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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다를 게 없소.
고성에서 화진포 방향으로 향하면서부터 오른편에 바다가 보였다.
차는 삼거리, 검문소, 그리고 한참을 더 가서 외딴 바닷가에 횟집처럼 보이는 2층 건물로 들어섰다.
첫 느낌은 제대로 망한 횟집이었다.
앞에 철망이 잔뜩 처져 있는 데다 외딴곳이다.
용왕이 차려도 장사가 잘 되기는 어렵겠다.
버스가 주차장을 막아서자 뒤쪽 도로가 완벽하게 가려졌다.
촤아아아악.
파도소리가 다가왔다가 기다랗게 멀어졌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강찬은 김형정이 가리키는 대로 현관을 향했다.
뜻밖에도 요원 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오른쪽에 있는 계단으로 안내했다.
강찬은 대원들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이야! 전망은 죽이네!”
석강호의 탄성이었다.
죽일 정도는 아닌데 그렇더라도 2층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광이 나쁘지는 않았다.
대원들이 올라오면서 강찬에게 짧게 거수경례를 했다.
강찬과 석강호를 포함해서 24명이다.
곽철호, 윤상기를 비롯해 중국 작전에서 보았던 대원들이 거의 있었다.
대원 두 명이 무게가 나갈 만한 것은 모두 빼고 정말 단출하게 싼 군장을 가져다주었다.
“23시 30분에 해군특수팀이 앞쪽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보트가 3대니까 조도 셋으로 나눠야 합니다.”
“들었지? 조를 셋으로 나눠. 내가 1조, 석강호 2조, 곽철호 3조.”
조를 정하는 틈에 요원 한 명이 시계를 나누어주었다.
“강찬 씨.”
김형정은 강찬을 따로 부른 다음, 지도를 펴주었다.
“해군 특수팀이 강찬 씨를 내려줄 곳의 지형입니다.”
해변의 경계를 짚은 김형정이 손가락을 삼각형으로 움직였다.
“경계병이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지역입니다. 북한은 심각한 전력난으로 평상시에는 서치 라이트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안내인이 나오지 않는다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유심히 살폈다.
저녁은 도시락이다.
증평의 밥을 싸왔나 싶을 만큼 내용물이 좋았다.
강찬은 대원들의 눈에 담긴 독기를 보았다. 도시락에 한이 맺힌 건 아닐 테니 최성곤의 죽음 탓일 거다.
커피 마시고 편안하게 앉아 어두운 바다를 바라볼 때였다.
“새로 뽑은 대원입니다.”
곽철호가 대원 한 명을 데리고 강찬의 앞으로 왔다.
“상사 홍기윤입니다.”
대원을 따로 소개한 적은 없다.
“북에 넘어가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세 차례 있습니다.”
강찬의 시선을 느낀 곽철호의 답이었다.
도움이 될 거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으로 인사가 끝났다.
물 빠진 검은색 군복에 MP5SD 소음기관단총, 콜트권총, 보위 나이프, 탄창, 무전기를 착용했다.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조명이라고 얼굴만 겨우 알아볼 정도로 작은 등이 전부였다.
그리고 누구라도 건드리면 툭 하고 터질 것처럼 긴장감이 팽팽했다.
열어놓은 창으로 비릿한 바닷바람이 달려들 때였다.
또다시 곽철호가 강찬에게 다가왔다.
“대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런 건 나쁠 거 없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주목.”
대원들뿐만 아니라 강찬과 석강호, 김형정까지 곽철호를 바라보는 앞이다.
“하고 싶은 말과 부탁이 있다.”
윤곽만 보이는 조명을 받은 곽철호의 눈이 짐승처럼 번들거렸다.
“장군님이 안 계셨다면 난 영창을 뺑뺑이 돌다가 깡패나 하고 있었을 거다.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개떡 같은 우리 아버지가 사기당하고 교도소에 갈 뻔한 걸, 장군님께서 대출을 받아서 갚아주셨다. 작년 초에 대출이 끝났다고 들었다.”
곽철호가 “후!”하고 숨을 내뱉고는 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희도 다 그랬지? 나도 장군님께 따귀 두 번 맞았다. 훈련을 엉성하게 해서? 제대하겠다고 해서? 아니!”
이를 꽉 깨문 곽철호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사는 게 엿 같아서 지랄하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한 번, 아버지에게 대들다가 한 번. 씨발! 그런데 그런 장군님을 내가 앉아서 밥 먹는 바로 앞에서 잃었다.”
감정을 추스르려는지 곽철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제 차동균 중위님이 전화를 했었다. 바보처럼 전화기를 붙들고……, 우리 중에 제일 악바리 같던 그 양반이 우는 것도 처음이지만, 흐느낄 줄은 몰랐다.”
말을 멈춘 곽철호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차동균 중위님 부탁을 전한다.”
침을 꿀꺽 삼킨 다음 곽철호는 대원들을 쭉 돌아보았다.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지휘자를 만났다. 무섭다면 지금 빠져도 절대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겠다. 하지만 함께 출발했다면 장광택의 모가지를 따기 전에는 돌아올 생각하지 마라.”
김형정이 이를 악물면서 시선을 바닷가로 돌린 다음이다.
“나도 부탁이 있다.”
곽철호는 씹는 것처럼 말을 뱉었다.
“내 따귀를 때려가면서까지 나를 지켜주셨고, 또 너희를 지켜주신 분이다. 그분이 우리를 제대로 가르치셨다는 걸! 이 싸움에서 보여주자.”
소리 지를 것 같던 곽철호가 마지막에 음성을 가라앉혔는데 그게 오히려 더 가슴을 울렸다.
곽철호가 자리로 돌아가자 2층은 침묵에 휩싸였다.
찰칵.
강찬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우!”
바닷바람이 거칠게 건물 안을 돌아 연기를 끌고 나갔다.
“커피나 한잔 마시자.”
“알았소.”
답은 석강호가 했는데 커피는 대원이 타왔다.
달달한 봉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강찬이 뒤를 돌아보았다.
대원들은 무언가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최 장군이 바랐던 일은 너희가 실전 경험을 쌓아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특수팀이 되는 거? 그 정도였던 거 같은데?”
윤상기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혹시 이 중에 죽어도 좋다는 개 같은 생각 가진 대원 있으면 여기서 빠져라. 내가 원하는 건, 장광택이 모가지 들고 악착같이 살아오는 거다. 그래서 베테랑이 되고 이번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는 것, 그것이 최 장군이 내게 진짜로 부탁했던 일이다.”
곽철호가 이를 꽉 깨물었다.
“한 시간 넘게 남았다. 자 둬. 아니면 며칠 동안 못 피울 담배 실컷 피우고, 커피를 마시던지.”
강찬은 다 피운 담배를 종이컵에 넣었다.
그리고 자세를 돌려 바다를 보았다.
찰칵. 찰칵.
뒤쪽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와 커피 처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그냥 이 정도가 제일 좋은 거다.
쓸데없이 사명감에 불타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
“아흐!”
석강호가 상체를 비틀며 기지개를 켰다.
“난 한숨 잘란다.”
“나도 잘 거요.”
둘이서 의자에서 내려와 군장을 기울이고 기댔다.
이런 상황에서?
대원들의 표정이 꼭 그랬다.
프랑스에서 쪽잠을 자놓고도 출발을 앞두고는 잠을 잘 생각을 못 한 모양이다.
정말 잠이 부족해 봐라.
2층에 있는 대원 전부가 시체여도 잠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자꾸 맞게 되면,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한숨이라도 자는 버릇이 생긴다.
강찬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강찬 씨.”
김형정이 조심스럽게 부른 소리에 강찬은 잠에서 깨어났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깨운 의미야 빤하다.
주변을 둘러보자 기특하게도 대부분 자고 일어난 얼굴이었다.
23시 10분이다.
위장크림을 발랐고, 군장과 무기를 챙겼다.
10분쯤 지나자 희미하게 실내를 밝히던 전등이 꺼졌다.
강찬은 눈을 찌푸리며 바다를 보았다.
철책선 앞의 바위틈에서 보트와 대원들의 윤곽이 보였다.
쏴아아아.
파도소리가 커다랗게 들릴 때 거짓말처럼 아래쪽 철창이 열렸다.
“강찬 씨.”
김형정이 강찬의 이름을 부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땐 정말 말이 필요 없다.
김형정의 시선을 잠시 바라본 강찬은 고개를 돌렸다.
“가자.”
계단을 내려가서 바로 주차장, 그리고 그 앞이 철책이다.
슈트를 입은 대원 여섯, 고무보트 3개.
조별로 보트에 오르자 해군특수팀이 능숙하게 보트를 바다로 밀었다.
우우우웅.
모터를 쓴다고?
궁금했지만, 각자 전문분야가 따로 있는 거다.
파아악! 파악!
고무보트는 속도가 엄청났다.
몸을 납작 엎드린 위로 바닷물이 튀었고, 삽시간에 2층 건물이 어둠에 휩싸였다.
보트는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가며 정말 미친 듯이 달렸다.
1시간을 넘게 달린 다음이다.
보트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멀리 항구가 있는지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보트는 기괴하게 생긴 바위들을 향해 5분쯤 다가갔고, 마침내 엔진을 껐다.
해군 특수팀 두 명이 옆에 있던 노를 저었다.
전문가는 전문가다.
둘이서 젓는데 모터를 작게 돌렸을 때 정도의 속도가 나왔다.
촤아아아악.
바위와 바위틈에 보트를 댄 해군 특수팀 대원이 물로 뛰어들어 보트를 잡았다.
강찬은 대원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촤아아아악.
파도소리가 들릴 때마다 두 명씩 뛰어들었다.
바닷물이 일렁일 때마다 물 깊이가 무릎에서 허리까지 높아지곤 했다.
강찬은 가장 마지막에 보트에서 내렸다.
해군 특수팀 대원에게 엄지를 세워주었다.
촤아아아악.
파도 소리가 들렸을 때 보트는 이미 저만큼 나가 있었다. 물귀신이 따로 없다.
파도가 바다로 돌아올 때 나간다.
강찬은 바위에 붙어서 해변을 살폈다.
김형정의 말대로 서치라이트는 켜놓지 않았고, 얼기설기 설치해놓은 철망이 당장 보이는 것 전부였다.
촤아아아악.
석강호와 곽철호가 강찬의 곁으로 왔다.
감은 나쁘지 않다.
강찬은 천천히 초소가 있으리라 짐작되는 곳을 살폈다.
왼편으로 바위, 모래언덕, 그리고 초소.
하나 발견.
다시 오른쪽. 그런데 오른쪽은 캄캄한 바위를 배경으로 있어서 짐작만 할 뿐 정확하게 위치를 찾지 못했다.
촤아아아악.
파도가 칠 때마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젖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튀어 나갈 수는 없는 거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5m 앞에 있는 바위까지 단숨에 가거나 교대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우측 초소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
그런데 이렇게 기다리다가 해가 뜨면?
한 마디로 완전히 날 새는 거다.
검지와 중지를 붙여서 펴고, 엄지와 약지, 새끼손가락을 구부리면 권총 모양이 된다. 이것으로 목표를 가리키는 건 저격수에게 그곳을 노리란 뜻이다.
강찬이 손모양을 만들어 왼편의 초소를 가리키자 곽철호가 곧바로 저격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강찬은 다음으로 석강호을 향해 왼손과 오른손의 검지를 거꾸로 세웠다.
이곳에서 이동할 목표를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준비는 끝났다.
저격수가 초소를 겨누고, 석강호도 대기한 참이다.
고작 5m다.
초소에서 달려가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겨누고 있지 않은 다음에는 당장 방아쇠를 당기진 못하는 거리다.
촤아아아악.
파도가 치고 물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순간, 강찬은 목표했던 바위를 향해 움직였다.
짜각. 짜각. 짜각. 짜각.
바닥에 깔린 돌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시간을 끌지는 못한다.
중간에 멈춰 서는 건 총을 쏴달라고 춤을 추는 꼴이다.
강찬은 곧바로 목표했던 바위에 몸을 붙였다.
후욱. 후욱.
바위는 바다를 향해 넘어진 형태였다.
아직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거기에 감도 나쁘지 않다.
바위 왼쪽으로 1m 높이의 언덕을 올라갈 만한 길이 있었다.
철책선이 있기는 했는데 가장 밑에 것만 자르면 충분히 올라갈 만했다.
이럴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다예루다.
무전을 쓰지 않는 게 좋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다.
치잇. “다예, 이동.”
촤아아아악.
파도가 하얗게 일었다가 사라진 다음이다.
짜각. 짜각. 짜각. 짜각.
석강호가 빠르게 강찬의 곁으로 다가왔다.
강찬은 고개로 철책선을 가리켰다.
석강호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답을 했다.
파도소리가 달려오는 틈이다.
철컥.
가장 아래쪽에 쇠줄을 석강호가 잘랐다.
강찬은 석강호의 어깨를 두들긴 후에 위를 가리켰다.
촤아아아아악.
파도소리가 요란하게 들릴 때다.
석강호가 낀 양손을 밟고 강찬은 위로 올라갔다.
바위와 소나무를 배경으로 왼편에서 보았던 초소가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다음은 오른편이다.
그나마 위로 올라선 덕분에 주변이 좀 더 확실하게 보였는데도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시커먼 바다를 배경으로 바위 뒤에 있어서 대원들 역시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격수가 왼편의 초소를 겨누고 있다.
문제는 오른쪽이다.
강찬은 지도에서 보았던 위치를 가늠해서 오른쪽 초소가 있을만한 곳을 겨눴다.
촤아아아악.
치잇. “두 명씩 바위로 이동.”
치잇. “알았습니다.”
파도소리가 들릴 때마다 두 명씩 넘어온다.
후욱. 후욱.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아직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는다.
촤아악. 짜각. 짜각.
그런데 파도소리가 유난히 짧다 싶은 순간에 돌을 밟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강찬은 총을 겨눈 채로 오른편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촤아아아아악.
다시 파도소리가 들렸다.
바위 아래 있는 석강호와 대원들의 판단을 믿어야 했다.
보이는 적은 낫다.
빌어먹을 오른편의 초소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바위에 틈을 내거나 땅을 파고 만들어서 구멍만 낸 초소라면 이쪽에서 발견하기는 정말 어렵다.
어쩌면 초소에 있는 놈이 이쪽을 발견하고 총을 겨누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거다.
촤아아아악.
서두르라고 할 수도 없다.
우르르 움직이지도 못한다.
몇 번이나 파도소리가 더 울리고 난 다음이었다.
부스럭.
바위의 왼편으로 곽철호가 올라왔다.
강찬은 검지와 중지로 눈을 가리킨 다음, 왼편의 초소를 가리켰다.
곽철호가 왼편의 초소, 강찬이 오른편 초소.
부스럭. 부스럭.
대원들이 한 명씩 위로 올라왔다.
철선을 잘랐기 때문에 어차피 내일이면 침투 사실을 적이 알게 된다.
그때까지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
부스럭. 부스럭. 부스럭. 부스럭.
대원들이 위로 올라오고 자세를 잡았다.
촤아아아악. 철컥.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에 있는 대원의 손을 잡고 석강호가 올라왔다.
강찬은 멀리 보이는 산을 보며 방향을 가늠했다.
이곳에서 2시간만 넘어가면 산으로 들어간다.
국도와 철길을 넘으면 산인 거다.
새벽 1시 30분.
강찬은 최대한 자세를 낮춘 채로 움직였다.
20분이다.
이대로 20분만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해안 초소의 시야에서 완전히 빠져나간다.
야간 이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소리를 내지 않는 것과 훑어볼 때 알아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움직이는 거다.
10분쯤 이동하자 작은 소나무 숲이 나왔다.
시선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감도 아직 나쁘지 않다.
이렇게 수월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천천히, 천천히.
해가 뜰 때까지 발각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숲에 도착한 강찬은 천천히 자세를 세웠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요란하게 지나갔다.
강찬은 석강호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쪼그려 앉은 자세.
석강호와 대원들이 모두 자세를 갖췄다.
여기에서 한 시간 거리를 나가면 논과 밭이 있고, 다시 한 시간 정도 더 가면 국도와 철도, 그리고 산이다.
다예루가 왼쪽 뒤, 최철호가 오른쪽 뒤.
캄캄한 숲을 지나면서 강찬은 점차 속도를 높였다.
이럴 때 믿을 것은 시력과 감밖에 없다.
본능이 주는 경고가 없다고 방심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 수도 없는 일이다.
휘이이이이.
파도소리가 끊기자 이번엔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면 나뭇가지가 총이나 비수를 든 적의 모습으로 보일 때가 있다.
누구라도 엉뚱한 표적에 방아쇠를 당길 수 있고, 그러면 끝이다.
반대로 적이 나타났는데 나뭇가지인가 하고 주춤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얻게 된다.
휘이이이이이. 샤아아아아아.
빌어먹을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나무가 있는 대로 흔들렸다.
믿는다. 믿어야 한다.
이럴 땐 우선 대원들을 믿어줘야 한다.
나뭇가지와 적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을 실력은 갖춘 대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