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6 / 0419 ----------------------------------------------
10-1 속은 후련하우.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강찬은 라노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언가를 바랐다기보다는 정보국의 스승에게 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겠다는 의도였다.
[“강찬 씨. 이 시간에 어쩐 일입니까?”]
“대사님. 너무 늦은 건 아닌가요?”
[“그럴 리가요? 마침 안느와 함께 강찬 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염병할! 모처럼 부녀가 보내는 시간을 방해한 꼴이다. 그렇다고 할 말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대사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대사님께는 꼭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조금 전 양범에게 전화했었습니다. 중국에서 체포한 허상수를 죽여달라고 부탁했고, 답을 들었습니다.”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뜻밖에도 라노크가 재미있다는 투로 웃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허상수를 죽여서 원하는 게 무엇인가요?”]
“최성곤 장군을 잃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일은 경고입니다. 제 주변을 건드리고는 절대로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그 안에 나와 안느도 포함되는 건가요?”]
이 양반이 지금 장난인 줄 아는 건가?
구렁이는 절대 이런 일을 가볍게 여길 사람이 아니다.
“대사님. 당연하게 대사님과 안느를 지킬 겁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이제야 유니콘이 주인을 찾았군요. 그렇다면 강찬 씨. 바실리와 루드비히에게도 연락을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 목표는 어떻게 되나요?”]
“북한에 들어가서 특수팀 파견을 결정한 놈의 목에 칼을 꽂아줄 생각입니다.”
시종일관 여유 있던 라노크가 잠시 침묵했다.
[“강찬 씨는 늘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유니콘의 주인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변국과 미국에 이렇게 쉽게 벌집을 던질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유니콘의 주인이 어떤 의미인 줄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라노크가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살아올 자신이 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맞고만 있으면 언젠가는 모두 잃게 될 거라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 것 같습니다.”
강찬은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강찬 씨. 바실리와 루드비히에게는 내가 전화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보총국에 몇 가지를 알아볼 일이 있으니 내일 출발하는 일은 없도록 부탁합니다.”]
그래! 적어도 이런 답이 있어야 맞는 거다!
강찬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정보원을 적어도 프랑스만큼은 강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누가 정보국의 수장이 되든 간에 라노크처럼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말이다.
[“내일 차 한잔 할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안느가 안부를 전하는군요. 그리고 루이가 퇴원했습니다.”]
부럽다. 강찬이 북한에 들어가겠다고 하는데도 저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라노크의 여유가 정말 부러웠다.
“내일 뵙겠습니다.”
강찬은 전화를 끊고는 프랑스어를 못 알아듣는 석강호에게 통화 내용을 알려주었다.
“씨발. 우리나라 장군이 죽은 건데 프랑스가 더 적극적인 것 같아서 이상하게 배알이 뒤틀리우.”
“그럴 거 없다. 우리도 강해지면 돼.”
강찬의 눈을 본 석강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눈빛이었다.
***
“드디어 유니콘이 주인을 찾은 모양이구나.”
“차니 이야기인가요?”
라노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범은 과연 중국 정보국을 차지할 만한 인물이군. 그 짧은 통화에서 허상수를 이용할 계획을 세우다니? 이렇게 되면 나를 납치했던 중국에 대해 응징해줘야겠지?”
양범과는 우호적인 관계다.
그런데도 응징을 가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정치적인 움직임에서 안느는 라노크의 깊이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유니콘의 주인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할 필요가 있겠다.”
“파파스. 차니가 강한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가 정말 앞으로 세계의 경제와 정보를 모두 거머쥘 영웅이 될까요? 그러기엔 그가 태어난 나라가……?”
라노크의 미소를 본 안느가 말을 멈추었다.
“안느. 무슈 강의 순간적인 판단,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무릎 꿇지 않는 강인함. 그리고 작전에 나갈 때마다 보여주는 초인적인 능력과 의지는 주변의 여건을 이겨내고도 남는다.”
식탁의 건너편에 앉은 안느는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라노크의 말을 들었다.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정보전 승패의 절반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리지 않는다. 바실리가 어째서 무슈 강에게 한 수를 양보할까? 단순히 스페츠나츠가 패배했다고 생각한다면 언젠가는 바실리에게 당하는 사람이 되지.”
“파파스. 바실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대한민국은 무슈 강을 지켜주지 못해요.”
라노크가 서양 가면을 뒤집어쓴 것처럼 웃었다.
“내가 독한 마음을 먹어도 무슈 강을 죽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를 죽이느라 쏟아부은 힘 때문에 프랑스 정보국은 최소 10년간 힘을 되찾기 어려울 거다.”
“한 사람의 능력이 그 정도로 강할 수 있나요?”
“무슈 강은 그런 남자다. 바실리와 무슈 강이 전면전을 벌이면 반드시 무슈 강의 편에 서는 나라가 생긴다. 한국은 그를 지켜주지 못해도 무슈 강은 자기편을 만들 능력이 있지. 결국, 바실리가 승리한다 해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 거다.”
안느는 아직 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라노크는 시가를 집어 들었다.
“양범에게 연락해라. 허상수의 처형시간을 알아보고 그에 맞춰 에이글라(aigle)를 한반도 근해 공해상으로 출동시키는 것이 좋겠다.”
“파파스! 정보총국에서 거부할 수도 있어요.”
“안느.”
안느는 갑자기 변한 라노크의 음성에 움찔했다.
조심스럽게 시선을 든 그녀의 앞에서 라노크는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정보총국이 내 명령을 거절할 수 있다는 말처럼 나를 모욕하는 말도 없다.”
“죄송해요.”
라노크가 시가를 입에 물고 연기를 뿜어내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보는 사람이 만들고, 그 정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지. 판단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누가 죽는가도 결정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돼.”
안느가 고개를 끄덕이자 라노크가 잔을 내밀었다.
“만약 무슈 강이 유니콘의 주인이 아니라면 내가 물러나는 것으로 프랑스는 제 모습을 지킬 수 있지. 그다음을 이을 사람이 너라는 것이 내게는 또 다른 행운이겠고.”
쨍.
안느가 조심스럽게 잔을 마주쳤다.
***
강대경, 유혜숙과 식사를 마친 강찬은 서둘러 석강호가 있는 옆방으로 움직였다.
마음을 정한 다음이라 속은 편했는데 번들거리는 눈빛만큼은 어쩌질 못했다.
오전 8시 30분쯤이었다.
커피를 따라놓고 보도프로그램을 틀어놓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양범이 어떻게 처리할까?
강찬이 커피잔을 보며 생각에 잠겼을 때였다.
“어?”
석강호의 놀란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강찬은 빠르게 시선을 들었다.
“저것 좀 보쇼.”
석강호가 가리킨 TV에 속보란 자막이 커다랗게 떠 있었다.
“중국 당국이 우리 시간으로 오늘 오전 09시에 열린 재판에서 우리나라 허상수 국회의원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외교적 관례를 떠나서 중국 내부에서조차 전례가 없던 일이라는 평가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중국이 허상수 국회의원에 대한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정부는 현재 공식 발표를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개새끼, 눈깔이 좀 뒤집히겠지?”
“속이 조금은 후련하우.”
이제야 제대로 맞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푸흐흐.”
강찬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돌린 앞에서 석강호가 눈빛을 빛내면서 잔인하게 웃었다.
본능적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느끼고 있는 거다.
***
화요일 오전, 증평의 날씨는 화창했다.
붉은색을 뒤집어쓴 산이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깊은 가을, 국도를 빠져나온 승용차가 산으로 들어가는 길의 중간에서 멈춰 섰다.
찰칵.
김태진이 조수석에 내린 직후에 운전석에서 서상현이 내렸다.
“여긴가?”
김태진이 바라본 도로에는 사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편 한 조각 보이지 않았다.
김태진은 산을 한번, 그리고 국도를 한번 보았다.
그리고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손으로 감싸듯이 불을 붙였다.
“후우!”
뱉어낸 담배 연기가 가을바람을 타고 산으로 달렸다.
김태진은 도로의 한쪽에 담배를 내려놓았다.
치미는 화를 참는 사람처럼 김태진은 자꾸만 인상을 찌푸렸다.
서상현의 앞이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김태진은 손바닥 안쪽으로 눈가를 눌렀다.
“강찬에게 위민국을 살려주자고 했었다. 내 부하들을 죽인 것에 화가 나서 악착같이 쫓아다녔지만, 알고 보면 나도 그놈의 부하들을 죽였으니까. 그런 짓은 우리 손에서 멈추자는 의미였지.”
산과 국도를 다시 바라보는 김태진의 눈이 매섭게 번들거렸다.
“군복을 벗었다고 쓸데없이 감성적이 되었던 거지. 목을 자르고 심장을 찔러가며 살던 내가 그쯤에서 그만하라는 말을 했다니……. 강찬의 손을 더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는 핑계, 위민국에게 망가진 몸뚱이만큼 잔인한 일도 없으리라는 어쭙잖은 생각을……, 후우! 했었다.”
김태진이 서상현을 보았다.
“내일부터 유비캅을 맡아서 운영해.”
서상현은 묘한 표정이었다.
“위민국을 잡을 때까지다. 강찬의 말을 들으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부하들을 잃고, 적의 초소를 그렇게 뒤지고 다닐 때 내가 얼마나 조국에 서운했었는지, 군복을 억지로 벗길 때 내 심정이 어땠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혼자 위민국을 잡으러 다니실 생각입니까? 강찬씨 같은 인재를 지키기 위해서요?”
김태진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앞에서 서상현은 전에 없이 서운한 얼굴이었다.
“잊으셨습니까? 제가 그래도 대표님, 아니 선배님 뒤를 이었던 놈입니다. 선배님이 좋아서 전 제 손으로 군복을 벗었습니다. 강찬 씨만큼은 아니어도 저도 좀 합니다. 그리고 유비캅은 맡아줄 전문 경영인 많습니다.”
김태진이 웃음을 본 서상현이 비슷한 느낌으로 미소 지었다.
***
두 사람밖에 없는 회의실이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무거웠다.
“중국 정보국은 전혀 대꾸가 없습니다. 권력 암투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목이 타는지 황기현은 물을 한모금 마셨다.
“허상수 의원의 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사형을 선고한 것에 무언가 다른 속내가 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중국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가 그 증거입니다.”
“다른 속내요?”
문재현의 질문에 황기현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지난번 베이징 공항 테러로 뭉개진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의도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분석입니다.”
“허극을 자체적으로 처리했던 세력이 실권을 잡고 있다는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반대파를 모두 숙청하기에는 현재 세력도 부담이 클 것입니다. 허상수 의원을 처형하면서 반대파에게 경고와 화해의 제스처를 동시에 보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재현은 입을 꾹 다문 채로 듣고만 있었다.
“경비를 강화하긴 했는데 중국 대사관 앞에 모인 시위대의 숫자와 분노가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허하수 의장도 두문불출입니다. 각하.”
황기현이 나직하게 문재현을 불렀다.
“강찬 학생은 최성곤 장군의 복수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어젯밤에 들었습니다.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장군에게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그대로 남아 있지요.”
문재현의 눈빛을 본 황기현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각하께서는 어떤 생각이십니까?”
“미국은 어떤 경우에도 자국민을 해친 경우에 그냥 넘어간 적이 없지요. 지금껏 한 번도 못했지만 우리라고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내가 주저하는 이유는 늘 같습니다. 이 결정이 소중한 우리의 젊은이들을 헛되이 죽게 하는 것은 아닌가? 바로 그것입니다.”
“중국의 실권을 쥐고 있는 양범과 프랑스의 라노크 대사는 강찬 학생과 막역한 사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허상수 의원에게 이례적으로 사형을 선고하고, 프랑스 대사가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어쩌면 허상수 의원의 사형 선고를 강찬 학생은 알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전개가 완전히 달라지는군요. 그래서 라노크 대사가 면담을 요청한 것이겠지요.”
문재현은 고개를 저었다.
“작전에 성공할 가능성도 거의 없고, 성공한다고 해도 살아 돌아올 희망이 없는 작전 아닙니까?”
황기현도 답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강찬 학생은 아직 이런 일에 경험이 부족합니다. 자칫하면 정보전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구요.”
문재현은 또다시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이대로 성장해 준다면 우리나라에 더 없는 복이 될 텐데, 물가에 애를 내놓아도 걱정되는 판에 북한에 작전을 나가서 그것도 적의 수뇌부를 죽이러 가겠다니…….”
문재현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승부를 걸게 하는군요. 이제부터 강찬 학생을 정보 쪽의 얼굴로 내세우고 우리가 뒷바라지를 제대로 할 것이냐? 아니라면 아직은 감추고 숨기는 데 급급할 것이냐? 그런데 본인은 직접 최성곤의 복수를 하겠다고 저러니. 잘난 아들을 둔 아버지들의 심정이 이렇겠군요.”
“각하. 미국을 더 자극하시는 것은 곤란합니다.”
“최성곤 장군에게 내가 전화를 했었지요. 두 번인가 어떤 일이 있어도 최 장군과 대원들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었네요.”
말을 들은 황기현의 눈가에 곤혹스러운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
허하수의 복잡한 감정이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올라 있었다.
“내일 행사를 취소할 확률이 높아진 게지? 이런 사태라면 대사들도 충분히 이해할 테고.”
“아직 경호실에서 행사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중국의 계산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불똥이 나에게 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 성명은 발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지.”
“이유를 떠나서 국민들의 감정이 들끓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미국의 반응은?”
“예의 관망 중입니다.”
“국가정보원을 시작으로 중국과 미국까지. 연결고리가 전부 끊겼다. 반전이 필요해. 단번에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한 수.”
맞은 편에 앉은 덩치 큰 곽도영이 허하수의 눈치를 살필 때였다.
“예상 밖으로 어린놈의 능력이 뛰어난 건가? 아니라면 문재현에게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나?”
허하수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불쌍한 놈이 타국 땅에서 얼마나 겁에 질려있겠나?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외교라인조차 없어 허둥대는 놈들이, 정작 나라를 위해 음지에서 일하던 사람을 저렇게 죽게 만들었다.”
허하수는 허공을 향해 매서운 눈길을 쏟아냈다.
“방송국과 신문에 연락해서 이번 사태를 비판하도록 협조를 구해. 이대로 가면 순서대로 죽어 나갈 수밖에 없음을 잘 알 거다.”
“알겠습니다.”
“믿을 건 국민밖에 없다. 아직 이 땅에는 우리를 알고 지지해주는 현명한 국민이 더 많아. 그들이 현 사태를 바로 볼 수 있도록 언론이 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분명하게 뜻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위 국장은?”
“아직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허하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곽도영의 답이 떨어진 다음이다.
“불쌍한 녀석.”
허하수가 나직하게 혼잣말을 뱉어냈다.
***
허상수의 소식을 들은 후에 강찬은 방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최성곤을 습격한 인물은 두말할 나위 없이 위민국이다. 그리고 놈의 배후에 허하수가 있으리란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양범이 정말 지난번의 일이 고맙다는 이유 한 가지 때문에 허상수를 이렇게 처리했을까?
사형 집행은 언제 할지도 남았다.
무언가 있다.
물 위에 보이는 모습 말고, 물 아래에 어떤 모습이 숨겨져 있는지를 보아야 할 때였다.
그 외에도 생각할 것은 많았다.
가장 먼저 허가가 떨어지지 않을 때 최성곤의 복수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문제였다.
라노크가 과연 북한으로 외인부대 특수팀을 보내줄까?
강찬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가 울려서 들었다.
“대사님. 강찬입니다.”
[“강찬 씨. 오늘 일정이 어떻습니까?”]
“아직 다른 약속은 없습니다.”
[“급하게 약속이 잡혔습니다. 같이 갔으면 하는 곳이 있는데 한 시간 뒤에 호텔에 도착할 겁니다. 전화하면 내려와 줄 수 있나요?”]
“예, 그럼 그때 뵙지요.”
라노크와 통화를 끊은 강찬은 석강호에게 내용을 알려주었다.
“그나저나 얼른 위민국 이 새끼를 해결해야 집에 갈 텐데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소.”
“그러게 말이다.”
서두르고 싶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