸움의 양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총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차칵. 철커덕!
탄창을 교체한 강찬은 자세를 낮추고 위쪽으로 올라서며 연신 방아쇠를 당겼고, 좌측에 석강호, 우측에 윤상기가 늠름하게 뒤를 받쳤다.
푸슝! 퍼억! 털썩!
곽철호 뒤편에 있던 적의 이마가 높다랗게 들렸다가 땅으로 처박혔다.
정말이지 죽음을 선사하는 신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 거다.
부스럭!
마침내 강찬이 곽철호와 대원들의 사이로 들어왔다.
“고생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강찬은 독이 잔뜩 오른 눈빛으로 앞을 노려보았다.
푸슝! 털썩! 푸슝! 털썩!
적은 어느 틈에 뒤로 물러나 있었다.
곽철호는 강찬을 먼저 보았다가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윤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광택을 죽였다고?’
‘그렇다니까요!’
윤상기가 당연한 일이라는 듯 곽철호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