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77화 (177/520)

0177 / 0419 ----------------------------------------------

10-1 속은 후련하우.

도대체 구렁이가 하는 일은 종잡기가 어렵다.

라노크의 차를 타고 목적지를 듣고 난 강찬은 어안이 벙벙했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서 들어선 곳은 청와대였다.

접견장에 들어선 문재현은 먼저 라노크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면담을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각하.”

동시통역을 맡은 여직원이 메모장을 든 채로 라노크의 말을 전달했다.

“앉으시죠.”

문재현이 손을 뻗어 자리를 권했고,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앉았다.

“시가를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 모처럼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울 수 있겠군요.”

직원이 다가와 담배와 시가, 그리고 재떨이를 놓았다.

찰칵.

각자 담배와 시가에 불을 붙이느라 잠시 말이 중단됐다. 담배를 들지 못하는 강찬을 라노크가 이해한다는 듯 보았다.

“차를 드시죠.”

문재현은 차를 권하고 한 모금을 먼저 마셨다.

“각하. 비공식 면담입니다. 괜찮으시다면 통역 직원까지 자리를 비워주기를 청합니다.”

문재현이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달칵. 달칵.

직원들이 물러나며 두 곳의 문이 닫혔다.

“강찬 씨.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통역해 주시겠습니까?”

강찬은 라노크가 통역을 부탁했다는 뜻을 그대로 문재현에게 전했다.

“중국은 허상수 의원의 사형을 한국 시각으로 오후 4시에 집행할 것입니다.”

뜻밖의 소식이었다.

강찬은 물론이고, 전해 들은 문재현 또한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죄가 있다고 해도 허상수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입니다. 중국이 그런 식으로 사형을 집행할 경우, 양국의 우호에 심각한 위험이 생길 것입니다.”

문재현의 말을 전하자 라노크는 먼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강찬을 보았다.

“양범은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빌어먹을!

다시는 통역을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 강찬은 라노크의 말을 전했다.

“양범은 실권을 잡기 위해 안팎에서 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안쪽은 허하수의 사형을 통해 힘을 집중할 예정인데 문제는 밖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점입니다.”

라노크의 말을 전해 듣고도 문재현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이미 밖의 내용이 무엇인지 안다는 의미로 보였다.

“북한 역시 비슷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죽은 허극을 지지했던 세력이 공공연하게 무력도발을 준비할 정도입니다. 위민국도 바로 그쪽 세력이었습니다.”

허상수를 사형시키는데 이런 속사정이 있었나?

강찬은 속이 답답해서 애꿎은 차 한잔을 다 마셨다.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인 장광택입니다. 북한은 지금 그를 처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위민국에게 특수팀을 내려보낸 명령권자이기도 합니다.”

“중국이라면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습니까?”

문재현의 질문을 강찬이 라노크에게 전했다.

“중국은 당분간 한반도 정세에 끼어들기 어렵습니다. 양범이 허상수를 처리하는 것도, 경제조치의 번복으로 인한 망신, 그리고 공항에서의 위신 추락을 보상한다는 제스처로 반대세력을 흡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국과 적대감을 불러일으켜서 내부를 통일하기도 급한데 북한의 권력 싸움까지는 손을 뻗지 못합니다.”

“강찬 학생, 대사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봐 주겠습니까?”

강찬은 문재현의 질문을 라노크에게 전했다.

“대한민국의 특수팀을 파견해 주십시오. 장광택을 처리하면 한국은 세 가지 이익을 얻습니다. 북한의 안정, 최성곤 장군의 복수, 마지막으로 북한 군사 요충지까지의 양보입니다.”

강찬과 달리 문재현은 완벽하게 알아들은 눈치였다.

“프랑스에서 직접 도움을 주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미국이 개입할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러시아도 입장이 난처하지요. 이 점이 한국으로는 많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특수팀을 파견해도 미국은 개입할 수 있습니다.”

강찬은 문재현의 이런 눈빛을 처음 보았다.

부드러움 속에 담긴 날카로움.

라노크와 비슷하지만, 분명하게 다른 위엄이 담겨있는 눈빛이었다.

“프랑스에서 항공모함이 출발했습니다. 저희가 공해상에 대기하면 중국과 러시아도 각각 항공모함과 군함을 한반도 공해상에 대기할 것입니다.”

라노크의 말을 전해 들은 문재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이는 반대로 북한의 장광택이 우발적으로 일으키는 군사행동을 억제할 것이며, 미국이 이번 작전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프랑스와 중국, 러시아가 얻는 이익은 무엇이 있을까요?”

라노크는 차를 마신 후에 입을 열었다.

“중국은 망가진 체면을 이번 무력시위로 어느 정도 보상받고, 내부적 통합을 이룰 것입니다. 러시아는 한국과 유전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라, 이번 기회에 한반도에서 발언권을 얻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본국은?”

라노크가 강찬을 바라보았다.

구렁이는 통역을 통해서 대화를 나누면서도 상대를 궁금하게 한다.

강찬이 말을 다 전하고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경제적으로는 북한의 광물, 그리고 한국 정부와의 단단한 신뢰를 얻을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문재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에 입을 열었다.

“북한의 광물 거래는 경제제재조치로 쉽지 않을 텐데요?”

“단순한 거래는 예외가 있습니다.”

문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 우리는 미국과 오랫동안 정치, 경제, 안보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잠시 불편하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파기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와 정보전의 차이,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물밑에서 정보를 주고받는다.

정보전이 필요한 진짜 이유에 대해 공부하는 느낌.

강찬은 오늘도 라노크가 일부러 자신을 불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이번 일로 한국과의 관계를 깨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양보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만약 지금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단절한다면 당장 본국에서부터 가까이는 중국, 러시아가 손을 뻗치기 때문입니다.”

문재현의 표정이 곧 답과 같았다.

이후로 비슷한 내용이 20분쯤 오갔는데 특별히 다른 것은 없었다.

“대사님. 맑은 바람이 생각나는군요. 괜찮다면 강찬 학생과 잠시 산책 좀 하고 오겠습니다.”

라노크는 기다렸던 사람처럼 양손을 뻗어 가며 문재현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강찬 학생.”

문재현이 일어서자 강찬이 그 뒤를 따랐다.

접견장을 나와서 뒤쪽으로 나오자 곧바로 산을 옆으로 낀 산책로가 나왔다.

멀리 양복을 입은 경호 요원들이 둘씩 짝을 지어 걷는 것이 보였다.

“꼭 직접 가야겠습니까? 다른 대원의 목숨이 가볍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유라시아철도라는 국가적 사업을 앞두고 너무 위험한 일에 나서는 것 같아서 걱정되어서 그렇습니다.”

문재현의 말은 알아들었다.

하지만 이런 작전에 나서려면 최소한 차동균이나 최종일은 있어야 한다. 식당에서 기를 살려놓기는 했지만, 아직 믿고 따를 지휘자가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작전을 나가면 실패는 불을 본 것 같고, 결과는 죽으러 가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

강찬이 입을 다물고 있자 문재현은 뒤편의 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긴 미국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작전일수록 최고의 대원들을 파견하지요. 아직 우리가 힘이 없어서 강찬 씨를 대신할 대원이 없는 탓이니까 다른 말을 하기는 어렵겠지요.”

허락하는 건가?

강찬의 시선을 본 문재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국가정보원에서 이번 작전에 나서는 대원들의 신원을 모두 지울 겁니다. 심지어 주민등록조차 없어집니다. 작전에 실패하거나 혹은 사망하는 대원은 아예 이 땅에서 태어난 적도 없게 됩니다.”

문재현이 숨을 커다랗게 마시며 먼 하늘을 보았다.

“이번 작전에 다녀오고 나면 우리나라 정보국이 강해지도록 애써주기 바랍니다. 조금 전에 보았듯이 정치를 담당하는 역할을 대통령이 한다면, 대한민국의 의견과 이익을 조율하는 역할을 강찬 씨가 맡아주었으면 합니다.”

문재현은 시선을 내려 강찬을 보았다.

“강대국에 밀리지 않는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낼 사람, 러시아, 프랑스, 영국, 미국, 중국, 독일이 그렇듯 우리도 대한민국을 앞세울 수 있는 인물이 있었으면 싶습니다. 강한 대한민국, 모두가 잘사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습니다.”

이 양반은 이상하게 진심을 잘 전한다.

“약속해 줄 수 있지요?”

아직 그런 힘을 가졌는지 모르는데 덜컥 들은 질문이다. 낯간지럽기도 하고, 쑥스러운 질문이라서 강찬은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약속 못 하면 나도 못 보냅니다.”

걸음을 멈춘 문재현이 강찬을 보았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씨익 웃은 문재현이 강찬의 손을 잡았다.

“나는 임기라는 게 있습니다. 끝나면 편안하게 지낼 겁니다. 하지만 강찬 씨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힘이 들겠지요.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부탁합니다.”

“말씀대로인지는 몰라도 최선은 다하겠습니다.”

정말 대한민국을 책임질 능력이 있을까?

바람이 있다면 최성곤처럼 이렇게 좋은 사람을 또 잃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문재현이 보기 좋은 웃음을 지었다.

***

“강찬 씨. 이번 작전이 끝나면 내가 부탁했던 연수를 해줬으면 합니다.”

호텔로 향하는 차 안에서 라노크는 덤덤한 음성으로 권하며 강찬을 보았다.

“이런 작전이 있을 때마다 강찬 씨가 직접 나가는 것은 진심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이번 작전이 갖는 의미가 워낙 크고, 아직 대원들을 믿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강찬 씨는 더 큰 것을 위해 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찬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양범의 중국, 바실리의 러시아도 그렇지만, 미국과 일본의 견제를 감당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 말이다.

“알겠습니다, 대사님.”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능력이며, 신뢰로 따졌을 때 이만한 아군도 없다.

강찬의 고맙다는 인사를 라노크는 넉넉한 미소로 받았다.

호텔에서 라노크와 헤어진 강찬은 로비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던 석강호와 함께 곧바로 삼성동으로 향했다.

“김 팀장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던데 무슨 일이오?”

김형정과 통화를 마치고 로비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던 석강호는 차가 출발하자마자 바로 질문을 던졌다.

“가서 얘기하자.”

“알았소.”

요원들을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가는 차 안에서 떠들 이유도 없는 거다. 그리고 이 정도 이야기하면 석강호는 충분히 알아듣는다.

삼성동 김형정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전대극과 황기현이 강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오늘은 담배 피우기 어려운 사람들만 만난다.

김형정이 음료를 가져다준 다음이다.

“말씀은 들었지?”

자리에 앉자마자 전대극이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대원들은 어떻게 선발하는 게 좋겠나?”

“제가 오늘 증평에 다녀올게요.”

전대극이 입에 힘을 꾹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 씨. 지금까지의 작전이 모두 그랬지만, 특히나 이번 작전은 한반도 내에서, 그것도 북한을 상대로 한 것입니다. 짐작하겠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때 북한과 우리가 동시에 곤경에 빠집니다.”

황기현은 전에 없이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렇게 될 소지가 있다면 대원들의 구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황기현의 눈빛이 매서운 이유가 이것이었을 거다.

“알겠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침투경로까지는 국가정보원에서 준비하겠습니다. 연락은 방송위성을 통해 시간마다 보냅니다.”

하고 싶었던 말을 마친 황기현이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강찬 씨를 보면 내가 늙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정보원을 맡은 2년 동안 무엇을 했나 싶기도 하지요.”

“하아!”

전대극이 이해한다는 듯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행사는 취소하기로 했다.”

“잘됐네요.”

강찬이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대신에 김형정은 입도 뻥긋 못하고 있었다. 석강호와 둘이서.

“작전에 나가는 대원들은 모든 인적사항이 말소됩니다. 강찬 씨의 경우는 서류상으로 오늘 밤 9시 비행기로 태국에 출국한 것으로 됩니다.”

아무래도 얼굴이 알려진 탓이려니 싶었다.

“점심은 먹었어?”

“아직 못 먹었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 점심이나 할까?”

전대극의 제안에 김형정이 나섰고, 결국 짬뽕과 탕수육을 시켰다.

대통령 경호실장, 국가정보원 원장이 삼성동의 국가정보원 분실에서 국가정보원 팀장, 고등학교 선생, 고등학생과 마주앉아 짬뽕에 탕수육을 먹는다.

이럴 때 보면 사는 거 정말 별거 없다.

탕수육이 포함돼서 그런지 식사는 10분쯤 뒤에 왔다.

몇 번을 먹었지만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는데 꼭 20분이 걸렸다.

그릇을 치운 국가정보원 삼성동 분실장 김형정이 커피를 가져왔다.

“후루룩. 그나저나 위민국이라는 놈의 위치는 아직도 오리무중인 건가?”

숭늉처럼 커피를 들이켠 전대극이 김형정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우리끼리 솔직히 말하자구. 허하수를 지켜보고는 있는 거야? 어차피 냄새가 나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잖나? 강찬이를 따로 만나자고도 했고.”

김형정의 시선을 받은 황기현이 방안을 슬쩍 둘러보고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강찬 씨가 이 작전에 성공하면 위민국만이 아니라 그쪽에 동조한 모든 세력을 단숨에 잡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 국가정보원에서 정보를 빼돌리던 다섯 명을 잡은 것과 방식은 같습니다.”

“역시 원장님은 음흉한 구석이 있어.”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전대극의 말에 김형정이 웃음을 억지로 삼켰다.

“중국에서 오늘 오후에 허상수의 사형을 집행하려는 것도 같은 의미일 겁니다.”

“사형을 집행한다고?”

“프랑스 정보총국에서 보내준 정보이니 틀림없을 겁니다. 중국은 우선 반대파를 손에 넣을 거고, 순서대로 차례차례 숙청하겠지요. 그게 중국의 방식입니다.”

“아니? 반대파에는 멍청이들만 있나? 중국의 방식이 차례대로 숙청하는 거라면 뭣 때문에 고개를 숙여?”

황기현은 먼저 많은 것이 담긴 미소를 보였다.

“충성을 맹세해야지요. 반대파의 내용을 소상하게, 깊게, 먼저 알려주는 자만 살려줍니다. 중국은 두 가지로 돌아간다고 보면 됩니다. 관계와 명분. 허상수의 사형을 집행하는 것으로 명분이 양범에게 가지요.”

“에이! 골치 아픈 놈들!”

전대극이 고개를 저을 때 황기현은 강찬을 보았다.

‘알아들었습니까?’

중요한 정보다.

그런데도 국가정보원장이 찜질방에 들른 아주머니처럼 주절거린 이유가 그의 눈빛에 담겨있었다.

잘못 본 건가?

강찬의 시선에 황기현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더럽게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서 말이다.

***

강찬이 증평에 들어선 것은 저녁 시간이었다.

바리케이드를 지나 산길을 돌자 익숙한 막사가 눈에 들어왔다.

“저녁 먹나 보우?”

석강호가 앞유리에 상체를 숙이고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부관이 나와 막사 앞에 섰다. 팔에 감긴 하얀 천이 아프게 가슴에 들어왔다.

“대원들은요?”

“훈련 중입니다.”

“저녁 시간인데요?”

“산악전을 한다던데 끝나는 시간은 대원들이 결정합니다.”

부관은 울 듯한 표정이었다.

강찬을 보자 최성곤의 모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커피 한잔 드릴까요?”

“좋지요.”

강찬은 우선 막사 앞에 걸터앉았다.

잠시 후에 부관이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와 강찬과 석강호에게 주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

연기가 바람을 타고 산으로 달려가는 동안 멀리서 철컥거리는 총기 소리와 대원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강찬을 본 대원들의 표정이 무척이나 복잡했다.

대원들은 하나둘 강찬의 앞으로 다가왔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억울함, 터트리지 못한 울분이 가득한 눈으로 강찬을 보고 있었다.

치이익.

강찬은 종이컵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주민등록 말소다.”

곽철호가 고개를 갸웃하는가 싶더니 이를 꽉 깨물었다.

“죽으면 흔적조차 안 남는다. 가족만 기억하는 사람인 거다. 작전에 실패해도 마찬가지다.”

“목표를 알려주십시오.”

“이름이 거창하던데?”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더 시간을 끌면 당장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대원들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장 장광택.”

저벅!

곽철호가 빠르게 한 걸음을 내디뎠고, 그가 멈추기도 전에 전 대원이 강찬의 앞으로 다가왔다.

“목표가 어딘지 분명히들 아는 거지?”

곽철호가 석강호를 흉내 내듯 히죽 웃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